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82화 : 토끼풀에는 독이 있다 (3)
* * *
머리가 눈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내, 내 손, 내 소오오온!!”
실성한 듯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늙은 여우가 뒷걸음치고 있었다.
그새 드레스를 갈아입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붉다.
가슴팍도, 얼굴도, 손도.
그리고 그 손이 붙잡고 있는, 붉은 폭포를 뿜어내고 있는 팔도.
“……하.”
조금 전까진 거기에 손목과 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아주 잠깐, 뭐가 번쩍인 것 같기도 하다.
“마님!!”
경비들이 피를 쏟고 있는 늙은 여우에게 달려갔다.
일부는 그 여우를, 그리고 그 일부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 무언가 마시고 있는 메린을 질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기저기에서 숨어 있던 종업원들이 각자 붕대, 천, 약 등을 들고 한꺼번에 뛰쳐나오더니 늙은 여우를 둘러싸다시피 했다.
바로 맞은편엔 메린이 홀로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열 걸음도 안 되는 거리인데, 분위기는 완전 상반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즉효성은, 아닌, 가보네…… 하아, 하아…….”
가만히 중얼거리며, 메린은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듯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굴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력도 없는 듯이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데.
그런데 그녀의 오른손엔 대체 언제 뽑은 건지, 검 자루가 단단히 쥐어져 있다.
왼손에는 텅 빈 작은 병이 주둥이만 잡힌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늙은 여우가 들고 있었던 바로 그 병이었다.
메린은 이따금 기침하면서 맞은편을 바라보고 있는데,꼭 나비들이 파닥이는 걸 쳐다보는 듯한 표정이다.
……그건 즉, 저 참상을 만든 장본인이면서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다는 뜻일 터.
난저걸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야?
무모하다고 나무라야 되나?
아니면 기습 잘했다고 해야 돼?
저 비명을 들으면서도 딱히 유쾌해하는 기색은 없으니 안심해야 되는 건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이걸 저 녀석에게 대체 어떻게 전해야 되는 거야?
“주, 죽여, 죽여버려!! 저 년을 죽여버려어어어!!”
안쪽으로 옮겨지면서 늙은 여우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주인의 명령을 들은 경비들이 칼을 빼들고 메린에게 덤벼들었다.
해독제를 먹었다고 해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수적 우위도 있으니 문제없으리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상대는 일반인이 아닌 메린이었다.
메린은 의자에서 일어서자마자, 그 의자를 던져 한 명의 머리를 박살냈다.
그 후 곧바로 테이블을 걷어차서 여러 명을 넘어뜨렸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중심을 잡으려 주춤거리는 그녀를 향해, 다른 경비들이 칼을 휘둘렀다.
“뒈져!!”
메린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더 움직이지 않고 오른팔을 휘둘렀다.
아무 기교도 없는, 그냥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는 듯한 움직임.
생초보도 안 맞을 단순한 공격을 되풀이할 뿐인데.
……그런데도,
비명을 지르는 건 그들이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누군가는 칼이 쪼개지며 목이 떨어졌다.
누군가는 팔이 날아갔다.
어깨가 떨어져 나갔다.
조준이 삐끗했는지 어깨와 목이 같이 날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붉은 분수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왔다.
깔끔했던 홀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고, 찰박거리기 시작했다.
그 여전사는 한 번이나마 칼날을 맞대기라도 했지.
저 경비들은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무참히 썰려 나갔다.
‘무력화한다’는 선택지는 머릿속에서 아예 빼버린 듯했다.
“히이, 히이이익!!”
테이블에 맞았다가 이제 일어난 경비들은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렸다.
칼을 떨어뜨리고,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찰박, 찰박.
메린이 한 발짝, 한 발짝,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손에 쥔 검의 날이 천장 조명을 받고하얗게번뜩였다.
바닥과 천장, 심지어 제 주인도 붉게 물들어 있는데, 홀로 고결한 듯이 아무 피도 묻어 있지 않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소름이 돋았다.
“아……”
막아야 되는데.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늘 그랬던 것처럼 소리쳐야 하는데.
목소리가 무언가에 꽉 막힌 것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럼 몸이라도 가야 하는데.
그때 그랬던 것처럼 들러붙어서 뜯어말려야 하는데.
왜 다리까지 움직이지 않는 거지?
찰박, 찰박.
