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6화 (46/475)

〈 46화 〉 46화 : ……라고, 숲이 말하였습니다 (3)

* * *

대체 어디서 그러한 지식을 얻을 것일까?

탑에 사는 ‘마일린의 딸’ 중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진 여자가, 갑자기 마법이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며 자매들에게 설파(??)하기 시작했다.

­­우리 영혼의 경계를 부수는 거야! 그럼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어! 자유로워지는 거야!

물론 여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혼을 죽이는 길. 마땅히 따라야 할 이치를 거스르며, 제 손으로 자신의 가치를 영락(?)시키는 타락이다.”

자매들은 여자의 주장을 기각하고, 앞으로의 연구도 금지시켰다.

그러나 여자는 멈추지 않았다.

대체 무엇에 현혹된 것인지, 누구의 도움을 받은 것인지, 여자는 끝끝내 그 위험한 방법으로 더 큰 힘을 손에 넣었다.

여자는 그 힘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다른 자매들을 붙잡아 강제로 자신처럼 만들었다.

거부하며 대적하는 자매는 제 손으로 죽이기까지 했다.

……종국엔 자신을 따르는 자매들과 함께, 끝까지 자신을 반대하던 수장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 이후로 섬은 완전히 닫히며,대륙 각지에서 재능 있는 자를 초대하는 관습도 없어졌다.

그 대신, 인간이건 엘프이건종족을 가리지 않고, 재능 있는 소녀들을, 마음에 드는 소년들을 모조리 납치했다.

납치된 소녀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마법을 배웠고, 결국,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남몰래 복수의 칼날을 갈던 소녀도, 그 의식을 치르고 나면 그 칼날을 주저없이 버려버렸다.

납치된 소년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탈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전에 굴레가 씌워졌으니까.

일반 사람들은 강력한 마법을 펼치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대적할 수단이 있는 자들일지라도, 꽁꽁 숨어 버린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여식(?)을 눈앞에서 잃은 부모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외치기 시작했다.”

­­마녀가 나타났다!

­­마녀가 내 딸을 데려갔다!

……그렇게 ‘현자’라 불렸던 그들은 이제, 사악한 마법을 부리는 여자, ‘마녀’가 되었다.

‘숲의 자녀들’역시, 제 손으로 영혼을 더럽히고 순수성을 잃어버린 그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남겨진 것은 있었다.”

그 검은 마녀가 한창 제 자매들을 죽이거나 타락시키고 있을 때, 한 여자가 가까스로 탑을 탈출했다.

여자는 특별한 후드를 깊게 눌러써 자신을 감춘 채, 숲을 향해 날아갔다.

다다른 곳은 작은 공터, 마일린이 남긴 부엉이 조각상 앞이었다.

­­아아, 어머니…… 우리를 용서해주세요. 언니로서 동생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고, 당신의 집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품속에서 예의 그 나무 조각상을 꺼내어 부엉이 조각 앞에 흔들었다.

­­……또 하나, 지금 제가 저지르는 이 일을 용서해주세요. 아무리 어머니라도 부엉이의 모습으론 당해내지 못하실 것이니,

나의 몸을 드리겠습니다.

부엉이 조각에 박힌 수정의 빛이 강해지기 시작하자, 여자는 노래를 불렀다.

마일린, 이리 돌아와 주오.

흑단처럼 검은 머리칼의 여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

꿈 속 물결을 거닐며 춤을 추던 나의 친구.

마일린, 다시 눈을 떠 주오.

노래를 마치자, 부엉이 조각 자체가 은은하게 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여자가 품속에서 칼을 꺼내어 자신의 손목을 찌르고, 그었다.

붉은 피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와 주변을 적시기 시작한 가운데, 여자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나의 어머니, 나의 자매, 나의 스승. 당신의 칠천 번째 딸, 프리야의 이름으로 청하옵니다. ……나의 몸을…… 그릇으로 삼으시어, 어그러진 이치를…… 바로잡으소서.

여자의 입술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엮이어 나오면서, 손목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가 부엉이 조각상으로 전부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피를 잃은 여자가 쓰러지자, 부엉이 조각에 피어 있던 빛이 여자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윽고, 조각상의 수정이 완전히 빛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쓰러져 있던 여자가 비실비실 일어섰다.

여자의 손목은 완전히 아물어져 있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손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아…… 이걸 바란 건 아닌데.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자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달라져 있었다.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프리야, 용서를 구해야 할 건 나란다.아직은네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때가 맞지 않아.

그녀의 주변에 정령들을 위시한 ‘숲의 자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일린이야, 마일린이야!

­­다시 돌아왔어! 정말로 다시 돌아왔어!

재잘대는 작은 정령과 요정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너희들에게도 미안하구나. 부디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렴.

