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93화 (93/475)

〈 93화 〉 91화 : 아니, 여기서 튀어나온다고?! (1)

* * *

여왕장미가 이를 박박 갈면서 ‘그 년’이라 할 만한 사람은, 지금으로선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잉그리트…… ‘복수초’를 만나봐야겠어요.”

물론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니니, 정말로 그게 잉그리트를 가리킨 거라 단언할 순 없다.

그 잉그리트라는 여자도 순순히 대화에 응할 것 같진 않고.

그러나 달리 단서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짚이는 건 죄다 들이대 봐야지.

아니면 피트가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되는데 절대 안 되지!

로나가 정한 기한은 길게 잡아서 나흘.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는 거다.

뭣보다도……

……가만히 있으면 또 훈련장에 끌려갈지도 몰라!

이번에 끌려가면 진짜 죽을 거야!

내 대답을 들은 옐리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왜 대장을…… 아~ 그러시구나. 후후, 알았어요. 그럼 제가 나이비 대장에게 연락을 넣어둘게요.”

“네? 어, 그건……”

“어차피 카엘 씨가 우리집에 머무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인걸요.적당히 핑계를 댈 테니, 카엘 씨가 알아서 맞춰서 대하세요. 할 수 있으실 거라 믿어요!”

적당~히 핑계를 대겠다는 아가씨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올 만큼.

“……에이, 설마.”

홀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어봐도 여전히 불안은 떠나지 않았다.

옐리카가 준비해준 고급 마차의 안락함을 만끽하지 못할 정도로.

마차 바닥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나를 향해, 위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불안할 게 뭐 있냐? 네가 그 아가씨한테 위병소에 뭔 핑계를 댔냐고 줄창 물어봐도 끝까지 안 알려주긴 했지만.”

“그거야, 그거. 그게 지금 불안하다고. 그 대장 앞에서 곧바로 임기응변해야 되는데, 뭔 이상한 소리했으면 어떡해!”

“이런 거 아닐까요? ‘카엘 님은 사실 용사이니까, 이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위병 대장으로서 도시 경비 상태에 대해 철저히 보고하라~’ 같은 거.”

“그것도 이상한데.”

용사가 다른 도시 치안을 왜 신경 써?

그냥 산 올라가서 드래곤 때려잡으면 되는 존재인데.

……잠깐, 지금 내가 위병소에 가는 목적은 나이비 대장을 만나는 거잖아.

어쩌면 그 아가씨, 대장의 주의를 끌려고 그런 이상한 소리를 했을지도 몰라!

한숨을 쉬는 내 옆에서, 메린이 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작작해라. 걱정한다고 뭐 되냐? 얼굴 맞대자마자 죽이려는 거 아니면 되지. 너 그렇게 자꾸 걱정하다간 대머리 된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니까 그러지. 수틀리면 안 되잖아.”

나이비 대장은 잉그리트의 자매 여부를 떠나, 이 도시의 위병 대장이다.

잘못하면 도시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힐지도 몰라.

어떻게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이후에는 움직이기 엄청 어려워지겠지.

밤길 다니는 것도 더 힘들어질 테고.

또 다시 한숨을 쉬는 나를 향해, 메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히 잘 되겠지. 네가 하는 건데.”

“어?”

“넌 입 놀리는 게 특기잖아. 군중 연설이면 모를까, 그냥 핑계치는 건데 네가 실패하겠냐? 말도 안 되지.”

“어…… 음, 그, 그래…….”

……신기하네.

조금 전까지 걱정들이 머릿속에 막 맴돌았는데, 갑자기 몽땅 별 것 아니게 된 것 같아.

정말 그렇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는데.

왠지 머쓱한 기분에, 공연히 머리를 긁적이며 창 밖을 보았다.

입을 감싸고 있으니 맞은편의 두 녀석에겐 내 표정이 어떤지 안 보일 거다.

“……”

뭐, 메린 녀석의 확신은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걱정 작작해야 되는 건 맞긴 해.

내가 고향 마을의 최고 지식인인 아버지를 상대로 입씨름한 게 몇 년인데.

귀족이면 몰라, 위병 대장을 상대로 밀리겠어?

……근데 진짜 무슨 핑계를 댄 걸까?

사라진 불안감 대신 궁금증이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잠시 후, 위병소에 도착한 우리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나이비 대장과 맞닥뜨렸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지, 그녀는 제 부하들을 뒤에 세우고 위병소의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인사하려는 찰나, 그녀가 먼저 입을 떼었다.

“호오~죄를 자백하러 온 것치고는 꽤나 호화로운 등장이시군, 그래?”

“……뭐요?”

죄? 자백??

뭔 소리야, 이게???

나이비 대장은 우리를 향해 씨익 웃었다.

……완전히 살기등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또박또박, 한 단어 한 단어 힘주어 말했다.

