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14화 (114/475)

〈 114화 〉 112화 : 우당탕탕, 신나는 보검 사냥! (2)

* * *

위슨의 소환수이자 정령, 스라소니 플레마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크게 하품을 했다.

귀엽긴 한데…… 너무나도 맥이 빠지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너 자다 왔냐?”

“수면은 우리에게 불요하니라.”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은 또 한 번 크게 하품을 했다.

“하품은 왜 하냐, 그럼.”

“……그대의 영향이니라. 무척이나 고요하군. 여하간, 어인 일인가?”

나는 다시 문을 빼꼼 열어 바깥을 살폈다.

누군가가 앞만 보며 바짝 서 있는 경비병들을 오가고 있는 게 보였다.

다른 병사들보다도 몸에 철판을 더 많이 붙이고 있고, 거리낌없이 경비병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저 사람이 분명 경비대장일 거야.

대장이 간 다음에 시작하는 게 좋을까?

……아니야.

오히려 지금이 더 좋을지도 몰라.

경비대장까지 한꺼번에, 확실하게 치워버리자!

나는 계속 복도를 내다보면서, 스라소니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저기 경비병들 보이지? 돌아다니는 사람은 대장일 거야. 방법은 너한테 맡길 테니, 저 문 근처에 서 있는 경비병이랑 경비대장 둘 다 잠깐 자리를 비우도록 해줘.”

“흠, 저 두 명에 한할 필요는 없으리라. 다소 상해를 입히게 되리라만.”

“죽이지만 않으면 돼. 그리고 위층 귀퉁이에 경비 둘이 지키고 있는 문이 있어. 거긴 항상 열려 있으니까, 그쪽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

1층 뒷문도 열려 있긴 하지만, 거긴 사람이 너무 많으니 자칫하면 소란이 커질지도 모른다.

가능한 피해는 줄여야지.

스라소니는 대답 대신 또 크게 하품을 한 후, 제자리에서 폴짝 뛰며 한 바퀴 돌았다.

그 회전을 따라 불꽃이 일며 스라소니의 몸을 감쌌고, 이내 몸이 작아진 스라소니가 불꽃을 꺼뜨리며 착지했다.

성체보다 어려진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 그 자체였고, 나는 그 놀라운 변신에 그만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귀여워.”

“……”

“……미안.”

늑대는 좋아하던데.

이 녀석은 유독 짐승 취급받기 싫어하는 거 같단 말야…….

뚱한 눈으로 나를 보던 스라소니는 고개를 살짝 저은 후, 방 바깥으로 살며시 나갔다.

그리고 대장이 저 안쪽 경비병을 향해 가느라 등을 돌린 사이, 그는 내가 가리켰던 경비병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사람의 발소리, 특히 다리에도 철판을 댄 병사가 움직이면서 나는 철거덕 소리까지도 모두 집어삼키는 두툼한 카펫이다.

고양이나 다름없는 스라소니의 발소리는 당연히 울릴 리가 없었다.

그 덕에 경비병은 스라소니가 제 발치에까지 오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먀앙.”

“엇, 깜짝이야. 어엉?”

오오, 내가 두 번이나 앞을 지나쳤는데도 아무 반응도 없던 경비병이 단숨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경비병의 다리를 머리로 슥슥 문대더니, 다시 한번 짧게 울었다.

“웬 고양이지? 누가 들여왔나?”

경비병이 그에게 손을 뻗은 순간, 마침 맨 안쪽 경비병과 이야기를 마친 경비대장이 몸을 틀었다.

아마 스라소니에 손대려고 자세가 틀어진 걸 본 거겠지.

경비대장이 성큼성큼 다가와, 그 경비병을 제지했다.

“네놈 고양이냐?”

“아닙니다!”

“그럼 신경 쓰지 말고 냅둬. 이놈은 내가 밖에 버리고 오지.”

우와, 야박하기도 해라.

경비대장이 쌀쌀맞은 표정으로 스라소니에게 손을 뻗은 순간,

“크악!”

그가 대장의 얼굴을 할퀴어버렸다!

