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34화 : 여기에 안식처는 없다 (2)
* * *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오베이가 준비한 방으로 안내 받았다.
메린과 로나는 각각 2층의 방을 배정받았기 때문에, 자연히 내가 묵을 다락방이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따라가도 돼요?"
다락방으로 가려는데, 로나가 헤실 웃으며 물었다.
“안 피곤해?”
“전혀요! 저 카엘 님 방 가보고 싶어요.”
“그래? 메린 너는?”
“나? 흠…… 입구만 보고 갈게.”
우리는 다시 오베이의 뒤를 따라 다락방으로 향했다.
일반적으로 다락방은 사다리문을 두기 마련인데, 이 집은 크기가 커서 그런지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여기…… 다락방…….”
오베이는 느릿한 손놀림으로 문을 열고 우리를 들여보냈다.
“꽤 넓네?”
메린이 먼저 방 안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참고로 그녀는 정말로 입구만 확인하고 가려고 했는데, 로나가 방글방글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고 왔다.
“진짜 넓네.”
천장이 높아서 안 그래도 널찍한 방이 더 넓어 보였다.
창문도 꽤 크다.
원래 창고로 쓰던 곳인지 방 한편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놓여 있는데도,여전히 혼자 쓰기엔 너무 큰 공간이었다.
“와~ 저랑 메린 님 방을 합쳐도 이것보다 작을 것 같은데요?”
로나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감탄했다.
“우와~ 이불이랑 베개도 완전 새것인데요? 헤헤, 우리 건 좀 낡았던데. 드와트 님이 카엘 님을 매우 엄청나게 신경을 쓰시나 봐요!”
집주인인 드와트는 이 집 안에서 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그건 로나 자신이 직접 나에게 말했던 사항이다.
……쟤 지금 일부러 다 들으라고 저러는구나!
아무튼 이걸로 방 안내는 끝났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멀거니 서 있는 오베이를 향해 말했다.
“오베이 씨, 방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아무 반응도 없어!
짧아도 좋으니까 무어라 대꾸해줬으면 좋겠는데!
“그…… 오베이 씨, 아직 할 일 남으셨죠? 저희는 쉴 테니까 그만 가보셔도 돼요.”
“……”
“어어…… 아니면 뭔가 하실 말씀이 있나요?”
“……”
돌겠네, 진짜. 이거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무슨 말을 해도 오베이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설마 이 사람, 계속 여기 멀뚱히 서 있는 건 아니겠지?
그때, 방 안쪽에 놓인 잡다한 물건들을 보고 있던 로나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지은 채, 오베이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명령이에요. 돌아가서 일과 수행을 계속하세요.”
“……!”
아니, 오늘 얘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로나가 말을 마치자,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오베이가 느릿느릿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도 기가 막힌데 당사자는 더하겠지.
뭐라고 해야 그나마 곱게 넘어갈 수 있을까?
오베이의 말을 기다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로나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대신,
“……명령, 받듭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뒤를 돌아 계단을 내려가버렸다.
그의 모습이 시야를 벗어나고, 문이 다시 닫힌 뒤에도 나는 제자리에 멀거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저 분이 직접 말씀하셨던 거 기억하시나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네요.”
로나는 예상했던 결과를 얻었는데도, 불쾌한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조금 전에 목격한 일 때문에 머리가 멍해, 그저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
이건…… 풀?
“카엘 님의 숙면을 위한 선물이에요! 아까 숲에 갔을 때, 마침 좋은 걸 찾았거든요. 특별~한 기도를 담았으니까, 주무시기 전에 이거 태우세요.”
“실내에서? 불 나면 어쩌려고!”
내 반박에도 로나는 밝게 웃을 뿐이었다.
“전~혀 문제없으니까 잠깐이라도 불을 붙여서 향을 피우세요! 불이 날 것 같으면 바로 끄시면 되잖아요?”
“……꼭 해야 되는 거야?”
“네.”
거절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이 압박……!
안 그래도 이 섬에 온 뒤로 로나가 이상해졌는데, 여기서 내가 괜히 뻗대면 더 악화될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 제일 안 좋은 모범사례도 있는 마당에 내가 더 조심해야지.
“……향만 피우면 되는 거지?”
“네. 불이 살짝 스치기만 하면 돼요.”
“그래,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꼭이에요! 그럼 저 먼저 내려가볼게요. 두 분 다 안녕히 주무세요~”
로나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멀어진 뒤, 나는 속에 담아 두었던 한숨을 몰아 쉬었다.
……설마 쟤, 이 섬에 있는 내내 저러는 건 아니겠지?
위슨이랑 있을 때는 괜찮던데…….
“메린, 네가 보기엔 로나 어떤 거 같냐?”
