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74화 : 악연 멈춰!! (2)
* * *
날강도는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귀를 완전히 가린 채, 우리를 향해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야아~ 정말 기막힌 우.연.이지 않아? 흐흥~ 우리가 보통 인연이 아닌가 봐~ 그치?”
마치 오랜 친구를 맞이하는 듯한 태도다.
아, 돌겠네, 진짜.
이제 맘 편히 할 일만 하면서 갈 수 있을까 했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며, 메린의 어깨를 붙잡고 조용히 일렀다.
“……메린, 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미 마을 안에 들어왔으니까 쥐어 패거나 어디 던져버리면 안 돼. 그러니 참아.”
“아니, 그런 생각 전혀 안 하고 있는데.”
“어디 땅에 파묻는 것도 안 되니까 참아.”
“아니, 그럴 생각 없는데. 애초에 내가 언제 그랬었다고.”
……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언제 그랬었냐니? 얌마, 그럼 나한테 했던 건 뭔데?!”
“내가 뭐.”
“너 평소에 나 툭하면 패고 있잖아! 며칠 전만 해도 던져버리고!”
목검으로 두들겨 맞는 건 명목상 대련이니까 어찌저찌 넘어갈 수 있지만,
정강이를 차거나 뒤통수를 후려치거나 한 건 명백한 폭행이다!
물론 태반은 내가 먼저 시비 건 거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말에 주먹으로 답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메린은 내 열띤 반박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게 뭐 팬 거냐? 그냥 가볍게 제재한 거지.”
“……허, 허허. 허허허허허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세게 제재하면 아주 사람 잡겠다, 응?
“마지막에 주먹으로 팬 건 튜르랑 그 패거리였잖아.”
“……”
……진짜였습니다.
이 새끼의 기준에서 ‘팬다’는 건 ‘피떡을 만든다’는 의미인 겁니다.
그동안 날 때린 건 정말로 그냥 두드린 것, 아니, 살살 쓰다듬은 거였던 겁니다!
……하, 간만에 느껴지는 이 오싹함.
왠지 반가운걸?
“어머, 사람 앞에 놔두고 따돌리는 거야? 섭섭해! 모처럼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응? 자기야!”
“……”
자기……
자기……라고……?
어머머, 자기야, 드디어 나랑 놀 용기가 생겼어?
적갈색머리……
붉은 눈……!
“히익?!”
“우왓!”
……정신을 차리니 메린 뒤에 숨어 있었다.
녀석은 괴상한 얼굴을 짓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치거나 하진 않았다.
흑. 상냥해.
“뭐야, 또!”
“……나, 낯가림이 도진 거 같아.”
“지랄을 해요, 1분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으면서. 뭔 낯가림이 발작으로 뜨냐?”
큭……!
누구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냐고!
좀 넘어가달라고!
그건 그렇고, 젠장, 생각했던 것보다 후유증이 너무 심한 거 같아.
나도 신전에 가서 기도 받는 게 좋으려나?
톡톡, 위슨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진정제 주랴?”
“……아니, 됐어. 저기, 위슨,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자꾸 약 먹이려고 하지 말아줄래? 어째 나 가지고 실험하려는 것 같다?”
“……그럴 리가 있나.”
눈 피하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어라라?? 이건 안 되나보네. 그럼 뭐라고 불러줄까? 흐음~”
날강도는 진한 녹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손뼉을 마주쳤다.
“그래, 오빠라고 해줄까? 오빠아~”
“……거기.”
“으악?!”
홱 가까워지려던 날강도의 얼굴이 짧은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어째 엄청나게 낮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조심스럽게 메린의 어깨 너머로 내다보았다.
길게 뻗어 내린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날강도를, 로나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다.
“한창 낮에, 그것도 사람 오가는 곳에서 무슨 해괴한 짓을 하시는 건가요? 아직 밤 손님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뭐? 밤 손님? 너 그거 무슨 뜻으로……!”
앗.
날강도의 얼굴이 분노로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라, 아니었나요? 이런, 죄송해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에게 품위도 없이 애교 떨길래, 그쪽 종사자이신 줄 알았어요. 정말 죄송해요! 큰 착각을 했네요.”
그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 로나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물론 로나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저 날강도 엘프의 품행이 방정하다고 까고 있다!
