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6화 : 이는, 숲이 사람을 제 품 안에 숨기었으며…… (1)
* * *
장례식을 마친 후, 우리는 네이멜과 헤어지고 다시 일을 재개했다.
나는 파랑새가 가리키는 버섯을 따고 있는데, 하나 같이어디 구석에 핀 버섯만 가리키고 있다.
이 새끼 이거 일부러 그러는 거다, 뻔해, 이 나쁜 새끼!
“근데 너 왜 네이멜이랑 안 놀러갔냐? 이제 위슨 혼자 해도 상관없는데.”
헤어지기 전, 네이멜이 우리에게 넌지시 차 마시러 가자고 권해왔다.
은근히 수락하길 기대하던 눈빛이었는데…….
딴 놈이 수락하기 전에 내가 얼른 나서서 사양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역시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돕기로 한 놈이 땡땡이치면 되냐? 나 그런 놈 아니다.”
“생긴 거랑 다르게 노는구만.”
“누가 할 소릴?”
거절당한 네이멜은 순간 울상을 지었지만, 애써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네에…… 그, 그럼 이따 시간이 되시면 조각상에서 봬요!
부담스러워서 별 생각 없었는데……
……으으, 진짜로 오후에 만나러 가야겠다.
“그래, 그래. 만나러 가. 걔는 너 안 잡아먹을 테니 걱정 말라고.”
“시끄러, 임마! 됐고, 빨리 다음 거나 알려줘.”
오전 내내 우리 세 사람은 위슨을 도와서 약초와 버섯, 이끼 등등을 땄다.
물약 재료냐고 묻는 내게, 위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어깨에 앉은 파랑새가 대신 한 마디 툭 던졌다.
“마력 추출.”
……그냥 그런가보다 하기로 했다.
시계가 정확히 오후 12시를 가리킬 무렵, 어느 한 마녀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작업 종료!”
그러자 숲 곳곳에서 마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마구 뛰쳐나왔다.
심지어 내 바로 앞 덤불 속에서도 불쑥 튀어나왔다!
세상에, 저렇게 많은 마녀들이 숲 속에,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콕콕, 파랑새가 내 정수리를 쪼며 짹짹 울었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야. 돌아가자고.”
위슨의 집으로 가는 길, 파랑새가 묻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말하기 시작했다.
마녀들은 오전엔 채집과 조달, 오후에는 제작을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차를 마시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숨을 돌린다.
이들이 쓰는 원재료와 제작물만 빼놓고 보면, 일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다.
“근데 주변 이웃들이 죄다 미쳤다는 게 문제지.”
이야기를 마친 파랑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저거만 아니었다면 훈훈한 문화교류 시간이 되었을 텐데.
“야, 임마, 위슨 곤란하게 자꾸 그딴 식으로 말할래? ‘개성이 강하고 사고방식이 독창적’이라고 해라.”
“너나 실컷 해라, 새꺄! 그딴 건 내 본성에 어긋난다고!”
“뭔 본성? 다툼을 불러 일으키는 본성? 이야, 이 놈 이거 정령이 아니라 순 악마새끼, 악.”
파랑새가 부리를 세우고 내 이마로 돌격했다!
정수리를 쫄 때는 그냥 뭐가 콕콕 건드리는 감촉밖에 없었는데, 이건 달랐다.
화살, 그래, 화살이 꽂힌 기분이야!
……아무튼 난 바구니를 끌어안은 채 잠시 앉아서 고통을 흘려보내야 했다.
고맙게도 나머지 세 사람은 날 버리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 서 주었다.
“애송이 새끼가 개기고 있어. ……흠? 이건…….”
짹짹, 놈의 징글맞은 울음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놈이 내가 안고 있는 바구니 끝에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 임마, 뭐! 한 번 했으면 됐지!”
“야, 너 용사냐?”
“……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 녀석……
……그걸 대체 어떻게……?
