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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5화 (25/475)

〈 25화 〉 25화 : 어서오세요, 마녀의 숲! (1)

* * *

위슨은 레이크에게 굽신 인사한 후, 먼저 그 ‘문’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표면이 일렁거리거나 하는 기색도 없이 훌쩍 넘어간 그녀는, 문 너머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후딱 움직이라고, 굼벵이 새끼들아!”

“……”

울컥 올라오는 걸 겨우 꾹 눌러 참았다.

후, 진정하자, 진정.

저 날개 달린 공 같은 놈이 맘대로 지껄이는 거지, 저 애가 말하는 게 아니야.

먼저 건너간 위슨을 따라 ‘문’을 통과하자, 바로 울창한 숲을 앞둔 호숫가로 빠져나왔다.

메린이 마지막으로 건너오자 알아서 ‘문’이 닫히며 사라졌다.

“와, 진짜 건너왔네요.”

로나가 감탄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레이크가 있던 그 나무집이 보였다.

무언가를 통과하는 듯한 느낌 하나 없이, 정말 그냥 단순히 문을 통과했을 뿐인데.

그런데 실제로는 이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한 것이다.

이게 바로 마법이구나!

“지금 놀러 왔냐? 한눈 팔지 말고 잽싸게 움직이라고, 늘보 자식들아!”

위슨의 머리에 앉은 파랑새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게 익숙해질 수 있다고?

상대가 익숙해지기 전에 위슨이 칼 맞을 것 같은데.

나는 조심스럽게 위슨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위슨, 파랑새 말고는 안 되는 거야?”

“뭐, 임마, 불만이냐!”

소리를 빽 지르는 파랑새를 위슨이 손가락으로 퉁겨버렸다.

쌤통이다.

파랑새는 짹짹, 가냘프게 울더니 얌전히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딴 놈도 되긴 한데 쓸모없을걸? 보고 싶냐?”

고개를 끄덕이자, 위슨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손가락을 퉁겨 파랑새를 치워버렸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여러 병을 꺼내어 한꺼번에 바닥에 던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러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위슨의 주변에 각각 뭉치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짐승의 모습이었다.

스라소니, 늑대, 그리고……

“……거북이?”

쟤 혼자 너무 튀는 것 같은데.

거북이 소환수를 어디다 써??

위슨이 잘 보라는 듯이 우리에게 손짓하고, 먼저 스라소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이윽고 시작된 전언(??) 시험은…… ……솔직히 말해, 굉장히 한탄스러웠다.

뭐, 일단 다른 짐승들도 인간의 말을 하고, 위슨의 생각을 전할 수는 있었다.

다들 하나씩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스라소니는 고어(古?)를 쓰는 탓에 나도 알아듣기 힘들었고, 거대한 거북이는 말이 너무 느리며, 늑대는 제일 사납게 생겨놓고 목소리는 개미만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결국 다시 파랑새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짹짹거리며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에.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는 게 그 건방진 파랑새 딱 하나라니!

오호통재라, 원통하고 애통하며 비통에 빠질 이 사단을 '비극'이라는 한 단어에 어찌 다 담을 수 있으랴……!

참담한 심정으로 위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힘내라…….”

“……?”

가엾은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후, 우리는 위슨을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갔다.

파랑새는 숲 안엔 마력이 가득해서 여러 이상한 생물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며, 절대로 한눈을 팔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단단히 일렀다.

“픽시 놈들은 장난을 좋아하거든. 까딱 잘못하면 금방 길을 잃어. 마녀들도…… …… ……여기선 길을 잃으면 바로 죽는다고…… ……짐승…… ……저 건너편과 다르게 마력을 듬뿍 먹어서 거의 마수…… …… ……이 몸이 친히 하는 말씀이다. 잘 새겨들어라, 얼간이들아.”

물론 듣지 않았다.

말 한 번 누구처럼 참 기네.

그 뒤로도 파랑새는 계속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숲의 버섯은 효능이 세다느니, 저쪽 어딘가의 버섯 숲에는 대왕버섯이 걸어다닌다느니, 위슨이 부리는 소환수 중에 자신이 제일 똑똑하다느니 등등,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마구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에 일일이 맞장구를 치는 로나는 정말 착한 아이다.

굳이 저렇게까지 열심히 들어줄 필요는 없을 텐데.

“우와, 은빛 늑대도 있어요? 세상에, 그 털 엄청 귀한데! 은빛 늑대 털은 사악한 힘을 막는 효과가 있거든요! 한 마리 잡으면 안 될까요?”

……순수하게 관심이 있는 거였구나.

