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6화 : 어서오세요, 마녀의 숲! (2)
* * *
마녀들의 수장은 굉장히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내가 바로 부엉이탑의 수장, 베르메다. 그래서, 미드랜드에서 여기까지 무슨 볼일이지?”
베르메의 눈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았다.
……나를 볼 때는 또 굉장히 진득하게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죽겠네, 이거.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목을 가다듬었다.
“……예, 카엘이라고 합니다. 율리아 공주…… 아니, 대언자 율리아님의 명을 받들어, 봉인에서 깨어난 드래곤 아트라토스의 토벌 협조를 구하고자 왔습니다.”
용사로서 왔다고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했다.
레이크 때 일도 그렇고, 가능하면 이 사실을 숨기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아니, 밝혀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메는 내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아트라토스? 하, 먼지 냄새 풀풀 나는 이름이군. 그래서? 왜 우리가 그걸 도와야 하지?”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나는 품속에서 그 맹약서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여기, 이곳의 수장도 서명을 했습니다. 이걸 어긴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맹약서에 당신들 단체의 이름을 적은 만큼, 명예를 아시는 분들일 것 같습니다만.”
베르메가 가볍게 손짓하자, 맹약서가 내 손을 벗어나 그녀의 얼굴 앞으로 둥실 날아갔다.
그녀는 양피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다시 손짓해서 내게 돌려준 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선선대의 이름이군. 뭐, 좋다. 선대에게 이야기를 듣긴 했으니까. 그래서, 뭘로 협조하면 되는 거지?”
“음, 한 분이 저희와 같이 가시는 게 제일 좋습니다만…….”
율리아 공주가 ‘인어 나라의 위치를 알아내려면 마법이 필요하다’고 한 이상, 반드시 한 명 데려가야 한다.
그래, 내 목숨이 위험에 처하게 되더라도……!
……부디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이 걸려야 할 텐데…….
그러나 웬걸, 마녀들의 수장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건 안 되겠는데? 지금 우리가 좀 바빠서 말야.”
“예? 바쁘다니요……?”
하긴, 마녀들이 탑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긴 했다.
그거랑 관련이 있나?
베르메는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엄청 중요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거든. 그 의식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누구도 네놈들을 도울 수 없을 거다. 정 뭐하면,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가.”
“……얼마나요?”
“오늘부터 따져서…… 일주일 정도?”
긴가? 아니, 그렇게 길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내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그렇게 큰 문제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음…… 혹시여기서기다려야 됩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가 씨익 웃었다.
그저 웃는 얼굴을 지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눈길을 피하고 말았다.
“왜? 내 자매들이 너무 드러내놓고 입맛을 다셨니? 후후, 너무 나쁘게 생각 마. 바깥이 시끄러워서 한동안 신선한 남자를 못 봤거든. 물론 바깥에서 기다려도 상관없어. 근데……”
그녀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띈 채, 그윽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안 내보내 줄 거야.”
“……그럼 다른 곳 먼저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 서쪽으로 가도록 하자.
일주일 뒤에 의식을 진행한다고 했으니 서쪽에 다녀오면 다 끝나 있겠지, 뭐.
공주도 어디를 먼저 가든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뭐, 순서 바꿀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후후후~ 못 들었니? 안 내보내 준다니까?”
“……!”
눈 깜짝할 새에 베르메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띄운 채 검지손가락으로 내 뺨을 스윽 쓸어내렸다.
손가락 끝에서 오한이 들 정도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가 내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너는, 이 섬에서, 못 나가. ……그러니 얌전히 일주일 동안 기다리렴?”
“윽!”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밀치며 뒤로 물러났다. 힘껏 밀친 것 같은데, 왠지 허공을 휘적거린 듯한 느낌이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앞을 노려보니, 베르메는 자신의 의자에 고혹적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마치,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환상……이었나?
그럼 내 뺨에 아직 감돌고 있는 이 서늘함은, 귓가를 떠도는 축축한 숨결은 무엇이란 말인가?
베르메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킥킥 웃고 있었다.
왠지 오기가 생겼다.
생쥐도 수세(??)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당신이 내보내 주지 않더라도 나갈 수 있을,”
“그래, 룬을 쓴다면 나갈 수 있겠지. 너 혼자만. 후후…… 네가 편하게 바깥에 있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어떻게 되려나~?”