붉은 물을 튀기며 그녀가 걸어가고 있다.
곧 희생될 사냥감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기어가듯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으아, 으아아아……!”
……멈춰줘.
“사, 살려주, 살려주세요!!”
“……”
메린이 천천히 검을 쳐드는 게 보였다.
키득, 웃음소리가 들린 듯했다.
누가 저 녀석 좀, 멈춰줘……!!
콰아아앙!
귀가 찢어질 듯한 폭음과 함께 질풍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윽?!”
그게 무엇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메린이 외마디 신음을 내뱉으며 저만치 뒤로 날아갔다.
이번에도 머리가 눈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 따라오길 잘한 거 같네요.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지만요.”
조금 전까지 사신이 서 있던 자리에, 붉은 사제복을 늘어뜨린 소녀가 서 있었다.
철퇴를 지팡이 삼아 붉은 바닥을 짚으며, 전투사제가 나를 향해 고개만 살짝 돌렸다.
“로나……?”
멍하니 이름을 불렀다.
대답 대신, 두 잿빛 눈동자가 나를 보며 깊이 미소 지었다.
로나는 다시 앞을 주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보는 저 앞에는 먼지구름이 뽀얗게 피어있다.
그 매캐한 연기 속에 벽과 바닥, 주변 가구들이 박살나선 마구 널부러져 있었다.
파사삭!
“아…… 깜짝이야…….”
그 파편들을 거칠게 치우면서, 메린이 연기를 헤치고 빠져나왔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기만 했을 뿐, 아주 멀쩡해보였다.
……주변은 완전히 초토화가 됐는데.
아니, 얼굴이 긁히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무슨 생각이야? 로나.”
덤덤한 얼굴로 묻는 메린에게, 로나는 평소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 생각없이 행패를 부리는 메린 님을 막을 생각뿐인데요. 정말이지,훈계가 조금 필요하신 것 같네요.”
“훈계……? 내가 왜?”
하아, 로나가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메린이 눈썹을 찡그리는 게 보였다.
“그걸 모르시는 시점에서 아직 멀었네요. 카엘 님이 너무 물러서…… 아니, 이게 카엘 님의 최선이었겠죠. 카엘 님이 당신을 훈계하는 건 무리일 테니까요.”
“로나……?”
“아니에요, 카엘 님. 신경 쓰지 마세요.”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는 나를 막듯이, 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황은 대강 에코에게 들었어요.”
에코? 누구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 같긴 한데…….
“나다, 새꺄.”
“악.”
……파랑새의 이름이었구나.
아니, 이름 잘 안 부르니까 좀 까먹을 수도 있지, 그렇다고 사람 뒤통수에 부리돌격을 해?
위슨 아니었으면 내 이름 안 부를 자식이!
위슨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파편을 휙휙 넘어오며 손을 흔들더니, 앞을 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그가 들어오는 것과 교대로, 경비들이 앞다투어 출입문 바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그들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경비들이 달아나는 모습을 멀거니 보다가, 다시 붉은 옷을 입은 두 아가씨를 보았다.
지팡이처럼 세운 철퇴에 살짝 몸을 기댄 채, 로나가 한창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독 먹인 사람의 손을 자른 건, 뭐, 제 기준엔 괜찮거든요? 근데 덤벼드는 사람을 마구 두들기고, 칼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마구마구 베어버리시다니. 그건 절대 옹호할 수 없네요. 정말이지, 그 심정 모르는 건 아니지만 상황을 봐 가며 하셔야죠.”
로나의 말투는 여전히 밝고 명랑하지만, 그 말 하나하나는 확연하게 비난의 뜻을 품고 있다.
메린의 얼굴이 이상하게 구겨진 것도 당연하지.
녀석이 저런 말을 들었을 땐, 그 속에항상부정적인 감정이 있었으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내가 잘못했다고?”
“당연하죠.”
“나는 그저,”
“아~ 알아요. ‘받은 대로 되돌려준 것’이라는 거죠? 잘 알고 말고요. 그 개념에 대한 건 차치하고서도 메린 님은 여전히 잘못이 있어요.”
눈살을 찌푸리는 메린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로나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르시겠어요?
……카엘 님이 멈추라고 하셨잖아요. 왜 듣지 않으신 거죠?
주이…… 흠흠,보호자의 말을 무시하다니, 그보다 큰 잘못은 없어요.”
