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69화 (69/475)

〈 69화 〉 67화 : 서로 사이좋게…… (1)

* * *

2주 전부터, 왕국 전역에서 도적들의 피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피해 지역은 하나같이 작은 마을들, 그것도 자경단도 제대로 꾸리지 못할 정도로 규모가 작은 마을들이었다.

“원래 있는 일이잖아요.”

“흔한 일이긴 하지.”

내 말에,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이 자리는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대담이 아닌, 무슨 회의장 비슷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사람을 꿰뚫어버릴 듯하던 백작의 눈빛도, 지금은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허나 그 습격들은 확연히 이상했네. 도적들이 재물을 노렸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모조리 데려갔거든.”

“아이들…… 하지만 그것도…….”

“그래. 자네도 알다시피 놈들이 어린아이들을 노리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말일세.

……네다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들만 노리는건, 역시 이상하지 않은가?”

음, 그건 좀 많이 이상하긴 하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게 있다.

“토레스헴 씨에게 들었습니다. 소문이 나면 안 되기에 문양없이 움직이고 계시다고요. 지금 하신 말씀을 들으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율리아 님께서 이 일을 비밀리에 조사해달라 청하셨네. 게다가 보게나. 놈들은 일부러 작은 규모의 마을만 노리고 있어.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공식적으로 조사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놈들은 바로 숨어버릴 걸세.”

그래서 병사들은 모두 문양을 떼고, 항상 걸치던 철갑옷 대신 천옷이나 가죽갑옷을 입었다.

백작 자신도 본래 입던 것보다는 낮은 품질의 갑옷을 걸치고 다녔지만, 문양만은 떼지 않았다.

스스로의 정체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도적으로 전락한 귀족이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네. 그리고 세간엔, 그런 자들만 상대하는 무뢰배들이 있지.”

“귀족분들만 상대하는 무뢰배……인가요?”

“몰라? 너, 도시가 아니라 시골 마을 출신이군? 그것도 굉장히 작은.”

바닥에 드러누운 마티아스가 끼어들었다.

그가 입에 담은 말 자체는 조금 거슬렸지만, 얼굴엔 조롱하거나 비꼬는 듯한 기색은 전혀 없다.

그냥 객관적인 견해를 말한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철하게 대답했다.

“맞아, 나랑 이 녀석 둘 다 시골 출신이지. 그것도 엄청나게 구석에 있어서 지도에도 안 나오는 촌동네 중의 촌동네 출신이다, 이 자식아, 지금 촌뜨기라고 무시하는 거냐, 우리가 우스워보여?!”

“응? 아니, 그런 뜻은 전혀 없었는데…….”

……이런, 나도 모르게 열이 올라버렸군.

나는 헛기침을 했다.

“……실례했습니다. 저와 메린은 이 왕국의 최북단에 있는 놋지빌 출신으로, 무척 규모가 작은 마을이라 촌장이 자치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 재력이나 권력이 쏠려 있는 곳이 아니기에, 경께서 말씀하신 ‘무뢰배’가 잘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어, 음, 그러니까…… 크흠,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난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야.

대부분의 도시나 큰 마을에는 뒷골목 거물들이 있어. 뒷골목이 글자 그대로 골목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 어쨌든 그들은 ‘해 아래에 드러나지 않는 일’의 전문가들이지. 이번 사건처럼.”

뒷골목에는 많은 소문이 떠다닌다.

보물, 밀수, 금지품, 뒷거래 등, 밝은 곳에서는 결코 입 밖에 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돌아다닌다.

거의 대부분이 허무맹랑한 소문일 뿐이지만.

……‘거의 대부분’이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한두 가지는 ‘진짜’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진짜’ 소문들의 편린이라도 확실히 쥐고 있는 건, 이 거물들뿐이다.

“거물들은 일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아. 확실히 성과를 보장할 수 있으면서 비밀도 잘 지키는 놈을 선호하지. 그런 면에서 귀족이 이끄는 도적단은 그 놈들에게 아주 딱 맞는 도구인 거다.”

귀족이 대장인 도적단은 체계가 잡혀 있기 때문에,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도적단보다 훨씬 강하다.

그냥 문양 없는 군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때문에 의뢰 완수에 대한 기대가 높다.