그나저나 말을 못하는 마녀라니.

조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마법을 쓰려면 주문을 외워야 하지 않나?

아니면, 마법을 쓰는 데에 굳이 말이 필요하진 않은 건가??

……라고 직접 물어봐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

고향 마을에 눈이 거의 멀다시피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길을 벗어나려는 걸 도와줘도 화를 내고, 문을 대신 열어줘도 화를 냈다.

누굴 길 못 다니는 병신으로 아냐면서.

몸이 불편한 것 하나 없는 나는 모르지만, 어쩌면 그걸 지적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근데 왜 말을 못하는 거야? 다쳤어?”

그리고 역시 메린에겐 그런 세심한 배려 따위 전혀 없었다!

아니, 좀 돌려 말하던가…….

다행히 위슨은 우리 마을 할머니 같은 성격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곤, 여전히 혼자 떠들고 있는 파랑새의 머리를 툭 쳤다.

한창 싱싱한 벌레를 찾는 법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던 파랑새는 화들짝 놀라더니, 다른 말을 쏟아내었다.

“다친 거였으면 진작에 고쳤지, 그냥 있겠냐? 어렸을 때부터 이랬어. 다른 마녀들도 원인을 몰라. 어머니…… 어머니 같은 소리 하네! 폴레 그 녀, 아야! ……폴레는 저주받아서 그렇다고 하고 있지만.”

“저주? 흠…… 로나, 저주도 풀 수 있어?”

만약 로나가 저주를 풀 수 있다면, 숲에 데려와 준 것에 대한 큰 보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일이 그리 쉽게 풀리진 않는 것 같다.

로나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치유 사제가 할 수 있어요. 저는 전투사제라서, 전투 중에 입을 수 있는 부상만 치유할 수 있어요.”

“그렇구나…….”

정말 아쉽다.

위슨에게 보답을 못한다는 것도 아쉽지만, 개인적으로 저 파랑새 말을 계속 들어야 된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다.

“아쉽긴 하지. 말을 할 수 있으면 다른 마녀들처럼 강력한 마법들을 펑펑 써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넘치는 재능을 썩히고 있으니 아까워 죽겠다니까. 아, 이건 내가 하는 말이야.”

역시 마법을 쓰려면 말을 해야 되는구나.

그래도 소환수를 다루는 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문득 그녀의 허리벨트에 꽂힌 여러 유리병이 내용물을 찰랑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소환수와 물약.

그게 말을 할 수 없는 그녀가 쓸 수 있는 마법인 듯했다.

“……”

위슨은 앞만 보며 계속 걸어갔지만, 어쩐지 어깨가 좀 쳐진 듯했다.

……알 것 같다.

넘치는 재능 부분은 공감이 안 되지만, ‘나 빼고 다들 잘하는 환경’에 사는 기분이 어떨지는 잘 알고 있다.

나 자신이 그런 곳에서, 얘보다 더 오래 겪으며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경험자로서 무언가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어물쩡거리며 말을 걸 시간을 재는 사이에 숲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우와.”

로나가 곧바로 탄성을 질렀다.

숲을 빠져나오니 작은 냇물이 흐르는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 곳곳에는 여러 빛깔의 화려한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그 위를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답고 몽환적인 초원 중앙에, 아무리 고개를 높이 쳐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흑단나무가 한 그루 자라 있었다.

“자, 봐라, 여기가 마녀들의 집,부엉이탑이다.”

파랑새는 솜털 만한 한쪽 날개를 뻗어 나무를 가리켰다.

나와 로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이 나무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 스무 개가 넘는 창문이 뚫려 있는데도 나무가 싱싱하네.

마녀들이 나무에 어떤 마법적인 처치를 하고 있나 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창문들을 통해 빗자루를 탄 마녀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여기 안에 몇 명이나 살고 있을까?

……그건 그렇고, 기록을 업으로 삼는 집안의 자식으로서,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도저히 넘길 수 없었다.

“야, 이게 나무지, 왜 탑이야? 마녀들은 탑 본 적 없대?”

“내 알 바냐? 지들이 탑이라는데 어쩔 거야.”

뭐, 본인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래도 이런 건 확실히 해야 된다고. 원래 탑이었어?”

“뭘 그리 쪼잔하게 따지냐?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냥 그런 줄 알아, 짜샤!”

“……”

이 비만조류 자식, 그냥 지가 모르니까 뻗대는 거 아니야?

꼭 모르는 놈이 이렇게 대꾸하더라.

잠자코 걷던 위슨이 또 파랑새를 툭 쳤다.

“째짹!”

