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69화 : 담론, 그리고 결심 (1)
* *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조주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왜냐면 지난밤의 그 무시무시한 독 요리로부터 무사히 살아남게 해주셨으니까!
어제 나는 그 이무인지 이마인지 모를 고기로 만든 스튜를 비우자마자 기절해버렸다.
분명 독이 덜 빠졌던 거야!
동료한테 독살당할 뻔하다니, 이런 비극이 있나?!
“아니, 그거 그냥 네가 배불러서 뻗은 거라니까. 진짜 독이었으면 먹자마자 뒈졌지.”
라는 게 위슨(의 말을 전하는 파랑새)의 변명이었으나, 나는 믿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피곤해도 그렇지, 밥 먹자마자 쓰러져 자는 게 말이 되냐고.
가벼운 중독 증상이야, 틀림없어!
“너 빼고 위슨이랑 다른 둘은 멀쩡했구만, 뭔 되도 않는 소릴 우기고 있어.”
“그야 더럽게 튼튼한 너네와 달리 난 면역력이 끔찍하게 약하니까!”
“자랑이다, 등신아!!”
빽 소리를 지르는 파랑새와 달리, 위슨은 잠시 생각에 빠진 후,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 어제 위슨이 준 약 먹지 않았냐?”
“약? 웬 약? 내가 어젯밤에 먹은 건 그 독 스튜랑 차 밖에 없는데.”
미리 따라놓은 건지, 메린이 어제 스튜 그릇을 주면서 곧바로 차가 가득 담긴 물잔을 건네주었었다.
향도 좋겠다, 준 사람도 별말 없겠다, 그냥 마셨는데.
위슨이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그 차.그거 약이었어. 사제님이 너 자양강장제 먹여달라고 하셨거든. 이무 고기 속 영양분이랑 합쳐져서 잠이 왔나 보네.”
“뭐…라고……?!”
고삐 놓칠 뻔했다.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어젯밤에 마신 향긋한 그게 약이었다니.
약에서 그런 냄새가 날 수 있다니!
아니, 그보다도 내가 모르는 새에 약을 먹었다니?!
어쩐지 어제 몸을 그렇게 굴렸는데도 가뿐하더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야, 이 자식들아, 어떻게 몰래 약을 먹일 생각을 하냐?! 말을 하고 줘야지!”
아니,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어?!
우리 엄마도 약의 존재까진 안 숨겼다고!
“메린이 말하지 말래서.”
“말하면 안 먹으니까.”
죄책감 따위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말투들이었다.
제기랄, 메린 저 자식 말이 틀린 건 아니란 말이지.
게다가 부작용이 좀 있었긴 해도, 효과는 엄청 좋았고.
“젠장…… 알았어. 일단 고민해줄 테니까 다음부터는 말해. 또 몰래 먹이기만 해봐!”
물약들이 전부 어제처럼 그렇게 향이 좋고 쓴 맛이 덜하다면, 한 번쯤 고민해줄 수 있다.
물약은 죄다 고향 마을 것처럼, 끔찍하게 쓰고 냄새 지독한 줄 알았는데.
역시 세상은 넓구나.
“……뭐 어쩌지도 못하면서 센 척은.”
“아가리 다물어, 파랑새 새꺄!”
“어이구, 이런 건 또 잘 듣네.”
말을 달리며 나누는 이 정겨운 대화 속에, 딱 한 사람만 고집스럽게 끼지 않았다.
나는 로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
완전히 목석 같은 얼굴로 말을 달리고 있다.
백작 일행이 떠난 뒤부터 도로 이 모양이다.
게다가……
“……하아…….”
어젯밤엔 내가 뻗어버린 탓에 이야기를 못 나눴는데, 오늘은 진짜 얘길 나눠봐야겠군.
그렇게 다짐했을 무렵, 눈 좋은 메린이 저 앞 너머를 내다보며 외쳤다.
“오, 몬스터를 잡은 도적이다!”
“그냥 도적이잖아.”
얼마 안 가, 평범한 내 눈에도 저 앞쪽에서 몬스터 시체들에 열심히 작업 중인 도적들이 보였다.
오우거 두 마리랑…… 뭐지, 되게 묘하게 생긴 네 발 짐승인데.
대가리는 곰이랑 늑대랑 섞은 것처럼 생겼고, 몸통과 다리는 개처럼 길쭉하며, 꼬리는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짧고 뭉툭하다.
무엇보다도 크기가 오우거보다도 더 컸다!
“바르그네.”
“바르그? 저게?”
“들어본 적은 있나 보군? 위슨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저게 바르그야.”
고원에 주로 사는 놈이라고 들었었는데.
설마 오우거가 기르던 건가?
……근데 저 놈들, 분명 우리가 가까이 가면 멈추라고 세울 것 같은데.
