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외전) 첫 전투, 첫 의식, 그리고…… (Side : Rlona)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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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43화~48화 시점입니다.
녹색머리 마녀가 얼음장벽을 전부 녹여버린 것과 동시에, 보라색머리 마녀가 손가락을 퉁겼다.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보라색머리 마녀와 그 옆에 붙어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순식간에 사라졌다.
용사가 사라진 것에 동요한 것도 잠시, 사제는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
아직 그녀의 적은 건재하기 때문에.
녹색머리 마녀는 아연한 얼굴로 잠시 서 있다가, 곧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도망쳤어! 어떻게, 내가 눈앞에서 놓칠 수가……!”
마녀가 말을 내뱉을 때마다 풍기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탓에, 사제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는지, 마녀는 사제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너…… 너 때문이야! 네가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적의가 이쪽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아마 조금 있으면 자신을 향해 마법을 쏘겠지.
사제는 분통을 터뜨리는 마녀를 보며 실소했다.
어리석다고 했지만, 정말 어리석다.
알아서 틈을 보이다니.
“뭐가 우습……!”
마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사제가, 마녀의 복부를 철퇴로 찔렀기 때문이다.
연이어 허리가 꺾인 마녀의 등을 내리치는 데에, 사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
푹 패인 바닥에 쓰러진 마녀는 의식을 잃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별다른 부상은 입은 것 같지 않다.
아마 본능적으로 보호막을 펼친 것이리라.
사제는 쓰러진 마녀를 내려다보았다.
마녀의 영혼이 풍기는 악취에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는 홀로 고개를 저었다.
‘냄새는 나지만, 확실하진 않아요.’
확실하지 않다면 아직 처단할 순 없다.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단이라 단정하는 건, 전투사제의 금기 제1순위이다.
심증으로 단죄하지 말라.
물증으로 판단하지 말라.
그것은 사람이 할 일이다.
그대는 죄악의 악취를 쫓아라.
그대는 창조주의 뜻을 수호하는 방패요, 마(?)을 대적하여 멸하는 검일지니.
검의 역할은 적을 치는 것.
그러나 그 적을 정하는 것은 검이 아닌, 검을 사용하는 주인이다.
그러므로, 눈앞에 선 자가 사제가 맞서야 할‘적’인지 아닌지 판정하는 것 역시, 사제 자신이 아닌 주인인 창조주의 역할일 터.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사람 흉내를 내고 있을 뿐, 모든 사제는 그녀 자신을 포함하여 주인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전투사제의 주적은 악마와 이단으로,사람 사이에 숨어들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저들처럼 시커멓게 썩혀버리는 사악한 자들이다.
사람들 틈에 숨은 그들을 솎아내기 위해선, 육체가 가진 감각이 아닌 영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전투사제들이 일깨우는 감각은 ‘코’.
죄악으로 썩어버린 영혼의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근데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썩은 걸까요?’
이 세상에 완전히 깨끗한 영혼을 지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세상 누구보다도 창조주와 가까운 대언자조차도 그 진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언자와 용사를 포함한 일반 사람들의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체취 정도라면,
이 섬에 있는 마녀들의 냄새는, 한여름에 땀이 잔뜩 밴 옷을 이틀 정도 묵힌 만큼 고약하다.
그럼에도아직 모자라다.
이단이나 악마는 고사하고, 그들을 섬기는 이단숭배자의 수준조차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본래 그녀의 보직을 따른다면, 어딘가에 있을 원흉을 찾아야 하지만……
‘……지금의 제 역할은 아니죠.’
신성력이 감돌아 연한 금빛으로 반짝이던 사제의 눈동자는, 어느새 본래 빛깔인 잿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제는 철퇴를 등에 다시 매고, 마녀를 내버려둔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카엘 님을 찾으러 가야 할까요?’
보라색머리 마녀가 데려갔으니, 그 마녀가 사는 곳으로 찾아가면 되겠지.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사제는 뺨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아.’
그러고보니 용사가 방에 끌려들어갔을 때, 별안간 사제와 검사를 습격한 남자가 있었다.
얼핏 듣기로는 위층에 던져두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제는 지체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으어억…….”
방을 하나씩 살펴볼 필요는 없을 듯했다.
검사가 배정받은 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간 사제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에 작게 탄식했다.
“어이쿠…….”
남자의 상태는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다리를 ‘부러뜨린’ 것 치고는 게거품을 물기까지 하고 있다.
