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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1화 (41/475)

〈 41화 〉 41화 : 그대는 선택의 기로에 섰으니

* * *

청천벽력 같은 이 충격적인 사실이 정말인지 확인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그냥 직접적으로 냅다 물어보는 건데, 아무리 애를 써도 입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하지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는 감히 가련한 소녀의 목욕을 훔쳐보고 알몸까지 본 쳐죽일 새끼가 되고 만다.

하지만 상대가 남자애라면 그 죄의 무게는 모래 한 줌 정도로 가벼워진다.

그러니 말해야 한다.

맞은편 사제님께 회개(??)당하기 전에 얼른!

나는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리고 맞은편에서 느껴지는 오러를 손으로 차단한 채, 다시 한번 시도했다.

“……아니, 그거 말고…… 아니, 맞나? 젠장, 미치겠네. 이걸 뭐라고 해야 되지?”

“가랑이?”

“그래, 빌어먹을, 내 대신 말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너도 그, 달린 거 봤어?”

“보긴 봤는데, 카엘,”

녀석이 새삼스럽게 나를 부르길래 고개만 살짝 돌렸다.

메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방금 내가 말한 거 아닌데.”

“……”

작은 날개 소리가 들리며, 내 정수리에 무언가 내려앉은 듯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래, 너네 둘, 봤다 이거지? 아주 그 눈알이랑 머리통 속에 콱 박혀서 절대로 안 떨어진다, 이거지? 엉?”

“……”

이 목소리는……!

내가 아는 이 목소리와 저 지랄 같은 말투의 주인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마를 짚던 손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정수리에서 느꼈던 느낌이 사라지며, 또 한 번 날개소리가 들렸다.

테이블 위에 앉은 놈, 위슨의 충직한 대변인인 파랑새가 나를 마주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때 한 번 기가 막히게 맞췄구만? 그래, 남의 알몸 본 감상이 어떠냐? 추잡한 변태 새끼야.”

“아니야아아아아!!”

……영혼을 다해 소리치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아니야, 진짜 난 그런 놈 아니라고!

아니란 말야!

“아니긴 개뿔. 너네 인간 수컷들은 죄다 똑같더라. 실수로 들어온 거면 바로 나갈 것이지, 꼭 그냥 버티고 서서 지랄을 해요.”

“아니야…… 난 아니라고……”

진짜 아닌데. 되게 억울한데!

근데 또 저 새끼 말은 맞단 말이지.

하, 씨, 왜 바로 안 나간 걸까?

왜 고개를 안 돌렸을까?!

젠장, 스라소니 불이 조금만 더 어두웠더라면……

……엉? 잠깐.

“이상해.”

늑대가 메린과 유니콘의 냄새를 쫓아간 게 생각났다.

이 새가 벌레를 좋아하며, 심심하면 짹짹거리던 게 떠올랐다.

이들의 본질은 정령일지라도, 짐승의 형체를 취하고 있는 이상 그 성질과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지하로 가는 걸,그 스라소니가 못 들었을 리가 없어.”

스라소니는 소리에 민감하다.

아무리 우리가 발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고 한들, 녀석의 귀에는 반드시 들렸어야 하는데.

짹짹, 파랑새가 머리를 까닥거렸다.

“걔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 내가 막았으니까.”

“뭐?”

“됐고, 너네 셋, 할 말 있으니까 작업장으로 와라.”

말을 마친 후, 파랑새는 먼저 푸드덕 날아가버렸다.

‘너네 셋’이라면…… 역시 나랑 메린, 그리고 로나, 이렇게 세 명이겠지?

“아, 빨리 오라고.”

“……!”

바로 귓가에 목소리가 울렸다.

전에 들렸던 그 낮은 목소리다.

정황상 이 목소리의 주인은 파랑새 그 놈인데……

그럼 그 때도 파랑새가……?

아무튼, 우리는 변태 엘프를 내버려두고 작업장으로 향했다.

파랑새는 조리대에 앉아, 그 위에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있었다.

녀석은 우리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이 방에서 하는 이야기는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을 거고, 거울에도 들어가지 않을 거다. 위슨에게도 안 들릴 거야. 자, 질문해.”

“……”

“질문하라고, 새꺄!!”

나도 모르게 기세에 눌려서 움츠리고 말았다.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지으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이 파랑새가 이렇게까지 판을 깔고 있다는 건……

역시, 내 눈은 멀쩡했던 것이겠지.

나는 각오를 다지고, 입을 열었다.

“위슨, 남자 맞냐?”

“맞아.”

뒤쪽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 소리의 주인이 로나인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나만 몰랐던 게 아니었어. 다행이다.

……다행인가?

파랑새는 고개를 까닥였다.

