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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8화 (38/475)

〈 38화 〉 38화 : 이는, 숲이 사람을 제 품 안에 숨기었으며…… (3)

* * *

호로록,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로나는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는 일 년간, 악마들을 비롯한 직접적인 관계자들은 영혼을 보지도, 다루지도 못해요. 이건 대언자님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직접적인 관계자……?”

로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나 엘프, 마녀 등등, 사명에 관계된 존재들이요. 여기 노움들은 우리 사명과 전혀 상관없잖아요? 그래서 카엘 님을 알아본 거에요. 만약 누군가 우리를 돕거나 방해할 요량으로 노움에게 '용사를 찾으라'고 하면, 그 즉시 영혼을 보는 능력이 막힐걸요.”

그렇다면 그 악마가 착각한 것도 이해가 된다.

속 알맹이가 보이지 않으니, 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로나가 방금 한 이야기도 그렇고, ‘드래곤을 물리친다’는 이 사명……

……무언가 복잡한 게 얽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 이제 기억났다.

율리아 공주가 ‘이번 임무에 대한 건 로나에게 물으라’고 했었지?

……그녀는 이 사명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고, 로나는 그 중에 얼만큼이나 알고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이들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긴 한 걸까?

지금 이 자리엔 나와 로나, 단 두 사람 밖에 없다.

찻물을 들이켜 긴장감을 눌러버린 후,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로나, 말이 나왔으니 묻는 건데, 우리…… 아니, ‘용사의 적’은 누구야? 드래곤과 악마, 또 뭐 있어?”

“아니요, 카엘 님. 악마는 그저 적극적인 지원세력일 뿐이에요. 당신의 주적(??)은 아트라토스, 단 하나뿐이랍니다.”

“지원세력? 왜 악마가 드래곤을 돕는 거야?”

“옛 동족이잖아요? 동족의식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요~ 헤헷, 농담이에요. 글쎄요,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몰라요. 그냥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은 거 아닐까요?”

그건 아마 아닐 것이다.

악마들의 양식은 영혼을 타락시키고, 괴롭히면서 얻는 어두운 감정들이다.

……라고 책에 적혀 있었다.

물론 그 저자가 악마에게 직접 물어본 건 아니니 반드시 맞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세상이 멸망해서 악마에게 이득이 되는 건 없을 것이다.

“악마가 드래곤을 돕는다면, 천사는 우리를 돕는 거야?”

“아마도 그렇겠죠? 하지만 별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아요. 카엘 님을 돕더라도, 악마들처럼 직접 손을 대지 않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뭐? 아니, 왜 그리 소극적이야?”

로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시련을 겪어야 성장할 수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천사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카엘 님도 역사서를 읽으셨다면 아실 거에요.”

“그건 그런데…… 나 참, 쩨쩨하네.”

“히히, 그래도 성검이라도 있는 게 어디에요? 이전에 아트라토스를 물리쳤을 때는, 성검 같은 건 없었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건 몰랐네.”

……잠깐.

그럼 옛날 그 다섯 영웅은, ‘세계를 멸망시키는 드래곤’을 자신들의 순수 능력만으로 때려잡았다는 소리가 되는데?!

우와…… 괜히 영웅이라 불리는 게 아니구나.

지금 국왕이 그렇게 풍채도 좋고 힘도 센 것도 이해가 된다.

다섯 영웅 중 하나인 초대 국왕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당연히 강하지.

뭐, 본인도 무던히 노력했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전 카엘 님이 용사인 걸 숨기시는 건 정말 잘하신 거라 생각해요. 악마의 손이 누구에게 뻗어 있을지,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니까요. 역시 카엘 님은 현명하시다니까요!”

“어어…… 응, 고마워…….”

뜬금없이 긍정 파워가 확 날아든 탓에 더듬거렸다.

……이거 진짜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끝까지 어색한 거 아닌지 몰라.

배시시 웃는 로나를 마주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마지막 한 입을 기분 좋게 넘긴 후, 나는 크게 외쳤다.

“진짜 잘 먹었습니다!!”

아아, 창조주님. 용사가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사가 되지 않았다면 평생 이런 맛을 볼 기회는 없었겠지요.

“어머, 눈물 글썽이실 정도로 맘에 드셨어요? 호호, 브라우니가 큰 보람을 느끼겠네요.”

“아, 제가 요즘 좀 힘들었어서…… 크흑…….”

맛있는 음식은 마음까지 치유해준다.

요리책에서 이 글귀를 봤을 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세상 진리였구나!

내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할 정도로, 요정들이 차려준 점심 식사는 굉장했다.

원래부터 요리 솜씨가 뛰어난 건가, 아니면 특별한 힘이 깃들어서 그런가.

겉모양은 그저 그런 빵과 고기구이, 스튜인데, 맛은 죄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웠다.

후식으로 나온 젤리마저도 자꾸자꾸 집어먹고 싶어질 만큼 맛있었다.

내 목을 걸고 장담하는데, 세상에 어떤 장인도, 어떤 명인도 절대 흉내내지 못할 거다.

“매일 이런 걸 먹고 지내시는 거에요?”

하도 놀라워서 네이멜에게 묻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저 애들이 손님 대접한다고 힘을 좀 많이 쓴 거에요. 평소엔 그냥 과일이랑 버섯구이, 빵 좀 깨작거리고 만답니다. 요정들은 단 걸 좋아하니까, 간식거리는 떨어지지 않지만요.”

……간식거리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음, 부탁해도 괜찮겠지?

그러나 실제로 말을 꺼내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머쓱해서 헛기침을 두어 번 해야만 했다.

“그…… 여유분이 있으시면 이 젤리, 좀 나눠 주실 수 있나요? 한 줌이라도 괜찮아요.”

