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90화 (90/475)

〈 90화 〉 88화 : 실타래를 뭉친 건 누구? (2)

* * *

각오가 되어 있는가?

옐리카의 질문이 방 안에 울려 퍼지는 동시에, 회의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자리잡았다.

하나, 둘…… 총 열 개, 아니 여덟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향하는 게 느껴졌다.

왜 여덟 개냐고?

두 개, 그러니까 메린 몫의 눈은 아주 잠깐만 날 보고는 테이블 위에 머물렀으니까.

……배려해주고 있구나.

내가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 굳어버린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일부러 눈을 돌리고 있는 거야.

그녀가 이렇게 드문드문 작은 배려심을 보여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조금 따뜻해지면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든다.

평소라면 조금 들떠서 속으로 노래라도 흥얼거릴 텐데, 이거 웬걸.

지금은 그녀의 작은 배려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어찌 애석하지 아니할 수 없으랴!

……그런 식으로 가볍게 넘겨보려고 했지만 전혀 소용없었고,

나는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이런 망할.

수십 명 앞에서도 어떻게 버텼었는데 겨우 네 명 정도로 왜……!

방이 폐쇄되어 있어서 그런가?!

젠장,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하.”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걸 인식하니까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는 걸 감추려 깍지를 꼈다.

옐리카에게서 눈을 돌리고, 깍지에 이마를 대며 눈을 감았다.

가라앉아라,제발 좀!

겨우 네 명이라고!

그래, 네 명.

그 네 명이 전부 나를 보고 있다.

내가 입을 열길 기다리고 있다.

내 대답을 기대하고 있다.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우면서.

웃음을 띄우면서.

“……윽.”

어릴 적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과거의 망령이 쓸데없는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입 모양에 맞추어,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이제 들을 일이 없는 말들과 비웃음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느낌.

심장이 옥죄이는 느낌이 들었다.

안돼안돼안돼안돼!

아잇, 썩을!

괜히 눈 감아서……!

차라리 딴 데를 보자, 그래, 딴 데를 보면서 주의를 돌리는 거야!

자연스러워 보이길 빌며, 의자에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무판자가 촘촘히 짜 있고, 이따금 굵직한 지지대가 대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부자라도 천장까지 벽지를 바르지는 않는구나.

특수한 재질의 돌을 갈아서 그걸로 천장벽을 만드는 공법도 있다던데.

아버지 서재에서 그 이야기가 적힌 책을 읽었을 때는, 도시 사람들은 죄다 그러고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아, 애초에 그거 인간 얘기가 아니라 드워프 얘기였나?

근데 드워프가 왕성 지어줬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하긴 내가 들어가본 곳은 알현실밖에 없잖아.

다른 부분은 다를지도 모르지.

“……”

……조금 가라앉았다.

여기서 판자 개수까지 세었다가는 주의가 완전히 딴 길로 새어버리겠지?

나는 천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그런 질문이 필요한가요? 동생을 찾는다고 말씀드렸을 텐데.”

“그야 당신은 동생을 찾는 게 아니니까요.”

“옐리카,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피트가 먼저 발끈했다.

“아무리 당신의 신분이 높다고 해도, 그런 무례한 말까지 용납되는 건 아닙니다! 카엘 씨에게 사과하세요!”

“어머, 물론 제가 잘못된 말을 한 거라면 사과드릴 거에요. 하지만 아니잖아요? 안 그런가요, 카엘 에스트렐 씨?

아니면, 용사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크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피트겠지, 뭐.

나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선포식 때 계셨나요?”

“선포식……? 아아~ 아니요, 제가 좀 바빠서 선포식엔 못 갔어요. 하지만 제가 굳이 가지 않아도 알아서 소문이 굴러들어오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자기소개 했을 때 알아차렸겠군.

그런데도 표정 하나 안 변했으니, 역시 허투루 조합이사 겸 감사를 맡고 있는 게 아닌 듯하다.

“하아…… 가명이라도 만들어야 되나?”

“굳이 그러실 필요 있어요? 숨어서 다니셔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건 아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용사라는 걸 들켜서 수난을 당하거나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저, 정말로 그 용사님이란 말씀이십니까?! 아니, 세상에, 왜 그걸 말씀을 안 하셨어요?! 그것도 모르고 전……!”

피트의 당황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후로도 그는 ‘중요한 사명을 맡은 분의 도움을 빌리다니 면목없다’는 둥,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제가 주목받는 걸 좀 많이 싫어해서…….”

“어머? 그럼 혹시 그러고 계신 것도……? 전 또 고민하시는 줄 알았네요.”

