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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55화 (55/475)

〈 55화 〉 55화 : 마녀가 낚아 올린 것

* * *

검은 피로 물든 마녀의 입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다.

두근, 두근.

손바닥에 올려진 붉은 살덩어리가 살려달라는 듯이 고동치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도 마녀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이 바라본 후,

주먹을 쥐었다.

“……!”

마녀의 손이 붉어지는 일은 없었다.

심장에서 터져 나온 피는 주변에 몰려 있던 안개를 붉게 물들이더니, 그 핏빛 안개째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검은 마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자아, 모여라, 밤의 자녀들아! 오늘밤은 축제의 밤, 붉게 달아오르는 피의 축제날이니!”

베르메는 소리 높이 웃으며 짜부라뜨린 심장을 하늘을 향해 던졌다.

묘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폭풍구름에서 작은 구름줄기 여럿이 뻗어 나와, 손으로 붙잡은 것처럼 심장을 휘감았다.

그리고 높이높이, 정말 하늘 끝까지 올릴 기세로 위로 올려 보냈다.

그 기괴한 광경 속에서, 마녀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 웃음을 터뜨렸다.

“붉은 포도주를 가져와라! 달콤하고 비릿한 내음에 취하자꾸나! 오늘밤은 축제의 밤, 달마저 붉게 웃는 마녀의 밤이라!”

묘지를 감싼 검은 폭풍구름이 하늘로 올린 심장을 따라가듯 모조리 빨려 올라가버렸다.

“우우우­­­!”

여지껏 살아 있던 마지막 헬하운드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더니 검은 연기가 되었다.

막 끝장을 내려던 메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이 심장을 둘러싸듯 모여들었다.

주변 하늘은 또 되게 맑고 푸르러서 그 괴리감이 엄청나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늘이 갰으니 밝은 햇살을 맘껏 쬘 수 있겠지.

……그런 작은 소망을 품었는데.

“아아, 춤추자, 노래하자! 오늘밤은 영원한 축제의 밤이라!

이제 아침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

그걸 무참히 짓밟듯이,검은 밤이 찾아왔다.

누가 그랬던 거 같긴 하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마법이라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말도 안 돼……!”

충격에 빠진 로나의 목소리가 허망하게 울려 퍼졌다.

쟤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나는 말하는 법조차 잊어버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걸 보고도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폭풍구름은 하늘에 흩어져서 밤하늘이 되었고,

짜부라진 심장은 하늘에 박혀 붉게 빛나는 조명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붉은 달이 떴다면서 신전으로 달려가겠지.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일수록 더 크고 강한 욕망이 필요하답니다.

네이멜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별 생각 없이 흘려들었던 그 말이, 굉장히 큰 망치로 변해 내 머리를 때린 기분이다.

그녀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엄청나게 큰 욕망만 있으면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그러니까 이런 거다.

의식은 밤에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이다.

그러니 아침을 덮어서 밤으로 만들어버리자.

보름달이 없다고?

하나 만들어버리지 뭐!

……아니, 이게 왜 되는 건데, 미친 거 아니냐, 진짜?!

로나가 말한 그 규칙이라는 것만 없으면, 죽은 사람 하나 살리는 것쯤 일도 아닐 거 같은데?

“아하, 아하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핫! 아아, 나의 신이시여, 드디어 무대가 준비되었나이다!”

마녀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이 목소리를 뒤집히기까지 하며 소리쳤다.

바닥에 꽂아 두었던 그 기묘한 단도를 손에 들고, 마녀는 묘지 맨 안쪽, 비틀린 고목을 향했다.

“이 순간이 오길 기다린 지 어언 백 년! 허나, 허나!!

……원통하게도 내 주인께 바칠 몸을 빼앗기고 말았나이다. 그러니 나의 주인이시여, 대신 나를 드시고, 이 땅에 강림하소서!”

제지할 틈도 없이, 마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단도를 자신의 왼쪽 가슴에 찔렀다.

가슴에 칼자루를 잘라 붙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깊고 깊이 찔러 넣었다.

마녀의 입에서 또 다시 검은 피가 한가득 쏟아지며, 발 밑을 적셨다.

“부디 나를 용서하시어……! 내 한을…… 풀어주소서……!!”

마녀의 얼굴이 검게 변하며, 가슴에 꽂힌 칼자루가 불길한 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에 호응하듯 비틀린 고목에서 검고 불길한 기운이 뿜겨 나와, 단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모습인데……?

“크흐, 크흐흐흐흐……!”

새까맣게 타버린 듯한 얼굴로, 마녀의 입이 웃음소리를 내었다.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아닌, 우스워 죽겠다는 웃음소리이다.

퐁.

