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128화 : 산의 옛 주인 (3)
* * *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버린 후, 나는 찬찬히 상황을 정리했다.
하나, 산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보호막에 막혀 있다.이건 돌멩이 던져봤으니 확실하다.
둘, 그 길 외에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벼락이 떨어진다.
셋, 엘프인 블루벨은 벼락을 맞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그 산신이라는 놈은 엘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며,
새대가리 몬스터는 역시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 되고,
“……그리고 이건 계략이라는 거야. 그냥 틀어박힌 게 아니라.”
계략.
단순히 영역 표시를 하려는 게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
내 말에, 네 사람의 눈이 살짝 커지며 일제히 막힌 길을 돌아보았다.
그 중에서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 것은 메린이었다.
“계략……. 그렇겠네.”
“네? 저게요? 으으응…… 아, 아아~ 그렇군요. 엘프가 엮여 있다면야, 계략이 확실하겠네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던 로나도, 길을 조금 더 노려보더니 제자리에서 폴짝 뛰며 까르르 웃었다.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고,
“계략이라니 뭔 소리야? 여기에 우리 일족은 또 왜 끼고?”
우리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을 터인 엘프, 블루벨만 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는 다 오래 사니까 현명한 거 아니었나?
아니면 이 사람만 좀… 부족한 걸까?
나는 뚱한 눈으로 블루벨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당신, 사냥은……안 해봤겠네. 통발 낚시는 해봤지?”
“하, 진짜 내가 몇 번을 말해? ‘숲의 일족’은,”
“그거 물고기까지 포함이야?! 아니 댁은 숲에서 맨날 버섯이랑 풀만 뜯어먹고 살았어?! 하, 돌겠네, 진짜.”
어이씨, 그럼 하나하나 다 짚어줘야 되잖아.
한숨을 쉰 후, 주변에 굴러다니는 검은 깃털덩어리에서 큰 깃털을 하나 뽑아, 근처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대로 바닥에 선을 하나 긋고, 조금 거리를 벌려서 또 선을 하나 그었다.
역시 바닥이 축축해서 잘 그려지네.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자, 봐. 이 선 위쪽이 산이고, 아래쪽이 마을이라 쳐. 이 가운데 빈 곳은 보호막 쳐진 길이고.”
두 선 사이의 빈 공간에 대강 물결을 그렸다.
“아까 봤듯이, 이 가운데로 안 가고 다른 데로 가면 벼락맞아. 만약 댁이 산에 올라가고 싶으면 어쩔 거야?”
블루벨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엉? 그냥 올라가지. 난 아무 문제없잖아.”
“……”
……아니야, 참아.있을 수 있어!
말을 해야 가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음음, 그렇고 말고!
“만약에 댁한테도 벼락이 떨어지고 이걸 피할 수 없다면?”
“왜 사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해야 돼?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
아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아……!
이 귀쟁이, 생각하는 게 왜 이 모양이지?!
‘만약에 내가 이러이러하다면~’ 은어린애도 할 수 있는 가정인데!
이게……
이게 귀쟁이의 사고방식이란 말인가……?
아니야. 아닐 거야.
몇 백 년을 산다는 종족이 죄다 이딴 사고방식일 리가 없어……!
이마를 짚으며, 옆에 서 있는 메린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고맙다……. 넌 진짜 훌륭한 학생이었어.”
“엉? 갑자기 뭔 소리냐?”
“아무것도 아냐…….”
하아……
그래, 가정이 전혀 안 된다 이거지?
대상을 바꿔야겠구만.
“좋아. 그럼 내가 산에 올라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 거 같아?”
“보호막 부숴야지.”
“이런 씨, 바로 대답 튀어나오네?! 하……그래, 맞아. 보호막을 부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저걸 부수려면 로나나 위슨처럼 특별한 힘이 필요해. 일반인은 아무리 용을 써도 흠집 하나 내지 못할 거야.
자, 여기서 문제. 드워프 물건이 엄청 귀해서 가치가 높다고 해도, 일반인이 굳이 이 길을 뚫으면서까지 산에 올라가려 할까? 보호막을 설치한 놈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블루벨은 얼굴을 찡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후, 마침내 입을 열고 대답했다.
“안 가겠지. 목숨이 아까우니까.”
“틀렸어. 올라갈 거야.”
