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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85화 (85/475)

〈 85화 〉 83화 : 가는 실이라도 어디야 (1)

* * *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었다.

“근처에 있을 줄 알았는데.”

퍽!

“저택이 꽤 넓어서 그런가?”

쾅!

“잘 안 보이네…….”

쿵!

그래도 짐덩이가 하나 딸려 있는 것 치곤 그리 힘들지 않다.

드디어 체력이 좀 붙기 시작했나보다.

이따금 뭐가 쿵쿵거리는 것 같은데, 그 방에 모여 있던 놈들이 깨어나선 난리를 피우고 있나 보지?

근데 이 할망구, 전혀 깨어날 생각을 안 하네.

어째 머리에 혹이 생겨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까 그 섬광물약?

그걸 직통으로 맞았나?

“흠…… 위슨, 아까 던진 물약, 효과가 너무 센 거 같다. 좀 약하게 만들어야 할 거 같은데.”

“……참고는 할게.”

“으음~ 근데 진짜 계단이 안 보이네. 저쪽 가봤던가?”

왠지 가봤던 것 같기도 하고……

하아, 진짜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니까 헷갈려 죽겠네.

쿠구과가가강!

쨍그랑!

뒤쪽이 시끄러웠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꽃병이 올려 있는 선반 하나를 쓰러뜨린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지, 뭐!

“……하아…… 적당히 해라, 미친놈아.”

“엉?”

“기다려봐.”

위슨이 가벼운 손놀림으로 병을 던지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웡!”

“웬 늑대?”

“길 찾아야 되니까.”

길? 늑대가?

아무리 정령이라 해도 아무 단서 없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지 않구나.

늑대가~ 대지의 정령이라고 했던가?

그럼 땅과 땅 속에 있는 건 다 알 테니, 길 찾는 건 식은 죽 먹기겠군.

위슨이 늑대와 눈을 마주하며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웡!”

늑대가 대답 대신 짧게 짖은 후, 나에게 가까이 와서는 킁킁대었다.

녀석은 그대로 뒤쪽으로 가서 내 짐덩이도 킁킁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내 손을 툭툭 쳤다.

“……?”

쓰다듬어 달라는 건가?

근데 지금 내 손은 매우 바쁜데.

음, 손 하나만 잠깐 뗀다면야…….

짐덩이의 다리 하나를 놓았다.

그 순간,

“우앗?!”

늑대가 내 다른 손을 살짝 물어버렸다!

그 바람에 붙잡고 있던 짐덩이의 다리가 완전히 땅으로 떨어졌고,

“아.”

곧바로 늑대가 짐덩이를 등에 태우고 가버렸다!

“얌마!”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대지의 정령이라더니, 내 손이 채 닿기도 전에 땅 속으로 푹 잠기더니 저만치 앞에서 도로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뭐 저딴 사기적인 능력이 다 있어?!

그렇게 등에 늙은 여우를 태운 채 유유히 걸어가는 늑대의 뒷모습……

……아아, 그 모습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저 녀석이 데려가버린 늙은 여우는, 이제 두 번 다시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절로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안 돼애! 돌려줘어~! 내 즐거움을 빼앗아가지 마아~!”

“먼저 간다, 미친놈아.”

상실감에 빠진 나를 그냥 내버려둔 채, 늑대의 뒤를 따라가는 위슨이었다.

“……후, 매정한 자식.”

다시 일어나 그 뒤를 따라갔다.

……쳇, 두 바퀴만 더 돌 생각이었는데.

어쨌든 늑대의 힘을 빌린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계단을 찾을 수 있었다.

“흠, 여기 아까 한 번 지나갔던 것 같은데, 왜 눈에 안 보였을까?”

“그러게. 그때 분명 위슨이 계단 여기 있다고 말도 걸었던 거 같은데.”

“그래? 희한하네. 못 들었는데.”

“……”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는 위슨의 눈초리가 무척 건조했다.

아무튼 계단을 내려가 지하실에 도착했는데, 건물 크기에 비해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보통 지하실은 저장 창고로 많이 쓰이니, 기둥이나 큰 선반만 있기 마련이다.

우리집도 그랬고.

그런데 이곳은 지하 외에 따로 창고를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포대자루나 술통 대신, 나무로 지은 벽과 문이 양옆에 죽 늘어서 있었다.

“방이 많은 것 같네. 숙소로 쓰나?”

근처 문을 하나 열어보았다.

짚더미밖에 없는 방 안에,웬 남자가 벌거벗은 채 드러누워 있다.

“……”

이, 이게 대체 뭔……?

앗.

눈 마주쳤다.

“부흐.”

