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65화 : 오해는 빨리 풀수록 좋지 (1)
* * *
말에서 내린 후, 마을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곧바로 촌장이 달려 나온 걸 보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특하기도 하지.
“오오, 나그네님, 정말 빨리도 돌아오셨군요! 근데 아이들은 어쩌시고,”
그는 말을 다 맺지 못했다.
놈의 면상을 보자마자 내가 바로 주먹을 갈겨버렸기 때문이다.
허를 찔린 탓에, 놈은 덩치값도 못하고 바로 쓰러졌다.
멱살을 잡아서 두 대 더 갈겨주었다.
“거기 서.”
머리 위에서 메린이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검을 뽑은 걸 보니, 다른 놈들이 달려들려고 했던 모양이지?
놈들은 메린의 실력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목숨 아까운 줄 알면 덤비지 않겠지.
나는 ‘촌장’의 멱살을 잡은 채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가짜 아빠 노릇까지 하면서 애들을 어쩌려고 했던 거냐고!”
“이, 이게 대체 다 무슨 말씀이신지…….”
“시치미 뗄 생각 마,다 들었으니까! 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순순히 불어!!”
애들이 아무리 거짓말을 잘한다고 해도, 과자 앞에서는 다들 솔직해지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게 요정이 만든 젤리라면 그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지.
덕분에 애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이 마을은 그 애들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그 애들의 가족도 뭣도 아니라는 것을!
잘 살던 애들을 납치한 망할 새끼들이라는 것을!!
“으, 으으흐, 흐흐, 흐흐흐흐!!”
고개를 떨군 채 부들부들 떨던 놈이, 갑자기 실성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그러고 있으니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흐하, 하하하하! 아~ 이거 아깝구만. 멍청하게 생긴 거 치곤 눈치 빠른데?”
“……!”
“그래, 나나 여기 있는 년놈들은 쟤네 부모 아니다. 그래서 뭐?내가 뭐 하려고 했건 네 녀석이랑 무슨 상관이지?”
“말 안 하시겠다?”
“안 하면뭐 어쩔 건데, 애송이 새끼야아아아악!!”
놈의 허벅지에 박았던 단도를 뽑아, 붉은 피가 흐르는 칼날을 보여주었다.
“이럴 건데? 다시 묻는다. 애들을 데리고 뭐하려 했냐?”
“으, 으으윽……! 애, 송이 주제에……아아아아악!!”
이번엔 어깨에 구멍을 내주었다.
“뭐하려 했냐?”
“꺼, 꺼져……!”
팔뚝.
“뭐하려 했냐?”
“으으, 끄으으윽……!”
종아리.
“뭐하려 했냐?”
“미, 미친 새끼가……!”
“내가 오른손잡이라서 반대쪽은 못 찌르거든? 옆구리에서 내장 흘리기 싫으면 말해. 너 말고 물을 놈은 수두룩하니까. 애들 데리고 뭐하려 했냐? 말해.
말하라고, 이 개새끼야아아!!”
……잠시 후, 상황이 정리됐다.
마을 사람인 척하고 있던 일당들은 전부 손발을 묶어서 창고에, ‘촌장’인 척하고 있던 놈은 광장에 있는 천막 중 대충 굴려두었다.
놈까지 창고에 넣기엔 공간이 너무 비좁았던 탓이다.
손을 툭툭 털며, 한숨 돌렸다.
“여긴 이제 됐어. 메린, 위슨에게 가서……”
“알았어. 수레마차 끌고 올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는 메린을 지켜본 후, 나는 제자리에서 창고를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식량이나 잡화는 하나도 없고, 손발 꽁꽁 묶여 있는 사람만 뒹굴고 있다니.
“나 원, 이게 창고야, 감옥이야? 세상 참 살벌해졌구만.”
“네가 만들었잖아! 지랄 그만 떨고 얼른 이거나 풀어! 저 놈들 잡았으니까 됐잖아!”
아까 내 심문을 받아주었던 친절한 젊은이가 몸부림을 치며 항의하길래,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해주었다.
“싫어.”
창고에 공간이 부족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까 붙잡은 놈들이 여전히 여기에,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널부러져 있기 때문이다.
두 세력이 서로 붙으면 싸움 날 것 같아서, 가능한 서로 맞은편 구석으로 떨어뜨리긴 했지만.
