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37화 : 이는, 숲이 사람을 제 품 안에 숨기었으며…… (2)
* * *
오두막 안은 의외로 쾌적했다.
햇빛 하나 안 들어오는 숲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꿉꿉하지도, 퀴퀴한 곰팡이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
상시 불을 떼고 있는 것도 아닌데.이것도 마법인가?
네이멜은 조금 전보다 두 배는 더 들뜬 얼굴로 우리를 테이블에 안내한 후, 한 손에 든 토끼를 가리키며 웃었다.
“히히, 편히 계세요~ 전 이것 좀 맡기고 올게요~”
“네? 맡기다뇨?”
여기 또 누가 사나?
그러나 네이멜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훌쩍 들어가버렸다.
“……”
집 안은 조용했다.
달리 누가 살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딱히 할 것도 없어, 의자에 앉은 채 찬찬히 집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려 있는 약초 한 다발, 깃털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뭐지? 부적인가?
아무튼 풀을 엮어 만든 문양 같은 것에 큰 새의 깃털이 달려 있는 것, 시계, 그리고……
“오? 저건 성광(?光)이네요.”
“엥? 진짜네.”
교단의 상징, 그러니까 창조주를 상징하는 빛을 상형한 작은 조각이다.
그래서 신전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인데……
왜 여기 있지?
쿡쿡.
누군가가 내 팔을 가볍게 찔렀다.
고개를 돌려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
착각인가?
쿡쿡쿡.
“……”
쿡쿡쿡쿡쿡쿡.
……착각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고개를 홱 돌려봐도 아무도 없고!
진짜 뭐지?!
“아잇, 돌겠네, 진짜!”
“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니, 누가 자꾸 건드는 것 같아서!”
“아무도 없는데요?”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로나의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러니까 돌겠다는 거지. ……진짜 이상하네.”
“이상해요?”
“이상하지.”
“뭐가 이상해?”
……응? 갑자기 말투가……
……얘 또장난치고 있는 건가?
로나는 내 시선에 의아해하는 눈빛만 띄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필 로나는 지금 엎드려 있어서 입이 안 보이는 상태이다.
쟤가 장난치는 건지 딴 놈이 치는 건지 표정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
뭐, 사실 말투만 들어도 딴 놈이 장난치는 거란 건 훤히 다 알 수 있지만.
마침 심심했겠다, 그냥 어울려주기로 했다.
“누가 건들고 있는데 안 보이니까 이상하지!”
“그게 이상해?”
“이상해.”
“이상한 건 너야.”
갑자기 공격당했다!
나도 모르게 눈썹이 움찔거렸다.
“내가 왜 이상해?”
“보이는 걸 보고 있지 않으니까 이상해. 볼 수 있는데 안 보니까 이상해.”
“안 보여서 못 보는 건데 뭐가 이상해.”
“네 목은 나무줄기로 되어 있어? 곧게 뻗은 자작나무야?”
“뭔 개소, 크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로나를 보며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그녀는 어느새 허리를 펴고 있었다.
당연히 얼굴이 보였고, 당연히 입은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로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진지하게 주시하기 시작했다.
“고개 못 움직여? 아까부터 앞이랑 옆만 보고 있잖아.”
“그럼 어디를 봐?”
“아래를 봐야지! 아래!”
아래?
소원대로 고개를 내려주었다.
“안녕?”
날개 달린 작은 꼬마애가 손을 흔들었다.
“우와악?!”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버렸다.
그와 동시에 로나가 재빨리 몸을 숙여, 내가 본 그것을 확인했다.
“페어리네요?”
“페, 페어리?”
페어리는 날개 달린 요정 종족 중 하나이다.
마을 근교 숲에서도 가끔 튀어나오는 픽시와 달리, 페어리는 사람 앞에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런 놈이 왜 네이멜의 집에 있는 거지?
