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85화 : 가는 실이라도 어디야 (3)
* * *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이 창관의 출입구는 단 하나.
그리고 지금 그 출입구는 위병들의 대열로 완전히 막혀 있다.
명색이 ‘저택’이니 뒷문이야 있겠지만 알게 뭐야,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철걱, 철걱.
위병들의 앞으로, 목부터 발끝까지 철갑옷으로 감싼 기사가 걸어 나왔다.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맨 앞에 나오는 걸 보니 대장이겠군.
분명 턱수염이 숭숭 나 있는 우락부락한 아저씨……
“감히 이 도시에서 이런 무참한 짓을 저지를 뿐 아니라, 달아나지도 않고 차나 홀짝이고 있었겠다? 하, 그 배짱만큼은 가히 살 만하구나!”
……가 아니라 수염 하나 없는 젊은 얼굴이었다!
뺨에는 엄청 큰 흉터가 나 있고, 머리도 남자만큼 짧게 치고 있어서 무척 다부진 인상을 주고 있다.
언뜻 보면 미청년으로 보일 얼굴이지만 목소리는 그 반대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낮게 가라앉아 있으나굵직하진 않은 목소리.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우와, 여기사다!”
앗, 실수.
감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외치고 말았다!
황급히 입을 막으며 시선을 돌렸다.
“……”
오오, 옆 얼굴이 엄청나게 아프다!
딴 데 보고 있는 탓에 여기사의 얼굴은 안 보이지만 알 수 있어.
나를 향해 눈으로 연발 화살 팍팍 쏘고 있는 게 느껴져!
살기 장난 아니야! 우와!
“오, 역시 카엘 님! 일부러 얼빠진 소리를 해서 상대의 평정을 뒤흔드는 작전이군요! 훌륭한 심리 공격이에요!”
“눈 돌린 걸 봐선 그냥 내뱉은 거 같은데.”
“졸려서 그래, 졸려서. 졸리면 대가리 굳는다니까.”
“……”
그리고 뒤에서는 내 발언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젠장.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여기사 처음 보는걸!
맨날 술이랑 땀에 절어서 퀘퀘한 냄새 풍기는 남자 전사만 보다가 잘생긴…… 아니, 아름다운 여기사님을 뵌 건데 순간 들뜰 수도 있지, 야박하긴!
“얌전히 투항해라! 반항하는 즉시 처단할 것이다!”
냉정을 되찾은 여기사가 호령하자, 뒤에 서 있던 위병들이 한 발짝 나서며 일제히 칼을 뽑았다.
그럼에도 출입문은 여전히 위병들로 꽉 막혀 있다!
대체 얼마나 데려온 거야?!
“……어쩔 거냐?”
메린이 속삭였다.
녀석은 칼자루를 쥐고 있긴 해도 아직 뽑지는 않고 있었다.
녀석도 알고 있는 거다.
뽑으면 대화고 뭐고 끝장이라는 걸.
……근데 대화할 게 없잖아, 뭔 일이 있었건 이 자리를 이 꼴로 만든 건 우리니까!
그렇다고 얌전히 붙잡혀 갈 수도 없고…….
제기랄, 이거 진짜 어쩌지?
“저기, 자매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로나가 방글방글 웃으며 여기사에게 슬며시 말을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려는 건가?
그래, 얘는 이렇게 보여도 사제님이니까 어떻게 잘 이야기하면 그냥 풀어줄지도 몰라!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죠……”
“아니, 이런 무도한 년을 봤나?! 네 이 년! 네가 어떻게 그 사제복을 훔친 건지는 몰라도 어린애 따위가 함부로 입고 돌아다닐 옷이 아니다! 그것도 그냥 수도복도 아니고 전투사제복에, 이런 창관 따위에 있다니……! 네 보호자와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리 와!!”
앗. 망했다.
하필이면 로나에게 저런 말을……!
방글방글 웃던 그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잠깐, 로나…사제님!”
“아앙?! 뭐가 어째요?! 철갑옷 둘렀다고 머릿속까지 텅텅 비운 건가요, 아니면 근육 키운다고 뇌까지 근육으로 바꿔버린 건가요?! 그딴 편협한 대가리로 잘도 대장 짓을 하고 있네요?!
이 증표와 옷을 믿지 못하는 그 불신을 벌하겠습니다! 뽑아요, 쇳덩어리! 묵사발을 만들어주죠!!”
쿠웅!
강제 예절주입기가 바닥을 부수며 홀을 진동시켰다.
여기사는 흠칫 놀라면서도, 나와 달리 뒤로 주춤거리지는 않았다.
역시 기사구나.
