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87화 : 실타래를 뭉친 건 누구? (1)
* * *
오전 6시 40분.
아침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며 하인이 나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오전 7시.
이 저택의 주인인 상인조합이사 옐리카 바실리예프 아가씨가 납시면서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니, 바로 두 시간 전에 습격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대저택은 아침식사 시간이 한 시간 늦어진 것 말고는 아무 변화도 없다.
이런 습격은 일상이라서 익숙한 거야, 아니면 귀족이라서 사고방식이 다른 거야?
“오늘은 아침부터 재미있었네요! 징조가 아주 좋아요!”
한 입 크기로 떼어낸 빵에 버터를 바르며 재잘거리는 옐리카.
음, 사고방식이 다르군.
역시 귀족님이셔.
“범인을 놓쳐버렸는데도 좋은 징조인가요? 보통은 반대로 볼 텐데요.”
그렇다.
내가 창가 벽에 딱 붙어서 경계하는 동안, 내 목소리를 들은 메린이 곧장 튀어나갔는데,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슬쩍 듣기로는 위슨이 스라소니와 늑대를 풀어서 쫓으려 했는데, 희한하게도 그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언가 단단한 벽에 막혀서 끊기는 느낌이었다는데, 솔직히 뭔 소리인지 이해 못했다.
아무튼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거겠지.
옐리카는 의문을 표하는 로나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굉장히 좋은 징조이죠! 여러분이 ‘토끼풀 저택’을 쳐부수자마자 이런 습격이 일어난 거라고요? 후후, 그뿐만이 아니랍니다!”
달걀 노른자에 푹 젖은 햄 조각을 씹어 삼킨 후, 옐리카가 말을 이었다.
“아침햇살과 함께 들은 따끈하고 새로운 소식! ……‘토끼풀 저택’이 완전히 불탔다고 하네요.”
“……!”
체할 뻔했다.
마침 아무것도 입에 안 넣고 있어서 다행이지, 술이라도 마시고 있었다면 분명히 사레 들렸다, 이거!
그나저나 그 창관까지 하루 밤 사이에 타버릴 줄이야…….
있을지도 모르는 증거와 단서가 죄다 날아가버렸네. 하아……
근데 이게 좋은 징조라니……?
완전 악재 아니야?
이제 수중에 남은 건 그 늙은 여우밖에……
……늙은 여우……밖에……
“……”
……늙은 여우가 붙잡힌 밤 사이에, 그 집을 홀라당 태워버렸다……?
그 할망구가 붙잡혀 있는 이 저택이 습격받았다……?
증거인멸에 입막음 시도.
이거 완전……
“찔렸구만.”
그래. 메린 녀석의 표현은 어쨌든, 놈들이 제 발 저린 거다.
달리 말해, 늙은 여우는 생각보다 이 일에 더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
“후후, 맞아요, 메린 씨! 뜻하지 않게 큰 수확을 얻은 거죠! 물론 범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쪽에서 공작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이쪽을 두들겨보면 뭐가 나오지 않겠어요?
안 그래요, 오라버니? 오늘 정말 좋은 하루가 될 거 같지 않아요?”
“……예, 당신이 제자리에서 식사하신다면 훨씬 더 좋은 시작이 되겠죠.”
“우후후~ 부끄러워하시긴!”
그러면서도 얌전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아가씨였다.
……우와, 무릎에 거의 걸터앉을 기세로 피트에게 딱 붙어서 술잔을 기울이다니.
아침부터 대담해!
옆에서 로나가 그늘진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의외로 밥상 예절엔 엄격하구나.
“그런 의미에서, 식사 후에 사제님께…… 으음, 뭐라고 하더라? 아, 그래. 고해의 의식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고해의 의식?
신전에서 하면 되지 않나?
왜 굳이 로나에게……?
로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진실의 의식 말씀이시죠?”
“어머, 사제님들 사이에선 그렇게 부르시나요? 후후, 네, 맞아요. 그 시든 장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서요. 도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진실의 의식?
……아, 고문.
호숫가에서 로나가 망치와 못, 바늘을 꺼내던 것과, 섬의 감옥탑에서 보았던 완전히 정신을 놓은 두 마녀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벌벌 떨던 모습.
그 두 마녀는 그 상태 그대로 평생을 살겠지.
게다가 마녀이니까, 일반인보다도 더 오랜 삶을 살 것이다.
