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3화 : 여기에 안식처는 없다 (1)
* * *
이름 없는 마녀?
이 사람, 방금 자기 이름을 네이멜이라고 하지 않았나?
메린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이멜이라면서요? 이름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는 거에요?”
“아, 죄송해요. 아시는 줄 알았어요. 으응~ 근데 이걸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좀 긴데…….”
네이멜은 자신의 뺨을 긁적이더니 곧 배시시 웃었다.
“우리집 오실래요? 제가 맛있는 차랑 과자랑, 아아, 그래! 저녁 같이 하실래요? 네, 그래요,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아예 자고 가실래요?!”
“……”
……어느새 네이멜은 내 두 손을 덥썩 쥐고 있었다.
반짝이는 황금빛 눈동자가 기대감에 잔뜩 부푼 게 느껴졌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었다.
“그…… 저기, 죄송한데…… 저희가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봐야 돼서…….”
“……아.”
네이멜은 힘없이 내 손을 놓고, 어깨가 땅에 닿는 거 아닌가 싶을 만큼 축 늘어뜨린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럼 저렇게 온몸으로 시무룩해하고 있는 저 사람의 기대감은 얼마나 높았던 걸까?
“……그렇겠네요. 저 같은 ‘이름 없는 마녀’는 상대해봤자 좋을 게 없죠. 재미도 없을 거고……. 죄송해요, 제가 주제도 모르고 그만…….”
저녁 식사 거절한 것뿐인데 실망감 너무 큰 거 아니야?!
누가 보면 절교라도 한 줄 알겠네!
“또, 또 앞서 간다, 또. 얘네를 먼저 입찰한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 뭘 또 혼자 땅 파고 들어가고 있냐?”
파랑새가 네이멜의 머리를 콕콕 쪼며 타일렀다.
와, 저 놈이 누굴 타이르다니 세상에!
그보다 입찰이라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팔린 것 같잖아.
“……내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멍청아, 얘네가 널 얼마나 봤다고. 어휴, 말을 말자. 너도 마녀면 알 거 아냐.”
“응……? 으응…… ……아아, 이 마력, 그 아이 거네. 그렇구나. 그 아이 집에서 지내시는 거군요.”
네이멜은 자신의 뺨을 가볍게 착착 두드렸다.
침울했던 표정을 펴고, 그녀는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 그럼…… 내일 또 뵐 수 있을까요? 무, 물론 여러분 모두 다른 일정이 없으시다면요!”
음…… 다른 일정은 없긴 한데……
……이 사람, 왠지 부담스러운데.
네이멜은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었는지, 허둥지둥해하며 말을 덧붙였다.
“마마마마, 맞다! 저, 내일 오후 2시 정도에 여기 정돈하려고 했거든요! 산책하시다가 생각나시거든 들러주세요! 네, 그게 낫겠네요. 하, 하하, 하하하하…….”
“어이고……”
파랑새가 한숨을 쉰 후, 짜리몽땅한 날개를 퍼덕거리며 위슨에게 날아가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그럼 우린 가볼게. 또 보자고.”
“응, 또 봐. 아, 손님분들도 안녕히 가세요!”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네이멜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작은 공터를 나와 다시 숲 속을 걸었다.
숲은 조각상을 보기 전보다 조금 더 어두워져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도 주홍색과 분홍색, 그리고 약간 검푸른색이 서로 뒤섞여 있다.
이제 오후도 끝나고, 저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네 내일은 뭐할 거냐?”
숲을 빠져나와 마을의 ‘길’을 걸으며 파랑새…… 아니, 위슨이 물었다.
이제 좀 알게 된 건데, 저 파란 공, 아니, 파랑새는 위슨의 뜻을 전할 때는 그녀의 어깨에 앉는다.
……저 놈이 그대로 말을 안 하고 제 식대로 지껄여서 문제지만.
