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5화 (45/475)

〈 45화 〉 45화 : ……라고, 숲이 말하였습니다 (2)

* * *

여자는 섬 한가운데에 다다르자, 빗자루에서 내렸다.

검은 머리카락에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서쪽 저 멀리서 살던 엘프였다.

여자는 뾰족한 귀 끝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내내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완전 고지식해선! 도와주는 게 뭐가 나쁘다고!

엘프들은 대륙 중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드래곤들이 소동을 일으킨 이번에도, 엘프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받는 인간들에게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여자만이 홀로 반발하며 인간을 도왔고, 그 탓에 숲에서 추방된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힘’을 다루는 유일한 엘프인데도 가차없이 추방한 걸 보면, 엘프 사회엔 ‘융통성’이라는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흥이다. 차라리 잘 됐지! 여기라면 내 힘을 마음껏 쓸 수 있어.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곧 나무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와, 흑단이 이렇게나 많아? 나랑 딱이네!

여자가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는 것으로 흑단나무 몇 그루가 베어지고, 서걱서걱 잘려나갔다.

순식간에 완성된 작은 오두막을 보며그녀는 굉장히 만족스럽게 웃었다.

­­짜­잔! 나만의 작은 집 완성!

흑단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혼자서도 유쾌하게 재잘거리는 그녀의 이름은 마일린.

……후일, 대마녀라 칭송받는 그 마일린이었다.

빛에 휩싸이기 전, 정령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보라’고 했었다.

즉,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은 전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인 거다.

마일린은 오두막을 지은 후, 한동안은 홀로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연구에 힘썼다.

그렇게 수십 번째 봄을 맞이한 끝에, 그녀는‘특별한 힘’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자신 혼자일 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힘’을 다루는 방법을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 사람들을 자신이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그 생각이 미치자마자 빠르게 계획을 세웠다.

‘재능 있는 사람’만이 내용물을 볼 수 있는 초대장을 만들어, 정령의 힘으로 대륙 전체에 뿌린다.

그렇게 초대된‘손님’의 의사에 따라, 함께 이 섬에서 살면서 이‘특별한 힘’에 대해 연구한다.

‘손님’이 거부한다면, 뭐, 어쩔 수 없이 기억을 뭉개어 꿈을 꾼 것처럼 만든다.

이 계획이 굉장히 크게 성공한다면, 어쩌면 마일린은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정반대의 상황, 즉,‘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결말로 끝날 가능성이 있는 걸 알면서도, 마일린은 기대감에 눈을 빛내며 계획을 실행했다.

아마 수십 년간 홀로 사는 것이 내심 쓸쓸했던 것이겠지.

물론 이 섬의 숲에 사는 건 그녀 혼자가 아니다.

숲은 그녀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자리한 만큼, 신비한 존재로 가득했다.

정령과 요정 등의 비교적 친숙한 이들뿐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고대의 요수(??) 중 하나인 레비아탄도 살고 있었다.

마일린은 이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또 다른 이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숲의 자녀들’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그게타인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수를 불릴 수 있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한계일 것이다.

­­흥! 마일린 바보!

­­으으…… 좀 봐줘!

외지인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숲의 자녀들’은 마일린의 계획에 뾰로통해 했지만, 그래도 마일린은 꿋꿋이 계획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계획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녀의 초대를 받은‘손님’은 하나 둘, 그녀의 제자가 되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흑단나무 오두막이 점점 커져서 탑이 되었을 정도로 제자의 수가 불어났다.

섬에 사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본래 숲에 살던 존재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마일린을 귀여워하던 레비아탄은, 사람들이 모인 게 시끄럽다며 잠들어버렸고,

피를 좋아하는 특성 때문에 그녀를 성가시게 하던 흡혈 요정들은 사라졌다.

그 대신이라는 듯이 숲 속에선 유니콘이, 그리고 탑 안에선 브라우니가 새로 태어났다.

자신 때문에 숲이 변한 것에 복잡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마일린은 사람이 늘어난 것에 기뻐했다.