“철퇴?! 아니, 말도 안 돼. ……아아, 가짜인가? 하, 어리석은 것. 그까짓 잘 만든 가짜 철퇴로 날 속이……”
콰아아앙!
“……”
……창관 천장이 뻥 뚫리고 말았다.
어디까지 날아갔을까?
뭐, 단단한 철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니 죽진 않았겠지.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사제님이 날린 거다.
절대 죽었을 리가 없어.
그건 그렇고,
“하, 별 것도 아닌 게!”
“얌마,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일이냐?! 다짜고짜 대장 날리면 어떡해!”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증표와 옷은 창조주께서 저에게 내려주신 증명이란 말이에요! 그걸 모욕하는 놈년은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어요!! 설사 카엘 님이라 해도 날려버릴 테니까 잘 알아두세요!!”
“……아, 옙. 명심하겠습니다.”
……엄청난 위세에 오히려 내가 밀리고 말았다.
어우씨, 눈 부릅뜬 거 봐.무서워!
“대, 대장님이 일격에……! 부, 부대장님, 어째야 합니까?!”
“큭! 물러서지 마라! 공격해!!”
으악, 망했다!
결국 싸워야 되나?!
곧바로 싸울 자세를 갖추는 메린을 따라, 나 역시 주춤거리면서도 검을 뽑았다.
위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려는 순간,
“잠깐 기다리십시오!”
금발 청년이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와 위병들 사이에 서서 맨손을 뻗으며, 금발 청년은 당당하게 외쳤다.
“칼을 거두십시오! 무엇 때문에 이들을 체포하려는 겁니까!”
“네놈은 또 뭐냐?! 쓸데없이 끼지 말고,”
“대답하십시오!!”
“으아아악, 머리 울려!”
……아니 뭐,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긴 해.
목소리만으로 대군을 막는다든가, 말 위에 탄 사람이 놀라서 그대로 죽었다든가, 그런 이야기가 있긴 하지.
그때는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싶었는데, 이제 보니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고보니 위슨의 파랑새 녀석도 귓가에 소리 울려서 사람 픽픽 쓰러지게 하잖아.
여담이긴 한데, 파랑새 녀석이 그딴 수법을 쓰는 건 조금씩 조금씩 귀를 멀게 만들려는 사악한 계획인 게 분명하다.
악독한 새끼……!
“엉? 한 방 시원하게 쏴 주랴?”
“앗. 아니요.”
“콱 그냥.”
맘대로 마음속 생각을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
예기치 못한 소리 공격을 받은 위병들이 덜덜 떨면서 입을 열었다.
“……시, 신고를 받고 왔을 뿐이다! 미친 살인광이 마구 날뛰고 있다고 여기 직원이 신고했다고!”
“여기 직원……?! 그런 놈의 신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요?!”
“우리는 신고 들어오면 일단 출동해야 돼! 그게 일이란 말이다! 그리고 소리지르지 마! 귀청 떨어지겠다!”
“아무튼 이런 강압적인 체포는 승낙할 수 없습니다!! 일단 물러가세요!!”
“크아아악!”
오오, 위병이 밀리고 있어!
일단 목소리 크고 봐야하는구나!
그보다 귀 막고 있는데도 소리 다 들리다니 진짜 장난 아니네, 이 사람…….
“……큭, 물러가다니, 죽어도 그럴 순 없다……!”
아. 여기사가 돌아왔다.
……어디까지 날아갔다 온 건지는 몰라도, 철갑옷이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는 게 좀 타격을 입은 듯했다.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기도 하고.
“어라?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요.”
“윽! 아,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사제님. 하지만 이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이 자들은 피를 흘린 자들이니, 그 죄를 마땅히 물어야 합니다……!
게다가,”
여기사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거기 갈색머리 사내는, 몇 시간 전에 ‘불타는 수레바퀴’ 여관 앞에서 벌어진 소요의 관련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그냥 보내드릴 수는……!”
……이것 봐라?
여관 앞에서 벌어진 소요?
그걸 어떻게 알지?
위병은 끝까지 한 명도 오지 않았었는데?
이 여기사, 설마……!
“정말 어이가 없네요! 그건,”
“로나, 쉿.”
“……?”
맞서려던 로나를 제지하고, 앞으로 나섰다.
“하나만 묻죠. 그 소요라는 거, 무슨 내용이었죠?”
“갈색머리 남자와 빨간 옷의 소녀가 선량한 시민 넷에게 상해를 입혔다.그 중 하나는 중독되어 죽었고. 그래, 마침네놈처럼 눈이 파란 놈이라 했지. 어떠냐? 짐작가는 것이 있느냐?”