그러나 날강도는 로나의 태도에 홀라당 넘어갔는지, 분노를 가라앉히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뭐, 한 번은 넘어가주지. 나도 아직 여러모로 익숙하지 않으니까. 대신 술이랑 밥 사! 내 방값도!”
“……”
진짜 날강도였다.
이 마을은 어제 묵은 곳보다는 확실히 작은 곳이었다.
20~30km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영주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있는지, 촌장이 마을을 관리하고 자경단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요 근방에 여러 작은 마을이 모여 있어서, 자경단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요즘 시대엔 서로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드니까요.”
“그렇군요…….”
“게다가 들으셨어요? 한 달인가 전부터 그 ‘불구덩이’가 다시 불이 붙었다지 뭡니까! 그 탓에 다들 수군수군대고 있다니까요.”
“그래요…….”
숙박명부 한 줄에는 지난번처럼 내 이름에 ‘외 3명’을 적고, 그 다음 줄에 날강도의 이름을 적었다.
“‘블루벨’이라니, 전혀 안 어울리네.”
“……후식 추가.”
젠장.
입 밖으로 새어버렸나!
명부를 돌려받고 열쇠를 건네주면서도 주인장의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손님들도 말리스로 가시죠? 뭐, 이 길로 오가시는 분들이 거진 그렇긴 하지만요.”
“예에, 뭐…….”
“허허, 역시! 몬스터가 갑자기 늘어나고 해도, 말리스로 가는 상단들이 끊이지 않은 덕분에 우리가 아직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긴 하다니까요.”
“하하…… 예…….”
아잇, 진짜, 이 콧수염 아저씨, 뭐 이리 말이 많아?!
이야기를 끊고 나갈 흐름도 전혀 못 잡겠고!
제길, 이 아저씨, 수다의 고수야……!
“뭐, 그 ‘불구덩이’가 또 흘러넘치면 말짱 황이겠지만요! 그러고보니 수도에서 온 보부상이 ‘용사가 나타났다더라’며 얘기하던데. 손님도 들으셨어요?”
“예에…… 뭐…….”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이나 구경해봤으면 좋겠다니까요.사나흘 전에 요 앞을 지나갔다는 말도 들리긴 하던데 말이죠. 하~ 물품 운송만 아니었으면 나도 봤을 텐데!”
……용사가 이삼 일 전에 여길 지나갔다고?
용사는 난데?
또 다른 내가 돌아다니고 있는 건가?!
“사나흘 전에요?”
“예에. 뭐랬더라…… 아, 그래그래!금발머리의 키 큰 청년이었는데, 엄청나게 화려한 검을 차고 있었답디다!”
이거……
혹시 그 사람 아냐?
마티아스가 찾는다던……!
나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화려한 검이요? 뭐, 막 보석 같은 게 달렸나봐요?”
“으응~ 그건 아니고…… 그래, 금색으로 막 장식이 되어 있었대요. 뭔꽃 장식이었다던데.”
“꽃~? 거 되게 특이하네. 뭐, 장미꽃이라도 넣었대요?”
“글쎄, 그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틸다! 잠깐 이리 좀 와봐!”
이름을 불린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물동이를 내려놓고 쪼르르 달려왔다.
“너 전에 그 금발머리 용사님 봤다고 했지? 검 장식도 봤어?”
“꺄아~ 당연히 봤죠! 얼마나 잘생겼었는데! 정말 어디 왕자님 같았다니까요!”
“욘석아, 얼굴 말고 검 말이야, 검.”
“검~? 으응…… 글쎄요…… 얼굴이 너무 빛나서 다른 거엔 잘 눈이 안 갔는데……”
여자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제발, 기억해내라. 제발!
제발제발제발제발!
“아, 기억났다. 맞아, 다트가 신나서 쫑알댔었지, 참.”
“……무슨 장식이었는데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왠지 모르게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긴장이 되어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여자는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천수국.”
“……!”
“응, 맞아.금빛 천수국 장식이었어요!”
굉장히 자신 있게 외쳤다.
다른 일행이 맡아 둔 테이블로 돌아와,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다행히 그 블루벨이라는 안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날강도는, 씻고 오겠다며 제 방으로 올라가고 없었다.
