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56화 : 마녀 없는 마녀의 밤 (1)
* * *
나베리우스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시뻘건 두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 높이 외쳤다.
“나의 권속들이여! 이곳에 모일지어다! 달빛 아래에서 춤추며 피를 마시자꾸나!”
울분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와 묘지를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네 주인이 명하노라! 네 주인이 허(?)하노라! 오늘밤은 마녀의 밤, 붉게 물든 사바트의 밤이니라!”
귀를 울린 선포가 한차례 끝나자, 묘지에 무거운 적막이 다시 찾아왔다.
“……”
“……”
너무 조용할뿐더러, 악마도 얌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서 있다.
……그래,놈의 기세도 되살아났겠다, 이번에야말로 먼저 공격 때려버리자!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성검을 쥐었다.
“……?”
막 휘두르려는데, 바람을 타고 무슨 소리가 들린 듯했다.
악마의 눈이 만족스러운 빛을 띄며 가느다래졌다.
무언가 기대하던 게 오는 모양인데…….
“카엘, 저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메린이 나를 붙잡고 숲, 더 정확하게는 그 위의 하늘을 가리켰다.
뭐 특이한 거라도 본 기색인데, 내 눈엔 그냥 시커먼 점만 보일 뿐……
……인데 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내 나는 그 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눈 좋은 메린에게 묻기도 전에, 녀석들이 제 입으로 정체를 떠벌렸기 때문이다.
까아악 깍 까아아악
“뭐야, 저거. 다 까마귀야?!”
말도 안 돼. 이 섬에 저렇게 많은 까마귀가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 애시당초 이 섬에 있는 동안한 마리도 보지 못했는데!
로나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바깥 숲의 까마귀들이네요. 꼴에 까마귀 악마라고 불러왔군요. 잡놈 주제에 건방지긴…….”
“잡놈이라고 하지 마!! 신의 갈*년 아니랄까봐 혓바닥도 천박하기 그지없구나!”
“어머, 입 더러운 것 봐. 누가 천박한 지 모르겠네요. 현세에서 쭉 봉인되어 있던 잡놈다워요. 그 꼬라지니까 동기한테도 밀리고, 결국 영지도 뺏긴 거겠죠?”
악마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을 비웃는 눈초리로 올려다보던 로나는, 별안간 눈썹을 내리며 두 손을 마주잡았다.
“어머, 나 좀 봐. 빼앗긴 게 아니라 평화롭게 양도한 거였죠? ‘지옥 영지에서 세금 받아먹는 것보다는 현세를 정복해서 노예를 부리는 게 더 낫다’고 하면서요.……푸흐흡!”
“크아아아아아아!!!”
………………
가만히 듣고 있는 내가 정신이 나갈 것 같아.
물론 사제님이 악마에게 적대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
특히 전투사제의 주 역할이 저런 악마나 그 숭배자들을 처단하는 거니, 뭐…….
……근데 실력은 어쨌든, 경력 자체는 짧은 쟤도 저 정도이다.
십 년 넘는 최고참들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 가!
“응?”
어라?
까마귀 떼의 속도가 빨라진 것 같은데?
나베리우스를 다시 돌아보자, 놈이 여전히 고개를 하늘로 쳐든 채, 분노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
그에 호응하듯이 까마귀들이 날아오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점이 커다란 점이 되고, 그 커다란 점은 순식간에 검은 물결이 되었다.
“으앗!”
까마귀로 이루어진 검은 물결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대체 얼마나 모인 건지, 녀석들의 날갯짓 소리가 귀를 징징 울리는 듯했다.
녀석들은 두 팔 벌리고 공중에 떠 있는 악마를 한 바퀴 돈 후, 묘지 가장자리 위를 천천히 날았다.
꼭 커다란 띠가 하나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마침내 놈이 기다리다 지쳤는지, 팔을 내리고 눈을 찡그렸다.
“……뭐야, 왜 안 와?”
“……”
“목소리는 다 들렸을 텐데, 왜 한 놈도 안 와?!”
놈이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마구 흔들며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베리우스의 곁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
이런……
이런 현실이 있단 말이냐?
고개를 떨구고, 두 눈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마일린은 늦게나마 누구 한 명이 대표로 나섰는데.
그 뒤에 완전 뒤덮듯이 우르르 몰려와서 환영하고 기뻐하고 장난 아니었는데……!
숙연해지는 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도다.
하지만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
인간 아닌 놈에게 인정 베풀어봤자 소용도 없고, 또……
방금 거에서 더 베풀 것도 없을 거다.
더는 안 돼.
아무리 잡놈이라도 악마는 악마라고 자꾸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잖아.
또 이상한 게 나오기 전에 해치워야 돼!
