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123화 : 서쪽 끝, 마지막 왕국령 (2)
* * *
촌장이 사는 집이라고 무슨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는 건 아니니,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갈 수밖에 없다.
대장간이라도 있으면 숫돌 사는 겸해서 물어볼 텐데, 희한하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집집마다 텃밭도 있는 것 같은데, 농기구는 다 밖에서 들여오나?
할 수 없이 여관에 물어보려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았지만, 얻은 건 마을 꼬라지에 대한 탄식뿐이었다.
“아니, 뭔 동네에 여관도 없어?!”
이 마을엔 나그네가 안 오나?
드워프랑 거래한다며?
그럼 상인들이 묵을 거 아냐, 왜 여관이 없어?!
그 흔한 잡화점도, 하다못해 식료품점도 없다.
아예 가게가 없어, 가게가.
뭐 이런 데가 다 있지?
“야, 여기 망한 거 아냐? 저쪽은 죄다 부숴져 있는데.”
메린이 가리킨 곳을 보니, 정말로 폭삭 내려앉은 집들이 몇 채 있다.
산에서 바위가 떨어진 건가?
근데 주변에 바위 없는데.
“……도적이 쳐들어왔었나?”
“도적은 불을 지르잖아요. 근데 저건 불에 탄 게 아니라, 그냥 무너진 거 같아요.”
나는 로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집들은 무너진 게 아니라, 부숴진 것이다.
투석기의 돌이 지붕을 정통으로 때리면서 벽을 뚫고 굴러가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그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지나가는 사람에게 촌장 집 위치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인가?”
“작네.”
그렇게 찾아간 촌장 집은 마을 크기처럼 굉장히 아담했다.
한 명은 밖에 남아야 할 거 같은데.
“위슨이 여기 있을게. 책 보고 있을 테니까 다녀와.”
“너, 얘기 관심없구나.”
“어.”
솔직하군.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정직함이야.
나는 한숨을 쉰 후, 나머지 세 명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 앞에 초로의 남자가 앉아 있는 게 바로 보였다.
무언가 열심히 끄적이는 걸 보니 촌장이겠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서 그런지 촌장이 바로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짤막하게 물어보았다.
“산에 올라갈 수 있죠?”
“아니요.”
“아, 예.”
“……”
“……”
……어라, 이게 아닌데!
촌장의 대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니 잠깐, 왜 안 돼요? 길 다 뚫려 있는데?”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에요. 못 지나갑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촌장은 끄적이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무언가 막힌 것처럼 지나갈 수가 없어요. 길 옆으로 올라가서 넘어가려고 하면,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버리고요. 게다가……
……에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산에 가시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세요.”
게다가 뭐?
아니, 왜 말을 하다 말아?
엄청 신경 쓰이잖아!
하지만 숨겨도 소용없지.
우린이미 듣고 온 이야기가 있으니까.
나는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산신이 막은 건가요?”
“네? 사, 산신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이 세상에 창조주님 외에 다른 신이 어디 있다고 그런 큰일날 말씀을 하십니까?! 게다가 사제님 앞에서!”
음, 눈에 띄게 당황해하는 걸 보니 맞군.
나는 어깨를 으쓱인 후, 재차 말을 꺼냈다.
“저희도 다른 데서 들은 겁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산신인가요?”
“저,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저에게 신은 오직 창조주님뿐이에요! 저는 절대……!”
“아니, 누가 산신 믿냐고 물었어요? 길 막은 게 산신 맞냐고요.”
“아니에요! 절대 아닙니다! 저, 저는 절대 아니에요!”
“내 얘길 듣지 않는군요.”
돌겠네, 진짜.
말하는 걸 보니 산신이라는 게 진짜 있긴 있는 거 같은데.
근데 이렇게 횡설수설하고 있으니 자세한 얘기는 못 듣겠구만.
아니, 근데 산신 믿는 것도 아니면서 뭘 저리 겁먹는 거야?
무슨 해를 입는다고…….
콰앙!
갑자기 옆에서 큰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나무바닥이 육중한 철퇴를 맞고 부숴져 있었다.
그리고 철퇴의 주인인 교단 최고의 전투사제, 로나는 굉장히 해맑게 웃으며 그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자신의 적이 악마랑 그 추종자…… 이단이라고 했던가?
“……”
해를 입는 게 맞군.
일단 나무바닥이 먼저 당하고 말았다.
이거 배상해야 되겠지……?
아니지, 로나의 근본 소속은 교단이니까, 이 마을 신전에 청구하라고 하면 되겠군.
다짜고짜 남의 집 바닥을 보내버린 사제님은, 밝게 웃는 얼굴로 조용히 목소리를 내었다.
“형제님, 진정하세요.”
