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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05화 (105/475)

〈 105화 〉 103화 : 탑 위의 파란나비 (2)

* * *

어느 정도 예상했긴 해도 역시 놀랍다.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나를 알아본다는 건, 내 얼굴까지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거 아냐.

설마 ‘공작’이라는 게 별명이 아니라 진짜인가?

“……선포식 때 계셨던 겁니까?”

“허허, 그럴 리가요. 그건 높으신 분들께만 허락된 행사 아닙니까? 저 같은 장사치는 발도 들일 수 없지요.”

“그럼 대체 어떻게…….”

“나비가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허허, 요즘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나비들도 기운이 펄펄하거든요.”

음, 알려줄 생각은 없나보군.

별 중요한 것도 아니니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내려오셨으니, 협력에 응하신다고 보면 되나요?”

“허허, 그저 귀한 손님분을 영접하러 내려왔을 뿐입니다. 자아, 안쪽으로 드시지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파란나비는 천천히, 점점 더 깊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가서 얼마간 걷자, 어둠 속에 둥실 떠 있던 나비가 사라졌다.

……설마 함정인 건 아니겠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내 손과 발까지도 삼켜버린 이 어둠 속에서 습격해온다면 끝장인데.

“걱정 마시고, 나비를 따라오시지요.”

어디서 나는지 모를 목소리가 들리더니, 허공에 파란나비가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는 나비들은 마치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일정 거리를 둔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우와.”

나비를 따라오라는 게 저걸 가리키는 건가!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연출 진짜 장난 아니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 속에 있는 탓인지, 유일하게 보이는 저 나비들에게 홀리는 기분이 든다.

이거 왠지 재밌는데?

살짝 들뜬 마음으로 나비를 따라가는 중에, 옆에서 위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모습 역시 암흑에 묻혀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불 켤까?”

스라소니 얘기군. 불의 정령이라 했으니, 스라소니가 있으면 이 일대를 환히 밝히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거다.

근데 얘가 미쳤나!

“당연히 안 되지, 임마!”

“엥? 왜?”

왜냐니!

하……이 녀석, 아직 뭘 모르는구만.

“분위기 깨지잖아. 이런 건 절대 망치면 안 된다고.”

“……”

응? 뭐지?

왠지 이 녀석이 뚱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눈에 안 보이는데 신기하네.

아무튼 녀석이 또 맘대로 내 제정신 지수를 깎기 전에, 서둘러 말을 보탰다.

“위슨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니? 바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 소위 말하는 눈치라는 거란다. 이게 없으면 살기가 아~주 힘들어요.”

“야, 씨, 말투 뭐야. 소름 돋는다, 치워!”

“어허, 떽! 어른 말씀하시는데 어린 놈이…… 에잉, 쯧쯧.

여하간 이걸 봐라. 이거 준비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을 것 같으냐? 준비한 장본인도 필시 어디 숨어서 감탄하고 있을 게다.

근데 여기서 네가 불을 켠다? 그건 상대의 성의를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는 무도한 짓이렷다! 멋과 운치를 모르는 놈이라 욕을 먹어도 지당하니라!”

“이건 또 뭐야, 아주 그냥 목소리까지 깔고 있네. 말투 치우라고, 미친놈아!”

아무튼, 세간엔 ‘왜 굳이 저 따위로 하지?’ 싶은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멈춰 선 말에 올라타지 않고 걷거나 달려오는 말에 휙 올라타거나,

술집 아저씨가 사람 시켜서 술잔을 건네지 않고 카운터 위를 미끄러지게 해서 건네는 등등…….

그런 걸 볼 땐 환호해야지, 중간에 술잔을 가로채는 식으로 방해하면 안 되는 법이다.

“참 쓸데없네.”

“야, 멋이 얼마나 중요한데. 너도 임마, 처음에 늑대 타겠다고 우겼잖아. 지금도 혼자 엘크 타고 다니는 놈이 아닌 척하긴.”

“……”

조용해진 걸 보면 납득한 모양이군.

그때도 생각한 거지만, ‘타고 갈 짐승’을 준비할 때 곧바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이 녀석은 역시 남자가 맞다.

