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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94화 (94/475)

〈 94화 〉 92화 : 아니, 여기서 튀어나온다고?! (2)

* * *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멀거니 대련장만 쳐다보고 있다.

내 바로 옆에 선 피트조차도 입을 떡 벌린 채 앞만 볼 뿐이다.

정작 봐야 할 건 머리 위인데.

태양을 등진 그림자 속, 녀석의 눈동자는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다.

아니, 활활 타오르고 있다!

“……!”

메린은 날 죽이지 않는다.

그건 내 영혼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

딴 사람 응원했다는 사소한 이유로 날 죽일 거라면, 진작에 몇 백 번은 더 죽었겠지.

그러니 그녀가 곧 내려칠 칼날이 내 머리를 쪼개지는 않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근데 말야.

……칼날의 윗부분이라면 어떨까?

검의 양날은 바짝 세워져 있지만, 윗면은 그냥 평평한 쇳덩어리잖아.

그걸로 때리면 머리가 쪼개지진 않아도 금은 갈걸?

애초에 그쪽으로 누굴 때릴 수 있는지가 의문이지만 메린이니까 할 수 있겠지.

메린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날 죽이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빈사로는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윽……!”

녀석의 눈을 더 봤다가는 도망갈 거 같아!

고개를 떨구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곧바로 다시 떴다.

………지금 나 되게 등신 같은 생각하지 않았냐?

뭐? 도망갈 거 같으니까 눈을 감아?

뭔 소리야, 이게?

내가 진짜 미쳤나, 당연히 도망가야지 뭔……

내가 뭐 고통을 즐기는 변태도 아니고.

“……”

이제 와서 튀기엔 늦었다.

근데 진짜 내가 왜 그딴 생각을 했을까?

로나도 있고, 어차피 안 죽을 거니까?

아니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내 두 귀에 또렷이 들렸다.

콰직, 하고 내 머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아닌,

칼날이 맞부딪치는 쇳소리를.

연이어 둔탁한 소리가 내 뒤쪽에서 쟁쟁하게 울렸다!

“……?!”

황급히 돌아서자, 메린이 땅에 튕기며 날아가는 무언가를 쫓아가는 게 보였다.

낡은 천으로 거의 몸을 둘둘 싸다시피 한 그것은……

“포, 포대자루?!”

내가 말한 거지만 어이가 없네.

다리 달린 포대자루가 어딨어, 후드 쓴 사람이지!

아무튼 암살자다!

놈은 메린의 공격을 잘도 피하고 있었다.

이따금 둘 사이에서 불꽃이 피며 쇳소리가 울렸다.

놈의 양손에 단검 하나씩 쥐어져 있는 게 얼핏 보인 듯했다.

검술은 초짜인 나도 알겠다.

저 암살자 놈, 보통내기가 아냐……!

쌍단검으로 장검을 상대하는 것도 그렇긴 하지만, 뭣보다도저 놈, 메린과 거의 속도가 대등해!

메린이 지금 손대중을 하고 있진 않을 텐데!

몇 번 불꽃을 피우던 놈이, 갑자기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르며 팔을 휘둘렀다.

메린을 향해…… 아니, 이쪽인가!

뭔가 던졌어!

단검 아니면 나이프다!

이런 미친, 저 거리에서 바로 이쪽을 노린다고?!

그것도 메린과 대치하다가?!

“큭!”

피트를 뒤로 밀치며, 거의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제발 성공해라!

티잉!

강한 충격에 검신이 징징 울리며 내 손까지 떨렸다.

그리고 저 하늘 너머로 단검이 날아가는 게 보였다.

성공이다!

“아싸아아!!”

우와, 나 이거 처음인데 성공했어!

이게 진짜 되는 거였구나!

우연일수……는 없지, 이 세상에 있는 건 필연뿐이니까!

내가 날아오는 단검을 쳐내는 사이에 메린이 놈의 다리를 잡고 바닥에 패대기친 듯했다.

그녀가 놈의 목에 칼날을 들이대려는 찰나, 갑자기 녀석의 몸이 뒤로 붕 날아갔다!

“메린!!”

다행히 그녀는 공중에서 몸을 가다듬고 무사히 착지했다.

저 놈,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방금 그건 꼭 놈이 무언가를 뿜어서 날려버린 것 같았어.

……그래,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설마!”

네이멜이 그때, 베르메를 따르는 마녀 일부가 섬에서 도망쳤다고 했어!

설마 저 후드가 그 중 하나인가?

