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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52화 (52/475)

〈 52화 〉 52화 : ……독을 품은 나비가 우화한다

* * *

바깥은 여전히 시커먼 구름에 휩싸여 있다.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 보였던 푸른빛 하늘도, 이 방을 환히 밝히던 아침해도 완전히 삼켜진 상태다.

마치 그에 맞춘 듯한 상황이다.

무력화시킨 줄 알았던 마녀는 다시 공격 수단을 갖췄고, 구하려 했던 소년은 마음이 무너졌다.

이 탑 어딘가에선 눈이 멀어버린 마녀가 ‘최초의 마녀’와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완전히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랑하길 맹세한 자여. 비로소 스스로의 유래를 깨달은 자여. ……진실을 마주한 지금, 그대에게 다시 묻노라.”

더더욱, 내 앞에 펼쳐진 빛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소리 없이 목놓아 울던 위슨의 등은 더 이상 떨지 않았다.

축축히 젖은 바닥에 붙어 있던 이마는 땅에서 떨어져 있다.

그러나 시선만은 아직,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대의 영혼은 무엇을 외치는가?”

“……”

“스스로의 결함을 부끄럽게 여기어, 제 영혼의 외침을 외면했던 어리석은 자여. 희망이 없음에도 꿈을 꾸며 인고(??)한 자여.

숲이 묻노라. 그대의 영혼은 무엇을 외치는가?”

마음까지 울리는 듯한 강한 목소리로 정령이 물었다.

위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쪽에 주저앉아 있는 마녀를 지나, 하늘을 올려다보듯 위를 향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조용히 검을 뽑았다.

검 주제에 분위기를 읽는 녀석이니, 분명 내게 위슨이 보는 풍경을 보여주겠지.

성검의 널찍한 검신이 완전히 드러나면서, 방 안의 광경이 확 달라졌다.

“……!”

꽃밭에서 보았던 그 정령들이 소년을 둘러싸듯이 서 있었다.

거기선 보지 못했던, 푸른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새가 그의 앞에 서서, 두 날개깃으로 그의 뺨을 감싸고 있다.

위슨을 내려다보는 푸른빛 새의 눈은 자애로움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 한가운데에 위슨이 홀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암울한 풍경이었는데.

사실은 완전히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어딘지 신성한 느낌마저 풍기고 있다.

툭툭.

아잇. 지금 중요한 순간인데!

돌아보니 메린이 내 팔을 두드리고 있었다.

“……야, 갑자기 왜 너까지 멍 때리냐? 뭐 있어?”

“……”

……그러고보니 로나도 무언가 보이는 건지 위슨과 똑같은 방향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럼 지금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 이 녀석뿐이군.

음……나도 뭐, 지금 성검이 보여줘서 보이는 거니까…….

성검을 바닥에 꽂았다.

“잡아봐.”

“왜?”

“아, 얼른.”

내가 재촉하자,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 머뭇거리며 성검의 자루를 잡았다.

그 손을 포개듯이 두 손으로 자루를 쥐고, 녀석에게 앞을 보라고 고갯짓했다.

물음표 다섯 개쯤 띄우며 앞을 향한 녀석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보이냐?”

“……응.”

……이야, 이게 진짜 되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떠올랐다.

“……우리를 대표하여,내가 말하노라.”

다른 정령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푸른빛 새만 홀로 남아 말을 이었다.

……어딘지 들은 적이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대의 심장 고동을 들은 자요, 누구보다도 먼저 그대의 울음을 들은 자이며, 그대가 외면한 영혼의 울림을 듣고 있던 자라.

사랑하는 자여, 지금이야말로 그대의 영혼에 귀를 기울일 때라.

듣고, 깨달아, 외치어라!”

약간 녹색빛이 감도는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며, 푸른빛 새가 하늘 높이 외쳤다.

“나는 울림을 전하는 자, 소리의 정령, 에코!숲의 사랑을 받는 자, 위슨, 나의 계약자여!