다시 묵묵히 나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갑자기, 양옆으로 길을 만들던 파란나비가 커다란 원이 되어서는 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길이 끝나고, 방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

파란나비들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물론 그것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다, 몽땅 가짜 나비인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왠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느 방향이든 나비가 보이기 때문일까?

나비들이 둘러싼 방 중앙에는 작은 등불이 올려진 테이블이 있었다.

등불 빛에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들.

정확히 세 명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고보니 희한하네.

저 나비들도 빛을 내고 있는데, 그 빛은 주변의 어둠을 전혀 내쫓지 못하고 있어.

뭐지? 보통 기술이 아닌 건 알겠는데…….

아무튼 저렇게 테이블이 있는 걸 보여주는 걸 보니, 앉으라는 뜻이겠지.

소원대로 의자에 앉자, 곧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맞은편에서 끼익 하고 의자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감상이 어떠십니까?”

아까 특별전시실에서 들었던 목소리였다.

파란나비는 두고 왔는지, 내 앞에는 흐릿한 윤곽만이 떠올라 있었다.

그나저나 감상을 묻고 있네.

역시 망치면 안 되는 거였다니까.

“기대 이상인데요. 복수초의 본거지보다도 더 비밀스러울 뿐 아니라, 이야, 신비성까지 챙기시다니.”

“허허,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이렇게까진 안 합니다만, 워낙에 귀하신 분이니 간만에 작동시켰죠.”

옆에서 들린 한숨 소리는, 누가 ‘어휴, 똑같은 놈들’이라며 한심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비공작은 허허 웃으며 박수를 크게 세 번 쳤다.

파란나비가 지켜보는 암흑 속으로 박수 소리가 녹아들자, 곧 촤락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방이 밝아졌다.

등불을 보고 있던 덕분에 눈부심은 금세 사라졌고, 나는 환히 밝아진 방을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

이 방에 세 명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둠이 물러간 방의 가장자리를 쭉 따라, 나비가 그려진 가면을 쓴 사람이 빼곡히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단도를, 또 다른 손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주머니를 든 채.

……시선이 느껴진 건 착각이 아니었어.

무릎에 올려둔 손에 땀이 배는 게 느껴졌다.

“……자, 그럼 말씀을 들어볼까요?”

겨울요정이 어울리는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씨익, 이를 드러내며 흡족히 웃었다.

쪼르르, 찻잔에 스스로 차를 따른 후, 나비공작은 홀로 찻잔을 기울였다.

어차피 안 먹을 거 아니냐며, 나와 위슨 앞에는 아예 두지도 않은 건 좀 어이가 없었다.

“사실 저는 용사님께서,”

“죄송합니다만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용사로서 여기 온 게 아닙니다.”

그의 눈썹이 아주 살짝 위로 올라가더니, 이내 제자리로 다시 내려왔다.

“허허…… 에스트렐 씨가 이제서야 저를 찾으신 게 조금 놀랍습니다. 바실리예프 양의 이야기를 들으신 다음, 바로 저에게 오실 줄 알았거든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비공작이 입을 열었다.

“납치된 아이들을 찾으러 이 도시에 오신 것 아닙니까? 그 귀족 도적단과 함께 밀수꾼을 잡으신 후, 장부에서 이리로 이어지는 단서를 얻으셨죠?허허, 그러니 밀거래업자인 저에게 바로 오실 줄 알았죠. 바실리예프 양도 저를 의심했을 터이니.”

“……!”

이번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도시에서 내 동생을 찾는다고만 말하고 다녔으니까.

생판 남인 애들을 찾는다는 사실은 옐리카의 회의실에서만 밝혔지.

그뿐만이 아니야.

내가 이 도시에 온 경위까지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어.

……보통이 아닐 거란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 귀족 도적단이 누구인지도 아시겠군요.”

“허허, 물론이죠.”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나비가 알려주었다고. 하지만 제 나비도 완벽하진 않아서, 그 분들이 무엇 때문에 아이들을 찾는지는 알 수 없더군요.”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나비공작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진짜 모르는 듯했다.

……다행이다.

그 ‘나비’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일단 그 도련님이 아닌 건 확실하군.

하마터면 간첩질의 대가로 대머리 되라고 저주할 뻔했어.