“위슨은 인간 수컷이야. 위슨 본인은 자신이 암컷인 줄 알고 있지. 아니,알고 있었어.”

“있었다고? 그럼 지금은…….”

짹짹, 대답 대신이라는 듯이 짧게 운 후, 녀석은 그 좁쌀만 한 눈으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신기하게도, 녀석에겐 적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네 녀석 덕분이야.”

“나? 내가 뭘 했다고?”

“네가 어제 자,”

“안 돼, 임마!! 아무리 네가 정령이어도 그 말은 안 된다고!! 돌려서 말해, 돌려서!”

아무리 이 자식이 우리와는 종이 다르다 해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놈은 잠시 나를 등신 보듯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어제 가랑이에 천막 쳤잖냐. 그 다음엔 그게 본능이니 뭐니 했었고. ……너 뭐하냐? 왜 갑자기 얼굴 감싸고 몸부림치고 지랄이야?”

“신경 꺼! ……후우. 아무튼, 그래, 그랬었지. 기억나.”

“사실 위슨도 전에 몇 번 그랬었거든. 폴레, 그 미친년한테 물어봤다가 된통 깨진 다음엔 두 번 다시 입에 안 올렸지만. ……아무튼 네 덕분에, 그 애는 가랑이가 가끔 하늘을 우러러보는 게 ‘수컷의 본능’이라는 걸 알았어. 그리고 자연히, 자신의 성별도 깨달았지.”

……이게 뭔…….

아, 그래서 그때 그런 말을 했었구나.

­­난처하긴 해요. 여러가지로.

정말 그 말 그대로, 위슨은 여러가지로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이해가 안 돼요.”

로나의 목소리에는 아무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아마 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짜냈다.

“……어, 어떻게 그걸 숨겨요? 어떻게 위슨 씨에게 그런 거짓된 삶을 살게 할 수가 있어요?! 당신도, 다른 정령들도, 위슨 씨의 어머니도!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왜냐고? 흠. 어려운 질문이군.”

파랑새는 부리로 날개를 손질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하나,우리는 그 역할을 맡을 수 없어. 그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인정해야 하거든. 우린 유도만 할 수 있어. 뭐, 직접 말해도 안 믿었을걸?”

……아마 그럴 것이다.

나만 해도, 나 자신이 용사라는 걸 성검을 직접 뽑고서도 믿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크게 실감은 안 난다.

그냥 내가 용사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도 믿고 있는 거지.

파랑새는 고개를 까닥이며 말을 이었다.

“둘, 상황이 좋지 않아. 위슨이 남자인 게 알려지면 그 아이가 어떻게 될 거 같냐? 너네도 봤지? 드와트도 하나 데리고 있으니까.”

“……”

“그래, 잡아먹히거나 개목걸이 채워질 거다. 수컷에게 예외는 없어.

사제 아가씨, 진실 속에서 사람 취급 못 받고 사는 것과 거짓 속에서 사람으로 사는 것, 둘 중에 뭐가 나을 것 같냐?”

로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꽉 맞잡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셋, 시간이 더 필요했어. 지금 위슨은 덜 자랐어. 진실을 알았다면 이 섬을 나가야 되는데, 그 아이 혼자 바깥에서 얼마나 버티겠냐? 섬 바깥은 마력도 옅어. 정령 중에서도 직접 계약한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못 도울 텐데, 바깥 세상을 전혀 모르는 그 아이가 혼자 살 수 있겠냐?

말해봐라, 용사.바깥 세상이 그렇게 따뜻하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사지 멀쩡해도 살기 어려운 게 바깥 세상이다.

말 한 마디도, 심지어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그 아이가 아무리 정령을 다룬다고 해도……

……심신에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살아갈 순 없을 거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메린이 툭 내던지듯이 말했다.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메린?”

“이 녀석은 일부러 우리가 위슨이 남자라는 걸 보게 만들었어. 괜히 그러진 않을 거 아냐.”

“그건 그렇지. 역시 너도 생각을 할 줄 아는, 악!”

……정강이를 문지르는 가운데, 파랑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용사 너, 이 섬 나가고 싶지? 너희 셋 모두 이 섬에서 나가게 도와줄 테니까, 위슨 데려가.”

“……엥? 진짜로?”

“진짜로. 숲의 정령들이 힘을 모으면 섬에서 나가는 것쯤 간단해. 대신, 너희가 어느 정도까진 위슨을 돌봐주어야 돼. 그게 조건이야.”

겨우 그게 조건이라니, 오, 주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여길 나가게 되었습니다아아!!

맹약서에 도장을 못 받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까짓 거 나중에 다시 와서 받으면 되지!!

일단은 탈출이 먼저다!

녀석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어머, 그건 안 되겠는데?”

