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81화 : 토끼풀에는 독이 있다 (2)
* * *
여전사가 고함을 지르며 대검을 휘둘렀다.
부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들렸다.
챙!
칼날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겼다.
여전사의 자세가 흐트러지며, 대검이 정반대 방향으로 홱 날아갔다.
그에 비해 메린은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체격도, 무기의 크기도 월등히 큰 여전사가, 상대적으로 가느다란 메린에게 순수 힘으로 밀려버린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쩌억!
앗. 튕겨나간 대검에 애꿎은 테이블만 반쪽이 나버렸다!
우리에게 물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이익!”
여전사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제대로 몸을 가늠하기도 전에, 메린이 여전사의 복부에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크윽!”
“세상에……!”
여전사가 허리를 푹 굽힌 채 서너 발짝 뒤로 물러갔다.
벽에 처박히는 게 아니라, 그냥 뒤로 몇 발짝 물러났어!
“오, 역시 버그베어. 딴딴하구만?”
“크으으!! 용서 못해!!”
“그래, 그래야지.그렇게 나와줘야지!”
……메린 녀석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녀석은 지금 내게 등을 돌리고 있어서 표정이 안 보인다.
하지만, 저 녀석의 저 말, 이 느낌……!
“하앗!”
여전사가 메린을 향해 대검을 세로로 내리쳤다.
이번에는 메린이 옆으로 피하며 바닥이 우지끈 박살났다.
“훗!”
거대한 칼날이 곧장 가로 방향으로 날아왔다.
일부러 노린 거였나!
“……!”
여전사가 흠칫 놀랐다.
허리가 절단된 몸뚱이가 구르고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 순간, 키득, 웃음소리가 들렸다.
“까꿍.”
“어떻게……!”
대검의 넓적한 날 위에 서 있던 메린이, 그대로 여전사의 턱을 걷어찼다.
“커흑!”
여전사의 우람한 몸뚱이가 공중에 떴다.
메린이 몸을 빙글 돌리며 뒤돌려차기를 꽂는 그 순간, 아주 잠깐이지만 보였다.
녀석이 서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그 얼굴을……!
쿵!
발차기를 맞은 여전사의 몸뚱이가 벽에 처박혔다.
벽이 파일 정도로 큰 충격을 받고서도, 여전사는 휘청거리며 다시 섰다.
“아, 아직 멀었어!”
그랬다.
여전사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두 눈엔 아직 투지가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그 위용이 여전사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줄 누가 알았을까?
메린의 주먹이 뺨을,옆차기가 가슴을 차례로 가격했다.
또 다시 여전사의 몸이 벽에 부딪쳤다.
반동으로 튕겨나온 복부에 주먹이 꽂혔다.
고꾸라진 턱이 걷어차였다.
그럼에도 여전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다.
전사의 위용?
불타오르는 투지?
그딴 건 맨 처음 주먹을 맞았을 때 죄다 깨졌다.
저건 쓰러지지 않는 게 아니다.
못하는 거지!
저 새끼가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까……!
둔탁한 소리들은 끊이지 않고 울렸다.
그 외의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묵직한 침묵이 찾아왔다.
주위 분위기가 빠르게 얼어붙어가는 게 느껴졌다.
당연하지.
저건 싸움이 아니라,가는 신음소리 하나 허락하지 않는 무참한 폭행일 뿐이니까!
속이 끓어올랐다.
“젠장!”
잠잠하다 싶었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거지?
화풀이도 아니고, ‘후환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도 아닌 거 같고……!
아무튼 말려야 돼.
저러다 죽이겠어!
“이제 그만해, 메린!! 그쯤 하라고, 미친 새끼야!!”
있는 힘껏 외쳤는데도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붙어서 뜯어 말리기엔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다.
가까이 가는 동안에 이미 늦을지도 몰라!
젠장, 어쩌지?!
“……!”
테이블 위에 술잔 하나가 구르는 게 보였다.
그래, 저걸로 시선이라도 끌자!
슬링 끈에 술잔을 대고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이건 나무잔이니까, 만에 하나 저 녀석이 맞아도 혹만 나고 말겠지.
뭐, 어차피 맞지도 않겠지만!
“멈춰, 메린!!”
끈을 놓았다.
술잔이 바람을 가르며 쌩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마음속의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엎드려!!’