이제 와서 우리에게 복수라도 할 생각인가?!

놈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메린도 멀리 날아갔으니, 저 놈 분명 내 쪽으로 곧장 올 거야!

젠장,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쏴라!!”

뒤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리며, 놈을 향해 화살 수십 개가 쏟아져 내렸다.

나이비 대장이 검을 빼들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빗발처럼 쏟아지는 화살 중, 단 하나도 놈을 맞추지 못했다.

놈은 마치 땅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며 화살을 죄다 피해버렸다.

이제 온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콰아앙!

공중에서 무언가 묵직한 게 떨어지며 놈의 발치를 무너뜨렸다.

무성한 흙먼지 속에서, 붉은 옷자락이 언뜻 보인 듯했다.

“하앗!”

“캬아아악?!”

사제님의 철퇴가 놈의 등을 거침없이 가격했다.

놈의 몸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곳엔, 메린이 서 있었다.

그녀는 쏜살같이 날아오는 놈의 몸을 걷어차서 공중에 살짝 띄운 후,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놈의 몸을 잡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쾅!

놈은 살짝 패인 구덩이에 빠진 채, 하늘을 향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저거 죽은 거 아니냐?

메린이 놈에게 다가가, 가슴팍을 밟는 게 보였다.

여전히 손에 검을 든 채로.

으악, 완전히 끝장내려나 봐!

황급히 녀석에게 달려가 그 팔을 붙잡았다.

“헉, 허억, 헉, 아, 안 돼, 헉, 후우, 하아…… 주, 죽이면 안 돼. 시, 후우우우…… 심문해야지!”

“엉? 아니, 팔만 자르려는 건데.”

“위병들이 보고 있잖아, 안 돼!”

보고 있기만 할 뿐 아니라, 몇 명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저들은 지금 우릴 범죄자로 보고 있다.

아무리 괴상한 습격자를 막았다고 해도, 위병이 뻔히 보는 앞에서 또 검을 휘둘렀다가는 훨씬 더 골치 아파질 거야!

다행히 메린도 뒤에 오는 위병들을 눈치챘는지, 한숨을 쉬며 얌전히 검을 거두었다.

“얼굴은 까도 되겠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가 놈의 후드를 홱 벗겨버렸다.

가을 낙엽을 떠올리게 하는 주황빛과 노란빛이 뒤섞인 머리카락,

그리고 뾰족한 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특징을 가진 건 딱 하나뿐이다.

“블루벨?!”

바로 이 도시에 오는 길에 만났던 그 웃긴 엘프, 블루벨이었다.

위병들이 의식을 잃은 엘프, 블루벨을 데리고 위병소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모르니까 저도 저 사람들과 같이 갈게요.”

“감사합니다. 사제님께서 같이 계신다면 저들도 든든하겠죠.”

나이비 대장의 허락을 받은 로나는,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위병들을 따라갔다.

그 모습을 잠시간 지켜본 후, 나는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된 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흥, 내 구역에서 행패부리는 놈에게 응당한 대응을 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나이비 대장이 활을 쏘라는 명령을 내린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놈이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겠지.

메린과 대등한 속도로 움직이는 엘프를 내가 어떻게 이겨?

“하…… 진짜 깜짝 놀랐네. 메린 너, 그 엘프가 노리는 거 언제부터 알았어?”

“대련장 들어갔을 때부터. 석벽 쪽에서 시선이랑 살기가 약간 느껴지더라고.”

……그렇구나.

그래서 방어만 했구나.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가는 바로 도망가버릴 게 뻔하니까, 그 엘프가 움직이길 기다리며 시간을 끈 거야.

그리고 석벽이란 건 아마 로나가 올라갔던 그 지점을 말하는 거겠지.

……꽤 거리 떨어져 있는데 그걸 알아채다니.

나 참, 진짜 대단하다니까.

피트가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당신이 갑자기 돌멩이 던진 것도……”

“그 엘프, 바늘을 날리더군요. 하, 날씨가 맑아서 다행이지…….”

우와, 나 독침 맞을 뻔한 거야?

세상에…….

“……나와 검을 맞대는 내내 그걸 경계하고 있던 건가?”

앗. 나이비 대장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다.

자존심이 단단히 상한 게 분명해!

근데 그럴 만도 하지.

대장은 온 힘을 다해 녀석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그걸 대충대충 막으면서 딴데 신경 쓰고 있었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내 대단한 소꿉친구 검사님은, 그런 대장의 심정도 모르고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큭!!”