입을 열어 외치어라!

나의 본성, 나의 힘으로써 그대의 영혼의 울림을 세상에 퍼뜨리리라!”

새의 형체가 흐트러지며 잔잔한 별빛들이 모인 빛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위슨의 목 안으로 빨려들 듯 흘러들어갔다.

“아, 아아, 안 돼!!”

폴레가 기겁한 얼굴로 위슨에게 팔을 뻗었다.

마치 그 손을 뿌려치듯이, 바람이 불며 마녀의 몸을 무참히 날려버렸다.

도로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은 마녀는,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벌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라졌다.”

메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여기에 남아 있는 정령은 하나도 없었다.

웅웅 울리는 듯한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정령은 모두 떠나갔다.

메린이 칼자루에서 손을 떼었다.

마음 한구석, 희미하게 떠오르는 아쉬움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는 다시 성검을 들었다.

정령이 떠난 것에 기세가 다시 살아났는지, 마녀가 다시 비실비실 일어나며 소리쳤다.

“……위, 위슨, 너, 네가 어떻게 나한테 감히……! 어미를 밀치다니, 이 배은망덕한 것!! 정령 놈들이 오냐오냐 해준다고 기어오르는 거냐!!”

“……”

천천히, 위슨이 제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무언가 풀어내는 듯한 소리가 나며, 위슨의 목깃이 약간 옆으로 늘어졌다.

숨을 깊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입을 열어 외치어라!

푸른빛 새는 그 말을 남긴 후, 위슨의 목 안으로 들어갔었다.

……설마, 목소리가……?!

“시끄러워!!”

아직 어린 티가 분명하게 남아 있는 소년의 목소리가 방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당신을 믿었는데! 말 못하는 것도, 의식을 치르지 못하는 것도 내 잘못이라 여기고 하루에 몇 번이나 당신에게 사과했는데!

그래서 당신이 때리는 것도, 욕하는 것도, 매일 지하에 처박히는 것도 참았는데!

내가 마녀만 되면, 전부 다 좋아질 거라고, 다시 다정한 어머니로 돌아올 거라 믿었는데!!

근데…… 근데뭐? 날 납치한 거라고? 내 목을,나를 이 꼴로 만들었다고?!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노도와 같은 분노가 마녀를 향해 쏟아졌다.

그간 참아왔던, 쌓아왔던 모든 감정들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듯했다.

폴레는 두 귀를 막았다.

그러나 완전히 소리를 거부하기엔, 한쪽 손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대신 소리를 덮어버리겠다는 듯이, 마녀는 비명 섞인 고함을 질렀다.

“아아아아! 닥쳐, 닥쳐! 그 목소리로 말하지 마! 그얼굴로 말하지 마아아!!”

“입 다무는 건 댁이야!! 절대! 절대 용서 못해!!”

“닥치라고 했잖아아아!!”

폴레가 고함치며 달려들었다.

피로 만든 손에 약병을 쥐고, 두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로.

“실프!”

위슨이 제자리에 선 채 팔을 휘둘렀다.

아주 잠깐, 녹색 말의 형체가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바람이 불며, 방의 양 벽과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이 떠올랐다.

“내가 겪었던 고통들,”

위슨이 팔 하나를 위로 곧게 뻗었다.

보이지 않는 채찍에 다리가 얽히기라도 한 듯, 마녀의 한쪽 다리가 들려 올라갔다.

중심을 잃은 마녀의 몸은 바닥에 닿는 대신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날던 파편들이 공중에 우뚝 멈춰 섰다.

마녀를 향해 일제히 방향을 튼 채, 미동도 없이 가만히 기다렸다.

……마치명령을 기다리는 사수처럼.

“전부……!받은 만큼 돌려주겠어!!”

하늘을 향해 뻗은 팔이 떨어졌다.

사수들이 즉각 명령을 수행했다.