땋아 내린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던 메린이, 내 이야기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빛 천수국? 허탕이네?”
“아니, 그렇지도 않아. 메리골드랑 천수국은 비슷하게 생겼잖아. 아마 그 친구가 말한 사람이 맞을 거야.”
“그럼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물어보는 건…… 안 되겠네요~ 찾는 줄 몰라야 한다고 했었으니까.”
생각할수록 희한한 의뢰다.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 사람을 찾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야 한다니.
이거 그냥 찾고 있는 척만 하고 싶은 거 아니냐?
“……근데 카엘.”
별안간 메린이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걸었다.
시선은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에 고정한 채,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부산스럽게 매만지고 있었다.
“왜?”
“……너, 저 여자 어쩌려고 방값 내줬냐? 밥이랑 술은 그렇다치고, 왜 방값까지 내달라는대로 내줘?”
“왜, 아까워? 나도 더럽게 아깝긴 한데, 야, 그걸로 내 정신이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싼 거 아니겠냐.”
녀석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여전히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째, 음, 눈빛이 좀 험악해진 것 같다.
“……정신 안정……?”
“원하는 거 들어줄 때까지 들러붙을 작정인 것 같던데? 아까는 로나가 잘못하기도 했고……. 여기서 돈 아깝다고 뻗대다가 더 귀찮아지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손에 돈 쥐어 주고 저 멀리 보내버리고 싶다.
물론 돈으로 주는 건 엄청나게 아까운 생각이 드니 안 할 거지만.
“아…… 그런 거였구나. 하하, 그렇구나. 응, 알았어.”
음?
메린 녀석, 어째 살짝 당황한 것 같은데……?
“왜, 뭐 문제 있어?”
“……아냐, 없어. 아무 문제없어.”
“……”
“아, 아무 문제없다고!”
호오, 평소의 덤덤한 얼굴은 어디 가고, 뭐 훔쳐먹다가 들킨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대?
물론 이런 표현을 그대로 입 밖에 냈다간 맞으니까, 속에만 담아두었다.
“진짜 없어? 어째 수상한데.”
“아, 진짜 끈질기네! 아무 문제없다고, 새꺄! 얼른 주문이나 해! 아니면 식전 운동으로 대련 한 판 뜰까?!”
“아니요. 예. 식사하셔야죠. 예. 주문합시다, 주문. 제가 골라드릴까요?”
……어이씨, 괜히 성질이야.
설마 이걸 빌미로 내일 아침 대련이 더 빡세지는 건 아니겠지?
후식 하나를 더 바쳐서 진정시켜야겠군.
“히히.”
“……”
로나는 또 히죽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늦은 사춘기가 온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날강도 엘프, 블루벨이 다시 식당에 나타났다.
여전히 모자를 푹 눌러써서 귀까지 가리고 있다.
엘프인 걸 숨기고 싶은가 본데, 그냥 확 벗겨버려……?
아냐아냐, 괜히 건드리지 말자.
그냥 좋게좋게 헤어지는 게 제일 낫지.
평화가 제일이야.
“흐흥~ 전부 다 차려놓고, 기특하네? 누나가 상으로 뽀뽀라도 해줄까?”
“……저기, 이종족 편견 생길 거 같으니까 적당히 하시지?”
이 사람이 내가 만난 세번째 엘프이다.
하나는 변태 중의 변태였고, 하나는 약간 얼빠진 대현자였는데, 지금 이 사람은 변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조는 가벼운 것 같지?
세 명 중에 두 명이나 품행이 방정하단 말이지?
지금 ‘엘프는 다 저 모양으로 발랑 까졌나’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단 말이지……!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다른 누군가에게 편견 갖기는 싫다.
내 말투에서 무언가 느낀 건지, 블루벨은 두 손 들며 얌전히 물러났다.
“나~참, 알았어, 알았어. 친해지자고 하는 건데 그걸 못 받아주니? 꽃밭에 있는 거 치고는 너무 딱딱한 거 아니야?”
“꽃밭?”
“당신 동료들. 다 여자잖, 꺄아아악?!”
갑자기 블루벨이 두 귀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비명까지 질렀는데도 주위 사람들은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먹고 마시고 놀고,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위슨은 남자야, 이 귀쟁이년아.”
