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110화 : 구름 속 보물찾기 (2)
* * *
두루마리를 동여매던 붉은 끈을 풀고 바닥에 펼쳤다.
마침 내가 숨은 아름드리나무 주변엔 덤불이 무성하게 자라 있기 때문에, 대놓고 두루마리를 펼쳐도 들킬 염려는 없었다.
말려 있던 종이가 슬슬 풀어지는 중에, 느닷없이 다른 종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실수로 끼워둔 건 아니겠지?
일단 챙겨두자.
그 종이들을 바닥에 치우고, 나는 계속 두루마리를 펼쳐갔다.
……근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두루마리람?
나 참, 그 영감 진짜……
맘에 드는걸!!
요즘은 왕국 공문도 그냥 편지로 퉁치고 있어서 두루마리는 한 번도 못 봤는데!
이야, 이게 이렇게 생겼구나.
밀랍으로 봉인을 안 한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
앗.
옆에서 엄청나게 따가운 시선이 날아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슬쩍 돌리니, 앨런이 나를 굉장히 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와, 보인다, 보여.
이 할아버지, 지금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있어!
“......지, 직업병이에요.”
“누가 뭐랬냐? 얼른 읽기나 해.”
눈으로 실컷 얘기했으면서.
속으로 투덜대며 완전히 펼쳐진 두루마리를 살펴보았다.
길게 좌우로 쭉 뻗은 종이에는 그림이 한가득 그려져 있었다.
가장자리가 군데군데 뚫려 있는 커다란 네모 넷이 그려져 있고, 각 네모는 또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진 채 ‘응접실’이니 ‘식당’이니 ‘부엌’이니 하고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즉, 두루마리에 그려진 건 지도였다.
어디의?
두 말할 것도 없이 저 별장이다!
“……우와, 몇 번째 개정본인지도 적혀 있네.”
날짜는 물론이고, 개정본을 작성한 사람 이름까지 적혀 있다.
‘잿빛 부전나비’……사람이 아닌데?
아무튼 진짜 쓸데없이 체계적이네.
“이거 저기 별장 지도 같으니까 일단 보고 계세요. 이쪽부터 차례대로 1층, 2층, 3층, 4층이라네요.”
“흠. 애송이 너, 진짜 글 읽을 줄 아는구나. 그 양반한테 들었을 땐 못 믿었는데. 허허, 생긴 거랑 다르게 똘똘한가보구만.”
“……”
칭찬하는 척하면서 욕을 하거나, 욕하는 척하면서 칭찬하는 저 기묘한 화법.
저 화법의 장점은, 말한 사람에게 작게는 욕을, 크게는 딱밤으로 답례를 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바쁘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여유가 있었다면 한 마디 쏘아주는 건데!
대신 속으로 툴툴대며, 나는 두루마리에 끼워져 있던 다른 종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흠…….”
역시 잘못 끼워진 자료 같은 게 아니었다.
그 종이들은 전부,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전까지의 별장 상황을 적은 기록이었으니까.
어디에 경비가 서 있고, 어느 방에 누가 무엇을 들고 들어갔는지 등등, 지도에 표시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무섭도다, 나비공작!
개정본이 있는 지도도 그렇고, 이 상황 기록도 그렇고…….
세상에, 이거 이 사람에게 밉보이면 이 도시에서 살 수가 없겠는데?
하지만 얄궂게도, 보검이 어느 방에 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건 알아서 찾으라는 건지, 아니면 그의 나비들이 백작의 철통 보안을 뚫지 못한 건지…….
“하아……”
역시 일이 쉽게 굴러가진 않는구만.
보검이 있는 방을 때려맞춰야겠네.
나는 지도와 종이를 번갈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하 창고는 별장 바깥에 따로 떨어져 있어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경비는 따로 없으니 여긴 절대 아니야.
1층은 지금 내 눈으로도 보이는 저 뒷문이랑, 앞 현관, 위층으로 가는 계단과 바깥 대문에만 경비가 있다.
여기 있는 건 응접실, 대식당, 흡연실, 그리고…… 볼 방(ball room)? 뭐지?
공을 두는 방……은 절대 아닐 텐데.
뭔지 모르겠지만 테라스가 엄청 많이 나 있으니까 여기도 아니겠지.
그리고 부엌과 경비대원 구역, 사용인들 구역 등등이 있는데, 아무튼 보검이 있을 거 같은 방은 없었다.
2층은…… 전부 생활 공간이군.
백작 부부의 침실……뭐? 부부?!
그 새끼, 결혼했으면서 그딴……!