여기 사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지금은 귀찮으니까 안 알려준다. 아무튼 그렇단 말이지? 좋아, 좋아. 잘 됐어.”
“무, 뭔 뜬금없는 소리야. 난……!”
“닥치고 표정이나 관리해. 걱정 마라,너희 셋과 나 말고는 아무도 못 들었으니까.”
이 주변에 마녀들이 몇 명인데……!
내 옆과 바로 뒤에도 다른 마녀가 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
앗. 메린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는, 정상인인 줄 알았던 마녀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네? 어어……”
무어라 둘러댈까 궁리하는 중에, 그녀의 입가에 보랏빛 얼룩이 묻어 있는 게 보였다.
……뭐 주워 먹었나?
“네. 입가에 뭐가 좀 묻었네요.”
“네?! 어머어머어머, 진짜네! 으아앙, 아가씨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마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울상을 지은 채 입가를 스스슥 문지르는 그녀에게 슬쩍 물었다.
“……저 새가 저에게 하는 이야기 들으셨어요?”
“으으…… 네? 이야기? ……아아,”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돌려서 말하는 건 잘 못하긴 한데, 그래도 저 파랑새는 정말 문제가 많아요! 어휴, 위슨은 왜 하필 저런 놈과 계약해서…….”
“어어, 아니요, 그거 말고…… 그 다음에 한 이야기요.”
“그 다음?”
그녀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싸움 하던 거 아니었어요? 무슨 이야기가 오갔었나봐요?”
……시치미 떼는 것 같진 않다.
로나를 힐끗 보자, 내 시선을 눈치챈 그녀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로나는 거짓말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으니……
정말로 이 마녀는 아무것도 못 들은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나는 태연한 척 헛기침을 하고, 파랑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놈이 메린보다 위슨이 더 좋다고…….”
“저, 저, 저 아무것도 모르는 정령 나부랭이가! 어딜 감히 아가씨를 납작 꼬맹이랑 비교해?!”
마녀가 곧바로 파랑새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그대로 마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마녀의 한 손에 잡힌 채 시계 방향으로 빠르게 뱅뱅 돌아가는 놈의 모습은 제법 볼만했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법이다.
“카엘 님…….”
로나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거짓말은 안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본인 손을 더럽히지 않고 끝장낸다는 그 지혜는 감탄스럽지만! 역시 전 자신의 적은 스스로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
……얘도 저 파랑새에게 쌓인 게 좀 있었구나.
사제님도 역시 사람이었다.
위슨은 집 앞에 도착하자, 우리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깨 위에 앉은 파랑새가 대신 입을 열었다.
“바구니는 여기 두고, 너희는 네이멜이나 보러 가라.”
“응? 아냐, 이거 다 다듬어야 한다며? 너 혼자서 언제 다 하려고.”
“이거보다 더 많은 양을 했던 적도 있으니 걱정 마라. 너네 덕분에 오늘 할당량분 재료도 일찍 모았으니까 됐어.”
으음…… 본인이 저렇게 말하고 있으니 정말 괜찮은 거겠지만……
역시 그냥 두고 가는 건 마음에 걸린다.
“진짜 괜찮다니까. 너네 약초 손질해본 적도 없잖아. 방해되니까 꺼지, 아야! ……다칠 수도 있어. 이렇게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거 네이멜에게 전해주고, 내 안부도 대신 전해줘.”
위슨은 부드러운 눈길로 품속에서 꾸러미를 꺼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씁쓸히 웃으며 꾸러미를 받아들었다.
“너도 은근히 고집 세구나.”
“어. 위슨 얘, 완전 고집불통이야. 아야!”
“왜 괜히 한 마디해서 매를 버냐?”
뒤쪽에서 메린이 “그러게. 꼭 내 앞에 있는 누구 같네.”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깔끔히 무시해주었다.
저 비탄스러운 파랑새랑 내가 비슷하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대꾸할 가치도 없었다.
