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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81화 (81/475)

〈 81화 〉 79화 : 자유도시 말리스에 어서오세요! (4)

* * *

녀석이 울음을 그친 뒤에야, 나는 ‘여자, 그것도 어린애에게 몹쓸 짓 하려는 놈’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내 결백이 인정된 건 좋은데……

어쩐지 무척 쓸쓸한 기분이야……

마음이 너무 추워……

나, 그간 헛살았던 걸까?

그런 파렴치한 놈으로 보이고 있었다니…….흑.

“너 저번에 로나한테 ‘오빠’라고 불렸을 때, 엄청 히죽댔었잖아. 그래서 설마 했지.”

“너 저번에 위슨 목욕하는 거 훔쳐봤었잖아. 그래서 애들 취향인 줄 알았지.”

“……”

제길, 업보였구나.

근데 엄밀히 따지면 둘 다 내 잘못 아닌데.

특히 뒤의 건 파랑새 저 새끼가 작당한 거였는데!

“천천히 드세요~”

“우응, 우움.”

소매치기는 세상 떠나가라 울 땐 언제고, 지금은 표정 싹 바꾸고 스튜를 입 안에 들이붓듯이 허겁지겁 퍼먹고 있다.

……저 녀석, 설마 아까 펑펑 울던 거 거짓말이었던 건 아니겠지?

녀석이 그릇을 거의 다 비울 때를 기다린 후,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너는 잉그리트의 부하의 부하의 부하의 부하라고?”

“……꿀꺽. 아니라니까! 잉그리트 님의 부하인 귀상어 베이루트 님의 부하인 외눈박이 원아이 님의 부하인 파인트 님의 부하인 세리어스 님의 부하인 코인 님의 부하인 마일드 님의 부하라고.”

어라, 희한하네.

분명히 말을 다 똑바로 들은 것 같은데, 전혀 기억에 남지를 않아.

아니, 사람 이름이 대체 몇 개가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잉그리트의 부하의 부하의 부하의 부하의…… 아잇, 돌겠네! 아무튼 끝자락 말단이란 거 아냐!”

“그렇게도 말하지.”

“그러면서 아까는 잘도 ‘가장 아끼는 부하’이니 뭐니 그런 거냐? 하이고…….”

“흥! 포부라는 거야, 포부. 사람은 꿈을 크게 가져야 된다고.”

“아, 그러셔.”

어쨌든 휘하에 저렇게나 많은 부하를 두고 있다는 건, ‘잉그리트’라는 사람은 진짜로 ‘뒷세계의 거물’인 모양이다.

골목길에서 칼부림이 났을 때도 그 여자의 부하들이라는 이유로 위병도 부르지 않았고……

아니, 부르지 않은 게 아니라 위병 쪽에서 못 본 척한 건가?

그 정도로 규모도 크고 힘도 있다면, 일단은 그 여자를 인신매매 범인이라 봐도 되겠지.

“하~ 맛있었다~”

“아, 이거도 드실래요? 민스파이인데 맛있더라고요~”

“우와, 사제님, 최고!”

어쨌든 여기서 이렇게 태평하게 저녁밥에 후식까지 얻어먹는 저 녀석은 그냥 일개 소매치기일 뿐이다.

우리가 추적하는 그런 ‘거래’에 대한 건 모르겠지.

하지만 하루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니까 뭔가 봤을지도 몰라.

“그럼 너…… 위즐이랬나? 위즐, 요 며칠 사이에, 못 보던 꼬맹이들을 태운 마차나, 그런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 봤어?”

“어엉? 형씨, 여기 못 보던 애들이 한둘인 줄 알아?”

“아니, 긴장하거나 겁에 질려 있거나…… 아무튼 표정이 안 좋은 네다섯 살짜리 애들. 못 봤어?”

위즐은 스푼을 입에 문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맞아. ‘토끼풀 저택’ 앞에 짐마차가 서 있었는데, 거기 애들이 타고 있었어. 사람 실은 마차가 있는 거야 워낙 흔한데, 그러고보니 애들이 너무 어렸었어.”

“흔하다고? 뭐하는 곳이길래? 귀족 집?”

“흥, 이 도시에 귀족은 없어. 거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곳이야.”

녀석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파이가 무슨 원수라도 되는 마냥 콱콱 씹었다.

“창관.”

“창관? 흠…….”

창관이라면 그거잖아.

술과 웃음, 그리고 끈적하고 뜨거운 하룻밤을 파는 곳.

남녀를 불문한 모든 배우자의 공적(??).

그런 데라면 사람 여럿을 실은 짐마차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하지만……

“거기 팔린 걸까요?”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열 넷이나 열 다섯, 하다못해 열 살이면 몰라도 네다섯 살짜리를?

