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62화 (62/475)

〈 62화 〉 외전) 첫 전투, 첫 의식, 그리고…… (Side : Rlona) (2)

* * *

마녀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파르르 떨고, 턱 밑은 공포에 찬 눈물로 흥건하다.

이미 역할을 잃은 두 다리 대신, 두 손과 팔이 제 주인을 살리고자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누, 누가 좀…… 누가 좀 살려줘……!”

비통에 젖은 마녀의 외침은 실없이, 허무하게 흩어져버렸다.

마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도 잡혔던 마력이 어째서 뚝 끊어진 것인가.

어째서 다른 마녀와 연락할 수 없는 것인가.

저 사제는 그저, 철퇴를 땅에 내려쳤을 뿐인데……!

사제는 무감정한 눈으로 땅을 기는 마녀를 내려다보았다.

마력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 마력이 없어졌을 때를 전혀 대비하지 않다니.

어리석기 그지없는 자들이다.

‘어리석으니 영혼을 썩히겠죠.’

덤덤히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제는 철퇴를 휘둘러 마녀의 어리석음을 단죄했다.

왼팔과 왼손, 오른팔과 오른손.

곧 사제가 끊어 두었던 흐름, 이들이 말하는 마력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마녀는 아무 짓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아아, 아아아아……! 어, 어째서, 어째서어어!!”

어째서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인가?

마녀는 그 하나만을 묻고 있었다.

‘주님께서 끊으셨으니까요.’

마녀가 아직 두 다리로 섰을 때 보았던, 사제가 철퇴로 땅을 내려치는 모습은 위협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퇴를 북채로, 대지를 북으로 삼아 울리는 명령,

전투사제에게 허락된 창조주의 권능.

마법이든 주술이든, 심지어 다른 사제가 보이는 권능일지라도,발현하기 전에그 힘을 끊어버리는 능력이었다.

사제는 한쪽 발로 마녀를 뒤집어, 자신의 얼굴을 보게 만들었다.

“으, 으아아아…….”

힘을 잃은 마녀의 눈에 비친 사제는, 금빛 눈을 가진 사신처럼 보였다.

절대로 만날 일이 없으리라 굳게 믿었던 죽음 그 자체다.

공포에 질린 마녀의 뾰족한 귀에, 사제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위슨 씨, 어디로 데려갔나요?”

“모, 몰라……! 난 그런 거 몰라!!”

사제는 얼굴을 찡그렸다.

짙은 죄악의 냄새.

거짓의 악취가 풍긴 탓이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녀 나름대로 마지막 자비를 베푼 셈이었는데.

이 어리석은 마녀는 그것도 모른 채, 제 발로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사제는 덤덤히 철퇴를 지팡이처럼 짚고 기도했다.

“지고의 주께 청하나이다. 5798번째 주의 검된 로나, 죄인으로부터 진실을 요(?)하오니.

자비로우신 주여, 방을 열어주소서.”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에 마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 어어?!”

마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처음 보는 방에몸이 형틀에 꽁꽁 묶여 있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꼼짝도 할 수 없다.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당황해하는 마녀의 옆에,사제가 덤덤한 얼굴로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

“창조주여, 이 공간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성호를 그은 후, 사제는 아무 감정도 없는 잿빛 눈으로 마녀를 내려다보았다.

“여긴고해소. 숨겨진 진실을 꺼내고, 거짓을 고한 죄인의 죄를 씻어내는 곳이랍니다.”

“조, 죄를 씻는다고? 웃기지 마! 나, 내가 너희 인간 사제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를 줄 알아?!”

마지막 발악인 것일까?

마녀는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진실을 꺼내기는 무슨! 원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고문할 뿐이잖아!! 고해소는 개뿔!!”

마녀는 알고 있었다.

고해소는 신자(?者)가 편히 죄를 고하고 뉘우칠 수 있도록 얼굴까지 가려주는, 따스한 사랑을 베푸는 장소이다.

그러나 사제가 마녀를 데려온 이곳은 다르다.