내가 그 사람들이 율리아 공주의 부탁으로 애들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대담을 가졌을 때인데,

그 자리에 있던 건 나와 메린, 로나, 그리고 펜허스트 백작과 그의 종자 마티아스뿐이었으니까.

달리 말하면,펜허스트 백작은 보기보다도 더 굉장히 조심하고 있었던 게 된다.

어쩌면 그는 ‘율리아 공주의 부탁’이라는 목적을, 자신의 종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건지도 몰라.

그럼 백작의 부하들은 진짜 아무것도 모른 채로 묵묵히 따라다니고 있다는 건데…….

대장도 대장인데, 그 부하도 부하구만.

그 백작님의 주군…… 헙스트 공작이랬나?

진짜 복받았네.

나비공작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래도 꼭 오시리라 믿고, 일정을 비워두고 있었습니다. 허허, 덕분에 내일부터 배로 바빠지겠군요.”

“……저를 기다리셨어요? 왜요?”

“그야 제공해드릴 수 있는상품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걸, 자력으로 어느 정도 일의 전모를 파악하셨지요.”

상품…… 정보를 얘기하는 거겠지.

그리고 뭐?‘어느 정도’?

……왠지 말투가 걸리는데.

설마 이 양반, 그 일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건아니겠지.

“게다가 눈엣가시 같던 그 ‘저택’도 없애주셨으니, 이거 원, 오히려 제가 먼저 보답을 드려야 할 지경이에요.”

아니, 대체 그 여자는 뭔 짓을 하고 살았길래 이렇게 원한 가진 사람이 많아?!

진작에 잡혀 죽지 않은 게 신기하네.

나비공작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흠, 그래서 보검을 훔치시고 싶으시다……. 왜 그걸 탐내시는 거죠? 바실리예프 양을 위해서인가요?”

“아니요.”

“아니라고요? ……호오, 전 순전히 그 이유 때문인 줄 알았는데. 볼케 백작이 그녀에게 거래를 걸었잖습니까.”

아니 이 할아버지 진짜 별 걸 다 알고 있네.

옐리카의 저택에도 그 ‘나비’가 숨어 있나?

아니, 그냥 이 도시 전역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낫겠구나.

허 참, 그래서 옐리카가 집무실 안에 회의실을 두고, 문 밖에 이중으로 보안을 두어 감시한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백작이 괘씸할 뿐,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괘씸하다…… 허허, 어디가 그리 괘씸하시던가요?”

“장물을 대놓고 자랑하는 점, 왕가의 보검인 줄 알면서 반환하지 않는 점, 그리고……

엄연히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는 여자에게 수작부리는 점이요.”

특히 마지막이 제일 맘에 들지 않는다.

고향에 있는 촌장님의 망할 아들새끼가 생각나서 더 싫어!

만약 볼케 백작, 그 새끼가 다 알고서 그 지랄을 한 거라면, 보검을 훔치는 것 정도론 부족해.

두 번 다시 얼굴을 못 들게 만들어야지!

“그럼 기왕 괘씸하게 여기시는 김에, 제가 하나 더 추가해드리죠.

랜돌프 볼케 백작이 클라우드, 그 엘프와 거래하던 자입니다. 그 대가로 받은 보석 중 일부를 바실리예프 양을 통해 팔고 있죠.”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이죠. 그 거래를 한 건,여기서만약 십 년 됐을 겁니다.”

쾅!

급작스럽게 끓어오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내려쳤다.

“십 년이라고요! 아니 미친, 돈독이 올라도 정도가 있지! 대체 왜 그걸 가만히 둔 거에요?! 당신 전임자가 벌인 일이라서 건드리기 싫었나요?! 아니면 그걸 이용해서 한 몫 잡고 싶었어요?! 대답해보세요!”

“허허, 이거 화가 많이 나셨네요. 이해합니다.

이유를 물으셨지요? 아쉽지만 에스트렐 씨, 당신의 추측은 전부 틀렸습니다. 훨씬 더 간단해요.”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저희와 상관없으니 그냥 둔 겁니다.”

“……!”

“물론 안타까운 일이에요. 저도 귀여운 손주가 있으니,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알고 말고요.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 이 도시의 뜻은 아니죠.

그 일은 왕국이 처리해야 하는 일이지, 저희와는 하등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둔 겁니다.”