“‘토끼풀 저택’을 습격하고, 밤중에 불을 지른 죄를 자백하겠다고 했다던데?”

“이런 망할, 예감이 들어맞았잖아!”

제기랄, 이번엔 왜 안 빗나간 거야?!

역시 ‘불길한 예감일수록 잘 들어맞는다’는 건 불변의 진리라 해도 되지 않을까, 진짜 엿 같네!!

그보다 그 아가씨 뭐야?

뒤통수 친 거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조력자가 사실 범인’이라는 전개야?!

“생각 같아서는 바로 감옥에 처넣고 싶지만…… 바실리예프 이사님이 그러시더군. 네놈들이굉장히 특별하고 귀한 신분이라면서?”

“신분? 어어, 로나……사제님 신분이 특별하긴 하죠?”

열 네 살짜리 전투사제니까 특별하긴 하지?

그러나 나이비 대장은 내 말에 코웃음 쳤다.

“흥, 시치미 떼긴. 뭐, 좋아. 어차피 거짓말일 테니. 네놈이 용사일리가 있나.”

아, 내 얘기였냐.

……근데 코웃음치면서 저딴 말을 해?

아니 뭐, 내가 용사인 걸 누가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개미알만큼도 없지만, 역시 면전에서 들으니까 좀 울컥하는군.

“……거 이유나 들읍시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용사는 성검을 쓴다며? 너 성검 없잖아.”

“……”

굉장히 타당한 이유였다!

이 얼마나 탄탄한 근거란 말인가!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검 뽑아봤자 그냥 일반 검이 튀어나올 게 뻔하니까.

“허나, 그 이사님이 괜한 말씀을 하셨을 리도 없지. 그러니,”

나이비 대장이 검을 뽑아 나를 겨누었다.

“네놈이 진정 용사라면 증명해보아라. ‘토끼풀 저택’을 쓸어버린 실력을 보여 봐! 훗, 간만에 좀 즐길 수 있겠군.”

즐겨……?

이 여자도 또…….

아니, 무기 휘두르는 사람은 죄다 왜 이래?

전사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교본에 적혀 있기라도 하나?

왜 못 싸워서 안달이야?

“왜 대답이 없나? 훗, 설마 겁먹은 건 아니겠지? 자, 검을 뽑아라! 나와 승부하는 거다!”

“……”

분위기를 보니 한 판 하지 않으면 얘기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나는 깊은 한숨을 쉰 후, 어딘지 기대하는 기색인 나이비 대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거절합니다.”

“……허?”

“싫다고요. 안 해요, 승부.”

나는 싸우기 싫다.

“뭐야?! 이유가 뭐냐! 설마 계집과는 싸우지 않는다는 그런 개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닌데요. 저는 그냥 싸우기 싫을 뿐입니다.”

왜냐?

내가 저 요청에 응할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이다.

왜 없냐?

“내가 한 게 아니거든요.”

“……허?”

“그 ‘저택’ 쓸어버린 사람, 나 아니라고요.”

애초에 내가 저지른 게 아니니까!

“무슨 헛소리냐! 네놈이 아니면 누가 했다고……!”

“얘요.”

“……”

“얘가 했는데요.”

친절히 옆에 선 메린 녀석을 가리켜주자, 아연한 시선들이 나를 향해 마구 쏟아졌다.

앞만이 아니라 뒤에서도.

……뒤에서도?

아니나다를까, 내 뒤에 있는 두 어린 녀석들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진짜 어이없네.

“야, 보통은 일단 네가 한 거라고 치고 뭐, 그러지 않냐?”

“금방 들킬 텐데 뭐 하러? 한 판 뜨자잖아. 칼 맞대자마자 알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카엘 님, 너무 망설임 없으신 거 아니에요?!”

“이런 건 고민하는 거 아니랬어.”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누군가 분명히 그랬다.

게다가 메린 녀석도 어엿한 어른이니,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지.

물론 그 ‘저택’에서처럼 다짜고짜 체포하려고 했다면 막았을 거다.

난 그렇게까지 야박한 놈은 아니니까.

그치만 이건 일대일 칼싸움.

전혀 다른 얘기이다.

그걸 어떻게 대신해주냐!

잘못하면 내가 죽잖아!

내 잘못 때문에 칼싸움 하게 되도 이 녀석에게 부탁할 판에, 내가 무슨!

나이비 대장의 시선이 메린을 향했다.

검 끝이 조금 아래로 내려가긴 했지만, 완전히 거두지는 않고 있었다.

“……사실이냐?”

“그렇기는 해…요.”

“……”

대장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왠지 나이비 대장도 그렇고, 그 뒤에 서 있는 위병들도 그렇고, 어째 날 한심하게 보는 것 같은데?!

