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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28화 (128/475)

〈 128화 〉 124화 : 서쪽 끝, 마지막 왕국령 (3)

* * *

가슴이 철렁이는 느낌과 함께 눈이 번쩍 뜨였다.

얼굴 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눈부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한 손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후…….”

……으, 졸아버렸네.

이틀간 제대로 잠 못 잤지, 품은 따듯하지, 햇빛 쬐면서 가만히 앉아 있지…….

어째 눈이 슬슬 감긴다 했어.

하품을 하며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천천히 눈의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곧바로 보이는 건,

엄청나게 큰 부리가 홱 날아오는 모습이었다!

투웅!

……그리고 보호막에 튕겨져 나가는 모습이기도 했다.

“하이씨, 깜짝이야…….”

“끼에에엑!”

공격이 막힌 대머리 수리가 빽 소리를 지른 후, 계속해서 부리를 박아대기 시작했다.

……보호막이 있으니 안전한 건 알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완전히 편한 건 아니다.

거리가 가까운 탓에 부리가 훅훅 들어올 때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되는데, 지금 저렇게 부리를 박아대는 놈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

퉁퉁퉁퉁퉁!

……괴상하게 생긴 대머리 수리들이 주위를 둘러싼 채, 샛노란 눈을 부라리며 마구 부리를 휘두르고, 이따금 기분 나쁜 울음소리까지 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갈 거 같아.

그 꼴을 보기 싫어서 고개를 올려도, 위쪽은 또 위쪽대로 거지 같은 상황이다.

퉁! 퉁퉁! 퉁!

“하…….”

보호막이 울리는 빈도는 땅보다는 적다.

그럼 뭐해?

끊임없이 새가 돌격하고 있는 건 똑같은데!

돌겠네, 진짜.

왜 포기를 못하는 거야?

새대가리라서 그런가?

한차례 더 한숨을 쉬고, 신전 문에 다시 몸을 기대었다.

“인간 놈들은 야박하구나.”

신전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블루벨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평소 같으면 ‘너네가 할 얘기냐’ 고 쏘아붙였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말에 절절이 동의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엘프의 말에 공식적으로 동의할 순 없으니, 그냥 입을 다물 뿐이었다.

왜냐? 신전 문이 안 열리니까.

정확하게는,신전 안에 있는 주민들이 문을 안 열어주고 있으니까!

“하…….”

어쩌다 우리가 신전 밖에서 넋 놓고 앉아 있게 된 것인가? 그 경위는 이렇다.

메린이 나를 들쳐업고 먼저 신전 문 앞에 다다른 후, 나머지 세 명도 무사히 도착했다.

그녀가 내 어깨에 턱을 걸친 채 축 늘어져 있는 걸 본 로나가 기겁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고,

위슨과 로나 둘을 한꺼번에 데리고 온 블루벨이 바닥과 한 몸이 됐긴 하지만,

특이하다 할 일은 아니었지.

문제는 그 다음이다.

로나가 히죽거리며 신전 문을 두드렸고, 응답한 주민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단칼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문 열면 보호막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당연히 사제인 로나가 괜한 걱정이라며 바로 반박하고 설득했지만, 안에 있는 놈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문 연다고 보호막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니까요?! 저도 사제에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너 같은 어린애가 사제일 리가 있나! 아무튼 사제님이 열지 말라고 하셨으니 안 돼!

­­당신들 외부인이지?! 외부인이 온 걸 보고 산신이 화가 난 게 틀림없어! 절대 안 돼!

……그렇게 여러 폭언을 던진 주민들 때문에, 나와 위슨은 냅다 보호막을 부숴버리겠다며 날뛰는 로나를 말려야 했다.

그 로나는 지금 무릎을 안은 채로 앉아서, 보호막에 튕겨져 나가는 새들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다.

“……여기 담당사제 각오……목소리 다 외웠어요…….”

“……”

속으로 가만히 성호를 그었다.

명복을 빕니다.

짤랑, 작은 방울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위슨이 나를 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일어났네요.]

“나 얼마나 잤어?”

[글쎄요? 대충 삼십 분?]

얼마 안 됐네.