집주인이 들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묻지 않곤 배길 수 없었다.
메린은 내 질문에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떴다가, 금방 평소의 그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네 식대로 말하면 착한 애잖아? 왜? 바뀌었어?”
“아니, 지금도 착한 애인데. ……넌 오늘 걔가 하는 거 보고, 뭐 느낀 거 없어?”
“그다지?”
“……”
하………….
적어도 ‘오늘은 좀 예민하더라~’ 같은 말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이 녀석이 그런 걸 신경 쓰게 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한 걸까?
로나랑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좀더 빠를 줄 알았는데.
메린은 자신의 땋은 머리를 스윽, 가볍게 쓸어내렸다.
한 갈래로 굵직하게 땋인 갈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을 스르르 빠져나갔다.
“로나는 좋은 사제님이야.”
불쑥 말이 나온 탓에, 나는 대답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나를 향해 힐끗 시선을 주며 말을 이었다.
“잔소리도 안 하고, 쓸데없이 트집잡지도 않고.”
“……너 그 영감탱이한테 잔소리 들었었냐?”
“듣자마자 잊어버렸지. 아무튼, 로나는 창조주를 섬기며 권능을 행사하는진짜 사제님이잖아? 뭘 하든 이유가 있어서 하는 거겠지.”
“……!”
이 녀석……
로나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너, 그 애를 믿고 있는 거야? 어느 정도?”
“음…… 지금은 나나 네 적이 아니니까, 해를 가하지 않고 도와줄 거라는 정도?”
“……아, 그래…….”
……뭐야, 그냥 길동무 수준이잖아. 괜히 설렜네.
메린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지, 크게 기지개를 켜며 문으로 향했다.
“아, 맞다. 이 말하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그녀는 문고리를 쥔 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너, 로나 말 잘 들어라. 그 애는 지금 널 위해전력으로애쓰고 있어.”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얼굴이랑 행동을 봤으니까.”
“아니, 그건 나도 봤는데…….”
물론 로나가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아니, 믿는다.
그저 저렇게까지 극렬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모르니까 좀 답답해서 그렇지.
“넌 몰라도 난 알아.”
메린의 입술이 곡선을 그렸다.
드물게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의 눈이 약간 가느다래졌다.
“많이 봤거든. 오랫동안.”
“……?”
“그러니 웬만하면 말 들어. 나도 간다. 내일 봐.”
“어, 어어…… 내일 봐.”
가볍게 손을 흔들며, 메린도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널찍한 다락방 가득 적막이 찾아왔다.
……많이 봤다고?
언제? 어디서??
“……”
메린 녀석이 마지막에 한 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한데……
어쨌든, 그 녀석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정도이다.
정말로 로나는 순수하게 나를 위해 저러는 거겠지.
로나가 준 풀에선 아무 향도 나지 않았다.
오늘 찾은 만큼 아직 이렇게 싱싱한데, 그 흔한 풀냄새조차도 나지 않는다.
로나가 했다는 ‘특별한 기도’ 때문인가?
문득, 널찍한 창문 밖으로 눈길이 갔다.
완전히 검게 물든 밤하늘에 점점이 별들과 초승달이 떠 있다.
꼭 호수 위를 유유히 거니는 조각배와 주변에 붕붕 떠다니는 반딧불 같다.
“……?”
지금 뭔가, 달을 지나간 것 같은데……?
무심코 창문을 열려는 손을 멈추고, 이마를 바짝 대다시피 하며 달을 노려보았다.
아. 또 지나갔다.아니, 돌아온 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점이 초승달 위에 둥실 떴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뭐지?”
마녀들이 사는 동네 아니랄까봐 별 희한한 걸 다 보네.
어쩌면 내가 너무 피곤해서 환각을 본 건지도 모른다.
그래, 내일부터 열심히 일해야 되니까 일찍 자자.
나는 덧창을 닫아버렸다.
다음날 아침, 로나는 내가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외마디 짧은 비명까지 지를 정도로.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아, 설마! 어제 제가 말씀드린 거 안 하셨어요?!”
“아니야…… 했어…….”
“그럼, 그게 통하지 않았던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뭔 얘기하는 건지 몰라도 아니야…….”
내가 엎어져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힘이 빠졌기 때문이다.
왜 힘이 빠졌냐, 물론 그 이유도 명확하다.
힘을 엄청 썼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왜 힘을 엄청 썼냐고?
그야,
“아, 로나. 생각보다 늦게 내려왔네.”
아침부터 메린 저 자식이랑 훈련했으니까!
난 엎어져 있는데 저 자식, 저거 목소리 쌩쌩한 거봐, 왠지 열 받는다!