…………가 곧 시작될 거야. 그때, 증표를 가진 자가 너희에게 올 거란다. 그에게 이것을 주고, 나에게 전하게 하렴.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손 안에 꾹 쥐고 다시 폈다.

손바닥 안에는 투박한 은반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정령들이 그 반지를 받은 것을 보고, 여자는 풀잎으로 쪽지를 만들어 무언가 적은 다음, 손에 꼭 쥐었다.

­­싫어. 마일린, 만나자마자 헤어지긴 싫어!

­­꼭 그래야겠어? 꼭 그렇게 전부 숨겨버려야 해?

자신을 향해 슬픈 목소리로 애원하는 ‘숲의 자녀들’을 향해, 그녀는 서글프게 웃었다.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나를 부탁해.

빛이 번쩍이고, 마일린이 쓰러졌다.

정령이 들고 있는 반지가 은은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정령들은 슬피 울며 반지를 들고 떠나갔다.

노움을 위시한 요정들이 쓰러진 마일린을 질질 끌며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니콘은, 의식을 잃은 그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다시 깨어난 마일린은 일어나 앉아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라? ……내가 왜 이런 데에 있지? 여긴 어디래?

후드를 벗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머리카락과 뾰족한 귀,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

……기억에 익히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쪽지를 쥐고 있다는 걸 깨닫고, 펼쳐 보았다.

쪽지의 내용은……

­­내 이름은 네이멜……?

네이멜.

모든 기억을 잃은‘이름 없는 마녀’.

……그녀의 진짜 이름은, 마일린이었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어째서 그녀가 의식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 있었던 건지, 어째서 정령과 요정들이 그녀에게 툴툴대면서도 가까이 지내는 건지.

그리고, 어째서 그녀의 집에 성광(?光) 조각이 있었는지도.

교단을 따르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런 조각을 깎았다는 게 놀라웠다.

근데 중간에 소리가 뭉개져 들리지 않는 말이 있었는데?

마일린은 무엇이 시작될 거라고 말했던 거지?

“그대가 듣지 못했다면, 그대에게 허락되지 않은 지식인 까닭이라.”

아, 그러셔.

어쨌든, 이 다음에 있을 일은 조금 예상이 되었다.

네이멜이 마일린인 걸 알았으니, 이제 정령들이 나에게 그 반지를 주면서 네이멜에게 전해달라고 하겠지.

그 다음은…… 뭘까?

기억을 되찾은 마일린과 함께 이 섬을 구하는 건가?

“아니, 아직 끝이 아니다.”

정령의 목소리가 울렸다.

또 보여줄 게 있는 듯했다.

“용사, 증표를 가진 자에게 청하노라. 이것은 마일린과 무관한, 우리의 청이라. 용사여, 우리의 사랑하는 자를 그대의 손으로 구해주기를 원하노라.”

목소리가 물결이 되어, 또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매부리코 마녀가 보였다.

탑에 사는 어떤 마녀보다도 이지(?)에 차 있던 마녀는 어느 날, 호숫가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마녀는 남자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고, 남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정성껏 돌보았다.

­­폴리, 그 사람은 안 돼. 얼른 돌려보내줘.

웬일로 다른 마녀들이 모두 그녀를 말렸다.

다들 제 맘에 드는 남자를 데리고 살면서, 맘대로 갈아치우기도 하면서 자신에게는 안 된다고 하다니.

만류하는 다른 마녀들에게, 매부리코 마녀는 웃기지 말라며 콧방귀만 뀌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자는 어느 왕국의 기사였다.

임무 수행 중에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홀로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다시 깨어난 남자는 당연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는 매부리코 마녀에게 감사를 표하며, 돌려보내 달라 정중히 요청했다.

물론, 매부리코 마녀는 단호히 거절하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나와 함께 여기서 살아요!

­­그건 안 됩니다. 우리 왕국은 지금 위험에 빠져 있어요. 나는 돌아가야 합니다!

며칠, 몇 주에 걸쳐 마녀는 남자에게 구애하고, 남자는 이를 거절했다.

끝내 남자는 마녀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다른 마녀들이 데리고 있던 남자 몇 명과 함께 섬을 탈출해버렸다.

매부리코 마녀는 오열했다.

자신을 떠난 남자에게 분노했다.

자신이 버림받은 것에 슬퍼했다.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탄식했다.

……그리고, 남자가 무사히 섬을 빠져나간 것에 기뻐했다.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뒤엉킨 감정들을 감당하기엔, 마녀의 이성은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

결국, 마녀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수장인 검은 마녀는, 남자를 데려온 매부리코 마녀에게 분노했지만, 그녀가 미쳐버린 모습을 보며 탄식했다.