대장은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문 채 부들부들 떨었다.

……지금은 말 걸지 않는 게 좋겠지.

“근데 그 엘프, 왜 날 노린 거지?”

마녀도 아니면서.

가만히 중얼거린 내게, 메린이 또렷이 말했다.

“너 아냐.”

“엉? 날 노린 게 아니라고? 그럼 누굴 노렸다는 거야? 뭐, 피트 님?”

“어.”

“……허?”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단검 방향을 봤어. 그 놈, 피트를 노린 거야. 네가 아니라.”

“뭐? 아니 왜…… 피트 님, 당신 엘프한테 뭐 원한 샀어요?!”

“아, 아니요! 엘프는 평생에 본 적도 없는걸요!”

원한이 아니면 뭐지?

신개념 강도인가?

일단 푹 해버린 다음 주머니를 털어가는……!

그래, 그럴 거야.

그 엘프 원래 강도 짓하고 있었잖아!

이 도시에 오기 전에 탈탈 털려서 그렇지, 원래 피트의 주머니엔 꽤 두둑한 돈주머니가 있었을 거다.

왠지 돈 많게 생기기도 했고, 실제로 귀족 도련님이니까!

“여기 들어올 때 돈을 다 털어 넣었을 거야. 그래도 또 강도 짓을 한 게 분명해. 세상에, 뼛속 깊이 강도잖아!”

“그건 아닐걸.”

내 말에 고개를 저은 후, 위슨은 슬쩍 어깨 위의 파랑새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이야기하는 것인 듯했다.

“그 귀쟁이가 여기 돈 내고 들어왔다고? 천만에. 벽 타고 넘어왔을걸? 이 기회에 너도 알아둬.

귀쟁이들은 풀, 나무, 돌처럼형체 있는 순수 자연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 아무 저항없이 풀밭을 달리는 건 기본이지.”

“어, 그럼 물 위도?”

“아니, 물은 형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안 돼. 얼음은 가능하지만.”

아무 저항없이 풀밭을 달린다……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던 그건가?

우와, 사기잖아.

어쨌든 파랑새의 말대로라면, 이거 골치가 좀 아파지는데.

강도가 아니면 진짜 암살자라는 거 아냐.

근데 왜 하필 피트이지?

엘프라고는 그 놈 말고는 한 번도 못 본 사람을 대체 왜……?

“……진짜 엘프 처음 봤어요?”

“실물로 본 건 정말 처음입니다!”

“그럴 거야. 전에 말했잖아. 귀쟁이들은 지들 숲에서 처박혀선 안 나온다니까.”

하긴 나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엘프를 본 건 블루벨이 처음이다.

……응?잠깐, 어쨌든 블루벨은 암살자라는 거잖아.

갑자기 암살이 하고 싶어져서 나온 건 아닐 거고, 위에서 임무를 받고 나왔을 터.

“……왜 다리 앞에서 날강도하고 있던 거지?”

분명 임무수행에 차질 없도록 지원을 받았을 텐데.

설마 피트를 찾으려고?

아니, 그렇다기엔 강도 짓할 때 좀 필사적이었어.

파랑새가 짹짹, 가볍게 울었다.

“그 꼴통들은 숲에 맨날 처박혀 있다니까? 인간 돈을 갖고 있을 리 없지.”

“……”

진짜 돈 없어서 한 거였구나!

게다가 블루벨은, 숲에 사는 짐승들은 못 먹는다는 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돈 못 뜯었으면 진짜로 쫄쫄 굶었겠군.

낚시나 할 것이지, 쯧쯧.

“아무튼 귀쟁이를 감옥에 가둬봤자 금방 탈출할걸. 그러니,”

아연한 얼굴로 서 있는 대장을 돌아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귀쟁이 심문은 위슨이랑 사제님이 할게.”

“뭐? 그 사제님은 몰라도, 네 녀석이 그 엘프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그리고 어린 놈이 심문에 대해 뭘 안다고,”

“엉? 내가 아니라 사제님이 할 수도 있는 건데…… 와, 지금 사제님이 너무 어려서 제대로 심문 못할 거라는 거야? 와.”

“으아악, 아니야!!”

……로나의 강제 예절주입기, 정말 성능 좋은걸?

뼛속까지 로나의교훈이 박혀버린 그녀는, 결국 위슨이 엘프를 심문하는 걸 수락했다.

“너네도 수고해~”

“……”

위병 한 명의 안내를 받으며 어딘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위슨 녀석의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저 녀석 분명 블루벨에게 그 자백제 먹일 거야.

