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5화 : 여기에 사람은 없다
* * *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우리가 돕기로 한 건 위슨이지만, 당연히 주변에 다른 마녀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섬에 사는 마녀 중에 연금술이 주 특기인 마녀가 위슨과 그 어머니, 딱 둘 뿐일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야~ 역시 젊은 오빠는 다르긴 다르네! 저 굵은 걸 그냥 쑥쑥 뽑아버리고!”
“우리집 강아지보다 몸이 작아서 비실할 줄 알았더만, 힘 좀 깨나 쓰나봐?”
“어머, 언니도 참! 저 허벅지 보면 모르겠어? 자고로 사내는 저렇게 허벅지가 튼실해야 제맛이잖아!”
“얘는! 아침부터 남사스럽게 무슨 소리하는 거니!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내는 허벅지가 아니라 엉덩이야, 엉덩이!”
“언니가 제일 밝히네, 뭐!”
“““꺄하하하하하!!”””
씨발, 진짜 존나 힘들다!!
실시간으로 정신이 깎여 나가는 것 같아!!
당장이라도 여길 뛰쳐나가고 싶다.
야릇한 시선으로 훑어보거나 툭툭 건들거나, 아닌 척하면서 슬슬슬 만지는 건 빌어먹게 빡치긴 해도 넘어갈 수 있다.
어제 봤던 그 정신 나간 마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품위가 있는 편이니까.
그 정도는 우리 마을 술집주인 딸인 앤 누나도 맨날 당하던 거고, 어렸을 적에 나도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몇 번 당하던 거다.
물론 앤 누나는 다 커서 당한 거지만.
아무튼 누나는 술잔이나 요리 접시를 들고 왔다갔다 할 때마다 엉덩이나 허리를 공격당하곤 했고,그때마다 누나는들고 있던 쟁반을 세로로 들어서 범인 대가리를 찍어버렸다.
뭐? 비명을 지르고 수치심에 얼굴을 붉힌 채 눈물을 흘려?
그런 '숙녀의 소양'을 발휘할 시간에, 앤 누나는 범인 대가리 세 번은 더 내려 찍고 덤으로 손가락도 분질러 버린다.
이게 바로 우리 마을 여자다.
그리고 그렇게 대가리가 깨지면서도, 풍만한 엉덩이만 보면 손을 뻗는 게 우리 마을 남자들이다.
들키면 손가락이 부러지니까 절대 들키지 않도록 연합도 하더라.
내가 생각해도 우리 마을은 좀 미친 것 같다.
근데 소용이 있건 없건, 나는 이 마녀들 대가리를 찍지도, 저 주둥이를 꿰매버리지도 못한다.
반격 당할까봐 겁이 나서?일이 커져서 난처해질까봐?
천만에!
그냥 안 맞는 거다!!
쟁반이든 칼집이든 뭐든 들고 후려치려고 해도 공간이동으로 저리 슝 움직여선 낄낄거리고 있다고!!
견디다 못한 내가 한 번 빽 소리를 지르고, 로나가 철퇴로 땅울림을 몇 번 한 뒤에야 좀 사그라들었는데……
사그라들어서 이 정도이다.
아니, 다들 집에 조수든 강아지든 남자 데리고 있다며 왜 자꾸 나한테 지랄이야?
그보다 강아지라니 저 집 남자는 뭔 취급을 받고 있는 거야?!
“네가 어려서 그래.”
약초를 뽑는 위슨의 머리 위에 앉은 파랑새가 말했다.
“뭐? 돌았나, 고작 그거 때문에 저런다고?!”
“다른 마녀들이 데리고 있는 모든 수컷보다 네가 한참 어린데? 암수 교미로 번식하는 종(?)은 나이 어릴수록 좋아하지 않냐?”
저 정령 새끼의 표현이 심각하게 거슬리긴 하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다.
수명이 제한되어 있는 모든 생명체는, 생식(??) 가능한 나이 범위가 정해져 있다.
그러니 그 범위의 시작점에 빠르면 빠를수록 선호도가 높고, 끝점에 가까울수록 기피하는 건 생명체로서 당연히 가지는 본능이다.