사제는 신음을 흘리는 남자에게 다가가 대강 살펴보았다.
‘발목, 무릎, 정강이…… 다리뼈가 죄다 토막이 나 있네요. 기술도 좋으셔라.’
부러뜨렸다기보다는 부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게다가 순차적으로 그 과정을 겪었으니 게거품 물 만도 하지.
‘대체 뭐하시던 분이셨을까요?’
불현듯 검사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사제는 곧바로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지금은 그런 걸 고찰할 때가 아니다.
사제가 남자의 두 다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하자, 곧 토막났던 뼈가 다시 붙고 팅팅 불어 있던 다리가 멀쩡히 돌아왔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신음을 흘리며 깨어나지 못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사제는, 그의 앞머리를 들춘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이거 때문인가요?’
무언가 노끈처럼 생긴 것이 남자의 이마에 묶여 있었다.
‘주문이 걸려 있는 끈…… 아니, 말린 내장이네요.’
인간의 이마 안에는 사고(??)를 주관하는 뇌가 들어있다.
이마를 묶는 것으로, 이 사람의 자유의사를 속박한 것이리라.
‘이걸 그냥 끊으면…… 이 사람은 무언가 타격을 입을지도 몰라요.’
사제는 마(?)의 기운은 느낄 수 있을지언정 ‘푸는’ 방법은 모른다.
전투사제의 일은 분쇄하는 것.
마(?)를 부수지 않고, 그냥 걷어버리는 방법은주어지지 않는다.
“으음……”
악마와 관계된 것도 아닌데 사람을 상처 입히는 건 죄다.
그러니 원래는 건들지 않고 내버려두어야 하지만,
“에라이.”
사제가 고민을 끝내고 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리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연 그녀가 고민한 건 남자를 염려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도구 없이 끈을 끊을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이었을까?
그건 사제 자신과 창조주만 알 것이다.
끈이 끊어지면서 빛이 번쩍했고, 잠시 후, 남자가 눈을 떴다.
“으으…… 머리야…….”
남자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남자의 덥수룩한 앞머리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두 눈에는 빛이 들어 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제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사제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걸었다.
사람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데엔 웃는 얼굴이 가장 좋은 법이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나요?”
“어어…… 로나……였던가?”
“기억하시네요. 당신의 이름도 기억하시나요?”
“나? 난……”
남자는 두 관자놀이를 짚은 채, 힘겹게 말을 짜내었다.
“……하……한스…… 한스야.”
……그것이 남자의 진짜 이름인가.
마녀는 남자에게서 이름을 빼앗고, 사고능력마저 빼앗아 완전히 꼭두각시로 만든 뒤, 태연하게 연인 행세를 해온 것이다.
차라리 그냥 노예 취급하는 게 덜 악질일 것이다.
그 끔찍한 행실을 목도한 사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트라토스를 물리친 자의 후예가 이렇게까지 추락하다니!’
물론 사제는 신전에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욕에 휩싸여 살아가며, 멋대로 아이를 훔치는 자들이라고.
그러나 사제가 이곳에 온 건, 그 죄악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용사를 도와, 드래곤 아트라토스를 토벌할 협력을 구하러 왔을 뿐이다.
그래서 사제는 남자를 보고도 모른 척했다.
마녀에게도 모른 척해주겠다 선언했다.
음란한 짓으로 용사를 괴롭히는 마녀들에게도 단순한 경고로 끝냈다.
그러나 그 인내의 고행도 이제 끝이다.
용사에게 직접 해를 끼친 이상, 마녀는 이제 사제의적이다.
처단 대상은 아닐지언정, 마땅한 응보를 내려야 한다.
사제는 다시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기억이 있으시군요. 그럼 레볼트, 라는 마녀의 집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마녀……? 마녀…… 마녀……. 아, 으으윽! 아아아!”
“어이쿠.”
남자가 또 다시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마녀에게 굉장히 오랫동안 시달린 탓에 ‘마녀’와 관계된 건 무엇이든,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길 거부하는 듯했다.
혹시나 싶어 ‘마녀’라는 말을 빼고 다시 물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할 수 없네요…….’
사제는 잠시 남자를 내버려두고, 자신의 짐을 챙기러 방을 나섰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땐, 남자는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사제는 남자를 천천히 일으켜준 후, 생긋 웃었다.
“자, 가요.”
“가다니, 어디로……?”