“……”
촌장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딸꾹질을 하긴 했지만, 아무튼 조용해지긴 했다.
“산신이라 자칭하는 놈이 저 산 위에 있는 건가요?”
“……”
“형제님? 대답을 안 해주시면 제가 좀 곤란해지는데요.”
“……”
거듭된 로나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다.
혹시 기절한 건가 싶어 촌장의 눈앞에 손을 흔들어봤더니, 고개를 홱 저으며 또 다시 딸꾹질을 했다.
……예절 주입기의 효과가 너무 과했군.
너무 놀라서 기가 빠져버린 모양이야.
하…… 이거딴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나…….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는 게 느껴졌다.
그쪽을 힐끗 쳐다보니, 모자를 깊이 눌러쓴 블루벨이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뭐가 오고 있어.”
“온다니?”
“몰라. 새 같은데, 수가 엄청 많아.”
새? 산 밑에 있으니까 새가 많은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참새 무리가 지나가기라도 했나보네.
귀가 너무 밝은 것도 성가시구만.
“야, 내가 참새 구분도 못할 거 같냐? 그게 아니라,”
그러나 엘프가 채 말을 마치기 전에, 갑자기 귓가에서 파랑새의 목소리가 울렸다.
“빨리 거기서 나와!”
엥? 나오라니, 갑자기 뭔…….
다른 녀석들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나에게만 들린 게 아닌 듯했다.
“닥치고 빨리 나오라고! 귀 터뜨려버린다!”
……이 새끼가 이젠 별별 거에 다 협박을 걸고 있네.
역시 위슨은 저 놈한테 나쁜 물이 든 거야. 틀림없어.
왠지 귓가가 징징 울리기 시작한 것 같아, 나는 한숨을 쉬며 다른 녀석들에게 나가자고 손짓했다.
문 밖으로 나오니, 울타리 근처에 위슨이 멀거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대체 뭐…… ……뭐야, 저거?”
그를 따라 올려다본 순간, 머릿속이 텅 비고 말았다.
검은 띠로 만든 원이 하늘에 둥실 떠 있다.
……아니, 띠가 아니야.
저런 거 지난번에도 본 적이 있어.
저건……!
“알았당께!”
갑자기 구수한 말투가 들리더니, 위슨의 엘크가 말들을 끌고 마을 입구 쪽으로 다시 달려나가는 게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등을 타고 올라오는 불길함의 정체를 파악할 새도 없이, 이번엔 큰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돌겠네, 뭐야, 진짜!”
크게 소리치며 소리가 울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앞에 흙먼지구름이 피어올라 있었다.
“끼에에에엑!!”
소름이 돋는 날선 울음소리와 함께 들리는 건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
그에 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며, 흙먼지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먼지 속에서 나타난 것은,
“……!”
머리털이 완전히 벗겨진, 거대한 수리였다.
“꺄아아아악!”
“사람 살려어어! 으아아악!”
쾅! 콰앙!
쨍그랑!
사방에서 소리가 울리고 있다.
비명 소리. 고함 소리.
깨지는 소리. 부숴지는 소리.
집 위로, 길바닥 위로 새들이 떨어지는 소리.
놈들이 날개를 펼치며 내지르는 새된 울음소리.
“이게…… 대체……?!”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커다란 새에 붙잡힌 사람이 쪼개지거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보이는데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정신 차려!’
……멍청하게 있을 때가 아냐!
근데 진짜 이게 뭔 상황이야?!
저 새들이 마을을 덮친 건 확실한데!
이쪽 앞을 지나치는 사람을 황급히 붙잡고 물었다.
“저 새들 뭐에요?!”
“이거 놔! 얼른 신전으로 피해야 돼!”
“저 새들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고!”
“보면 몰라?! 산에서 내려온 거잖아!산신님이 보낸 거라고!”
산신?
그 산신이라는 놈이 저 괴상한 새들을 보냈다고?!
잠시 멍한 틈을 타, 그 주민은 내 손을 뿌리치고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 주민이 간 쪽으로 다른 마을 사람들도 향하고 있다.
“카엘 님, 신전이 있는 쪽이에요!”
“신전……! 그래, 신전으로 피한다고 했어!우리도 가야 돼! 메린, 촌장님을,”
끌고 나와.
……그렇게 말하려 했는데, 갑자기 시야가 검게 덮이며 몸이 바닥을 굴렀다.
“케흑! 아으……!”
“바닥 뒹굴 시간 없어, 빨리 일어나!”
메린은 내 어깨를 붙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아, 눈이 돌 거 같아.
머리는 이미 돌아버릴 거 같고!
좀 상황 파악할 시간 좀 줘, 이 나쁜 새끼들아!!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촌장의 집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대머리 수리가 시커먼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끼에에엑!”