달리 말하면, 그녀의 어깨에 앉아 있을 때 말고는 죄다 저 놈이 혼자 피리 불며 류트 뜯는 식으로 생난리를 피우는 거다.
아무튼 지금 파랑새는 위슨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 위슨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뭐 정해진 건 없어.”
“그럼 시간되면 저 불쌍한 할머니랑 좀 놀아주, 아야! ……네이멜 좀 만나줘. 혼자 적적하게 숲속에서 사는데, 다른 마녀들은 상대하기 싫어하거든.”
“음…….”
“아마 카엘, 네 녀석에겐 이 섬의 마녀 중 제일 안전한 마녀일걸? 정 그냥 만나기 부담스러우면 위슨이 구실을 만들어줄 수 있어.”
제일 안전한 마녀라……
그렇다면 뭐, 만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너희 둘은 어때? 생각이 없다면 나 혼자 가고.”
“안 돼요!!”
“……”
깜짝이야…….
로나가 초원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힘차게 대답했다.
“카엘 님은 이 마을에서절대혼자 다니시면 안 돼요! 제가 방도를 마련할 때까지는 절대절대절대 혼자 다니지 마시고, 혼자 다른 마녀를 만나지도 마세요!”
우와,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로나는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것처럼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 위압에 눌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어…… 어어, 알았어. 그럼 너랑 메린도 같이 가는 거지?”
“당연하죠!”
조금 성량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귀가 약간 울릴 정도로 컸다.
고맙게도 메린은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됐네. 그럼 내일 아침에 위슨이 꾸러미 하나를 보낼 거니, 그걸 네이멜에게 갖다줘라.”
그렇게 말하고, 위슨은 눈웃음을 지었다.
위슨은 우리를 드와트의 집까지 데려다 준 후,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위슨이 고맙다는데, 뭐가 고맙다는 건지 모르겠네.”
……저 놈은 왜 쓸데없이 사족을 넣는 걸까?
아무튼, 나는 위슨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니, 우리가 고맙지. 덕분에 재미있었어. 고마워, 위슨.”
“오냐, 더 고마워해라. 아야! ……어쨌든 다들 좋은 꿈 꾸라고.”
위슨은 한 번 더 꾸벅 인사한 후, 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큰 나무 하나 없는 초원이라 그런지, 왠지 그녀가 길 너머 노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왠지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톡톡, 메린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뭐해? 들어가자.”
“어……”
위슨의 뒷모습은 작긴 해도 아직 보이고 있었다.
메린이 내 시선을 따라 힐끗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쟤가 왜?……아, 걱정하는 거야?”
“당연하지. 너도 쟤 어머니 봤잖아. 걱정 안 하게 생겼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다지? 괜찮겠지.”
오우,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이 시원시원함!
그래, 이래야 메린이지.
너무 감탄스러워서 그만 숨이 턱 막혀 버렸는걸?
나 참, 이게 사람에 대한 신뢰감에서 오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너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거냐……. 그래…… 들어가자…….”
“뭐. 왜. 내가 뭐 이상한 소리 했냐?”
“아니, 아니야…… 네 말이 맞아. 괜찮겠지, 뭐.”
그냥 내가 오지랖이 심한 거겠지.
나는 약간 불만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메린의 등을 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위슨의 뒷모습은 이미 노을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딘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풍경이었다.
드와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집 안엔 오베이 혼자 있었다.
그는 느릿한 손놀림으로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부엌 테이블에 앉는 걸 보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의자가 바닥에 끌렸을 때 얼굴이 조금 움찔한 걸 보면 귀가 안 들리는 것도 아닌데.
덜그럭거리며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눈에는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도와주는 게 좋겠지?
“저, 오베이 씨, 뭔가 도와드,”
“카엘 님, 잠깐 이리 좀!”
로나가 갑자기 튀어나와선 내 팔을 끌고 갔다!
오베이는 그 소란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집중력 좋네.
