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57화 : 마녀 없는 마녀의 밤 (2)
* * *
까마귀 새끼들이 없어져서 눈물 나올 정도로 좋았는데, 왠지 지금 잠깐만 다시 불러오고 싶다.
하하, 세상에, 하하.
까마귀 소리가 시체보다 훨씬 더 나았을 줄이야.
“어어……으어어어어……”
“우우우우우……”
딱. 따닥. 으드드득.
“갸아아아아악!!”
목청 터져라 소리지르는 건 물론 나다.
얼굴에 잔뜩 열이 오를 만큼 소리를 지르며, 놈들이 구멍 송송 뚫린 얼굴로 입 헤벌쭉거리며 달려드는 족족 베어버렸다.
진짜 미치겠다.
하나 같이 죄다 우어어, 으어어어, 우우우!
계속 듣다간 나까지 썩어서 우워어거릴 것 같아!
해골만 남은 놈들이 중간중간에 뼈를 딱딱거리는 게 뭔 박자 맞추는 것 같아서 더 열받아!
“주……거……주……거버여…….”
비쩍 마른 남자가 입을 벌린 채, 두 팔을 뻗고 다가왔다.
여기저기 벌레가 꼬여 있는 모습이다.
……아주 잠깐 명복을 빌어주고 왼쪽 아래에서 사선으로 베었다.
잘려 나간 부위가 땅에 닿기도 전에, 남자의 몸이 새하얀 빛에 휩싸여 재가 되었다.
그래, 차라리 저렇게 되도 않은 말을 중얼거리는 게 훨씬 낫다.
그래야 나도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영혼을 원망하면서, 이 사람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 검을 휘두를 수 있다.
어차피 베는 건 똑같지 않냐고?
하지만 ‘몬스터’를 베는 거랑 ‘몬스터가 되어버린 사람’을 베는 건 좀 다른걸.
저렇게 말이 나온다는 건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 사람의 영혼은 아직 여기 세상을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웬 잡것이자신의 죽은 몸에들어가서 우워우워 시키고 있는 걸 보면 울화통 터지지 않을까?
저기서 무참히 시체들의 머리를 으깨고 계신 사제님은, ‘죽은 사람의 영혼은 이 세상에 남지 않는다’고 했지만……
……일 년, 아니 한 달쯤은 남아 있다가 떠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세상을 완전히 떠났더라도, 어디서 이 세상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랬으면 좋겠다.
“억.”
갑자기 등이 엄청나게 무거워지면서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검을 지팡이 삼아, 넘어지려는 걸 간신히 버티고 돌아보았다.
“으워어어어!!”
“앗.”
구멍 셋 달린 얼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군데군데 살이 파인 두 팔이 뻗어왔다.
반사적으로 팔 하나는 날려버렸지만, 놀라서 휘두른 탓에 나머지 하나가 들어올 틈을 허용해버리고 말았다.
“커흑!”
놈의 손이 정확하게 내 목 가운데를 누르며 조여왔다.
가슴을 검으로 찌르고 위로 쑥 베어버렸다.
놈이 반으로 갈리며 재가 되어 사라지자마자, 또 다른 놈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워어…… 우어어어어…….”
“시끄러어어!”
치밀어오르는 빡침을 참지 못하고, 발버둥치듯이 검을 휘둘렀다.
주위에 몰려드는 시체들을 없애버리고, 잠깐 숨을 돌렸다.
이 시체들, 속도가 느려서 그런지 움직일 때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숲에 살던 마녀들과 남자들이 죄다 여기 묻혀 있는 건지, 숫자도 엄청 많다.
하나의 비석 밑에서 시체가 몇 구가 나오는 건지, 원.
그거냐? 자리 모자르니까 무덤 위에 또 무덤 만들고 그랬던 거냐?!
하지만 개개인의 위협은 얼마 안 되니, 조금 전처럼 둘러싸이더라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
물론 한두 번 냠냠 물릴 수도 있지만, 그냥 더럽게 아플 뿐이지 별 문제는 없다.
뭐, 아무래도 시체다보니 독이 오르긴 하지만…….
아무튼 그게 다다.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시체 녀석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덤벼라, 시끄러운 고깃덩어리들아아악!”
……말이 이렇게 끝난 건 메린이 내 머리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녀석이 두 눈을 부라리며 날카롭게 외쳤다.
“네가 더 시끄러워, 새꺄!!”