나는 조용히, 그리고 굳게 성검 자루를 잡고 놈을 향해 휘둘렀다.
검신이 그린 빛의 궤적이, 칼날이 되어 악마를 향해 날아갔다.
“큭……?!”
고개를 마구 흔들던 놈이,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더니 피해버렸다.
젠장, 아깝다, 거의 코앞까지 갔는데!
그래도 날개를 스치고 갔는데, 놈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퍼덕거리지만 않을 뿐, 날개 자체는 장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새랴 두세 번 성검을 휘둘렀지만, 놈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칼날을 피해버렸다.
“네 이놈, 용사라는 놈이…… 으어억?!”
놈이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크게 놀라며 황급히 몸을 틀자, 놈의 부리 앞을 금빛 궤적이 스쳤다.
범인인 로나는 사뿐히 땅에 착지한 후, 악마를 매섭게 노려보며 한 마디 던졌다.
“칫! 날파리 같은 새끼……!”
“……”
아까도 느낀 거지만, 사람의 인격과 말투의 형성엔 선천적인 면이 큰 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생활 환경과 교육담당자 등, 후천전인 면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괜히 애들 앞에서 말조심해야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쯧.”
메린이 옆에서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혀를 찼다.
그렇구나. 이 녀석이 로나를 위로 던져줬구나.
거리낌없이 사람을 던지는 녀석과, 주저없이 제 몸을 날리는 녀석이 자아낸 완벽한 협동이었다.
돌겠네, 진짜.
나베리우스는 하늘에서 파닥거리며 당황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선포도 없이 공격을 하다니, 실로 비겁한 놈들이로다!”
저 놈에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절대 못 참아!
나는 놈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맞받아쳤다.
“날개 달고 날아다니는 놈이 누구한테 비겁하다는 거냐! 불만이면 내려와, 새꺄!!”
“어찌 이런 뻔뻔한……! ……오냐, 이 망할 새끼들, 네놈들이 사전공작을 한 것이로군!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되지 않지!”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뻘건 공간에 시뻘건 눈을 한 탓에 내 시선이 안 느껴지는 건지, 놈은 혼자서 횡설수설 주절대기 시작했다.
“승리를 위해선 무고한 피일지라도 과감히 흘려보낸다는 것인가!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뿐 아니라, 방해가 될 듯한 놈들을 미리 처단해버린 게로구나!”
“뭔 소리야, 대체.”
“그런 놈이 용사라? 신이 택한 용사가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 크크…… 크하하하하! 실로 유쾌하도다!”
“뭔 소리냐고!”
내가 소리치며 날려보낸 빛의 칼날을 손쉽게 피한 후, 놈은 예의 그 당당한 자세, 그러니까 하늘을 치켜보고 두 팔을 쫙 펼친 그 자세로 외쳤다.
“그렇다면 이미 승리는 우리 손 안에 있으니! 우리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놈을 상대로 우리가 패배할 리가 없다!!”
“돌겠네, 진짜.”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죄다 지 하고 싶은 말만 하네.
게다가 이 놈은 잘은 모르겠지만 혼자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난 무고한 피를 흘린 적이 없다.
피를 흘린 것 자체도 베르메 하나밖에 없는걸.
“나의 자식들아! 축제를 즐길 시간이니라!”
나베리우스가 두 팔을 벌리고 외쳤다.
한두 마리의 까마귀가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까악까악 울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묘지 한가득, 엄청난 소음이 몰아쳤다.
“……!”
안 들린다.
악마가 아직 입을 움직이고 있는데, 전혀 안 들린다.
나 자신의 말소리조차 깍깍대는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는다!
젠장, 이거 크게 한 방 먹었어.
이 악물고 참으면 움직일 수 있긴 하지만, 이래선 정신 사나워서 놈의 공격을 읽기 힘들다!
묘지를 둘러싼 까마귀 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까마귀가 만든 두툼한 검은 띠를 끊어버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악마의 영향 때문인지 도망가는 놈 하나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시선 앞으로, 커다란 검은 깃털이 몇 개 떨어졌다.
나베리우스가 기세 좋게 날개를 퍼덕이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저 놈은 이 소음에서도 별 문제없이 다니고, 말도 전할 수 있는 모양이다.
역시 잡놈이라도 악마는 악마구나.
세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아.
“……!”
까마귀들에게 검은 기운이 몰려들었다가 곧 사라졌다.
이내, 마치 실 한 오라기가 풀린 것처럼 까마귀가 일렬로 떼를 지어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니아니, 우리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아직 거리가 있는데도 까마귀의 시커먼 형체가 또렷하게 보인다.
그냥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녀석들이 눈을 깜빡이는 것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응? 그게 왜 보이는 거지?
내 시력은 평균인데.
그러고보니 어째 대가리도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큰 것 같고……
아니, 아니야.