달리 돌아갈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어, 멈춰~ 멈춰~”
이거 봐, 역시 멈춰 세우네.
그래도 사람을 그대로 치고 갈 수는 없어서 일단 멈춰 주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씨이익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놈의 뒤쪽에선 다른 도적들이 열심히 몬스터의 시체를 해체하고 있었다.
으윽, 냄새.
“이봐, 형씨, 사람 보자마자 얼굴 구기다니 너무하는 거 아냐?”
“어쩔 수 없잖아. 댁들이 저 놈들 시체 찢어서 냄새가 나는데.”
“뭐? 우리 냄새가 지독해? 하, 애송이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이 근처에 묻히고 싶냐?!”
결정적인 부분만 적당히 집어내는 걸 보니, 그냥 시비를 털고 싶은 듯했다.
으으, 싸우긴 싫은데.
어제 그냥 기절한 듯이 쭉 자서 몸이 뻐근한 데다 근육통도 있다고.
적어도 몸이라도 좀 풀었으면……
“……아.”
순간, 어제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몸풀기엔 대련이 최고이다.
뭐, 이건 대련이 아니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거니까.
게다가 이 놈들, 잘 보니까 그렇게 강할 것 같진 않다.
두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리는 도적을 향해, 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잠시 후, 총 열한 명의 도적이 바닥에 뻗은 채 신음을 흘렸다.
나머지 한 명은 지금 밧줄에 묶여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오우거 두 마리랑 저 네 발 짐승, 댁들이 잡은 건가?”
“옙.”
남자는 처음엔 욕설을 마구 내질렀지만, 메린이 힘껏 두 바퀴쯤 돌려준 지금은 세상 누구보다도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어디서 의뢰라도 받았나?”
“아닙니다, 나리. 그냥 여기 길목에 있는데 덤비길래 잡았습죠.”
원래는 열일곱 명이었는데, 바르그에게 네 명이 먹히고, 한 명이 오우거의 발에 밟혀 곤죽이 됐다고 한다.
그 밖에도 몇 놈은 부상을 입은 탓에,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역시 도적 나부랭이는 약하군.
저 정도는 우리 마을 자경대원 다섯이서 그냥 정리하겠구만.
“길목에 왜 있었는데?”
“하하, 나리, 아시잖습니까. 하하하, 그냥 저희 생업을 좀…….”
“아, 강도질?”
밧줄에 매달린 놈을 빙빙 돌려주었다.
“으아아아아! 한 번만 봐주십쇼!!”
“뭐, 좋아. 댁들을 넘기는 것도 번거로우니까, 그냥 피해보상 차원에서 좀 가져갈게.”
그렇게 열두 명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와 메린의 말다툼이 발생하고 말았다.
“왜! 저 옷들도 팔면 좋잖냐!”
“하지 말라고, 짜샤! 다 큰 여자애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대낮에, 그것도 다 보는 앞에서 남정네 옷을 벗기려 드냐?!”
“속옷 입었을 텐데 뭐 어때! 하, 진짜 웃기네, 너 감기로 뻗었을 때마다 내가 몸 닦……”
“으아아아아!!”
……녀석의 입에 사과를 꽂아 넣으며 마무리지었다.
이 미친놈이 진짜 남들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
입이 막힌 메린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눈으로 날 째려보면서 사과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진작에 물러날 것이지.
나는 도적놈들의 돈주머니만 싹 털고, 옷가지든 금품이든 전부 가만두었다.
덤으로 바르그 시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위슨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어이구, 두둑한 것 봐라. 사업이 꽤 잘 됐나 봐?”
“헤, 헤헤헤…… 저, 이제 좀 풀어주시면…….”
“음……”
잠시 고민하고,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쫓아와서 복수하겠다고 지랄할 테니 그냥 갈게.”
“아, 아니요, 나리! 절대, 절대 그런 짓 안 하겠습니다!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려요!”
“도적 주제에 뭔 명예야? 댁 동료가 깨어나면 부탁하든가.”
도적 새끼에게 베풀 자비는 이만하면 충분할 거다.
본인들 운이 아직 건재하다면 알아서 살아남겠지.
“나리, 제발! 이 근처엔 몬스터가 우글우글하다고요! 나리! 살려주십쇼! 야! 야, 이 지독한 새꺄! 이거 풀어주고 가라고오오!!”
욕설 섞인 고함을 뒤로 하며,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위슨이 의외라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너도 꽤 비정하구나.”
“비정한 건 다짜고짜 옷 벗기려는 쟤이고. 난 그냥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했을 뿐이야. 이른바 인과응보라고 하는 거지.”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법이다.
“……”
그리고 이 모든 과정 중에, 로나는 여전히 한 마디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살짝 무서워졌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우리는 한 마을에 도착했다.