“앗, 이 녀석!”

경비병이 황급히 스라소니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그 경비병의 얼굴도 할퀴어버린 후, 소리없이 위협하기 시작했다.

“잡아!”

얼굴에 보기좋게 세 개의 선이 그어진 대장이 버럭 외치자, 2층에 있던 경비병 세 명 모두가 앞을 막으며 그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구석으로 몰 생각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지켜보느라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지만, 다들 스라소니에게 주의가 쏠려 있어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

위협하며 상황을 살피는 듯하던 스라소니가, 갑자기 앞쪽으로 크게 도약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경비병들이 주춤거렸다.

“이잇!”

그러나 그건 찰나일 뿐, 경비병들은 곧바로 평정을 되찾고 일제히 검을 찔러왔다.

스라소니가 재빨리 뒤로 물러난 탓에 검이 허공을 찌르며 경비병들의 몸이 앞으로 살짝 굽혀졌다.

그 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스라소니가 또 다시 앞으로 크게 도약하며 발톱을 세웠다.

그의 발끝에 달린 날카로운 흉기가 번뜩이자, 경비병들의 눈이 두려움으로 크게 뜨였다.

죽지는 않는다 해도, 발톱에 할퀴이면 아프니까!

카펫조차 삼키지 못할 비명이 곧 터져 나오리라 예상한 순간,

스라소니는 옆 벽을 짚고 경비병들을 뛰어넘어가더니, 대장의 머리를 발로 한 대 후려쳤다.

물론 투구를 쓰고 있으니, 대장의 머리엔 상처가 나지 않겠지.

……하지만 마음은 어떨까?

“……”

대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며, 이마와 관자놀이에 핏대가 불끈 튀어나왔다!

“이 새끼가!”

허공을 마구 휘젓는 경비대장의 손을 가뿐히 피하고, 스라소니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섰다.

그대로 기지개를 쭉 편 후, 그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대장의 고함을 신호로, 경비병들을 포함한 총 네 명의 병사가 일제히 계단을 올라가버렸다.

하나같이 입에서 불을 뿜을 듯한 기세에,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축생에게 농락당하다니, 가엽기 그지없도다.

아무튼 2층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

……스라소니 저 녀석, 저거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데. 평소에 저러고 노나?

아무튼 이제 됐어. 백작은 오락실에서, 집사는 손님방에서 각각 놀고 있으니, 서재엔 분명 안에 아무도 없을 거다.

어디에 보검을 숨겼든 싹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주마……!

굳게 다짐하며, 나는 재빨리 서재의 문을 열고 안으로 쏙 들어갔다.

곧바로 다시 문을 닫고 뒤를 돌아선 순간,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를 걷고 있는 하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침묵 속,

“……”

“……”

나는 문 손잡이를 쥐고, 여자는 태피스트리를 잡은 채로 서로 마주하기를 수 초.

먼저 마비가 풀린 건 여자였다.

“윽!”

여자가 태피스트리를 놓는 걸 본 순간, 나는잽싸게 앞으로 굴렀다.

그리고 몸이 숙여진 그대로 다리를 뻗어 여자의 발을 걸었다.

“꺅?!”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던 여자가 맥없이 뒤로 넘어지며 뒤통수를 찧었다.

그래봤자 카펫 위이니 별로 안 아프겠지.

여자가 다시 일어나기 전에, 나는 외투를 벗어 입에 문 채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한 손으로 그녀의 두 손을 뒤로 꺾어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구겨진 외투로 틀어막은 후,

팔을 꺾었다.

“으읍!! 우으으으으!!”

그녀는 몸부림치려 해도, 내 밑에 깔린 탓에 불가능했다.

고통이 듬뿍 담긴 비명마저 내 손에 막혀 빠져나올 수 없었다.

게다가 대충 뭉친 외투 때문에 내 손을 깨물고 싶어도 못하겠지.

느낌만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코도 막혔는지도 모르겠다.

음, 아무튼 썩 좋은 기분은 아닐 거야.

“우으…….”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시점에서,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치워주었다.