게다가 정치를 해본 만큼, ‘비밀 엄수’가 아주 그냥 몸에 배어 있다.

‘건드려선 안 되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고 묻지 않으니, 일 이야기를 하기도 편하다.

“그래서 그 거물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무력이 필요할 땐, 귀족 도적단과 먼저협상해.

그게 잘 안 되면, 그때 일반 도적들을고용하는 거야.”

정치적인 문제……면 누구 암살하거나 납치하는, 뭐, 그런 건가?

우와, 이 사람들, 그 거물들과 연줄 쌓는다고 그런 일까지 하고 다닌 거야?

마티아스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말해두는데, 네 녀석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안 했다.

우리 목표는 어디까지나 ‘소문’을 모으는 거니까, 사업장 경비나 물품 운송, 상인들 경호 같은 작은 일만 했다고.”

“아, 도박장이나 불법경매장 경비에 밀수품 운송, 뒷거래 상인 경호?”

“꼭 그걸 입 밖으로 말해야 속이 시원하냐?! 용사라는 놈이 진짜 심성 배배 꼬였네!”

“아니, 확실히 할 건 해야지.”

“어련하시겠어.”

그는 땅이 꺼져라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음, 단순히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저러고 다닌 게 아니었구나.

“근데 그런 건, 그 뭐냐, 끄나풀? 그런 거 쓰지 않나?”

“있으면 그랬겠지. 애석하게도 우린 직접 들어가야 했어.”

마티아스는 덤덤하게 말했다.

마치 그게 별일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고개를 흔들며 백작에게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이건 별일이었다.

그것도 엄청 굉장한 별일.

아무리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고 해도, 고귀하신 백작님이 스스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버려가며 뒷세계 주민이 되길 자처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매일, 자신의 문양을 보며 고뇌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건 비밀 임무다.

아마 백작은 신뢰할 수 있는 정예로만 일행을 꾸렸겠지.

지금 여기 기념선물로 밧줄 포장되어 있는 마티아스를 포함해, 모두 백작의 부하라는 사실에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과연 그 중, 지금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

그간의 고생을 떠올리는 건지, 백작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의 두 눈가에 패인 잔주름에서, 씁쓸함이 잔뜩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를 창조주께서 불쌍히 여기신 걸까?

백작 일행은 그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만 노려서 납치하는 일당’에 대한 정보를 금방 얻을 수 있었다.

백작이 이 근방에 온 것도, 아이들을 실은 수레마차가 이 방향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전부 몇 명의 아이들이 사라졌는지는 오로지 창조주께서 아실 터. 적어도 저 열 한 명의 아이들은 이제 제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을 테지.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자네는 모를 걸세.”

도적과 다름없는 차림으로,

평소에 받던 존경과 경의가 아닌 업신여김과 멸시를 받으며,

경멸하고 혐오하던 일들을 하며, 꿋꿋이 임무를 수행했다.

그 인고의 결과, 그들은 작지만 분명한 첫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약간 사고가 있긴 했지만.

자신들의 행동은, 그간의 고뇌와 자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라크 경.”

“믿나 보군?”

“예. 의심할 바 없는 진실이니까요.”

눈이 마주친 로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이거 참. 믿어주는 것은 고마우나, 사제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훨씬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게 미묘하군.”

“예,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굉장히 물러 터진 놈이라서요. 아마 로나……사제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도 경을 믿었을 겁니다.”

“……그런가. 말만으로도 고맙군.”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며, 백작은 희미하게 웃었다.

대담이 끝난 후, 백작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병사 몇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메린이 마을 입구 앞에 댔던 수레마차를 치우는 동안, 나는 기념선물에서 우호세력 대장의 보좌관으로 승진한 마티아스의 밧줄을 풀어주었다.

로나를 맨 먼저 마을로 돌려보냈으니, 지금쯤 창고에 있는 다른 포로들도 해방되었겠지.

“으으, 젠장, 온 몸이 뻐근해 죽겠네…….”

“고생하셨습니다, 마티아스 님. 뭣하면 저희 사제님께 기도를 받으시지요. 따뜻한 목욕물이라도 준비해드릴까요?”

“……무, 뭐야? 왜 갑자기 웃으면서 정중하게 대하고 그래?! 얌마, 소름 끼친다, 집어치워!”