“뭐? 아니, 말이 돼? 그 땅딸보들 물건 때문에 목숨을 건다고? 바보 아냐?!”
“일반 농민은 안 가지. 하지만상인은 달라.”
상인은 이득을 좇는 자들이다.
드워프와의 거래가 목숨을 걸 정도로 이득이 크다고 판단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이 길을 뚫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쓸 터.
지금도 도적과 몬스터가 횡행하는 그 ‘불구덩이’ 아래쪽 길을 다니고 있는데, 이까짓 길을 못 뚫을까?
그런데도 길이 막혀 있다는 건, 드워프와의 거래가 그렇게 큰 가치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길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걸 거야.”
“아마 그렇겠죠. 설령 저 보호막을 뚫는다고 해도, 산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요.”
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거들자, 엘프는 눈썹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보호막이 뚫렸는데 왜 못 가?”
“새들이 있잖아. 대머리 수리들.”
사람 하나는 그냥 삼켜버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새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달려드는 것이다.
아무리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더라도, 절대로 피하지 못하겠지.
“아, 하긴, 너희 인간들은 못 당하겠구나. 가엾게도.”
“……그래. 일반 인간은 이곳을 절대로 지나가지 못해. 그럼 왜 이딴 짓을 했을까? 영역 표시?
아니, 보호막만 뚫으면 갈 수 있는 길을 남겨둔 시점에서 그건 절대 아니야.”
일반인은 뚫고 지나갈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은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즉, 놈은 그 특별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보호막은 그 특별한 사람이 찾아왔다는 알람에 지나지 않겠지.
“특별한 사람?”
“보호막을 부술 사람을 데리고 오면서까지, 반드시 산을 올라가야 하는 사람.”
산맥 너머에 있는 것은 드워프와 엘프, 이 두 종족뿐.
거래 이외에 그들을 찾아갈 사람은, 이 시대에 단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놈은 용사를 노리고 있어.”
즉, 나를 노리고 있다.
……그 사실을 새삼 인식하는 순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왜 엘프가 여기 끼어 있는 건지는 말 안 해도 되겠지?”
“……”
블루벨은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아마 스스로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는 거겠지.
그녀 자신이 몸소 알려준 거나 다름없으니까.
엘프가 산신 놈과 협력하고 있을 거라는 근거는 간단하다.
블루벨은 벼락을 안 맞았고, 엘프들은 용사를 죽이고 싶어하니까.
굳이 그렇게 티 나게 설정한 이유도 대강 짐작이 간다.
엘프는 계속 산 너머로,애들을 사러 말리스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야, 카엘, 애들은 어떻게 산을 통과한 거냐?”
“나도 모르지. 잠깐만 그 벼락을 맞지 않도록 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대여섯 살짜리 인간은 아예 대상 외로 해놨을지도 몰라.”
뭐,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아무튼 놈들이 이런 짓을 한 건, 오직 용사를 죽이기 위해서이다.
그 미친놈들이, 고작 나 하나 잡겠다고 마을 하나를 멸망으로 이끈 거다.
……나 때문에…….
“……”
……아니야. 내가 책임을 느낄 부분이 아니야.
내가 되고 싶어서 용사가 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엘프들은 용사를 도와야지, 죽이려 들면 안 된다고.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건, 내 사고방식이 글러먹어서 그런 거겠지.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서 어쩔 거냐?”
“어쩌긴.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올라가야지.”
덤덤히 묻는 메린에게 시큰둥한 말투로 대답해주었다.
어차피 놈은 우리……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대머리 수리들을 죄다 잃는 것도 감안했는지는 모르지만, 뭐, 하루 쉬었다 가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
그리고 블루벨은 내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용사를 죽이려는 함정이라며? 네가 굳이 거기에 왜 뛰어들어?! 차라리 용사를 불러오는 게 낫지!”
그거 전데요.
……라고 할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다.
“바빠. 후딱 해치울 거야.”
“너 모험가잖아! 네가 바쁠 게 뭐가 있다고?!”
“왜 없어? 애들이 걸려 있는데. 댁이 믿든 안 믿든, 애들은 댁 고향에 있어. 이건 확실해. 그러니 낭비할 시간 없어.”
딱 잘라 대답하자, 갑자기 블루벨이 나를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충격을 받은 사람의 얼굴인데……
동족이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사실에 놀란 듯했다.