근처에 영주가 다스리는 성이 있어서 그런지, 자경단이 아니라 위병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건 즉, 성벽은 없지만 다른 마을보다는 훨씬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걸 보여주듯, 여관은 나그네들로 아주 미어터지려고 했다.
방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네 명에 독방 네 개? 어디~ 보자아~…… 어, 아직 있네. 네 명 합쳐서 금화 한 닢이요.”
“우와, 비싸!”
수도 근처 여관은 한 사람당 은화 열다섯이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고급 객실이!
“목욕물이랑 스튜 한 그릇 포함이요. 싫으면 말어. 댁 아니어도 손님 많으니까.”
“이야, 장사 잘 되시니까 자신감 넘치시네. 근데 금화는 없으니까 잠시만요…….”
카운터 위에 은화 열 개씩 탑 열 개를 쌓아주었다. 주인장은 덤덤한 얼굴로 내가 쌓은 은화탑을 좌르륵 무너뜨리며 주머니에 쓸어 담은 후, 숙박명부를 내밀었다.
대강 ‘카엘 에스트렐 외 3명’이라고 적고 돌려준 후, 번호가 달린 열쇠 네 개를 받았다.
“열쇠에 방 번호가 적혀 있으니, 요 옆 지도 보고 알아서 찾아가쇼. 목욕물 필요하면 여기 와서 말씀하시고.”
“예, 감사합니다~”
쌈박하니 좋네.
누군가는 불친절하다며 투덜댈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정도가 딱 좋다.
대강 방을 나눈 후, 일단 각자 방에 가서 짐을 두고 다시 모이기로 했다.
그때, 오늘 처음으로 로나가 입을 열었다.
“카엘 님, 저는 여기 신전에 좀 다녀올게요.”
“신전? 성 안에 있는 거 아니야? 좀 있으면 성문 닫을 텐데.”
“아니요, 이 마을 안에도 있을 거에요. 없으면 바로 돌아오죠, 뭐.”
“저녁 먹을 거지? 네 몫도 주문해놓을까?”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먼저 드세요. 그럼 다녀올게요.”
내가 무어라 더 말할 새도 없이, 로나는 꾸벅 인사하곤 안쪽으로 가버렸다.
아마 짐을 두자마자 바로 바깥으로 나가겠지.
……할 수 없나?
일단은 그녀의 말대로 해주기로 했다.
로나를 제외한 우리 세 사람은, 다시 모인 후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쭉 살펴보는데……
이야, 어떻게 수도 근방보다 더 비싸냐?!
아무리 위병이 직접 치안을 돌보는 영주 직할령이라 다른 마을보다 안전해도 그렇지, 적당히 뜯어야지, 나 참…….
“세율이 높은가? 진짜 다 비싸네. 사과주 한 잔에 은화 세 개라니, 뭐 황금사과로 담갔나.”
“뭐 어때? 돈 있잖아. 스튜도 딸려 나올 거고.”
“그렇긴 하지만…….”
사실 주머니는 굉장히 여유롭다.
이 마을에 오는 도중, 또 한 무리의 도적들에게서 피해보상금을 두둑히 얻은 덕분이다.
메뉴판의 음식들 하나씩 전부 주문해도 남을 정도로 주머니가 빵빵하지만, 그래도 비싼 건 비싼 거지.
맛없기만 해봐.
“로나는 언제 온대?”
“글쎄, 기다리지 말라고 하더라.”
음…… 신전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마을에 묵을 때마다 그래야 한다면 좀 아쉽네.
맥주를 홀짝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로나가 다시 돌아온 건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미 식당은 마지막 주문을 다 받은 뒤였기 때문에,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건 여관에서 기본으로 주는 스튜와 음료뿐이었다.
그래서……
“어라? 카엘 님, 아직 안 주무셨어요?”
“너 기다렸지.”
한참 전부터, 식어도 괜찮은 간단한 먹을거리들과 함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 비싸서 그렇지 제법 맛있는 음식들인데, 로나 혼자 못 먹으면 좀 아쉬우니까.
“……와, 정말 그러실 필요 없었는데. 카엘 님, 역시 다정하시네요. 마음씀씀이가 너무 좋으세요!”
“칭찬해도 더 안 나와. 주문 시간 끝났어.”
“에이, 그런 거 아닌데 또 그러신다. 히히, 잘 먹겠습니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지, 로나는 눈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거의 물 마시듯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거 안 시켜놨으면 큰일날 뻔했는걸?
“근데 신전엔 왜 간 거야? 기도하러?”
“그것도 있지만, 율리아 님께 보고해야 돼서요. 편지 쓰고 왔어요.”
“보고? 우와, 그럼 마을 들를 때마다 써야 돼?!”
로나는 구운 소시지를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내용이 있을 때만 쓰면 돼요.‘도장’을 받았거나, 말리스에 가게 됐다든가 그런 것만요.”
“그럼 답장도 받아?”