“……죄, 죄송합니다.”
여기 공간이 붉어서 그런지, 녀석의 두 눈이 진짜 불처럼 타는 것 같은 게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메린은 나를 잠시 매섭게 쳐다본 후, 왔던 데로 다시 돌아가서 시체의 머리를 마저 날리기 시작했다.
“……휴.”
나도 머리 한 대 때리는 걸로 끝난 것에 안도하며 다시 성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날아차기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다니, 나도 참…….
“끄어어어……”
“아으, 진짜.”
애초에 이 놈들이 떠드는 게 문제다.
원망의 마음을 한껏 담아 영면을 선사해주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로나가 나와 메린을 부르더니 중앙에 철퇴를 꽂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철퇴를 중심으로 사방 3m 정도에 은은한 빛의 막이 생기며, 시체들이 더 다가오지 못했다.
“좀비들을 하나하나 상대하다간 끝이 없어요!”
로나는 조금 크게 외치고 있었다.
그녀가 펼친 보호막은 시체들의 접근은 막을 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소리까지는 막지 못했던 것이다.
……그보다 저것들을 좀비라고 하는구나.
“그래도 꽤 없앤 것 같은데!”
“너만 없앴지! 우리 둘은 무력화만 시켰고!”
그건 그렇다.
보호막을 두드리고 있는 시체 중엔 몸통에 팔만 달려서 두드리고 있는 놈도 있으니까.
참고로 이 두 사람이 머리를 족족 날린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위협이 확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혼이 들러붙어 조종한다 해도 앞을 보려면 머리, 정확하게는 ‘눈’이 있어야 한다.
실제 눈은 없어지고 자리만 뻥 뚫려 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시체에 깃든 영혼이 제 눈을 써서 보는 거니까.
아무튼, 머리를 날려도 시체는 움직인다.
다만 앞이 안 보이니까 우왕좌왕하며 제자리를 빙빙 돌거나 할 뿐이다.
그래서 머리가 떨어진 시체 옆의 다른 놈이, 떨어진 머리를 주워서 붙여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체를 완전히 멈추려면 그 몸에 깃든 영혼을 쫓아내야 한다.
화려하게 보내려면 사제님이 구마의식을 하면 되고, 그냥 조용히 보내려면 햇살을 쪼여주면 된다.
뭐, 불을 질러도 되지만……
내 부싯돌은 배낭에 있고, 그 배낭은 드와트의 집에 있다.
있더라도 촉매가 없으니 불 안 붙겠지만.
로나는 내 제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마의식이요?! 하나면 몰라도 저 떼거리를 한꺼번에 보내는 건 못해요! 그건 치유 보직이에요!”
“네 철퇴로도 못 쫓아내는 거야?!”
“하려면 할 수 있지만 악마가 있으니 힘을 아껴야 돼요!”
그렇다면, 역시 남은 건 하나뿐이다.
아침해를 다시 되찾는 것.
……즉, 이 거짓된 붉은 밤을 끝내는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내 말을 듣고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먼저 입을 연 건 메린이었다.
“널 위로 던지면 되겠네!”
“얌마! 시작부터 극단적인 방법 꺼내지 마!! 너 아주 그냥 재미들렸지, 어?!”
인간 투창이 되어야 하는 내 입장에선, 그 방법은 최후의 최후, 진짜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나 시도하고 싶다.
“카엘 님 말이 맞아요! 무작정 던지면 안 돼요!”
역시, 조금 더 상식적인 로나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저 달이 얼마나 높이 달려 있는지 모르잖아요! 일단 높이를 먼저 알아야 돼요! 그래야 정확하게……”
“이 자식들이 진짜?!”
……내 필사적인 주장 끝에, 메린이 슬링으로 달을 맞추기로 했다.
골렘 팔도 부숴버리는 위력이니, 달이라고 해도 그냥 살덩어리에 불과한 걸 부수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나?
우리는 일단 시체들에게서 떨어졌다.
내가 간간이 칼날을 날려, 다가오는 시체들을 요격하는 동안, 로나가 축복을 빈 돌멩이 여러 개를 메린에게 건넸다.
녀석은 한두 번, 돌을 직각으로 던져서 힘과 거리를 가늠하는 듯했다.
마침내 감을 잡았는지 녀석이 심호흡을 한 후, 달을 향해 슬링을 쏘았다.