……그러나 그 순간 들려온 끈적한 목소리가, 내 눈앞에서 기회를 빼앗아버렸다.

이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한 목소리.귀에 익다.

그야 당연하지.

한참을 내 귓속에서, 머릿속에서 울렸던 목소리니까.

“우후후후…… 나만 따돌리다니, 너무한 거 아니니?”

“뭐냐, 너. 들었냐?”

파랑새의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분노로 몸을 부풀린 채, 녀석은 문 쪽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다.

나 역시, 천천히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귀가 뾰족한 여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뱀을 연상케 하는 서늘한 미소였다.

“안녕, 자기? 후후, 후후후후……! 또 만났네?”

어제 호되게 시달렸던 그 변태 마녀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걸 봤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깨어난 걸 마주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렸다.

로나가 내 앞을 막아서는 한편, 메린이 마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메, 메린?”

메린은 싱글거리는 마녀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잠시 서 있다가,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아니, 쟤 뭐하는……

……아, 맞다. 내가 시켰지.

“기절시켜서 미안합니다.”

“으, 으응? 어…… 진심이니?”

메린은 훌륭하게 사과를 했고, 마녀는 허를 찔렸다는 듯이 당황해했다.

설마 사과를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

즉, 이 정신 나간 변태는 자신이 한 짓이 파렴치한 짓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거다!

알면 하지 마라!

어쨌든 메린이 사과를 했으니, 나도 내 할 일을 해야지.

나는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녀에게 말했다.

“……기절시킨 건 얘가 잘못한 거니까요. 대신, 다음에 또 그딴 짓 하면 당신 손목 분질러버리라고 했으니 그렇게 아세요.”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이 아이가 위에 네 옷만 껴 입고 있는데! 그걸 보고 어떻게 참아?!”

“아니, 왜 못 참아, 이 변태야! 못 참을 요소가 어디 있는데?!”

기가 막혀외치는 나를 향해, 마녀는 뺨을 붉히며 헤실 웃었다.

“아이, 참. 자기야, 꼭 말해야 알겠어? 봐봐, 이 아이에게선 네 냄새가 풀풀 난단 말야. 그런 아이를…… 게다가 숫처녀인 이 아이를 내가 가지면? 후후, 후후후후후!! 남에게서 빼앗는 그 기분……! 하으읏,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려!! 하아…… 이해됐지?”

“씨발, 진짜 돌겠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내 정신만 더럽혀지는 기분이다.

네이멜의 말이 맞다면, 이 마녀도 자신의 ‘영혼의 그릇’의 성질이 강해져서 이 꼬라지가 된 거겠지.

대체 그 성질이 뭐길래 사람이 이렇게까지 추락한 걸까?

음란인가?

아니면 그 정반대인 정숙함, 뭐, 그런 건가?!

“개지랄 그만 떨고 내 말에나 대답해! 옵센 너,들었냐?!”

보이지 않는 곳에 따로 숨주머니를 들고 있는 건지, 파랑새는 그 작은 체구로 솥이 흔들릴 만큼 큰 목소리를 내었다.

얼이 약간 나갈 정도로 큰 소리였는데, 문 앞에 선 엘프 마녀, 옵센은 히죽 웃을 뿐이었다.

“후후, 후후후후, 히히히, 하하, 아하하하하!!”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배를 부여잡고 한창 웃음을 터뜨린 후, 마녀는 싸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들었어.”

“……!!”

“푸흐, 뭘 놀래고 그래?소리의 정령은 너 혼자가 아니잖아?”

“지랄 마, 나 빼고는,”

“맞아. 잡놈이야. 너처럼 자유의지도 없고, 이름도 없는 티끌 같은 애들이지.”

옵센은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연신 그 끈적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티끌도 잘 모아서 주무르면, 작~은 바늘이 되거든? 그걸로 톡!”

공기방울을 터뜨리듯이, 그녀는 허공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머리카락 한 올 크기의 구멍이면 충분해. 나는 엘프니까, 그 정도 틈만 있으면 들을 수 있어. 후후후, 알겠니?”

파랑새는 분한 듯이 날개를 마구 퍼덕거렸다.

녀석은, 저러다 터져버리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몸을 잔뜩 부풀리고 있었다.

“근데 그거 아니?베르메가 더 먼저 들었어.”

“……!”

“아아, 정말 빠르다니까.벌써 왔네?”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며집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반에 놓여 있던 병들이 하나 둘 떨어지면서 쨍그랑 깨지는 소리, 솥이 벽에 마구 부딪치는 소리, 조리대가 무너지는 소리 등이 마구 뒤섞여 울렸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바닥을 딛고 서 있는 우리에겐 그 어떤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후후후후후!! 찾았다. 찾았어! 드디어 찾았다!!”