“야, 이 새꺄! 이럴 땐 보통 풀어주지 않냐? 이 놈들이 납치범이면 자연히 우린 그 반대편 아니냐? 충분히 설명해줬잖아!”
“아니, 너네가 결백하단 증거가 없잖아.”
“말했잖아! 우린 애들 구하러 온 거라고! 클라크 경의 부하라고!”
“지랄 마, 도적 새끼야. 문양도 없는 놈이 기사 나리 부하는 무슨.”
시골 위병들도 제 주인의 문양, 그것도 없으면 색깔이라도 표시하는 법이다.
내 지적에, 녀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말! 했잖아! 소문 날까봐! 일부러! 안 입었다고!”
“대장은 입어 놓고 말이지.”
“군기 때문에 입었다고!! 콜록콜록콜록!”
도적과 병사의 차이점은 딱 하나, 문양이다.
하는 짓 자체는 별로 다르지 않을 거다.
아마 이 녀석들의 대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문양을 보이고 다닌 거겠지.
참고로 이 친절한 젊은 기사님은 마티아스 토레스헴이라고 하는데, 그 대장의 종자라고 한다.
“댁 이름이 뭐랬지?”
“우허어으어억! 콜록! 콜록콜록콜록콜록!”
녀석의 기침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나는 관대하니까.
“그래서 이틀 전엔 왜 왔냐?”
“말했잖아아! 그냥 마을인 줄 알고 물자랑 정보 얻으려고 왔다고오!”
덧붙여, 이 놈들의 대장이 마을 분위기가 수상한 걸 보고 감시를 시켰다고 한다.
어제 무언가 수상쩍은 움직임과 더불어, 여기 있는 애들이 다들 붙잡혀 왔다는 걸 알고, 오늘 구출하려고 습격했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자? 역시 도적이네.”
“아니라고…… 정중히 부탁해서 얻은 거라고……!”
이 녀석 이젠 거의 울기직전이다.
“그래그래, 정중히 부탁했겠지. 칼 들고 말야.”
세간에선 그걸 강도질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저 놈들이 자발적으로 식량 등등을 내놨을까?
어휴, 끔찍한 도적놈들 같으니라고.
“아니라고오오…… 칼은 빼지도 않았다고…… 그냥 대표 두 명만 가서 부탁했다고오오……!”
“아~ 두 명만 직접 얘기하고, 나머지는 뒤에 우르르 서 있고? 강도 새끼 맞구만. 딱 도적단이네.”
“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이젠 발광하기 시작했다.
더 물어봤다간 피 토하겠네.
할 수 없군.
나는 창고를 나서며, 녀석에게 다정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럼 마티아스, 네 주인님 올 때까지 잘 쉬고 있으라고!”
“너, 너……! 야, 너 이 개새, 일부, 일부러! 끄어, 으어어…… 너, 너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새꺄!!”
묶인 상태로 폴짝폴짝거리는 게 꼭 물 밖으로 튀어나온 생선 같군.
“미안, 내가 좀 바빠. 어울려줘서 고마워! 그럼 이만!”
혈기 넘치는 함성과 고함으로 배웅을 받으며 창고 바깥으로 나왔다.
체증이 싹 내려간 듯이 후련하고 상쾌한 기분이다.
머리도 맑아졌겠다, 나는 오후의 햇살을 한껏 받으며, '촌장'놈에게 들은 이야기를 찬찬히 정리했다.
여기 있던 놈들은 밀수 등을 전문으로 하는 불법상인들로, ‘두목’의 명령으로 애들을 납치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윈플이 아닌 옛날에 버려진 마을로, 놈들이 전부터 비밀거래 장소로 쓰던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발견했던 그 사람은……
“윈플이라는 마을, 몇 년 전에 없어졌다나봐요.”
“……로나.”
‘촌장’의 치료를 마쳤는지, 로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야~ 깜짝 놀랐어요. 카엘 님도 칼 쓰실 때가 있네요!”
“……그러게. 너무 열 받았었나 봐.”
왠지 겸연쩍은 기분이 들었다.
맨날 메린이나 로나 녀석에게 과격하다 뭐다 잔소리를 퍼부었는데, 정작 내가 그대로 저질러버렸으니.
“너희 둘에게 물들었나?”
“와, 그럼 좀 있으면 카엘 님도 저랑 같이 손가락에 못 박으시는 거에요? 앗싸!”