로나는 나를 끌고 집의 뒤뜰로 나갔다.
그녀는 뜰의 맨 구석, 생울타리 모퉁이에 도착해서야 내 팔을 놓았다.
“음……왜 그래? 뭐 중요한 할 말이라도 있어?”
로나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펴보더니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엘 님, 여기 머무는 동안엔 조용히 지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 소란 피울 생각은 없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진지한 얼굴로 다시 속삭였다.
“오베이 님이나 드와트 님과 너무 가까이 지내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드와트 님과는 더더욱.”
“아니, 그럴 생각은 없는데…….”
“인사만 하고 지내셔야 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명색이 남의 집에 신세를 지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인사만 달랑 하고 지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드와트는 어찌 보면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다.
그때 수장실에서 그녀가 나서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일주일 내내 그 탑 안에 갇혔을지도 모른다.
물론 좀 껄끄러운 게 있긴 하지만……
수장 베르메나 아까 만난 그 엘프에 비하면 굉장히 건전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기, 로나,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걱정도 너무 지나치면 독이야.
아니면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아까 낮에 드와트한테 한 것도 그렇고, 왜 그러는 건데?”
“……”
여기서 입을 다물어버리면 좀 곤란한데.
답답한 것도 있지만……
……로나의 침묵은,무언가 있다는 뜻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로나?”
“……”
로나는 찌푸린 얼굴로 입술을 앙 다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말을 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그렇게 심각한 거야?”
내가 조용히 채근하자, 로나는 마침내 결심했는지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요, 카엘 님, 어쩌면……”
“어머, 두 사람 여기 있었구나?”
아앗, 하필 지금!
가까스로 열리려던 로나의 입은, 드와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도로 꾹 닫히고 말았다.
“어머,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니? 방해했다면 미안하구나.”
“아, 로나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응? 왜, 무슨 일이 있었니?”
나는 입을 다물고 있는 로나를 힐끗 보고, 숨을 삼켰다.
로나의 표정은 굉장히 매서웠고, 잿빛 눈에는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드와트에게는 보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나 역시, 로나의 상태를 보고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빙글 돌려 드와트를 향했을 땐……
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 웃고 있는 것 같다.
“아니요, 드와트 님! 내일 일정을 어떻게 할지 상의하려던 것뿐이에요.아무 문제없답니다!”
……이렇게 발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후후, 정말 기운이 넘치는구나. 그 얘기는 저녁 먹으면서 찬찬히 하는 게 어떠니? 식사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이리 들어오렴.”
“네! 금방 갈게요!”
로나의 활기 넘치는 대답을 듣고, 드와트는 미소 지으며 다시 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집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로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다 듣고 있다, 이건가요? 정말 엿듣는 게 취미군요.”
“응? 엿듣다니?”
“들으신 대로에요. 뭐, 잘됐네요."
로나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카엘 님, 아무래도 드와트 님은이 집 안에서 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나 봐요. 마녀분들은 참 대단하네요.”
말은 ‘대단하다’고 하고 있지만 표정은 그와 정 반대였다.
자꾸 뱀 잡아오는 메린을 볼 때의 내 얼굴이 저렇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신기하네.
눈에 뱀 추적기라도 달렸나, 어떻게 숲에 들어갈 때마다 뱀을 잡아오는 거지?
아까 위슨과 다닐 때도 시선이 자꾸 다른 데로 가던데……
……설마?
아무튼, 로나의 말뜻은 분명했다.
드와트는 이 집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심지어 속삭이는 소리까지도, 그녀는 전부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베르메는 수장이라서 그런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드와트는 대체 왜?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어차피 집엔 오베이밖에 없잖아.
나보다는 드와트를 더 조심하는 게 좋을걸? 내숭부리는 애가 원래 더 무섭다구!
……어쩌면 그 변태 마녀는 홧김에 진실을 내뱉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농담으로라도 절대 뒷담은 하면 안 되겠다.”