“섬 바깥으로요! 도와줄 분을 알아요. 가요!”
사제가 남자를 이끌고 길을 걷기 시작할 때는, 이미 하늘에 노을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설마 ‘밖에 나가자’는 말에도 경기를 일으킬 줄은 몰랐어요.’
대체 여기서 어떤 생활을 했길래 사람이 이렇게 망가진 것인지, 사제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덕분에 시간을 좀 잡아먹긴 했지만, 어쨌든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사제는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 저기, 왜 이쪽으로 가는 거야?”
사제가 갑자기 방향을 꺾어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남자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와줄 분이 이 안에 계시거든요.”
“숲?! 아, 안 돼, 이 안엔 요정들이 산다고! 길을 잃을 거야!
“괜찮아요. 길은 대강 기억하고 있거든요.”
사제는 그 깊고 깊은 숲 속에 있던 오두막으로 갈 생각이었다.
요정과 함께 사는 그 빨강머리 엘프라면, 남자를 섬 바깥으로 나가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일이 끝날 때까지 남자를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빨강머리 엘프는 다른 마녀들과 다른‘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희미한 죄악의 냄새마저 덮을 정도로 은은하게 풍기는 내음이 있었다.
그것은 아침 이슬이 맺힌 풀잎의 싱그러운 내음,
맑은 물가에 피어난 초롱꽃과 같은 향기.
실로 요정이 좋아할 법한 냄새였다.
‘흠흠, 어렴풋하게 알 것 같네요.’
갈 때 한 번, 그리고 올 때 한 번.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방향을 기억하는 데엔 충분했다.
처음에 그 집으로 갔던 길을 떠올리며, 사제는 남자와 함께 부엉이 조각상이 있는 공터로 향했다.
“으으……”
남자는 큰 덩치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크게 겁을 먹고 있었다.
불안에 가득 찬 눈과,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경에, 사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 잘될 거에요. 무서운 게 나와도 제가 날려버릴…… 아.”
부엉이 조각상이 있는 공터에 들어선 사제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무시무시한 걸 날려버리겠다고 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만나다니.’
사제는 얼굴을 찡그리며 조각상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마녀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후후.”
짧은 웃음을 흘리며, 적갈색머리 마녀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안녕, 무서운 사제님? 웬일로 혼자 계실까?”
“여긴 뭐하러 오셨어요?”
“우후후, 방금 드와트가 널 고발했거든. 조수를 납치하고, 집을 부수고, 자신을 위협했다~고 하는데?”
사제는 짧게 혀를 찼다.
생각보다 마녀가 빨리 깨어났다.
정말로 별 타격이 들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정도도 소용없다면, 더 세게 가야 하겠네요.’
사제는 한숨을 쉬고, 눈앞에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적갈색머리 마녀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절 잡으러 오셨나요? 다른 두 분은 이미 잡으셨고요?”
“으응~ 정말 아쉽게도, 레볼트가 둘을 딴 데로 보내버렸어. 이 섬 어디에 있을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지 뭐니?”
아직 두 사람이 함께 있다. 그 사실에 사제는 작게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용사 혼자라면 조금 불안하지만, 검사가 함께 있다면 아무튼 그는 무사할 것이다.
두 사람을 찾는 건 훨씬 어려워졌지만, 그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어머, 안심하는 거니? 못 들었어? 너도 체포 대상이라니까?”
“들었어요.그래서요?”
“……자신만만하네? 드와트를 이겼다고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니?”
마녀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사제가 자신을 깔본다고 느꼈는지 목소리에 불쾌감이 살짝 어려 있었다.
그런 마녀를 향해, 사제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자만? 설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만, 자만, 방심, 두려움…….
그와 같은‘전투에 방해되는 감정들’은 전투사제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녀는 방금 알기로, 제법 단단하기까지 한 존재이다.
그를 앞에 두고 자만이라니.
오히려 그녀에겐 약간의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사제는 등에 매고 있던 철퇴를 손에 들었다.
그녀의 두 눈동자에 연한 금빛이 감돌았다.
이것은 사냥이 아니다.
사제는 이 마녀와의 싸움이 자신의첫 전투가 되리라 직감했다.
“……한스 씨, 약간 물러나 계세요.”
“히익!”
가엾은 남자는 마녀를 보자마자 넋이 반쯤 나갔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뒤로 엉금엉금 기어 물러났다.