그러니 마녀들도 생명체인 이상, 어린 놈을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충분히 납득한 만큼,등골에 싸한 기운이 파고 들어왔다.
“……내가 얼만큼 어린데?”
“최소 20년.”
오, 주여! 저 그냥 어디 숲에 박혀 있는 게 좋을까요?
근데 이 마녀들은 원재료 조달한답시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숲을 다 뒤지고 다니잖아?
즉, 숲에 혼자 떨어져 있는 건 '날 잡아드쇼~' 하고 나 스스로 바쳐 올리는 꼴인 거다, 망할!
……하아아아…….
“근데 네가 데리고 다니던 그 무서운 언니는 어디 갔냐?”
“누구, 메린? 어……라? 글쎄?”
그러고보니 이 녀석,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었는데 어디 갔지?
로나에게 메린을 봤냐고 물었지만, 그녀 역시 고개를 저었다.
예감이 좋지 않은데…….
나는 근처에서 나무 수액을 뽑고 있는 마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 사람은 여기 있는 마녀들과 달리 내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역시 어디든 멀쩡한 사람 한 명은 꼭 있는 법이다.
“저기, 제 일행 못 보셨어요? 머리 땋은 애인데……”
“네? 아~ 그 늘씬하면서도 볼륨감 있는 몸매에 길게 땋아 내린 머리가 어딘지 앳되고 청초한 느낌을 주면서도 슬쩍 보이는 쇄골과 잘록한 허리가 섹시한 아가씨, 요?”
“………………아마도?”
이야, 하하, 어떻게 저렇게 중간에 숨도 안 쉬고 쭉 말할 수가 있지?
……나 참,왜 나한테 관심이 없나 했네. 아니, 진짜 여기 멀쩡한 사람 하나 없냐?
정상인 같았던 그 마녀는, 뭘 상상했는지 뺨을 붉게 물들이며 헤벌쭉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흠흠…… 그 아가씨라면, 다른 언니들이 유니콘 사냥 도와달라고 데려가던데요?”
“유니콘?”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니콘.”
메린이 유니콘 사냥을 도우러 갔다.
대상이 유니콘이라는 것 말고는 별 특이한 게 없다.
메린도 사냥 경험은 있으니 별 문제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에게서 이 짤막한 말을 전해들은 위슨은 얼굴빛이 완전히 새하얘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위슨은 다급한 손길로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늑대를 불러내었다.
“크르릉……”
윤기나는 잿빛 털을 가진 늑대가 위슨을 힐끗 쳐다보더니 냄새를 맡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위슨은 곧바로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뭐가 뭔지 몰라 멀거니 눈만 끔벅이며 서 있는 우리를 향해, 파랑새가 크게 외쳤다.
“빨리 따라와!!”
영문을 모르고 늑대의 뒤를 따라 숲 속을 질주했다.
일단 분위기상, 유니콘을 사냥하는 게 심각하고 위험한 일이란 건 알겠다.
근데 왜?
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그렇게 심각한 문제야?”
“일단 묻겠는데, 메린은 숫처녀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마 그럴걸.”
내가 아는 한, 이라는 말이 붙지만.
파랑새는 내 대답에 짹짹 울며 입을 열었다.
“유니콘은 굉장히 난폭한 놈이야. 강하기도 더럽게 강하고. 하지만,”
“동정녀 앞에선 얌전하죠.”
로나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린 말에 파랑새가 동의하듯이 짹짹 울었다.
“놈들은 순결과 무구(無?)를 지키는 걸 종족의 사명으로 삼고 있어. 그러니까 카엘, 네 앞에서도 얌전하게 굴 거다.”
……뒷말은 못 들은 척했다.
저런 사소한 도발 하나하나에 발끈하는 건 어리석은 짓인 데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절대 정곡을 찔려서 말문이 막힌 게 아니다.
파랑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미친년들은 아마 메린에게, 유니콘을 꾀어서 죽이라고 했을 거야. 지들이 직접 잡으려 들면 뿔 한 방은 꼭 찔리니까.”