“……사내대장부가 돼서 여자를 감싸지는 못할 망정…… 쯧쯧…….”

“뭐! 내가 얘를 잡아가라고 하길 했어, 뭘 했어?! 그냥 사실관계만 확실히 했을 뿐이잖아! 그게 뭐가 잘못이야! 그리고 남자여자 어쩌고를 댁이 하면 안 되지?!”

내가 승부를 거절하니까 계집이라서 못 싸우겠다는 거냐고 성질 낼 땐 언제고!

허 참. 하, 기가 막혀서!

“‘토끼풀 저택’을 쓸어버린 실력을 보고 싶다고 한 건 당신입니다. 그러니 싸우고 싶으면 이 녀석이랑 하시죠. 즐기시진 못하겠지만.”

“뭐, 실은 별 거 없는 실력인가보군? 그 사실을 그리 당당하게 말하면, 내가 뭐 자비라도 베풀 줄 아나?”

코웃음 치는 나이비 대장을 마주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베풀지 마세요. 그래야 공평하죠. 이 녀석은 아예 생각도 안 할 텐데.”

“……뭐?”

“이 녀석 특기가 한 방에 끝내는 거거든요. 아마 검을 맞댔는지도 모를걸요? 그래도 대장님 체면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맞춰드리라고 제가 잘 얘기해두죠.”

즐길 수 있겠다?

그 참상을 보고서도 그딴 안이한 생각을 품다니.

그거 달리 말하면, ‘그럭저럭 해볼 만한 녀석’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잖아.

이건 메린에 대한 모욕이다.

설령 저 대장의 실력이 상당하다고 해도, 그게 뭐?

어차피 이기는 건 메린이다.

인성으로 승부를 가린다면 모를까, 검 승부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녀석이니까!

눈가를 부르르 떨며, 나이비 대장이 다시 검을 겨누었다.

“이거 신뢰가 아주아주 두툼하군, 그래? 좋아…… 해보자고!”

그 대상은 내 옆에 선 검사.

얼굴에 ‘씁, 어쩔 수 없군’하는 말이 무척 선명하게 써 있는 메린이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싸울 줄 알았는데, 나이비 대장은 우리를 데리고 위병소 내부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빈 터, 딱 봐도 대련장으로 만든 곳으로 들어간 후, 메린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 당당한 모습에, 대련장을 둘러싼 위병들이 모두 기대에 찬 탄성을 흘렸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이 도시의 위병 대장을 맡고 있는 만큼의 실력도 있고, 인정도 받고 있는 듯했다.

……그럼 한 방에 끝내면 안 되잖아.

나는 대련장으로 가려는 메린을 일단 붙잡았다.

“왜?”

나를 보는 녀석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예상은 했는데, 진짜 긴장은 개미 눈곱만큼도 안 하고 있구만.

이게 강자의 여유라는 건가.

녀석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십 분 동안 해, 십 분.”

“……”

녀석의 눈살이 순식간에 확 찌푸려졌다!

우와, 이 자식 이거, 보기보다 엄청 귀찮아하고 있구만?!

“……오 분.”

“…………”

“하…… 두 합으로 해, 두 합.”

“알았어.”

바로 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대련장에 들어갔다.

……돌겠네, 진짜.

저 여자, 자존심 세보이는데.

두 합 만에 끝나면 오히려 이를 박박 갈면서 생트집 잡는 거 아냐?

심판역을 맡은 듯한 위병 하나가 두 사람을 향해 손짓하자, 각각 검을 뽑아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어라? 카엘 씨?”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금발이 눈부신 남자, 피트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막 위병소에서 나오는 참인 듯했다.

농담 아니고, 진짜 금발머리가 햇빛을 받으니까 눈이 부셨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 일은 어쩌시고?”

심문을 말하는 거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저냥 끝났어요. 피트 님도 끝나신 건가요? 생각보다 오래 안 걸렸네요.”

“하하, 아니요. 잠시 쉬러 나왔는데, 어쩐지 소란스러워서 보러 왔어요.

흠…… 저 두 사람이 대련하는 건가요? 어쩌다가?”

“그러게요.”

나는 씁쓸히 웃으며, 여기 오게 된 경위를 그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이야기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피트는 딱 한 마디, 정말 짤막한 감상을 남겼다.

“죄송합니다.”

“……아뇨, 당신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죠…….”

그리고 서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마침 대련이 시작된 건지, 대련장 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메린이 나이비 대장의 검을 받고 있었다.

이제 녀석이 반격을 하면서 첫 합이 되겠군.

“……응?”

어라?

반격을 안 하고 물러났네?

“핫!”

찌를 자세를 취했던 나이비 대장이 순식간에 자세를 바꾸며 사선으로 베었다.

아, 페인트 공격인가?

