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50화 : 인질 신병(??) 확보!!
* * *
탑 안에 있는 마녀들은 죄다 바깥으로 차출된 건지, 의외로 방해 한 번 받지 않고복도 맨 끝에 도착했다.
벽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거울이 무심하게 우리를 비추었다.
“거울 앞에 도착했어요.”
레볼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내 손을 이끌어주세요.”
메린이 레볼트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거울 모서리로 이끌었다.
레볼트는 가만히 거울의 모서리를 쓰다듬더니, 곧 거울의 표면에 손가락을 대고 무언가 슥슥 그었다.
거울의 표면이 일렁이며, 문이 여럿 달린 벽을 비추었다.
언제 누가 방해할지 모르니 지체없이 거울 안으로 뛰어들었다.
로나가 통과한 걸 마지막으로 거울이 다시 닫힌 후, 나는 레볼트에게 물었다.
“문이 여럿인데, 어디가 제구고(???)인지 표식 같은 거 있나요?”
“명패 달아놨죠.”
“명패?”
……명패 붙어 있는 문이 한둘이 아닌데?
대강 세어도 열 개는 족히 넘었다.
그래도 뭐, 명패가 있다면 금방 찾겠네.
……라고 생각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문에 달린 작은 팻말을 보자마자 감상이 바로 튀어나왔다.
“뭐야, 이거.”
뭔가 선으로 대충 찍찍 그어 놓은 것 같은데?
개중엔 창 두 개를 비스듬히 겹쳐 놓은 듯한 모양도 있다.
이게 대체 어느 나라 글자야?
혹시 알까 싶어 로나를 힐끗 보았지만, 그녀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기요, 이거 전혀 못 읽겠는데요?”
“네? 아니, 그걸 왜…… 아~ 맞다, 룬으로 적어 놨구나.”
“……”
아니, 대륙 여기저기서 제자 후보들 초청했다며?
그럼 공용어로 적어놔야지, 뭔 룬이야, 룬은!
우리 중에 달리 룬 읽을 줄 아는 사람도 없는데.
젠장, 방 하나씩 다 열어봐야 되나?
“……으으, 그건 아니야.”
흑단나무 크기가 좀 큰 게 아니잖아.분명 방 안도 꽤 넓을 거다.
어쩌면 위슨을 찾지 못하도록 마법으로 감췄을 수도 있고.
게다가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면, 그 사이에 베르메가 위슨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되도록 한 번에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글자를 보고 맞히는 게 최선이다.
“레볼트, 제구고를 룬으로 어떻게 써요?”
“어어~ 대충 이렇게요.”
레볼트가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공중에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허공에 어떤 그림들을 남겼다.
그 모양들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보면서 손으로 따라 그렸다.
좋아, 대충 외웠다.
……아마도.
일단 이 방은 확실히 아니다.
“가자!”
명패들을 보면서 복도를 달렸다.
이 명패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
느낌이 왔다.
아까 본 거랑 제일 비슷한 거 같아!
“여기다!”
문을 벌컥 열었다.
조명 하나 들어오지 않은, 제법 널찍한 방 안에는……
……베틀과 물레, 구식 버터제조기, 엄청나게 큰 솥,
망치, 톱,그리고 저건 뭐야……탈곡기?!
“……제구고(???)인가 보네요.”
“아잇. 진짜.”
제구고(???)가 아니라제구고(???)였다.
아니, 이런 걸로도 엿을 먹이네.
이름 비슷한 방을 같은 층에 두다니, 이 악랄한 놈들.
다시 복도를 달렸다.
몇 개의 문을 지나서……
앗.
왔다.느낌이 왔다고!
이번엔 틀림없어!
“여기다!”
문을 벌컥 열었다.
아까 잘못 열었던 방보다 훨씬 널찍한 방이다.
조명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대신 커다란 창으로 아침 햇살이 한껏 들어와 방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덕분에 방 안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벽 선반에 쭉 놓인 그릇들, 지팡이, 장식용 검과 같은 제사용 기구들, 그리고……
“……!”