아니, 말도 안 되지.

아무리 싸게 사서 써먹을 심산이라 해도 너무 어려.

“위즐, 애들이 창관 안에 들어가디?”

“음…… 아니? 내가 딴 데 갔다가 다시 거기 갔을 때도 애들은 그대로 있었어. 언제까지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역시.

놈들은 애들을 거기에 팔려고 데려간 게 아니야.

그곳에 ‘거래자’가 있으니까 간 거지.

애들은 분명 그 ‘거래자’가 다른 곳으로 데려갔을 거다.

“그럼 이 도시에 없을 수도 있겠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납치된 애들이 이곳으로 왔고, 그에 대한 ‘거래자’가 ‘토끼풀 저택’이라는 곳에 있었다.

지금은 이 사실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쨌든 그 창관으로 가봐야겠어.”

“그래, 그렇겠지.”

“그렇겠죠~”

……응?

어째 또 분위기가 요상한데?

나를 보는 두 크고 작은 아가씨에게서 뭔가 싸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 왜. 조사하러 가야 되잖아. 뭐 문제 있어?”

“아니, 없는데.”

말과 달리, 두 눈에는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이 자식들이…….

“얌마,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진짜 조사만 하러 가는 거니까.”

“누가 뭐랬냐?”

“네 눈이 엄청 뭐라고 하고 있거든?! 하, 진짜 이 자식이 아까부터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쏘아붙이자, 메린 녀석은 시선만 휙 피할 뿐이었다.

“왜? 거기 뭐하는 덴데?”

그리고 여기, 문명사회에 대한 지식이 희박한 섬 출신 소년이 한 명 있었다.

순진하게 눈을 깜박이며 묻는 그를 향해, 로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위슨 씨, 창관 몰라요?”

“처음 듣는데. 뭐하는 데냐?”

“어…… 몸 파는 곳이요.”

“몸을 판다고? 노예 시장이야?”

노예 시장이라는 건 어떻게 아는 건지 조금 많이 신경 쓰였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아니요. 음…… 그러니까 그게……”

로나는 뺨을 약간 발갛게 물들인 채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음, 어린 소녀의 입으로는 좀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이긴 하지.

이럴 때야말로 어른이 나서야지, 암!

근데 메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뭘 그리 어렵게 말해? 돈 주고 섹,”

“으아아악!”

재빨리 손으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우와, 위험했어!

이건 진짜 위험했다고!!

“섹?”

“크흐흠흠흠!! ……돈으로 성적 쾌락을 사는 곳이야.”

“성적 쾌락? ……아~ 이해했어. 그런 데도 있구나. 바깥 세상 무섭네.”

노예 시장이 있는 섬 사회가 더 무서운 거 같은데.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위슨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린 후,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서 걱정하는 거야? 카엘이 거기서 동정 뗄까 봐?”

“카엘 님, 젊으시잖아요. 한창 그런 거 관심있으실 나이이시고. 유혹에 넘어가기 쉬우니까, 자칫해서 그릇된 선택을 하실까봐 걱정하는 것뿐이랍니다. 저, 사제니까요.”

하여간 말은 잘해요.

메린도 어깨를 으쓱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얘도 일단은 남자잖아. 창관에 그렇게 가보고 싶었구나 했지. 우리 마을 남자들도 다 가고 싶어했거든.”

우리 고향 마을은 창관이 있을 만큼 크지 않아서, 그런 ‘장사’는 술집과 여관 뒤편에서 알음알음 이뤄졌다.

뭐, 나도 소문만 들었을 뿐이지만.

“그래, 솔직히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데,”

“거봐.”

“말 자르지 마, 짜샤. 호기심이 있는 건 인정하는데, 그 서비스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그러니 제발 안심하셔들.”

내 말에 두 사람이 시선을 피했다.

전혀 안 믿고 있군.

이런 편협한 자식들.

창관 손님엔 여자도 있다던데!

“어쨌든 위즐, 그 ‘토끼풀 저택’이란 곳, 어디 있는지 알려줄 수 있지?”

“그래, 이렇게 먹을 것도 줬으니…….”

파이의 기름이 묻은 손가락을 쪽 빨며 위즐이 말을 이으려는 순간,

“안 될 일이야! ‘토끼풀 저택’이라니!”

문이 벌컥 열리며,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할아버지를 쳐다보는데,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즐이 후드를 도로 푹 뒤집어쓰고 있었다.

“너 뭐하냐?”

“냅둬! 쉿!”

소원대로 해주지, 뭐.

할아버지는 거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왜 또 나야?