“……”

잽싸게 다시 닫았다.

“왜? 뭐 있어?”

“아니.”

……이 방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살찐 남자가 벌거벗은 채 목줄이 묶여 있는 모습 따위 보지 않았다.

어쩐지 이 ‘토끼풀 저택’에 오면서 본 사람인 것 같지만, 그건 분명 조금 전에 지나치게 자극적인 상황을 겪은 탓에 피곤해서 착각한 거다.

응. 그렇고 말고.

“뭔 소리 들렸는데? 아, 뭔데 그래.”

“음…… 수퇘지?”

“……엥? 돼지?”

“그런 게 있어. 자, 쭉쭉 가자, 쭉쭉. 여기 방들은 열어볼 필요 없겠어.”

의아해하는 위슨을 재촉하며 더 안쪽으로 들어가,아무것도 없는 외길을 통과했다.

도중에 위슨이 쪼그려 앉아서 뭔가 주운 것 같은데……

……뭐,지하니까 버섯 땄겠지.

설마 다리 달렸거나 꾸물꾸물거리는 생물이겠어?

버섯일 거야, 버섯.

엄청나게 신경이 쓰였지만 굳이 확인하진 않았다.

세상엔 모르는 편이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니까.

외길을 벗어나자, 이번엔 쇠창살로만 된 방들이 나타났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감옥 같은데……

“……”

족쇄야 당연히 있는 건데, 저 목마는 왜 있는 거지?

주변에 뭔가 나무조각도 있는 것 같고……

……뭔지 잘 모르겠는데, 깊게 알면 안 된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 것 같았다.

어쨌든 감옥이니까 대강 안에 던져두면 되겠지.

“저기 넣어두자.”

늙은 여우를 가둔 후, 공연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지하공간은 이 감옥이 끝인 듯했다.

“……응?”

저쪽 감옥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인가……?

……으, 또 뭔 희한한 게 굴러다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휴.”

일단 옷은 제대로 입고 있군.

합격.

근데 왜 엎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 거지?

죽었나?

쇠창살 앞에 쪼그려 앉아, 엎어져 있는 그 사람의 어깨를 쿡쿡 찔러보았다.

“……”

아무 반응이 없다.

그냥 시체인 듯하다.

갇힌 채로 굶어 죽었나보네.

짧게 명복을 빌어준 후 다시 일어섰다.

그럼 일단 다시 위로 돌아가서……

콱!

“……”

……어라? 희한하네.

왜 발목을 뭐가 콱 잡은 것 같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야.

시체가 움직일 리가……

“……”

있잖아!

보름달 밤에 움직이잖아!

마침 지금 밤이고!

특히 지난번엔 보름달 없이도 움직였잖아!

그것도 더럽게 많은 수가!

아니, 그래도 그건 악마놈이 저질렀던 거니까 경우가 다르지, 여기에 악마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오늘 보름달이 뜬 것도 아니니, 내 착각이거나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사실은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다든가 뭐, 그런 별일 아닌 일이겠지, 어휴, 나도 참, 아무리 겁이 많아도 그렇지, 다 큰 놈이 이렇게 일일이 놀라다니 쪽팔리지도 않냐, 멍청아.

“……후.”

……그래, 아무리 실감이 없다 해도 일단은 용사잖아.

별 거 아닌 걸로 놀라는 것도 정도껏 하자고.

뒤를 돌아보면 그냥 뭐, 기절했다가 겨우 깨어난 사람이 ‘으어어’ 하고 신음하기밖에 더 하겠어?

게다가 그것도 섬에서 이미 한 번 겪었잖아.

그보다 더한 게 있을 리 없지.

편안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배……고파……”

거봐, 별 거 없잖아.

그냥 쫄쫄 굶은 사람이 신음할 뿐,

“……?!”

이었는데 갑자기 다리가 확 당겨졌다!

안 돼, 망했다, 넘어진다!

“윽?!”

바닥에 부딪치자마자 뒤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우와우와우와, 쫄쫄 굶은 사람 맞아?!

뭔 힘이 이렇게……!

창살이라도 밟, 아아아, 늦었어, 이미 다리가 끌려들어갔다아아!

“위슨! 도와줘어!! 악! 물어?! 우와, 이 새끼, 물었어?! 으아아아아, 미친 새끼야, 물지 마!! 위스은! 놔놔놔, 놔, 이 새끼야, 놓으라고!! 이런 썩을, 왜 안 떨어져?! 위슨! 위스으으은!!”

……결국 늑대가 구해줄 때까지 또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후, 나는 잠시간 뻗어 있어야 했다.

산 채로 뜯어먹힐 뻔했다는 공포와, 괴인의 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 탓에 기력이 방전됐기 때문이다.