“그럼 위험할 거 없잖아.”
“유니콘은 사명을 가진 만큼 명예를 중시하는 놈이야. 함정에 빠져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것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놈은 숨을 거두기 전에자신을 배신한 메린에게 원한 서린 저주를 내릴 거다!”
저주?! 이런, 빌어먹을!
로나는 저주를 풀 수 없는데!
“젠장, 그런 놈을 왜 사냥하러 드는 거야?!”
“그만큼 높은 마력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 아무튼 일 터지기 전에 막아야 돼!”
늑대가 달리면서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낮은 울음소리가 나무들을 흔들며 깊숙이 퍼져간 후, 곧이어 그에 응답하는 것처럼 한쪽에서 다른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아니, 다섯 마리의 울음소리가 서로 공명하듯이 울려왔다!
“저쪽이다!”
로브를 입은 네다섯 명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위에서 늑대가 울부짖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켠 후, 배에 힘을 주었다.
“멈춰어어어!!”
내 고함소리가 숲을 쩌렁쩌렁 울렸다.
못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 뒷모습이 그제야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 얼굴들에는 다양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의아함, 당황함, 그리고……
……황당함?
나는 그들 사이를 헤치며 앞으로 빠져나갔다.
나무가 여러 그루 쓰러져 있는 공간에, 메린이 검을 뽑아 든 채 서 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카엘? 어떻게 알고 왔냐??”
숨이 턱까지 차오른 탓에 바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더 크게 기침을 하며 강제로 숨을 안정시킨 후, 나는 고개를 쳐들고 녀석을 보았다.
메린은 의아해하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녀석의 한쪽 손에는 항상 차고 다니는 검이 들려 있는데……
……날이, 붉게 물들어 있다.
녀석의 뺨에도, 옷에도, 붉은 피로 얼룩이 져 있다.
그리고 녀석의 다른 손에는, 길다란 뿔이 달린 말 머리가 들려 있었다.
머리가 잃어버린 몸은 녀석의 뒤에 처량하게 쓰러져서 입을 대신해 피를 토하고 있다.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 말 그대로, 서로 떨어져버린 몸과 목이 저마다 원망을 철철 쏟아내고 있었다.
늦어버렸다.
무릎이 힘을 잃고 그 자리에 무너져 버렸다.
곧이어 도착한 위슨도, 로나도…… 표정은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을 거다.
“왜들 몰려와서 그러고 있냐?”
아무것도 모르는 메린은, 그런 우리를 내려다보며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의 눈이 나를 향했다.
주홍빛 눈동자가, 대체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묻고 있었다.
“메린, 너…… 유니콘, 죽인 거야?”
“어.”
숨이 턱 내려앉았다.
눈이 절로 질끈 감겼다.
머릿속엔 단 한 마디가 맴돌았다.
끝장이다.
“……유니콘이 뭐라디?”
묻고 있는 나조차도,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메린은 얼굴을 더 구기면서도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훌륭하다. 너와 겨뤄서 영광이었다.’……였을걸?”
“후…… 젠장할, 어떻게든 넋을 위로…… 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뒤를 돌아보았다.
로나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다.
위슨의 눈도 넋이 나가 있다.
아무래도 내 귀는 제대로 소리를 주워담은 것 같다.
다시 메린을 돌아보았다.
“뭐. 대체 뭔데.”
얘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니,내 얼굴도 뒤의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은 것 같다.
“……진짜 유니콘이 그렇게 말했다고? 너 뭐했는데?”
“한 판 승부.”
한 판 승부.
승부…………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제안이나 대답을 들었을 때, 무척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마법의 말이 있다.
나는 망설임없이 그 말을 입에 올렸다.
“뭐?”
맹세코 이게 내 최선이었다.
유니콘.
그 이름처럼 이마에 뾰족한 뿔이 하나 달린 은빛 말이다.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행동거지에서 기품이 철철 넘치는 걸로 유명한 종족이다.