아무튼, 페어리도 픽시처럼 사소하면서 무서운 장난을 치긴 해도 실제적인 해는 가하지 않는 요정이다.
나는 다시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페어리는 내가 놀래는 모습을 보고 낄낄거린 후, 테이블 위로 올라와서 우리를 번갈아 보며 인사했다.
“안녕, 손님 여러분! 우리집에 온 걸 환영해! 차, 뭐 마실래? 여러가지 있어!”
“꽃차로 하자, 꽃차! 짜릿하게 철쭉 어때? 예쁘장한 은방울꽃도 있어!”
아. 한 마리 늘었다.
“난 버섯차가 좋아! 특히 까르르 웃을 수 있는 광대버섯! 개나리, 양파, 뱀껍질! 무슨 광대이든 재미있어!”
“아니면 반짝반짝 빛나는 화경버섯? 노랗게 빛나는 황금송이버섯? 사슴이 버리고 간 빨~간 사슴뿔버섯은 어때?”
어느새 페어리는 네 마리가 되어 있었다.
““““자, 손님! 뭘로 하실래요?””””
테이블 위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 녀석들이 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 몇 번 깜박이고, 힘찬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다 독이잖아, 이 썩을 놈들아! 다 꺼져!!”
““““꺄하하, 들켰다, 들켰어! 도망가자~! 꺄하하하!””””
……네 마리 다 잽싸게 도망가버렸다.
저걸 쫓아가봤자 더 험한 꼴만 당할 거다.
차라리 이따 네이멜에게 불평하는 게 낫다.
마녀니까 우리 대신 혼쭐을 내줄 수 있겠지.
“쟤들 또 저러네. 확 잿가루를 뿌려버릴까보다.”
이번엔 집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리며, 찻주전자와 찻잔이 든 카트가 들어와 테이블 옆에 턱 멈춰 섰다.
찻주전자 옆에는 빨간 모자를 쓴, 두 뼘 만한 크기의 노인이 서 있었다.
척 봐도 요정이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저 놈들도 간만에 손님이 와서 들뜬 모양이야.”
“이번엔 노움이네?”
로나가 중얼거리자, 노인 요정은 기쁜 듯이 껄껄 웃었다.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어디를 봐도 노인인데, 목소리는 무척 젊었다.
아니,어렸다.
“인간치곤 제법인데? 맞아. 난 노움이야. 만나서 반가워.”
노움은 모자를 벗으며 우리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자자, 사양 말고 차를 들라고. 네이멜은 지금 부엌에서 식사 메뉴 정하고 있어서 좀더 늦을 거야.”
수레에 타고 있던 건지, 다른 노움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카트에 실려 있던 찻주전자와 찻잔을 테이블 위로 옮겼다.
카트와 테이블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 넘는데도 차를 쏟거나 과자를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
굉장한 균형 감각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들고, 코에 가까이 대보았다.
향은 좋긴 한데……
……이거 진짜 먹어도 되는 거겠지?
“아, 아, 걱정 마. 그거 진짜 차야. 독 없어.”
“우슬 뿌리를 달인 거라 몸과 영혼에 좋다고!”
“과자에도 꿀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달콤해. 먹어봐, 먹어봐. 아니면 젤리로 할래? 사탕도 있어. 전부 브라우니 특제야!”
……로나와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한 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
이번엔 과자를 한 입 깨물었다.
“오오.”
맛있다! 농담 아니고, 진짜 여태까지 먹은 과자 중에 제일 맛있다!
요정이 만들어서 그런지, 왠지 한 입씩만 먹었는데도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맘에 든 모양이네. 점심도 있으니까 너무 많이 먹진 말고.”
“그럼 애초에 과자를 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멍청아! 차랑 과자는 한 몸이라고. 어떻게 뺄 생각을 해?”
……갑자기 노움 셋이 지들끼리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헛기침으로 그들의 주의를 끌고, 한 가지 물어보았다.