“……”
별 일 없지 않을까?여자잖아.
마녀들이 노리는 건 남자니까…….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베르메의 짓궂은 미소가 더 깊어졌다.
“후후후, 내 자매들 중엔 여자를 더 좋아하는 특이한 사람도 있는데 말야~ 특히 때 묻지 않은 소녀를, 후후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맛에 빠진 자매도 있고~”
“……”
진짜 이딴 놈들한테 협조 받아야 돼?
아니, 그 전에, 그 드래곤은 이딴 놈들도 그 맹약서에 서명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였던 건가?
혹시 맹약서에 서명한 그 선선대 수장만 특출나게 선한 사람이었던 거 아니야?
어쨌든, 아무리 나보다 강하더라도 로나 같은 어린애를 이런 위험한 곳에 두고 갈 수는 없다.
메린 같은 위험인물을 투척하고 가는 건 더더욱 못할 짓이고.
그리고 내가 여기 남는다면, 저 두 사람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겠지.
……젠장! 결국 선택지가 없잖아!
나는 절규했다.
그때, 위슨이 내 앞에 서더니 머리 위에 글자를 띄웠다.
그새 파랑새를 집어넣은 듯했다.
[제가 이 사람을 따라가겠습니다.]
“……네가?”
[제 손이 비기도 하고, 다른 분들은 이 섬을 떠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니까요.]
베르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위슨을 쏘아보았다.
“넌 여길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
“주제를 알아라, 위슨!”
베르메의 호통 소리가 방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네.
역시 수장은 수장이구나.
호통치는 목소리에 위엄이 가득 실려 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싶을 정도로.
“정식으로 우리 자매가 되지도 못한 버러지가 뭐? 이들을 따라 나가겠다고? 감히 우리를 대표하겠다고!”
[실력은 이미 검증받았잖아요! 주문은 못 외우더라도 물약이랑,]
“닥쳐!”
우와, 이번엔 무슨 충격파가 날아온 것 같다!마법이라도 썼나?
위슨은 아예 엎드려서 두 귀를 막고 있었다.
미세하게 떨면서도,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켜 베르메를 마주보았다.
마녀의 수장은 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약간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문을 외우지 못하는 마녀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니? 그리고, 네 어미는 어쩌려고? 너 없이는 한시도 못 살 것처럼 구는 네 가엾은 어미를 생각하렴.”
“……”
위슨은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그 모습을 어떤 대답으로 받아들였는지, 베르메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한 팔로 턱을 괴며, 베르메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자아, 그럼 남은 건 우리 손님들이 묵을 곳을 마련하는 건데……. 후후후, 로비에 있는 자매들이 무척…… 무척 흥미로워할 거야. 다들 손님 대접하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저 얘네랑 따로 떨어져서는 절대 안 갈 겁니다!”
베르메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못을 박았다.
아무리 이런저런 것에 굶주려 있는 맹수, 아니, 마녀들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있으면 좀더 절제하겠지.
위험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베르메가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 여자, 수장의 권한으로 나만 쏙 데려갈 생각이었나!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뻔했네.
베르메는 내 단언에 단박에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로비에 있는 자매들에겐 내가 알릴 테니 내려가봐.”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베르메 님.”
갑자기 방 안에 목소리가 울리며, 방 창문을 통해 검은 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들어왔다.
부엉이는 날개를 퍼덕이며 바닥에 착지하더니, 길다란 로브를 입은 여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베르메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짜증과 경멸과 불쾌함이 뒤섞인 눈빛이다.
상대 여자도 비슷~하게, 자신의 수장을 영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잘은 모르지만, 사이 엄청 나쁜가본데.
“……드와트. 내가 문으로 다니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습니?”
“어머, 설마요. 바깥 공기를 쐬는 중에 베르메 님의 방이 소란스러워서 온 것뿐이에요. 베르메 님의 안위가 너무 걱정되어 그만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해요.”
“흥, 맘에도 없는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그래,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왔니?”
대놓고 조롱하는 어투에도, 드와트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태연하게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님들을 제가 돌보도록 허락해주세요.”
“뭐?”