그래도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도 푹 졸았던 건지, 기분은 그럭저럭 상쾌하다.

……여전히 하품은 나오긴 하지만.

위슨은 하품을 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별안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사람 얼굴 같네요. 아까 아침엔 완전 시체였는데.]

“……그렇게 안 좋았냐?”

[장난 아니었어요. 잠을 못 자고 있나봐요?]

“어…… 뭐……, 조금?”

나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피했다.

하지만 위슨의 문자 마법은 대상이 볼 때까지 알람을 울려대기 때문에, 나는 그가 또 다른 말을 띄우는 소리에 다시 시선을 향해야 했다.

[메린 씨 생각하느라 그래요?]

“…………응?”

[메린 씨 좋아하잖아요.]

“……?!”

들켰어?!

어, 어어어떻게, 아니 왜 들킨 거지?!

그 얘길 한 건 그 얼굴이 늙은 애아버지 한 명밖에 없는데!

아, 아아, 그래!

파랑새인가!

파랑새가 고자질한 거구나!

“에, 에코가……?!”

[아뇨. 그냥 형 하는 게 다 티나는 건데요. 애초에 에코는 그런 거 말 안 해요. 내가 안 물어보거든.]

“……”

이럴 수가.

티가 다 난다니.

남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위슨도 알 정도면, 로나도 다 알고 있다는 거 아냐.

차마 입 밖으로 소리를 지를 순 없어,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우아아아아!!

[게다가 그러고 있고.]

“내, 내가 뭐?!”

[자는 메린 씨를 껴안고 있잖아요.]

“……!”

완전 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니긴 하다.

메린을 앞에 앉히고, 나에게 등을 기댄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있긴 하니까.

하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다.

그녀와 가까이 있고 싶어서 그런 게 진짜 아니야!

메린이 어느새 잠에 들었길래, 얘를 어떻게 해야 좀더 편하게 잘까 궁리한 끝에 이렇게 됐을 뿐이다!

마주안은 자세로는 당연히 안 편할 거고, 그렇다고 바닥에 눕히자니 흙먼지 먹을 게 뻔하잖아.

그러니 내가 그녀의 뒤에 앉으면, 얘가 나에게 기대면서 조금이라도 누울 수 있으니까 이런 건데…….

“아, 으……!”

돌겠네!

막상 저렇게 누가 말해주니까 엄청 의식하게 되잖아!

무의식의 나, 진짜 터무니없는 짓을 잘도 저지르는구나……!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이제 와서 그녀를 놓을 수도 없었다.

“아, 아냐! 이, 이건 얘가 좀더, 푹 쉬도록……. 아니 그, 바닥에 눕히면 좀 그렇잖아!”

[문에 기대게 하면 되는 걸.]

“이런 젠장할, 그러면 됐구나. 아, 아니지, 그건 목이 아플 거 아냐.”

[그럼 모퉁이에 기대게 하면 되죠.]

망할! 그 방법이 있었나!

아, 아니야, 그것도 최상의 방법은 아니야!

“벼, 벽을 베는 건 그리 편하지 않잖아.”

[형, 그러는 중에도 허리 더 세게 끌어안고 있는 거 알아요?]

“내가 언제……?!”

아냐아냐아냐, 아니야, 안 그랬어!

진짜 안 했어!

애초에 이 녀석 재우려고 이러고 있는 건데, 그런 짓을 하면 잠 깨울 거 아냐!

으아아, 그렇다고 팔을 풀 수도 없고!

팔을 떼면 메린이 바닥에 주륵 미끄러져 내려갈 텐데!

아니, 그 전에 떼기 싫어!

따뜻하고 부드럽고 좋은 향이 나서 계속 이러고 있고 싶어!

아아아! 아냐, 그런 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 아니라니까!

이 상황에 뭔 생각하는 거야, 또 밤에 구르고 싶어?!

아니, 아까 끌어안은 시점에서 밤에 구를 건 확정된 거나 다름없지!

젠장, 망했어!!

……그리고 폭탄발언을 던진 위슨은, 배를 잡고 거의 엎드리기 직전까지 몸을 굽히며 어깨를 떨고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든 녀석은, 얼굴이 빨갛게 돼선 두 눈에 눈물까지 맺혀 있다.