위슨에게 인사하고 가려는데, 메린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저기, 위슨. 나, 너랑 같이 약초 손질해도 돼?”
위슨의 눈이 조금 동그래졌다.나 역시 놀라고 있었다.
얘가 웬일이래?
약초에 관심이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열의를 보이는 건 처음이다.
“……”
위슨의 눈이 나를 향했다.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위슨의 승낙을 얻은 메린은, 이번엔 나를 돌아보았다.
얼핏 보면 덤덤한 표정이지만 녀석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주홍빛 눈동자엔 옅은 기대감이 실려 있다.
녀석이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다.
내 대답도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그냥 한 단계 건너뛰기로 했다.
“맘대로 해.”
“응!”
……되게 좋아하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게 됐으니, 위슨, 미안한데 메린 좀 부탁할게. 그냥 막 부려먹고 있어.”
“……”
위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웃고 있는 듯했다.
위슨의 어머니가 좀 걸리긴 하지만…… 뭐, 별일 없겠지.
그렇게 믿으며, 나와 로나는 위슨의 집을 뒤로 하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부엉이 조각상이 있는 공터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오후 12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만나기로 했던 시간까진 아직 두 시간 가까이 남아 있는데도,
“……”
네이멜은 조각상을 올려다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벅, 한 걸음 내딛자, 그녀의 뾰족한 귀가 쫑긋거렸다.
붉은 머리칼의 마녀는 천천히 뒤로 돌아서서, 우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와아, 정말 와 주셨네! 근데 조금 일찍 오셨네요?”
……나 참, 누가 할 소리를.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에요? 지금 당신 얼굴 엄청 빨간 거 알아요?”
“네? ……아, 이, 일광욕 하려고 그런 거에요! 해, 햇빛 많이 받으면 좋다고들 하잖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아아…….”
이마를 치며 한탄하던 파랑새의 심정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
네이멜은 내가 한숨을 쉬자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죄송해요.”
“아니, 사과하실 것까진…….”
“저도 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혹시라도 시간을 잘못 들으셨을 수도 있고…… 그래서……”
으아악, 또 땅 파고 들어간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다른 데로 가요. 여기 아직 땡볕인데 잘못하면 일사병 걸려요!”
“다른 데…… 역시 여기는 재미없죠……? 하긴 조각상 밖에 없는데 뭐가 좋겠어요……”
아잇, 진짜.
그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로나가 좋은 수를 떠올렸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녀는 내 소매를 당긴 후, 가만히 속삭였다.
“……카엘 님, 배 안 고프세요? 지금 점심 때 맞죠?”
“오후 12시 넘었으니까 점심 때이긴 하지?”
로나는 네이멜을 향해 배시시 웃었다.
……왠지 그 잠깐 사이에 네이멜의 표정은 더 쭈그러진 것 같은데.
대체 왜?!
“저기, 네이멜 님, 죄송한데 여기 근처에 뭐 먹을 거 없을까요? 헤헤, 저희가 점심을 안 먹어서…….”
“먹을 거……? 아, 그럼, 저…… 우리집, 갈래요?”
“네? 아니에요, 갑자기 그렇게 폐를 끼칠 수는…….”
로나가 눈썹을 아래로 내리며 말꼬리를 흐리자, 네이멜이 손사래를 치며 허둥지둥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아니에요! 미안해하시지 않아도 돼요!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요! 호호, 그럼 우리집에 가요! 저를 따라오세요!”
얼굴빛만 바꿀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까르르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가고 있다.
그 뒷모습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따라가기 시작했다.
……뭐 저리 극단적이야?
“……성공……은 했네요.”
“너무 성공해서 오히려 무서운데.”
의도대로 됐다고 좋아하기엔 너무나도 어둡고 묵직한 기쁨이었다.
문득, 이야기 속 마녀의 집에 들어간 사람은 두 번 다시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물론 주인공은 무사히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우리도 무사히 다시 나올 수 있겠지?