……굳게 닫힌 짐승용 철제우리 안에, 위슨이 쓰러져 있었다.
진짜 정신 나갔나!
아무리 제물이래도 그렇지, 애를 우리에 가둬 놔?!
“위슨!”
방 안으로 곧장 뛰어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우리를 부수고 싶었다.
그러나 방 중앙에 다다랐을 때, 왠지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카엘, 멈춰!”
“커헑!”
……메린이 내 뒤쪽 목깃을 당긴 탓에, 그 자리에 우뚝 멈추다 못해 한두 걸음 뒤로 물렀다.
“……!”
지금 코 앞을 무언가, 지나간 거 같은데?
한쪽 구석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죽을 뻔했네.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한 번은 메린이 구해준 거 아니냐고?
기억해두십시오.
달리는 사람 뒷목깃을 갑자기 당겼다가는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까워라. 한 번에 보낼 수 있었는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닿지 않는 그늘 속에서, 두 마녀가 천천히 밝은 곳으로 걸어나왔다.
하나는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위슨의 어머니인 폴레,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검붉은 옷자락을 질질 끌고 있는 수장, 베르메였다.
“베르메……!”
메린에게 업혀 있던 레볼트가 으르렁거리며 마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어머, 레볼트, 굉장히 안쓰러운 모습이구나. 암흑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떠니?”
“굉장히 좋아. 당장이라도 네 년을 가루로 만들고 싶을 만큼.”
“후후, 다행이다. 네 맘에 들 줄 알았어.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니? 불청객들을 줄줄 달고?”
레볼트가 메린에게 손짓하자, 메린이 그녀를 바닥에 살며시 세웠다.
시력을 잃은 반항의 마녀는 자신의 원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시원하게 웃어 젖혔다.
“그럼 물론이지! 너무나도 고마워서 직접 선물을 주러 왔어!”
“어머, 선물? 어떤 거니?”
비웃듯이 대답하는 베르메를똑바로 보며, 레볼트가 눈을 가린 천을 풀어 던져버렸다.
“엿.”
“……뭐?”
“네 년에게 엿을 먹여주겠다고!”
독기 서린 고함을 지르며, 레볼트가 순식간에 베르메의 몸에 들러붙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베르메의 얼굴이 일순 굳으며 일그러졌다.
“어떻게 그 꼴로 마법을?! 이거 놔!”
“네 년이 입 털 때 이미 좌표 찍었다, 멍청아! 그럼 여러분, 이 년은 제가 데려갈게요~”
레볼트가 손을 흔들며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의 모습이 일제히 사라졌다.
……진짜 소리만 듣고 베르메를 붙잡을 줄이야.
한을 품은 여자는 무섭다더니……!
아무튼 이제 메린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게다가 드와트의 평에 의하면, 폴레는 마법보다는 물약 만드는 게 더 특기인 마녀이다.
사제인 로나도 있겠다, 마녀 하나쯤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지!
“히히, 히히히…… 날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개뼈다귀놈아.”
“개뼈다귀…… 어쨌든 순순히 항복하고 위슨을 풀어줘! 어머니라며 자식에게 뭐하는 짓이야!”
아무리 친어머니가 아닐지라도, 어머니라 자칭하고 있잖아.
제 자식을 기꺼이 죽이려 드는 어머니가 어디 있냐고!
폴레는 성검을 겨누며 소리치는 나를 향해,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실성한 사람이지만.
“뭐하냐고……? 히히, 히히히, 뭐하냐니. 준비야. 준비 작업! 히히히히히!”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폴레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떨군 채 끊임없이 웃으며, 양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양손에 약병을 쥐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검은 자위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는 눈.
……그야말로, 광인의 눈동자였다.
“방해하게 둘 순 없지……!”
마녀가 두 병을 동시에 던졌다.
조준 안 하고 대충 던진 건지, 두 약병은 대놓고 우리 양 옆으로 날아갔다.
무슨 생각이지?
쨍그랑, 옆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이이!!
“……!!”
시야가 흐려졌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소리가 멀다.
