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27화 : 친절한 마녀님 (1)
* * *
드와트가 우리를 뱉어······ 아니, 내려준 곳은 지상에 있는 그녀의 집이었다.
반듯하게 자른 돌을 쌓아 만든 이층집이다.
외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무럭무럭 자라 지붕까지 덮고 있고,깔끔하게 정돈된 덤불들과 작은 꽃나무가 집 앞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베르메에게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했던 건 허세도 무엇도 아니었다.
여기 여섯 명도 족히 살겠는데?
그건 그렇고,
“나무 속이 아니네요?”
마녀들은 전부 그 흑단나무 안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어머, 마녀라고 해서 전부 탑에 살고 싶어하는 건 아니란다?”
드와트는 집 뒤뜰로 우리를 안내했다.
집 크기만큼이나 넓은 뒤뜰은, 키 작은 덤불을 울타리 대신으로 삼고 있고, 색색의 꽃이 그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뜰 한편에는 약초밭이 가꾸어져 있는데, 흔히 보는 약초들 중간중간에생전 처음 보는 종류가 심겨져 있었다.
이 정도면 꽃과 약초 향이 서로 뒤섞여서 코가 아찔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어떤 향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드와트가 권하는 대로 뜰 중앙에 설치된 티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마치 누가 올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테이블 위에는 차와 과자가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다.
“탑에 사는 사람은 두 부류야. 나무 향을 좋아하거나, 다른 마녀들과 가까이 지내는 걸 좋아하거나. 대부분은 후자이지.”
드와트는 한잔한잔 정중히 찻잔을 채운 후, 녹색빛이 아른거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흠, 그럼 여기 바깥에 사는 마녀들은요?”
생울타리 건너를 흘긋 보니, 조금 거리가 있긴 해도 다른 집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어떤 마녀는 뜰을 손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손을 흔들기도 했다.
“글쎄? 다들 각자 이유가 있겠지? 난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서 나온 거야. 저 나무가 아무리 크고 넓어도, 결국 땅보다는 비좁잖니? 주변에 다른 마녀들이 사는 게 신경 쓰이기도 했고.”
“……”
위슨의 집도 이 지상에 있다.
그래서 드와트는 자신의 집으로 오기 전에, 먼저 그녀를 내려주었다.
위슨, 아니, 위슨의 어머니도 다른 마녀들이 있는 게 싫어서 여기 살고 있는 걸까?
위슨을 내려주었을 때의 일이 새삼 떠올랐다.
나는 주머니 안에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는 굉장히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어디를 쏘다니고 온 거냐며 소리치는 소리, 찰싹 하는 소리, 울면서 다독이는 소리…….
으으, 소리만 듣는데도 얼마나 긴장되던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드와트, 위슨의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남의 집 사정은 함부로 캐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찰싹 소리가 좀 컸어야지.
도저히 묻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드와트는 고개를 좌우로 까닥였다.
“폴레? 흐음…… 마법 실력은 고만고만한데, 대신 물약 만드는 솜씨가 기가 막힌 마녀야. 그리고 위슨을 끔찍이도 아끼지.”
“……”
끔찍이 아끼면 안 때리지 않나?
소리만 듣기로는 좀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았는데…….
아무튼, 뭐, 일종의 과보호인가?
드와트는 내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까 그거 들렸구나? 너무 나쁘게 보지 마. 물론 폴레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옛날엔 여기 사는 마녀 누구보다도 이지적인 사람이었단다. 그리고 너도 봤겠지만, 위슨 그 애 상태가 좀 특별하잖니.”
“예에, 뭐, 저주 때문에 말을 못한다고 듣긴 했는데…….”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못하면 쓸 수 있는 마법이 얼마 없거든. 게다가 아직 정식으로 ‘마일린의 딸’이 된 것도 아니라서 숲의 요정들이 그 애를 괴롭힐 수도 있어. 그러니 그 애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런가?
우리 부모님이랑은 전혀 딴판인데?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혼자 숲에서 밤이 늦도록 놀다 와도, 산딸기랑 버섯이라도 캐고 와야지 그걸 놀기만 했냐고 혼을 냈다.
즉, 일을 안 한 걸 혼냈지, 위험한 곳에 혼자 갔다고 혼낸 적은 없었다.
……잠깐.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 이상한데?
여긴 어떤지 몰라도, 우리 마을 숲은 몬스터가 대놓고 돌아다니잖아.
아무리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게 일상다반사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무심했던 거 아니야?!
“‘마일린의 딸’은 마녀를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위슨 씨도 마녀인 줄 알았는데.”
왠지 침울해진 나를 대신해, 로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달라. ‘마녀’는 '마법을 쓰는 여자'를 말하는 거잖아? ‘마일린의 딸’은 정식으로 '대마녀 마일린의 유지를 이을 거라 맹세한 마녀'를 말하는 거야. 뭐, 여기서 제대로 살려면 그 의식을 치러야 하니 어린애 빼고는 다 ‘마일린의 딸’이긴 해.”
드와트는 호로록, 찻잔을 한 번 기울인 후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엄연히 다른 거니까 조심해. 쓸데없이 깐깐한 마녀들에게 걸리면 역사 공부가 시작되거든. 그리고 그런 고리타분한 마녀들 대부분이 저 탑에 살고 있단다.”
