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70화 (70/475)

〈 70화 〉 68화 : 서로 사이좋게…… (2)

* * *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비치는 풀밭 위.

나는 맞은편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기사님의 종자님에게 말을 걸었다.

“마티아스 나리, 굳이 이러실 필요 없지 않습니까? 아니,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하지 마. 진짜 그러지 좀 마!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태도가 휙휙 바뀌냐?! 제발 부탁이니까 하지 마. 진짜 소름 끼친다고!”

진심으로 질색해하고 있었다.

거 참, 특이한 성격이시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예, 예, 알았습니다. 그래서 매트, 진짜로 대련해야 돼?”

“그래. 그리고 마티아스라 불러, 임마. 맘대로 별명 붙이지 마라.”

그렇다.

나는 지금 이 특이한 귀족 나리와 서로 목검을 들고 대치 중이다.

작별 인사를 건네려는 펜허스트 백작을 가로막으며, 그는 내게 개인적인 부탁이라며 한 가지 요청을 했다.

그게 바로 이 대련이었다.

­­또 바로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굳은 채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몸풀기엔 역시 대련이 최고이지요. 마침 여기 용사님도 계시니……

한 판, 꼭 좀 부탁드리고 싶군요……!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여러 구실을 대고, 심지어 메린이 스승이니 그녀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핑계까지 댔건만……

­­대련? 해.

­­……

­­마침 잘됐네. 제대로 된 교본으로 검을 배우고 훈련한 사람이잖아. 이 참에 팍팍 배워라.

이딴 결말이 되었다.

젠장, 메린 녀석, 쓸데없는 부분에서 합리적이긴!

게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목검 두 자루를 선뜻 내주기까지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도련님이 나랑 대련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야…….

나는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왜?”

“술 한 잔도 안 나눴잖아. 별명 부르며 친하게 지낼 사이는 아니지.”

“아니, 그거 말고. 왜 대련해야 되냐고.”

마티아스는 손에 목검을 든 채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내가 널 두들겨 패고 싶다.”

숨이 막힐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기사 될 놈이 이래도 되는 거냐?

“아니, 내가 댁한테 뭘 어쨌다고 그래?”

“하! 또 모르는 척 시치미………잠깐, 너 진짜 모르는 거냐? 아니, 세상에…….

뭐, 그건 됐고.”

척, 목검을 내게 겨누며 마티아스가 말을 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작별하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아서 말이지. 미안하지만 상대해주라. 그리고 가능한 가장 처참하게 뻗어.”

“아니, 대체 뭐가 안 좋은데?!”

기가 막혀 하는 나를, 마티아스는 굳은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포로로 잡혀 있을 때보다도 더 험악하고, 어딘지 살의마저 느껴지는 얼굴이다.

……나보고 어떻게 태도가 그렇게 휙휙 변하냐며 경악하더니, 본인도 별반 다를 것 없구만.

“……이유는 어쨌건, 네놈들은 우리와 검을 겨루고, 우리 동료의 목숨을 거두었다. 네놈의 손에도 그 피가 묻어 있을 터.”

“……”

“도리로는 그 원통함을 덮을 수 없어. 이대로 네놈들을 그냥 보내면, 우리 쪽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다.”

마티아스 토레스헴은 클라크 펜허스트 백작의 종자, 즉, 아직 기사가 아니다.

백작의 보조를 맡고 있다고는 해도, 병사들의 사기를 신경 쓰는 건 그의 역할이 아닐 텐데.

모시는 사람에 대한 충의의 마음인가?

뭐, 어쨌든 그가 끈덕지게 대련을 조른 이유는 이해가 됐다.

자신들이 진짜 도적이라 오해를 받고 공격당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머리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분하고 억울한 것이다.

부상을 입은 거에, 동료가 죽은 거에 분개하는 것이다.

근데 가장 많이 붙잡은 건 내가 아니라 메린인데.

나는 셋 보내고 둘 붙잡았고, 로나는 둘 붙잡았으며, 메린은 셋 보내고 다섯 붙잡았다.

그런데도 가장 원한이 쌓였을 메린이 아닌 나를 대상으로 고른 건……

“이렇게 구경꾼들까지 모으고…… 뭔 공개 화풀이야? 메린은 어떻게 안 되니까 대신 나로 울분을 풀겠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미 들은 거나 다름없었다.