어쨌든, 그녀는 사람이었으니까.

­­탑이라면 이름이 있어야지! 이블랑, 뭐가 좋을 거 같아?

자신의 단짝인 흰 부엉이에게 말을 걸며, 마일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뒤쪽에서 ‘아, 대충 지어요’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만큼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그녀는 방긋 웃으며 외쳤다.

­­좋아! 앞으로 여길 ‘부엉이탑’이라고 하자!

­­아싸아아!!

­­안 돼애애애! 내 피 같은 유령버서어어엇!!

­­그러게 왜 그걸 걸어 가지고…….

……스승이 탑 이름을 뭘로 할지를 두고 거리낌없이 내기를 할 정도로, 제자들은남녀 가릴 것 없이모두 그녀를 따랐다.

마일린과 제자들은 자신이보는‘특별한 힘’을 마력, 그 힘을 다루는 걸 마법이라 부르면서,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갔다.

마일린에겐 딱히 특별한 목표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제자들과 함께 섬에서 오순도순 지내며, 마법을 연구하길 바랄 뿐이었다.

굳이 꼽자면, 이 특별한 능력의 한계선을 아는 것이 그녀의 목표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제자들은 저마다 목표하는 방향이 달랐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섬을 떠나는 제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러는 마법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더러는 세상을 보고 싶다며 떠났다.

개중에는 섬의 성비(??)를 결정한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마일린처럼 제자들을 키우겠다며 떠난 남자 제자였다.

……아마 주위가 자신 빼고 거의 대부분이 여자인 게 불편했겠지.

굉장히 안타깝게도, 마일린의 ‘신비로운 초대’에 응답하는 비율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내 생각엔 그거, 초대장이 단순히 글자만 띄웠기 때문이라 본다.

초대장이 요정으로 변한다든가, 나한테만 들리는 어떤 신비로운 목소리가 났어 봐라, 그걸 응하지 않고 배겼겠냐?

그 남자 제자가 떠난 뒤로, 신기하게도 섬에는 여자만 찾아오게 되었다.

마일린과 그 남제자 사이에 무언가 협약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어떤 이유이든 간에, 섬을 떠난 제자들은 두 번 다시 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을 깨우친 자는, 그 일부가 우리와 같아짐으로 인해 본래보다 더 오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터전인 이 섬은, 이방인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숨기어 있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간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원래 살던 집에는 본 적 없는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고향 마을은 규모가 커지거나, 더 작아지거나, 아예 사라져 있었다.

그들이 기억하던 세상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 섬에서몇 번째의 봄을 맞이하였고, 몇 번째의 겨울을 보내었던가?

그들은 섬에서 나오고서야, 처음으로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만큼은스승에게 배울 수 없었던 것이었음을 절절이 통감했다.

“그에 절망하여홀로 산이나 숲에 틀어박히는 자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제 스승처럼 웃어 넘겼다. 그리고 세상에 제 힘을 드러내었다.때로는 그 손으로 온정을 베풀고, 때로는 그 손에 피를 묻혔다. 세상은 알지 못하는 힘을 다루는 그들을 두려워하며, 때로는 박해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선(?)을 지키는 조언자로 남았으니, 그것이 제 스승이 원하는 바라 믿었음이라.”

그런 노력 덕분이겠지.

끝내 그들은 두려움이 아닌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현자’라 불리며 세상의 존경을 한껏 받았다.

그런 면에서, 마일린은 위대한 스승이었다.

큰 힘을 지니면서도, 길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니까.

현자들이 제각각 세상에서 활동하는 중에도, 마일린은 계속 그 섬에서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

도중에 섬에 쳐들어온 악마와 싸워서 이기기도 하고, 악마에 넘어간 제자들이 소동을 일으키는 등, 심심할 틈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있는 곳은 언제나, 변화가 찾아오나니.”

어느 날 마일린은 섬을 찾아온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딸을 낳았다.

잠결에 들은 레비아탄도 놀라 몸을 들썩였을 만큼, 섬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충격에 빠진 사건이었다.