은은한 빛을 내는 돌이 하늘 높이높이, 붉게 빛나는 달을 향해 날아갔다.
이대로 제발 성공해라……!
“아.”
……돌멩이가 튕겨 나가버렸다.
보이지 않는 것에 막힌 건지, 아니면 단순히 파괴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세상이 떠나가라 절규하고 있는데, 메린 녀석은 기가 죽긴커녕실실거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높진 않은가보네. 잘됐다, 야!”
“……뭐가? 뭐가 잘됐는데? 대답하지 마, 임마, 나 보고 웃지 마, 짜샤!”
로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마법을 못 뚫었네요. 여기 일대에 저주가 가득해서 그런가봐요. 그래도 저렇게 작게 보이는 게 거리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크기가 작은 거라는 게 그나마 다행인데요…….”
“역시 카엘을 던져야겠지?”
……이 자식, 혹시 진짜로 그냥 날 던지고 싶은 거 아닐까?
다행히 로나가 고개를 저어주었다.
“으음~ 아무리 메린 님이어도 정확하게 저 달을 향해 카엘 님을 던지긴 어려울 것 같아요. 크기가 작으니까요.”
“두세 번 시도하면 되겠지.”
“내가 너 딱밤 한 대만 때리면 안 되냐?”
나와 녀석이 아웅다웅하는 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로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되도록 한 방에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기 위를 보세요.”
그녀가 가리킨 하늘 위에선 무언가 빛이 번쩍이고, 깃털이 마구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따금 검은 구체가 지상으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바닥이 녹아내렸다.
아무튼 까마귀 악마와 대현자가 둘이서 굉장히 바쁘게 싸우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녀석이 위를 올려다보는 틈에 재빨리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솟아오르는 이 승리감!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놓자마자 엉덩이 중앙에 녀석의 무릎이 작렬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빗자루 탄 분이 정신없이 다니는 걸 보면, 일부러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게 분명해요. 우리가 달을 부수려는 걸 저 허접 까마귀가 알게 되면, 얄궂은 수작을 부려서 귀찮아질 테니까요.”
그 이유 때문에 성검의 빛을 날려서 부순다는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눈에 너무 띄니까.
근데 뭐, 축복받은 돌멩이가 튕겨나간 걸 보면, 분명 빛의 칼날을 날렸어도 큰 타격은 못 줬을 것 같다.
으음…… 내 완력으로는 이 검을 던져봤자 안 맞을 텐데.
길이 때문에 슬링에도 맞지 않고.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자꾸 슬며시 떠오르는 방법을 애써 무시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러니!!”
로나가 내 손을 잡으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카엘 님, 수직으로 날아주세요!!”
“너도 딱밤 놔주랴?”
“맞아드리면 날아주시는 거죠?! 그렇다면 딱밤 마음껏 놓으세요!! 저 로나, 그 정도 시련은 달게 받겠습니다!!”
“……”
스스로 자신의 이마를 들이대는 로나의 기세에 눌려,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수직으로 슬링 서너 개를 쏜 후, 메린은 우리 두 사람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녀석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대강 파악했어. 저 새대가리 놈이 아직 저러고 있는 걸 보니, 돌멩이가 작아서 티가 안 나나봐.”
아니면 마일린이, 나베리우스가 다른 걸 전혀 보지 못하도록 열심히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리라.
녀석이 짚은 자리에 서서, 바로 머리 위에 떠 있는 달을 보았다.
그러는 편이 내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며 로나가 권했기 때문이다.
내 정신건강에 신경 써줄 거면, 이딴 작전 당장 그만두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머리로는 나도 알고 있다.
진짜 인정하기 싫지만, 실행만 할 수 있다면 이 방법이 제일 확실하다.
미래가 불확정되어 있긴 개뿔, 완전히 고정되어 있구만.
속으로 투덜댄 후, 마음을 가다듬었다.
스스로 실감은 안 나더라도, 어쨌든 난 영혼에 글씨까지 적혀 있는 용사이다.
용사의 역할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나서서 이루는 것 아닌가.
꼭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반드시 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게 나 밖에 못하는 거라면……
사람으로서 각오를 다지고 나서야 한다.
“준비, 훌쩍, 준비되셨어요?”
“어.”
코를 훌쩍이며 로나가 물었다.
……조금 전에보았던, 로나가 이마를 감싼 채 눈물을 뚝뚝 흘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쯧쯧, 다 큰 남자가 애나 울리고…….”
