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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9화 (49/475)

〈 49화 〉 49화 : 전속전진!!

* * *

살아 있는 생명체를 베는 건 처음이 아니다.

칼날이 가죽과 살을 찢는 느낌, 그러다 단단한 뼈에 부딪치며 손에 진동이 오는 느낌.

이 대륙에 사는 사람은 다들 느껴봤을 거다.

뭐, 이번엔 뼈에 걸리는 느낌은 없다.

성검이라고 날이 바짝 서 있는 건지, 뼈까지 댕겅댕겅 잘라버려서…….

“아아아아아아!!”

어깨 아래가 가벼워진 마녀가 침을 튀기며 비명을 질렀다.

한 번 더 베자 조용해졌다.

넷.

인류종의 비명을 듣는 건 처음이다.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이 불편하고 그런 건 없다.

사람처럼 생긴 짐승이라 그런가?

뭐, 저 비명소리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넣고 어조를 좀 낮추면 오크이고, 높이면 고블린이다.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그 놈들도 팔 두 개에 다리 두 개, 머리 하나 달려 있으니, 원론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지?

물론 그다지 오래 들을 건 못 된다.

귀 아프다.

“죽어, 타 버려, 뭉개져버려어어!!”

마녀가 미친듯이 외치며 팔을 움직였다.

두 팔에 무언가 기운이 일렁이는 것과 동시에, 로나가 철퇴를 높이 들고 외치며 힘차게 뛰어올랐다.

“악한 계교(??)는 무너지리라!”

그녀가 착지하며 내려친 철퇴가 땅을 울리며, 사방에 그 진동이 퍼져나갔다.

팔을 휘두르던 마녀가 멈칫하고,경악과 두려움에 싸인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마녀의 몸에 진동이 전해지자마자, 두 팔을 감싸던 기운이 사라져버렸으니까.

로나는 그런 마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햇빛 실컷 쬐라는 듯이, 마녀를 묵직한 타격음에 태워 하늘로 날려보냈다.

“히이익!”

달려가는 경로에 다른 마녀 한 명이 우두커니 서 있다.

팔을 쭉 뻗고 있는 그 마녀는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마아아!!”

아니, 그럼 비키든가.

말은 저렇게 하면서 바닥에 불장판 깔고 있단 말이지.

길 막은 마녀는 죄다 죽은 걸 뻔히 봤으면서.

누가 안 막으면 죽인다고 하고 있나?

“……”

앞에 타오르고 있는 불의 벽을 가로로 베었다.

검신에서 나온 빛이 불꽃을 지워버리자, 공포로 가득 찬 마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주저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녀의 허리가 깔끔하게 잘려나가며, 하얀 재가 되어 흩어졌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일곱.

“무, 뭐야, 이 놈들! 마법이, 마법이 안 들어!!”

“이게 말이 돼?! 왜 안 통하는 거야?! 왜,왜 우리가 죽는 거야!!”

재가 된 마녀가 열 명이 되니, 슬슬 마녀들이 공격하길 주저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없앤 게 열이고, 로나가 날린 건 그 서너 배쯤 된다.

아직 멀었다.

모든 마녀를 없애기엔 한참 부족하다.

……하지만 위슨을 구하는 게 급선무다.

이 사람처럼 생긴 짐승들을 없애는 건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길에 서서 얼 타고 있는 마녀들에게 내 뜻을 전했다.

“길 쳐막지 말고 비켜!! 죽여버린다!!”

“흐이이이익!”

화났냐고? 아니?

물론 어제 반나절 동안 당했던 수모들을 생각하면 빡치긴 하지만, 줘패고 싶긴 하지만, 지금 그 마음으로 검을 휘두르는 건 아니다.

딱히 아무 감정도 없다.

그냥내 목숨을 노리는 몬스터를 없애고 있는 거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마녀가 무력화될 줄은 몰랐다.

감옥탑에서 나왔을 때를 다시 떠올렸다.

메린이 철문을 걷어차서 날려버리자마자, 로나가 제일 먼저 튀어나가더니 아까처럼 외치면서 철퇴로 땅을 내려쳤다.