축 늘어진 그녀의 손목을 외투로 묶는 동안, 그녀는 콜록이며 가쁜 숨만 쉴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숨이 막혔던 모양이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이거 좀 미안하네.

손목은 묶었는데……

혹시 버둥거리다가 일어나는 거 아냐?

책상 앞에 있던 의자를 들고, 여자의 등을 가리듯이 턱 두었다.

이러면 움직이기 좀 힘들겠지.아마도.

나는 그제야 긴장을 풀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어이씨, 진짜 깜짝 놀랐네.”

와, 진짜 누가 안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세상에, 나 말고 서재를 노린 놈이 또 있었다니.

“으윽…… 아야! 뭐야, 이거?!”

여자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을 일으키려 했고,

그 탓에 내가 올려놓은 의자의 다리에 부딪친 다음,

그대로 턱을 바닥에 쿵 찧고 말았다.

오우, 저건 아프겠다.

“너, 너 뭐야?!”

대답해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서재의 창문을 열었다.

앨런 영감님이 이 밑에 있나?

고개를 빼꼼 내다보았다.

“애송아, 비켜라.”

“우앗.”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자마자, 시커먼 덩어리가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덩어리, 아니 앨런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창문을 닫고 잠궈버렸고,

“아잇!”

……어떤 놈이 유리창에 들러붙어서 씩씩대더니 휙 사라졌다.

아니, 뭐 이리 반응이 빨라?!

무서워!

“봤냐? 이러니까 너한테 문 열라고 시킨 거야, 임마.”

“……진짜 장난 아니네요.”

저 도둑들도 서재에 보검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아, 그건 아닌가?

이 영감님이 여길 들어가려고 노리니까, 그 뒤를 따라가려던 건지도 몰라.

“흠, 이제 사냥감을 찾아야 할 텐데…… 쟨 뭐야?”

“여기 먼저 있던 사람. 태피스트리를 걷으려 하던데요.”

앨런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여자의 턱을 잡고 억지로 얼굴을 들게 했다.

“얼씨구, 참새 아니냐? 방앗간 가서 밀가루나 퍼먹을 것이지, 여긴 왜 와?”

“아, 씨발! 영감이 뭔 상관이야!”

……역시 아는 사이구나.

저 노인네, 진짜 이 도시에 있는 도둑들과 전부 안면이 있나보네.

참새라 불린 여자는 고개를 홱 흔들어 앨런의 손을 뿌리쳤고, 그는 껄껄 웃으며 여자의 머리를 한 대 퍽 후려갈겼다.

……진짜 저 노인네, 여자한테도 얄짤없네.

뭐, 어때.

태피스트리나 걷자.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 그 두툼한 천을 늘어뜨리고 있는 장대로 손을 뻗어보았다.

오, 닿는다!

“영차.”

장대째로 태피스트리를 치우니, 벽에 숨겨져 있던 금고가 나타났다.

제법 커 보이는 게, 장검도 어떻게 잘 넣으면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듯했다.

안이 좀 깊어야 하겠지만.

그런데 금고 문에 열쇠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무언가 숫자가 적혀 있는 회전판 같이 생긴 게 하나 달려 있었다.

뭐지?

이거 막 건드리면 안 될 거 같은데.

머리를 긁적이며 앨런을 돌아보았다.

“……”

……노인네가 일은 안 하고 아직도 여자와 서로 욕설을 던지며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이가 없네.

“일 안 해요?”

“아, 잠깐 있어 봐. 허어, 저건 또 뭐야? 야, 참새야, 너 지금 저걸 바꿔치려고 들고 온 거냐? 저딴 조잡한 걸…… 쯧쯧.”

“시끄러, 영감은 이런 거 챙기지도 않는 주제에!”

“내가 왜 챙기냐? 딴 놈이 알아서 가져올 텐데. 봐라.”

그러면서 앨런이 갑자기 팔을 휘적였다.

꼭 등에 무언가를 지고 있던 사람처럼.

이내 앨런이 바닥에 검은 천으로 돌돌 만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헉.”

진짜 뭐 지고 있었네!