메린은 찡그린 얼굴을 펴고,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얼굴이었다.
“저런, 아예 들리지 않았던 건가요? 흠…… 그렇다면 뭐, 많이 나쁜 것도 아니네요. 자, 그럼……”
그제서야 로나는 나를 향해 몸을 약간 틀고,방긋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카엘 님, 아직 할 일이 있으시죠? 메린 님은 저에게 맡기시고 위슨 씨랑 같이 가세요.”
“……할 일……?”
“없으세요? 없으시면 뭐, 여기 계셔도 되긴 한데요.”
할 일……
할 일이……
……아, 맞아. 그 여우 할망구.
애들을 산 ‘높으신 분’이 누구인지 들어야 돼.
분명 이 ‘저택’의 안쪽으로 들어갔던 것 같은데.
하지만……
정말로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할 일 있으시죠? 여긴 걱정 마세요. 나중에 다 말씀드릴 테니, 카엘 님도 무엇을 알아내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알았어. 맡길게. 위슨.”
“음음, 소리는 포착했어. 이쪽이야.”
파다닥, 파랑새가 날아오르며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저택’의 안쪽으로 가려는 순간, 또 무언가 크게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히 걸음을 멈추었다.
“메린 님은 저랑 여기서 이야기하시죠.”
“……하?”
“카엘 님, 잘 다녀오세요~”
뿌연 먼지구름 속에서,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와 느긋하게 배웅하는 목소리가 차례로 울렸다.
……괜찮을까?
저도 메린 님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쪽으로 도와드릴게요.
그날 로나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도와주겠다고.
메린이 제대로 된 사람의 삶을 살도록 한다는 내 목표를 돕겠다고.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니 괜찮을 거다.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지금은 로나가 맡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자.”
위슨과 함께 다시 파랑새를 쫓아 달렸다.
……부디 다시 만났을 때, 둘 다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복도를 돌고 돌아 가장 안쪽에 있는 방 근처에 다다르자, 파랑새가 우뚝 날갯짓을 멈추었다.
“저 앞의 방 안이야.”
“……”
살짝 열려 있는 문.
어지간히 급하게 들어간 모양이군.
이따금 문틈으로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엄청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데, 이거 그냥 걸어가도 안에서 못 알아챌 거 같다.
누군가 자신을 뒤쫓아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나?
아주 그냥 잡아가라고 광고를 하고 있네.
“내가 이게 무슨 꼴이야, 씨발!! 그 미친년, 절대 그냥 묻히게 안 둬. 몸뚱이는 방부처리해서 정*받* 인형으로 실컷 써먹을 거야. 그 년 머리카락은 걸레로 쓰고……!”
“……”
문에 가까이 갈수록, 늙은 여우가 끊임없이 내뱉는 욕지거리들이 점점 더 생생하게 들렸다.
우와…… 귀 씻어버리고 싶어.
사람이 진짜 악에 받히면 저질스러운 단어를 쓰지 않고도 무시무시한 욕을 할 수 있구나.
배우고 싶지 않다.
그보다 ‘뒷골목 주민’ 아니랄까봐 사고방식이 참…….
복수를 위해 시신을 절단하는 건 들어봤지만, 방부처리해서 이런저런 일에 쓰겠다는 건 무슨 발상의 전환이냐?
화가 치밀어 올라오다 머리 바깥으로 탈출해버린 바람에 오히려 아연해졌다.
어쨌든 용서 못해.
그 미친 발상까지 더해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서 외쳤다.
“찾았다, 이 여우 할망구! 순순히 항복해!! 그럼 눈깔 빼는 걸로 봐주지!!”
“너 사실 항복받을 생각 없지?”
옆에서 날리는 지적은 무시해주었다.
늙은 여우의 부릅뜬 눈이 나를 향했다.
몇 십 분 전까지만 해도 온 세상 남자들을 녹여버릴 듯한 매혹의 화신이었는데.
지금은 경비들과 종업원들에게 둘러싸여선, 딱 봐도 독할 거 같은 술을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다.
그야말로 밑바닥으로 떨어진 늙은 접대부나 마찬가지였다.
“뭐야, 살아 있잖아!!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이 버러지 새끼들!!”
늙은 여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들고 있던 술병을 집어 던지며 악을 썼다.