……이 참상의 전말은 이러하다.
메린은 내가 일어나길 기다렸던 건지, 내가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다짜고짜 바깥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나무 막대기를 건넨 후, 자신도 하나 주워들었다.
뭐하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굉장히 당연하다는 얼굴로 딱 한 마디 했다.
대련.
그리고 녀석은 냅다 덤벼들었고, 나는 허둥대면서 그 공격에 응했으며, 끝에는 이렇게 거실 테이블에 엎어져 있게 된 것이다.
정말 불행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어머, 이제 하루 시작하는 건데 너무 험하게 한 거 아니니? 일 도우러 갈 수 있겠어?”
드와트가 온 모양이다.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요…… 괜찮아요…….”
“목소리가 전혀 괜찮지 않은데? 카엘은 그냥 쉬는 게 어떠니?”
“조금 쉬면 괜찮아질 테니 걱정 마세요.”
메린이 별일 아니라는 투로 내 대신 대답해버렸다.
그 말이 맞긴 한데, 원흉이 저 소리를 하는 걸 듣고 있으니 속에서 뭔가 울컥했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확신하는 거니? 미안하지만 난 지금 카엘에게 묻고 있단다.”
“……”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드와트가 내 속마음을 대변해준 것 같아서 조금 후련하긴 하지만, 아침부터 이런 분위기는 좋지 않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고 소리 내어 웃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좀 지친 건 사실이지만, 제가 좀 젊나요? 이 정도쯤 금방 회복하니 걱정 마세요! 하하하!”
“그러니……? 네가 그리 말하면 그런 거겠지. 자, 식사 준비가 다 됐으니 아침을 들러 가자꾸나. 나와 오베이가 잼을 여러 종류 만들어 두었으니 맛을 봐주렴.”
드와트는 부드럽게 웃으며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르는 메린의 표정을 슬쩍 살펴보았다.
……다행히, 평소대로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 참, 아침부터…….
이제 이 섬에 온 지 이틀째인데, 이거 주중에 한 번 크게 터지는 거 아닌지 몰라.
한숨을 쉬는 내 소매를 슬쩍 잡아당기며 로나가 말을 걸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우리도 식사하러 가요.”
“그래…….”
아아, 주님. 부디 오늘 하루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마치도록 해주소서……!
곧 있을 아침식사 시간부터 평온하도록 제발 도와주소서!!
……간절히 기도한 덕분인지, 아침식사 시간은 무척 평화롭게 끝났다.
행복이란 건 크지도, 멀리 있지도 않다는 걸 몸소 경험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맞다. 위슨 말인데, 20분 이내로 여기 올 거야. 그러니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렴.”
드와트가 찻잔을 기울이며 말을 꺼냈다.
“위슨이요?”
“그래. 그 아이의 작업을 돕고 싶다며? 그래서 어젯밤에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오늘 너희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더구나.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그러라고 했지. 혹시 문제됐니?”
물론 문제될 건 전혀 없었다. 아직 길이 익숙하지 않은데 오히려 잘 됐지.
나는 솔직하게 감사를 표했다.
“전혀 아닙니다. 여러모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고맙긴 뭘.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일인데.”
호로록, 드와트는 우아하게 찻잔을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난 중요한 작업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위슨에게 대신 안부 전해줘. 혹시 저녁식사도 위슨과 같이 할 거면, 그 아이를 통해 알려주고.”
“아, 네.”
“후후, 언제 돌아오든 너희 자유이지만, 차 한 잔 같이 마실 시간은 남겨줬으면 좋겠구나. ……그럼 좋은 하루 보내렴.”
그녀는친절하고 상냥하며 기품 있는 안주인답게 우아한 걸음걸이로 부엌을 나섰다.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차를 마시며 테이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말해야 할까?
천천히, 들고 있는 찻잔을 살짝살짝 까닥였다.
내 움직임은 무척 작지만, 잔 속의 내용물은 바깥으로 넘칠 듯이 불안하게 넘실거렸다.
그녀에게 말해야 할까?
누군가가,내가 자는 사이에 방에 들어오려 했다고.
아직 잠이 덜 깬 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창문에 무수히 많은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누구였을까?
어젯밤 초승달 위에 머물던 그 정체 모를 그 사람인가?
아니면 어제 만난 그 변태 엘프?
그것도 아니면……
“……”
생각을 멈추고, 찻잔을 비웠다.
우리 세 사람이 이 집에 묵는다는 건 이 섬에 사는 마녀들이 전부 다 아는 사실이다.
근처에 사는 마녀 중 엄청나게 시간이 남아도는 마녀가,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서 장난을 친 거겠지.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나는 여기에 엿새나 더 머물러야 하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