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9화 : ……저들이 사람의 길을 떠난 까닭이라
* * *
이 세상 모든 만물 속엔, 선택된 소수만이 다룰 수 있는‘힘의 흐름’이 내포되어 있다.
이 흐름은 누가 어느 걸 다루는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제는 이 흐름을 신성력이라 하고, 마녀는 마력이라 부르고 있다.
“어라? 그럼 둘 다 같은 힘이라는 건가요?”
“아니요.” “달라요.”
……사제와 마녀가 동시에 내 말을 부정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잠시 쳐다보다가, 머쓱한 듯이 뺨을 긁적였다.
네이멜은 헛기침을 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 특별한 흐름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적절한 훈련을 받으면, 그 흐름을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러면, 원하는 현상이 일어나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죠.”
“명령?”
“예를 들면…… 이렇게,”
화륵.
네이멜의 검지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 넘실거렸다.
꼭 촛불 같다.
“허공에 떠도는 불의 원소를 모아서 불꽃을 피울 수 있어요. 능력이 뛰어난 마녀는 개념까지도 흐름에 묶어서 움직일 수 있답니다.”
“개념……이요?”
“예를 들면, ‘여기서 저기로 이동한다’. 이 개념을 기초로 장소와 시간, 그리고 나 자신의 존재의식을 한데 묶어서 만든 마법이 ‘공간이동’ 마법이에요. 이 마법을 자유자재로 쓰려면, 꼭 필요한 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뭘까~요?
……무슨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네이멜이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로나는 자신에게 묻지 말라는 듯이, 내 눈을 피하며 차만 홀짝홀짝 마셔대고 있었다.
음……
마력을 다루는 실력……은 기본일 거고,
기억력? ……은 별로 상관없나?
으으음…… 에이,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말해버리자.
“글쎄요…… 상상력?”
“상상력? 왜요?”
“흐름으로 묶는다면서요? 머릿속에 시각화를 해야 잘될 것 같아서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할 때 중점적으로 쓰는 건 시각이다.
그래서 어떤 물체를 설명할 때 색깔이나 모양을 먼저 이야기하며,
눈에 보여야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몸소 시범을 보이는 것 역시, 말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인식이 잘 되기 때문이다.
음, 생각하면 할수록 그럴싸한데?
이거 정답 아니냐?
은근한 기대를 품고 네이멜을 보았다.
방긋, 그녀가 환히 웃었다.
오, 설마 진짜로……!
“땡!!”
“……”
저 ‘땡’이라는 말, 진짜 사람 맥빠지게 하네.
저거 혹시 그런 종류의 마법 주문 아냐?
아무튼 네이멜은 혼자 킥킥 웃으며 말했다.
“욕망이에요.”
“욕망?”
“공간마법의 경우, ‘어디어디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되겠네요.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일수록 더 크고 강한 욕망이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똑같은 마법도, 품은 욕망이 클수록 더 강한 위력을 가지죠.”
그렇군.
로나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걸 보니, 사제들도 비슷한 모양이다.
“아, 저희는 오로지 창조주님께 기도하는 거니까 좀 달라요.”
“아마 사제님들이 더 어려울 거에요.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에게 접속해야 되니까. 아무튼, 이 욕망이라는 걸 더 강하게 하기 위해, 마녀들은 그 무시무시한 의식을 치르는 거에요.”
개와 고양이, 곰과 같은 짐승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간다.
즉, 욕망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의 영혼은 굉장히 단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네이멜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와 당신 같은 ‘인류’의 영혼은 좀더 복잡해요. 우리 역시 본바탕은 생존본능이지만, 좀더 세분화되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도 짐승들처럼 무언가 먹지 않으면 죽어요. 하지만 우리는 밥 말고도 과자와 사탕을 먹죠. 안 먹어도 죽지 않는데 말이에요.”
의식주가 해결되면 만족하는 짐승들과 달리, ‘인류’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옷에 장식을 하고, 집에 꽃을 두고, 때로는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든다.
필요하지 않은데도 짐승을 잡고, 일부러 싸움의 장을 만들어 대결하기도 한다.
“‘인류’는이렇게 복잡한 욕망을 가졌지만, 아직이 세계를 죄다 먹어치우지 않았죠. 무엇 때문일 것 같나요?”
“지성?”
“이성이에요.”
그게 그거 아닌가?
음, 네이멜의 표정을 보니 아닌가보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복잡해질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야지.
지금 이야기 따라가는 것도 벅차다고.
“이성은 욕망을 억누르고, 욕망은 이성을 회유해요. 이 둘이 부딪치면서 굉장히 많은 감정들이 만들어진답니다.”
누군가의 물건을 가지고 싶을 때, 빼앗고 도망가는 대신 값을 지불한다.