“그런 건 원래 하면 안 돼요~ 히히, 가요, 카엘 님!”
……수장이 거울로 날 지켜본다는 것도 찜찜한데, 여기 집에서까지 편하게 있을 수 없는 건가.
나 참, 잠꼬대 안 하길 매일 밤 기도해야겠구만.
뒤이어 시작된 저녁 식사 시간은,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별로 켕기는 일을 저지른 것도 없었고, 위슨의 안내로 숲 구경을 워낙 잘한 덕분에 이야기거리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딱 하나, 엘프 마녀에게 호되게 시달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마녀 하나만 나에게 헤실대는 것도 아닌데 굳이 문제 삼을 필요가 있을까?
괜히 일을 키워서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드와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 저희도 마녀분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우릴 돕다니?”
오우, 로나 눈 동그래진 것 좀 봐.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을 하고 있다.
로나가 내 맞은편에 앉아서 다행이다.
그녀는 다리가 짧아서 내 다리를 못 걷어차니까.
나는 그 사실에 안심하며 대답했다.
“중요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저희가 손님이긴 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는 건 너무 죄송해서요.”
……그리고 몸을 움직이면, 그만큼 쓸데없는 생각이 덜 떠오를 것이다.
어쩌면 의식을 거행하는 날짜를 하루라도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드와트는 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글쎄…… 의식 준비라고 해도, 마력원을 모으고 있는 것뿐이라 마력을 다룰 수 있어야 되는데……. 으음…… 아, 그렇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가 활짝 웃었다.
“원재료를 준비하는 건 너희도 도울 수 있을 거야. 약초나 버섯을 캐거나, 숲의 짐승을 사냥하거나, 아니면 그 재료들을 일차로 다듬거나. 조수들도 돕고 있긴 한데, 역시 이런 건 일손이 많을수록 좋은 법이잖니?”
즉, 재료 조달이나 밑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거군.
드와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뭣하면 내일 바로 나랑 같이,”
“그럼 위슨을 도와야겠네.”
드와트의 말허리를 썩둑 잘라버리고 끼어든 건, 예상외로 메린이었다.
녀석은 포크에 찍은 돼지고기 조각을 살펴보는 것처럼 포크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위……슨? 왜?”
음, 드와트의 입가가 약간 경련하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물론 메린에게 그런 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돼지고기 조각만 보고 있으니까.
“아까 카엘이 걱정했거든요. 그러니 누굴 도와야 한다면, 위슨을 돕는 게 가장 매끄러운 흐름일 것 같은데요. 내 말 맞지?”
“어? 어, 어어…… 그런가……?”
“……엥? 뭐야, 아니야?”
우물쭈물해하는 내 반응에, 메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이 녀석, 진짜로 그냥 그렇게 생각해서 말한 거였구나.
로나에게 무어라 말을 듣고 드와트를 막은 게 아니구나, 그렇구나!
“로나, 내 말이 틀렸어?”
“어, 예? 아, 그러니까, 아, 아니요! 메린 님 말이 맞아요! 카엘 님도 분명 위슨을 생각하고 꺼낸 말씀이셨을 거에요.”
그렇죠~? 로나가 방긋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어라, 희한하네.
왜 로나의 뒤에 율리아 공주의 모습이 떠올라 있는 것 같지?
……정신을 차리니, 또 사고회로를 작동시키기도 전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후……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더니, 공주님한테 보고 배웠구나.
로나, 무서운 아이……!
“……그러니? 그럼 별 수 없지. 내일 아침에 위슨에게 가 보렴. 아쉽지만, 내가 데려다 줄 순 없을 것 같구나.”
드와트의 목소리엔 확연한 실망감이 담겨 있었다.
……의외로 이 마녀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
어깨가 살짝 쳐진 그녀가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내 심신의 건강을 위한 거니까……!
그렇게 굳게마음먹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