마법이 봉쇄된 마녀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 우리는 흑단나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떤 마녀가 아까처럼 길을 막고 서서 우리에게 얼음을 쏘길래, 반사적으로 성검을 휘둘렀다.

널찍한 검신이 허공을 베며, 빛의 잔영(??)을 남겼다.

……그리고 날아오던 얼음이 그 잔영에 삼켜지듯이 사라졌다!

“오?”

마법을 무효화시킨 게 아니라 그냥 얼음을 없앤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렴 어때, 막았는데!

자신의 마법이 막힌 걸 보고, 그 마녀는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다른 데로 물러나지 않았다.

다른 마녀들도 표정만 일그러졌을 뿐, 여전히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아마 난이도가 좀 높은 까다로운 사냥감이라 생각했던 거겠지.

그러나 그 마녀가 ‘성검에 베여 사라진 첫 번째 마녀’가 되자, 그때부터 그들의 감정이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푸흐하하하하! 쫄았어, 쫄았다고! 부스러기 씨가 뭘 했는지는 몰라도, 지들 보호막이 통하지 않으니까 쫀 거 봐!”

엘프 아니라더니, 레볼트는 소리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마녀들은 모두 제 몸을 보호하고자 마법으로 보호막을 항시 두르고 다닌다.

웬만한 칼이나 화살, 심지어는 불을 질러도 끄떡없는 건데, 그게 지금 뚫려버려서 공황 상태에 빠진 거란다.

그다지 궁금하진 않은 정보였지만, 덕분에 왜 마녀들이 저렇게 벌벌 떠는지 이해가 됐다.

어릴 때, 일 시키는 아버지를 피해 방 문을 잠그고 숨은 적이 있었다.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놋지빌 사람답게, 우리 아버지는 나를 어르거나 호통을 치는 대신 방 문을 단박에 부숴 버렸다.

그때 그 기분.내가 뭔 짓을 해도 물리칠 수 없는 적을 만난 그 기분.

아니면…… 그래, 역시 메린과 본의 아니게 술래잡기 했을 때가 아닐까?

나무 위에 올라가든, 벽 뒤에 숨든, 심지어 기름을 뿌려도 끝까지 쫓아오던 그 모습.

그리고 결국 잡혔을 때 느꼈던 그 기분.

절망감, 체념,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물론 나와 마녀들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난 거의 매일같이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저 마녀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 없이 상대를 농락해왔을 거라는 것이다.

즉, 공포에 대한 내성이 다르다.

그러니 다른 수를 쓸 생각도 전혀 못하고 넋이 나가 있지.

나처럼 정기적으로 공포에 시달려 왔다면 충분히 단련되었을 텐데.

그 긴 세월을 계속 강자의 입장에서 되게 맘 편히 살아왔구나, 거 더럽게 부럽구만!

겁에 질린 마녀들이 다가오지 않은 덕분에, 순탄하게 ‘부엉이탑’의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메린이 문을 걷어찼다.

쿠우웅……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우와, 이게 안 부숴져?”

메린이 한 번 더 걷어찼지만, 여전히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아까 감옥 문보다 더 약해 보이는데……!

“마법이에요! 제가 부술게요!”

로나가 철퇴로 문을 부수려는데, 갑자기 메린의 어깨에 들쳐업혀 있던 레볼트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위! 위를 봐요!”

“……!”

저런.

탑 안에 있어서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은 마녀가 드디어 방법을 찾았나보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며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칫. 피하세요!”

로나의 외침에 제각각 문 앞에서 몸을 피했다.

이내,마녀가 손에서 화염을 내뿜으며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슥 훑고지나가는 게 보였다.

아니, 무슨 드래곤도 아니고!

“카엘 님! 먼저 가세요! 성검이라면 마법을 뚫을 수 있을 거에요!”

안타깝게도 로나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일반 문이면 몰라, 흑단나무에 달린 문은 성문처럼 크고 육중한 놈이다.