“아니, 쟤가 놓아도 된다고 했어!”
조금 미안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당한 거래였다고.
난 잘못한 거 없어!
“발에 뭐가 닿아도, 훌쩍, 놀라지 마세요. 카엘 님은, 훌쩍, 달만 보고 날아가시면 돼요.”
“알았어.”
다리가 하나씩, 바닥에서 떨어지며 무언가 말캉한 게 발에 닿았다.
신경이 엄청 쓰이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나, 둘!”
“……!”
엄청난 힘을 받고 몸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난번에 메린이 던졌을 때보다 더 센 것 같은데?!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귀를 때렸다.
눈을 뜨고 있기 힘들다.
감지 않기 위해 애쓰며, 성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붉은 달이 가까워온다.
아주 약간만 크게 보이는 게 좀 싸한 느낌이 드는데…….
“……응?”
나쁜 예감은 꼭 들어맞는 법이지!
달에 닿으려면 아직 거리가 남은 것 같은데, 슬슬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패인가 하는 생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때,
단단한 막대기가 발을 받쳐주는 느낌이 들며, 힘차게 다시 나를 밀어올렸다.
그 짧은 새에, 바람을 뚫고 나를 격려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부숴버리세요! 용사님!
기꺼이 저질러주마!!
내 시야가 붉게 가득 찼다.
붉은 달이 눈앞에 가까워졌다.
조금 더, 조금만 더……!!
“……!”
검 자루를 통해 확실히 느꼈다.
칼끝이 무언가를 꿰뚫었다!
붉은 달이 가드 직전까지 쑤우욱 들어오면서,시야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속도가 아직 남은 탓에, 달을 꿰뚫은 상태로 몸이 뺑뺑 돌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칼자루를 놓지 않으려 애썼다.
……어디선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투드득, 툭!
옷에 달린 단추가 강제로 뜯어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몸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검에 박힌 붉은 달이 점점 작아지더니, 검붉은 살덩어리가 되었다.
아니,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
그와 동시에, 하늘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햇살이 내리쬐었다.
파란 하늘……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보다 밑의 둘이 알아서 나 받아주겠지?
“감히 네놈이!!”
“앗.”
해를 가리며, 나베리우스가 나를 향해 검은 구체를 토해냈다.
빌어먹을, 난 공중에서 몸 돌리는 곡예 같은 거 못하는데!
저것도 마법이라면 성검으로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없어져라!”
검신에서 뿜어져 나간 빛이 검은 구체를 가르며, 저 위에 있던 놈을 후려쳤다.
구체를 가르고 악마를 때린 건 좋은데……
공격에 치중해서 그런 걸까?
구체에서 쪼개져 나온 검은 물방울이, 얼굴에 닿았다.
“……윽!”
뜨겁다.
뜨겁긴 한데, 아프지는 않다.
땅을 녹였던 것처럼 내 살을 녹이진 않는 것 같다.
대신 온 몸이,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웠다.
눈앞이 빙글 돌며 초점이 흐릿해졌다.
의식이 점점……멀어지는 것 같다.
“카엘 님?!”
어느새 땅에 내려온 건지, 로나의 놀란 두 눈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왠지 숨이 가쁘다.
이거 어째, 열병 걸렸을 때 같은데…….
“……상처는 없는 거 같은데, 몸이 엄청 뜨거워.”
“대체 왜…… 아, 아아, 저주, 저주인가?! 아까 그 검은 구체, 저주덩어리였나봐요! 카엘 님, 그거 맞으신 거에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그래도 말뜻이 이해된다는 건, 아직 목숨 간당간당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겠지.
나는 온 힘을 다해 말을 쥐어짜냈다.
“……한 방울……정도……?”
“네? 한 방울? ……어라? 저 등신 까마귀의 특기가 저주이긴 해도, 고작 한 방울로 이렇게 되진 않을 텐데요. 어지간히 허약한 사람이 아니고서야…………앗.”
“……”
눈을 감아버렸다.
“카, 카엘 님, 아니에요! 아니라니까요?! 그런 뜻이 아니니까 눈 떠주세요! 카엘 님, 제발요!”
로나가 내 몸을 흔들며 애원하기 시작했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아, 몰라, 다시 아침도 돌아왔으니까 힘센 놈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입과 눈꺼풀을 꾹 닫고 버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