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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41화 (141/475)

〈 141화 〉 137화 : 산맥 너머로 (1)

* * *

위슨이 준비한 저녁 메뉴는 무언가 기묘한 향이 나는 고기수프와, 버터에 볶은 채소들, 그리고 치즈토스트였다.

고기수프에 들어간 고기와 허브 빼고, 나머지는 죄다 이 오두막의 창고에 있던 재료였다.

그래, 허브는 네가 갖고 있던 거 썼다 이거지?

“그렇구나. 그냥 묻는 건데, 위슨, 이거 수프 맞지?”

“……”

“……수프 맞지?”

녀석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음, 앞으로 위슨이 당번을 맡을 때는 솥을 압수해야겠군.

아무리 몸에 좋아도 물약에 건더기 말아먹긴 싫다.

“약 주면 잘 처먹든가.”

“‘따로 약으로 주면 잘 안 먹잖아요.’이겠지. 축생 새끼, 진짜 돌겠네.

아무튼, 위슨, 임마. 내가 괜히 그러냐? 맨날 조제법이 바뀌니까 그런 거 아니야. 너 같으면 벌컥벌컥 마실 수 있겠냐?”

대용품이 없으니까 결국 먹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두세 마디 잔소리를 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전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니 정말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같은 효능을 보려고 만든 약인데, 왜 매번 만들 때마다 재료나 배합률이 다르냐고.

“당장 가진 재료들로 만드는 건데 어쩌라고. 그리고 여러 대용법을 만들어두는 게 좋잖아.”

“세상에 대용법이 열 몇 개인 제조법이 어디 있냐, 임마! 두세 개로 줄여. 응? 제발 부탁이다.”

“쳇.”

뚱한 눈으로 혀를 차는 녀석에게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어준 후, 나는 녀석과 로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너희 둘, 여기 어떻게 찾아왔어?”

“아, 그거요.”

로나는 토스트를 우물거리며 위슨을 힐끗 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나를 보며 대답했다.

“정령한테 물어서. …………아, 알았어. 더럽게 귀찮네.

테라가 잠들기 전에 너네 둘을 내려놓은 걸 위슨이 봤어. 근데 보면 뭐하냐,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데.

그래서 바람과 땅에게 계속 물었지. 얼빵하게 생긴 놈이랑,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인간 못 봤냐고.”

그딴 질문으로 우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아니 돌겠네, 왜 다들 내 얼굴 가지고 지랄이야?

내가 생긴 게 뭐 어때서!

솔직히 못생긴 건 아니잖아?!

“누가 못생겼댔냐? 얼빵하게 생겼댔지. 솔직히 내 눈엔 인간 놈들 다 똑같이 생겼거든? 근데 넌 유독 얼빵하게 생겼어. 진짜 구분이 될 정도로.”

“이런 썩을.”

“아무튼 그렇게 물어보면서 내려오는데, 바람이 알려주더라.어느 오두막 마당에, 움찔움찔 움직이면서 괴성을 지르는 포대자루가 있다고. 너네 짓일 거 같아서 찾아왔지.”

“……”

본의 아니게 메린이 표식을 만든 게 되어버렸다.

근데 그딴 걸로 우릴 찾았다니, 이거 솔직하게 감탄할 수가 없는걸?

젠장할, 누가 들으면 강도단인 줄 알겠네.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는 걸 참으며, 나는 방금 전에 들은 말 중 신경 쓰이는 부분을 물어보았다.

“근데 테라가 잠들었다니?”

“너네 구하느라 힘 다 썼거든. 한동안은 자면서 마력 모을 거야. 걔 깨어나면 고맙다고 해라.”

당연히 그럴 생각이긴 한데, 뭐지?

뭔가 더 있는 분위기야.

위슨은 재차 어깨를 으쓱인 후, 굉장히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테라를 꺼낸 건 위슨이 아니야.지 혼자 나간 거지.”

“……뭐?”