나 혼자 저거 열려고 낑낑대다가 마법 맞고 나가떨어질걸?

“검으로 자르실 수 없나요?!”

“그런 솜씨 없거든?!”

“그럼 벽 타고 올라가세요! 이게 더 쉬울 거에요!”

“뭐가 쉽다는 거야, 임마! 그게 더 어렵잖아!!”

로나가 경악한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왜 놀라는 건데.

그게 되는 사람이 이상한 거라고, 진짜 그게 더 어려운 거라고!

“젠장, 더 온다!”

빗자루를 탄 마녀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녀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아마 맨 처음에 손으로 브레스 쏘던 마녀가, 하늘을 날면 우리가 대응하지 못한다고 다 퍼뜨렸겠지.

날아오는 불덩어리와 얼음을 피하고, 날카롭게 깎인 바위날을 피했다.

땅에서 흙이 송곳처럼 솟아오르기도 했는데, 로나가 그 반동을 이용해 둘 정도 떨어뜨린 후에는 더 나오지 않았다.

“목이나 부러져라, 썩을 년들아!”

레볼트가 살벌하게 외치며 손으로 원통을 만들어 입에 대고 불었다.

입김이 칼날 같은 질풍이 되어, 몇몇 마녀들을 휩쓸어버렸다.

그러나 곧 다른 마녀들이 나타나, 그 공백을 도로 채워버렸다.

“제길, 수가 너무 많아!”

메린이 레볼트의 눈이 되어 간간이 대응하고 있긴 해도 역부족이다.

나나 로나가 구르며 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성검을 휘둘러 마법을 없앨 수는 있어도, 어쨌든 방어밖에 못하니까 근본적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확실한 대응법이 없으면, 조만간 당하게 될 텐데……!

메린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하늘을 향해 돌멩이를 집어던진 후, 나를 향해 외쳤다.

“카엘! 그 빛, 하늘로 못 쏴?!”

“뭔 소리야!”

쟤는 지금 피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마법이 마구 쏟아지는 그 소음을 뚫고, 메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 저번에 검에서 빛 쏴서 큰 놈 떨궜잖아!”

“내가 언제!”

“지난주에! 고향에서!”

엥?

내가 지난주에 고향에서, 검으로 빛을 쏴서 큰 걸 떨궜다고?

그때 내가 성검 쓴 건 무투회 때……

……아. 아아아!

기억났다!

맞아, 내가 검을 휘둘러서 아스모스의 팔이랑 날개를 자른 게 아니야.

어깨에 박혀서, 검에서 빛을 뿜어서 태워버렸지!

근데 그거 노리고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했던 건지 전혀 모르는데?!

그때 난 그냥……!

‘그냥, 뭐?’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바닥에서 부글거리는 시커먼 물결을 피해 구르는 중에, 머릿속에 그때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메린이 날 포환 던지듯 집어 던졌고, 나는 그대로 그 대악마, 아스모스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

그 다음 목청 터져라 외쳤었지.

떨어지라고.

……그래.

그때 난 그냥, 그 새끼가 떨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떨어졌지.

이 성검이 만약,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거라면……!

“크으윽!”

될지 말지는 모른다.

안 되면 그냥 바로 피하면 된다.

못 피하면?

몰라, 거기까지 생각하면 못 움직여!

칼자루를 꽉 쥐었다.

한여름 모기처럼 왱왱 날아다니는 이 마녀 새끼들!

“떨어져어어어어!!”

성검을 크게 휘둘렀다.

널찍한 검신이 내뿜는 빛이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내가 휘두른 궤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젠장, 이건 그냥 횃불 휘두르기…………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린 곡선 모양으로 빛이 날아갔다!

“워메, 이게 뭐시여?”

헉.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투리가 튀어나왔네요!

……근데 놋지빌은 사투리 안 쓰는데.

아무튼 나에게 마법을 쏘고 튄 마녀 셋 중 둘이 그 빛을 맞고 떨어졌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걸로 대응할 수 있어!