아니, 친절하게 해줘도 뭐라고 하네.

뭐 어쩌라는 거야?

귀족은 귀족이라고 되게 까다롭구만.

“아, 싫으면 말어. 대충 약이나 받아먹고 가십쇼.”

“……그래. 이게 백 배 낫다. 내 특별히 허락할 테니 서로 이렇게 가자고, 응?”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티아스는 어리둥절해하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쩌다 보니 귀족 나리와 서로 반말을 까는 영광을 얻었는데, 이 기분은 뭘까?

왜 저 사람이 나를 그냥 미친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을까?

내가 예민한 걸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는 두 귀족 나리를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포로로 잡혔던 백작의 부하들은 기력이 쇠해 있어서, 로나와 위슨에게 그들을 돌보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나와 메린은 백작을 도와, ‘촌장집’을 싹 다 뒤져서 무언가 단서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이렇게 단서 찾을 거면서 마을에 불은 왜 지른 거야?

그것도 역청 써서 끄기 더럽게 힘들게.

“그래서 여긴 안 태웠잖아. 얼른 손이나 움직이시지? 저기 찬장은 왜 안 보냐? 침대 밑은 봤어?”

마티아스 님 이 자식, 지는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서는 이리저리 지적질만 해대고 있다.

대체 왜 여기 있는 걸까?

복수인가?

“아, 지금 막 보려고 했거든요? 답답하면 직접 찾으시든가.”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누가 내 팔다리를 밧줄로 아주 꽁꽁 묶은 탓에 피가 안 돌아서 힘이 잘 안 들어간다네. 정말 미안하네만, 내 대신 수고 좀 해주시게.”

“아잇, 진짜.”

책상과 책장, 찬장과 서랍, 침대 밑, 기타 등등 수상쩍은 곳은 모조리 뒤진 후,

찾아낸 것들을 바깥 광장에 쭉 깔아놓았다.

편지, 편지, 편지, 편지, 쪽지, 쪽지, 편지, 책……

오, 책!

재빨리 책을 집었다.

이런 건 원래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이다.

편지 하나하나 그거 다 언제 열어서 읽어?

“이건 제가 보죠.”

“응? 너 글 읽을 줄 아냐?”

“당연하지. 딱 보면 몰라?”

“전혀 모르겠는데.”

깔끔하게 무시한 후, 나는 책을 펼쳤다.

“어디 보자…….”

책에는 숫자와 짤막한 단어가 잔뜩 적혀 있었다.

밀수꾼들이라고 장부 적을 줄은 아나 보군.

그럼 숫자 무리 하나는 연월일일 거고, 또 하나는 돈일 거고……

“어어~ 말리스, 포흐, 말리스, 웨셋, 모이트, 말리스, 말리스, 말리스…… 뭐지?”

“……전부 지명이군.”

편지를 살피며, 백작이 중얼거렸다.

“지명이요?”

“그렇네. 웨셋은 자네 고향처럼, 왕국의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일세. 국경지대에 있지. 포흐와 모이트는 별 특별할 것 없는 도시이고…… 말리스라는 도시, 들어본 적 없나?”

“말리스…… 예에,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왕국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했던 것 같다.

수도의 서쪽에 있는 도시인데, 그 크기가 수도보다도 크고, 상인들이 많이 오가는 도시라고 했던가?

백작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책을 내게 주시겠나? ……흠, 비료, 봄꽃, 비료, 비료, 와인, 비료, 비료…… 말리스와 웨셋은 비료, 그리고 나머지는 상품이군. 마티아스, 어찌 생각하나?”

“……거기에 놈들의 의뢰주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빌어먹을 자식들!”

별안간 성을 내며 들고 있던 편지를 구기려던 마티아스는,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그 편지를 건넸다.

“읽어 봐.”

“옙.”

얌전히 종이 위의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그 편지를 구겨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왜? 무슨 내용인데?”

읽기가 서투른 탓에 아무 종이도 살펴보지 않은 메린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놈들이 어제 쓴 편지야. 사흘 안에 싱싱한 비료 열 한 포대를 말리스로 보낼 테니 보수를 준비해달란다.”

“싱싱한 비료 열 한 포대? ……엥? 그거 애들을 말하는 거야?”

“그럼 달리 뭘 말하겠냐? 미친놈들 아냐, 빗댈 게 없어서 비료에 빗대?”