……그리고 위슨이 굉장히 싸늘한 눈으로 블루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파랑새가 그녀의 귀를 공격하는 동시에, 주변에 그 소란이 들리지 않도록 조치한 모양이었다.
홧김에 저지르면서도 공작할 건 다 하다니……
무서운 싹수가 보이는데?
“어허, 위슨, 귀쟁이라니 그런 종족비하 명칭은 쓰면 안 돼. 그리고 오해받기 싫으면 몸 좀 더 키워. 너 솔직히 말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완전 여자애거든? 나도 아직 가끔 놀란다고.”
“이런 미친, 페로몬 약도 안 먹는데 왜?! 위슨 몸이 뭐 어때서?! 카엘, 너도 몸 부실하잖아!”
진짜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뭐…… 역시 제일 큰 원인은 그거겠지.
“파…… 음, 그목소리가 얇은 게 크지? 그 외에도 뭐, 머리도 엄청 길고, 입까지 가리고 있잖아. 너 그거 목소리 못 바꿔?”
오우, 위험했다. 하마터면 위슨의 비밀장치를 밝힐 뻔했어.
그가 입을 가리고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파랑새가 대신 말하고 있는 걸 숨기기 위한 거 아니겠나?
게다가 새가 말한다는 건 마법을 쓰고 있다는 의미도 되니, 가급적 숨기는 게 좋겠지.
아무튼 파랑새의 어조만 낮춘다면 좀 덜 헷갈릴 거다.
“목소리야 바꿀 수 있지. 근데 미친놈아, 그게 왜 내 탓이냐?! 너네 인지력이 거지 같아서 그런 거 아냐!”
“얌마, 모르면 닥쳐. 목소리도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물질계 인지감수성이 부족한 놈은 이래서……쯧쯧.”
위슨은 내 말에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찾았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그동안 나는 귀를 틀어막은 채 잠시간 바닥에 엎드려야 했다.
제기랄, 위슨의 목이 하루라도 빨리 낫기를 전심전력으로 매일매일 기도해주마!!
“근데 어느 정도로 조정해야 되냐?”
“으으…… 뭐? 아, 목소리? 내일 봐 줄게.”
지금은 불청객도 있으니 때가 좋지 않다.
내일 길 가다가 쉴 때 셋이서 같이 다 보는 게 좋겠지.
내가 다시 자리에 앉을 즈음에, 블루벨도 겨우겨우 회복되었는지 이를 박박 갈면서 의자에 다시 앉았다.
“으으, 뭐야, 방금? 뭔 수작을 부린 거야? 귀 멀어버리는 줄 알았잖아! 아니, 헷갈리게 생긴 게 잘못이지!”
“괜히 성질 더 건드리지 말고 얌전히 식사나 하십쇼, 아가씨.”
그녀는 여전히 씩씩거리긴 했지만, 더 불평하진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먼저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는 듯했다.
그렇게 다시 조금 이른 저녁을 먹나 했는데……
블루벨이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쭉 훑어보더니, 또 표정을 잔뜩 구겼다.
아잇, 진짜.
“아, 또 뭐! 뭔 트집을 잡으시려고 또.”
“당신, 일부러 이런 거지? 이걸 나보고 어떻게 먹으라고!”
“적당히 덜어서 접시에 담은 후, 포크로 찍어 드십쇼. 싫으면 손으로 먹든가.”
“그 뜻이 아니잖아! 이 고기들, 죄다 사슴이랑 토끼랑 새 아냐! 난 못 먹는다고!”
이게 뭔 소리야?
고기를 아예 못 먹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건강 때문에 평생 풀떼기만 먹고 살아야 하는 안타까운 사람도 있으니까.
……근데 뭐?
사슴에 토끼에 새고기라서 못 먹는다고?
이게 대체 뭔 말이래?
“뭔 헛소리야? 알아듣게 떠들어.”
드물게 메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자, 블루벨이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뀌었다.
“난 숲의 일족이라고. 그런 내가숲에 사는 짐승들 고기를 먹을 수 있을 리 없잖아. 너희들, 그렇게우리에 대해서 몰라?”
“……”
자신감이 뿜뿜 넘치는 태도로 말하는 엘프, 블루벨.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그녀의 얼굴만 멍청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