“안 해, 임마.”
로나 녀석이 말하는 저건 뭐라고 할까,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너머에 있다고 할까?
이 녀석은 사제니까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그 경계를 넘으면 무언가 망가질 것 같아.
로나는 킥킥 웃었다.
“가끔은 참지 말고 감정대로 움직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카엘 님은 사람이잖아요. 너무 쌓아두기만 하면 안 좋다고요.”
“……그런가.”
“그래요. 효율 때문에 그러신 게 아니잖아요? 그냥 감정에 휩쓸린 거지. 사람은 그런 법이랍니다.”
사제님이 저런 말을 하니까 뭔가 이상하다.
이단 잡는 전투사제라서 그런가?
“……의외네. 오늘 사람도 몇 죽였으니까 걱정하거나 설교할 줄 알았는데.”
“네? 아아…… 그건 별 문제 안 돼요. 카엘 님은 이미 후회하고 계시니까.”
“후회……?”
……하고 있나?
잘 모르겠는데.
“히히, 저만 알 수 있는 그런 게 있답니다! 아무튼 카엘 님은 괜찮아요.”
“어…… 그래……?”
사제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이거, 카엘 님께 드리려고 왔어요.”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척 내밀었다.
낡디 낡은 수첩과, 지난번에 그녀가 낚아챘던 편지였다.
“일지에요. 편지는 안 뜯어봤는데…… 글쎄요, 궁금하시면 뜯어보셔도 될 것 같아요.”
“일지?”
“조사일지요. 장례식 전에, 혹시나 싶어 마지막으로 살펴봤거든요.
……이런 물건, 메린 님은 흥미 없으셨을 것 같아서요.”
“……”
일순 로나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몇 시간 전, 그 작은 숲에서 봤던 그 표정이다.
하지만 아직 낮이다.
긴긴 이야기를 지새울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고.
“그 나그네분, 지금은 다른 마을에서 아이와 살고 있었나봐요. 그러다 아이가 없어졌고, 그래서 찾으러 다니다가…… 여기까지 왔던 것 같아요.”
원래는 잠시 밤을 보내거나 비만 피하려고 했으나, 무언가 수상한 점을 느끼고 이것저것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러다 결국……
“위슨 씨 말로는, 요 근처에서 자라는 독버섯을 먹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그 숲에 버렸겠죠.”
어쩌면 그 움직임 때문에 구출단을 자칭하는 저 도적단 같은 수색대에게 들켰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편지 가로챘구나.”
“네. 게다가 그 ‘촌장’, 거짓말 냄새가 풀풀 났거든요.”
가짜인 걸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왜 말 안 하고 애들을……
……아아, 자칭 구출단이 어떤 놈들인지 모르니까 일단 구하고 본 건가?
“……아이들의 행방을 놓칠 바엔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럼요!”
망설임 하나 보이지 않는, 굳건한 확신으로 가득 찬 웃음이었다.
……로나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만약 그때 윈플을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면 그걸로 끝, 로나는 일지를 봤던 사실조차도 그냥 그대로 묻어버렸겠지.
윈플을 찾아가기로 했을 때 말하지 않은 건, 혼자 먼저 조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편이 몰래 알아보기엔 편할 테니까.
의도는 알겠지만…… 뭐라고 할까,
뒤에서 조종당한 것 같아서 썩 좋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다음부턴 미리 말해줘. 하루이틀 볼 사이가 아니잖아.”
“이런, 불쾌하셨나 보네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전부 말해달라는 건 아니야.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게 있는 법이니까. 너도 네 생각이란 것도 있고.
……그냥 난, 네가 나나 다른 사람을 더 믿어줬으면 좋겠어.”
“믿는데요?”
로나는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표정도, 말투도 전혀 다른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언가 단단한 게 가로막고 있는 듯한, 그런 답답한 느낌.
……열 네 살 소녀가 지녀도 될 게 아닌 건 분명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마음가짐이 나쁘다고 지적할 권리도 없다.
“그래? 그럼 앞으로 더더욱 믿어주라. 내가 못 미더운 건 알지만, 혼자 생각하는 것보단 나을 거 아냐.”
“…………면서.”
“응? 뭐라고?”
무언가 중얼거린 것 같았는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로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
“자! 언제 그 사람들이 몰려올지 모르니 미리미리 준비해두죠!”