따스한 사랑 따위 없는, 고통만이 존재하는 지옥이다.

날조와 기만으로 이루어진 저주받을 곳이다.

“고문? 사랑이 없다? 날조? ……오해가 있으시네요.”

날카롭게 일갈하는 마녀를 향해, 사제는 미소를 지었다.

“다독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에요. 때로는따끔한 회초리를 들어야 하죠.”

회초리라니, 마녀는 기가 막혔다.

창, 못과 망치, 바늘, 톱, 불과 쇠 도장, 칼, 집게……

이것들이 어디를 어떻게 봐서 회초리란 말인가?

사제의 말은 이어졌다.

“저는 여기,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곳에서 당신의 거짓을 완전히 씻어낼 겁니다.”

“거, 거짓? 뭐가 거짓이라는 거야!! 위슨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했잖아!!”

“아니요. 당신은 알고 있어요.”

마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이라도 말해야 할까?

그러나 그건 당장은 무사하더라도, 이후에 베르메에게 밀고죄를 물어 형벌을 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온 몸을 구더기가 파먹는 그 끔찍한 고통을 백 년이나 겪는 것에 비하면, 이딴 고문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리 오래 시행되지도 않을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분명 누군가 구하러 와줄 테니까.

그렇게 결론 내린 후, 마녀는 자신 있게 외쳤다.

“흥, 뭘 하든 네 뜻대론 안 될걸?! 조금 있으면 분명 내 자매들이……!!”

“못 와요.”

사제는 단언했다.

“여기는 당신과 내가 있던 세계와, 창조주께서 계신 천상의 중간에 있거든요. 차원, 좌표, 위상…… 그런 게 다른 곳이라서 간섭 못해요.”

“뭐……?!”

믿을 수가 없었다.

사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마녀는 지금 다른 차원에 붙잡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다른 마녀들은 자신이 이런 곳에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없다.

간섭할 수 없다.

어쩌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지만 최악으로는……

“시간의 흐름도 다르니, 다시 돌아갔을 때는 일 초도 흐르지 않았을 거에요.”

“아, 아아……!”

“미리 말해두는데,당신에겐 죽음이 허락되지 않으며, 잠드는 것도 용납되지 않아요.

당신에게 허락된 것은 단 하나, 오직 진실을 고하는 것뿐.”

마녀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사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을 이었다.

“……기억하시나요? 내 앞에서 또 누군가를 홀린다면, 이 눈을 뽑아서 으깨버리겠다고 했었죠.”

“아, 으아, 아아아……!”

공포에 질린 마녀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사제는 빙긋 미소 지었다.

“아, 걱정 말아요. 여기서는 무엇을 해도 잃어버리지 않으니까. 눈을 뽑든, 손가락을 자르든…… 심지어 머리를 쪼개도 다시 붙는답니다.

여기서 무얼 당하든, 당신의 몸은 멀쩡해요. 감각이 죽는 일도 없으니 염려 마세요.

창조주께서 이 공간에 한해 허락하신 기적이랍니다!아아, 정말 자비로우시지 않나요?”

죽을 수도 없고, 기절할 수도 없으며,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구출을 기대하며 버티는 것도 소용없다.

“그럼……

……의식을 시작합니다.”

마녀의 눈물 어린 붉은 눈동자 속에서, 사제가 선포했다.

철푸덕 엎어져 있는 사람을 질질 끌고 가면서, 사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고해소에서 하는 의식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성과는 그리 없네요.’

신전에서 들었던 선배 사제들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단숭배자들은 감성에 치우쳐 있으니, 의식을 치를 거면 반드시 한데 모아서, 간이식으로 치르는 게 효능이 크다더니.

‘위슨이 어디 있는지는 알았는데…… 아직 궁금한 건 잔뜩 있는데 말이죠…….’

사제가 질질 끌고 가는 이 적갈색 마녀는 고통에 내성이 너무 없었던 건지, 생각보다 의식이 금방 끝났다.