“너, 거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가려는 거냐?”

“창관이죠?”

“누가 지배하는지 알고 가느냔 말야.”

“……포주?”

앗. 표정이 험악해졌다!

답이 아닌가봐!

……근데 창관의 주인은 포주 맞지 않나?

아, 포주가 아니라 다르게 불러야 되나?

“놀러가는 게 아니면 관둬! 차라리 상인조합으로 가라!”

“네? 아니, 저희가 놀러가는 게 아닌 건 어떻게 아시고…….”

“들었으니까 알지. 뭐, 집 나간 애들이라도 찾나 본데, 거긴 너 같은 애송이가 쑤실 데가 아냐. 그냥 얌전히 상인조합에 얘기해서 협조 받아라. 날 도와줬으니까 충고해주는 거야.”

할아버지는 정말로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상인조합이 뭔데요?”

“엉?”

멍한 얼굴로 나를 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어쩐지 주름이 더 생긴 것 같았다.

자유도시 말리스.

그것이 이 도시의 정식 명칭이었다.

자유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처럼, 이 도시는 왕국의 통치를 전혀 받지 않는다.

영주의 직접 통치를 받지 않는 마을들이, 저마다 촌장을 세워서 직접 마을을 꾸려가는 거랑 비슷한 이야기이다.

“어~ 그러니까, 여기 도시를 다스리는 게 상인조합이다?”

“그래.”

“그럼 여기 성벽이랑 그 위병들도 전부 상인조합 거에요?!”

“당연하지. 두 말하면 잔소리지만, 이 도시의 가게들도 전부 조합 소속이야. 그야말로 돈으로 세운 도시라고.”

세상에…….

아니,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영지와 성을 세우고 유지하는 건, 소유주의 관직이나 신분이 아니니까.

돈.

다른 것보다도 가장 먼저,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돈만 있으면 신분 상관없이 도시를 세우고 성을 지을 수 있다.

아하, 그래서 여기가 ‘상인들의 수도’라 불리는 거구나.

그 말 그대로,상인이 세운 유일한 도시니까.

“흠, 그러니까 상인조합이 여기 행정수뇌부이니 그리로 가서 정식으로 협조를 받으라?”

“행, 뭐? ……아무튼, 그래. 아무리 돈에 미치고 팔짝 뛰는 놈들이어도, 대놓고 상인조합에게 대드는 놈은 없어. 성과는 얻기 힘들더라도, 일단 목숨이 위협받을 일은 없을 거야.”

“……”

글쎄…… 아닐 거 같은데……?

이 도시의 운영을 상인들이 맡고 있다면, 왕국과는 하등 상관없이 자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냥 달라지는 게 아냐.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네. 충고 감사합니다. 생각해보죠.”

“얼씨구. 말은 그렇게 하면서 갈 생각이구만? 뭐, 내 목숨도 아닌데 알아서 해. 난 경고했으니까.”

들켰네.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토끼풀 저택’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보지. 아까는 도와줘서 고마웠어.”

“뭐라도 좀 드시고 가시죠.”

“됐어. ……근데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 뒤쪽을 쳐다보았다.

내 뒤에 있는 건, 별안간 후드를 뒤집어쓴 위즐밖에 없는데.

“……너, 거기 때 묻은 포대자루 같은 녀석, 너. 얼굴 보여봐.”

“……”

“얼굴 보여보라니까!”

“으아아, 치한이야!!”

쪼르르 도망가려는 녀석을, 내가 잽싸게 붙잡아서 후드를 벗겨주었다.

“이 배신자!”

“네 편이었던 적 없는데.”

할아버지는 조명 아래 드러난 녀석의 얼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너, 이 빌어처먹을 년!!”

찰싹!!

“……?!”

고함을 치더니 그대로 세차게 뺨을 후려쳤다!

녀석을 붙잡고 있던 나까지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세기였다.

저 영감이 미쳤나!

재빨리 뒤로 물러나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우와, 야, 괜찮아?!”

“어…… 으……”

위즐은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는지, 녀석은 피를 닦을 생각도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눈물만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 영감탱이가 노망들었나! 갑자기 뭐하는 거에요?! 말로 할 것이지 왜 뜬금없이 손부터 올려?!”

“제3자는 빠져!”

“관계자인데요! 정확하게 말하면 소매치기 피해자! 그래도 이건 아니지!”

“뭐, 소매치기? 저, 저 미친년이! 클레어, 이 우라질 년, 이리 안 와?!”

클레어? 엥?

뭐야, 위즐은 가짜 이름이었어?!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저 영감탱이 잔뜩 흥분해서 눈이 시뻘개졌잖아.