“꺄아아악?!”
나도 모르게 동시에 비명을 질러버렸다!
어이씨, 뭐 저리 커!
대가리가 내 반만 하잖아?!
사람 하나는 거뜬히 삼켜버리겠네!
몬스터?!
몬스터인가, 저거?!
“끼르르륵!”
생긴 것만큼이나 괴상한 소리를 내며, 놈이 부리를 들이밀었다.
그 부리가 채 뻗기도 전에, 놈의 대가리가 목에서 분리되며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다.
이윽고 깔끔하게 잘린 목에서 붉은 피분수가 뿜어지며, 거대한 몸뚱아리가 쿵, 옆으로 쓰러졌다.
“……”
검을 손에 쥔 메린이 내 쪽으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그래, 너구나.그럴 줄 알았어.
진짜 얼어붙는 일이 없네.
아니아니아니, 지금 상황 다 끝난 것처럼 감상할 때가 아니야.
얼른 움직여야 돼!
“윽…….”
거대한 새의 몸뚱아리 옆엔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집이 있다.
방금까지 저 안에서, 촌장과 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아, 맞아. 촌장.
어쩌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라……!
폐허를 향해 달려가려는 내 팔을, 메린이 곧바로 붙잡았다.
“챙길 시간 없어! 포기해!”
“아니, 그래도……!”
“저 꼴이 났는데 살았겠냐! 언제 또 새가 떨어질지 몰라! 얼른 가야 돼!”
“그건 그렇지만……!”
나도 안다.
머리는 메린의 말이 백 번 천 번 옳다며 고개를 마구 끄덕이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
사람은 의외로 목숨이 질기다고!
허리가 동강나도 바로 안 죽는다고!
그냥 버리고 갈 순 없어……!
“책상은 방에 맨 안쪽에 있었어! 어쩌면 기절만 하고 있을지도……!”
“아니, 뒤졌어. 그러니까 가자.”
덤덤한 목소리로, 위슨이 그렇게 선고를 내렸다.
그의 옆에는 어느 새인가 잿빛 늑대가 서 있었다.
위슨의 늑대는 대지의 정령이다.
그 정체답게 땅을 비롯한 바닥을 헤엄치듯이 다닐 수 있으니, 저 폐허 안에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겠지.
……위슨은 늑대를 통해 폐허 안을 살펴본 게 틀림없었다.
“상태 읊어줘?”
“……아냐. 됐어.”
눈을 질끈 감은 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손을 쓸 새도 없이 죽어버렸다.
눈앞에서.
투웅, 속이 가라앉으며 막히려는 호흡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나는 앞을 노려보았다.
가야 돼.
“……가자!”
“워우우우~!”
늑대가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은 후, 먼저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마 신전으로 가는 길을 본 것이겠지.
우리는 녀석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전투능력이 떨어지는 나와 위슨을 중심으로, 양쪽에 로나와 블루벨이 자리해서 이따금 근처에 떨어지는 새를 해치웠다.
메린은 맨 앞을 달려가며, 가는 길에 이미 떨어져 있는 대머리 수리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뭣하면 물약 터뜨릴 거야! 계속 뛰어!”
“아니에요! 물러나세요!”
“우와악?!”
하늘을 올려다보던 로나가 급히 외치며 내 팔을 잡고 뒤로 끌었고, 나는 엉겁결에 위슨의 팔을 붙잡은 채 그대로 끌려갔다.
콰아앙!
귀청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 새가 떨어졌다!
“아직이에요!”
쾅! 콰아앙!
마치 우리를 에워싸듯이, 두 마리가 더 땅으로 떨어진 후 날선 소리를 내었다.
“끼에에엑!”
“……!”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해.
이건 우리를 노린 거야!
이제 여기서 움직이고 있는 건 우리밖에 없다는 건가?!
세 마리 중 둘은 각각 블루벨과 로나가 맡겠지.
이 한 놈은 내가 처리해야 돼!
“끼르르륵!”
“……?!”
창처럼 찔러 들어오는 놈의 부리를 옆으로 피했다.
이대로 목을 찌르면……!
“끼에엑!”
……되는데 놈이 바로 목을 틀어서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비겁한 새끼가 있나?!
그 순간, 놈의 대가리 위에서 연기가 나더니, 거대한 거북이 등딱지가 나타나 놈의 대가리를 쾅 내려찍었다.
“헛허허!”
위슨의 거북이……!
아무튼 지금이다!
재빨리 검을 들어 놈의 모가지를 힘차게 내려치자,긴 모가지가 뚝 잘리며 붉은 피가 콸콸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두 마리가 바닥에 쿵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 놈은 대가리가 뭉개져 있고, 다른 놈은 사람 팔뚝만 한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각각 철퇴와 화살의 작품인가.