설마 눈 뽑고 손가락에 못 박는 정도로 정신을 놓아버릴 줄이야.

혹시 몰라 손을 분지르고 손목을 밧줄로 묶어서 끌고 가고 있긴 하지만, 아마 완전히 풀어주어도 더는 어떤 수작도 부리지 못하리라.

더는 죄를 짓지 않고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곧 해가 질 테니 밤을 보낼 곳을 찾아야 한다.

잠깐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오, 옵센 언니?!”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또다른 마녀와 맞닥뜨렸다.

전혀 기억에 없는 걸로 보아, 오늘 아침에 스쳐지나간 적도 없는 듯했다.

“너, 너 뭐야! 언니에게 무슨 짓한 거야?!”

“아, 마침 잘됐네요.”

밧줄을 놓고, 사제는 등에 맨 철퇴를 손에 쥐었다.

“언니! 옵센 언니! 내 말 들려?!”

엎어져 있던 마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은 완전히 초점이 풀려 있었지만, 자신을 부른 마녀를 알아보는지 약간 빛이 돌아오는 듯했다.

“아, 아아, 안대…… 다, 다라나……!”

“조금만 참아! 내가 금방……”

마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잠깐 고개를 돌린 그 시간, 그 짧은 새에 사제는 이미 품을 파고들어 있었다.

“……!”

반사적으로 내민 팔이 부숴지는 격통이 흘렀다.

마녀는 이를 악물며, 곧바로 남은 팔을 휘둘렀다.

사제를 둘러싼 땅이 푹 꺼지며 생겨난 구덩이가, 그녀의 작은 몸을 꿀꺽 삼켰다.

“죽어!!”

곧바로 칼날처럼 뾰족한 얼음송곳을 만들어, 그 구덩이 위로 떨어뜨렸다.

마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아 신음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저 정도로 정신 나간 꼬맹이였을 줄이야.’

어쨌든 죽였으니 됐다.

마녀는 비틀대며 다시 일어나 자신의 자매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말도, 안 돼……!”

구덩이 바깥으로 얼음가루들이 튀며, 그 속에서 사제가 튀어나왔다.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구덩이 벽을 차며 올라오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경악에 빠져 대응할 생각도 잊은 마녀와 달리, 사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땅 위에 올라오자마자 마녀에게 접근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마녀의 두 다리는, 그 순간부로 역할을 잃었다.

“아아아아아아아!!”

있을 수 없는 일을 겪는 충격과 격통 때문에, 마녀는 손도 잃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비명을 질러대었다.

“으음~ 고해소에 두 명은 못 넣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기도를 하기 전, 사제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마녀를 향해 방긋 웃었다.

“제가 물어볼 게 좀 많거든요? 협조, 잘 해주세요.”

“으, 으으으……!”

사제의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지고, 기도를 읊는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적갈색머리 마녀의 눈에서, 완전히 빛이 사라졌다.

철창문을 열어 두 짐덩어리를 집어넣은 후, 사제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를 잠자코 듣던 보라색머리 마녀가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큰 수확이 있으셨나봐요? 사제님.”

“네. 알고 싶은 것들은 다 들었거든요. 위슨 씨가 어디 있는지, 여기 수장이 하려는 의식이 어떤 건지. 덤으로 이런 곳이 있는 것도 알았고요.”

감옥이 있을 거란 생각은 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방비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출입문은 오로지 철로 된 육중한 문 하나뿐, 벽 군데군데에 창은 나 있긴 해도, 역시 쇠창살로 되어 있어서 맨손으로는 뚫을 수 없다.

애초에 마녀는 이 감옥의 벽을 오를 수도, 안쪽에서 벽을 부수도 탈출할 수도 없다.

이 안에서는 어떤 마법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녀에겐 끔찍하기만 한 이 감옥탑은, 사제에겐 매우 든든한 쉼터로 보였다.

보라색머리 마녀는 감탄한 듯이 말했다.