고목의 기운을 다 빨아들인 단도가 저절로 빠져나왔다.

검은 마녀는 바닥에 떨어진 칼엔 관심도 주지 않고, 자신의 가슴팍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어딘지 무척 감탄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크흐흐흐……! 훌륭해, 훌륭하다, 마녀여! 제 성질을 훌륭히 활용해 소임을 다했구나!!”

목소리가 달라졌다.

음색에 얇고 굵은 정도가 정해져 있다면, 딱 그 중간인 것 같은 음색이다.

얼굴은……색깔이 완전히 까맣게 변해버려서, 뭐가 달라진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눈은 원래 빨갰고.

근데 진짜 어디서 본 적 있는 느낌인데……

아, 그래, 마일린이 부활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럼 부엉이 조각상에 마일린의 의사와 능력이 봉인되어 있던 것처럼, 저 고목에도 무언가 들어 있었다는 건가?

“윽……! 이 냄새……!”

로나가 한쪽 소매로 자신의 코와 입을 틀어막고 기침하기 시작했다.

“로나? ……으앗?!”

성검의 검신이 빛을 내며, 가장자리에 새겨져 있는 문자들이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가드에 박혀 있는 수정까지도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다.

손에 쥔 검 자루에선 어떤 열기까지 느껴졌다.

로나는 크고 깊게 숨을 내쉬어 호흡을 안정시킨 후, 자신을 다잡듯이 철퇴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녀의 두 잿빛 눈동자는, 원래부터 그랬던가 착각할 정도로 완전히 금빛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눈빛만으로도 꿰뚫어버릴 듯이 검은 마녀를 노려보며 외쳤다.

“카엘 님, 조심하세요!악마에요!!”

“악마?!”

뭐야, 그럼 악마가 저 고목에 있었다는 거야?!

아니, 그딴 거 후딱후딱 없애 버릴 것이지, 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던 악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이 느낌은…….

“……크크, 그대가 용사로군?”

“……”

“크흐흐흐, 본관의 위압감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가? 크크큭, 용사라는 자가 그리 기가 약해서 쓰나!! ......내 본모습을 보이면 어찌될 지 무척 궁금해지는군?”

마녀의 몸에 들어간 악마가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무언가 시커먼 기운이 악마의 몸을 감싸며 덮어버렸다.

“위슨!”

뒤쪽에서 굵직한 목소리로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돌아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움직이던 위슨이 메린의 팔에 걸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위슨?!”

황급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평소보다 크기가 작아진 늑대가, 완전히 의식을 잃은 위슨의 얼굴에 제 주둥이를 부비며 낑낑대고 있었다.

가까이 온 나를 향해, 메린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살아 있어.”

위슨의 코에 손가락을 대었다.

미약하지만, 확실히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다.

“어떻게 된 거야?”

“몰라. 갑자기 쓰러졌어.”

좀더 채근하자, 메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마녀의 몸이 날개에 감싸이자마자 쓰러졌다고.

“악마의 영향이리라.”

스라소니가 심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현시(??), 당도(??)에 거주 중인 모든 마녀는 검은 악취를 품고 있으니, 필시 저치의 영향이리.”

“어…… 지금 여기 사는 마녀들은 전부 저 악마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근데 위슨은 아직 의식을 안 치렀다며?”

베르메가 악마를 섬기고 있던 거라면, 분명 그 의식도 저 악마가 사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마녀들과는 달리, 위슨은 아직 제 그릇의 성질을 깨우지 않았다.

그런데도 영향을 받았다고?

낑낑거리며 위슨에게 제 얼굴을 부비고 있던 늑대가 훌쩍이며 대답했다.

“그, 그래도 마법은 배웠으니까…… 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오…….”

“……마법 자체가 오염된 건가.”

“배, 백 년 전부터 좀…… 다, 달라진 것 같기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마력을 다루지 않으니, 마법의 형태가 어떠한지는 부지(不?)하노라.”

아무래도 정령은 마법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했다.

“어쨌든 위슨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 거야. 너희들, 할 수 있어?”

스라소니가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불가(?)하도다.”

“엥?”

“악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순 없노라. 묘지 외부는 숲이나, 현시(??)에 어찌 그리로 가랴? 마(?)에 영향받은 짐승들의 먹이가 될 뿐이리라. 무엇보다,”

스라소니가 작은 귀를 쫑긋 세우며 말을 이었다.

“보라. 때는 이미 늦었노라.”

스라소니가 저쪽을 보라는 듯이 고갯짓을 했다.

순순히 고개를 돌린 순간, 무언가 까맣고 얇은 게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길래 반사적으로 낚아챘다.

“깃털……?”

까만 새의 깃털이다.