뭐, 그럴 만도 해.
난 어렸을 때, 애들이 다 큰 고블린이랑 술래잡기하는 거 보고 충격 먹었는걸.
하하, 진짜 우리 마을 미친 거 아니야?
나중엔 리자드맨 붙잡아서 낚시시키겠어.
“……”
순간 소름이 돋았다.
왠지 진짜 할 거 같아……!
아니, 이미 시험하고 있는 거 아냐?
……인간의 적응력은 무시무시할 만큼 높으며, 그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한 법이다.
제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는데.
“으으응…… 카엘 님, 역시 저는 그냥 오늘 올라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턱을 괸 채로, 로나는 가만히 말을 이었다.
“카엘 님 말씀대로, 저건 용사를 노린 거겠죠. 하지만 저 새들까지 싹 쓸어버릴 거라고도 예상했을까요? 저희도 처음엔 신전으로 피하려 했잖아요.”
“그래, 카엘. 로나 말이 맞아.”
이번에는 팔짱을 낀 메린이 그녀를 거들며 말을 꺼냈다.
“저 새들이 그 산신이란 놈의 전체 전력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큰 손실일 거야. 어쩌면 새들을 뭘로 없앴는지도 파악 못하고 있을지도 몰라.
제일 좋은 건 새들을 해치우자마자 들어가는 거겠지만, 뭐, 지금도 좋은 때일 거야. 들어가자.”
“……너 괜찮겠어? 아직 피곤하잖아. 저 위에 올라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더니 뚱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새꺄, 네 걱정이나 해. 지금도 다 뒤져가는 상판인 놈이, 하, 기가 막혀서…….”
“……아, 네. 죄송합니다.”
큭!
이틀간 번뇌에 시달리지만 않았어도 떳떳하게 받아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기껏 걱정해서 한 말인데, 저렇게까지 쏘아붙일 건 없잖아.
쳇, 박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리고 난 괜찮아. 조금 피곤하긴 해도 아무 문제없어. 아까 엄청 푹 잤거든. 역시 너랑 같이 있을 때 제일 잘 자나 봐.”
“……아, 그래. 잘됐네. 응.”
……사람 마음 들었다 놨다 하고 말야.
쓸데없이 저딴 재주는 어디서 배워 가지고.
하아……
저 말 들었다고 바로 마음이 풀어지다 못해 약간 밝아지는 걸 보면, 내가 진짜 쟤를 좋아하나보다.
아니, 이건 전부터 그랬나?
전부터……
그러고보니 나, 언제부터 그랬던 거지……?
툭툭.
갑자기 들이닥친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위슨이 내 팔을 두드려서 깨어나고 말았다.
“결정해, 결정. 지금 들어갈 거야?”
“아.”
맞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하아…… 집중하자, 집중.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 있는 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메린과 로나 말처럼, 놈이 대머리 수리들을 다 잃은 게 큰 타격이라면,
그리고 놈이 그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래, 그냥 밀고 나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어쩌면 보호막까지 오늘내로 부수고 들어올 것도 예상 못했을 수도 있어.
……물론 일을 꾸민 건 엘프이니, 우리의 이 행동들을 전부 예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 읽기 싸움은 잘 못하는데 다행이지.
어차피 우리에겐, 아니 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리고 산에 올라가자마자 놈들과 맞닥뜨리진 않을 테니, 처음 계획대로 산에서 밤을 보내자.
놈들이 다른 방비를 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야지.
눈을 뜨고, 나는 네 사람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올라가자. 지금 바로.”
“네! 그럼 당장 시작할게요!”
로나가 보호막이 쳐져 있는 길로 가서 이리저리 살피는 동안, 나는 열심히 주민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밀리아 사제에게 다가갔다.
“거기! 이불은 왜 챙겨! 귀중품만 챙기라니까! 마누라 끌어안고 잘 틈이 있을 거 같아?!
……아, 카엘 님. 이야기는 나누셨나요?”
“……”
방금 전까지 주민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밀리아 사제는, 나를 보자마자 부드럽게 웃으며 다소곳이 섰다.
와, 태도 바꾸는 거 되게 빠르네. 적응이 안 돼!
이래서 그 도련님이 기겁을 한 건가?