나와 그가 대치한 자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백작의 부하들이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메린 녀석도 서 있는 게 보였다.

……어차피 이미 대련장이 짜인 이상, 할 수밖에 없다.

나 참, 끝판에 이게 뭔 고생이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잘 알았어. 날 패고 싶다고? 좋아.”

죽일 기세로 쏘아보는 마티아스를 똑바로 보며, 나는 목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덤벼. 전력으로 저항해주지.”

“……그래, 전력으로 박살내주마!!”

노도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미래의 기사가 달려들었다.

메린이 내게 슬링을 가르칠 때 말했었다.

실전을 많이 가져야 실력이 늘어난다고.

그때는 녀석이 그런 소리를 하며 늑대를 끌어오길래, 미친 또라이 새끼라며 욕을 퍼부었지만……

지금은 그 말이 절대불변의 진리였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쌓인 그 얕은 실전 경험이라도 없었으면, 난 진작에 나가떨어졌을 테니까.

“……!”

얼굴을 노리고 대각선으로 날아오르는 목검을 쳐내고, 재빨리 측면으로 빠졌다.

마티아스가 내지른 발차기가 허공을 가르는 게 보였다.

그의 얼굴을 팔꿈치로 내려찍으려는 순간, 가슴팍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며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컥!”

이 녀석, 그 자세에서 몸통박치기를 했어!

그게 돼?!

하지만 놀랄 틈도, 심지어 숨을 가다듬을 틈도 없다.

나는 균형을 잡자마자 다시 목검을 휘둘러야 했다.

따닥!

복부를 노린 찌르기를 가까스로 흘리며 반격했다.

녀석은 내 공격을 손쉽게 피해버릴 뿐만 아니라, 아예 품을 파고들었다.

“읏!”

뒤로 물러나며 가로베기를 막고,

날아오는 발차기를 목검으로 막아 피해를 줄이고,

앞으로 굴러서 세로베기를 피했다.

그대로 일어나자마자 대각선으로 베었다.

퍼억!

“큭!”

먹혔다!

마티아스는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은 채 거리를 벌리며 나를 마주보았다.

다시 대치 상태.

이번이…… 몰라, 안 셌어.

대충 네번째겠지.

“헉, 헉…….”

“……”

난 숨이 차서 죽겠는데, 녀석은 이제 약간 숨이 가빠진 상태다.

젠장, 그럴 만도 하지, 저 도련님은 적어도 십 년은 제대로 훈련한 몸이니까!

게다가 나한테 세 대 밖에 안 맞았고!

반대로 나는……

음……끝나자마자 로나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잠 잘 자겠는걸?

“……이 정도면 되겠지.”

“……!”

온다!

그만 끝내려는 건지, 녀석은 거리가 잡히자마자 맹렬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위에서 대각선, 같은 방향으로 한 번 더!

그걸 죄다 쳐낸 후 발차기를 내질렀다.

녀석이 가볍게 피하며 품을 파고들고 팔꿈치로 찔러왔다.

몸을 틀어 가까스로 피한 후 박치기를 내질렀다.

“윽?!”

아싸, 먹혔다!

내 머리도 아프지만 뭐 어때!

반사적으로 물러나는 녀석을 쫓으며 목검을 휘둘렀다.

녀석이 가볍게 쳐내더니, 그대로 내 가슴에 돌려차기를 꽂아넣었다.

“컥!”

목검은 놓치지 않았지만 땅에 쓰러져버렸다!

기침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녀석의 발이 내가 방금 있던 자리를 콱 짓밟으며 땅이 살짝 울렸다.

……근데 어쩌지.

이제 일어날 기력이 없는데.

“으으으윽!!”

기력이 없으면 당장 만들어서라도 일어나야 돼!

팔다리에 일갈하며 일어나려는 순간,

“잡았다……!”

“……!”

몸이 붕 뜨더니 세상이 한 바퀴 빙 돌았다.

등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숨이 턱 막히는 격통이 흘렀다.

그 탓에 목검을 놓쳐버렸다.

……진짜 망했다.

녀석은 내 가슴을 누른 채 목에 목검을 겨누며, 씨익 웃었다.

“끝이다.”

“콜록콜록! 하아, 하아……! 젠, 장할……!”

마티아스가 일어나자, 주위 구경꾼들에게서 엄청난 환호가 터져나왔다.