일단은 내 등 뒤에서 벌벌 떠는 소녀를 지켜야한다.

“아주 그냥 혼쭐을 내주마!”

“히익?!”

으악, 보기와 다르게 육중한 영감탱이가 위즐을 향해 막 달려들기 시작했다!

위즐은 나를 방패 세워서 할아버지의 손을 요리조리 피했고,자연히 그 사이에 끼게 된 나만 진짜 죽을 맛이었다.

“아, 좀 진정하세요! 말로 하시라니까! 메린! 메리이이인!!”

“오냐.”

“이거 놓으쇼! 아, 놓으라니…… 놓으, 으억, 안 뿌리쳐진다?!”

……급하게 친 구조 요청 덕분에 상황이 일단은 안정되었다.

휴우.

“할아버지가 얘 보호자시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다짜고짜 손찌검하시면 안 되죠! 그것도 여자애 얼굴을!”

“……뭐, 여자애? 너 이 새끼, 그거 어떻게 알았어? 설마 벗겼냐?!”

“아니, 왜 뭔 얘기만 하면 그쪽으로 가?! 아주 그냥 다들 머릿속이 음란마귀로 꽉 찼어, 엉?!”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이 사람들, 하나같이 머릿속이 죄다 불건전해선……!

아니, 어떻게 이 선량한 얼굴을 두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망상을 펼쳐?!

“선량? 푸흡, 어벙한 거겠지.”

“닥쳐, 퍼렁이! 아무튼 할아버지, 때리지 마세요. 먼저 말로 하셔, 말로!”

“할애비가 집 뛰쳐나간 손녀 때리는 게 뭐 어때서! 먹이고 재워준 은혜도 모르는 년은 맞아도 싸지!”

우와, 진짜 손녀였구나.

난 또 그냥 돌봐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누가 해달랬어?! 맘대로 해놓고 은혜 어쩌고 하지 마!”

으악, 할아버지 얼굴이 구겨지면서 도로 시뻘개졌다!

안 돼!

어떻게 진정시킨 건데!

“좋든 싫든 넌 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줬다! 짐승도 그 은혜는 알아, 이 망할 것아! 얌전히 곱게 커서 시집이나 갈 것이지, 어디 집을 나가선 남의 주머니에 손을 대?!”

“할아버지한테 보고 배웠다, 왜! 할아버지도 도둑질한 돈으로 나랑 언니 먹인 거잖아! 그 핏줄이 어디 가겠냐고!”

“너…… 너 이……!”

“이제 몰라! 나 그냥 냅둬! 할아버지 따위 보기 싫어!!”

“으아악!”

날카로운 통증이 손목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위즐, 클레어, 아니 어쨌든, 녀석이 내 손목을 콱 깨물더니 후다닥 집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저, 저 못된 년! 이거 놔! 에잇!”

이번엔 할아버지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바닥에 던졌다.

연막이다!

이런 미친?!

“클레어! 거기 안 서?!”

“콜록콜록! 아, 젠장, 이거 눈 매운, 콜록콜록! 끄아아아! 이게 뭔 개판이야?!”

문과 창을 전부 열어젖혀도 연기가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집 밖으로 대피해야 했다.

“으으…… 이게 뭔 고생이람…….”

“뭐, 좀 정신없긴 했지만, 아무튼 일단락됐잖아요? 이제 슬슬 저희 할 일 하러 가요!”

헤실헤실 웃으며 로나가 말했다.

어딘지 즐거워보이는 웃음이었다.

“할 일? 어디?”

“창관!”

“……”

로나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얘기하길래, 또 어디 다른 곳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창관은 그렇게 웃는 얼굴로 가자고 할 만한 데가 아닐 텐데.

나는 한숨을 쉬며, 로나에게 말했다.

“넌 못 가.”

“왜요?!”

“너 성년 안 됐잖아. 위슨이랑 같이 집 지키고 있어.”

“싫어요!!”

……우와, 목소리 큰 거 봐!

그보다 이렇게 세게 거부하는 건 지난번 섬에서 잔소리했을 때 이래인걸?

“아니, 왜 싫어? 뭐 좋은 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싫어요, 저도 같이 갈 거에요! 창관 가보고 싶단 말이에요!”

“……”

아니, 목에 핏대 세우면서 주장할 일인가?!

정말 말문이 콱 막혀버릴 정도로 단순하면서 굉장히 뜨겁고 강한 열망이었다.

사제님인데.

“카엘 님이 뭐라고 하시든 따라갈 거에요! 저 두고 갈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

이젠 눈까지 부릅뜨면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푹 빠진 아이를 이길 수 있는 어른은 많지 않지.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절대로 무서워서 수락한 거 아니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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