“성인식 같은 거군.”
메린이 툭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이야기 듣고 있었구나.
과자를 노려보면서 묵묵히 차만 마시고 있길래, 과자가 맘에 안 들어서 저녁 메뉴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성인식? 흐음…… 그래, 성인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 뭐, 위슨은 능력이 충분하니까 때가 되면 의식을 치를 수 있을 거야.”
위슨 본인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마 나이가 아직 다 차지 않은 거겠지.
드와트는 찻잔을 내려놓고 우리를 향해 친절한 미소를 띄었다.
“그건 그렇고 방 말인데, 아가씨 두 명은 위층에 있는 방을 쓰면 되고…… 도련님은 이 두 사람이랑 좀 떨어진 방이 될 텐데, 괜찮지?”
“좀 떨어진 방이요?”
“그래. 미안하지만, 다락방에서 지내야 할 거 같아.”
……찻잔을 엎을 뻔했다.
왜? 왜 나만 떨어뜨려 놓는데?!
다락방이라고? 이 집 지붕 꽤 높은 것 같던데 말이지!
분명 2층이랑 좀 거리가 떨어져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서, 설마, 이 마녀도 이상한 생각을……!
드와트는 내 얼굴을 잠시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걱정 마. 난 ‘신선한 남자’는 필요 없어. 익숙한 게 더 좋거든.”
장난스럽게 말을 맺고, 그녀는 머리 위로 한쪽 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딱 퉁겼다.
그러자 집 안으로 통하는 문이 천천히 열리며, 남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드와트 근처로 터덜터덜 걸어와 뒤에 가만히 섰다.
몸 어딘가에 방울이라도 달았는지 움직일 때마다 짤랑이는 소리가 났다.
남자의 덥수룩한 잿빛 머리카락이 눈까지 덮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인사해. 내조수오베이야. 오베이, 이쪽은 내 손님, 그러니까……”
아, 이 사람과는 아직 통성명을 하지 않았구나.
나는 재빨리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저는 카엘입니다. 그리고 얘는 제 동료 메린, 그리고,”
“로나에요! 잘 부탁드려요!”
오베이는 말없이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느릿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오베이, 입니다……. 무엇이든, 필요하신 게 있다면…… 명령을…….”
“아, 아니요, 무슨 명령까지…….”
딱 보아도 나보다 훨씬 연상인 사람이다.
깍듯이 인사를 받는 것도 거북한데, 명령이라니.
친절이 너무 지나쳐도 독이 되는 법이다.
“후훗, 이 아이 말버릇이니까 신경 쓰지 마. 잘 부탁한다는 말로 걸러 들으렴. 내가 집을 비울 땐 오베이가 너희를 보살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사양 말고 얘기해.”
“……”
오베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우리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멍하니 서 있었다.
“오베이, 위층 손님방 둘을 정리하렴. 여기 두 아가씨가 당분간 묵을 거야. 이 도련님은 다락방을 쓸 거니, 그쪽도 준비해두렴.”
“……알겠, 습니다…….”
그는 느릿느릿 대답한 후, 느릿느릿 다시 걸어갔다.
조수라고 하기엔 너무 굼뜬 것 같은데?
왠지 바느질하러 가던 메린처럼 걸음걸이에 힘이 완전히 쪽 빠져 있다.
“바느질이 얼마나 귀찮은지 알기나 하냐? 알지도 못하면서 입 털지 마라.”
“아니, 그래도 그 도축장 끌려가는 소처럼 가던 건 좀…… 잠깐, 내가 그 생각한 걸 어떻게 알았어?!”
“네가 입 밖으로 냈으니까!”
퍽.
……메린이 테이블 밑으로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더럽게 아프다.
젠장, 이거 멍 들겠네!
드와트는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너희 둘, 꽤 가까운 사이구나?”
나는 찻잔을 든 채 한숨을 쉬었다.
“남 앞에서 거리낌없이 때리는 게 가까운 사이라면 좀 멀어지고 싶은데요.”
“내가 언제 때렸다고?”
메린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자각이 없다니 무섭다.
“방금 내 다리 찬 게 때린 게 아니면 뭐냐?”
“잠꼬대하길래 깨워준 건데.”
“아, 그래. ……드와트, 미안한데 여기 차에 술 탔어요? 얘가 좀 맛이 간 것 같은데…… 악.”
우와, 아까 찬 데를 또 찼어!
이런 잔인한 새끼……!
테이블에 엎드려서 고통을 감내하는 내 위로,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후후, 정말 다 터놓을 만큼 사이좋구나. 조금 질투가 날 정도인데?”
으…… 좀 한심하긴 해도 이따 로나에게 봐달라고 하자…….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
맞은편에 앉아 있던 드와트가, 어느새 내 바로 옆에 서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나와 눈높이를 맞춘 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왠지 모를 긴장에 몸이 굳어버려, 손이 다가오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드와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슬며시 다가와, 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살짝 거두어 갔다.
“……후후, 일주일 동안 친하게 잘 지내자, 카엘.”
드와트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을 때까지도, 나는 석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연상의 아름다운 여자의 손길이 닿아서?
부드러운 미소가 매혹적이어서?
……모르겠다. 아직은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천천히 차를 마셨다.
입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꽃내음이 어지러운 마음을 조금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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