우와, 죄다 시커매서 전혀 몰랐어!

앨런의 주름진 손에 검은 천이 슬슬 풀리며, 굉장히 화려한 검집에 싸인 검이 나타났다.

“……!”

금빛 메리골드 장식이 새겨진 은색 검집, 역시 금장식과 보석이 박혀 있는 가드에 자루.

누가 봐도 보검이며,

성검이라 불릴 만했다.

나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피터 왕자처럼 빛나는 금발머리 남자가 이런 걸 들고 다니면, 나라도 용사인 줄 알았을 테니까.

진짜 그럴 만하네.

염병.

“이거 어디서 났어요?”

분명히 아까 밖에서 만날 때는 등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앨런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밖에 있는 놈들 중 하나한테 받았지. 우연히 보검을 본 어떤 미친놈이, 보자마자 모조품 만들었다더라.”

보자마자 훔칠 생각을 하다니 진짜 미친놈이군.

아니, 이 도시 사람은 전부 미쳤으니까 정상이라고 해야 하나?

말을 마친 후, 앨런은 그제야 금고 문을 돌아보고껄껄 웃었다.

“애송이 너 눈치 좋구나. 수고했다. 참새야, 보검 이 금고 안에 있는 거 맞지? 이거 어떻게 여냐?”

“몰라. 직접 풀어보셔!”

“하, 욘석아. 별명 따라 새대가리가 되면 어쩌냐?”

그는 여자의 앞에 쪼그려 앉고서, 후드를 살짝 걷은 채 말을 이었다.

“너 내 이름 까먹었지, 응? ‘해골열쇠’ 앨런이란다. 너 내가 저거 못 풀 거 같냐? 너 없어도 풀 수 있는데, 그냥 후딱 끝내고 싶어서 묻는 거야.”

“……으.”

“자, 참새야, 네가 말해주면 사냥 끝난 뒤에 너 풀어주마. 아니면 끝난 다음에 창 밖으로 던질 거다. 모처럼 반반한 낯짝인데, 유리에 찢어지는 건 너무 아깝지, 응?

……좋은 말할 때 말해.”

음울한 목소리가 바닥에 엎어진 여자를 향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여자는 앨런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덜덜 떨며, 금고를 여는 방법을 쭉 읊기 시작했다.

대강 듣기로는, 열쇠가 아니라 다이얼이라는 걸 돌려서 자물쇠를 여는 듯했다.

……그보다 후드에 가려진 눈이 어땠길래 여자가 저렇게 벌벌 떠는 걸까?

완전히 겁을 집어먹어선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허, 다이얼? 이거 하마터면 시간 잡아먹을 뻔했네. 고맙다, 참새야.”

“……”

그런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준 후, 앨런은 내가 빤히 노려보고 있던 그 숫자 적힌 회전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참새야, 너 이거 누구한테 알아냈냐?”

“……집사.”

“……”

아까 보았던 손님방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침대 끝에 걸쳐져 있던 하얀 앞치마,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던 집사놈…….

……거기 있던 여자도 도둑 아냐?

하, 이젠 미쳤다고 하기도 귀찮다.

참 고맙게도, 앨런이 내 대신 혀를 차며 말을 꺼냈다.

“얼굴 좀 반반한 년들은 이게 문제야. 사냥감이 크건 말건 일단 몸부터 들이댄다니까. 기술 닦을 생각은 안 하고……. 쯧쯧, 말세야, 말세.

참새야, 너 그렇게 계속 다리 벌리고 다닐 거면 이쪽 기웃거리지 말고, 그냥 그걸로 먹고 살아. 내가 가게 소개시켜줘?”

“……칫.”

여자는 할 말이 없는지 혀만 찰 뿐이었다.

앨런은 그 모습도 맘에 안 드는지 혀를 쯧쯧 차며, 계속해서 금고 문을 만지작거렸다.

철컥.

금속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며, 금고 문이 끼익 열렸다.

앨런은 곧바로 문을 홱 열어제끼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거군?”

금빛 메리골드 장식에 새겨진 은색 검집.