우와, 심지어 이번엔 부인이랑 애들도 같이 왔대!
세상에, 진짜 미친 거 아냐?!
……아무튼 가족들의 침실과 서재, 손님방, 오락실,그리고 기도실이 있다.
3층은 음악실과 회화실, 장서실이 있고, 마지막 4층은 방이 나뉘어져 있긴 해도 전체가 전시실이었다.
백작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그림과 조각 등의 보물들이 있다나?
그래서 그런지 경비들이 제일 많이 배치된 곳도 4층이었다.
“음…….”
보검이 있을 곳은……
장소적으로 4층이 제일 유력하긴 한데, 귀하긴 해도 그건백작의 보물이 아니란말이지.
보검은 그냥 거래 상품일 뿐이니까, 전시실에 두진 않았을 거야.
지도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앨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애송아.”
“왜요, 노인네.”
“……”
오오, 이번엔 ‘뒤질래?’ 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이글거리는 그 눈을 마주해주며 나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뭐요. 불만 있으면 이름 불러요, 이름. 기껏 이름 알려줬구만 자꾸 애송이래.”
“애송이 새끼를 애송이라고 하는 게 뭐? 넌 임마, 내가 이름 기억하기엔 아직 한참 멀었어. 이제 깃털 좀 돋은 병아리 새끼가 어디서!”
“아니 금화 한 닢 거뜬히 내주는 고용주님에게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 진짜 바쁘니까 내가 그냥 너그러이 넘어가드립니다. 그래서 왜요?”
노인네는 별장의 3층을 그린 그림의 귀퉁이를 가리켰다.
“여기 뭐라고 써있는 거냐?”
“비상구.”
“그게 뭐야?”
“글쎄요. 위급할 때 탈출하는 곳 같은데요. 봐요, 여기 바깥으로 계단 그려져 있잖아요.”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뒤뜰 쪽에선 그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확인하고 싶으면 이따가 그리로 가보면 되겠지.
특이한 건, 그 ‘비상구’는 3층과 4층에만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흠, 하긴 불이 나거나 했을 때, 3층이나 4층에서는 바깥으로 빨리 피하는 건 어렵겠지.
그래서 특별히 만든 모양이군.
그리고 그 생각을 뒷받침하듯이, ‘비상구’라는 건 항상 열려 있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경비 둘이 늘 지키고 서 있다고도 되어 있으니, 이쪽으로 들어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지.
“이건?”
“장서실. 책 있는 데요.”
“이건?”
“배수구. 거기 욕실이라는데요.”
“그럼 이건?”
“<본 지도에="" 대한="" 일체의="" 권리는="" 온전히="" ‘나비공작’에게="" 있으며,="" 무단="" 수정과="" 게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표본으로="" 만들어서="" 종탑에="" 매달아줄="" 것이니="" 유의하십시오.="">…… 뭐야, 이거?”
그 후에도 노인네…… 하, 됐다……
아무튼 앨런의 질문에 대답해주고, 나도 나대로 계속 종이와 지도를 보며 연구한 결과,
“거지 같네.”
라는 결론이 나왔다.
“창문은 죄다 안에서 여는 구조이고, 굴뚝은 좁아서 못 들어가고, 비상구는 응전 각오해야 되고, 나 참, 이걸 어떻게 들어가?”
내 불평을 들은 앨런은 어깨를 으쓱였다.
“할 수 없지. 누구 한 놈이 안에 들어가서 창문 하나 열어주는 수밖에.”
“조심하십시오, 앨런 할아버지.”
“뭔 개소리야? 당연히 네가 가야지.”
이 영감탱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렇게 사뭇 당연한 듯이 하는 거지?
저 안을 나보고 어떻게 뚫고 들어가라고?!
이건 절대 못 넘어가.
애초에 이런 일을 하라고 이 영감탱이가 있는 거잖아!
“당연하긴 개뿔! 아니, 제가 저기를 몰래 어떻게 들어가요, 댁이 가야지!”
“너 안 들키게 벽 타고 창문 넘을 수 있냐? 오 분 내로?”
“아뇨.”
“그러니 네가 들어가야지.”
“……젠장!”
순식간에 논쟁이 끝나버렸다.
하…… 이걸 뭘 어떻게 들어가야 되지?
변장하는 수밖에 없나?
내 옷으로는 변장이 안 통할 텐데…….
“옷이야 구하면 되지.”
“네? 하인 하나 잡으시려고요?”
관련 없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건 좀 그런데.
게다가 어떻게 밖으로 꾀어낼지도 생각해야 하고.
어려울 거 같은데…….