잔망스러운 얼음투사 마법을 피한 후, 조금 전처럼 빛을 날리려는 찰나,

“……!”

공중의 마녀들이 일제히, 두 손에 커다란 구체를 품고 있는 게 보였다.

직감했다.

저건 범위 공격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서 쏘면, 절대 피할 수 없어……!

“끝이다아아!!”

마녀의 독기 어린 목소리가 울리며,

마녀들이 공 던지듯 두 팔을 휘두르려는 그 때에,

나팔 소리가 울렸다.

이 섬의 가장 깊은 동굴 속에까지 남김없이 울릴 듯한, 낮고 우렁찬 나팔 소리였다.

막 마법을 떨구려던 마녀들이 화들짝 놀라며,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 탓에 그들이 품고 있던 커다란 구체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길고 긴 나팔 소리가 끝나자, 이번엔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길가를 뛰어다니며 재잘재잘 부르는 듯한, 그런 노랫소리가.

헤이, 호! 하이, 호!

밖으로, 밖으로. 모두모두 밖으로 나와라.

구석의 울보 겁쟁이도, 지붕 위 심술쟁이도,

이리이리 모여라, 어서어서 모여라.

아침이슬 반짝이는 들판에 모여라.

마일린이 깨어났다!

색색의 빛줄기가 날아와 마녀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마녀들이 날벌레 쫓듯이 손을 휘저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꺄하하하, 밀어라, 밀어!”

“빙글빙글 돌려버려, 출렁출렁 흔들어버려! 꺄하하하!”

빛줄기에 휩싸인 몇몇 마녀들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떤 마녀는 빗자루가 거꾸로 뒤집혀, 그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저 천진난만한 목소리, 저 무시무시한 행패……!

저거 요정들이구만?!

어쨌든 지금이다!

“로나!”

“……네!”

로나가 곧바로 철퇴를 들고 몸을 낮추었다.

힘껏 땅을 차며, 전투사제가 크게 외쳤다.

“내 주여! 길을 여소서!"

문 앞에 멈춰서 철퇴를 휘두를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 안일한 예상을 비웃듯, 스스로 공성추가 되어 문으로 돌진했다!

“……우와.”

박살 났다.

로나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넓은 문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박살이 났다.

아직 안전한 상황이 아닌 건 아는데,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제 몸을 아끼지 않는 저 모습.

저게 바로, 창조주를 위해 싸운다는 전투사제인가…….

그 다음에 들린 뭔가 부숴지는 소리와 찢어지는 듯한 새된 소리는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카엘!”

“앗.”

너무 멍청하게 서 있었다.

아직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은 마녀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마법을 쏘았다.

제길, 피하긴 늦었어.

이판사판이다!

성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거센 바람이 불며 마녀들이 쏜 마법들을 이리저리 흩뜨려 버렸다.

일부는 다른 마녀들에게 날아가, 빗자루에서 떨어뜨렸다.

“정말이지, 싸울 때 한 눈 팔면 안 되죠!”

말투는 강하지만, 어딘지 느긋한 구석이 남아 있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하늘에서 빗자루 위에 올라선 채로 내려왔다.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검푸른빛의 긴 옷자락, 그 위를 차분히 덮는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뾰족한 귀가 순서대로 눈에 들어왔다.

보름달처럼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 두 개가 나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시간 딱 맞췄죠?”

“마일린?”

붉은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인 그녀는, 정령이 보여준 마일린의 모습 그대로였다.

준비할 게 있다더니, 이거였나?

마일린이 몸을 틀어 마녀들을 바라보았다.

그저 쳐다보기만 했는데, 갑자기 마녀들이 당황한 얼굴로 수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일린…..?”

“저 모습, 초상화에 그려져 있던 거랑 똑같아!”

“진짜 어머니 마일린이야?! 하지만, 그분은 수장님이 부활시킬 거라고 하셨는데……!”

아, 아,

마일린이 목을 가다듬고,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외쳤다.

“이 섬에 초대되어, 마법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 자들아! 들어라! 나의 이름은 마일린! 그대들의 어미된 자요, 태고의 스승이니라!”