“뭔가 전하실 게 있다면 그러실 거에요. 오늘도…… 짜잔~ 놀라지 마시라! 지원금 받았답니다!”
그녀가 품속에서 짤랑거리는 주머니를 꺼내어 내게 건넸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제법 묵직했다.
“지원금?”
“네, 지원금. 어떤 친절한 분이 기부를 해주셨대요! 여기선 좀 그러니까,액수는 방에서 확인해보세요.”
……감동이다.
출발할 때는 타고 다닐 말만 주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해서 엄청 빡쳤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고 계시구나…….
게다가 기부금이라니, 누군가가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다는 것 아닌가.
액수 상관없이, ‘지원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무언가 벅차오르는 듯했다.
기쁘다.
정말 순수하게 기쁘다.
……그와 동시에,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만큼 무겁기도 했다.
“……다들 지켜보고 있구나.”
“네. 이 대륙에서, ‘용사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다들 피부에 와 닿지 않으니까 말을 안 할 뿐이죠.”
어쩌면 나중에는,용사가 빨리빨리 일처리를 안 해서 죽을 것 같다며 불평할지도 몰라요.
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웃는 얼굴로 저런 무서운 소리를 참 잘도 한다니까.
“나 참. 미리 저녁 먹길 잘했네. 밥 먹고 있었다면 체했을 거야.”
“히히, 너무 부담가지지 마세요!”
“실컷 준 놈이…… 얼른 먹기나 해. 할 얘기 있어.”
“얘기요?”
……그렇다.
사실 내가 그녀를 기다린 건, 요리를 먹인다는 것도 있지만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게 더 크다.
어제 그 작은 숲속에서 만들어진 기묘한 균열은,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가는 듯했다.
일행의 대화에 끼지 않는 건, 원래 그러는 녀석이 하나 있으니 별 상관없지만……
동료 사이에 알력이 생기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너, 메린 피하고 있지?”
“……”
그녀는 대답 없이, 가만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씁쓸함이 잔뜩 느껴지는 미소였다.
어제 그 작은 숲에서 메린이 거리낌없이 시체를 뒤적거린 뒤부터, 로나는 메린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어제 저녁엔 말을 거는 건 고사하고, 심지어 스튜를 떠주는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께까진 부탁도 안 했는데 해줬으면서!
내 질문에 말없이 음식만 비우던 그녀는, 마지막 그릇을 비운 후에야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잿빛 눈동자가 식당 천장의 촛불 빛에 씁쓸히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선 좀 그러니…… 방에서 해요.”
“누구, 네 방?”
“음…… 저는 상관없지만 보는 눈이 안 좋을걸요? 제가 카엘 님 방에 찾아갈 테니 기다려주세요.”
안 좋게 볼 놈은 누가 누구 방에 가든 나쁘게 볼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역시 내가 여자 방에 가는 것보단 낫겠지.
“그래. 기다릴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돌아온 후, 침대에 걸터앉았다.
목욕은 아까 저녁 먹은 뒤에 했고, 일기도 써버렸으니 달리 할 건 없는데.
그냥 이대로 로나가 오길 기다리면……
“……”
절대 안 돼.
십중팔구 깜빡 졸 거야!
내일 또 여관에 묵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니, 오늘 이렇게 기회를 잡았을 때 확실하게 해결해야 돼!
“아, 맞다.”
지원금이랑 지금 가진 돈 확인이나 할까?
도적들의 피해보상금으로 두둑해진 돈주머니를 침대 위에 쏟고, 동전 종류별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돈이 금화 두 닢 정도였으니까……
이야, 오늘 숙박비 빼고도 피해보상금만 대충 금화 열두 닢이네.
장난 아닌걸?
어디 보자, 지원금 쪽은……
“헉.”
주머니를 열자마자 뿜어져 나온 황금빛에 눈이 부셨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세기 시작했다.
“……오, 오십?!”
엄청나게 놀란 탓에 목이 막혀서, 내 경악은 우렁차게 터져나오는 대신, 피시식 바람 빠지듯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금화를 알현하는 것도 황송한데, 허, 세상에, 오십 개라니.
허, 이 돈이면 아담한 오두막 한 채에서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이 돈이면……
……오, 주여, 이건 신종 시련입니까?!
“……치, 침착해, 침착.”
혹시라도 굴러 떨어질까,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금화들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꽁꽁 묶었다.
……이거 갖고 다니기엔 너무 큰 돈인데.
그렇다고 안 쓰겠다며 다시 돌려주기도 뭐하다.
으…… 로나가 오면 상의해봐야겠네.
침대에 쏟은 동전들을 다 정리했을 무렵,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엘 님, 저 왔어요.”
“문 열렸으니까 들어와.”
끼익, 문이 열리며,
“……헤헤, 실례합니다.”
연갈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로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