“자.”

“으으으…….”

애석하게도 난 아직 움직어야 했으므로, 또 다시 위슨의 물약 신세를 져야 했다.

뭐, 위슨의 물약은 맛이나 냄새가 고약하진 않아서, 마시는 것 자체는 거부감이 없다.

……재료가 괴상해서 그렇지.

“괴상하다니? 말린 홍합이랑 표고버섯, 재칼로프 뿔 조금 넣은 거야. 유서 깊은 제조법이라고.”

“……아, 그래.”

그냥 약초랑 버섯으로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위슨에게 빈 병을 건네며, 한숨을 푸우욱 쉬었다.

이게 다 저 괴인 때문이다.

진짜 별 거지 같은 일을 다 겪네.

“후…… 진짜 왜 맨날 나만 이러냐고…….”

“그런 팔자인가보지.”

“젠장…….”

조금 전까지 내 다리를 뜯어먹으려던 괴인은, 지금 바닥에 드러누워선 도로 시체가 되어 있다.

내가 또 하나의 살아있는 시신이 되어 있는 동안, 위슨이 감옥 문을 부수고 그 사람을 꺼낸 모양이었다.

“너 떼어내자마자 도로 기절하더라.”

“하……. 어이없네…….”

“그래도 아직 살아있어. 각성제 먹였으니까 곧 멀쩡하게 깨어날걸. ……아마도.”

“……정말 어이없네.”

또 시험품이냐.

위슨은 내 시선을 피하며 텅 비어버린 병을 공중에 휙 던졌다.

병은 땅에 떨어지는 일 없이, 그대로 연기처럼 흩어져버렸다.

……진짜 유리병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전에 들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니까.

“으으……”

오, 다행히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나 보군.

……근데 신음한 것 치곤 여전히 미동도 없다.

이 사람이 아닌가?

“뭐…… 뭐야, 여기 어디야?! 왜 내가 여기 있어?!”

늙은 여우였네.

하아…… 아직 기운 없는데…….

터덜터덜, 그 감옥으로 다가갔다.

이 어두침침한 곳에서도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건지, 늙은 여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알아듣기 싫은 말을 마구 내뱉었다.

덕분에 귀를 막고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하아…… 하아…… 죽고 싶지 않으면 얼른 여기서 꺼내!!”

“싫은데.”

“이런 짓을 하고도 네가 이 도시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늙은 여우는 남은 손으로 쇠창살을 마구 흔들며 악을 썼다.

……흠, 이 포주, 은근히 거물급이었는지도 모르겠네.

근데 내가 여기서 안 꺼내주면 그냥 굶어 죽는 거 아닌가?

뭔 배짱으로 저렇게 세게 나오는 거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 피곤해.

빨리 자러 가고 싶다…….

“……내가 좀 힘들어서 그런데, 서로서로 편하게 빨리 끝내자고.”

“뭐야?!”

“댁이 말한 그 ‘높은 분’, 누구야?”

“하! 그걸 내가 말할 줄 알아?! 쓸데없는 짓은 집어치우고 얼른 꺼내기나 해!!”

뭐, 그렇게 나올 거 같긴 했어…….

나는 다시 일어서서, 위슨을 향해 손짓했다.

“위슨…… 가자.”

“엥? 그냥 갈 거야?”

“어차피 말 안 할 건데, 여기 더 있어서 뭐 하겠냐? 그냥 가자.”

터덜터덜, 바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디 가, 새끼야!! 이거 열어주고 가야 될 거 아냐!!”

뒤쪽에서 무어라 또 앙칼진 목소리가 왕왕 울리기 시작했지만 전혀, 조금도, 개미 눈물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웡!”

늑대가 등에 괴인을 태운 채 몇 발자국 먼저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이제, 피를 토하고 있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뜩 갈라져 있다.

문 하나도 절대 열어본 적이 없는 그 방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할 즈음엔, 원한을 품은 유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되어 있었다.

“……진짜 갈 거냐?”

“어.”

“저러다 뒤지면?”

“그럼 할 수 없는 거고.”

‘어떤 높은 분이 애들을 사 간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니,그 ‘높은 분’이 누구인지 안다면 조사가 한층 수월해지겠지.

그래서 아까 물었을 때, 만약 그 늙은 여우가솔직히 다 불고 잘못을 빌었다면 풀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뭐, 본인이 말을 안 하겠다는데 어쩌겠어?

어차피‘높은 분’이 있다는 말을들은 시점에서, 나는 그 할망구에게 더 볼 일이 없었다.

그 할망구가 쓸데없이 지랄해서 이렇게 된 거지.