완전히 망가진 그 상태 그대로.
“……”
……역시 영 내키지 않아.
애들을 찾으려면 그게 필요하긴 하겠지만……
하아……
“죄송해요, 옐리카 님. 저는 못해요.”
엉?
로나는 방글방글 웃는 얼굴로, 또렷이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거절을 들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이, 옐리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빡였다.
“어머? 사제님, 그것도 전투사제님 아니신가요? 그런데 왜……”
“네에, 전투사제랍니다! 전투사제라서 안 돼요. 이단에게만 시행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엥……?
그럼 호숫가의 그 아저씨는 뭐였는데?
그 아저씨도 이단 의심자였어?!
이단의 기준이 대체 뭐야?!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진 나와 달리, 옐리카는 그 짧은 설명으로 충분히 납득한 듯했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살짝 떨어뜨릴 뿐, 그 이상 더 부탁하진 않았다.
“여기 담당 사제님께 부탁드리시지 그러세요?저희는 중립이니까 어느 세력이 무서워서 거절하거나 하진 않을 텐데요.”
“으음~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말이죠~”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접시를 긁다가, 깊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여기엔 신전이 없어요.”
“네?!” “뭐?!”
앗.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버렸다.
깜짝 놀라며 소리를 낸 또 한 사람은 바로 위슨.
파랑새라는 악의 덩어리를 떼기 위해, 목의 치료를 간절히 바라는 가엾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놀라고 있을 로나는, 정작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얌전히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다.
어째 배신감이 드는데.
“어머, 사제님은 그렇다 치고, 다른 두 분까지 그렇게 화들짝 놀라시고……. 신심이 꽤 깊으시군요?”
“……죄송합니다. 축복 기도를 받으려고 했던 참이라…….”
신전이 없다니.
더럽게 큰 창관에 엄청나게 높은 시계탑에, 도시 길바닥을 전부 돌로 포장할 돈은 있으면서 오두막만 한 신전 하나 없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
크윽, 나에게 들러붙어 있을 불행의 저주를 떼어낼 기회가……!
새벽에 있던 일도 그렇고, 빨리 저주를 풀지 않으면 조만간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위슨은 위슨대로 시무룩한 얼굴로 포크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으, 치유 기도를 받으려고 했는데…….”
……파랑새 저 녀석, 이럴 때는 충실히 말을 잘 전하는구나.
평소에도 좀 그럴 것이지.
“자꾸 속으로 쫑알대지 마라. 귓구녕 날려버린다, 순무 대가리.”
“……”
슬쩍 주변 눈치를 살폈다.
음, 나에게만 들린 목소리구나. 그렇구나.
하, 진짜 저거 문제 많다니까.
정령이 숨 쉬듯이 협박을 날리고 말야.
얼른 떨어뜨리는 게 위슨의 정서교육에 좋을 거야.
암, 그렇고 말,
………………
“어머? 카엘 씨, 왜 그러세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시고…… 아아, 신전이 없는 게 그리 슬프신가요?”
“……예?! 아…… 예에…….”
헉.
방금 나,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파랑새 쪽을 힐끗 보니 녀석이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
우와, 진짜 별 짓을 다 하네, 저 녀석?!
“세상에, 어떻게 신전이 없을 수가 있죠? 혹시 이 도시 사람들은 창조주를 믿지 않는 건가요?!”
“으음~ 그건 아닐 거에요. 사제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교단은 중립이니까, 그런 세력을 아예 끼고 싶지 않은 거겠죠. 이 도시 바로 옆 마을에 신전이 있는데, 그곳이 말리스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보셔도 될 거에요.”
“그럼 그곳 사제님을……”
옐리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제님들은 이 도시에 들어올 수 없어요. 이 도시에 들어오려면 조합 증표나 ‘입장권’이 꼭 있어야 하는데, 일반 사제님들은 ‘입장권’ 값을 치를 수가 없지 않겠어요?”
“으으음~ 어떻게든 하나만 구입하면……”
“그러면 좋겠지만, 매달 ‘입장권’의 문양을 바꾸고 있어요.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입장권’은 다음주엔 무용지물이 된답니다.”
이런 미친 날강도 새끼들을 봤나!
아무리 돈독이 올랐어도 그렇지, 하나에 금화 두 닢이나 하는 게 유효기간이 한 달 밖에 안 돼?!
용서 못해.