제법 크기도 하고, 깃에 윤기가 나는 게 깃펜으로 쓰기 딱 좋을 것 같은데,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여기엔 불길한 기운인지 그 흔한 참새 한 마리도 없었다.

그런데도 하늘에서 깃털이 떨어졌다.

심상치 않은 현상에 불안감을 느끼며, 시선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고 붉은 하늘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인간이 떠 있었다.

어디에도 날개 따위는 보이지 않는데, 주변에 검은 깃털이 마구 휘날리고 있다.

“뭐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뒤덮여서 얼굴이 전혀 안 보인다.

무릎을 감싼 채 웅크리고 있는데, 그의 온 몸 여기저기에 벨트가 채워져서 완전히 꽁꽁 묶여 있다.

정황상 저거 그 악마인 것 같은데,저 놈이 아까 뭐랬더라?

내가 기가 약하다느니, 본 모습을 보이면 어찌될 지 궁금하다더니 하지 않았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 보이는데,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

무언가 내 등을 밀었다.

고개만 살짝 돌려보니, 스라소니가 제 머리로 나를 민 것이었다.

녀석은 의아해하는 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가서 그대의 의무를 다하라. 계약자는 우리가 수호하리라.”

늑대도 그 말에 동의하듯이,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크기가 줄어들어서 새끼나 다름없어졌는데, 이 둘만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아니, 정령이니까 상관없나……?

“……앗.”

입을 열려던 순간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은……!

이야기 속에서 신물이 나게 나오는, 뭔가 끓어오르는 게 있어서 은근히 나오길 기대하게 되는 바로 그……!

지금 헛짓거리 하고 있을 때냐, 엎어져 있는 애 앞에 두고 그러고 싶냐고 내 머릿속 이성이 양심을 마구 찔러대고 있다.

알아. 굉장히 불순하다는 건 나도 안다고!

그치만……그치만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잖아!

말 몇 마디 더 한다고 상황이 바로 악화되겠냐고!

그리고 진짜로 걱정되기도 하고!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도오아아아악?!”

말을 시작하자마자 메린이 내 손목을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야야야야야, 야, 임마, 나 아직 말하던 중이잖아!”

“어차피 두고 갈 거잖아, 쓸데없이 뭐하러 시간을 쓰냐?”

“……그건그렇지!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 그래도 임마, 이런 거엔 엄연히 순서라는 게……!”

“아, 몰라, 시끄러.”

“……”

일축되었다.

……젠장.

나도 그 대사 좀 말해보나 싶었는데.

내게 맡기라든가 다녀오겠다든가 어쩌고 하면서 비장하게 가는 거 해보고 싶었는데……!

“……크흡……. 이 나쁜 자식……!”

“오냐, 등신아.”

그렇게 내 작은 꿈은, 또 다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간 것이었다.

어느 정도 떨어진 뒤에도, 나는 메린에게 손목을 잡힌 채 계속 걸었다.

놓으라고 하기도 귀찮아서 내버려두었다.

……아니, 사실은 약간이지만 녀석의 힘을 조금 의지해서 걷고 있다.

쉬지도 않고 지금 이게 몇 번째 싸움이냐?

감옥탑에서 ‘부엉이탑’으로 질주하고, 탑 안에서 미친 마녀한테 시달리고, 그 개놈들에게 공 굴리기 당하고……

……그리고 이젠 또 악마랑 한바탕 해야 된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히 제대로 움직여야지, 뭔 등신 같은 생각을…….

거리가 좁혀지며, 공중에 떠 있는 악마의 모습이 점점 크게 보였다.

로나는 이미 저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철퇴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다.

으으, 역시 체력이 부족한 건 나 하나뿐인가.

“……아니지.”

내 앞을 몇 걸음 앞서 가고 있는 메린을 보았다.

목 언저리에 땀이 배어, 잔머리가 착 달라붙어 있었다.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손에도 땀과 열기가 느껴졌다.

물론 녀석의 손도 그렇고, 어디에도 작은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걸음걸이에도 불안정한 구석은 전혀 없다.

하지만……

조금 전 들은 녀석의 목소리는 여실히갈라져 있었다.

이 녀석도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는 거다.

나보다 더 움직였으니 당연하지.

“메린.”

“왜.”

붙잡힌 손목을 돌려, 녀석의 손목을 잡았다.

“……후딱 끝내고 쉬자.”

“……그래.”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준 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손을 놓고 로나의 옆에 섰다.

로나는 우리가 다가서도 눈길을 주지 않고, 하늘에 둥실 뜬 악마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가까이에 온 걸 알고 있는지,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카엘 님, 지치셨죠?”

“……어. 죽을 거 같아.”

“그런데도 오셨네요. 저­기서 위슨 씨랑 누워 계시지 않고.”