한 마디로 폭소 중이었다.

소리가 안 나서 그렇지.

파랑새가 있었다면 엄청 시끄럽게 웃어댈 것 같았다.

[얼굴 빨개진 거 봐! 농담이에요, 농담!]

“……야, 임마. 어른 놀리는 거 아니다.”

이 자식, 건수 잡히기만 해봐.

영겁의 잔소리를 퍼부어주마……!

위슨은 여전히 어깨를 떨며, 한 손을 휘이 내저었다.

왠지 코웃음을 치는 것 같았다.

[네 살 차이 나면서 무슨. 그래서 형, 언제 고백할 거에요?]

“으, 그건…….”

……안 그래도 고민 중인데.

물론 위슨이 말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고백을 언제 할까가 아니라, 고백 자체를 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지.

……아니, 이대로 계속 좋아하냐 마냐……

이 고민이었나?

[뭐, 언제 하든 상관없지만, 꼭 하는 게 좋다고 봐요.]

“어…… 그래……?”

위슨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깝잖아요.모처럼 형 목소리로, 원하는 대로 전할 수 있는데.]

모처럼……

원하는 대로…….

덤덤하게 하늘을 보며 전하는 그의 말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

“……”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데다, 소리를 전해주는 놈은 맘대로 말을 비틀어버린다.

문자로는 온전히 뜻을 전할 수 있지만……

……글자에는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없다.

그런 위슨이 보기엔, 나는 되게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위슨 녀석, 말리스 근처의 신전에서도 목을 고칠 수 없다고 들었다고 했지.

기도는 받긴 했지만, 기적이 내려오길 믿으라는 애매모호한 축복의 말도 들었다고 했고.

“……너도 꼭 그렇게 될 거야.”

[그렇겠죠.]

살짝 가늘어진 눈으로, 위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도 새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내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존 거니까, 결국 저 놈들은 삼십 분도 넘게 저러고 있다는 거 아냐.

와, 새대가리들 주제에 되게 끈질기네.

우리가 밖에 나와 있어서 그런가?

그리고 메린 녀석은 이렇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무지하게 잘 자고 있었다.

얼마나 푹 잠든 건지, 뺨을 쿡쿡 찔러도 웅얼대기만 할 뿐, 깨어나진 않는다.

부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불평하듯이 뒤척이는 그녀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저 놈들 어떻게 죄다 해치울 수 없을까?”

[할 수만 있다면 저 하늘에 폭발물약 던지고 싶네요.]

“오…….”

상상해보았다.

놈들은 지금 검은 띠처럼 모여선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다.

그 비어 있는 중앙에 강한 폭발물약을 펑 터뜨리면……!

우와, 그야말로 새가 비처럼 쏟아지겠구만.

그리고 이 마을은 완전히 끝장날 거고.

뭐, 그게 아니어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전에 새들이 몇 번이나 왔는지는 몰라도, 그 흔한 술집 하나 없는데다 여기저기 무너져 있는 집이 널려 있으니 말 다했지.

오늘 습격으로 집들이 더 부숴졌고 촌장도 죽었으니, 이젠 진짜 망했다고 봐도 좋을 거다.

“하하, 화살에 달아서 블루벨이 쏘면 되겠네. 저기 안 닿겠지만.”

“닿는데.”

“……네?”

별안간 들린 딴죽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지루한 듯이 하품을 하며, 블루벨이 재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위에 빙빙 도는 놈들 말한 거 아냐? 당연히 닿지. ‘숲의 일족’의 활솜씨를 얕보지 마.”

“……진짜 닿는다고? 정말로? 거짓말 아니고?”

“아, 진짜. 닿는다니까! 보여줘?!”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느꼈는지, 블루벨은 곧바로 발끈하며 벌떡 일어섰다.

등에 매고 있던 활을 쥐어, 거기에 화살을 하나 건 후, 그녀는 그대로 보호막 바깥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어, 잠깐, 블루벨! 위험해!”

“됐으니까 하늘이나 보고 있어.”