파랑새가 가냘픈 소리를 냈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부터, 위슨은 파랑새가 좀 지나치다 싶을 때마다 머리를 툭툭 때리고 있다.

핫하! 쌤통이다, 짜샤!

“원래는 흑단나무로 만든 탑이었는데,대마녀 마일린이 여기 살면서 마법을 쓰다 보니 영향을 받아서 도로 자란 거다. 됐냐, 임마? 응? 이제 속 시원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위슨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위슨, 얘 말투 못 고쳐?”

“하~하,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 이건 내 천성이라서 못 고치지롱!”

“오, 신이시여, 어찌 이런 가혹한 시련을……!”

정말 위슨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커다란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파랑새가 비탄에 빠진 내 머리 위에 앉아서 콕콕 쪼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아프지도 않아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 식으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에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흑갈색 머리를 땋아 내린 여자가 내려와 앞을 막았다.

그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더니, 위슨을 향해 물었다.

“위슨, 밖에 나가더니 이상한 애들을 끌고 왔구나. 이 놈은 뭐냐? 제물이냐?”

제물 어쩌고 하면서 나를 한 번 더 위아래로 훑어봤는데, 그 이유가 뭔지 굉장히 궁금하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내용일 게 뻔하긴 하지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파랑새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 위슨이 재빨리 손가락을 퉁겨서 치워버렸다.

짤랑, 방울 소리와 함께 위슨의 머리 위에 글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드르. 미드랜드에서 온 손님이에요. 종소리 건으로 수장님을 뵈러 왔대요.]

“종소리? ……아아, 그거. 좋아, 들어가. 수장님은 방에 계실 거다. 아, 사내놈은 이거 차고 들어가고.”

오드르가 품에서 천 조각을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검은 린넨 천을 이어 붙인 팔찌인데, 흰색 실로 무슨 문양이 바느질되어 있었다.

“이게 뭔데요? 왜 저만 차죠?”

팔찌로 한쪽 팔목을 감싸면서 물었다.

“먹이가 아니라손님이라는 표시다. 무사히 나가고 싶으면 절대 빼지 않는 게 좋을 거다.”

“……”

먹이라니? 잡아먹는 거야?

마녀라더니 진짜 동화 속의 사람 잡아먹는 그런 마녀야?!

나는 팔찌가 단단히 차여 있는지 다시 확인한 후, 위슨을 따라 커다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 안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평범하진 않다.

문 안쪽은 나무 속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평범하게 생긴 로비였다.

널찍한 공간 여기저기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마녀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렇다. 수다를 떨고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안에 들어서는 순간, 소란스럽던 로비가 정적에 휩싸이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외부인을 경계하느라 그런 것일수도 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공간에 침입해 들어오는 건 누구든 경계할 거다.

……그런 시시한 이유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야, 다들 너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메린의 목소리는 약간 딱딱했다.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아마 여기저기 모여 있는 마녀들을 보는 거겠지.

나는 좀처럼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목을 쥐어 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알아.”

겨우 쥐어 짜낸 내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여자들의 시선을 한데 받고 있으니, 평소였다면 너스레를 떨며 농담을 던지겠지만, 지금은 우스개소리는커녕 긴장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그 선포식으로 향하던 때가 그리워질 정도이다.

바짝 마른 목을 달래려, 어떻게든 입 안의 침을 모아 꿀꺽 삼켰다.

보고 있다.

다들 보고 있다.

노리고 있다.

누구를?

……나를.

입맛을 다시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들린 듯했다.

열을 띈 시선이 뺨에 날카롭게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범인을 이 눈으로 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고개를 돌리면 안 된다고 본능이 경고를 울렸다.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눈을 보면,

죽는다……!

“……”

나는 앞서 가는 위슨의 뒤통수만 뚫어져라 보면서 걸어갔다.

으으으으, 저 시선들만 아니면 맘 편하게 구경이라도 하면서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 천만다행이게도!마녀들은 내 팔목에 찬 팔찌 때문인지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와아, 흑단나무라고 해서 안이 다 까말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참 좋겠다, 로나야!

넌 맘 편히 구경할 수 있어서!

“당연하지. 전부 다 까만 색이면 방 구분이 안 되잖아. 뭐, 집 꾸미기 좋아하는 녀석이 있기도 해.”

마녀들의 시선은 우리가 복도로 나갈 때까지 내 등에 계속 꽂혔다.

로비를 가로질러 복도로 통하는 문을 닫고 나서야, 나는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다리가 스르르 풀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머리 위에서 딱 소리가 들리며 뭐가 내 머리에 얹힌 느낌이 들었다.

콕콕.