그러나 내 추측은 이번에도 빗나갔던 모양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복면 같은 후드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곧 주름진 입가가 씰룩이며, 굉장히 어처구니없어 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진짜 생긴 거랑 안 맞네. 발상이 대체 왜 그 모양이냐? 그게 아니고,저기 들어갔다가 뒤진 놈들 중엔 하인으로 변장한 놈도 있을 거 아니냐.”
그렇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놈 옷을 빌리면 되지. 생사람을 왜 잡아, 미친놈아.”
“아, 그렇구나. ……뭐요?!”
그 말은 지금 나보고 시체 옷 입으라고……!
아니, 나한테 발상 어쩌고 하면서 뭔 소리를 던지는 거야?!
터무니없는 소리를 던진 앨런은, 오히려 나보다도 더 기가 막히다는 듯이 헛웃음을 켰다.
“얼씨구, 표정 봐라. 임마, 네가 그러니까 애송이라는 거야. 지금 네가 뭐 가릴 때냐? 아무튼 제일 멀쩡한 걸로 찾아와서 줄 테니까 넌 그동안 보검 있을 방이나 찾아.”
“으어어…….”
……얼굴을 감싸며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할배가 시체 구덩이를 뒤지러 간 동안, 나는 애써 그 생각을 저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별장의 상황을 기록한 종이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먼저 볼케 백작.
특이사항 없음.
백작의 부인과 아이들은 아예 언급도 없는 걸 보니 신경 안 써도 되는 거겠지.
음…… 이 가족의일과표가 있다면 시간에 따른 동선을 알 수 있겠지만,
뭐, 거기까지 바라면 너무 과한 거겠지.
종이에는 백작 가족 외에도 굵직굵직한 인물들, 예를 들면 집사나 하우스키퍼, 수석 하녀, 경비대장 등에 대해서도 적혀 있었다.
수석 하녀가 3층 복도 꽃병에 비상금을 숨겨 놨다는 걸 빼면, 대부분은 별 특이사항이 없다고 되어 있다.
그래,대부분.
기록을 쭉 살펴보는 내 눈에,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다.
“……응?”
왠지 집사에 대한 기록이 많다.
심심하면 자꾸 2층 서재를 들르고 있었다.
왜지? 백작이 거기에 있어서 시중드느라?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정기적으로 들르고 있다.
거진 한 시간에 한 번씩.
마지막 기록은 오락실에 있다가 서재에 잠깐 다녀간 후, 다시 오락실로 돌아간 거였다.
느낌이 싸해.
이 움직임은 꼭……
……꼭, 거기 뭔가 엄청 중요한 물건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사람 같은데.
수상하다.
“……”
그나저나 나비공작은 이렇게나 세밀하게 전부 관찰하고 있었으면서, 왜 보검의 위치는 알아내지 못한 거지?
아니, 알아내지 못한 게 아니라일부러 알아내지 않은 건가?
왜? 알면 손을 뻗고 싶어지니까?
아니면 필요한 놈이 알아서 찾으라는 심보로?
그것도 아니면, 너무 깊이 관여하면 발을 빼기 어려우니까……?
하……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알겠어.
나는 고개를 저어 그 푸근한 할배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린 후, 다시 기록을 살펴보았다.
“흠……”
집사 외에도 움직임이 특이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경비대장.
기록에 따르면, 그는 별장의 1층부터 4층까지 정기적으로 왕복하며 돌고 있다.
부하들이 일을 잘하는지 확인하는 거겠지.
그 행동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순시는, 별장 3층을 완전히 건너뛰고 있었다.
왜?
3층에는 음악실과 장서실이 있다.
악기들도 꽤 값나가는 물건 아닌가?
책도 은근히 비싼 것들이고.
손가락으로 지도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경비대장이 순찰을 하지 않는다.
왜? 안 해도 되니까.
왜 안 해도 되지?
대장이 확인해야 할 것, 즉,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까.
왜냐면…… 경비병이 3층에 없으니까……?
아니야, 비상구가 있잖아.
거기에 경비병이 있다고 되어 있어.
그럼……
“……본인이 거기에 직접 지키고 서 있으니까……?”
근데 왜??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긴 한데, 왜 대장이 직접 지켜야 되는 거지?
제1순위로 지켜야 하는 대상은 볼케 백작일 텐데, 백작의 생활권이라고 해야 하나, 갈 만한 곳은 죄다 2층에 있잖아.
그 놈 말고 또 지킬 만한 사람이……
“……있어.”
그래. 있어.
백작부인과 그 자식들.
3층에 있는 건 음악실과 회화실이다.