“이 녀석이 사람을 뭘로 보고……. 그리고그러면 뭐하냐? 너나 얘가 내 머리채 잡고 끌고 올 게 뻔한데.”

높은 확률로 메린이 될 것이다.

내 투덜거림에 로나는 쿡쿡, 가볍게 웃으며 받아쳤다.

“아닌데요~ 일어나실 때까지 귓가에서 철퇴 두드릴 건데요~”

“아잇.”

젠장, 상상해버렸어……!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놀리는 거 좋아한단 말야.

상관에게 보고 배웠나봐.

그때, 투둑,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로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다시 긴장이 감돌았다.

“시작되네요.”

투둑, 투두두둑.

악마의 몸을 구속하던 벨트가 하나, 둘, 끊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벨트가 끊어지며, 악마가 등에서 커다란 날개를 펼치면서 기지개를 켜듯 몸을 쭉 폈다.

하늘을 향해 치켜든 얼굴엔…… 뭔가 튀어나와 있다.

뭐지? 코는 아닌데.

조명이 있긴 해도 어두침침한 건 여전하니 잘 안 보인다.

“오? 부리가 달려 있어.”

메린은 저게 구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뭐? 부리?

“왠지 머리도 새대가리 같은데.”

“……”

뭐야, 그거…….

긴 머리카락이 달린 새?

아니, 아무리 악마라도 그렇지…….

악마는 입, 아니 부리…… 아, 몰라.

아무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채 읊조렸다.

“아아…… 좋은 밤이로다. 설령 이것이 한때의 속임수라 해도, 크흐흐,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감미롭지 않은가.”

악마는 날갯짓 한 번 하지 않으면서도 하늘에 그대로 붕 떠 있었다.

날개는 그냥 장식인 모양이다.

악마의 붉게 타오르는 듯한 두 눈이,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본관의 본 모습, 지옥의 군대를 이끄는 장수, 나베리우스의 현현(??)이라! 크하하하!”

“……나베리우스……!”

로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꽤 위험한 놈인 모양이다.

으음, 하지만 이 느낌은…….

“조심하세요, 카엘 님! 놈은 까마귀 악마에요! 시체들에 잡귀를 불어넣고 조종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걸 특기로 삼는 위험한 놈이에요!”

뭐, 사제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놈은 로나의 반응에 만족스러운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크흐흐흐! 그래, 두려워해라! 떨며 엎드려, 자비를 구해라! 목숨을 구걸해보란 말이다!”

“음……”

얼마간 빤히 쳐다본 후,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로나에게 가만히 물었다.

“로나, 저 놈, 대악마야?”

“아니요! 잡놈이에요!”

……엥?

“아니, 네가 방금 위험하다고……”

“잡놈이에요!”

“……아니, 지옥의 군대를 이끄는 거 아니야? 스스로를 본관이라 하고 있으니 뭔가 직책이라도……”

“그딴 거 하나도 없는! 잡놈이에요!!”

잡놈이에요…… 이에요…… 에요……

로나의 외침이 무정하게 묘지에 메아리쳤다.

……그럼 대체 왜 심각한 표정을 지은 거람?

그건 그렇고 납득했다.

어쩐지 별 느낌 없더라.

마을에서 봤던 그 대악마는 보기만 해도 정신 나갈 정도로 무서웠는데.

“……”

까마귀 악마, 나베리우스는 당당하게 외쳤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충격이 어지간히 큰 게 아닌 듯하다.

……그보다 이 분위기 어쩔 거야.

어색해. 엄청나게 어색하다고!

지금이 기습하기 제일 좋은 때인데, 검을 휘두를 마음이 전혀 안 생긴다고!

“흠…… 그랬구나.”

앗.

메린이 입을 열었다.

이 자식, 이번엔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어쩐지 위협은 쥐뿔도 어, 으읍?!”

“얌마, 조용히 해! 그런 말은 장본인 앞에서 하면 안 된다고!”

“애, 아이이아아. 아아으어 웡에”

“아무리 사실이라도 말하면 안 되는 게 있어! 솔직히 악마가 아니라 그냥 날개 달린 몬스터 같고, 쟤보다 차라리 베르메가 더 강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 앞에서…………앗.”

실수해버렸다.

……들었나?

조심스럽게 놈을 올려다보았다.

놈은 공중에서 몸을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다가, 크게 날갯짓하며 소리 높이 외쳤다.

“이 빌어먹을 인간 새끼드으으으을!! 갈기갈기 찢어주마아아아!!”

“들었네.”

놈의 외침이 외마디 함성이 되어 묘지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에 물기가 섞여 있는 건 분명 내 착각이겠지.

“우나봐.”

“……그만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악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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