귓속이 시끄럽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삐이이이이이이이!!
귓속이 조용해지지 않는다.
머릿속이 마구 요동치는 기분이다.
뱃속이 뒤집힌 기분이다.
목 안이 뜨거웠다.
무언가 뱉은 것 같다.
어지…………러워…………!
“히히히히, 히히히히히……!!”
모든 소리가 멀어졌는데, 마녀의 웃음소리만은 똑똑히 들렸다.
마치 귓속에 들어와서 웃는 것 같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 속에서, 커다란 창이 옆으로 누워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에 있는 검은 뭉텅이는…… 뭐지?
“히히, 히히히히히히히!!”
삐이이이이이!
아, 좀 닥쳤으면 좋겠다.
내 귓속도, 저 빌어먹을 마녀도!
“하아, 하아……!”
내 숨소리까지 멀다.
드디어 귀가 미쳐버린 것인가?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떴다.
초점은 여전히 맞지 않는다.
그래도 촉각은 좀 돌아왔다.
뺨이 차갑고 딱딱한 것에 닿아 있다.
아아, 그래, 역시 그렇겠지.
창문이 어떻게 눕냐?
내가 누웠겠지.
……그럼 일어나야 된다. 더럽게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 미칠 것 같지만, 일어나야 한다!!
삐이이이
똑같은 모습과 자세를 취한 마녀가 여럿이었다가 하나로 다시 겹쳐졌다.
검을 바닥에 꼽아 지팡이 대신 붙잡았다.
천천히, 심호흡 하자.
속에서 올라오는 건 올라오는 대로 내버려!
지금 얼마나 추하건 정신부터 차려야 돼!
삐이이……
귓속이 점차 잠잠해지며, 초점이 차차 맞기 시작했다.
“히히, 히히히…… 제법인데? 이걸 당하고도 움직여? 그렇다면…… 큭?!”
여유롭게 가방을 뒤지던 마녀가, 갑자기 황급히 옆으로 몸을 피했다.
약간 뒤늦게 그 자리에 뛰어든 건, 검을 든 메린이었다.
그녀는 약간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정확하게 폴레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어라, 근데……
어째 저 녀석이 바닥을 딛을 때마다 뭔가 빨갛다?
자연히 녀석이 들고 있는 검에 눈길이 갔다.
와, 끝부분만 빨개!
꼭 뭔가 얕은 걸 푹 찌른 것 같아!
“돌겠네, 진짜.”
충격엔 충격으로 회복한다지만……
아니, 보통 자기 다리를 찌르냐고.
“……이이이익!”
이를 악무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쿵 바닥을 내려쳤다.
“잔꾀를 부리다니!”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로나가 튀어나가, 메린과 합을 맞추어 마녀를 몰기 시작했다.
아까와 달리, 그녀는 오른손만으로 철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응?
쟤 왼손이 납작한데?
어, 그럼 방금 바닥을 내려친 게 아니라……
“오, 주여!!”
아니, 미친, 여기에 정신 멀쩡한 사람이 나 밖에 없어?!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제일 회복이 느리다.
제기랄, 지금이라도 혀 깨물까?
“히히, 히히히!”
“크윽!”
폭음이 울리며 메린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제길!”
마녀는 공간이동으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약병을 던지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졌다 싶으면 바람 마법 같은 걸로 둘을 멀리 떨어뜨렸다.
하지만 움직임도, 마법의 수준도 바깥에 있던 마녀들보단 현저히 낮다!
젠장, 맨 처음 그 이상한 물약에 당하지만 않았어도……!
어쨌든 빨리 뭔가 손을 써야 돼.
아까 같이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물약이 또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독을 뿌릴지도 몰라.
물약이 다 떨어질 때를 기다리다간 그 전에 당할 거야!
어지럼증은 많이 가셨지만, 이건나까지 달려든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야.
뭔가 주의를 돌릴 방법 없나?!
“……그릇?”
발치에 그릇이 굴러왔다.
아무래도 메린이 제기(??)를 둔 선반에 부딪혔던 모양이다.