큰 것 같은 게 아니라 확실하게 커졌어!
놈의 부리가 내 몸을 꿰뚫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굴러서 피했다.
그 다음, 그 다음은 어디서 오지?
빌어먹을, 소리가 안 들려서 모르겠어……!
순간, 누가 다리가 구덩이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누가 잡아당기는 느낌도 들었다.
아까 헬하운드들을 피해 굴러다닐 땐 전혀 없었던 일인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현상이 혼란스러워, 바닥에 등이 부딪치는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땅에 검을 꽂아 붙잡고 버티며, 붙잡힌 다리 쪽을 보았다.
비석이 있다.
그 앞의 땅이, 누가 판 것처럼 약간 패여 있다.
지상과 지하의 경계선 위에 올라와 있는 둥그런 뼈……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본능적으로 그 무언가를 걷어차버리고, 뒤로 기어 물러났다.
그러다 무언가 손에 부딪혔다.
물렁하면서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이성과, 그딴 거 할 시간에 튀자는 감성이 머릿속에서 서로 주장을 펼쳤다.
나는 억지로, 정말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가 껴서 잘 안 보이지만, 눈도, 코도 그림자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지만, 입은 보였다.
새하얗게 드러난 뼈가 보였다.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까닥이는데, 까마귀들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왜, 뿌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을까?
“……!!”
내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놈이 무슨 소리를 내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 걸 인지할 겨를도 없고, 애초에 까마귀 새끼들 때문에 안 들리니까.
그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휘둘렀다.
성검은 놈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단칼에 잘라버리고, 하얗게 태워버렸다.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려 애쓰며 앞을 보았다.
비석들. 파져 있는 땅들. 그리고,
구덩이들에서 올라오는 것들.
내 옆에도, 뒤에도, 비석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일어나야 한다고 이성이 외치고 있다.
지금 저 놈들은 어쨌든,더럽게 큰 까마귀가 지금 당장이라도 들이닥칠지도 모르니 움직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나도 그건 백 번 동의하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공포가 생존본능마저 삼켜버린 듯했다.
“……!”
갑자기 뒷덜미가 홱 잡혔다.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앗.
까마귀인가요?
결국 잡혀버렸나요?
팍!
이런, 눈앞에 별이 보이네요!
“……”
……더럽게 아프네.
아무튼 까마귀에게 잡힌 건 아니군.
아무리 까마귀가 몸집이 커졌다 해도 이마에 딱밤 놓진 못하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 나한테 딱밤 놓을 놈은 하나밖에 없다.
나는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몰라도, 그 짧은 새에 날 들쳐업고 있는 메린의 팔을 툭툭 쳤다.
그러자 녀석은 날 대충 굴리듯이 던져버렸다.
주변에 비석 같은 건 없는, 평탄한 땅이다.
“……”
아니, 뭐, 이해는 가.
언제 어느 방향에서 까마귀가 날아올지 모르잖아.
게다가……
……어느새 저렇게 시체가 걸어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가까이서 처음 봤을 땐 너무나도 오싹해서 몸이 굳었는데, 이렇게 좀 떨어진 곳에서 보니 기괴하긴 해도 별 느낌은 없네.
“으익!”
뭔가 소름이 돋는 것 같아 재빨리 물러나니 까마귀떼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빌어먹을 까마귀 새끼들, 죄다 뒤져버렸으면……!
그때, 하늘에 마구 불꽃이 터지며 깍깍대던 소리가 뚝 끊겼다.
불꽃이 사그라든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묘지 가장자리 위, 까마귀로 만들어진 검은 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엉?”
거대 까마귀들도 우왕좌왕하며 여기저기 푸드덕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까마귀들마저, 갑자기 내리친 벼락을 맞고 죄다 떨어져 버렸다.
“아~ 이제 좀 살겠네. 역시 까마귀는 시끄러워서 못 써먹는다니까.”
굉장히 느긋한 목소리가 울리며, 빗자루를 탄 여자가 날아왔다.
어두침침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 두 눈동자, 잃어버린 햇살을 상기시키는 두 황금빛 눈동자를 못 알아볼 리 있을까!
“마일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반가웠다.
대마녀, 아니, 대현자 마일린은 내 앞에 사뿐히 착지한 후,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예상치 못한 사고가 조금 발생했지 뭐에요? 그래도 아직 살아계셔서 다행이에요.”
그녀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쭉 둘러본 후, 그 정도만으로 사태를 파악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위슨은 그냥 쓰러져 있네요. ……스스로 선택한 건가, 아니, 외부 개입인가……?”
“????”
“아, 신경 쓰지 마세요. 그나저나 제법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네요. 저 까마귀들도 그렇고, 이 붉은 밤도 그렇고……”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커다란 까마귀도 그렇고. 근데 시체가 움직이는 건 처음 보네요.”