……유니콘이 괜히 그녀에게 틱틱댄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마일린의 딸은 제 어머니의 재능을 온전히 이어받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과 다른 존재들의 매우 큰 기대를 받으며 애지중지 키워졌지만……

……불의의 사고로 그만, 어린 딸과 남편, 그 모두를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아무리 느긋하고 넉살 좋은 마일린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잃은 슬픔은 당해내지 못했다.

방에 틀어박혀 눈물이 핏방울이 되어 흐를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아무리 제자들이 위로하고,‘숲의 자녀들’이 달래어도 그녀는 크고 깊은 슬픔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매일같이 힘쓰던 마법 연구까지 뒷전으로 미루며 고민한 끝에, 그들은 결정했다.

마일린이 딸을 잃었으니, 그들 자신이 그녀의 딸이 되자고.

굳게 결심한 제자들은 방에 틀어박힌 스승에게 가서 맹세했다.

­­스승님, 우리는 모두 스승님 덕분에 새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즉, 스승님께서 우릴 낳으신 거나 진배없으니, 당신을 이제부터 스승이자 어머니로 모시겠습니다.

당신의 딸로서 부끄럼 없도록 살 것을 맹세하니, 우리를 당신의 딸로 삼으십시오.

그후로 마일린의 제자들은 모두 그녀의 딸을 자칭했다.

새 제자를 맞이할 때도 특별히 무언가 하는 건 없이, 그냥 마일린의 앞에 절을 하기만 할 뿐이었다.

어머니 마일린과 의자매들의 환영을 받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 뒤로 마일린은 새 남편을 들이는 일 없이, 자신의 ‘의붓딸’들과 함께 계속 섬에서 살아갔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그녀는 딸들을 한데 불러모았다.

­­내가 이 섬에 처음 온 뒤로, 그동안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을까요? 그간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그러니 그 답례를 하고자 합니다. 아직 힘이 있을 때, 어미로서 여러분을 지킬 장치를 남길 것입니다. 그 뒤에는, 다른 모든 생명처럼 대지에 안겨 안식을 얻을 겁니다.

물론 딸들은 울며 어머니를 만류했다.

뭘 하든, 어쨌든 죽겠다는 어머니를 말리지 않는 딸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마일린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처음 이 섬에 오게 된 것도 그녀의 고집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난 이미 여러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선물들을 받았답니다. 그러니 미련도, 후회도 없어요.

게다가 난 이미, 내 종족에게 허락된 삶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는걸요. 내가 알아서 가지 않으면,위에서 날 직접 끌고 갈지도 몰라요!

그녀는 물푸레나무로 부엉이를 조각한 후, 눈에 수정을 깎아서 달았다.

남은 나무로는 빛을 표현한 듯한 작은 조각상을 만들었다.

마일린이 두 조각에 대고 주문을 외우자, 나무 부엉이의 눈에 달린 수정이 은은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빛을 형상화한 조각상.

나는 저 조각상을 알고 있다.

이 섬에서 보기도 했다.

저건 바로 네이멜의 집에서 봤던…….

놀라는 와중에, 마일린이 입을 열었다.

­­이 부엉이 조각상에 내 힘과 의지를 불어넣었습니다. 후일,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 이 섬에 닥쳤을 때, 부엉이 조각 앞에서 이걸 흔들며 나를 부르세요. 설사 내 힘이 미력할지라도,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마일린은 딸들과 마지막 밤을 보낸 후, 그 다음날 영면에 들었다.

빛을 조각한 나무상을 자식들에게 남기고서…….

그 뒤로 몇 백 년이 또 지났지만, 딱히 별 일은 없었다.

도중에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바깥에 나가 있던 현자들이 죄다 숨어버렸지만, 섬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굳이 꼽자면, 마일린 대신 딸들을 다스릴 수장을 세웠다는 것?

그리고 그 수장이 잠시 바깥에 나가 엄청나게 크고 무서운 드래곤을 잡았던 것 정도일까?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 섬에 또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여태껏 찾아왔던 것 중 가장 크고, 또 가장 심각한 변화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