독에 죽은 건 그렇다 치고, 내 눈 색까지 알았다고……?
“……!”
숨어 있었어…….
거기 있던 구경꾼들 중 하나가 잉그리트의 부하였어!
그래, 그 군중에도 섞여 있던 거야.
그래서 어떤 위병도 싸움을 말리러 오지 않았던 거야!
분명 처음 신고를 받았을 때, 위병 대장이 방해하지 말라고 명령했을 거다.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걸 전달받은 잉그리트의 부하가 군중에 섞여 있었을 거고.
그러다 미처 명령을 받지 못한 위병이 다가오면, 대장을 들먹이며 쫓아냈겠지.
어쨌든 이걸로 확실해.
이 여기사, 잉그리트와 연관되어 있어!
이런 망할, 딴 건 몰라도 위병 대장이 뒷세계놈들과 한패라니, 뭐 이딴 도시가 다 있어?!
그나마 다행인 건 나나 로나의 얼굴이 팔리지 않았다는 거다.
아무튼 절대 잡힐 순 없어.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야 돼!
“……무언가 사정이 있으시군요?”
금발 청년이 작게 속삭였다.
의심 한 점 품지 않은 노란색 눈동자가 나를 향해 굳게 반짝였다.
“……정당하게 심문을 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
“아니요. 저 여기사, 믿을 수 없어요. 인신매매범들과 관련이 있을 거에요……!”
“인신매매……? ……알겠습니다.”
뭐를 알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금발 청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뭘 그리 속닥거리는 거지? 흥, 잔꾀 부릴 생각은 마라! 순순히 따라올 생각이 없다면……!”
“그 전에, 이걸 보시죠.”
금발 청년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여기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뭘 꺼낸 건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사의 얼굴이 갑자기 파래졌다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뭐지?
“……이, 이, 이건……!”
“……조용히 하시고, 옐리카 바실리예프 조합이사에게 말을 전해주십시오.”
“그, 그건 시간이 좀……”
“아직 깨어 있을 겁니다. 불러주십시오.”
여기사의 얼굴이 미세하게 찡그려지는 게 보였다.
그러나 금발 청년의 기세를 당해낼 수 없는지, 여기사는 결국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싸울 필요는 없어진 듯했다.
우와, 진짜 다행이다.
이 도시를 떠나기 전날이면 또 몰라, 아직 머물러야 되는데 저들과 싸우는 건 바보 짓이지.
여기사에겐 이미 찍혔겠지만, 대놓고 위병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검을 거두는 나에게, 금발 청년이 슥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제 친구가 아마 마차를 보낼 겁니다. 죄송합니다만, 여러분 모두 저와 같이 가주십시오.”
“예? 아니, 왜…….”
“심문받고 싶지 않으신 거잖아요? 그럼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잇.”
망했네.
자러 가긴 틀렸구만.
그때, 위슨이 나를 부르며 말을 건넸다.
“야, 그럼 그 여자도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그렇지.”
깜빡했군.
저 여기사를 믿을 수 없는 지금, 그 늙은 여우를 여기 두고 갈 수는 없다.
좀만 압박하면 술술 불지도 모르는 정보처인데, 여기 두고 갔다간 그 여기사나, 아니면 여기사의 연락을 받고 온 잉그리트의 부하가 슥삭 해버릴지도 몰라.
그 거구의 여전사를 대했던 거 보면, 잉그리트와 그리 친밀한 사이는 아닌 게 분명하다.
그 여우의 방을 수색하는 것도 물건너갔으니반드시 데려가야 해.
“그 여자……?”
금발 청년이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위병들을 슬쩍 본 후, 나는 그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그게……”
살짝 몸을 굽힌 그에게, 나는 지하 감옥 이야기를 전했다.
“호오…….”
청년의 노란 눈동자가 음울하게 반짝였다.
덜커덩거리는 마차 안, 나는 일행의 대표로서 금발 청년, 피트에게 말리스로 오게 된 경위를 짧게 들려주었다.
애들이 아닌 동생을 찾으러 왔다고 둘러대면서.
휴, 로나가 졸고 있어서 다행이지.
……근데 이 중에서 제일 피곤한 사람은 나 아니었냐?
근데 왜 정작 나만 깨어 있는 건데?
메린 녀석은 아예 내 어깨에 기대서 퍼자고 있고.
하…… 돌겠네, 진짜.
나도 졸려 죽겠는데!
“하아…….”
“……예. 심려가 크시겠지요. 어린 동생이 납치된 마당이니…….”