피가 얼어붙는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싸늘한 공기가 온 몸을 휘감고 간 듯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비공작, 아니 조합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여기는 자유도시 말리스. 왕국의 통치를 받지 않고, 그 법 아래에 묶이지 않은 곳입니다.무엇이든 살 수 있으며,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지요.

에스트렐 씨, 반대로 묻겠습니다.왜 저희가 그 거래를 막아야 합니까?”

“……돈에 영혼을 바친 분들이니 양심 문제는 진작에 해결하셨겠죠?”

내 빈정거림에도 그는 푸근히 웃을 뿐이었다.

젠장, 저 인상이 누가 봐도 비열하게 생긴 쥐새끼상이었으면 더 나았을 텐데.

쓸데없이 사람 좋게 생겨서 더 소름 끼쳐……!

­­돈 앞에선 선악도, 도덕도, 심지어 신앙조차도 빛을 바래요.

옐리카가 했던 그 말이, 새삼 뼈에 박히는 듯한 기분이다.

감성을 버린 그들에겐, 오로지 손익에 따른 합리성만이 통하겠지.

……아아, 고맙다, 메린.

너랑 말싸움해 왔던 그 세월의 덕을 보는구나.

속은 열불나는데 머리는 차갑게 둘 수 있으니까.

하, 썩을.

“왜 막아야 되냐고요?그 놈의 자유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죠!왕국의 아이들이 이 도시에서 엘프에게 팔리고 있었다는 걸 알면, 왕국이 가만히 있겠어요?! 지금 당장은 여유가 없다지만, 여유가 생기는 즉시 이곳을 치겠죠! 당신은 인간의 배반자로 처형될 거고!”

설령 나나 펜허스트 백작이 침묵한다 해도, 또 다른 누군가가 이곳으로 이끌려 오겠지.

정보를 팔아먹고 사는 상인이, 이 영감탱이 한 명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

“허허, 허허허…….”

넉살 좋은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웃은 후, 나비공작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럭저럭 잘 보셨습니다. 허허, 요 한 달 전부터는 저도 약간 난처한 지경에 있죠. 그러니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당신의 이번 일에 기꺼이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이요?”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에요.”

“……”

……보나마나 입 다물어 달라는 거겠지.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는데, 그럼 여기 모여 있는 놈들이 공격해오겠지?

설령 그렇더라도, 절대 못 들어줘!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그가 다시 입을 열길 기다렸다.

“하나, 당신의 동료분이 쓴 자백제의 조제법을 알려주십시오. 원하신다면 값을 드리겠습니다.”

“……네?”

아니, 뜬금없이 이게 뭔……

뭐? 자백제 조제법?!

내 얼굴을 본 나비공작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 이미 소문이 쫙 퍼졌어요. 위병소에서 엘프를 심문할 때 아주 좋은 약을 쓰셨다면서요? 조금 다듬으면 좋은 상품이 될 테니, 부디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

돌겠네, 진짜.

자세한 내용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자백제로 쓰지 않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근데 그게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건가…….

마력이 필요한 거 아니야?

위슨을 슬쩍 보자, 그는 나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위슨은 상관없어.”

“……다들 만들 수 있는 거야?”

“말린 광대버섯을 끓여서 증류한 다음, 설탕 넣고 농도만 조정하면 땡이야. 취향에 따라 레몬밤을 섞거나 로즈마리…… 아니면 장미를 넣어도 되고.”

아니 이게 뭔 음료수도 아니고 취향은 뭔 취향?

“왜? 박하를 넣으면 청량감 좋다고 추천하지 그러냐?”

“맞아. 잘 아네.”

“돌겠네, 이게 왜 진짜야?!”

……아무튼 조제법을 넘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없는 듯했다.

나를 마주보며 앉아 있는 돈귀신 할배는, 그 결과에 만족스러운지 허허 웃었다.

“그럼 이제 다른 부탁 하나만 더 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뭐죠?”

이번에야말로 입을 다물어달라는 부탁이겠지?

나는 다시 긴장하며 나비공작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그 소름끼치는 푸근한 웃음을 머금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엘프와 담판을 지어주십시오.”

“……네?”

이건 또 뭔 소리야?

나는 아연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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