고개를 돌리고 초점을 맞추려 애썼다.
그릇…… 작은 술잔……
……좋아. 이거야.
선반 근처 바닥에서 그릇 파편을 주워 왼손바닥에 올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큭……!”
눈앞이 찌릿하고, 맑아졌다.
귓속은 여전히 좀 시끄럽지만 상관없다.
시야가 돌아왔으면 됐어!
왼손바닥에 박힌 파편을 뽑아 치워버린 후, 작은 술잔을 들고마녀를 주시했다.
미친 마녀는 속도가 약간 떨어진 메린과, 움직임이 커진 로나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물약을 쓰려고 할 거다.
허리춤의 가방이든 품 속이든 손을 집어넣으려 할 거다!
그래, 지금처럼!
“에라이!”
마녀를 향해 술잔을 던졌다.
갑자기 눈앞을 뭐가 홱 지나가서 놀랐겠지.
마녀의 손에서 약병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기적처럼 자유를 얻은 유리병이, 마녀의 발치에 떨어지며 환성을 질렀다.
퍼어엉!
“꺄아아아악!”
마녀의 몸이 폭발에 휩싸여 날아갔다. 잔뜩 열이 오른 사제님이 그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분노의 철퇴가 마녀의 손을 내리쳤다.
“아아아아아아아!!”
귀를 울리는 째진 비명을 지른 후, 마녀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로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 후, 메린에게 달려갔다.
……그 전에 잊지 않고 폴레의 나머지 손도 때려버린 건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
“아으으……”
전투가 한차례 끝나서 긴장이 풀렸나, 이제야 왼손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로나는 메린의 다리를 치유한 후, 곧장 나에게 달려왔다.
“카엘 님! 괜찮으세요?”
“그거 내가 할 말 같은데. 너 그 손…… 아으, 진짜…… 얌마, 아무리 네가 절단 빼고 다른 부상은 다 고칠 수 있어도 그렇지!”
“헤헤…… 그게, 음, 움직여야 하니까…… 헤헤.”
로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린 채 내 왼손 상처를 고쳤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왼손을 치유한 후, 그녀는원래대로 돌아온 손을 내게 흔들며 활짝 웃었다.
“짜자~안, 도로 멀쩡해졌습니다!”
“아잇.”
꿀밤을 먹여주었다.
“히잉…….”
“너 몸 함부로 막 굴리고 그러지 마, 알았어?!”
“……카엘 님도 했으면서.”
로나가 시선을 내리깐 채, 뾰로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울컥, 속에서 뭔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로나는 나중에 혼내고, 일단은 위슨을 꺼내야지.
“너 끝나고 보자.”
“예에~? 아니, 왜요~!”
“시끄러, 일단 보류야!”
얼굴 계속 봤다간 한바탕 할 것 같아, 나는 홱 몸을 틀어 위슨이 갇혀 있는 우리로 달려갔다.
마침 메린이 우리 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 열려?”
“어.……야, 뒤로 좀 가 봐.”
메린이 검을 들고 자세를 잡더니, 대각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설마 이번에도 잘라버리는 건가?
티잉.
……무언가 마법을 걸어놨는지, 이번엔 검이 튕겨나갔다.
메린은 혀를 차며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안 되네.”
“안 되는 게 정상이야. 근데 이걸 어쩐다?”
“저 여자한테 열쇠 없나?”
메린은 바닥에 늘어져 있는 폴레를 가리켰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없을걸.”
위슨은 중요한 제물이다.
그걸 가둔 우리 열쇠를 정신 나간 사람에게 맡길 리가 없지.
바보도 아니고.
돌겠네.
이걸 통째로 들고 갈 수도 없고.
성검을 쓰기엔 내가 자신이 없고.
로나가 부수기엔 위슨이 위험하고…….
혹시나 메린이 성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바닥에 꽂고 시험해봤는데, 메린은 검을 도로 뽑지 못했다.
진짜 나만 쓸 수 있는 거였던 것이다!
……나 참.