그런 건 저 녀석에게 통하지 않을 테니, 이제 저걸 흘리면서 진짜로 첫 합을……

채앵!

“어엉?”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냥 쳐내기만 하고, 또 물러나서 거리를 벌렸다.

“희한하네.”

“그러게요.”

로나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또 그거야? 몸이 근질거린다는 거?”

“그건 아닐걸요? 아까 훈련장에서 운동하셨으니까요. 으음…… 실력을 재시는 것도 절대 아닐 텐데요…….”

얘도 모르나보네.

그 이후에도, 녀석은 평소라면 무자비하게 반격하거나 틈을 노릴 걸 그냥 넘어가는 등, 나이비 대장의 공격을 계속 막기만 했다.

진짜 웬일이지?

그새 맘이 바뀌었나?

불현듯, 메린이 검을 맞대고 있던 대장을 어깨로 퍽 쳐서 멀리 밀치더니, 바닥에서 돌을 주워 공중에 던졌다.

“……?”

뭐지? 시선 돌리기??

대장은 이미 엎어졌는데???

“……어라?”

이번엔 로나가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시선이 위병소의 어느 석벽 위, 그냥 돌 밖에 없는 벽 위에 꽂혀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전에 메린이 돌을 던진 그 방향이다.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은데.

뭘 봤나?

“……위슨 씨, 저쪽!”

“응? 저 흔적……. 잠시만.”

위슨은 재빨리 주변을 살피더니 품속에서 스라소니를 꺼냈다.

……저런 방법이?

“카엘 님, 저쪽이 수상하니까 좀 보고 올게요. 괜찮으시죠?”

“어? 어어, 응. 괜찮아.”

근데 저긴 거의 지붕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올라가려는 거지?

“잠깐 다녀올게요!”

인사하자마자 로나가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그대로 석벽을 뛰어올라갔다.

정말 말 그대로, 땅을 달리는 것처럼 석벽을 통통 뛰면서 올라간 것이다!

“……”

그러고보니 저 녀석, 섬에서 ‘벽 타고 올라가는 게 쉽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 있었지?

역시 지 기준이었구나!

피트 역시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이야, 저 사제님, 대단하시네요.”

“뭐…… 최고의 전투사제님이시니까요…….”

최고인 로나만 가능한 걸까?

아니면 어느 수준이 되면 다 할 수 있는 걸까?

로나만 할 수 있는 묘기였으면 좋겠다.

매년 새로운 사제님들이 서품을 받는데, 그렇게 늘어나는 전투사제들이 죄다 저걸 할 수 있으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교단이 비뚤어지면 어떡해?

전혀 막을 수가 없잖아!

무시무시한 사제님과 달리, 위슨은 벽 위에 올라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벽 밑에 서서 스라소니만 올려 보낸 채, 로나와 함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뭐가 수상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저 둘이라면 별일 없겠지.

다시 대련장을 보았다.

메린은 또다시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내가 맨 처음에 제안했던 십 분은 아득히 넘었겠네.

내가 딴데 보는 동안에도 계속 쉴 새 없이 공격을 해댔는지, 나이비 대장의 얼굴에는 땀이 비처럼 죽죽 흘러내리고 있었다.

반면, 대장의 공격을 막거나 쳐내기만 하면서 물러나고 있는 메린은……

“……”

약~간 땀이 맺혀 있긴 했지만, 여유가 아주 그냥 철철 흘러 넘치고 있었다.

“이야아앗!”

함성을 지르는 대장의 목소리엔 악이 받혀 있다.

……그 심정 알지.

가끔 진짜 열받는다니까?

난 숨이 차서 죽겠는데, 저 녀석은 숨이 가빠지기는커녕 하품하고 있다고.

물론 그때마다 ‘그냥 나온 거’라고 변명하는데, 그것도 일부러 엿 먹이는 거 같고!

“대장님 힘내라!!”

“엥?! 카엘 씨, 그쪽을 응원하시는 거에요?!”

“저도 모르게 그만…….”

앗.

녀석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 서서서설마 들었나?!

아니, 아닐 거야.

아무리 저 녀석이 귀가 좋아도, 나 말고도 주변 위병들이 아주 큰 소리로 지들 대장 응원하고 있었잖아.

들었을 리가 없어!

설사 들었더라도 뭐?

농락당하는 사람을 보면 당연히 응원하고 싶어지잖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 오래 손대중,

퍼억!

“……!”

메린이 대장을 아예 걷어차서 날려버렸다.

저걸로 두 합이니이제 끝났구나.

……근데 녀석이 갑자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리더니, 울타리 위를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어디로?

내 쪽으로!!

우와, 들었구나, 빡쳤구나, 아니 쟤가 웬일이래?!

평소에는 내가 누굴 응원하든 별 신경 안 썼으면서?!

녀석이 공중에서 검을 내려치려는 게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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