네이멜의 뒤를 따라 숲을 걷고 또 걸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건지, 제대로 집까지 안내해주고 있는 건지 슬슬 의심이 될 때쯤, 그녀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도착한 건가?
하지만…… 주위엔 나무밖에 없다.
햇빛마저 가릴 정도로 높이높이, 빽빽하게 자라난 나무밖에 없다.
어두침침한 숲 속을 바람이 휙 훑고 지나갔다.
……몸이 오싹 떨린 건 분명, 방금 불어온 서늘한 바람 탓이다.
가느다란 흐느낌 같은 건 분명, 바람이 빽빽한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가느라 나는 소리이지 딴 게 아니다.
그건 그렇고, 도통 알 수가 없는데.
쉴 새 없이 지저귀던 그 새들은 지금 이 시간, 왜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
왜 네이멜은 저기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걸까?
“……아, 맞다. 집에 고기가 다 떨어졌지?”
이 사람은 또 왜 하필 이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네이멜이 천천히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보니, 옛날 이야기 속 마녀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던가요?”
아니, 얘는 또 왜 하필 지금 그런 얘기를?!
네이멜이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다.
“헤헤, 에헤헤헷……! 재미있는 이야기에요. 어디서 보기라도 했나? 어떻게 알고 만드는 건지.”
그녀는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리고, 두 눈을 번뜩였다.
약간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나부꼈다.
주위는 나무 그늘 탓에 어두컴컴한데, 그녀의 핏빛 머리칼과 황금빛 눈동자는 스스로 빛을 내뿜듯이 빛나고 있다.
……근데 진짜 이 분위기 뭐야?
설마, 정말로 우릴 잡아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저, 저기, 네이멜? 고, 고기 없어도 되는데요.”
“네……? 아이, 무슨 말씀이세요? 식사에 고기가 빠지면 섭하죠. 마침,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마녀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내 쪽으로 뛰어들었다!
“…………!!”
……비명은 터져나오지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정말로 무서울 땐 오히려 비명이 안 나온다고.
그 누군가를 위해 덧붙이자면, 몸도 떡 굳어서 안 움직인다.
갑자기 큰 소리를 들은 사슴이나 토끼가 도망 안 가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리는 것과 같다.
즉……
……진짜더럽게 무서웠다.
“와아, 잡았다!”
“그거 참 잘됐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으, 빌어먹을, 진짜!”
그래서 네이멜이 토끼 귀를 잡은 손을 들어올렸을 때, 목청껏 크게 축하해주었다.
……괜히 사람 놀래키고 있어!
킥킥, 로나가 옆에서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카엘 님, 겁 많으시네요~?”
“시끄러, 임마.”
로나를 대하는 내 태도에 허물이 없어진 건 덤이다.
마침내 도착한 네이멜의 집은……
도저히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집이라 주장하는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정말이게집이에요?”
“집인데요? 왜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네이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나는 얼굴에 난색만 표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해야 할 말이 있다면 목이 떨어져도 한다, 기록해야 할 것이 있다면 손목이 날아가도 적는다.
그것이 필경사의 정신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나서는 것이 용사인 것이다!
잘 생각해보니 딱히 상관없는 것 같지만 알 게 뭐야!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외쳤다.
“이건 나무 밑동이잖아요! 집이 아니라구!”
그 흑단나무처럼 거대한 나무라면 또 몰라,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나무 밑동은 의자로나 쓸 수 있는 크기였다.
그 거대한 나무를 ‘탑’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뜩잖은데, 이게 집이라고?
난 절대 인정 못해!
네이멜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나무 밑동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경쾌한 노크 소리가 세 번 울리자, 나무 밑동의 뒤쪽 공간이 일렁이며 오두막이 나타났다.
“집 맞죠?”
“……”
집이었습니다.
……아, 억울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