날아오는 파편을 비추는 마녀의 두 눈에 공포가 차올랐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다.

순무를 심으면 순무가 나고, 사과를 심으면 사과가 나듯이, 어떤 행동에 대한 값을 언젠가 반드시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온 몸에 파편이 박히고,

입 안에 강제로 물약이 퍼부어지며,

바닥과 벽에 마구 패대기쳐지고 있는 저 마녀는, 대체 무엇을 얼마나 심어왔던 걸까?

“끄어허억……우어헉……”

만신창이가 된 마녀가 신음을 뱉었다.

아까는 눈만 벌겋게 물들었었는데, 이젠 눈동자 빼고는 전부 다 붉다.

붉고, 축축하고, 우둘투둘하다.

“아직, 소리가 나온다면……!”

위슨이 제자리에 서서 손을 뻗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마녀가 움직임을 멈추고, 혀를 바깥에 쭉 내민 채 파르르 떨며 자신의 목을 잡았다.

“컥, 끄윽……!”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잡히기라도 한 모습이었다.

몸을 들썩이며그 구속에서 벗어나고자발버둥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위슨의 표정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오직 그의 등뿐이다.

하지만 감정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약간 빠른 호흡을 쉬는 그 등에 느껴지는 건,

적의. 복수심.그리고……

“더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주겠어!!”

……살의!

붉은빛 도마뱀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글거리며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 듯싶더니, 곧 마녀의 비명 소리에 덮여버렸다.

“캬아아아아!! 아아, 아아아아악!!”

마녀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목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받은 대로 돌려주겠다더니, 목을 태워버릴 심산인가!

위슨 저 녀석, 정말로 죽일 생각이야!

물론 죽어도 싼 짓을 저지른 마녀다.

이건 저 애의 정당한 복수이다.

알고 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멈춰, 위슨!!”

“……!”

……몸이 멋대로 움직여 버렸다.

어느새 난 그를 붙잡고 있었다.

마녀를 향해 뻗은 팔을 치워버리고 있었다.

“쳐돌았냐, 망할 새끼야! 네가 뭔데 껴들고 지랄이야! 제3자는 빠져! 구석에 짜져 있으라고!

놔! 이거 얼른 놓고 저리 안 꺼져?!”

허……?

위슨이, 그 차분하고 착한 위슨이 욕을……

나한테 욕을 했…….

헉.

얌마, 정신 차려, 카엘 에스트렐!

지금 그런 거에 충격 먹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절대 안 놓는다, 이 멍청아!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라 불렀던 사람을 직접 죽이는 걸 두고 보라고?!”

“어머니 아니야! 날 이 꼴로 만든 미치광이 살인자야!”

“알아! 불에 태워도 시원찮을 미친년이야! 하지만 안 돼, 위슨.네가 죽이면 안 돼! 평생 후회하고 싶어?!”

“지랄 마! 내가 왜 후회를……!”

“넌 후회할 애야!!”

목청껏 외치며 단언했다.

“후회 안 할 녀석이었으면 벌써 옛적에 저 여자를 죽였을 거야!”

“그건, 마을 규칙으로, 금해져 있으니까!”

“웃기지 마! 후회 안 할 녀석은 그딴 거 신경 안 써! 아니면 네 특기인 물약으로 반병신을 만들었겠지!독버섯과 독초를 다루는 애가 그걸 못할까?! 게다가 저 미친 마녀는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데?!

너 자신을 속이지 마, 위슨!

넌 못한 게 아니야,안 한 거지! 더럽게 빡치고 힘들어 미칠 것 같지만! 넌 어머니를 미워하지는 못했어! 아니야?!”

정령이라는 든든한 편이 있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지금 한 것처럼 농락할 수 있었으면서.

그 나이에 다른 마녀들과 동등할 정도로 물약 제조 실력이 있으면서.

그런데도 그는 저 미친 마녀와 함께 살았다.