“세 명이 한데 지낼 수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지요. 다행히 제 집은 빈 방도 있고, 공간도 충분하답니다. 손님들을 편히 대접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 드와트를 향해, 베르메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남의 말을 엿들을 뿐 아니라, 아래층의 자매들에겐 기회도 주지 않고 새치기를 해? 평소에 고결한 척하던 그 드와트가 맞니?”
“네, 드와트 본인이랍니다. 다른 자매들이 경쟁하도록 하면 분명 오늘내로 끝나지 않을 게 뻔한 걸요. 손님들을 위해서 제가 신념을 좀 굽히도록 하지요.”
“얼씨구, 참 대단한 희생 하나 하는구나.”
“……그럼 그렇게 된 걸로 알고 제가 데려가지요. 문제없겠지요?”
“있다고 하면 들을 거니? 네 맘대로 해.”
베르메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손사레를 치고, 다시 책에 눈길을 돌렸다.
드와트가 우리를 향해 바깥으로 나가자고 눈짓한 후, 앞서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가는 내 등 뒤로, 베르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 작은 거울 수십 개가 동시에 나타났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향해 그녀는 입술을 이죽거리며 바짝 세운 검지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수십 개의 거울이 일제히 제자리에서 방향을 틀었다.
뭘 하려는 거지?
나는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았고, 이내 그 의미를 깨달았다.
“……이건 대체…….”
어떤 거울은 흑단나무 앞을, 어떤 거울은 나무 안의 로비를, 또 어떤 거울은 집 앞 화단에 물을 주는 마녀를 비추고 있다.
쪼르르 물을 따르는 소리,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무언가 자르는 소리 등등이 한데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거울은, 거울들을 바라보는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내 자랑거리인 탐색 마법이란다. 이 섬 곳곳이 뿌려 두었지. 숲 속은 좀 어려워도, 이 ‘부엉이탑’과 그 주변은 속속들이 보고 들을 수 있다.”
거울의 역할은 오로지 마주보는 사물을 비추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거울들은 자신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모습을 비출 뿐 아니라 소리까지 전하고 있으니까.
베르메의 웃음이 짙어졌다.
아랫입술을 혀로 적시며, 그녀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러니 명심해. 내가 널,지켜보고 있을 거야.”
후후후후후…….
마치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올라오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방을 나가기까지도, 그 웃음소리가 잔향을 울리며 귓가에 아른거렸다.
커다란 문을 나오자 조금 전에 썼던 그 거울이 다시 우리를 반겼다.
드와트는 거울 앞에 서더니,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수도에서 오신 도련님, 정문으로 나가는 건 싫지?”
“네.”
한치도 주저하지 않았다.
……고민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되나?하지만 진짜 싫은걸!
드와트는 내 대답에 부드럽게 웃으며, 위슨이 했던 것처럼 거울을 작동시켰다.
표면이 일렁인 후 비친 것은……
“……정원?”
“후후, 가보면 알 거야.”
드와트가 내 손을 잡고 부드럽게 끌며 뒷걸음으로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저항할 틈도 없이 그대로 끌려 들어간 내 시야 한가득, 여러 종류의 약초들과 꽃이 심긴 밭이 보였다.
“오.”
왠지 하늘이 가까운 것 같다.
그늘 하나 없이 탁 트인 정원으로 햇빛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아예 숲 바깥으로 나온 건가?
“아니네.”
뒤를 돌아보니 그 엄청나게 두꺼운 나무줄기가 있다.
가끔 나무줄기에 난 창문으로 마녀 한두 명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나 같이 나를 보고 헤실 웃다가, 무언가를 보고는 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리고 있었다.
……내 옆에는 드와트밖에 없다.
이 마녀, 평판이 별로 안 좋은가?
드와트는 내 손을 놓고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여긴 마녀들의 정원이야. 가지 부분을 깎아서 만들었지.”
“가지? 이 흑단나무 가지를 깎아서 만들었다고요?”
“그렇단다.”
그럼 내가 밟고 있는 이 바닥이 나뭇가지라고?
허, 세상에.
뭘 어떻게 하면 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라는 거야?
“우와아~”
발소리와 감탄소리가 들리며 하나, 둘, 나머지 사람들이 잇따라 거울을 통해 넘어왔다.
저 감탄소리는 십중팔구 로나다.
그녀는 정원으로 나오자마자 두 눈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후, 다시 드와트를 쳐다보았다.
“바람 쐐서 좋긴 한데, 왜 여기로 왔죠?”