……정수리를 쪼는 걸 보니 파랑새구만.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위슨, 너네 사람 잡아먹기라도 하는 거야?”

“푸핫, 잡아먹긴 먹지! 침대에서 말야! 완전 바짝 마를 정도로!”

위슨이 당황해하며 파랑새를 후려쳤다!

그러나 지금 내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머릿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잡아먹……

침실……?

바짝 마르…….

“……”

……이게 지금 무슨 미친 소리야?!

마녀들의 시선이 다시 떠오르며 등골이 섬찟해졌다.

나도 모르게 천팔찌를 손으로 감싸쥐었다.

“네? 침실에서 잡아먹다니요? 그게 무슨……?”

“쟤를 쥐어짠다는 소리일걸?”

아직 성인이 안 된 순진한 소녀와, 성인식을 이미 치른 여자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보다 메린 저 자식, 저거, 저딴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아니, 평소에 술집에도 잘 안 가는 녀석이…….

로나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쥐어짜다뇨?”

“응? 너 몰라? 왜, 있잖아, 남녀가 아이 만들 때……”

“야, 임마! 얘기하고 싶으면 나 안 들리게 해라!!”

부끄러운 것보다도 마녀들의 시선이 자꾸 생각나서 무서워서 못 듣겠어!

마치 내가 뱀 앞에 놓인 개구리, 고양이 앞에 놓인 쥐새끼가 된 기분이었다고!

“푸핫, 이 새끼 이거 완전 쫄았네. 걱정 마라, 여기 나갈 때까지 그 팔찌만 무사~히 지키면 되니까. 뭐, 갑자기 팔찌가 홱 끊어질 수도 있지만 말이야~”

저, 저, 저 깃털 달린 공 새끼가 부리 터는 것 좀 봐……!

하지만 내가 벌컥 소리지르기도 전에, 위슨이 얼굴을 찡그리며 파랑새를 또 퍽 후려쳤다.

“흥, 이 녀석은 미안하다고 하지만 난 안 미안해. 완전 없었던 일도 아니니까 조심하라고 한 소리라고.”

“아, 예, 감사합니다…….”

사례가 이미 있다니 돌겠네.

엄청 무시무시한 곳이었잖아!

이런 놈들의 협조를 꼭 받아야 하는 건가?

꼭 인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걸까?

마녀랑 같이 다니면 나만 죽는 거 아니야?!

“아무튼 후딱 끝내게 가자.”

메린이 억지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 녀석, 분명 내가 발 못 떼면 질질 끌고 갈 거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천천히 위슨의 뒤를 따라갔다.

길다랗게 이어진 복도에는 벽마다 문들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위슨은 그 문들에 시선 하나 주지 않고 복도를 따라 쭉 걸었다.

그녀는 복도 맨 끝, 커다란 거울밖에 없는 끝자락에 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즉, 막다른 곳이다.왜 이쪽으로 왔지?

길을 잃었다고 하기엔, 위슨의 얼굴엔 어떤 당황한 기색도 비치지 않았다.

“……”

위슨이 거울의 표면에 손을 대고 무언가 끄적이자, 거울면이 일렁이며 어떤 커다란 문이 달린 벽을 비추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따라오라며 손짓하고 먼저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이것도 아까 통과한 '문' 같은 건가?

조심스럽게 거울 속으로 발을 내딛자, 거울에 비춰져 있던 그 커다란 문이 내 눈앞에 바로 보였다.

딱 봐도 장식이 마구마구 되어 있는 게, 중요한 방인 듯했다.

“수장이 이 안에 있어.”

오, 역시 마녀들의 집이구나.

왕성처럼 줄창 걸을 필요가 없어!

위슨이 문에 달린 쇠고리를 잡고 세 번 쿵쿵 두드린 후, 한 발짝 물러섰다.

잠시 후, 커다란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갑자기 몸이 확 끌어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왓!”

정신을 차리니, 눈앞에 큰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깊은 밤하늘처럼 검고 검은 머리카락이 복부 언저리까지 내려오고,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움푹 패인 검붉은 벨벳 옷을 입고 있다.

그 훤히 드러난 피부를 메꾸듯이, 여자의 흰 목에 날개를 활짝 편 부엉이 모양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수장이라고 했던가?

머리에 쓴 관이며 귀고리며 어깨 장식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반짝거리는 무언가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수장보다는 귀부인이 더 걸맞은 것 같다.

“……흐음.”

여자가 책에서 눈을 떼고 우리를 흘긋 보았다.

그녀의 목에 걸린 부엉이 목걸이가 흔들리며 불빛에 반짝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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