마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꿋꿋이 견디며 버텼다.

섬을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베르메의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말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우리에게 ‘어머니를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며 편을 들었다.

……그런 애가, 저 미친 마녀가 사실 어머니가 아닌 원수라는 걸 알았다고 해도, 제 손으로 죽이고서 후회하지 않을 리가 없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겠지.

하지만 분명 그 마음속에, 평생을 욱신거리는 흉터로 자리잡을 것이다.

어쩌면 그 흉터를 감추려고, 마음을 죽이고, 자신이 가진 선성(??)을 부정하며 살지도 모른다.

그 꼴이 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순 없다!

이 녀석을 만난 건 이제 이틀이다.

되게 짧은 시간이지.

하지만, 이 녀석이 더 망가지지 않길 바라게 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럼 어쩌라고?”

체격차를 이길 수 없는 걸 알고 포기했는지, 위슨은 더 버둥거리지 않았다.

“속이, 속이 너무 아파! 목이 다시 아파온다고!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저 여자를 죽이기 전까진 사라지지 않을 거야!

……아니면 뭐, 용서하라고? 복수해봤자 나만 허무해진다, 용서하는 게 진짜 이기는 거다, 뭐 이딴 개소리를 따르라고?!”

이 녀석, 섬에만 쭉 있었으면서 어디서 들은 건 있구만.

하지만 틀렸다, 임마.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봐. 네가 실컷 괴롭힌 저 여자를 봐.”

위슨이 고개를 들고, 마녀를 바라보았다.

마녀는 목이 잡힌 구속에서 풀려난 후, 자신의 목을 부여잡으며 괴로운 듯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입을 쩍 벌리고, 눈물과 침을 질질 흘리면서, 쉬익쉬익 바람 빠진 공 같은 소리를 내며.

붙잡고 있는 위슨의 팔이 움찔거렸다.

“……아……죽, 여야 하는데…….”

멍하니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쉬는 숨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반응으로 충분했다.

“똑바로 보고 있어. 메린, 얘 좀 잡아줘.”

“……알았어.”

성검을 들고, 바닥을 구르는 마녀에게 다가갔다.

내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걸 알아차린 마녀가 벌벌 떨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벗어나려고 바닥을 기었다.

결국은 벽에 다다를 뿐인데.

공포에 질린 마녀의 눈앞에 서서, 성검을 쳐들었다.

“카엘 님.”

어느새 로나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뭐, 내 뒤를 바로 따라왔겠지.

로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잿빛 눈동자가 묻고 있었다.

정말로 할 거냐.

그럴 각오가 된 거냐.

위슨의 어머니를, 그의 보는 앞에서 죽일 수 있겠느냐.

“……이미 난 선언했어. 마녀들을, 전부 없애겠다고.”

그러니 이건 그 연장선일 뿐이다.

한 소년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고, 우리 셋을 죽이려 든 마녀를 처단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위슨! 똑똑히 보고 기억해!! 이 마녀를 죽인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야!”

주저앉은 마녀의 앞에 서서,체념 섞인 마녀의 눈을 마주하며그 가슴에 성검을 깊이 찔러넣었다.

마녀의 얼굴이 경직되면서 눈에 생기가 사라졌다.

성검이 닿은 가슴부터 새하얗게 타오르더니,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

……역시 나는 물러 터졌다.

잘난 듯이 말해 놓고, 좀처럼 다시 뒤를 돌 수가 없다.

“카엘 님.”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작은 손길이 느껴졌다.

잿빛 눈동자가 단호한 빛을 띄며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다 안 끝났어요.”

“…………알아.”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뒤를 돌았다.

“……”

소년은 또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깨를 떨며, 소리를 눌러 참으며 훌쩍이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눈물이 멋대로…….”

“그래, 그렇겠지.”

“죽어도 되는 놈이었어. 나, 내 손으로 진짜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근데, 근데 왜…… 어째서 이렇게……!