내 필히 일을 마친 후엔 조합장에게 따지러 갈 테다……!
굳게 다짐하며 빵을 잘근잘근 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옐리카는 우리를 데리고 저택의 집무실로 향했다.
가면서 어째 기시감이 들었는데,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이유를 바로 깨달았다.
“어라? 어제 그 방이죠?”
“예, 맞아요! 하지만 오늘은 여기가 아니라 더 안쪽에서 이야기를 나눌 거랍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책상 옆, 맨 구석 모퉁이벽으로 갔다.
무언가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활짝 열린 문이 나타났다!
나무로 되어 있는 걸 보니 숨겨진 문은 아닌 듯했다.
집무실 출입문 쪽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일부러 책장을 그쪽 벽에 쭉 나열한 거군.
그 비밀 아닌 비밀의 방 안에는 열 몇 명이 앉을 수 있게 마련된 큰 테이블과 칠판이 마련되어 있었다.
방 구석에 찻잔들과 과자들이 준비되어 있는 걸로 보아, 이곳에서 중요 회의를 하는 듯했다.
“제 측근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지요. 이곳에서 하는 이야기가 바깥으로 새나갈 일은 없을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흠, 그런가요…….”
그냥 평범한 방처럼 보이는데, 무슨 특별한 장치가 있나?
창문이 없는 게 특이하긴 한데.
“네. 이 방 바깥의 집무실엔 클로드라고, 제 집사가 지키며 일을 보고 있어요. 집무실 앞에는 리멜이라는 제 전속 하녀가 지키고 서 있죠. 만약 이야기가 새나가면 그 시간에 집무실 앞을 지나간 사람은 누구든 전부 감옥에 넣고 다리를 비틀어버리고 있답니다! 처음 몇 번 했더니 내통자가 싹 사라졌지 뭐에요?”
“……”
무서워!
이 아가씨라면 회의했던 상대가 내통자라고 해도 주저없이 다리 꺾어버릴 거 같아!
“자아, 그럼……”
옐리카는 곧바로 과자 하나를 물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와작, 그녀가 과자를 깨무는 소리가 회의실 안에 울려퍼졌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한껏 애교를 부리는 귀여운 아가씨는 끝이라는 것처럼,
“……어둡고도 달콤한 비밀 이야기, 시작할까요?”
입술에 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핥으며 조용히 선포했다.
끼익, 슥, 톡토독.
칠판에 글씨를 쓰면서, 옐리카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줄곧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가……
아니, 중간중간 과자를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는 건가!
“……즉, 이 도시의 뒤에는 이 세 세력이 서로 암약하고 있어요. 어제 여러분이 무너뜨린 건 어쩜! 이 중 하나, ‘여왕장미’라는 이명을 가진 베아트리스였답니다!”
“허.”
말도 안 돼, 그 늙은 여우가 진짜 뒷세계의 거물이었어?
“놀랍죠? 그 여자가 직접 운영하는 건 ‘토끼풀 저택’ 하나뿐이지만, 그 여자가 키운 여러 ‘장미’들이 창관, 술집, 도박장들을 운영하고 있어요. 다른 두 세력, ‘복수초’ 잉그리트나 ‘나비공작’ 클라우스와는 다르게, 점조직이라서 절대 끊을 수 없는 게 무섭답니다.”
아마 저들끼리 알아서 새로운 ‘여왕’을 뽑을 거라며 옐리카는 한숨을 쉬었다.
“잉그리트는 예상하실 수 있는 온~갖 폭력적인 사업들을 하고 있고, 클라우스는 주로 밀거래를 하고 있죠. 이 셋은 서로 견제하면서도 서로 협력하면서 사업을 이끌고 있어요.”
“밀거래……?”
“돈만 내면 뭐든 구해준답니다. ……원한다면 사람까지도.”
사람…….
“사람? 그럼 그 클라우스라는 사람이 제일 수상하겠네요?”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과자를 우물거리며 묻는 메린에게, 내가 대신 대답했다.
“너무 뻔해.”
“대부분은 뻔한 게 정답이잖아? 오크가 사는 동굴처럼.”
“그 놈들은 머리 나쁘잖아.”
게다가 그렇게 간단하고 뻔한 이야기였다면, 펜허스트 백작 일행이 그 개고생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상인의 수도라 불리는 이 큰 도시의 뒷세계 거물 중 하나인 거다.