“저 놈 본 적 있어요?”
“네. 제가 옛날에 쳐부숴버린 놈이에요.”
……엥?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 마일린이 물리쳤다던 그 ‘섬에 쳐들어온 악마’?
그게 쟤였어?!
나베리우스가 공중에서 크게 포효하더니, 지상으로 약간 내려와, 나와 마일린을 내려다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네 년, 마녀로구나! 갑자기 튀어나와선 이 무슨 행패냐! 감히 주인의 자식에 손을 대?!”
“……”
마일린은 악마를 알아보는데, 악마는 제 숙적을 못 알아보고 있다.
어딘지 마음이 또 짠해지는 모습이다.
“어머, 나베리우스, 대가리가 까마귀인 것 치고는 너무 얼빠진 거 아닌가요? 까마귀들 욕 먹이지 말고 그냥 닭으로 바꾸는 게 어때요? 아니면 그냥 뽑아버리든가.”
“무, 뭣……!”
“진짜 못 알아보나보네. 나 마일린이에요, 얼간아. 나무에 너무 오래 박혀서 영안(?)이 썩어버렸나요?”
“마, 마일린이라고?!”
놈은 진심으로 경악에 빠진 듯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마일린은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살짝 헛기침을 한 후, 로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마일린에게 전해주었다.
“저기, 그…… 지금 악마들은 영혼을 못 본답니다.”
“예? 그게 무슨…… 엥? 그럴 수가 있어요? 으으으응?”
그녀는 얼굴에 물음표 여섯 개쯤 띄우다가 문득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 혼자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일단은 이 사단부터 정리하자고요. 저~기 두 분이 시체들을 상대하고 있긴 하지만, 기운만 빠질 테니까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메린과 로나가 땅 속에서 일어난 시체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완전히 썩어서 뼈만 남은 시체, 아직 무언가 붙어 있는 시체, 어째 몸 부속품이 서로 따로따로 놀고 있는 시체들…….
그러고보니 로나가, 저 까마귀 악마가 잡귀들을 시체에 넣어서 조종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목을 자르고 팔다리를 으스러뜨려도 계속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역시 우리 마을은 미친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니, 저게 뭐가 웃기다고 매달 보름마다 묘지기 조수를 자청해?
“어떻게 해야 되죠?”
“이 밤을 없애는 게 제일 좋죠.”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요?”
“저~기 위에 떠 있는 붉은 달 있죠? 저걸 부수면 될 거에요.”
음, 그렇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군.
“그러니 제가 저 커다란 까마귀를 상대하는 동안, 카엘 씨가 저 달을 부수시면 돼요.”
“……”
아니, 이 사람이?
사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상대에게 뜻을 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두 눈썹을 구부리고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상대를 쳐다보는 거다.
그럼 ‘굉장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완성된다.
마일린은 내 시선에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어요! 여러분 중에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 없잖아요? 그러니 제가 저 까마귀를 상대해야죠.”
“저기요, 저 달도 하늘에 박혀 있거든요?”
“저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잖아요?”
“근본적인 문제는 똑같거든요?”
대현자님은 내 시선을 피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 같아선 친구들을 부르고 싶지만,지금 이 공간 자체가 격리되어 있다고 할까요……. 아무튼 바깥의 정령들은 여기 못 들어와요.”
“그럼 방법이 없잖아요!”
“아니요, 전 당신을 믿어요. 분명 방법을 찾아내실 거에요!”
마일린은 빙긋 웃는 얼굴로,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다시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조금 있으면 저 까마귀 악마도 정신을 차릴 거라서요~ 죄송하지만 카엘 씨! 부탁드릴게요!”
“아니, 그냥 부탁만 하면 다에요?! 저기요! 어이! 내려와! 내려오라고오오!!”
……그러나 마일린은, 내 말에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표로롱 날아가버렸다.
대현자는 개뿔!
“……”
시체들과 아웅다웅 중인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래, 무언가 방법은 있을 거다.
내 상식을 처참하게 박살내는 게 취미인 저 두 사람이라면, 분명 무언가 방법을 떠올릴 거다.
어째 한 가지 미래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 같지만, 응, 아니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미래’는, 항상 불확정하고 불특정한 여러 가능성으로 점철되어 있다구!
그러니 일단은, 시체 처리다.
불손하게도 남의 몸을 차지한 잡귀째로 깔끔하게 보내주도록 하자.
검 자루를 손바닥 안에서 빙빙 돌리다, 다시 꽉 쥐었다.
……좋아.
아직 손에 힘이 남아 있다.
“……가자!”
나 자신을 타이르듯 작게 외치고, 시체들을 향해 달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