“고민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은 고뇌에 빠질 거리가 못 된다.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그럼요. 고민할 거리는 아니지요. 당연히 빠져야 하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도, 로나는 밝은 목소리로 정반대의 말을 꺼냈다.

로나의 뜻은 분명했다.

여기서 물러나야 한다고.

이 이상 우리…… 내가 시간을 할애해서는 안 된다고.

애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천장을 보던 시선을 내려 로나를 향했다.

시선들에 대한 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화가 나서……

아니, 그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게 더 맞겠지.

사제답지 않은 말을 해놓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차를 홀짝이고 있으니까.

이내, 나를 향해 깜빡이는 두 잿빛 눈동자를 마주보며 물었다.

“왜?”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용사 카엘이 할 일은 서쪽 산맥 너머로 가는 거지, 도시의 뒷골목을 청소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 말이 맞긴 해.

그녀의 눈으로 볼 때, 지금 나는 사명을 팽개치고 노닥거리는 거나 진배없을 테니까.

백 번 이해하기는 한데……

아니, 그럼 처음부터 말리든가, 왜 이제 와서……?

“그럼 왜 내가 여기 온다고 할 때 안 말렸어?”

“밑조사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분위기가 완전히 본격적으로 휘말리려는 것 같단 말이죠? 이게 뭐 하루이틀 내로 끝날 일도 아닌데, 그건 곤란하다고요.

왜 시간을 끌면 안 되는지는 카엘 님도 잘 아실 텐데요?”

“큭.”

이 녀석, 비겁하게 정론을……!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순 없지!

이대로 그냥 가면 내내 뒤가 켕길 거야. 뻔해!

게다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건 더더욱 싫다.

고개를 젓고 단호히 말해주었다.

“그래도 여기서 그냥 떠날 순 없어. 밑조사도 제대로 안 끝냈잖아.”

“도시 뒷세계 거물들이 모두 한 패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하긴 무슨! 그 정도는 그 사람들이 발만 좀 담구면 다 알아내는 수준이야. 게다가 그게 정말인지도 확실하지 않잖아. 뭣보다도,”

이 말을 하게 되면 분명히 잔소리 먹겠지.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을 잇기 전에, 깊은 한숨이 먼저 나왔다.

“……내가 성에 안 차. 누가 왜 이딴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단 말야.”

“네에에에에에?!”

우와! 목소리 엄청 큰 거 봐!

아니,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아니, 카엘 님이 그거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신경 쓰이잖아! 2주 전부터 막 급증했다는데! 게다가 그 놈들이 애들을 뭐라고 불렀는지 너도 알잖아!”

그냥 상품도 아니고, 자그마치 ‘비료’라고 부른 거다.

네다섯 살 밖에 안 된 애들을 ‘비료’라 부르는 놈들이 대체 어디서 뭐하는 놈들인지, 그 면상 한 번 구경하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사람으로서!

“별 의미 없을 수도 있잖아요!”

“창조주께서 지으신 이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없어! 우연 역시 존재하지 않아! 만사에 존재하는 것은 필연뿐이야!”

“우와, 여기서 교리 들먹이시는 거에요?! 평소엔 그런 생각 먼지만큼도 안 하시면서! 카엘 님, 비겁해요!”

“원래 어른은 비겁한 거야!”

“어른 된 지 한 달 밖에 안 됐으면서! 산맥 넘는 데에 한 달 이상 걸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땐 어떻게 하시려고!”

“꼭대기 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오래 걸릴 리 없잖아! 뭣하면 메린이 나 업고 가면 되지!”

“싫어.”

“이 야박한 자식!”

끼이이이이이익!

“꺄아아아악?!”

갑자기 정신 찢어질 듯한 소리가 왕왕 울렸다!

나도 모르게 두 귀를 틀어막으며 테이블에 엎드렸다.

으아아, 소름 끼쳐!

방금 그 소리 뭐야?!

또 파랑새야?!

“나 아닌데.”

“그럼 누구야?!”

“전데요.”

옐리카가 피트의 귀에서 귀마개를 뽑으며 뚱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녀의 뒤쪽 칠판에 아~주 진한 선이 딱 한 줄 그려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분필로 칠판에 뭐 적을 때 이따금 끽끽거렸지?

오우, 세상에…….

“진정하지 않으시면 다음엔 손톱으로 긁을 거에요.”

끼익!

“히익, 죄송합니다!”

아주 살짝 그었는데도 온 몸의 털이 곤두서다니, 이 무슨 무서운 공격이란 말인가!

그보다 저 아가씨, 칠판 긁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냐?