시큰둥하게 대꾸하던 그녀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엘프 특유의 그 달리기인가!

나는 황급히 대머리 수리들이 빙빙 돌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점 하나가 띠에서 벗어나더니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곧 마을 어딘가에서 쾅 소리가 나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우와, 진짜로 닿았어!

경악하며 먼지구름을 보고 있는데, 눈 깜짝할 새에 블루벨이 다시 보호막 안에 돌아와서는 기지개를 켰다.

“봤지?”

“엘프 대단해…….”

“훗, 이제야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았구나? 알았으면 앞으로는 경외심을 품고 나를 대하도록 해. 덤으로 이 끈도 풀어주고.”

“싫어.”

그거랑 이게 뭔 상관이 있다고?

단호히 거절하자,자칭 위대한 일족인 엘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흥! 그래, 두고 봐. 우리 숲에 가면, 날 이렇게 대한 걸 후회할 테니까.”

[그럴 일 없을걸.]

위슨의 칼 같은 단언을 무시하며, 엘프는 다시 아까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번뜩이는 느낌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진짜로 죄다 날려버리자!!

나는 블루벨을 멈춰 세운 후,위슨을 돌아보았다.

“위슨, 목소리로 물약 터뜨릴 수 있다고 했지?”

[나는 손짓으로도 돼요. 물약병은 진짜 유리가 아니라 마력이니까.]

좋아, 그럼 됐어!

마지막 한 조건만 맞으면 돼!

나는 여전히 땅속을 기어다니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 로나를 불렀다.

“로나, 이 보호막, 저 새들이 다 떨어져도 버틸 수 있을까?”

“모르죠~ 안에 있는 사제의 능력에 달려 있죠~ 근데 뭐, 이렇게 튼튼한 걸 보면 괜찮지 않을까요?”

저질러볼 가치는 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저 새들이 지쳐서 물러가기를 기다릴 순 없어.

우리는 바쁜 사람들이라고.

절대로, 신전 안에 지들끼리 안전하게 모여 있는 게 심통이 나서 다 박살내고 싶은 게 아니다.

삼십 분이 넘게 방치되어 있는데도, 누구 하나 우리가 무사한 지 확인을 안 하는 게 빡쳐서, 전부 다 조져버리고 싶은 게 아닌 것이다.

나는 그저 길을 가고 싶을 뿐이야.

길을 막는 방해꾼을 치우고 싶은 거라고.

그러니,

“저질러주마, 이 우라질 놈들아! 이런 취급을 받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아?! 천벌이다, 이 거지 같은 새끼들아아!!”

[이 형 또 시작이네.]

“카엘 님, 본심이 새어나왔는데요.”

옆에서 들리는 잡음들을 무시하고, 나는 블루벨과 위슨에게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위슨의 물약을 블루벨의 화살에 묶어서 저 위에 있는 놈들에게 날리자! 화살이 새를 맞추는 순간 물약을 터뜨리는 거야!”

[폭발물약을? 잘 안 쓰니까 하나밖에 없는데요. 섬광물약이라면 좀 있지만.]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그게 더 낫겠다.”

내 계획은 저 놈들을 흩뜨리는 게 아니다.

죄다 떨구는 거지!

그러니 섬광물약으로 정신을 죄다 나가게 하는 게 훨씬 나을 거다.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새를 맞췄는지는 어떻게 알고요?]

“파랑새도 같이 걸어서 날리면 되지. 그 녀석, 멀리서도 목소리 전달할 수 있잖아.”

크기도 작으니까 그리 무겁지도 않을 거고, 화살에 걸 자리도 충분할 거다.

어차피 안 죽으니 희생하는 것도 아니고.

“블루벨이라면 그 무게까지 계산해서 저 새들 중 하나를 맞출 수 있겠지. 무려 활의 달인인 ‘숲의 일족’이잖아. 위대한 숲의 종족이 실패할 리가 없어!”

기대감을 가득 안고 블루벨을 보며 외치자,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물들더니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어, 설마 안 되는 건가?

“……블루벨?”

“무, 물론 가능하지! 내가 실패할 리가 없잖아? 난 위대하고 긍지높은 ‘숲의 일족’이라고. 깔보지 마!”