아까 앨런이 꺼낸 것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검이었다.

아니, 실상은 이게 진짜이고, 아까 것이 가짜이지만.

그는 검을 한번 힐끗 훑어보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내밀었다.

“자.”

“아, 예.”

……의외로 바로 넘겨주네.

농담으로라도 돈 더 달라거나 할 줄 알았는데.

게다가 그는 다른 도둑에게 받은 가짜 보검을 금고에 넣고 다시 닫아버렸다.

그 안에 들어 있던 돈이나 보석, 서류에는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고.

멀뚱히 그를 쳐다보자, 앨런이 고개를 까닥였다.

“왜?”

“돈도 안 챙기시는 게 신기해서요.”

“여기 들어있는 거 건드리면 누가 손 댔다는 게 들킬 거 아니냐? 모처럼 가짜 보검도 준비했는데, 그러면 재미가 떨어지지!”

껄껄 웃으며, 앨런은 재차 말을 꺼냈다.

“자, 애송아, 내 일은 다 끝냈다. 난 이 년 풀어주고 갈 테니, 너 먼저 가봐라.

아, 혹시나 해서 말해주는 건데, 너 그거 들고 나가는 순간부터 본판이니까 잘 챙겨.”

……역시 쟁탈전인가?

아까 유리창에 어떤 놈이 들러붙었을 때부터 왠지 그럴 거 같긴 했어.

하아……

침입하긴 어렵고, 찾는 것도 골치 아플 거 같으니,

누가 성공하길 기다렸다가 낼름 빼앗아가려는 거구만.

근데 오늘밤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더 정확하게는 옐리카에게 보검을 보이기 전에 훔쳐야 했을 텐데, 왜 그렇게 느긋하게 군 거지?

“……”

가만히 앨런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이 할아버지, 나비공작이 ‘재밌는 일거리가 있다고 불렀다’고 했지.

그 돈귀신 할배가 앨런을 부른 건, 나와 만나기 전이었을 거다.

나비공작이 보검 때문에 앨런을 불렀다…….

어쩌면 그 소문이 퍼졌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깥의 도둑들은 앨런이 오기를 기다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형씨가 이 영감을 어떻게 찾아서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일 펴서 좋겠어.

그 거미라는 도둑처럼, 다들 그가 보검을 훔쳐낼 거라 믿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진짜 그렇다면, 최고급 맥주 한 잔으로 끝내기엔 너무 황송한데?

“앨런, 내일 아침에 시계탑에서 만날래요? 아무래도 너무 싸게 일해주신 거 같은데.”

“엉? 애송아, 뻘소리 말고 그거 무사히 지킬 생각이나 해라. 저 밖에 있는 놈들, 호락호락한 놈들 아니다.”

“아, 그건 걱정 마시고. 내일 아침에 봐요, 추가 보수 드릴게.”

앨런은 내 말에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코웃음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주름진 입이 자아낸 건 헛웃음도 비웃음도 아닌, 작은 미소였다.

“필요 없어. 선불로 이미 받았다.”

“엥? 그 돈귀, 아니 공작한테요?”

“아니, 너한테.”

……이게 뭔 소리래?

내가 준 건, 약속한 보수인 금화 한 닢밖에 없는데.

지난번에 골목에서 구해준 건, ‘토끼풀 저택’의 위치랑 이 도시에 대해 알려준 걸로 퉁쳤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앨런은 깊이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세월의 흐름과 풍파가 고스란히 새겨진 그의 얼굴,

그 주름진 얼굴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층 더 깊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 손녀의 목숨을 구했어. 그러니 더는 필요 없다.”

“???”

더 모르겠는데.

그러나 앨런은 더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도로 후드를 깊이 눌러쓰며 고갯짓했다.

“뭐해, 얼른 안 가고? 그 집사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네, 그럼 가볼게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하, 감사는 무슨.”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입은 빙긋 웃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여자가 가져왔던 검도 챙기며 방을 나섰다.

행운을 빈다.

……문 틈으로들린 듯한 그 말이, 내 등을 두드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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