숲, 그것도 무진장 오래된 숲에서만 목격되는 탓에 제대로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숲의 종족’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혹자는 유니콘이 창조주가 엘프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했고, 또 다른 학자는 엘프와는 상관없는 또 하나의 독립된 종족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누가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걸 확인하기 전에 죄다 뿔에 꽂혀 죽었거나, 그 전에 튀었으니까.
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연구에 진전이 없는 건지 몰랐었는데 이제 그 수수께끼가 풀린 것 같다.
순결한 탐험가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사제도 있을까 말까한 판에.
근데 유니콘, 숫처녀 앞에선 얌전하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싸웠다니…… 어, 설마 메린이……?
아니, 그 전에 공간이동을 손짓없이 자유자재로 해내는 마녀들도 뿔에 꼭 한 방은 뚫린다고 했는데.
물론 메린도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긴 한데, 구멍 난 곳은 하나도 없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니콘이 너 보자마자 덤볐냐?”
“아니, 인사하던데? 이야, 말이 한쪽 무릎 꿇고 인사하는 거 처음 봤어! 진짜 신기하더라.”
뭐?
그럼 뭐야, 덤벼서 싸운 게 아니라, 싸움을 건 거야?!
“너, 너 미쳤어?! 저 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도 모르고!!”
“응. 진짜 강하더라. 이렇게 많이 다친 것도 오랜만이네. 로나, 나 치료 좀.”
“어, 어어, 예? 아, 네.”
로나는 아직 얼이 빠져 있긴 했지만, 메린에게 쪼르르 달려가 바로 치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허…… 아니, 뭐, 저주에 걸리지도 않고, 몸에 시원하게 구멍이 나지도 않았으니 다행이긴 한데.
허…… 나 참, 이거. 하.
말이 안 나오네.
그때, 박수 소리와 함께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우와~ 진짜 멋졌어! 대단해, 진짜 대단해!! 메린 씨, 엄청 강하구나!”
붉은 머리카락을 땋아 내린, 귀가 뾰족한 마녀.
어제 만난 네이멜이었다.
그녀는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유니콘과 메린을 번갈아 보며 박수를 쳤다.
“네이멜?”
“와, 내 이름 기억해주고 있었네요! 호호, 카엘 씨, 맞죠? 응응, 또 뵙네요. 반가워요!”
그녀가 내게 반갑게 인사하자, 내 뒤쪽에 있던 네다섯 명의 마녀들에게서 좋지 않은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네이멜은 그런 분위기를 못 알아채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여전히 들뜬 채 웃고 있었다.
나는 네이멜에게 물었다.
“당신도 봤어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네? 아아, 메린 씨가 유니콘에게 다가가길래, 제가 가서 인사했죠. 얘네, 저한텐 좀 쌀쌀맞게 굴거든요. 자신들은 깨끗한 영혼을 수호하지, 머리가 깨끗이 빈 걸 좋아하진 않는다나?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 아무튼, 어쩐 일이냐고 물어보니 유니콘 사냥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서도 유니콘은 메린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나, 너 죽이러 왔다니까?
그것이 무슨 상관이오? 나는 유니콘. 순결한 영혼과 무구한 생명을 사랑하고 수호하는 숲의 기사이외다. 나는 기사로써 예를 다할 뿐이오.
고결한 영혼이여, 부디 간악한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돌아가시오. 부디 그 손을 더럽히지 마오. 허나, 정녕 이 목숨을 거두겠다면……
그 검을 뽑으시오.
내 그대를 수호의 대상이 아닌, 명예로운 전사로 여기리다.
즉, 자신을 죽이고 싶으면 정정당당하게 싸우라는 거였다.
메린은 유니콘의 이 결투 신청을 덤덤히 받아들였고, 메린을 여기로 데려온 마녀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마법으로 기습을 시도했다.
어머어머어머, 안 돼요! 명예로운 결투를 망칠 셈이에요?
……그리고 네이멜이 마녀들의 공격을 죄다 막아버렸다.
“아니, 말려도 시원찮을 판에!”
기가 막혀서 따지는 내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며, 네이멜은 두 검지손가락을 맞대어 꼼지락거렸다.