“흐음. 어디에 쓰길래 그러지?괜히 그렇게 부르진 않을 거 아냐.”

열이 오른 나와 달리, 메린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이 녀석의 이 무심한 성격은 때로 굉장히 열받는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지금처럼.

“……뭐, 애들을 비료로 쓴다고?”

“그 비슷한 용도로 쓰이니까 그렇게 부르는 거겠지.”

“아니, 그럴싸하긴 한데 전혀 상상이 안 되는데?”

어린애를 비료나 다름없는 일에 쓴다는 게 뭔 소리인지 감도 안 온다.

재산을 부풀릴 노동력으로 쓴다는 건가?

그런 것 치곤, 납치하는 애들이 고작 네다섯 살 밖에 안 됐는데?

“……말리스뿐만이 아닐세. 모이트에 아홉 포대를 보내야 한다는 명령서도 있어.”

모이트는 왕국의 남쪽에 있는 도시라고 한다.

조사해야 하는 곳은 두 군데, 서쪽과 남쪽.

순차적으로 조사하기엔 두 도시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다.

한쪽을 조사하는 동안, 또 다른 쪽에 남아 있을 흔적과 단서들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제안했다.

“그럼 말리스는 저희가 가보도록 하죠.”

“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 심지어 메린 녀석까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 제안은 간단했다.

어차피 우리는 서쪽 산맥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지도에 따르면, 산맥 입구와 말리스는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다.

“게다가 산맥을 넘으려면 웨셋? 그 마을도 지나가야 되잖습니까? 어차피 가는 길이니, 저희가 먼저 밑조사를 하겠다는 겁니다.”

“자네가……? 아니,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자네는 용사로서 더 중요한 사명이 있지 않나. 이런 일까지 맡게 할 수는 없네. 이건 우리 임무이니, 우리가 해야 해.”

“그러시군요.”

나는 백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전 갈 건데요. 경께서 뭐라고 하시든 가서 조사할 겁니다.”

“……자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미루는 것도,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니까요. 경을 도와드리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제가 알고 싶을 뿐이에요. 놈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이대로는 신경 쓰여서 갈 길도 제대로 못 간다.

국경지대에 있다는 웨셋에 도착하게 되면, 분명 못 참고 이것저것 들쑤시다가 휘말리겠지.

어차피 그렇게 될 거, 차라리 제일 수상한 곳에 가서, 내가 주도적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는 게 훨씬 낫다.

백작은 내 뜻을 알아주었는지 한숨을 쉬며 두 팔을 벌렸다.

“……자네 좋을대로 하게나. 자네는 우리와 아무 관련도 없으니, 내가 자넬 만류할 순 없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미치…… 용사가 망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걱정스러운 말투로 묻는 마티아스에게,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마티아스, 그런 소리 말거라. 그 말은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그리고 내가 이미 말했듯이, 내게 에스트렐 군을 막을 권리는 없어.

또 그 자신도 내가 무어라 하든 간다고 하지 않나. 에스트렐 군은 그저 내게 통보하고 있을 뿐이야.”

“훗.”

“우쭐거리지 마, 미친놈아! ……앗, 죄송합니다, 클라크 경.”

마티아스는 헛기침을 한 후, 진중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정 그렇다면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조사한 후, 그 내용을 나에게 편지로 써줘.”

“응? 당신 이름이 뭐…… 아, 알았어! 안 할게! 당신한테 편지를 어떻게 보내?”

“음…… 말리스 근처에 ‘춤추는 해바라기’라는 여관이 있어. 거기 주인장에게 맡기면 될 거야.”

“믿을 만한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널 믿는 만큼 믿음직하지.”

“이런, 마티아스 님. 저처럼 만난 지 얼마 안 된 촌뜨기를 평생의 친우로 생각해주시는 겁니까? 오, 세상에, 이렇게 다정하실 수가!”

“……맨 정신으로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지?”

이젠 아예 질색해하고 있었다.

“그럼 용사님, 염치없지만 말리스의 밑조사를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클라크 경,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인사하려는 백작을 제지하며, 마티아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용사님께 개인적으로 청이 하나 있습니다.”

나를 향해 씨익 웃는 얼굴을 보자마자 등골이 싸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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