근데 난 이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얼이 빠진 나 자신에게 일갈하듯이 헛기침을 한 후, 말을 꺼냈다.
“사제님, 저희는 저 길을 뚫고 산에 들어갈 겁니다. 행여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한동안은 신전을 떠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신가요……. 알겠습니다. 그럼 염치없지만, 산 위의 부락들도 살펴봐주시겠어요?”
부락들…….
하긴, 산맥 입구가 이 꼴이 됐으니, 산 위에 있는 다른 작은 마을들과 연락이 끊겼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어차피 가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무언가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교단 사제로서 요, 아니 카엘 님을 돕는 건 의무이니, 편히 말씀하세요.”
“……”
밀리아 사제의 뒤편엔 주민들이 시커먼 새의 시체를 치우거나, 폐허가 된 집을 뒤적거리고 있다.
이런 처참한 상황 앞에서 뭐가 필요하다고 어떻게 말해?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식량이랑 비상용품 등등, 물자 넉넉해서 진짜 다행이야!
아니, 오히려 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가야 할 판인데?
그러나 사제는 내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도움을 받다니 당치도 않아요! 물론 식량이 그리 많지 않긴 하지만, 그건 저희에게 내린 창조주의 시련이에요. 훌륭히 이겨낼 테니, 저희는 염려하지 마세요!”
“……”
아니, 그럴 거면 식량 별로 없다는 얘긴 왜 하는데?
좀 나눠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하…… 들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
나는 사제를 데리고 일행들에게 돌아갔다.
“야, 식량 좀 나눠드리자.”
“……뭐야?”
역시나, 메린이 곧바로 인상을 팍 쓰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켠 후, 단숨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을 상태가 저 꼴이잖아. 사냥을 하려고 해도 산에 올라갈 수도 없고. 우리가 길을 연다고 해도 위험하니 올라갔다간 괜히 죽을지도 몰라. 저 새들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우리 식량 넉넉하다 못해 차고 넘치잖아. 나눠줘도 아무 문제없어. 응? 그러니까 좀 나눠주자.”
타당한 이유는 다 댄 것 같은데, 메린의 눈초리는 여전히 따갑다.
으윽, 이걸로는 납득이 안 되는 건가?
……아, 설마 ‘그래서 왜 우리가 도와야 되냐’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제길, 그건 너무 지나치게 근본적이라서 이 녀석과 말다툼하게 될 텐데!
으으으, 할 수 없나……!
“……알았어. 산에서 뭐 잡거든, 고기 줄어든 건 그걸로 채워. 벌레 빼고.”
“사제님, 포대자루 있어요?”
“하아아아아…….”
제발 몬스터든 짐승이든, 아무것도 만나지 마라…….
얼굴을 감싸며 간절히 바랐다.
밀리아 사제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얼굴로 꾸벅 인사하는 걸 본 후, 우리는 길 앞에서 철퇴를 든 채 대기하고 있는 로나에게 돌아갔다.
“준비 다 되셨죠?”
“어. ……작업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히히, 확인해보니 한 방에 끝낼 수 있겠더라고요. 교단 사제의 보호막도 아닌데, 이까짓 거 부수는 건 힘도 안 들죠! 그럼, 바로 갈게요!”
고개를 끄덕이자, 부수는 데에 전문인 전투사제님이 해맑게 웃는 얼굴로 철퇴를 머리 위에서 빙빙 돌렸다.
“얍.”
……정말 긴장감 하나 없는 기합이군.
로나는 무슨 이불 털듯이, 힘 하나 들어가지 않은 움직임으로 철퇴를 휘둘렀다.
그렇게 육중한 쇳덩어리가 공중을 가르는 순간,
파사삭!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빛으로 된 막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라져 버렸다!
아니, 이거 너무 간단히 부숴진 거 아냐?
“……진작에 부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전투사제가 있었다면 그랬겠죠! 자~ 가요!”
로나가 먼저 자신의 말을 끌며 척척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며,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회색의 산등성이 슬쩍 엿보이는 하늘엔, 오직 흰 구름만이 떠갈 뿐.
그 어떤 수상한 낌새도, 불길한 느낌도 없다.
산인가…….
그러고보니, 산은 날씨가 자주 바뀐다고 했던가?
지금 여름이니까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뭐 그 정도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생 처음으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