이를 통해 정당하고 올바르게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싶을 때, 정면승부를 하는 대신 독을 타거나 밤중에 습격한다.
이를 통해 들키지 않고 적을 없앤 덕분에, 처벌을 피하고 살인자라 비난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낀다.
그 누군가는 원래 죽어도 마땅한 놈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덤이다.
“……이걸그냥 내버려두면 이성과 욕망이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영혼이 점점 흩어지고 말아요. 그래서‘인류’의 영혼은그릇에 담겨 있답니다.근데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이 그릇은 영혼의 방향성을 정하도록 되어 있어요.”
네이멜은 두 손을 깍지끼고, 턱을 받쳤다.
“쉽게 말해서,사람의 성격을 정하는 거에요. 그릇의 성질이 ‘질서’인 사람은 순서와 절차를 지키는 걸 좋아하고, ‘올바름’인 사람은 사회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길 좋아하는 식으로요.”
“아아.”
“이해하셨나요? 그릇의 성질은 이렇게 ‘약간 더 끌린다’는 영향밖에 주지 못해요. 하지만 특별한 방법을 쓰면, 이 그릇의 성질이 더 강해져요.”
예를 들어, 갓 만들어진 포도주는 나무통에 저장한다.
이 나무통의 재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포도주의 향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데 만약, 나무통의 향이 지나치게 강하다면?
포도향이 집어삼켜지고, 최악의 경우엔 ‘포도로 만든 나무 액기스’가 될 것이다.
“지나치게 강해진 그릇의 성질은, 영혼마저 그 성질에 따르도록 완전히 묶어버려요. 이렇게 된 영혼엔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아요.”
벗어나느냐, 잡아먹히느냐.
묶여버린 영혼에게 다른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묶였다면서요? 벗어날 수 있는 거에요?”
“아직까진불가능해요. 대신, 반대 방향으로 한없이 도망칠 수 있어요.”
‘질서’의 성질은순서와 절차 따위 모두 내팽개치며도망치고,
‘올바름’의 성질은사회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부정하며도망친다.
그러다 결국 잡아먹히게 되면……
네이멜은 눈을 감은 채, 판결을 내리듯이 덤덤히 읊조렸다.
“‘질서’는순서와 절차를 벗어나는 모든 것을 배제하며, ‘올바름’은사회가 부정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겠죠.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그런 결말을 맞이할 거에요.”
……저절로 턱이 벌어졌다.
네이멜이 예시로 든 것은 전부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끝이 파멸이라니.
그럼 만약 어떤 사람의 성질이‘포악’이나‘가학(??)’ 같은 악덕이라면……?
그 사람은 대체, 얼마나 끔찍한 존재가 되는 걸까?
……응? 잠깐.
“근데 그게 욕망을 강하게 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죠?”
“영혼이 그릇에 묶이면, 그 순간 영혼 속의 이성이‘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요. 어찌 보면 자멸을 막는 일의 연장선이지요. 영혼이 묶이면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다고 했죠? 그걸 이끄는 게 이성이랍니다.”
그 탓에, 이성은 본래 억누르던 기본 욕망들을 막지 못한다.
어쩔 때는 그릇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욕망을 부추기기도 한다.
즉, 욕망을 참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마법이 훨씬 강해져요. 그릇에게 잡아먹힌 마녀는 훨씬 더 강해질 거에요. 이성이 없다시피하니까. 대신, 항상 넘쳐나는 욕망 때문에 제대로 된 생활은 못할걸요?”
넘쳐나는 욕망……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물었다.
“설마, 그 마녀들이 자꾸 절 집적거리는 것도…….”
“집적? 아아, 네, 아마 그럴 거에요. 듣기로는, 다른 마녀들은 사내의 정……”
“잠깐! 돌려서 말씀해주세요!!”
위험했다!
물론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단어이고, 나 역시 어엿한 성인이니 그 단어를 직접 말하고 들어도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그래, 로나는 아직 어리잖아!
어린애 앞에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어쨌든, 내가 느닷없이 정정을 요구하는 바람에 네이멜은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져야 했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마녀들은 생명력을 많이 활용한대요. 그래서 남자의 씨앗을 써서 무기물에 생명을 부여하거나, 아니면 마력으로 변환해서 쓴다나요?또 보셨다시피, 다들 실제 나이는 어쨌든 몸은 젊으니까……그래서 다들 집에 남자 하나씩 데리고 있는 거에요.”
즉, 당신을 건드는 건젊고 힘찬 씨앗 얻을 겸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싶은 욕망때문이에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일단 재료 수집 목적도 있긴 한 거군요?”
“그럼요. 마녀들은 모두 마법을 좋아하거든요.”
“……”
얼른 이 섬을 나가야겠다!
근데 그 놈의 ‘중요한 의식’ 때문에 다음주까지 기다려야 되잖아?