“그, 그게 엄청 진지한 분위기라서…… 내가 말리려 들면 그 유니콘, 분명 날 뒷발로 걷어찼을 거란 말이에요!”
“……”
그렇게 숲의 기사와 인간 검사의 한 판 승부가 벌어졌다.
둘은 주변 나무를 쓰러뜨리면서 치열하게 맞붙었고, 결국 인간 검사의 검이 유니콘의 목을 꿰뚫었다.
훌륭하외다……! 그대와 뿔을 마주할 수 있어…… 영광이었소……. 고결한 영혼이여…… 그대의 여로에 주의 광명이 비추이리…….
…………
“진짜 그렇게 얘기했어요?”
“네? 네. 유니콘도 지성체인 걸요. 당신들처럼 예배를 하진 않아도 신이 있는 걸 알고 있어요. 기도하는 개체도 있고요. 이 아이는 신심이 깊은 편이었나봐요.”
……완전 사람이네.
배반당하면 강력한 저주를 내린다는 것도 그렇고, 아무 생각없이 짐승 사냥하듯 잡을 수 없는, 아니, 잡아서는 안 되는 종족이었다.
고블린과 오크와는 다르다.
그 놈들은 말은 통하긴 해도 본능에 따라서만 살기 때문에 그냥 말하는 짐승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유니콘은…… 와, 세상에.
명예를 걸고 결투를 하며, 결과에 승복하고 상대를 치하하기까지 한다.
명예를 짓밟고 배신하면 원망하며 저주를 건다.
그리고 그 저주가 먹힌다.
이게 사람이 아니면 뭐냐?
그런 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메린을 끌고 온 저 마녀들은사람이 아니다.
나는 뒤쪽에 선 마녀들을 돌아보았다.
놈들은 내 시선에 움찔 놀라고는,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허공에 대고 무언가 그렸다.
유니콘의 시신이 둥실 떠오르며 놈들에게 날아갔다.
“수, 수고많았어~ 그럼 우린 먼저 가볼 테니 천천히 와~”
“엥? 머리는?”
“그건 필요없으니까 묻어주든가~”
오호호호, 놈들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필요한 건 심장이지, 뿔이 아니거든. 그거 어쩔 거냐?”
“으응…… 이걸로 뭐할 수 있는데?”
“너한테 축복을 하면서 죽었으니까, 뭘로 가공하든 도움이 될걸? 너네 나중에 드워프한테도 간다며? 가지고 있다가 거기 양반들한테 부탁해봐.”
“그래? 그럼 그러지, 뭐.”
메린은 검을 뿔에 대었다가, 다시 위슨을 쳐다보았다.
“……근데 이거 잘려? 아까 안 잘리던데.”
“몰라.”
“저기, 메린 씨, 에헤헤, 제가 알려드릴게요.”
네이멜이 주춤주춤 메린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메린은 고개를 끄덕인 후, 아직 피를 흘리는 유니콘의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뿔에 손을 대고, 그녀는 네이멜의 도움을 받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숲의 기사님. 나 메린 소더, 당신의 고귀한 위용(??)을 이 눈으로 보고, 그 무용(??)을 마주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당신의 축복에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 순간을 고이 기억할, 증표로 당신의 뿔을 주세요.”
투둑.
메린이 말을 마치자, 뿔이 저절로 뿌리까지 완전히 뽑혀져 나왔다.
유니콘의 크기가 커서 그런지, 뽑혀 나온 뿔은 단검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었다.
“와.”
은빛으로 빛나던 유니콘의 털이, 순식간에 빛을 잃고 탁해졌다.
마치 그걸로 사명을 다했다는 것처럼.
메린은 이제는 잿빛이 된 유니콘의 머리를 바라보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묻어주자.”
머리만이라도 제대로 숲에 돌려 보내야지, 그녀가 덧붙였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땅을 파고, 머리를 묻었다.
위령 기도를 올리는 로나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숲 안에 울려 퍼졌다.
긍지 높은 한 기사를 위한, 작은 장례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