“……!”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추는 순간, 무언가 머리 위를 쌔액 스치고 날아간 듯했다.
이내, 뒤쪽에서 쾅 소리가 나며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허.”
마치 터진 것처럼 접수대가 완전히 박살나 있었다.
그 근처에 서 있던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아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설마, 아까 내가 날린 술잔을 저 녀석이 받아쳐서……?
그럼 만약, 내가 곧장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읏.”
간담이 서늘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번엔 메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나를 보며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녀석의 옆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여전사가 피를 뚝뚝 흘리며 축 늘어져 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메린을 멈췄다.
성공했구나.
다행이야.
“뭐야, 너였어?! 야, 이 미친놈아, 왜 갑자기 껴들고 지랄이야?!”
“……”
녀석이 되려 화를 내며, 단숨에 나를 향해 뛰어왔다.
나를 이리저리 살피는 녀석의 시선에서 피하려 고개를 푹 숙였다.
눈을 마주칠 순 없다.
지금의 내 표정을 보여줄 순 없다.
왜냐면, 녀석이 무서우니까.
……내가 지금 공포에 질려 있다는 걸, 녀석에게 보일 수는 없으니까.
“다친 데는 없네. 함부로 싸움에 끼면 안 되지! 아니면 말을 하든가!”
“……안 들렸냐?”
“엉? 뭐가?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
전혀 모르겠어.
뭐가 문제가 됐던 거지?
대체 무엇 때문에 이 녀석이 완전히 정신을 놓고 날뛴 거야?
젠장, 아무 이유도 떠오르지 않아……!
“끝나버렸네…… 자, 일어나.”
“……”
아쉬워……하는 건가?
그럴 리가.
이 녀석이 누굴 더 패지 못해 아쉬워한 적은, 여태껏 한 번도 없었는데……?
거의 무의식적으로 메린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처음 겪는 이 녀석의 모습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안주인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야만인을 지하에 쳐 넣어.”
여전사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안주인의 말에 남자들이 움찔거렸다.
“예? 어어, 마님, 이 여자는……”
“왜. 잉그리트의 부하라서 못하겠니? 그 애는 신경도 안 쓸 테니 걱정하지 마. 꼴도 보기 싫으니 얼른 쳐넣어. 나머지는 여기 정리 좀 하고.”
“어, 예. 알겠습니다.”
잉그리트, 그 이름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메린에 대한 건 나중에 생각하자.
여기서 할 일이 있잖아?
일단은 그 일에 집중해야 돼.
“카엘? 왜 그래? 어디 아픈 데 있어?”
“……아냐, 괜찮아. 후우…….”
크게 심호흡을 했는데도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남자 두 명이 여전사의 손과 발을 각각 들고 갔고, 나머지 남자들은 부숴진 테이블이나 의자, 그릇 등의 부스러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안주인은 홀을 둘러보고 한숨을 쉰 후,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큰일났다.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는데!
“고마워요. 덕분에 내 저택도, 우리 경비들도 그럭저럭 무사하네요. 보답으로 뭘 해드려야 할까?”
“어어……”
……안주인을 보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진정이 안 되기 시작했다.
에라이, 빌어먹을 본능 같으니라고!
“으응? 왜 그러세요? 뻣뻣하게 서 계시고.”
으악, 가까이 오니까 더 눈을 못 마주치겠어!
하필 안주인이 굽 높은 구두를 신은 탓에 나보다 약간 키가 높아져 있어서……
우와와, 눈앞에 엄청나게 풍성하고 깊은 계곡이……!
“뭘 멍청하게 서 있냐? 물어보러 왔잖아.”
메린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나도 알고 있는데, 제기랄, 앞을 못 보겠는 걸 어쩌라고!
“후후, 얼굴이 빨갛네요? 열이 있으신가본데, 안쪽에서 쉬실래요? 원하시면 저희 애들이랑 같이…….”
“어, 그, 아, 아니요. 저희는 그……”
약간 온기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손이 내 턱을 감쌌다.
망했다. 이제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안주인은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머, 안 돼요.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하셔야지. 자아, 맘 편히 말씀해보세요. 뭘 해드릴까?”
심호흡! 그래, 심호흡을 하자!
이럴 때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거야.
당황하면 지는 거야, 휘둘리면 안 된다고.