“범상치 않은 분이라곤 생각했는데, 짐을 끌면서도 용케 여기까지 오셨네요. 내 자매들이 가만 안 뒀을 것 같은데.”

“속전속결이 저희 주 가르침이거든요.”

마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처구니없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심으로 유쾌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제는 천천히, 그림자 속에 누워 있는 보라색머리 마녀를 향해 돌아섰다.

“카엘 님과 메린 님은 어디 계세요?”

마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은 내 옛 친구들에게 보냈어요. 그 친구들이 그 다음에 어디로 보냈을지는 모르겠네요.”

“친구? 마녀인가요?”

“마녀가 어떻게 친구가 돼요? ……정령이에요. 정령.”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이라면 그 두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을 데려갔다던 마녀가 감옥에 있는 걸 봤을 땐 놀랐지만, 아무튼 용사는 아직 무사하다.

그럼 그걸로 됐다.

“……”

문득, 사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카엘 님, 절 찾으러 와 주실까요?’

카엘, 그는 용사이다.

북의 대재앙, 드래곤 아트라토스를 물리치도록 택함을 받은 존재다.

창조주의 계시가 내렸던 그날 밤, 대언자는 특별사제들을 한데 모아서 말했었다.

­­……너희들 중 하나가 용사와 함께 사명을 완수하러 갈 거다……

……그 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보충할 거야…….

신전을 떠나기 이틀 전, 대언자가 선택한 것은 전투사제였다.

그 사실을 통보하는 전언과 함께, 대언자는 사제를 위한편지를 보냈다.

­­……네 역할은 그가 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거란다. 너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망설임 없는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그 강인함으로 그를 이끌거라.

하지만, 사명 외에는 가능하면 그의 뜻을 따르렴. 그 역시, 너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구나……

신전을 떠나던 날, 용사와 다른 사람들이 모인 회의실로 가는 길에 들은 동료의 말을 떠올렸다.

­­으응~ 글쎄, 싸우는 건 한 번도 못 봤거든……. 그래도 대언자님이 널 지명하신 걸 보면, 그리 강하진 않지 않을까?

……그리고 사제는 용사와 마주했다.

약간 어두운 갈색머리에 깊은 물 속을 연상시키는 푸른 눈동자를 지닌 용사는, 어디를 어떻게 봐도 전사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처음 만나는 상대라 잔뜩 긴장한 사제에게, 용사는……

­­로나, 모처럼이니 다시 소개할게……요. 난 카엘 에스트렐. 앞으로 잘 부탁해……요.

왠지 모르게 긴장이 섞여 있긴 했지만, 용사는 다정하게 웃으며 사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얼굴에는 어떤 거짓도, 자만도, 체면치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어리다며 무의식적으로 내려다보는 시선도 없었다.

정말로 순수하게, 한참 어린 자신을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얼굴.

……그 얼굴은 사제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카엘 님이라면……’

그로부터 함께한 지 이제 일주일 정도 되었을까?

용사는 정말로 전사가 아니었다.

몬스터의 공격을 막는 게 고작일 정도로 약했다.

그뿐 아니라, 용사는 생각보다 더 여리고, 물렀다.

거짓을 풀풀 풍기는 호숫가의 남자를 마주했을 때, 사제는 용사가 확실하게 진실과 거짓을 알 수 있는 ‘의식’을 거부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다.

의외의 반응에 너무 놀란 탓에, 간이식이 싫으면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었다.

‘하지만……’

용사는 그녀가 처음 만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제는 저도 모르게 용사와 맞잡았던 오른손을 슬며시 쓰다듬었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를 떠올리는 사제의 입이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그녀 자신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시겠죠. 반드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사제는 벽에 걸려 있는 꺼진 횃불을 가져오더니 철퇴를 들고 빈 감옥으로 갔다.

횃불을 창살 사이에 두고 그 위에 철퇴를 댄 후, 창살에 마구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불꽃이 일어날 정도로.

“저기~ 나 잘 생각이었는데! 엄청 시끄럽거든요?!”