묵직한 분위기 따위 전혀 없었다는 듯이, 로나는 밝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펼쳐진 하늘은 여전히 푸르르고, 내리쬐는 햇빛엔 열기가 가득하다.
해가 지기엔 아직 멀었다.
하루하루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분명 어제보다도 더 늦게 밤이 찾아오겠지.
로나에게서 뻗어져 나오는 그림자가, 오늘따라 유독 검게 보였다.
메린과 위슨이 마을 바깥에 숨겨두었던 수레마차를 끌고 왔다.
우리는 애들을 짐칸에서 내려준 후,‘촌장집’에 모두 들어가도록 했다.
당연히 애들은 하나 같이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했고, 나는 애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을 또 빼야 했다.
그걸 보다 못했는지, 위슨이 좀 도와주었다.
“와! 냥냥이!”
“강아지다, 강아지!”
애들이 새끼 스라소니와 새끼 늑대를 따라 집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제 한숨 돌리나 했는데,유독 한 아이는 두 새끼 짐승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집에 데려다준다며! 거짓말이었어!”
“거짓말 아니라니까~ 좀 있으면 아까 너희를 데리고 있던 그 아저씨들이 도로 올 거거든. 그 아저씨들과 얘기 좀 하고, 너흴 데려다줄 거야. 진짜야.”
“못 믿어!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이 거짓말쟁이!”
아까 내게 충격발언을 했던 여자애, 넬이 제자리에서 발을 쿵쿵 구르며 화를 냈다.
평소에 얼마나 많이 속고 살았으면…….
가엾기도 해라.
“진짜야! 나랑 이 무서운 언니가, 여기서 너흴 가뒀던 그 어른들을 죄다 잡았는걸.”
“잡아……? 다 죽인 거야……? 멱을 딴 거야……?!”
“……너네 부모님 대체 뭐하시는 분이니? 혹시 고기 써시니?”
넬은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아빠가…… 아빠가 사람 잡능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 그랬능데……!”
“그 ‘잡다’가 아니란다, 넬. 안 죽였어. 그냥 저기 묶어놨,”
“젤리 주능, 좋은 오빠인 줄 알았능데! 흐에엥! 나쁜 사람이었어! 거짓말쟁이! 사기꾼! 난봉꾼!”
“난봉꾼이라니 오해할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안 죽였다니까?! 좀 들어!”
……넬은 내가 창고 안을 보여주어서야 겨우 믿고 ‘촌장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 힘들다.
한숨을 쉬는 순간,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을 입구 저 너머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른 것이 보였다.
“……온다.”
수레마차를 바리케이드 삼아 마을 입구에 딱 붙여서 대놓긴 했지만, 아마 별 소용없을 것이다.
아까 이 마을을 불태웠던 것처럼, 멀리서 불화살이라도 뿅뿅 쏘면 끝이니까.
놈들의 모습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놈들이 일제히 진군을 멈추었다.
그리고 딱 세 명만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중앙에 선 사람 머리에는 커다란 뿔이 달려 있다.
소뿔 장식 투구.
대장이다.
대장은 그 ‘촌장’이 말한대로 문양이 수놓아진 천을 걸치고 있었다.
투구 장식과 같은 황소가 그려진 문양.
당연히 어느 가문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내가 뭔 귀족도 아니고, 문양만 보고 알 수 있을 리가 있나.
마을을 향해 다가오던 세 명이 멈춰 서더니, 대장의 오른쪽에 선 사람이 혼자 몇 발짝 더 앞으로 나왔다.
“극악무도한 놈들아! 국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신하이신 클라크 펜허스트 백작께서, 폐하의 이름으로 손수 네놈들을 처단하러 오셨다!
허나 백작께선 마지막 자비를 베풀겠다 하셨다! 당장 항복하고 네놈들이 붙잡은 어린아이들을 풀어줘라!”
흠, 저 대장이 백작 나리이군?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거기 계신 나리가 클라크 경인가!”
“그렇다!”
“그럼 이 놈, 마티아스 토레스헴이 그 클라크 경의 종자님이 맞으신가!”
창고에 굴려 놨던 유쾌한 마티아스를 보여주었다.
낮이니까 잘 보이겠지?
“마티아스?! 살아 있었나!”
다행히 잘 보이나 보군.
소뿔 장식 투구를 포함한 세 명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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