근데 그냥 메린 이 자식, 지가 얘기하면 될 텐데, 꼭 이럴 때만 조용히 있더라!
“저, 그, 여,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어머, 뭐가 궁금하실까?”
“며, 며칠 전에 요 앞에 어, 어린애들을 가득 실은 마차가 왔었다고 들었는데요.”
안주인이 내 얼굴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녀는 약간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 조금 진정됐다.
“뭐야, 조합 사람이었어? 난 또 귀여운 오빠가 와서 좋아했더니.”
“아닌데요. 조합이랑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 그걸 왜 물어요?”
“……동생이 거기 섞여 있는 거 같아서요.”
생판 남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나는 안주인에게 밀수꾼들의 아지트 이야기를 섞어서 적당히 이야기를 꾸몄다.
그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근처 테이블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한 후, 바깥을 향해 크게 외쳤다.
“마틴! 오늘 장사 끝났으니 문 닫고 돌아가! 그리고 여기 맥주랑 안주거리 아무거나 갖다줘!”
“예입! 수고하셨습니다!”
바깥에 서 있던 문지기가 저택의 문을 닫고 열쇠로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리가 불만이 잔뜩 담긴 함성을 지르는 게 들린 듯했다.
가엾은 로나.
“여기 대령했습니다.”
종업원이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맥주 세 잔과 구운 감자 접시를 내려놓았다.
“자, 사양 말고 드세요.”
“어…… 예에……”
안주인이 먼저 맥주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동생이 납치됐다니……그거 안 됐네요.”
“……예, 아직 어린애인데…… 무슨 몹쓸 짓을 당한 건 아닐지…… 하아…….”
“흐음……. 일단 이거라도 드시면서 추스르세요. 약 같은 건 안 넣었으니 염려 마시고.”
부드럽게 웃으며, 안주인이 감자와 맥주를 권했다.
그 웃음에 이끌리듯이 감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옆에서 꽂히는 날카로운 눈빛에 바로 거두었다.
“어머, 왜요? 의심되세요?”
“아니요. 저희가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서요…….”
“정말일까~?”
“그럼요.”
“흥. 어련하시겠어요?”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힌 아주머니인데, 토라진 표정이 약간 귀엽게 보였다.
술도 안 마셨는데 내가 미쳤나봐.
그녀는 감자를 한 입 더 먹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으음, 좀 밍밍하네. 얘! 여기 양념 좀 가져와!”
아까 그 종업원이 다시 와서, 검은 가루가 든 병을 놓고 갔다.
안주인은 그 병의 내용물을 감자에 뿌리고,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었다.
“으음~ 그래, 이 맛이야! ……그건 그렇고, 네, 맞아요. 애기들을 실은 마차가 우리집에 몇 번 왔어요.
처음엔 우리랑 거래하려고 온 줄 알고, 애들이 너무 어리다고 마부에게 말했더니, 우리에게 팔러 온 게 아니라며 코웃음치더군요.”
“그럼……”
안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객이 따로 있었던 거에요. 그 마부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더군요. 그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좀 알아봤더니, 꽤 높으신 분이었지 뭐에요.”
“그게 누구죠?”
“그건 있죠……”
안주인이 테이블에 가까이 몸을 낮추며 손짓했다.
공공연하게 얘기하긴 좀 그런가?
나도 그에 맞추어 몸을 낮추었다.
안주인의 얼굴이 가까워졌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 안주인의 붉은 입술이 비죽이며 곡선을 그렸다.
“……?!”
눈앞에 뭐가 끼어들었다!
잘 보니 손가락이다.
정확하게는, 안주인이 집고 있는 감자를 붙잡은 메린의 손가락이었다.
“……저녁, 먹고 와서요.”
“……”
안주인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안주인이 내게 기습으로 감자를 먹이려던 걸, 메린이 막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입에 들어왔겠지.
메린 녀석, 경계심은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어쨌든 가라앉아 가는 분위기를 무마시켜야 한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 죄송합니다. 얘가 요즘 제 식단을 관리 중이라…….”
“흐으음~ 그렇군요~”
안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다시 허리를 곧게 폈다.
“아까워라. ……정말, 맛있는 감자인데.”
“……하하.”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안주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높은 분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 그럼 먼저,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요.”
또 ‘거래’야?
아니, 거래 자체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긴 한데, 왠지 이 사람도 바가지 씌울 것 같단 말이지.