마법으로 목소리를 키운 듯했다.

아까 들렸던 나팔 소리처럼, 마일린의 외침이 온 섬에 울려 퍼졌다.

“나의 가르침, 나의 인도를 기억하는 자들은 모일지어다! 원치 않은 쇠락, 영혼의 부패에 고통하며 신음하는 나의 딸들아! 나의 외침에 응할지어다!

그대들의 어미, 마일린이 여기 왔노라!”

힘 있는 외침이 끝나고, 잔향마저도 모조리 허공에 흩어졌다.

그럼에도 오직 적막만이 감돌았다.

어…… 설마, 아무도 안 오는 건……가……?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탑 안으로 향하려던 순간,

“정말…… 정말 어머니이신가요……?”

미심쩍어 하는 목소리가 허공에 울리며, 마일린의 주변에 빛무리가 하나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마녀가 튀어나왔다.

마일린처럼 뾰족한 귀를 가진 잿빛머리 엘프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눈을 부릅뜨며 마일린을 바라보았고,

“우와아아! 진짜 어머니다아아아아!”

기쁨에 찬 함성을 지르며 뛰어 안겼다.

마치 그게 신호탄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일린을 둘러싸듯이 연이어 빛무리가 생기며 마녀들이 나타났다.

“우와아아앙!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엥? 너, 너 페이스니? 너 아직도 살아 있었어?!”

“어머니가 잠드실 때 고작 126살 밖에 안 됐었거든요?! 당연히 쌩쌩하게 살아있죠!”

……고작?

고작 126살……

고작이 어떨 때 쓰는 말이더라……?

역시 엘프다.

수명 개념이 차원이 달라.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진짜 마일린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서 바로 못 왔던 모양이다.

산증인이 확증하니까 바로 막 튀어나오네.

다른 마녀들은 눈앞에 마주한 광경, 마일린과 그녀를 따르는 마녀들이 와글와글 모인 모습을 보며 덜덜 떨었다.

“떨지 마라! 수장님의 명령만 기억해! 탑을 위협하는 반란 세력을 전부 해치운다!”

흑갈색머리 마녀, 오드르가 그 사이에 끼며 우렁차게 고함쳤다.

마일린과 그 주변에 모인 마녀들의 수에 위축됐던 마녀들이, 모두 오드르의 뒤로 날아갔다.

“……너는 백 년 전에 이 섬에 왔나 보구나.”

“정확하게는 83년 전입니다. ……당신이 진짜 마일린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저는 오드르. 질서의 성질을 일깨운 마녀. 지금의 ‘부엉이탑’과 이 섬의 질서를 해치는 자들은, 무엇이건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구나. 어쨌든 내 딸을 자칭하고 있으니, 어미로서 따끔하게 훈계해주마……!”

대치하는 두 세력 사이에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마일린은 꼿꼿이 앞을 향한 채,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카엘 씨, 이 아이들은 우리가 맡을 테니 안으로 들어가세요. 로나 씨가 이미 하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정식으로 허락할게요.

탑 안에서 누가 당신들을 공격하건, 전부 죽이셔도 돼요.”

“……진심이세요?”

“그럼요. 이미 몇 해치우셨잖아요?내 딸들은 지금, 여기에 다 모여 있어요. 침입자를 없애는 걸 누가 비난하겠어요?”

……그것은 공식 선포였다.

자신에게 와서, 자신의 편에 서지 않은 마녀는 전부, 자신의 딸이 아닌 대적해야 할 침입자라는 선포.

“……알겠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메린에게 손짓한 후, 흑단나무의 문으로 향했다.

안쪽 로비를 절반 부순 로나를 불러,함께 복도를 달리기 시작할 무렵, 바깥에서 폭음과 고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깥은 이제 전장이다.

일반 사람은 절대 낄 수 없는, 마녀들의 전장.

마일린이 맡아야 하는 싸움이다.

그러니 이 앞은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나는 성검 자루를 꽉 쥔 채 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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