“잠시만요~!”

창살이 거의 다 닳아버렸을 즈음, 그 불똥을 죄다 받던 횃불에 드디어 불이 붙었다.

사제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며, 품속에서 이전에 보호의 기도를 올려 둔 우슬초 더미를 꺼냈다.

철문 앞에서 우슬초 한 포기에 불을 대자, 풀이 순식간에 타버리며 연기가 되어 퍼졌다.

악마나 악령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연기이다.

마녀들도 같은 악취를 풍기고 있는 만큼, 이 연기가 남아 있는 한 절대로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사제는 연이어 두 포기를 더 태운 후, 빗장을 풀기 위해 철문에 손을 뻗었다.

“콜록콜록! 아, 미치겠네, 진짜! 사제님, 또 뭐 했어요?!”

위쪽에서 불평이 쏟아졌다.

‘아, 연기니까 위로 올라가겠군요.’

의식을 마친 두 마녀는 어쨌든, 불손한 의도가 있었긴 해도 용사를 도운 마녀가 괴로워하는 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해요~ 마(?)를 쫓아내는 신성한 연기라서요~”

“하나도 안 미안한 거 티나거든요?! 아으으, 콜록콜록!”

“진짠데…….”

사제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집어넣은 두 마녀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보라색머리 마녀는 연신 기침하긴 해도 그리 힘들어보이진 않았다.

‘저항이 있는 건가요? 거 참, 신기하네요.’

“사제님 때문에 잠 다 깼잖아요! 콜록콜록!”

“아하하, 당신 속에 마(?)가 있어서 그런 걸 어쩌겠어요?”

“어머머, 이 사제님, 말하는 것 좀 봐!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기침과 재채기를 반복하면서, 보라색머리 마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제 어쩌실 거에요? 여기서 농성이라도 하실 건가요?”

“카엘 님이 오시는 대로 탑으로 가서, 위슨 씨를 구하러 갈 거에요. 왜요?”

마녀는 말없이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올지 말지는 차치하고, 위슨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요?”

“저 엘프가 제구고(???)에 있다던데요.”

“그럼 꼭대기층이네……. 콜록콜록! 아으, 냄새……. 에취! 킁. 거기 걸어서 올라가려고 하면 도착하기 전에 탈진해 죽을걸요? 콜록콜록!

그러니, 훌쩍, 내가 도와줄게요. 나도 데려가요.”

사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당신을 여기 가둔 마녀를 죽이려고요?”

“아니요. 내 속에 마(?)를 처넣은 년을 죽이려고요.”

“아아.”

아마 베르메를 말하는 것이리라.

‘고해소’에서 마녀가 말했다.

베르메는 보름달이 뜬 밤에, 이미 죽은 마일린의 혼을 불러오려고 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마일린이라는 사람이 이 땅에 발을 딛고 호흡하는 육체를 가진 자였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이미 창조주에게 가 있을 테니까.

보름달이 뜨는 밤엔 세상 뒤편에 있던 마(?)가 표면으로 건너온다.

그렇더라도 무언가에 그마(?)를 깃들이게 하려면, 세계의 천칭을 맞추기 위한 대가가 필요하다.

그 베르메라는 마녀는 이 섬의 온갖 생명, 그들이 말하는 마력을 담은 단도로, 산제물의 심장을 찌르고 그 피를 전부 바치려 한다.

그만한 공을 들여야만 깃들일 수 있는 마(?)는, 악마밖에 없다.

즉, 베르메는 악마를 불러오려고 하고 있다.

그 마녀는 악마숭배자인 것이다.

‘어쩐지 냄새가 지독하더라니.’

사제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은 카엘 님이 하시겠지만…… 네, 내일 오시면 잘 말씀드릴게요.”

“콜록콜록! 아으, 눈 따가워……. 안 올지도 모르잖아요.”

마녀의 말에, 사제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오실 거에요!”

사제는 단언했다.

“카엘 님이라면, 반드시.”