허공에 웃음소리가 울렸다.

이 집 자체가 몸을 떨며 우리를 비웃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집이 뜯겨져 나갔다.

지붕과 벽이 사라진 공간엔 다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오후의 맑은 하늘 위에,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자가 빗자루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검붉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우리를 향해 입술을 비죽거렸다.

“이틀 만에 보는구나. 어때, 잘 지내고 있니? 드와트가 잘 대해주디?”

“수장님……!”

“후후, 너에겐 그냥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데. 어쨌든,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갈게.”

베르메가 손짓하자, 저편 침대 근처의 책과 종이더미가 꿈틀거리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 튀어 올라갔다.

“위슨을 놓아줘!!”

파랑새가 베르메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러나 베르메가 살짝 눈을 부릅뜨자, 녀석의 몸이 공중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쨍그랑!

도자기가 깨지는 것처럼 녀석의 몸이 산산조각 난 후, 그대로 연기가 되어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당신, 설마!”

“후후, 걱정 마. 그 정령은 위슨과 깊이 연결되어 있거든. 이 아이가 살아 있는 한, 그 정령도 죽지 않아. 아무튼……”

베르메는 위슨을 품에 안은 채, 방긋 웃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그녀가 나를 향해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카엘, 네 덕분에중요 재료를 손에 넣었구나. 네가 중얼거려주지 않았다면, 위슨이 사내아이라는 걸 절대 몰랐을 거다. 고맙다.”

내가 중얼거려서……?

설마.

설마, 그 작은 소리를……?

제대로 말조차 되지 못한 그 중얼거림을, 들었다고?!

“우후후후! 내 탐색 마법, 대단하지?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사내’가 필요했는데, 네가 ‘남자’라고 말해준 덕분에 찾은 거란다. 후후, 후후후후! 그래, 네 덕분이야!!

……그러니 포상을 주겠다.너를 가지는 건 포기해줄게. 이 섬을 나가도 좋아. 네가 요청한 대로, 우리 자매 중 하나도 붙여주지.”

그건……

하지만 그 말은……!

“후후후,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위슨을 되찾으려고 하거나,우리를 방해하려고 한다면…….”

베르메는 입술을 핥았다.

“너를, 영혼까지 전부, 맛있게 먹어 치워줄게……!”

……마치 먹이감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짐승처럼,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후후, 그럼 난 준비를 해야 되니 이만 실례할게. 옵센, 폴레를 내게 보내.”

“네에, 네에~”

베르메가 올라탄 빗자루가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갔다.

다리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였다.

옵센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대 쪽으로 가더니,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침대에 누워 있던 위슨의 어머니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자~ 끝!”

옵센은 손을 툭툭 털고, 기지개를 켠 후,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후후, 지금은 도~저히 나랑 놀아줄 기분이 안 들겠지? 그러니 얌전히 돌아가 줄게.”

“……당신, 설마 처음부터 다 알고……?”

평소에도 위슨에게 집적대던 변태다.

어쩌면 이 마녀는 위슨이 남자라는 걸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식 때에 맞추어, 위슨을……!

“어머머, 자기도 참! 당연히 그냥 놀러 온 거지! 이건 우연이야, 우연.”

옵센은 손사래를 치며 내 말을 부정했다.

그 말을 누가 믿어?

“위슨이 남자라는 것도 몰랐다고?”

“자기 정말, 날 뭘로 보는 거야?그딴 거 당연히 알고 있었지! 나만큼 이름값 하는 마녀는 없다구! 성별 따위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어!

후후후, 그 아이, 페로몬 약을 먹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런 걸로 다른 자매는 다 속일 수 있어도 나는 못 속이지!”

……뭐지?

저렇게 가슴 펴고 자랑할 능력인가?

발끈하면서 주장할 만한 안건인가?!

“좀더 깊이 맡으면 동정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단 말야! 날 너무 우습게 보지 마!”

“이 미친 변태 년아! 그딴 게 자랑이냐?! 안 그래도 돌겠는데 지랄 말고 얼른 돌아가! 간다며! 빨리 꺼져!”

“꺄하아아앙♡ 아하앗…… 자기도 한 솜씨하는구나? 하으…… 더 듣고 싶지만 자기가 정말로 화낼 거 같으니 갈게~ 후후, 언제든 우리집에 놀러와~!”

손키스를 날린 후, 그녀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후우, 하마터면 이성이 끊어질 뻔했다.

빡쳐서.

격정이 지나간 후, 어느 때보다도 허망한 마음이 찾아들었다.

……조금 전까지 바로 이 자리에 집이 있었는데.

이젠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집터에 멀거니 서서, 베르메가 날아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어쩌지?”

망연히 새어 나온 내 질문은, 누구에게도 답을 얻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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