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126화 : 산의 옛 주인 (1)
* * *
이단이 있느냐.
마치 로나의 목소리가 핏기를 빼앗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묻자마자 밀리아 사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이단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절대 아니에요, 로나 사제님! 저와 여기 주민들은 모두 창조주만을 섬기는 백성이에요!”
“어라라, 이상하네요! 여길 덮친 새들이 산신‘님’이 보낸 거라든가, 외부인이 와서 산신이 노한 거라고 지껄이는 목소리가 있었는데요~!
혹시 제가 잘못 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아니에요! 그런 뜻은 절대 아니었어요! 하, 하지만 그럴 리가 없어요! 산신이라니, 그런 있지도 않은 존재를 믿는 사람이 있을 리가……!”
눈에 띄게 허둥대면서도, 밀리아 사제는 이단의 존재를 열심히 부정했다.
그녀가 말을 하는 동안, 로나의 금빛 눈동자는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은 채그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무언가를 한시도,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정색하며 그 얼굴을 뚫어져라 보는 로나도 그렇지만,
그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꿋꿋하게 주민들을 변호하는 밀리아 사제도 대단하다.
……얼굴은 도로 기절하는 거 아닐까 싶을 만큼 새파랗게 질려 있지만.
이내 말을 마친 그녀에게서 무언가 결과를 얻었는지, 로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주민들을 천천히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사제님은 통과됐어요. 남은 건 당신들이에요. 자, 산신에 대해 아는 분은 순순히 앞으로 나오시지요! 그 새들이 산신님이 보낸 거라고 했던 사람은 이곳에 없지만, 아까 제가 문을 두드렸을 때 산신이 노한 거라고 했던 분은 여기에 있겠죠.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럿 있을 터!”
쿠웅!
그녀가 크게 발을 굴렀다.
신전 종탑의 종을 울린 것처럼 그 소리가 묵직하게 신전 안에 울려퍼졌고, 로나의 목소리가 그 잔향에 어우러지듯 외쳐 울렸다.
“공식적으로 이단심문을 선포하기 전에 순순히 나오세요! 선포한 다음에 걸리는 분들은 전부 험한 꼴을 볼 겁니다!”
로나가 돌아볼 때마다, 행여나 그 눈을 마주칠까 다들 벌벌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
……상황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
굳이 이렇게 세게 나가야 하는 건가?
그냥 좋게 물어보면 안 되는 거야?
나는 한숨을 쉰 후, 주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는 로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로나야, 내가 웬만하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하지 마세요. 안 들을 거에요.”
내 말도 뚝 잘라버리며, 로나는 방긋 웃었다.
“죄송해요, 카엘 님! 근데 이건 무척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전투사제로서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어요!”
“아니 그건 알겠는데…… 좀 살살하면 안 돼?”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물으면, 나올 말도 쏙 들어가버리는 법이다.
기선제압을 하고 싶었던 거라면 훌륭히 목표를 달성했다고 봐야지.
주민들은 이미 눈을 마주치는 것도 무서워할 정도로 겁을 먹었으니까.
밀리아 사제도 아마 적극 협조해줄 것이니, 좀더 부드럽게 대해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을 터.
게다가 이렇게 계속 경직된 분위기로 얘기가 진행되면, 이 무시무시한 사제님은 분명 그 도구들을 꺼내게 될 것이다.
으으, 그건 반드시 막아야 돼!
로나는 내 말에 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살살…… 부위당 뼈 하나만 부러뜨릴게요!”
“하지 마, 임마!!”
앗.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안 되지, 안 돼. 아무리 그래도 사제님인데, 그냥 애처럼 너무 막 대하면 안 되지.
그러다 무심코 금기를 범해서 예절 주입기 맛을 보게 될지도 몰라.조심해야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아…… 로나 사제님, 그냥 여러 명씩 모여 앉도록 한 다음, 산신을 아는지 물어봅시다.
그래도 뭐가 안 나오면, ‘알면서 모른다고 거짓말한 사람’들을 모아서 또 물어보고요. 예? 그렇게 합시다.”
제발요.
……그 뒷말은 가까스로 삼켜버릴 수 있었다.
로나는 동그랗게 뜬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곧 환히 웃으며 고개를 신나게 끄덕였다.
“아하! 그 중에서 꿋꿋하게 거짓말하는 사람의 뼈를 부러뜨리라는 말씀이군요? 네네, 그러네요, 그게 훨씬 시간이 절약되겠어요!
역시 카엘 님! 일을 하셨던 만큼,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인지 잘 아시네요! 헤헤, 이런 데서 경험 차이가 나버리네요~”
“……”
아니, 뼈 안 부러뜨리는 방향으로 가자는 건데…….