“네이멜이 너희를 데리고 여기 사는 거야?”
노움들이 동시에,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반대야, 반대.”
“우리가 네이멜을 데리고 살고 있어.”
“쟤 혼자 어떻게 살겠어? 절대 못 살아.”
꼭 짠 것처럼 하나씩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있다.
이번엔 로나가 그들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여기 살고 있는 거에요?”
“아마 백 년쯤 됐을 거야. 이백 년인가? 아무튼 숲에 철퍼덕 엎어져 있는 걸 주웠어.”
숲에 엎어져 있었다고?
……왠지 아까 본, 네이멜을 향한 마녀들의 험악한 시선들이 떠올랐다.
혹시 마을에서 쫓겨난 걸까?
그보다 역시 네이멜도 엘프가 맞구나.
백 년, 이백 년은 거뜬하구만.
괜히 귀가 뾰족한 게 아니였어.
“왜 네이멜 혼자 다른 마녀들과 떨어져 사는 건지 알아?”
“어이고, 이 인간아. 그건 본인에게 직접 물어야지.”
“……”
……이 노움은 내가 인간이니까 저렇게 말한 것일 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감 때문에 살짝 울컥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물어보고 싶어도 당사자가 부엌에서 안 나오고 있잖아.
다른 두 노움도 그 점을 지적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네이멜 오려면 한참 더 있어야 될걸? 살짝은 알려줘도 되지 않아? 그냥 잡놈도 아니고.”
“아니, 그냥 다 얘기해버리자. 얘 용사잖아. 뭐 어때?”
“푸흡?!”
……차 뿜어버릴 뻔했다!
맹렬히 기침하는 내 등을 로나가 두드려주었다.
아니, 이 놈들 대체 그걸 어떻게……?!
“콜록, 콜록! 어떻게, 콜록콜록!”
“어떻게 알았냐고?보면알지. 우린 요정이라고.”
“우린 영혼을 볼 수 있어. 네 영혼에 [용사]라고 적혀 있는데?”
“……”
무슨 양념 구분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야, 남의 영혼에 글자 쓴 사람이?
“어쨌든 안 돼. 아무리 용사라 해도 남 얘길 해줄 순 없어. 본인에게 직접 들으라구.”
“쩨쩨하긴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해.”
“그러니 그냥 차 마시고 있어. 네이멜은 곧 올 거야.”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진 후, 노움들은 다시 카트를 끌고 집 안쪽으로 사라졌다.
요정들도 사람 영혼을 볼 수 있다니, 전혀 몰랐다.
근데 대놓고 적혀 있다고?
그거 완전 이름표 달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어라? 잠깐.
뭔가 이상한데?
대놓고 내 영혼에 [용사]라고 적혀 있다면, 왜 그 악마는 그때, 메린을 용사로 착각했던 거지?
악마들의 주 업무는 영혼을 타락시키는 거니, 당연히 영혼을 볼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우리 마을을 습격한 건 그냥 악마도 아니고 대악마다.
요정도 읽을 수 있는 걸 대악마가 놓칠 리가 있나.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오면서,다른 악마의 습격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
글자가 적힌 영혼은 눈에 확 띄일 텐데, 세상에 있는 어느 악마도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다고?
말이 안 되잖아.
그 의문을 입에 올리자, 우리 어린 사제님이 툭 던지듯이 대답했다.
“못 봐서 그래요.”
“……뭐?”
“악마는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없어요. 요 일 년간은 못 보도록 눈을 막아버렸거든요.”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로나가 말을 마쳤다.
이거 물고기가 헤엄치지 못하도록 지느러미를 붙여버린 격인데?
아니, 그보다도……
“로나,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카엘 님도 참, 당연히 알고 있는 게 있죠! 대언자님에게 들은 게 있는데.”
“……”
당연한 소리를 한다며 로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입이 떡 벌어진 채, 과자를 깨작거리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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