“아, 돌아가서 드시려고요? 네, 네! 여유야 많죠! 한 줌이 아니라 한 포대 가득 드릴게요!”

“아니, 그 정도까진 안 주셔도 돼요! 작은 꾸러미로 두 개만 주세요!!”

무시무시하게 극단적인 마녀님은 집 안쪽에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제발, 돌아갈 때 포대자루를 끌고 가는 일이 없기를……!

네이멜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찻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다른 요정도 없겠다, 지금이 아마 이것저것 물어보기 좋은 때일 것이다.

“노움들 말로는, 숲 속에 엎어져 계셨다던데…… 왜 이런 외딴 곳에서 사시는 거죠?”

“그 애들도 참!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흠흠, 노움들이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이건 분명히 알아두세요. 제가 요정들을 데리고 사는 거에요!

아무튼, 그 부분은 저도 기억이 안 나요. 왜 거기 쓰러져 있었는지, 그 전엔 어디서 살고 있었는지……. 처음엔 이름도 기억 안 났는걸요.”

어라, 생각보다 더 진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네이멜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근데 제 손에 쪽지가 있더라고요. ‘내 이름은 네이멜’이라고 적혀 있는데, 제 글씨 같더군요. 희한하죠? 그 다음 노움들을 만나고, 여기 버려진 집을 발견하고, 쭉 살고 있어요.”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네이멜은 숲 안에서 다른 마녀들을 만났다.

마녀들은 그녀를 데리고 부엉이탑으로 데려갔고, 수장이 그녀에게 자신들과 살 것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뭔가 이상한 의식을 치러서 누구 딸이 되어야 하길래, 기분 나빠서 됐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러나 그 마녀들은 그녀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고, 강압적인 권유에 화가 난 네이멜은 마녀들에게 마구 마법을 쏟아붓고 숲 속으로 도망쳤다.

그 이후로, 마녀들은 그녀를 더 건드리지 않았지만, 대신 ‘이름 없는 마녀’라 부르며 적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녀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부엉이탑의 마녀들에겐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지만, 탑 바깥의 마녀들과는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자신이 섬의 모든 마녀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도 인사하지 않는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다.

있어도 없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받게 되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 이상한 의식을 치르지 않은 아이들은 가끔 저랑 놀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 의식을 치른 다음엔, 하나 같이 절 멀리했어요. ……그게 더 아프더라고요.”

의식을 치르지 않은 아이들…….

“아, 그래서 위슨이랑…….”

“네.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데도, 헤헤, 그래도…… 가까이 지내게 되네요. 물론 정령과 요정들이 있으니까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역시 저는 사람인가봐요. 사람에게 더 끌리네요. 그 애들이 유독 저한테는 까탈스럽게 굴어서 그런지도 몰라요.”

헤헤 웃으며, 그녀는 찻잔을 기울였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위슨이 전해달라고 했던 게 있었지.

나는 위슨이 맡겼던 꾸러미를 꺼내어, 네이멜에게 내밀었다.

“이거, 위슨이 전해달라더군요. 안부도 함께 전해달래요.”

“네? 아~ 완성했구나. 호호, 위슨에게 잘 받았다고 전해주세요.”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

“이미 묻고 계시잖아요? 마력증폭제에요. 한 번 만들어보라고 재료를 줬었거든요.”

음? 그거 완전…….

“스승이네요?”

로나가 내 대신 눈을 깜박이며 말하자, 네이멜은 쑥스러운지 몸을 배배 꼬았다.

“아이, 스승이라니요! 어머니가 아무것도 안 가르쳐준다고 침울해하길래,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걸 좀 알려줬을 뿐이에요.”

“그럼 물약 만드는 거랑, 그 정령들을 다루는 건 전부……?”

“아니요. 다 가르쳐주면 자기 것이 안 되잖아요? 저는 그냥 글자랑 마력을 다루는 방법만 알려줬을 뿐이에요. 나머지는 위슨, 그 아이가 스스로 익힌 것이랍니다.”

……그리고 저렇게 과제 같은 것도 내고 말이지?

스승 맞구만, 뭘.

아마 위슨 이전에 만난 ‘아이들’도 그녀가 이것저것 가르치고 돌보았을 것이다.

마을의 일원이었다면 후학양성에 크게 이바지하는, 존경받는 마녀로 살고 있었을 텐데.

“그 의식이란 거, 굳이 거절하실 필요가 있었나요? 기분이 나쁘더라도 좀 참으셨으면 될 텐데.”

내 말에, 네이멜은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어휴~ 말도 마세요! 나중에 안 건데, 그 의식, 완전 사람 망치는 종류더라고요. ……진작에 알았으면 그 애들이 그렇게 되기 전에 빼 오는 건데.”

“사람을 망친다니요?”

“그 의식, 누구 딸…… 아, 그래, 마일린의 딸로 만든다는 그 의식은 있죠.영혼의 자유를 없애버리는 의식이에요!”

“……”

나와 로나는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닌지, 네이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확 퍼졌다.

“어라? 어라라? 안 놀라시네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아니요. 그냥 그게 얼만큼 심각한 이야기인지 전혀 모르겠는지라……. 제가 마법은 아는 게 없거든요.”

로나도 같은 처지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네이멜이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에?! 노움이 말하는 거 들었어요! 카엘 씨, 용사라면서요?! 아니, 카엘 씨는 어쨌든, 어떻게 사제님도 모르시는 거에요?!”

“그런 건 보호나 치유 보직의 영역이거든요.”

“……으으, 그럼 영혼의 구조는 아세요?”

절레절레.

“……마법의 원리는? 마력의 정의는?”

죄다 고개를 젓자, 네이멜은 완전히 울상이 되어버렸다.

“……히으…….”

“죄,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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