혹시 전투사제들은 전부, 무언가를 부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는 거 아닐까?
돌멩이라도 가끔 부수지 않으면 밤에 잠이 안 온다든가……?
와, 이거 혹시라도 끝까지 거짓말을 관철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땐 나도 얘를 못 말릴 거 같은데?
아으, 그런 거 보기 싫은데……!
“그렇게 됐으니 밀리아 사제님, 협조 좀 해주셔야겠어요.”
“아, 으으, 네, 넷!”
이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밀리아 사제에게 로나가 무어라 말을 전하는 동안, 나는 다시 신전 안에 모인 사람들을 슥 둘러보았다.
다들 완전히 굳은 얼굴로 로나를 빤히 보고 있다.
이단심문이라는 거에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뼈 부러뜨릴 거라고 거리낌없이 말하는 모습에 질색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안색들이 그리 좋진 않다.
“흠…….”
뭐, 뼈 부러뜨릴 일은 없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확신했다.
웨셋의 담당사제인 밀리아 사제의 협력을 받아 주민들을 탐문한 결과, 그럭저럭 ‘산신’에 대해 알아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누구 한 사람 뼈를 부러뜨리지 않고 끝냈다는 게 큰 수확이었다.
휴, 진짜 다행이야.
로나 역시 성과가 만족스러운지, 얼굴 가득 환히 웃으며 밀리아 사제에게 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여기가 이단숭배지가 아니라서!”
웃는 얼굴 자체는 조금 전과 다르지 않지만, 말투는 확연히 달랐다.
서늘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는, 평소에 내가 듣던 활기찬 말투이다.
이곳 주민들이 ‘산신’이라는 걸 믿는 이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듯했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들이 이단이라 판정되었더라면, 로나는 슬퍼할까?
어쩌면 이들을 죄다 처단해버린 후, 지금처럼 밝게 웃으며 기뻐하는 게 아닐까?
창조주의 적을 해치웠으니까.
……지난번에 그녀 스스로, 어렸을 때부터 교단에 있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아이가 이렇게나 교단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를 벗어나는 모든 것에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는 건, 전투사제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인 걸까?
아니면 천성적으로 자비가 없는 성격인 걸까?
로나는 꼭 사제가 되었어야 했을까?
“하아……”
교단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함부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순 없다.
다만 저렇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철퇴를 휘두르고, 남의 사지를 우드득 부수고, 사람에게 냉담한 모습을 보면……
……역시 마음이 좀 무거워져.
물론 이런 소릴 로나가 들으면, 나이가 뭔 상관이냐며 역정을 낼 게 뻔하니 속으로만 담아두었다.
로나의 ‘이단 아님’ 판정을 들은 밀리아 사제는, 쌓였던 긴장을 다 풀어내듯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제단 앞에서 성호를 그어 짧게 기도한 후, 우리를 보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다행이긴 한데…… 문제가 완전히 없는 건 아니네요. 설마 그 ‘산신’ 전설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을 줄이야…….”
특히 나이 많은 사람일수록 산신이 다시 돌아왔다고 진심으로 믿는 듯했다.
그 뒤에 허둥지둥 ‘그래도 저희는 창조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덧붙였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그 산신이란 건 고대에 이 산맥에 있다 퇴치된 생물인데, 새 머리가 달리고 커다란 날개 한 쌍을 가진 네발짐승이고, 한 달 전에 부활해서 그 대머리 수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는 거죠?
……부활한 건 차치하고, 그거 그냥 그리폰 아니에요?”
“그냥 그리폰은 아니죠. 벼락을 떨어뜨리니까요. 게다가 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막아버리고.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저 길은 꼭 보호막이 쳐진 것처럼 막혀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저 길 말고 다른 데로 들어가려고 하면 벼락을 맞죠.”
재차 한숨을 쉬며, 밀리아 사제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보통 몬스터가 아닌 건 확실해요. 그 이상하게 생긴 새들도 그렇고…….”
“왜 율리아 님께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은 거죠?”
로나가 묻자, 밀리아 사제는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촌장님이 안 된다며 극구 반대를 하셨어요. 그래도 몇 차례 몰래 편지를 보내긴 했는데…… 아무 응답도 오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수도에까지 전해지지 않은 거겠죠.
산길이 막히고, 그 새들이 습격해오면서 여길 찾는 나그네분들이 없어진 탓에, 달리 전언을 부탁할 사람도 없었고요.”
소문이 참 빠르더라고요, 밀리아 사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덧붙였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데.