저게 어떻게 되는 거야?
로나는 다시 하늘을 보며 외쳤다.
“위슨 씨, 아직 멀었어요?!”
“거의 다 왔어!”
얼만큼 남았는지 물으려던 내 눈에,쉴 새 없이 새들이 돌격하고 있는 곳이 보였다.
무언가 단단한 것에 막힌 것처럼, 새들의 돌격은 그 부리가 건물에 채 닿기도 전에 튕겨져 나가고 있다.
저기구나!
진짜 얼마 안 남았긴 한데, 지금 우리가 표적이 돼버렸잖아.
제기랄, 지금보다 더 빠르게 뛸 순 없는데……!
“카엘!”
저만치 앞에서 쾅쾅 떨어지는 새를 피하고 있던 메린이, 별안간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나를 어깨에 들쳐업었다!
“야……!”
“꾸물댈 시간 없어! 야, 엘프! 네가 위슨 데려와!”
“뭐?! 내가 왜 마녀 따위를……!”
블루벨이 역정내는 소리는 중간에 끊겨버렸다.
메린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쾅! 콰아앙!
“……!”
아으, 눈 돌아갈 거 같아……!
지상으로 돌격해오는 새들을 피하며 뛰는 탓에, 시야가 마구 빙빙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잘 오고 있을까?
지금 나는 그녀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탓에 알 수 없다.
제발 잘 오고 있어야 할 텐데……!
순식간에 모퉁이를 돌아, 검은 잔상이 마구 돌진하고 있는 건물로 향했다.
메린 녀석, 엄청 빨라……!
바람이 엄청난 기세로 얼굴을 때리고, 눈도 잘 떠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이만큼이나 빠르게 뛸 수 있었나……?!
“……!”
가늘게 뜬 시야로, 신전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새들이 부딪칠 때 보이는 은은한 빛을 보아, 신전 가까이에 있기만 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러고보니 섬에서 로나가 펼쳤던 보호막도 철퇴를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막는 형태였는데, 같은 종류인가?
……아니 그보다 우리 그냥 뛰어들어가도 되는 건가?
혹시 막혀버리는 거 아냐?!
신전을 지키는 은은한 빛이 가까워지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스사사사삭!
땅을 끄는 소리가 들린 후,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픈 건 없고, 이제 주변에서 쾅쾅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대신 머리 위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퉁퉁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
성공이구나!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땅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메린이 먼저 보였다.
“메린!”
“괘, 콜록콜록! 하아, 하아, 괜찮, 하아……!”
“됐어, 임마, 말하지 마!”
이 녀석, 설마 숨을 참고 뛴 건가?!
그녀는 얼굴을 찡그릴 대로 찡그린 채,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젠장, 나 때문이야!
날 데려오느라……!
알고 있고, 굳게 믿고 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그녀는 혼자 호흡을 안정시킬 수 있을 거라는 걸.
하지만 메린이 이렇게까지 무리한 건 순전히 나 때문이잖아.
그걸 알면서 어떻게 그냥 둬?
눈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만 있을 순 없어,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콜록콜록! 하, 하아, 하아……!”
“괜찮아, 메린. 괜찮아.”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일정한 박자로 등을 두드렸다.
그녀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뛰어대는 게 느껴졌다.
어깨 너머로 그녀가 토해내는 호흡은 너무나도 거칠고, 가쁘다.
금방이라도 뚝 끊어져버릴 것처럼.
이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녀의 호흡이 빨리 안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계속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행히 그 바램이 통했는지, 차츰차츰 그녀의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아…… 후우…….”
……됐다.
다행이야.
그러나 메린은 호흡이 진정되었는데도, 여전히 축 늘어져선 좀처럼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의식을 잃었나?!
“메린!”
“……괜찮아…… 근데…… 못 움직…이겠어…….”
……아, 그냥 힘이 빠진 거구나.
괜히 놀랐네.
깊이 안도하며, 나는 다시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이대로 좀 쉬어.”
“응…….”
그녀의 호흡 소리가 들린다.
안정되긴 했지만, 완전히 편안해지진 않고 있다.
설마 너무 무리를 해서 몸 어디가 안 좋아진 건 아니겠지?
……아냐, 메린은 나 같은 약골이 아니잖아.
기운을 다 써서 그런 거니, 쉬면 괜찮아질 거야.
괜히 올라오는 불안을 애써 억누르며, 계속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머리 위에서 울려대는 퉁퉁거리는 소리도,
그녀를 껴안고 있다는 것도,
심지어 그 모습을 다른 녀석들이 볼 거라는 사실조차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편히 쉬기를 바랄 뿐.
그 하나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미안, 나 때문에.
입 밖에 내지 못한 사죄를 중얼거리며, 가만히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