각각 악기 연주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방이겠지.
귀족이 할 법한 고상한 취미들이다.
……그래, 백작의 가족이 3층에 있는 거야.
그러면 경비대장이 3층을 직접 지키고 있는 것도 말이 된다.
2층은 창문 외엔 다른 침입할 만한 곳이 없는데다, 여차하면 1층의 경비병들이 곧바로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3층은 다르다.
항상 열려 있어야 하는 비상구로 미친 강도가 침입할 수도 있으니, 곧바로 대응하려면 무력은 물론이고 지휘권도 필요할 터.
그래서 대장이 직접 지키고 서 있는 것이다.
4층은 뭐……
……달리 사람도 없는데다, 지금도 열심히 포대자루를 나르는 저 검은 장정들이 있으니 덜 신경 쓰고 있겠지.
아무튼 이 대장과는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평소보다 훨씬 예민할 테니까.
……그럼 결국 2층 창문을 열 수밖에 없는데.
서재에서 가장 가까운 방은 백작 침실인데, 여긴 당연히 안 되고.
그 다음은…… 오락실인데 방향이 영 아니네.
……기도실 아니면 손님방밖에 없는데, 기도실은 너무 멀다.
으, 이건 상황을 봐야겠어.
아무튼, 목표는 일단 2층의 서재이다.
여기가 아니면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대강 결정된 시점에서,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원래 행동을 개시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옛다.”
그리고 마치 일부러 때를 맞춘 것처럼, 앨런이 불쑥 나타나서 내게 옷을 던졌다.
약간 피냄새가 풍기는 검은 외투에 흰 셔츠,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 신발.
그래도 피 자체는 말랐는지, 옷을 슬쩍 만져도 손가락에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셔츠는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지만, 외투에 가려지는 부분이니 문제없겠지.
……외투에 구멍만 뚫려 있지 않았다면!
“……”
앨런은 내 시선을 받고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나마 그게 제일 멀쩡한 거야.”
“하…….”
돌겠네, 진짜.
이거 딱 봐도 너무 수상해보이잖아.
……미리 그럴싸한 핑계를 생각해두는 게 좋겠구만.
한숨을 쉬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자, 맞은편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가게?”
“안 돼요?”
“아니, 좀더 미적거리고 꿍얼거릴 줄 알았지.”
“어차피 할 거 그냥 후딱 해버리는 게 낫잖아요.”
좋은 일일수록 빨리 해치우는 게 좋다는 말도 있고.
게다가 난 이 뒤의 일정도 있는 바쁜 몸이다.
……그래, 나는 이 뒤의 일정을 꼭 지켜야 돼.
미적거릴 시간은 없어.
“뭐, 맘대로 해라. 그래서 진입 방법이랑 어디로 갈지는 다 짰냐?”
“대강요. ……근데 생각하니까 웃기네, 이걸 왜 내가 짜요? 당신이 전문가잖아요.”
“아, 그러니까 내가 지금 들어준다는 거 아니야. 사내 새끼가 진짜 말이 많네. 됐으니까 읊어봐, 짜샤!”
최대한 낮춘 목소리로 윽박지르는 할배를 뚱하게 쳐다보며, 나는 볼멘소리로 내 계획을 쭉 이야기했다.
일단 지금 가장 정신없을 부엌 문을 통해 별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역시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다른 사용인들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는 척하다가, 위층으로 올라간다.
그 다음은 상황을 봐서, 기도실이나 손님방의 창문을 연다.
이 대목에서 앨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손님방을 열어. 기도실은 안 될 거다. 통짜 창일 거야.”
“아, 그래요?”
……음, 손님방의 창문을 열고, 앨런이 들어오면 곧장 닫고 잠근다.
그 다음, 서재로 들어가서 보검을 찾는다.
“서재? 안에 누가 있으면?”
“여기 처음 와서 길 헷갈렸다고 하면 봐주지 않을까요?”
“……”
윽, 시선이 따가워!
그치만 달리 변명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걸!
앨런은 크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서재에 사냥감이 있을 거다? 얌마, 그럼 그냥 서재 창문 열면 되잖아.”
“………………아.”
그러네.
둔탁한 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고맙다, 애송아. 내 눈이 아직 안 죽었다는 걸 네가 몸소 증명해주는구나. 내가 너 허당일 줄 알았어.”
“……”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노인네에게 울컥했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무 말도 돌려줄 수 없었다.
하, 이래서 뭔가 계획할 때는 여럿이서 해야 한다니까.
나, 정말 바보야…….
아주 약간의 자괴감이 담긴 한숨이 폭 새어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