“역시 마티아스 나리구만!”

“괜히 클라크 경의 종자인 게 아냐!”

“이야, 간만에 손에 땀 좀 쥐었어!”

……아무래도 이 녀석, 백작의 부하들 중에선 강한 축에 끼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아까 상대했던 다른 병사들과는 움직임이 다르다 했어.

아까는 대체 왜 잡혔던 거야?

“이, 일부러…… 콜록콜록! 일부러 잡혔던 건가……?! 콜록콜록콜록!”

“헛소리 말고 숨이나 돌려.”

“이, 이런 실력으로, 아까 왜 잡혔던 거야?!”

“왜냐고? 네 스승한테 나가떨어졌거든. 설마 공격 한 번 못해보고 당할 줄은 몰랐다.”

음, 그렇군. 납득했다.

그래도 몇 시간씩이나 밧줄에 묶였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힘이 남아 있다니.

……만약 그때 메린이 아닌, 내가 이 녀석을 만났다면 꽤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납득한 것 같군. ……야, 그만 눕고 얼른 일어나.”

“기운 없어…….”

“뭐? 아니, 뭘 그 정도로…… 이거 원. 자, 일으켜줄 테니까 잡아.”

나를 향해 뻗은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해? 잡고 일어나라니까.”

“기운 없다고!”

“목청 큰 거 보니 기운 남았구만, 엄살은…….

……뭐야, 너 진짜 팔 들 기운도 없냐? 아니, 용사님, 너무 빌빌대시는 거 아닙니까?! 나 참, 이러면 내가 괴롭힌 거 같잖아!”

괴롭힌 거 맞는데.

속으로 툴툴대며, 마티아스가 내 팔을 당겨 일으켜주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뿌리칠 기운도 없고.

내가 일어나 앉자, 구경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며 뭐라뭐라 한차례 떠들더니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몇 명인가는 내 등을 퍽퍽 친 것 같은데, 뭘까?

가벼운 보복이었던 걸까?

왁자지껄하던 풀밭이 조용해지자, 메린이 슬며시 다가와 내 눈앞에 손을 휘휘 저었다.

“……안 죽었어, 임마…….”

“곧 뒤지겠는데?”

이 자식이 불길한 소리하고 있어!

“솔직히 너한테 우리 사람들이 당했다는 거, 처음엔 못 믿었거든? 기습으로 이긴 줄 알았지.”

머리 위쪽에서 마티아스의 진지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기습이었지. 여자 겁탈하려던 걸 벴으니까.”

“뭐……?제길, 쓰레기 새끼가 섞여버렸나? 아무튼,”

그는 한 번 한숨을 쉰 후, 말을 이었다.

“너와 맞붙어보니 그럴 만했더라. 이게 대련이 아니었으면 나도 사지 멀쩡하진 않았을 거야.

끈기도 있고, 틈을 노리는 감각이나 반사신경도 괜찮고…… 그런데 자세는 좀 많이 어설프더군? 검 잡은 지 얼마 안 됐나?”

“대충 삼 주. 십 년 전에 기초만 일 년 정도 배웠었고.”

호흡 안정시키느라 바쁜 나를 대신해, 메린이 대답해주었다.

“삼 주?! 삼 주만에 이 정도라고? 이야, 짜식, 꽤 소질이 있구만?”

“그렇다는데, 카엘. 잘됐네, 전문가에게 칭찬받고.”

“콜록…… 후우…… 쳐발라놓고 칭찬하는 거, 그냥 예의상 하는 소리잖아.”

“내가 뭐하러? 아까 우리 쪽 사람들이 한 소리 못 들었어?”

뭐라뭐라 떠들었다는 사실밖에 알 수 없었다.

정신이 없어서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내 시선에, 마티아스는 한숨을 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보기보다 제법이다’, ‘생각보다 잘 버텼다’, ‘싹수는 좋다’, ‘그 놈들이 당할 만했다’……. 더 읊어주랴?”

“……됐어.”

내 등을 퍽퍽 치고 갔던 건 격려의 뜻이었나.

그렇게 감정 정리가 잘 되다니, 다들 참 대단하다.

조금 기력이 회복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착각이었던 건지 몸이 곧바로 비틀거렸다.

“……이대로 가려고 했는데 미안해서 안 되겠네. 저기서 묵을 거지? 데려다줄게.”