남자가 적당히 떨어진 걸 확인한 사제는, 마녀에게 덤벼들 때를 재기 시작했다.
대치하는 마녀의 웃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확연히, 두 눈엔 긴장한 기색이 비쳤다.
“…………후후, 어린애라 그런지 씩씩하구나? 그럼 얼른 하나 해치우고 놀아줄게.”
마녀가 가볍게 손짓하자,분명 뒤로 물러났을 남자가 순식간에 마녀 앞에 섰다.
‘이건……!’
그때, 용사를 괴롭혔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사제는 재빨리 마녀에게 달려들었지만, 마녀는 아무 동작없이 남자를 붙든 채 공간을 이동했다.
“칫!”
전력을 내면 이 마녀를 붙잡을 수 있다.
그러나 십중팔구, 그 과정에서 남자가 죽는다.
부상을 입히는 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치유하면 되니까.
그러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죄악이다.
남자가 마녀에게 붙들려 있는 한, 사제는 전력을 낼 수 없다.
그러나 전력을 내지 못하면, 마녀를 붙잡을 수 없다.
사제가 자신을 잡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마녀가 웃음을 흘리며 조롱했다.
“어머, 자신한 것 치고는 별 거 없네? 사제님, 더 힘 써봐~”
“큭……!”
“후후, 드와트는 방심했었나보네. 그럼 베르메가 부탁한대로~”
마녀가 휘저은 허공을 기점으로 돌풍이 불며 사제의 작은 몸을 날려버렸다.
무엇을 위해 거리를 벌린 것인지, 사제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안 돼, 멈춰요!”
그러나 사제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마녀가 아니었다.
적갈색머리 마녀는 얼굴 한 가득 비웃음을 띄운 채, 남자의 얼굴을 붙잡고 눈을 맞추었다.
“한스 씨, 눈을 감아요!”
외치면서도, 사제 스스로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녀의 눈이 붉게 빛나며,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마녀는 남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포개며 깊이 입을 맞춘 후, 늘어진 타액을 손가락으로 훑어 혀로 핥았다.
“후후…… 달콤하기도 하지. 가서 얌전히 있으렴~”
마녀가 손가락을 퉁기자, 남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와줄 테니 용기를 내라며 격려하고 격려해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그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사제는 제자리에 서서 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작은 어깨를 보고, 마녀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잘난 듯이 설교해대더니 이 얼마나 비참한 꼴인가.
마녀는 사제가 하고 있을 얼굴, 분함에 눈살을 찌푸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그 표정을 상상하며 쾌감에 몸을 떨었다.
“어머, 사제님. 분해서 우는 거야? 후후후, 너무 자책하지 마. 네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강한 걸 어쩌겠니?”
‘아아, 안 되는데.’
철퇴를 쥔 사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감정을 다스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고, 대언자가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하지만 율리아 님, 이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손꼽아 기다리던, 첫 전투인데……!
“……!”
신나게 비웃던 마녀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그제야 사제에게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마녀의 몸에 긴장이 감돌았다.
“흐흐흐……”
더는 참지 못했는지, 사제는 기어코 웃음을 터뜨렸다.
둑이 터진 것처럼, 사제는 참았던 웃음을 다 쏟아내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무, 뭐가 그렇게 우습니? 혼자만 웃지 말고 나도 알려줘~”
평정을 가장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마녀의 목소리엔 차마 감추지 못한 긴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제는 고개를 들었다.
용사에게조차 보인 적이 없는, 마음속 깊이 우러나온 환희에 가득 찬 웃음을 보이며, 사제는 크게 외쳤다.
“이 자리가 내 주를 위한 나의 전장이 되며! 이 손이 내 주의 적을 멸할 검이 되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판결을 내리듯 철퇴로 땅을 울린 후, 사제는 몸을 낮추어 전투태세에 들어섰다.
마녀를 노려보는 두 눈동자는, 신성력이 감돌며완전히 금빛이 되어 있다.
지금 그녀의 마음속엔 단 두 감정만이 떠올라 있었다.
하나는 창조주를 위해 헌신하는 기쁨, 다른 하나는 반드시 악을 멸하겠다는 투지였다.
마녀에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성이 진실을 고했다.
남자는 사제를 묶은 제약에 불과했다는 것을.
진정으로 사제를 상대하려 했다면, 남자를 먼저 보내선 안 되었다는 것을.
“각오하십시오!”
응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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