빌어먹을, 젠장.
“……이제 이 섬에 그 의식을 치르지 않은 마녀는 저랑 위슨 뿐이에요. 카엘 씨는 다음주에 여길 떠나실 거죠? 그 아이를 데리고 가 주실 수 없나요?”
“위슨을요?”
“그 아이, 주문은 못 외우지만 부적을 만들거나 물약 만드는 건 잘해요. 정령들도 그 아이를 좋아하고요.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뭐, 위슨 본인도 원하니까 아직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나야 대환영이지.
아니, 오히려 내가 같이 가자고 다리 붙들고 조르고 싶다.
네이멜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나 한 명 희생해서 마녀를 영입하면 되리라 생각했지.
근데 이 사람 말이 맞다면, 마녀들은 결국 ‘좀 많이 똑똑한 짐승’이나 그 직전이라는 소리잖아?
망할, 그건 절대 안 돼!
지금 있는 둘도 힘든데 이성 없는 짐승녀까지 감당하라고?
그랬다간 그날로 내 정신은 산산조각이 날 거다!
적어도 메린과 로나는 잘 지내기라도 하지.
어느 마녀가 들어오든, 지금 내 옆에서 얌전히 차를 홀짝이는 사제님이 매일 철퇴를 휘두르며 온갖 욕을 퍼부을걸?
……오우,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근데 역시, 마법 쪽 지원을 못 얻는다는 게 좀 아쉽네.
네이멜 같은 사람이 같이 간다면 정말 든든할 텐데.
……응? 잠깐.
꼭 한 명만 데려가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네이멜도 같이 가요.”
“……네?”
뜻밖이라는 듯이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동그랗게 뜨인 황금빛 눈동자에 대고, 나는 열의를 담아 제안했다.
“위슨도, 그리고 당신도 같이 여기서 나가자고요. 꼭 여기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분명 여기 말고 다른 좋은 곳이,”
“전 안 가요.”
……단칼에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어흑.
그녀는 미안한 듯이 눈썹을 내리면서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제안주신 건 기뻐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전 여길 떠날 수 없어요. 그래선 안 돼요.”
“다른 마녀들이 당신을 멸시하다 못해,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데도요?”
“네.”
“……네이멜, 굳이 버티고 살 필요 없어요. 당신이 꿋꿋이 버티고 기다리고, 노력해봤자 결국……!”
결국 달라지는 건 없다.
……차마 그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나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이건 이미 깨달은 진실이다.
뼈에 사무치게 박혀버린 경험이다.
한 번 정해진 인상과 편견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달군 쇠로 찍은 낙인을 절대로 없앨 수 없는 것처럼, 뭘 하든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아니야. 아니라고.
지우지 못하더라도 덧씌울 수 있어.
낙인 위에 다른 그림을 덧그릴 수 있어!
내가 그랬으니까.
매사에 부정적인 나도 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분명 할 수 있어!
그런데……대체 왜……?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렇게 달라졌는데, 어째서……!
젠장할…….
“카엘 씨……?”
“아.”
……안 되지, 안 돼.
여기 없는 사람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에게 집중을 못하면 실례잖아.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긴 없나보다.
나는 짧게 헛기침했다.
“그……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계속 견디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거에요.”
“으응? 그렇긴 한데…… 아, 오해하셨구나. 호호,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그냥…… 여기서 뭔가 할 일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래요.”
“할 일이 뭔데요?”
조심스럽게 묻자, 네이멜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문제에요! 분명히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게 뭔지, 뭘 해야 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저기,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한데, 당신 바보에요?”
“아니에요! 그냥 기억이 조금 안 나는 것뿐이에요!”
조금이 아니잖아.
어딜 봐서 조금이야.
“아무튼! 저는 그냥 집 떠나기 싫어서 참고 사는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네, 뭐, 좋을 대로 하세요.”
그렇게 백 년 동안 계속 상처받으면서,
사람이 아닌 존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계속 사람을 고파하면서도 고집을 피우겠다면야……
……그냥 냅둬야지, 뭐 어째.
“아직 여길 떠나려면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그 전에 마음 바뀌면 알려주세요.”
“히힛,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아, 근데 왜 그렇게 오래 머무세요? 관광?”
“……사지에서 관광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수장이 중요한 의식이 있다면서, 다음주까지 안 내보내준대요.”
하……
그것만 아니면 내일 당장이라도 여길 떠나서 다른 곳에 가는 건데.
“의식……?”
네이멜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앗.
그렇구나…….
숲에 혼자 살아서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줬구나!
눈물이 글썽거리려는 걸 애써 참았다.
근데 위슨이나 그 파랑새도 아무 이야기 안 해줬나?
의외네.
“의식? 의식…… 의식…….”