“정문으로 가는 건 싫다며? 그럼 여기에서 가는 수밖에 없거든.”
드와트는 천천히 정원 중앙으로 걸어간 후, 우리 쪽을 향해 돌아서서 눈을 감았다.
곧 그녀의 몸이 빛에 감싸이더니 부리에 주머니가 달린 커다란 새로 변했다.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를 다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이야, 새를 타고 날아서 가는 건가?
그거 좋은데!
……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내 기대를 처참히 무너뜨리고 나를 덥썩 삼켰다.
“……”
물컹.
……새 주머니 속으로 떨어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긴 하지. 인정한다고.
근데 있잖아…… 그래도 말야……
“하아아아……”
극한 실망감을 한숨으로 토해냈다.
곧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주머니 속으로 떨어져왔다.
“우와! 저 지금 새 주둥이 속에 들어온 거죠? 세상에, 이런 신기한 일이!”
“주머니야, 주머니.”
주둥이 속이라고 하면 먹힌 것 같잖아.
비슷한 것 같아도 엄연히 뜻이 다르니까 구분해야 한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
“잠시만 참아.”
곧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나더니,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 있어서 하늘을 날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안 난다.
이거보단 차라리 메린이 나를 날린 게 더 낫……지 않지! 당연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아무래도 엄청 피곤한 것 같다.
오늘은 일찍 쉬어야지…….
“마법은 처음 보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로나는 이런 특이한 비행도 즐거운가보다. 평소보다 더 싱글벙글 웃고 있다.
웃음은 전염된다더니, 나도 그녀를 따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문을 만들어내질 않나, 새로 변신하질 않나……. 이렇게 대단한데, 왜 바깥에선 한 번도 못 봤지?”
분명 마법이라고 이런 화려한 것들만 있진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점을 친다거나, 인형을 매개로 저주를 건다든가…….
근데 희한하게도 이때까지 ‘마법’이라는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냐고? 안 나가니까."
파랑새가 위슨의 어깨에 앉아 몸을 털고 있었다.
"안 나간다고? 왜?"
“안 나가도 되니까 안 나가는 거지. 여긴 미친녀, 아야! ……마녀들이 살기 좋거든. 마력이 풍부하니까 희귀한 식물들, 버섯들이 많거든. 정령도 살고.”
“흠, 못 나가게 하는 게 아니고?”
그 수장이라면 별 이상한 트집을 잡아서 못 나가게 할 것 같은데 말야.
실제로 지금 내가 당했고.
“아니라니까. 짹짹, 나는 몇 명 빼고는 죄다 꺼져버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징그러운 녀석들.”
의외로 파랑새는 마녀들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별일이네.
“너 위슨이 만든 환수(??) 아니야?”
세상에 인간의 말을 하는 짐승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이 싸가지없는 파랑새를 비롯해 위슨이 다루는 짐승들은 모두 환수, 즉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짐승'이다.
달리 말해, 위슨의 마법이다.
마녀의 손에 만들어진 환수가 마녀를 싫어하다니.
위슨은 로나와 별로 나이 차이가 안 나 보이는데, 역시 그만큼 미숙한 모양이다.
무언가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겠지.
베르메가 역정을 낸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파랑새가 위슨의 어깨에서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녀석은 짹짹 울며, 내 정수리를 콕콕 쪼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구나. 근데 난 환수가 아니라 정령이거든? 그것도 여기서 제일 오래된소리의 정령이란다. 알아 모시라고.”
마지막 말은 깔끔하게 무시해주었다.
그보다 이런 놈이 정령이라니? 정령이라니!
정령이라고 하면 뭔가 예쁘장한,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팍팍 느껴지는 그런 존재 아니야?!
……아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럼 스라소니 같은 다른 짐승도……?”
“정령이야.”
……뭐?
그럼 그 고풍스럽지만 알아듣기 어려운 옛날 말을 쓰던 스라소니보다, 이 성질이 발랑 까진 파랑새가 더 나이가 많은 거야?
하, 참, 나이가 많다고 다 원숙해지는 건 아니라더니 진짜네.
“새끼가, 너 또 건방진 생각 했지? 내가 모를 줄 아냐, 짜샤!”
콕콕콕콕콕.
……어르신다운 통찰력은 있긴 있는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