이 방 안에서 대체 몇 사람을 저 공격으로 쓰러뜨린 거지?!

“나 참, 오라버니도 있으니까 이런 과격한 행동은 가급적 지양하려고 했건만……. 어쨌든 두 분의 뜻은 알겠어요. 하지만 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저도 모처럼 잡은 기회를 날리는 건 많이 곤란하거든요.

요지는, 여기 오래 있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요? 언제까지 머무실 수 있죠?”

로나는 잠시 고민한 후,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 점심?”

“사제님!”

“……오늘을 포함해서 사나흘이에요. 규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길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오래 머무를 순 없어요.”

사나흘이면 좀 짧은데…….

뭐, 어쩔 수 없나?

“늦어도 나흘째 되면 칼 같이 떠날 거에요! 아시겠어요?!”

“알았어, 알았어. 그때는 깔끔히 포기할게. 진짜로.”

서너 시간에서 무려 사나흘로 쭉 늘려준 거다.

로나 나름대로 많이 양보한 거니,나도 고집은 적당히 피워야지.

어른답게.

……그리고 용사답게, 용사가 할 일에 집중해야지.

이 사명은 일 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으니까.

아직 약 열 달이 남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느긋하게 있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계시가 내리자마자 ‘불구덩이’가 다시 타오르고, 몬스터가 강해졌을 뿐 아니라 그 수도 많아졌다.

……앞으로 또 무슨 징조가 나타날지 몰라.

“사나흘…… 뭐, 좋아요.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니까. 근데 밑조사라니, 누구 부탁으로 하시는 건가요?”

“비밀인데요.”

“네? 당신이 용사인 것도 다 드러난 판에 뭘 또 새삼 숨기고 그래요?”

“아니, 이건 제 정체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큰 비밀이라…….”

내 정체는 까발려져봤자, 나만 부담 엄청 받는다는 작은 피해밖에 없다.

하지만 백작 일행은 정체…… 아니, 그들의 의도가 알려지면 절대 안 된다.

목숨이 위험해질 거야.

옐리카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묻지 않았다.

“뭐, 좋아요. 예상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래요?”

“어떻게 한다뇨?”

“일단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요. 하나는 지하에 던져둔 베아트리스와 대화하는 것. 또 하나는 성문 검문기록을 쭉 살피는 것. 검문기록은 제가 여러분에게 권한을 드리면 볼 수 있을 거에요.”

권한을 받는다……

검문기록을 보고 싶긴 하지만, 권한을 받아서 보는 건 좀 많이 꺼려지는데.

대놓고 조사하는 거잖아.

분명 범인의 귀에 소식이 들어갈 거고, 내 이름이랑 얼굴도 완전히 다 까발려지겠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제가 하도록 하죠.”

이제야 충격에서 벗어났는지, 홀로 기묘한 말을 중얼거리던 피트가 나섰다.

……그새 얼굴이 퀭해진 것 같은데, 내가 용사인 게 그렇게 충격적인가?

그렇게 안 어울려?!하씨…….

“오라버니가요?”

“전 어차피 신분이 밝혀진 거나 다름없어요. 당초 계획과는 달라졌지만…… 오히려 잘됐을지도 모르겠네요.”

“흠, 알았어요. 그럼 오라버니께서 성문 검문기록을 보고 오시는 동안, 저희는 베아트리스와 정겹게 대화하도록 하죠! 사제님께서 직접 못하신다는 게 정~말 아쉽긴 하지만…… 입회는 해주실 수 있죠?”

입회라……

손을 안 댈 뿐이지 고문하고 받는 꼴은 다 보는 거잖아.

어쩔 수 없다지만……

하아…….

로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는 대신, 내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마치 내 눈치를 살피는 듯이 빤히 바라보더니,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려면 할 수 있어요. 카엘 님이 허락해주신다면요.”

“엥?”

허락?

새삼스럽게 뭔 소리하는 거람?

“사명이랑은 전혀 상관없고, 이단 일도 아니니까요. 규정상 허락이 필요해요.”

“왜 내 허락을 받아? 나 교단 사람 아닌데?”

“교단 허락 따위 원래 안 받는데요. 일행 리더의 허락을 받아야 돼요.”

거 되게 희한한 규정일세.

본 소속인 교단보다 부 소속인 일행의 허락을 더 우선시하다니.

“그럼 혼자 다니면?”

“이단과 악마 아니면 못하는 거죠.”

“혼자 다닐 때가 더 자유가 없는 거야? 진짜 희한하네.”