그러다 여우의 몸이 휘청거리면서, 주변 부하들에게 가려서 보이지 않던 반대편 팔이 슬쩍 보였다.
손이 잘려 나간 부위는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는데, 아직도 지혈이 되지 않는 건지 붕대 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늙은 여우는 그 붕대만큼이나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비죽거렸다.
“하, 그 미친년은 버리고 뭔 애새끼랑 같이 왔네? 하하, 꺄하하하! 그 꼴로 뭐? 항복? 내 눈을 빼겠다고? 씨발, 젖내나는 새끼들이 나를 아주 *으로 보네?
얘들아, 저 애송이 새끼들 잡아라. 내가 오늘 저 새끼들의 살을 씹어먹으련다……!!”
손이 잘린 고통과 술기운에 완전히 맛이 간 모양이었다.
여우를 둘러싸고 있던 부하들이 칼을 빼 들고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좀 숫자가 많긴 하지만, 그딴 게 뭔 상관이야.
몇 놈이든 다 죽여버릴……!
“야, 눈 감고 귀 막아.”
“엉?”
“위슨은 분명히 말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이 상황에 뭔 소리래?!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 더 꺼내려는 순간, 그가 벨트에서 무언가 병을 집어드는 게 보였다.
“……!”
으악, 물약이다!
곧바로 눈을 감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 후 두 귀를 막았다.
바사삭 깨지는 소리가 아주아주 희미하게 들린 후, 뒤통수가 징징 울리는 듯한 떨림이 느껴졌다.
잠시 후, 위슨이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더니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방 쪽으로 돌아선 내 두 눈 한 가득, 말끔한 지옥도가 보였다.
“우와…….”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서 있기는커녕, 지금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조차도 없는 듯했다.
심지어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여우조차도, 입에 게거품을 문 채 의자에서 흘러내린 듯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하나같이 끄어어 거리고 있는 게, 섬에서 봤던 그 시체 무리 같았다.
그리고 이 꼴을 만든 위슨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하…… 얘도 좀…….
“좋아, 좋아. 이걸로 쭉 가면 되겠네!”
“뭐가? 뭐가 되겠다는 거야?!”
“섬광물약. 정식 조제법을 쓰기엔 재료가 모자라서 위슨 방식대로 만들었거든. 효과 확실하네! 핫하, 누구 힘이 들어갔는데 당연하지!”
파랑새가 우쭐해하는 걸 보니, 위슨이 정령의 힘을 빌려서 만든 모양이다.
……지난번에 그 미친 마녀가 썼던 것과 비슷한 물약인가?
그때는 빛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지만.
그보다 이 미친놈, 사람한테 물약 실험하고 있어!
하, 돌겠네.
“……너 끝나고 보자.”
“……”
위슨이 내 시선을 피했다.
사람 속마음을들을수 있는 파랑새가 있어서 그런지, 내 말뜻을 바로 이해한 듯했다.
“으어…… 어어어어…….”
“……”
다들 하나같이 침 질질 흘리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음, 그 심정 알지.
귀가 엄청 울리고 눈앞이 빙빙 돌고 있을 거다.
돌아오려면 한참 걸릴걸?
한꺼번에 제압한 건 좋은데……
이거 지금 당장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하겠구만.
그럼……
“일단 묶을까?”
딴 놈은 필요 없으니, 늙은 여우만 손발을 꽁꽁 묶었다.
이 다음은……
아, 맞아, 여기에 사람을 가두는 곳이 있다고 했어.
그 여전사를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이니, 분명 제법 넓은 곳일 거다.
“여기 어디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을 거야. 그쪽으로 데려가자.”
“……그건 상관없는데, 굳이 그렇게 끌고 가야 되냐?”
“엉?”
위슨이 별안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음, 역시 아무리 그래도 얼굴을 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건 좀 그런가?
나는 늙은 여우를 뒤집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이제 얼굴이 깨질 일은 없겠지.
뒤통수는 뭐……
틀어올린 머리 크기가 좀 크니까 충격 흡수하겠지.
“이러면 됐지?”
그대로 다리를 붙잡고 질질 끌고가기 시작했다.
“……물든 건지, 그만큼 빡친 건지, 아니면 그냥 곱게 미친 건지…….”
“다 들린다, 임마.”
한숨 소리를 등에 받으며, 꿋꿋하게 계속 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