이렇게, 속이 아프냔 말야…….”

“……”

그 말에 누가 대답해줄 수 있을까?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게 복잡하다, 그런 말을 기대하고 묻는 건 아닐 것이다.

……때로는 따스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보다, 침묵을 지키며 곁에 있는 게 더 마음에 닿는다.

내가 직접 경험한 거니까 확실하다.

“후후후, 내가 알려줄까? 그건 네가 아직 미숙해서 그런 거란다!!”

……그리고 저딴 헛소리를 싸지르는 놈은 확실하게 치워버려야 한다!

커다란 창문이 파르르 떨리다가 파편을 마구 튀기면서 깨져버렸다.

창 밖을 휘감고 있던 시커먼 구름이 일제히 사라지면서, 빗자루에 올라서 있는 마녀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과 검붉은 옷자락을 바람에 나부끼며, 베르메가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앞에는 한 사람이 축 늘어진 채 공중에 둥실 떠 있었다.

보라색의 단발머리가 특징적인 그 사람은……

“레볼트!!”

“후후, 참 재미있는 자매야. 눈도 안 보이는데, 오로지 날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와 이 정도까지 겨루다니. ……정말이지, 귀찮은 성질을 깨워버렸어……!”

여유로운 척 웃고 있으면서도, 베르메는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큰 상처가 나 있다.

옷 색깔 때문에 잘 안 보여서 그렇지, 생각보다 레볼트가 큰 타격을 입힌 듯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겼으니 이제 끝이지. 그리고 패자는 이렇게, 작별하게 되고.”

“안 돼!!”

버렸다.

쓰레기를 던져버리듯이, 베르메가 레볼트를 공중에서 던져버렸다.

“후후, 후후후후!! 그래, 그 얼굴이야! 제 무력함에 좌절하는 그 얼굴! 너에게 어울리는 건 바로 그 얼굴이다, 카엘 에스트렐!”

……알고 있다.

베르메에게 붙잡힌 시점에선 어떻게 하든 구할 수 없었다.

베르메에게 덤빈 시점에서 이미 글렀다고 볼 수도 있지.

그녀 자신도 말했잖아.

베르메를 이길 수 있는 마녀는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열 받지 않는 건 아니야!!

“베르메……!!”

“후후후후! 왜, 해보려고? 그럼 여긴 조금 좁지? 그래, 마침 준비도 거진 되었겠다, 너를 이 축제에 초대하도록 할게!

카엘…… 아니,용사!!”

베르메가 두 팔을 벌리며 외쳤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아침 햇살마저 닿지 않는 진한 안개가 자욱한 곳이었다.

가장 안쪽에는 괴기하게 비틀린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여름에 접어들어가는 이 시기에,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하다.

나에게 영감(?) 같은 건 하나도 없지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여긴, 저주로 가득 찬 곳이다……!

이거 봐, 이거.

바닥에 깔린 이거 죄다 비석이잖아, 비석!

어이구, 내 바로 뒤에도 있네.

비석에는 또 룬으로 새긴 건지, 뭐라고 적혀 있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아무튼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는 분명하다.

묘지이다. 그것도 마녀들의.

……불길하고 음습하고 스산한 것도 납득이 된다.

“후후, 후후후후후!”

이런 곳에 데려와 놓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베르메는 비틀린 나무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응?”

가만,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돌겠네,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여.

베르메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치자, 안개가 약간 걷히며 시야가 좀더 또렷해졌다.

아마 우리가 잘 보도록 하려는 뒤틀린 배려이겠지.

어쨌든 그 고약한 심보 덕분에 나무 앞에 뭐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이 하나 누워 있는 시커먼 색깔의 구조물.

그리고 그 구조물에 기댄 채 앉아 있는 건……

“드와트?!”

불합리한 이유를 들먹이며 우리를 고발했던, 그 드와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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