“갑자기 뛰쳐나가더라. 놀라서 보니까 그 귀쟁이 년이 엎어져 있고, 너네 둘은 안 보이더라고. 위슨이 테라 녀석의 눈을 연결한 뒤에 뭔 상황인지 알았어.

이야, 꼴에 용사라고 인간 말고도 정령을 다 꼬시, 아야!”

쓸데없이 나불대는 파랑새를, 위슨이 확 후려쳐버렸다.

평소 같으면 그걸 보며 후련해했을 텐데, 지금은 파랑새 녀석이 굴러다니든 뭘 하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위슨이 불렀던 게 아니라, 늑대 스스로 나를 구하려고 나왔던 거라고?

그리고 그 대가로 힘을 다 써서 한동안 밖에 못 나온다고?

……내가 그렇게까지 그 늑대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일을 했던가?

밖에 나와있으면 같이 놀거나 껴안고 졸았던 거 밖에 없는데.

아, 그래, 가끔 쓰다듬기도 했지.

근데 그게 다다.

그런데도 왠지 나를 되게 친근하게 대하길래, 난 그냥 그녀가 유독 친화력이 좋은 성격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아니었어.

설마 그렇게까지 날 따르고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고보니 말리스에서 한 난리 피웠을 때도,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타나서 볼트를 막아줬었지.

……세상에.

이 호의를 뭘 어떻게 해야 갚을 수 있는 거야?

“……보답을 뭘로 해야 돼? 먹을 걸로 상을 주는 건 영 아닌 거 같은데.”

아무리 짐승의 성질을 가진다 해도, 어쨌든 본판은 정령이다.

먹을 걸 주는 건 진짜 개 취급하는 거니 오히려 화내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냥 말로만 하는 건 부족할 테고…….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나를 향해, 위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그냥 너 하던 대로 해. 걔는 그걸로 만족할 거다.우린원래 그런 놈들이야.”

“그래?”

“우린 물질에 관심 없어. 그 안에 품은 것에만 동하지.”

질 좋은 고기이든 썩은 고기이든 상관없이, 그 안에 애정이 담겨 있다면 기쁨을, 미움이 있다면 슬픔을 느낀다.

인간을 위시한 물질적 존재와는 달리, 영적 존재인 정령은 그 감정들에 직접 닿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

설사 사무적으로 ‘고맙다’고 할지라도, 정령에겐 그 어떤 감미로운 향신료보다 더 향기롭고 달콤한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로도 충분하다.

위슨은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역시 희한한 놈이야. 계약자도 아닌데 정령을 이렇게 푹 빠지게 하다니.”

“비슷한 느낌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카엘 님 보면, 왠지 커다란 개가 떠오르잖아요.”

“……”

저거 그냥 말 그대로의 의미겠지?

다른 의미로 개 같다는 소리인 건 아니겠지?

“하긴 누구 볼 때마다 헤벌쭉하긴 해.”

“꼬리 달려 있었다면 막 흔들었지 않을까요?”

“……조용히 밥이나 먹으렴, 어린 놈의 자식들아.”

퉁명스럽게 쏘아주었다.

떠들썩한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테이블에 모여 앉아 현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위슨이 저녁 준비를 하고, 나와 메린 둘이 곯아떨어져 있는 동안, 로나 혼자서 오두막을 싹 다 돌아본 듯했다.

“우선, 여기는 일반 가정집이 아니라‘대피소’에요.”

“대피소?”

“네. 밖에 팻말 적혀있었어요.”

산에 왜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긴 그 고자 만들 새끼의 개인 집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 숙박할 걸 염두에 둔 듯이, 별채에 따로 숙소까지 마련되어 있는 엄연한 공공시설이다.

아마 붕대와 물약, 약초, 연고 등이 구비되어 있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래서 여기, 이렇게 지도도 있었는데요……,”

로나가 테이블에 펼친 지도에 따르면, 이 산에는 작은 부락이 네 군데 만들어져 있다.