담당 마을이 작살나고 있는데, 촌장이란 사람이 지원 요청을 반대했다고?
대체 무엇 때문에?
“이단 의심을 사는 게 두려웠던 것 아닐까요? 밀리아 사제님이 어떻게 보고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몬스터의 습격이 있기도 하니 십중팔구 전투사제들이 왔을 테니까요.”
내 의문에 로나가 답하자, 옆에서 밀리아 사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이단척결이 주 업무라 해도, 막무가내로 사람을 이단으로 몰고 가진 않을 텐데…….
지나치게 큰 두려움이 치명적인 오판을 낳은 듯했다.
“아하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카엘 님뿐일 거에요! 카엘 님 고향엔 사제가 없었던 탓에, 저희 활약상도 못 들으셨을 테니까요.”
“그렇긴 해. 교단 사제는 다섯 보직으로 나뉘어진다는 것 정도만 들었지.”
“거봐요. 히히, 그럼 겁 많고 비위 약하신 카엘 님을 위해, 제일 순한 거 하나만 알려드릴게요.”
“……”
……나를 배려해주는 그녀의 마음씨는 고맙다.
하지만 쓸데없는 수식어는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리고 내가 겁이 많고 비위가 약한 게 아니야.
이 녀석을 포함한 다른 녀석들이 이상하게 겁이 없고 비위가 센 거지!
그때 봤던 그 여자 도둑의 시체……
어우,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거 같아……!
로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자신이 입고 있는 사제복을 가리켰다.
“이거 전투사제의 색깔이거든요? 왜 빨갈 거 같아요?”
“……눈에 잘 띄라고?”
“오~ 맞아요. 미리미리 저희를 인지하라는 뜻이에요. 신도들은 안심하고, 악마와 이단들은 각오하라는 거죠. 근데 그 이전에,”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그녀는 말을 이었다.
“피 묻어도 잘 눈에 안 띄거든요!”
“……”
“전투사제는 특성상 자주 여행을 다니거든요. 그러니 잘 씻지도 못하고, 옷 세탁은 더더욱 어렵죠.
근데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으면, 보기에 별로 안 좋잖아요? 그래서 빨간색으로 정한 거랍니다!”
“……아, 그래.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이 또 늘어나고 말았다.
……저 말이 진짜인지 농담인지는 차치하고, 어쨌든 그런 얘기가 있을 정도로 피를 많이 보는 보직인 듯했다.
멀쩡한 사제가 있는 곳에선 그런 이야기들을 수두룩하게 들을 수 있나보네.
그러니 ‘이단’이란 말만 들어도 거의 경기를 일으키려고 하지.
밀리아 자세는 나를 힐끔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를 환기시켰다.
“그러고보니 여러분은 바깥에 계속 계셨다고 했죠? 어떻게 신전 안으로 들어오신 거에요? 그 새들이 포기하고 물러간 건가요? 그러고보니 문 밖에 새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 같긴 한데…….”
“음…….”
말해야겠지?
숨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꺼냈다.
“저희가 여기 앞에 왔을 때, 주민분들이 겁을 잔뜩 드셔서 문을 안 열어주셨거든요.”
“네, 들었어요. 죄송해요, 제가 제대로 말을 전했어야 하는데…….”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밀리아 사제의 말로는, 그 대머리 수리들은 먹잇감, 즉 사람이 눈에 보이는 한 절대로 포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보이지 않도록 주민들에게 신전의 문을 닫으라고 했던 것인데, 그들이 워낙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문을 열면 새들이 들어온다’고 곡해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그 새들이 끈질기길래,”
“네.”
“다 떨어뜨렸어요.”
“네…… 네?!”
겨우 핏기가 돌아왔던 밀리아 사제의 얼굴이 다시 새파랗게 물들어버렸다.
“새, 새들을 다 떨어뜨렸다고요?!”
끄덕.
“그 하늘에 빙빙 돌던 것들을?!”
끄덕끄덕.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사제의 얼굴에서 완전히 핏기가 쏙 빠져버렸다.
얼굴에 흰 분을 바른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 채, 그녀는 황급히 우리를 지나쳐 신전 바깥으로 달려나갔고,
“꺄아아아아아악?!”
하늘을 향해 길고 긴 절규를 쏟아내며 땅에 엎드렸다.
완전히 기운이 빠져선 축 늘어진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아아, 가엾어라…….”
“뭐, 이런 시대이니 어쩔 수 없죠.”
너네 짓이잖아, 마음속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듯한 핀잔을 무시하며,
나는 열심히 지켜온 마을을 잃은 사제의 뒷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보면서 성호를 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