­­아아, 가엾은 폴리. 격정 때문에 결국 이름에 먹혀버렸구나. 너에게 그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 있을까?

마녀 스스로 만든 이 비극은,‘숲의 자녀들’에게는아무 잔향도 남기지 않았다.

숲은 이미 마녀들에게 관심을 끊은 지 오래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매부리코 마녀가 바깥에서 갓난아기를 데려오기 전까진.

­­나의 아기, 나와 그이의 아기, 이 아기는 내 거야!

또 어디서 아이를 훔쳐왔구나, 질색하는 ‘숲의 자녀들’의 귀에 마녀의 죄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바람이 그들에게 피냄새를 가져와 고발했다.

마녀가 하나, 둘, 다섯, 아니, 그보다 더 많은 피를 흘렸음을.

물이 그들에게 재를 가져와 고발했다.

자신이 먹이던 사람들을, 마녀가 모두 불태워버렸음을.

그리고 마침내, 소리가 분개하며 고발했다.

마녀가 아기의 목소리를 영원히 빼앗았음을.

‘숲의 자녀들’은 드물게 마녀에게 분노했다.

이 섬에 사는 마녀들을 미워했다.

이미 증오를 품는 것도 귀찮아 할 만큼, 그들에게 무심해졌을 터인데.

“우리는 분개하고, 한탄했다.……우리에게 기쁨이 찾아왔기에.”

‘숲의 자녀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온 것은 매부리코 마녀가 저지른 악행이 아닌,결과였다.

비극을 품은 그 아기에게서, 오래 전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마일린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그 아기에겐,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고,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특별한 핏줄을 이어받은 것인지, 아기는 인간임에도 태어나면서부터 정령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다.

순수한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던 숲의 정령들은 곧 아기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마녀가 될 수 없는 마녀의 아이. 사랑도, 환영도, 축복도 받을 수 없는 가여운 아이. 그러니 우리가 품으리라. 우리가 어르고, 훈계하리라.

우리가 그의 길을 인도하며, 그의 평생에 함께하리라.”

정령은 아기의 고통 어린 눈물을 닦아주고, 추위에 떠는 몸을 품어주었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대신, 의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심지어 이따금 마녀가 내던져버린 밥을 챙긴 것도 정령이었다.

마녀의 아이라지만, 정작 아이를 키운 것은 매부리코 마녀가 아닌, 정령이었다.

흑단처럼 검은 머리카락과 흑요석처럼 빛나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는……

……위슨은 그렇게 자랐던 것이었다.

“……”

눈앞의 풍경은 다시 꽃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령들이 보여주려던 기억이란 건, 이걸로 끝인 듯했다.

정령들과 날개 달린 요정만이 있던 꽃밭에는, 어느새 다른 ‘숲의 자녀들’도 모여 있었다.

노움, 유니콘, 캐트시, 스프라이트, 심지어는 임프까지도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이 섬에 안식처는 없으며, 사람도 없나니. 이는 남겨진 사람을 숲이 품어 숨기었으며, 저들이 사람이길 포기한 까닭이라.

스스로가 어떠한 자인지 모른 채 고치 속에 잠들어 있던 번데기가 눈을 떴으니, 이제 때가 되었음을 아노라.

스스로의 약함에 망설여, 선택의 기로에 섰던 용사여. 사람이고자 하는 그대여,

무엇을 택할 것인가?”

숲이 내게 물었다.

“나 참……”

이게 뭐가 이끄는 거야?

그냥 등 떠미는 거잖아.

속으로 불평 한 바구니를 쏟아내는 내 옆에 서서, 메린이 짤막하게 물었다.

“정했냐?”

“……어.”

고르고 자시고, 이걸 본 나에겐 단 하나의 길만 남아 있었다.

“위슨을 구할 거야.”

숲의 기억을 보기 전과 같은 선택이었지만, 이번엔 망설임 같은 건 없다.

뒷책임 같은 거추장스러운 걸 생각할 틈도 없다.

심지어 사명마저도, 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어떻게? 음. 좋은 질문이야.”

그것도 그리 큰 고민거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일린이 있으니까?아니.

설령 마일린이 없더라도, 나 혼자 덤비다 위슨을 구하긴커녕 잡혀 죽는다고 해도 갔을 거다.

……설사 위슨이 잡혀가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탑으로 갈 것이다.

­­들려주세요.

그렇게 눈을 빛내는 아이를 그 꼴로 살게 한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이 섬을 광기로 물들이고, 사람을 타락시킨 마녀를 용서할 수 없다.

검은 머리칼에 붉은 눈을 한 마녀를, 모든 원흉을,

베르메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성검의 자루를 꽉 쥐며 선포했다.

“마녀들을, 전부 없애버리겠어……!”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