깔본 적 없는데…….

근데 얼굴은 왜 빨개진 거람?

쑥스러워하는 건가?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절대 착각하지 마! 난 얼른 숲으로 가고 싶어서 하는 거지, 너 때문에 하는 게 절대 아니니까! 이, 인간의 기대 따위, 받아봤자 하나도 안 기쁘다고!”

흠, 그렇구나.

위대하신 엘프님은 인간의 기대를 받아도 별로 좋지 않구나.

뭐, 나도 누가 기대하는 건 부담스러워서 싫긴 하다.

물론 저 엘프는 인간이 가당찮으니까 하는 소리겠지만.

“그래? 알았어. 그럼 기대 안 할 테니 편하게 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해주자, 블루벨이 갑자기 나를 노려보며 소리를 빽 질렀다.

“너 지금 장난해?! 기대해! 기대하란 말야! 두고 봐, 그딴 건방진 태도가 쏙 들어가도록 완벽하게 성공해줄 테니까!!”

“……”

왜 화를 낸대?

기대받는 거 싫다길래 그대로 해준 거구만.

나 참, 거 성질 한 번 까다롭네…….

아무튼 블루벨의 의욕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그럼 뭐, 성공하겠지.

작전 준비에 들어가자, 위슨이 손가락을 퉁겼다.

다시 나타난 파랑새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로 내 이마에 돌진했다!

“아프잖아, 임마!”

“아프라고 한 거다, 새꺄! 뭐? 날 화살에 걸어서 날리라고? 감히 위슨한테 나쁜 짓을 시켜?!”

“아니, 달리 방법이 없잖아.”

그리고 그게 나쁜 짓이면, 지난번에 날 하늘로 던져 올린 로나와 메린은 뭐가 되냐?

엄청 사악한 짓을 한 게 되잖아.

……그리고 실제로 사악한 짓이 맞지!

후…… 나쁜 자식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니, 위슨이 손수 파랑새의 다리를 붙잡아서 직접 화살에 묶고 있는 것이겠지.

파랑새는 화살에 묶이는 동안 나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대었다.

위슨은 파랑새의 옆에 물약병을 단단히 묶고, 다른 화살 두 개에도 각각 물약을 묶었다.

그렇게 화살 세 발을 준비한 후, 그는 화살들을 엘프에게 돌려주었다.

검은 띠가 만드는 원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데 하나만 날릴 수는 없지.

위력이 부족했다간, 저 놈들이 흩어지긴커녕 오히려 더 열을 낼수도 있다.

그러니 확실하게 끝장내려면, 한 번에 여러 개를 날려서 터뜨려야 할 터.

마침 블루벨은 화살 세 개를 한 번에 쏠 수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본, 메린을 향해 화살 세 개를 한꺼번에 쏘던그 솜씨를 빌리기로 했다.

“저 위까지는 거리가 있으니, 귀는 안 막아도 될 거다. 내가 알려주면 고개나 돌려.”

굉장히 시큰둥한 목소리로 파랑새가 주절주절 떠들었다.

“그리고 귀쟁이 너, 실패하기만 해. 귀먹을 줄 알아.”

“정령 주제에 누구한테 협박질이야? 흥! 날 받들어 모실 준비나 해!”

블루벨은 물약병이 걸린 화살 세 발을 활에 걸고, 다리를 풀었다.

“후우…… 간다!!”

짧은 외침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고, 우리는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머리 수리가 끼에엑 거리는 걸 보면 그 근방에서 뛰며 활을 겨누고 있겠지.

“……!”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눈에 무언가 가느다란 것이 빠른 속도로 쌔액,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게 보였다.

잠시 후, 일을 마친 블루벨이 다시 보호막 안으로 돌아왔고, 곧이어 귓가에 파랑새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이야.”

“너 너무 의욕없는 거 아니냐!”

녀석에게 항의하면서, 나는 몸을 살짝 돌리며 메린의 눈을 손으로 덮고, 눈을 질끈 감았다.

우르르릉!!

곧 하늘이 울부짖으며,

검은 멸망이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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