“내가 데려가면 되는데.”

메린의 말에, 마티아스는 고개를 젓고 나를 부축했다.

“아니, 내가 이 꼴로 만들었으니 내가 해야지. 아, 좀 제대로 서 봐, 임마!”

“기운 없다고!”

“그럼 들쳐업고 가주랴? 도착하면 내던질 건데.”

젠장.

후들거리는 다리가 꺾이지 않도록 온 힘을 써야 했다.

“으으윽, 평민 괴롭히는 사악한 귀족 같으니라고…….”

“끝까지 입은 살아있네.”

마티아스는 혀를 차면서 나를 마을까지 부축해주었다.

나와 마티아스가 대련하는 동안 정리했던 건지, 이제 막 병사들이 밀수꾼들을 끌고 가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세워 둔 수레마차에는 애들이 올라타 있었다.

마티아스에게 부축받고 있는 나를 보며, 애들과, 애들이 올라타는 걸 도와주던 위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넬은 아예 배를 잡으며 함박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푸하하하하! 오빠, 꼭 시들어서 쪼그라든 시금치 같앙!”

“시끄러…… 집에 잘 가기나 해라…….”

“응! ……원래능 오빠가 직접 데려다줬으면 했능데. 바쁘다니깡 착한 내가 참을게!”

“그래그래, 착하다, 착해. ……잘 가. 건강하고.”

“응!”

마부석에 앉은 병사가 마티아스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수레마차를 출발시켰다.

넬이 환히 웃는 얼굴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빠들이랑 언니들이랑 있어서 재밌었엉! 바이바이! 냥냥이도 바이바이!”

“안녕~”

“바이바이~”

다른 애들도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잘 가라.

부디, 너희들 집까지 무사히.

나는 애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만 봐. 나도 바쁘다고.”

“으아아.”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려고 했는데, 마티아스가 홱 당기며 나를 끌고 마을로 들어가버렸다.

광장에 펼쳐진 천막 하나에 나를 던지듯이 내려놓은 후, 마티아스는 허리를 쭉 폈다.

그의 뒤편으로, 부하 병사에게 보고를 받는 백작의 모습이 보였다.

병사가 경례하고 물러가자, 백작은 천막으로 다가와바닥에 드러누운 나를 말없이 본 다음, 마티아스를 쳐다보았다.

“……마티아스.”

“아닙니다, 클라크 경! 결코 무도(無?)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진영에 있는 자들이 그 증인입니다!”

백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도를 모르는 놈이라 미안하네. 내일 출발하는 데에 지장이 없으면 좋겠군.”

“아~ 그건 염려마세요. 카엘 님,엄청나게 맞으셨지만제가 상처를 돌볼 수 있으니까요.”

엄청나게 맞으셨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게 슬프다. 흑.

“예. 사제님이 계시니 든든하군요. ……그럼, 이렇게 인사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마치 주군을 대하는 것처럼, 백작은 나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눈치 빠른 로나가 재빨리 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용사님, 말리스에서의 조사를 감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가시는 걸음마다 창조주께서 굽어살피시어, 사명을 완수하실 수 있기를.”

“……아, 예, 감사합니다. 클라크 경. 경께도 주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나 역시 최대한 허리를 굽히며 그에게 인사했다.

엷게 미소 띤 얼굴로, 백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천막을 뒤로 했다.

아마 부하들을 따라 진영으로 돌아가겠지.

그 모습을 지켜본 후, 마티아스는 나를 향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이만 가야겠군. 카엘이라 했지? 첫 만남은 끔찍했지만, 마지막에 시원하게 풀었으니 됐다. 네가 용사라는 건 여전히 믿기지 않지만 말야.”

“더럽게 약해서?”

“아니, 네 주둥아리 때문에.

……그래도 뭐, 네가 좋은 놈인 건 알겠어. 역시 괜히 용사인 건 아니구나. 더럽게 약해서 그렇지.”

“사족이 기시네!”

빽 내뱉은 후,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린이 팔꿈치를 받쳐주었지만 아무튼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마티아스. ……나 같은 놈한테 편하게 대해줘서 고마워.”

“별 소리를 다 하네. 뭐, 이런 차림으로 있는 덕분 아니겠냐.”