엄청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킬 것 같아.
괜히 나대다가 죽지 말고 잘 사려.
귀족 친구가 했던 충고가 떠올랐다.
……그래, 나 같이 음모와는 무관하게 산 놈이, 이런 뒷세계에 엮여서 좋을 리가 없어.
애들을 데려간 게 어떤 높은 사람이란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해.
나머지는 직접 알아보자.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그 편이 훨씬 안전할 거다.
“……아니요, 됐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찾을게요.”
나는 메린에게 눈짓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주인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깐 있어볼래요?”
“네?”
안주인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동시에, 내 몸이 갑자기 옆으로 홱 밀렸다.
그대로 몇 바퀴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아야야…… 뭐야, 대체…….”
위치상 날 민 건 메린인데.
녀석에게 신나게 불평해주려고 고개를 든 순간,
“……!”
“콜록콜록!”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곳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있고, 메린이 그 속에서 거세게 기침을 하고 있었다.
“메린?!”
“콜록, 오, 오지 마!”
창관의 경비들이 코와 입을 틀어막고, 눈까지 질끈 감은 채 창문을 여는 게 보였다.
독이구나!
“크으……”
연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메린이 테이블을 짚은 채 안주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주인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맥주잔을 기울였다.
“후우~ ……후후, 역시 여자의 감이야. 그럼, 그럼. 잘 알고 말고.”
“메린!”
녀석에게 다가가려는 내 앞을, 경비들이 막아섰다.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마. 아가씨가 실컷 들이마신 건 우리 저택에서 직접 만든 특별 양념일 뿐이거든. ‘고유’의, ‘특별’ 양념.
후후, 한 시간 내로 우리집의 ‘특별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양념에 취해서 네 심장이 터져버릴 뿐, 별일 없을 거야.”
“이 망할 할망구가, 도와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아?!”
“어머, 할망구라니, 너무해라. 그리고 은혜라면 갚았잖니? 정보 알려줬잖아.이건새로운 거래란다.
아가씨가 네 대신 당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후후,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말 듣는 게 좋을 거야.”
경비들이 벽처럼 앞을 가로막으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딴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 눈은 오직 메린, 그녀를 향했다.
심장이 터진다더니, 그 말대로 메린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왼쪽 가슴을 부여잡은 채, 가쁜 숨을 쉬고 있다.
젠장, 내가 너무 안일했던 건가?!
설마 적대하지 않는데도 함정을 팔 줄이야……!
망할 포주년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미안해! 하지만 너희 도움이 꼬옥, 필요하거든. 나는 너희 도움으로 골치덩어리를 치우고, 너희는 동생을 찾고. 어때? 서로에게 좋지 않니?
아아, 맞다. 덤으로 아가씨, 네 목숨도 지금 구할 수 있네! 이거 너희들이 더 득을 보는 것 같은데?”
“노망난 소리도 정도껏 해!!”
“어머, 말버릇 좀 봐. 조금 교육이 필요하겠네.”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곧바로 검을 뽑아, 서서히 다가오는 경비들을 향해, 그리고 그 뒤에서 쪼개고 있는 할망구를 겨누었다.
“해독제 내놔.”
“내 부탁을 들어주면 줄게.”
“해독제부터 내놔!!”
“내 부탁 먼저 들어주겠다고 맹세하면, 내줄게.”
저 늙은 여우가……!
손톱을 매만지며 여유 넘치는 태도로 쪼개고 있다.
완전히 자신이 우위에 있는 줄 아나 보지?
한 시간.
메린이 죽기까지 남은 시간.
……충분해.
이 새끼들을 죄다 죽여버리고, 저 늙은 여우에게 해독제를 받아낸 뒤,
같잖은 짓을 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아!
“어머, 무서워라. 귀엽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좋아, 맘에 들었어.”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늙은 여우가 품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이게 해독제거든? 내 경비들을 해치우면 줄게. 그걸로 시험을,”
늙은 여우의 말이 갑자기 뚝 끊겼다.
갑자기 생겨난 그 공백을, 말이 되지 못한 소리들이 채워넣었다.
또르르, 작은 병이 구르는 소리.
끼이익, 나무바닥이 삐걱이는 소리.
드르르, 의자 다리가 끌리는 소리.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뒤늦게, 공포에 질린 비명이 메아리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