그런 사람이 주도하는 인신매매 밀거래라면 소문이 퍼지지 않고는 못 배길 터.
뒷세계에 들어가자마자 이곳으로 왔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그 클라우스라는 사람은 이 일과는 그리 큰 연관이 없는 게 아닐까?
적어도 클라우스 본인은.
“클라우스의 본거지……라고 해야 하나? 주 사업장이 어디죠?”
“시계탑이요.”
“……네?”
과자를 와작와작 깨물며, 옐리카는 미소지었다.
“시계탑. 상인조합이랍니다. 조합장이거든요.”
“……”
아니 뭐 이런 미친 도시가…….
“후후후, 정말 놀랍죠? 이 도시에서 중요한 건 돈을 버는 것이랍니다. 돈 앞에선 선악도, 도덕도, 심지어 신앙조차도 빛을 바래요. 서로 적이면서도 돈을 위해 손을 잡고, 친구이면서도 돈을 위해 칼을 겨누죠. 그런 부분에선 상인도 귀족과 별반 다를 게 없다니까요.”
“……”
“위병소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반짝이는 동전 앞에선 그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날도 빛을 잃어요.”
호로록, 차를 마시는 옐리카의 눈빛에 약간 씁쓸한 기색이 감돌았다.
“……이 도시를 오가는 모든 짐수레는 검사를 받게 되어 있답니다. 하루 24시간 종일 검사를 하니, 성벽 위로 직접 던지는 것 아닌 이상, 몰래 무언가를 들여오는 건 불가능하죠.
위병소에 아무리 많은 돈을 먹인다고 해도, 한 병당 금화 세 닢짜리 와인을 은화 하나짜리 싸구려 맥주로 적어줄 뿐.
기록 자체를 막지는 못해요.”
……기록 자체를 막지 못한다면, 성문의 위병소에 그 마차들이 오간 시간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운반자의 이름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그게 얼마나 소용이 있는지, 애당초 그 기록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옐리카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자아, 그럼 당신이 들었다는 그 이야기, 아이들을 실은 마차가 베아트리스의 창관에 서고, 그 마차를 몬 마부와 ‘높은 분’만이 거래를 했다는 이야기…… 정말로 그럴까요?
정말로 베아트리스 혼자, 아니면누구 혼자서 이런 일을 계획한 걸까요? 왕국의 그 잘난 분들도 손대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 일을?”
“옐리카, 그 말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짙은 갈색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엷은 미소를 띈 그녀는, 나와 또래라고 볼 수 없는 관록이 엿보였다.
“……베아트리스는 거래 장소를, 잉그리트는 힘을, 클라우스는 정보를 제공했을지도 몰라요. 나이비 대장이든, 아니면 검문관 단독이든 그쪽 협력을 받은 것도 자명하고.
즉, 카엘 님이 상대하셔야 하는 건 이들 중 누구 하나가 아니라, 이 도시.
……말리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답니다.”
한밤중에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옐리카는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이 도시 자체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건…….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소녀처럼 방긋 웃고 있는 귀족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옐리카 님이 어떤 사업을 하고 계시는지 듣지 못했네요. 귀금속과 그림 같은 고급품을 취급하신다고는 들었는데…… 피트 님 말씀으로는, 상점이 없으시다고요?”
“어머나, 기뻐라. 오라버니가 제 이야기를 하셨다니! 후후,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살짝 얼굴을 구기고 있는 피트의 팔뚝을 콕콕 찌르던 옐리카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빙긋 웃었다.
“네, 없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저택이 제 사업장일까요?”
“저택이요?”
그냥 집 같은데…….
땅 장사라도 하나?
“제 사업은 말이죠……경매랍니다. 그야말로 온갖 상품을, 특별한 분들에게 소개해서 넘기는 일이죠.”
“온갖 상품…….”
“네. 온갖 상품이요. 원하신다면~ 후후, 좀 위험하긴 해도……
……사람까지도, 말이죠.”
서늘하게 말을 마치며, 그녀는 스윽, 입술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핥았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건 뒷세계의 거물 셋이 아니라, 이 도시 전체일지도 모른다.
그건 비유도 무엇도 아닌, 그저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
……그런 예감이 들었다.
“자아, 카엘 씨, 그럼 대답해주시겠어요?이 일을계속 조사하실 건가요?
온 도시를 적으로 돌릴 각오가 되어 있나요?”
조용히 묻는 옐리카의 두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