얼마나 걸리든, 용사는 반드시 올 것이다.

설령 그녀가 여기 있는 줄 모르고 흑단나무로 간다고 해도, 분명 마지막엔 그녀를 찾아올 것이다.

“아, 꺼내드릴까요?”

별안간 던져진 사제의 제안에, 마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잠겨 있는데…….”

“제게 열쇠가 있답니다!”

“열쇠? 설마 철퇴 말하는 건 아니겠죠?! 됐어요, 됐어! 하지 마요!”

“히잉……. 싫으면 말고요!”

뾰로통한 얼굴로 쏘아붙인 후, 사제는 빈 감옥의 침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것에 감사하며, 내일을 위한 창조주의 가호와 힘을 바랐다.

‘……지존자시여, 부디 당신의 택하신 용사를 지켜주소서. 끝까지 그를 도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기도를 마친 후, 사제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썩은 지푸라기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보다도 더 역한 냄새를 맡고 다니는 사제에겐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꼭 오실 거에요.’

어둠 속에 잠긴 천장을 바라보며, 사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용사가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슬초 연기가 사라진 후의 일도 걱정되지 않는다.

내일 얼마나 많은 마녀와 싸우건, 베르메가 얼마나 강하건 전혀 상관없다.

심지어, 사제는 베르메가 악마를 부르려 한다는 것도 전혀 염려되지 않았다.

그녀에겐 용사에게 받은 말이 있으니까.

­­아무튼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다 잘될 테니까. 로나는 기다리고 있을게요, 용사님.’

그와 맞잡았던 손을 다시금 감싸 쥐며, 사제는 눈을 감았다.

감옥 안이지만, 썩은 내 나는 침대이지만, 기침 소리가 거슬리지만……

여느 때보다도 더 편안한, 그런 잠자리였다.

그리고 다음날 이른 아침, 용사는 그녀의 굳건한 믿음에 부응해주었다.

하마터면 철퇴로 인사를 대신할 뻔하긴 했지만, 용사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무사를 기뻐했다.

이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가?

“로나, 너…….”

“맞다. 두 분께 알려드릴 소식이 있어요.”

완전히 깨끗해진 두 마녀를 본 용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적갈색머리 마녀에게 괴롭힘 받았었으면서, 그 여자의 말로를 동정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무른 사람인가?

“……”

그리고 지금, 용사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을 하면서도, 철문 앞에 서서 성검을 쥐고 있다.

그의 푸른 두 눈동자엔 굳은 결의가 차 있다.

섬에 오기 전날 밤, 모닥불 앞에서 중얼거리며 했던 그 눈빛이다.

­­……나는, 용사다.

그렇게 되뇌일 정도로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으면서도 그는 여기까지 왔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심지어 검사의 어깨에 업혀 있는 눈 먼 마녀보다도 약하면서도,

탈출이 아닌 구출을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리를 떨면서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서 있다.

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그렇다. 그는 강하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강한 영혼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용사인 것이다.

­­그 역시, 너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구나

대언자의 편지말이 다시 떠올랐다.

‘예. 율리아 님 말씀대로네요.’

사제는 마지막 심호흡을 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히 미소지었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지만요.’

사제의 ‘작은’ 신뢰에 동요하고, 칭찬을 거부할 정도로 스스로를 싫어하는 것.

이 사명을 마치기 전에, 자신이 그걸 고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가자!”

용사의 힘찬 외침과 함께, 검사가 철문을 걷어차 열어젖혔다.

문이 열리자마자, 용사는 주저없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사제는 그 뒤를 따라 달리며, 맨 앞에 서서 달리는 용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용사의 영혼을 지키자.

그의 신념이 꺾이지 않도록, 영혼이 깎여나가지 않도록 지키자.

그리고 검사와 같이, 사명을 마친 뒤에도 그가 반드시 살아남도록 하자.

‘주여, 부디 허락하소서.’

간절히 기도하며, 사제는 문 앞에 진치고 있던 마녀들을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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