그 섬에서 마녀 둘을 보내버릴 때는, 나와 잠시 떨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교단의 적인 이단 관련……

악마와 관련이 있었으니 내 허락 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내 허락만 있으면 그 늙은 여우에게 이런저런 고통을 주면서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건데……

“으, 근데 고문은 좀…….”

“어휴, 그러실 줄 알았어요. 진짜 너무 무르시다니까요. 그냥 눈 딱 감고 끄덕이시면 될 것을!”

“……로나야, 넌 사제란다. 제발 자각 좀 가지렴.”

“자각하고 있는데요~ 5798번째 전투사제 로나인데요~”

“돌겠네, 진짜.”

우리 일행의 사제님은, 차마 사람이 고통받는 걸 못 보겠다는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긴커녕 더럽게 물러 터졌다고 질책하시는 분이시다.

오오, 이는 악마와 이단을 때려잡는 전투사제의 위용일지라!

……진짜 다른 사제님도 이런 건 아니겠지?

“고문이 싫으면 딴 방법이 있는데.”

이따금 과자를 먹으면서 쭉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위슨이 말했다.

……설마 이 녀석, 회의 시작할 때부터 쭉 책 보고 있던 건가?!

“딴 방법이라니?”

“약.”

“약?”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백제라고, 먹이면 술술 불게 만드는 놈이 있지.”

“……”

그렇게 말하는 위슨의 얼굴엔 어딘지 기대하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 녀석 설마……

“너 또 시험작 써보려는 거지?”

“아니거든. 정말 유감이지만, 완전히 검증된 놈이야. 현기증과 두통이라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죽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시험작이 아니라는 게 왜 유감이라는 건지 따지고 싶었지만, 그 부분은 관대히 보류해주기로 했다.

두고 보자.

그러나 ‘아마도’ 죽지 않을 거라는 부분은 넘기기 힘들었다.

위슨은 내 지적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료가 부족한 걸 어쩌라고. 섬 사람밖에 못 먹였단 말야. 알면서 그러냐.”

“……아, 그렇겠구나. 그럼 그 중에 인간도 있었겠지?”

끄덕.

“근데 왜 먹인 거야?”

“그 양심 없는 년들이 물약재료 훔쳐가서. 그거 먹이고 전부 되찾았지. 덤으로 약점도 잡고.”

“오우…….”

진짜로 검증된 물약이었다!

다만 이번에 먹는 건 일반인이니까, 현기증과 두통 외에 다른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게 좀 걸리긴 한데…….

뭐, 어때.

대뜸 독 먹인 년인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하자, 로나가 곧바로 이의를 제기해왔다.

“와, 고문은 안 되고 약 먹이는 건 괜찮아요? 와, 너무하네요, 진짜. 와.”

“얌마, 약 먹이는 건 비명이 없잖아, 비명이. 그 차이가 얼마나 큰데!”

“……피이.”

이 녀석 이거, 본인도 납득하면서 인정하기 싫으니까 입 삐죽 내미는 거 봐.

허 참, 기가 막혀서.

“근데 재료 하나가 모자라거든? 밑작업하고 있을 테니 구해와.”

“재료? 뭔데?”

“광대버섯. 빨갛고 흰 점 같은 게 막 붙어 있는 거. 알지?”

“당연하지. 흔한 거잖아.”

독버섯이라서 그렇지.

그러고보니 예전에 그 데친 물 마시고 하루종일 헛소리하는 사람을 본 적 있었는데.

자백제라는 게 그런 원리인가?

“광대버섯이라면 찾으러 가실 필요 없어요. 저희 집에 있거든요.”

옐리카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다시 말하는 거지만, 광대버섯은 독버섯이다.

그런 독버섯을 왜……

집에 보관하고 있는 거지……?

“……설마 먹거나 먹이려고……!”

“아니거든요! 파리약으로 쓰고 있거든요! 오라버니 앞에서 무슨 말씀하시는 거에요?! 추출약이면 몰라 그런 버섯을 누가 먹어요?!”

앗. 추출약 먹는구나!

너무 급하게 변명하느라 더 큰 폭탄발언을 하고 만 귀족 아가씨.

곧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는, 귀까지 완전히 새빨갛게 물들어버렸다.

“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제가 먹는다는 게 아니고, 그런 걸 찾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

“아, 예. 그러시겠죠. 믿습니다.”

“전혀 안 믿고 있잖아요! 진짜 아니라니까요!!”

“아, 믿는다니까요. 다만 그런 건 몸에 안 좋을 테니 적당히,”

“아아아아아!!”

옐리카의 절규가 회의실 안에 가득 메아리쳤다.

……아아, 가여운지고.

조용히 성호를 그으며 묵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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