그러니 저 안에서 할망구가 뒤진다면 그건 자업자득인 거다.

그러게 누가 개수작 부리랬냐고.

“의외네. 불든 말든 신나게 고문할 줄 알았는데.”

“……나 그런 놈 아니다.”

애초에 지금 그런 짓할 기운도 없고.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가면 좀 달라져 있겠지…….

……그건 그렇고, 메린이 빵 반죽 마냥 두들겨버린 그 여전사는 어디 간 걸까?

감옥 안엔 없었으니, 저 방들 중 하나에 들어있다는 소리가 되는데…….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굳게 닫혀 있는 저 문들 중 하나에 그 여전사가 들어 있는 거다.

대체 어떤 꼴이 되어 있을지…….

“……”

세상엔 모르는 게 좋은 것도 있는 법.

내가 확인하기 전까지 여전사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지만……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으니, 역시 죽었겠지……?

나는 여전사의 명복을 빌어준 후, 다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올라온 후, 늙은 여우를 붙잡았던 그 방으로 다시 가보았다.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아마 다 도망쳤겠지.

그럼 이제 남은 건……

“……”

서둘러 두 아가씨가 있을 홀로 향했다.

……아까 분위기는 꼭 한 판 붙을 판이었는데.

둘이 진짜 싸웠으면 큰일이다.

로나가 분명히 말했었다.

‘전투 중에 입는 부상은 다 치유할 수 있지만, 잘려나간 부위는 다시 붙일 수 없다’고.

아무리 로나가 강하다고 해도, 상대는 검사에 그것도 메린이다.

진심으로 싸웠다면 절대 무사히 끝날 리가 없어……!

잰걸음이 달리기로, 달리기가 질주로 바뀌었다.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복도가 끝나며, 시야가 훤히 밝아졌다.

제발……!

“……”

홀로 들어서자마자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려지던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서운 소꿉친구와 살벌한 사제님 모두 목숨이 잘 붙어있고, 팔다리도 몸뚱이에멀쩡히,제대로 붙어 있다.

그러니 진짜 다행이긴 한데…….

“아, 왔냐?”

“다녀오셨어요~ 카엘 님도 차 드실래요?”

“……”

저렇게 바닥에 편안~히 주저앉아서 차 마시고 있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그보다 주변이 죄다 피투성이인데 차가 넘어간다고?

……돌겠네, 진짜.

둘이 완전 똑같구만?

“둘 중 아무나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야.”

“엉?”

나는 두 녀석이 앉아 있는 주변을 보았다.

……자리를 비웠을 때보다 확연히 더 박살이 나 있다.

왠지 저 둘이 앉아 있는 곳도 좀 패여서 꺼진 것 같은데 착시 현상인가?

“너네 뭐했냐?”

“네? 모의전 했는데요.”

로나는 ‘그거 말고 딴 게 있나요?’ 라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차를 홀짝이고 있는 메린 녀석도 같은 얼굴이다.

“……어, 그래.”

너무나도 당당하고 태연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그냥 어물쩍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뭐, 무사하면 됐지.

그 피 말리던 분위기도 다 풀린 것 같고…….

자리만 이 모양이 아니었다면 나도 저 자리에 껴서 차 한 잔 마실 텐데.

“응? 위슨 씨, 그 사람은 뭐에요?”

“아.”

늑대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로나에게 다가가, 등에 태우고 있던 사람을 후득 떨구었다.

그제야 나는 그 사람이 낡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으응? 부상 같은 건 없는 것 같네요. 어디서 주워 오셨어요?”

“지하 감옥. 며칠 굶었나봐. 카엘 다리 뜯길 뻔했어.”

“……어째 넌 맨날 그런 꼴을 당하냐?”

“그러게…….”

위슨은 팔자 아니겠냐고 했지만, 내 팔자가 그렇게 꼬였을 리가 없다.

이건 분명 저주야. 그래, 고향 마을의 그 개새……

아니, 튜르나 그 패거리 중 하나가 날 저주하고 있는 거다. 틀림없어!

음, 내일 날 밝자마자 신전에 가서 기도 받아야지.

그리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그 여우에게 아침 인사하러 가는 거야.

좋아.

완벽한 계획이다.

“근데 이거 누구인지는 봤냐?”

“아니. 남자일 거 같긴 한데.”

“흠.”

메린이 괴인의 후드를 홱 젖히자, 남자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며칠 쫄쫄 굶은 탓에 홀쭉한 뺨, 굳게 닫힌 눈, 시퍼런 멍이 있는 이마.

그리고 그 위를, 선명한 금빛 머리카락이 뒤덮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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