실없이 웃으면서도, 그는 내가 내민 손을 맞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럼 카엘, 말리스 쪽을 부탁한다. 괜히 나대다가 죽지 말고 잘 사려. 체력도 좀 키우고.”

“댁도 칼침 맞지 말고 잘 살아남아.”

“오냐, 고맙다. ……사제님과 아가씨도, 이 녀석 때문에 덜 고생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며, 마티아스도 시원스럽게 떠나갔다……가,

갑자기 다시 돌아왔다.

“깜빡했네. 경께서는 말씀 안 하셨지만, 너희들에게 부탁이 하나 있거든.”

“또? 대련 안 할 건데.”

“나도 안 해, 임마. 간단한 거야. 말리스로 가는 김에, 어떤 사람에 대한 소문만 알아봐주면 돼.”

웬 소문?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를 향해, 마티아스가 입을 열었다.

“메리골드 장식이 들어간 검집을 가진 사람을 봤는지 알아봐줘.”

“엥? 검집? 머리색이나 뭐 딴 건 필요 없고?”

“필요 없어. 바꿨을지도 모르니까. 메리골드 장식이 들어간 검집이 흔한 것도 아니니 그거면 충분해.”

그의 말은 잘못되었다.

꽃장식이 들어간 검집이 흔하지 않다고?

아니, 엄청나게 희귀하지!

무슨 귀한 집의 귀한 보물이 아닌 이상, 검집에 누가 그런 장식을 넣겠어?

“근데 그런 사람을 왜 찾아?”

“아, 그건 비밀이야.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 네가 그런 사람을 찾는다는 것도 알려지면 안 돼.”

“아니, 그럼 어떻게 알아보라고……”

“그러니까 소문만 들어보라는 거야. 그 검집, 눈에 엄청 띌 테니 누가 보면 어디서 떠들지 않곤 못 배길 거라고.”

뭐, 그 정도야 별 어려운 것도 아니지.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티아스는 흡족한 듯이 웃으며 다시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이번엔 정말 용무를 다 마친 것인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광장이 다시 조용해지자, 문득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중에 이 정도로 편하게 이야기한 건, 마티아스가 처음인가?

­­술 한 잔도 안 나눴잖아. 별명 부르며 친하게 지낼 사이는 아니지.

……같이 술 마시면 친구가 된다는 걸까?

참 넉살도 좋다.

“기도 올릴 테니까 가만히 계세요~”

“어, 응.”

로나가 내 등에 손을 대고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욱신거리던 통증이 차츰 가라앉아가는 와중에, 파랑새가 천막 안으로 파다닥 날아들어왔다.

……그리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 앉았다.

내 머리, 새가 앉기 좋은가?

“위슨이 저녁 먹을 거냐는데.”

“벌써 그런 시간인가?”

“뭐 재료 구해놓은 거 없지?”

“창고에 아무것도 없었으니 보존식품 먹어야지, 뭐.”

메린의 대답에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드디어 보존식품을 개방하는구나!

대체 언제 먹어보나 했는데!

째짹, 파랑새가 어딘지 유쾌함이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냐? 마침 잘됐네. 섬에서 가져온 게 있거든. 너네 이무 고기 먹을 수 있지?”

……뭐야, 그 듣기만 해도 수상쩍은 고기는?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뭔데?”

“섬의 숲에 사는 소, 이무의 고기.”

소? 뭐……

숲에 사는 소라고 했으니 분명 몬스터이겠지만, 소고기면 괜찮겠지.

파랑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버섯 좋아하는 놈인데, 독버섯도 막 주워 먹어서 영양가가 높아. 독을 잘 빼야 되긴 하지만.”

“나. 나 못 먹어. 나나나나나.”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 그 섬의 마녀들은 왜 그딴 걸 잡아먹고 난리야?!

“그럼 다 괜찮은 거군. 간다.”

“얌마, 나 못 먹는다고! 야! 야, 이 자식아, 거기 서! 저 망할 새가 진짜?!”

한창 기도 받고 있으니 움직일 수도 없고!

젠장, 이대론 독 요리를 먹게 될 거야, 막아야 돼!

메린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래, 아무리 이 녀석이 야생고기를 좋아한다 해도……

“그럼 난 가서 위슨 도와줄게.”

“……”

희망은 없었다.

나는 내 운명을, 온전히 창조주에게 맡겨야 했다.

오, 주여, 나를 굽어살피소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