뜬구름 잡는 소리나 다름없었지만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피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별히 알려드리는 겁니다만, 사실 저도 그 범인들을 쫓고 있습니다.”
“예? 어어, 피트 씨 가족분도 납치되신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의무, 라고 할까요? 가족을 대표해서라도 직접 나서야 한다 싶어서요.”
뭐하는 사람이길래……
어디 영주님의 아드님이신가?
아까 위병들을 상대로 떵떵거리며 외친 걸 생각하면 뭐, 그리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다.
왜 그런 사람이 창관 지하 감옥에 갇혀서 살아있는 좀비 꼴이 되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곳에 오신 건가요? 범인을 쫓아서?”
“하하, 부끄럽지만, 전혀 아닙니다. 제 물건을 훔쳐간 도둑이 이 도시 어딘가에 있거든요. 입고 있던 옷 빼고는 전부 다 훔쳐가버려서 아무것도 못 먹었지, 그런데 이 도시에 들어가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
흠, 이 사람도 도둑에게 싹 털렸구나.
참 험한 세상이긴 해.
그래도 이 사람은 여기사도 벌벌 떨게 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 망정이지.
분명 여기 성문도 그 무언가를 보여줘서 통과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낮에 봤던 그 사람은 밥이나 먹고 다녔을까 모르겠네.
은화 몇 개 더 쥐어줄 걸 그랬나?
“……그래서 할 수 없이 비장의 수를 쓰려던 찰나, 카엘 씨가 도와주셨었죠. 정말, 그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응? 아니네?
카엘이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구나……
……아니, 나잖아?!
“예?! 어, 그럼 혹시 그때 그 후드……?!”
“음? 어라, 그럼 설마…… 하하하! 이런, 정말로 못 알아보셨던 겁니까? 전 또 사양하시느라 일부러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이 있나?
일단 난 아닌데.
애초에 알아보기 전에 토끼니까.
“……나 참, 후드 쓰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봐요?”
“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그건 그렇고, 그때 이 사람이 품속에서 꺼내려던 건 무기 같은 게 아니었구나.
도와줄 필요는 전혀 없었구만?
그럼 그냥 진작에 확 써버리지, 뭐하러 실랑이를 벌였대?
……뭐, 덕분에 이렇게 한시름 놓았지만.
“근데 감옥엔 왜 갇혀 계셨던 거죠?”
피트는 또 다시 겸연쩍은 듯이 뺨을 긁적였다.
“그…… 도둑이 여자였거든요. 왠지 그 창관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
진심인가?
돈 한 푼 없었으니 진심으로 그 도둑 찾으러 창관에 간 거겠지.
그럼 이 사람은 진심으로 바보구나……!
“아니, 그, 제가 직감이 좀 잘 맞는 편이거든요. 게다가 하루종일 굶었던 탓에 생각도 잘 되지 않아서…… 하하하, 이거 정말 부끄럽네요.”
“그래서 그 할망, 아니, 안주인에게 뭐, 대놓고 물어라도 봤어요?”
“예, 그랬더니 맥주 한 잔을 주더니…… 하하, 깨어나니까 거기 있더군요.”
“우와, 직감이 맞긴 맞네요.”
“그렇죠? 하하하!”
그리고 우리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겠지.
문제 해결에 대한 답만 알려주고, 제 주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건 안 알려주는 것인가.
무섭다, 직감이여!
참고로 늙은 여우는 내 제안에 따라, 지금 온몸이 꽁꽁 묶여선 마차 짐칸의 상자 속에 구겨 넣어져 있다.
피트 역시 내 제안에 반대하지 않은 걸 보면, 이 순해 보이는 청년도 저 늙은 여우에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후……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으응……”
“이런. 제 목소리가 또 너무 컸군요.”
메린의 눈이 절반쯤 떠졌다.
잠기운이 아주 그냥 두 눈에 철철 넘쳐흐르고 있다.
“후으……다 왔냐……?”
녀석은 여전히 내 어깨를 벤 채로 들릴락말락 중얼거렸다.
“글쎄……”
아직 멀었지 않나?
맞은편에 앉은 피트를 슬쩍 보자, 그가 웃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더 자, 더.”
“응……”
도로 눈이 감긴 녀석의 팔을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금세 새근거리며 도로 잠에 빠져드는 게 보였다.
이 녀석도 피곤하겠지.
그 난리를 쳤으니…….
“……으.”
곤히 잠든 녀석의 숨소리가 들려서 그런지, 참았던 졸음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곤하시죠? 카엘 씨도 좀 쉬세요. 도착하면 깨워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도 눈 좀 붙일 테니 괘념치…….”
……피트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