그때, 로나가 손을 마주치며 제안했다.
“제가 메린 님 검을 축복할까요?”
“축복? ……그래, 그게 있었지!”
돌멩이로 마법 보호막을 깨뜨릴 수 있게 했던 그 축복!
그래, 로나가 메린의 검에 축복을 불어넣으면……!
“으이이이익!”
……나와 로나가 고민하는 사이, 메린이 창살을 쫙 벌려버렸다.
그리곤 기운을 다 썼다는 듯이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
아니, 마법 걸려 있는 거 아니었어?
파괴만 보호하고, 변형은 보호 안 하는 거야?
아니, 그 전에 이 우리, 쇠로 되어 있는 거 아니었어?
왜 쇠창살이 맨손에 벌어지는 건데?
너무 말랑한 거 아냐? 불량품이야?
“휴~ 골렘보단 물렁한데, 그래도 힘들긴 하다.”
“……어, 그래. 수고했어…….”
멍하니,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괴력 쓰느라 기운 빠진 메린 대신, 내가 우리 안에 들어가 위슨을 안고 도로 나왔다.
숨은 쉬고 있는데, 어째 안색이 창백한 게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마법에 걸렸나?”
위슨의 상태를 살피던 로나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종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요. 이건 독인 것 같아요.”
“독?!”
“정확하게는 독이 아니라…… 카엘 님, ‘마취’라고 아세요?”
마취?
못 들어봤는데.
로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일시적으로 몸의 감각을 잃게 하거나, 어떨 땐 의식을 잃게 만드는 거에요. 잠깐 기절한 것도, 생명이 위험해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도 아니에요. 잠든 것도 아니고요.”
“그럼 어떡해?”
“치유 사제에게 기도를 받거나, 각성제를 먹이면 되는데…… 으으, 둘 다 없네요! 일단은 안전한 곳…… 감옥에라도 뉘여 놓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지금 밖에 나가면 휘말려 죽을걸?”
바깥은 지금 한창 마법 전쟁 중이다.
신나게 뭐가 펑펑 터지고 깨지고 난리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지금 거울을 움직일 수 있는 우리편 마녀가 하나도 없는 이상, 내려가려면 계단을 찾든가 해야 한다.
설령 계단이 있다고 해도, 아니, 여기가 몇 층일 줄 알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베르메를 쳐야 해. 레볼트가 아무리 독을 품었어도, 눈이 안 보이니 베르메를 당해내지 못할 거야. 어쩌면 이미 당했을 수도 있고. 그러니 위험하긴 해도 이대로 위슨을 데리고 가자.”
“그 마녀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메린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하지. 하지만,”
마녀와 마녀가 벌이는 싸움이다. 분명 멀리서도 티가 다 날 거다.
“바깥 가지로 나가는 문이 어딘가 있을 거야. 그리로 슬쩍 나가보자고. 아직 싸우고 있다면, 분명 마법을 쓰는 게 보이겠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가 메린의 검에 축복을 불어넣는 대신, 내가 위슨을 업고 가기로 했다.
나무 안은 바깥처럼 탁 트이지 않아, 검신이 넓은 성검을 마구 휘두르긴 어렵다.
차라리 메린의 전투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게 더 낫겠지.
그렇게 결정하고 방을 나서려는 찰나, 뒤에서 그 실성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히히, 히히히히! 멍청이들!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새끼들!”
젠장, 미친 마녀가 깨어났네.
안 그래도 속이 끓는데 잘 됐다.
욕이나 한 방 쏴 주고 가야지.
“이름값 그만하고 닥치고 있지?! 지 자식이라면서 이 꼴을 만들어?! 지금 댁 상대하기엔 너무 바쁘니까 얌전히 처박혀 있어!”
“히히히히! ……왜, 걔 깨우려고? 푸히히히! 절대 못해, 절대로! 위슨은 못 깨어나! 네놈들은 그 애를 깨우지 못해!
내 해독제가 아니면 절대 못 깨어난다고!평생!!”
“……뭐라고?!”
……무시하고 가기엔 다 틀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