응? 왠지 네이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녀는 제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계속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네이멜? 갑자기 왜 그래요?”
“의식…… 다음주……? 다음주엔 보름달인데…….”
네이멜은 계속 혼자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탓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그러고보니 유니콘 사냥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마녀들이 숲을 마구 뒤지고 있는 게 다 그 ‘의식’ 때문인 건가요?”
“아마 그럴 걸요? 마력원을 모아야 한다든가, 뭐 그랬던 것 같은데요.”
“뭘 위한 의식인지는 모르시고요?”
“네. 전혀 들은 게 없어요.”
……그러고보니 무슨 의식인지 한 번도 안 물어봤네.
나랑 전혀 상관없어서 그랬나?
음, 이따 위슨에게 물어봐야겠다.
아니면 드와트에게 물어보거나.
“……카엘 님, 무슨 의식인지 물어보실 건가요?”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로나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럴까 하는데,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요.”
“……?”
로나는 무언가 불편한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로나는 네이멜의 집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를 넉 잔째 마셨을 무렵, 나는 네이멜에게 이만 돌아가겠다고 전했다.
“그럼 숲 입구까지 배웅해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네이멜 없인 이 숲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목숨이 걸린 일에‘한 번은 사양한다’는예절을 앞세울 순 없었다.
숲 입구에서 헤어지기 전, 네이멜은 내게 꾸러미 두 개를 건넸다.
꾸러미 안에는 후식으로 먹은 젤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포대자루를 안 주길래 까먹은 줄 알았지.
“또 봬요!”
손을 흔드는 네이멜을 뒤로 하고, 우리는 위슨의 집으로 향했다.
다들 자신의 집에서 작업하고 있는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슬슬 때가 됐나?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로나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그 수장이 엿듣고 있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껄끄럽긴 하지만, 젠장, 듣고 싶으면 들으라지.
어차피 별 거 아닌 일상대화인데.
“저기, 로나, 대체 왜 그래?”
“……”
“의식에 대해 물어보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야, 말을 해, 말을! 그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내가 알겠냐?”
앗. 말이 좀 세게 나와버렸다.
아니, 그래도 좀 답답해야지.
대놓고 나 불만 있소, 하고 입 삐죽이 내밀고 있으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데.
누구 속 터져 죽는 꼴 보고 싶나.
“그게……”
“어. 뭔데.”
“……네이멜 님 말씀에서 안 좋은 예감이 들어서요.”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로나는 꼭 누가 근처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속삭이고 있었다.
……응?
자세히 보니, 두 손을 마주 쥔 로나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겁을 먹은 건가?
몬스터 한 무리와의 전투도, 심지어 골렘과의 전투도 사냥으로 취급하는 그 로나가……?
“카엘 님은 책 많이 읽으셨으니까…… 보름달이 뭘 의미하는지 조금 생각해보시면 아실 거에요.”
“로나……?”
“죄송하지만 더는 안 돼요! 카엘 님,마녀가 듣고 있다고요……!”
“……”
로나의 얼굴에 장난기는 전혀 없었다.
커다랗게 뜬 잿빛 눈동자는 불안하게 떨고 있고, 꼭 쥔 두 손은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음…… 얘도 좀 삐끗한 데가 있긴 하지만……
일단 내 상식대로 대하기로 했다.
“걱정 마.”
그래서 그녀의 손을 감싸고, 손가락을 푼 뒤, 맞잡아주었다.
자그마한 손은 땀이 배어 축축하면서도 차가웠다.
나도 모르게 손에 살짝 힘이 갔다.
“너무 걱정하지 마.”
“……뭘요?”
“글쎄? 아무튼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그리고 웃었다.
평소에 얘가 짓는 웃음을 따라가려면 백 년도 모자라겠지만, 있는 힘껏 웃어주었다.
로나는 그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푸흡” 웃음을 터뜨렸다.
“푸히히, 카엘 님, 얼굴 엄청 웃겨요!”
“너 평소에 이렇게 웃던데.”
“저 그렇게 안 웃는데요?!”
로나는 맞잡은 손에서 자신의 손을 하나 빼고, 웃었다.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웃음이다.
“네. 다 잘 될 거에요. 가요, 카엘 님! 메린 님이랑 위슨 씨가 기다리겠어요.”
손 하나씩 맞잡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제님의 작은 손은 더 이상, 조금도 떨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오누이처럼 훈훈하게 손잡고 간 위슨의 집 앞에서, 우리는 목도하고 말았다.
집 문 앞 바닥에 쓰러진 한 마녀와, 그 앞에 선 메린의 모습을.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의 눈을, 빤히, 글자 그대로 뚫어버릴 듯이 빤히 마주보았다.
“……”
“……”
“……내 잘못 아니야.”
“……하아아아아…….”
돌겠네, 진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