그리고 또 이런저런 위험한 심문이 진행되겠지!

……좀 불쌍한데.

말릴 생각은 없지만.

위슨이 위병소 안으로 들어가자, 피트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만……

또 카엘 씨에게 목숨을 빚졌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군요.정말이지, 이러다간 평생 은혜를 갚아도 모자라겠는데요.”

“아, 그런 거 됐다니까요. 그리고 이번 건 당신을 구하려던 게 아니라,”

“하하, 그랬죠. 반론할 말은 한가득 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아쉬우니 꾹 참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봐야하는 게 쌓여 있으니 저도 이만 다시 기록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두 분 모두 나중에 뵙죠.”

피트는 홀로 저벅저벅, 다시 위병소 안으로 걸어갔다.

이제 남은 건…….

“크으윽…….”

……아직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나이비 대장과 그 앞에서 태연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메린, 그리고 그 둘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나.

이 셋뿐이었다.

제법 시간 지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안 풀려 있는 거야?

“아니, 그렇게 분이 안 풀리면 제대로 다시 붙자고 하시지 그러세요?”

“……이미 난 전력을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냐. 그래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하아…….”

전사들은 진짜 귀찮구나.

“아무튼 좀 늦은 감이 있긴 한데, 옐…… 바실리예프 이사님이 하신 말씀은 반만 믿으세요. ‘토끼풀 저택’에 불을 지른 건 우리가 아니에요.”

“……흥, 말은 쉽지. 어차피 상관없다. 이사님의 뜻은귀족을 대하듯네놈들의 사정청취를 하라는 것이었으니. 따라와라.”

“아, 예.”

귀족을 대하듯 하라……

……그 아가씨가 우리 뒤통수를 후려갈긴 건 아니었군.

적어도 밧줄에 묶일 일 없이, 대장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을 듯했다.

“하아, 나 참. 그 아가씨, 쓸데없이 장난을 치시네…….

……아, 맞다. 메린.”

대장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메린에게 말을 걸자, 그녀가 크게 하품을 하며 나를 보았다.

……역시피곤하겠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적을 경계하면서 나이비 대장을 상대했을 뿐 아니라, 연이어 블루벨까지 상대했다.

그 전에 새벽이랑 아침에도 팍팍 움직였고.

아무리 힘이 흘러 넘치는 메린이라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곤 못 배길 거다.

“그…… 여러모로 고생했어. 고맙다.”

가볍게 슬슬,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고맙다니 뭐가?”

“그 엘프 상대해줬잖아. 그러니 고맙다고.”

“……그 여자 목표는 네가 아니었는데?”

“알아. 그래도 고마워.”

“???”

당사자였던 피트가 아닌, 왜 내가 감사 인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녀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모르겠지.

아마 여기 있는 누구도 모를 거다.

“피트 님을 구해줘서 고마워.”

그녀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그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아무도 모를 거야.

자연히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살짝 당황해하고 있었다.

“어? 아니, 그건…….”

“하하, 알아. 너도 그 엘프가 나 노리는 줄 알았지? 그래서 그 고생한 거고. 고마워.”

억지나 다름없는 소리라는 건 안다.

메린은 그냥 누군가 공격하니까 대응했을 뿐일지도 몰라.

어쩌다보니 내 쪽이었던 거지, 그 엘프가 전혀 다른 방향에 있는 사람을 노렸더라도 똑같이 움직였을지도 모르지.

그렇더라도 다른 사람을 구해준 거니 기쁠 거다.

하지만 이번은,

방향이 절묘하게 들어맞았던 이번만큼은……

……그녀가 나를 위해 해준 거라 생각하고 싶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일순 눈을 크게 뜬 후,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그대로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음, 뭐…… 그러고 싶으면 그러던가.”

진짜 이유를 밝힐 생각은 없구만.

뭐, 어때.

나도 캐물을 생각은 없다.

진상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야?

그녀가 웃고 있는데.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언뜻 보면 덤덤하지만, 그녀의 입에 슬며시 떠오른 미소를 내가 놓칠 리가 있나.

보고 지낸 세월만 십 년이 넘는다고.

­­오늘 정말 좋은 하루가 될 거 같지 않아요?

문득, 아침에 옐리카가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좋은 징조가 있었으니 좋은 하루가 될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오늘 내 하루는 무척 좋지 않을까?

나이비 대장의 뒤를 따라가는 내 발걸음이, 무척 가벼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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