그 부락들을 쭉 따라가면 서쪽 산맥을 넘어가게 되는데, 우리가 있는 대피소는 웨셋과 첫번째 부락, 그 중간에 있었다.

“부락과 부락 중간마다 이런 대피소가 있는데, 여기서 첫번째 부락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요.”

“뭐, 일주일 걸리진 않겠지. 길어봤자 이틀이지 않을까?”

물품을 많이 싣고 다니는 상단이라면, 빨리빨리 걸을 수 없을 테니 사나흘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말을 끌고 있긴 해도 짐이 가벼운 편이니, 하루이틀이면 충분하겠지.

여기서 그럼……

대략 보름 잡아야 되는 건가.

중간에 전투가 있거나 날씨가 삐끗하면 좀더 걸릴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뭐, 한 달이나 걸리진 않겠지.

“부락들 다 들르는 거지?”

지도를 뚫어져라 보며 메린이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어. 밀리아 사제님이 부탁하기도 했고, 정비도 해야 되니까.”

“정비? 못한다고 봐야지.”

태연하게 단언하는 모습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빤히 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녀는 나를 힐끔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폰한테 먹혔을 거 아냐.”

“……아.”

……맞다, 그 또라이 백발 미친 귀쟁이 새끼가 있었지.

놈이 이 산에 온 건 한 달 전이니, 그동안 이 산에 있는 인간들을 제물로 바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산 바로 아래에 있던 웨셋에도 생존자가 많았잖아. 여기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 새끼도 멀쩡하니, 부락민들도 다 죽진 않았을 거야.”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미리 각오해둬.”

“……”

사람 하나 남아있지 않은, 황폐한 폐허를 볼 각오를 하라.

메린은 덤덤한 눈으로 나를 빤히 보며 그렇게 말했다.

“……왜? 내가 충격에 기절이라도 할 거 같냐?”

“아니면 토하거나.”

“너 날 너무 물렁한 놈으로 보는 거 아니냐?”

“물렁하잖아. 요전에 그 도시에서도 토했고.”

그녀의 말에, 다른 두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고 있다.

정말 환장하겠군.

“……저기, 내가 그땐 별말 안 했는데 말야. 이 자식들아,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는 사람은 너희 셋 밖에 없어! 그리고 그때 끝까지 안 토했거든?!”

아니, 어떻게 내장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체를 보고 구역질은커녕 눈 하나 깜짝을 안 해?!

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희한하네.

메린은 어쨌든, 여기 이 미성년자 둘은 왜 태연했던 거지?

대체 그간 뭘 보고, 뭘 하면서 살았길래?

“저희요? 수련 과정 중에 오크랑 고블린 해부하는데요. 인간이랑 신체 구조가 비슷하거든요.

……네? 왜 그딴 걸 하냐고요? 에이, 카엘 님도 참! 몸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야 안 죽도록 조절할 수 있죠!”

“위슨? 재료수급 때문에 해부하고 다녔는데. ……몇 살 때부터 했냐고? 글쎄? 대충 예닐곱?”

“……”

이래서 생활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근데 이렇게 보니, 이따금 도축만 했을 뿐인데 사람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 메린의 위상이 더 높아지는군.

……후우, 무서운 자식.

“야, 네가 비위가 약한 거야, 임마. 도축에 요리까지 하는 놈이 내장을 못 보는 게 말이 되냐? 어휴…….”

“메린, 너도 알잖아. 내가 유리 같은 감성인 거. 짐승 시체랑 사람 시체를 같게 볼 수가 없단다. 내 성격이 세심한 걸 어쩌겠니.”

“지랄하네, 그냥 쫄보인 거지.”

“……”

진짜 아닌데!

일반인은 진짜 짐승이랑 사람이랑 같이 볼 수 없어서 그런 건데!

근데 이딴 거 말해봤자 안 통하잖아!

젠장, 억울해!!

……아무튼 길은 결정되었다.

이제 남은 건 블루벨을 어떻게 끌고 다닐 것인가, 인데…….

“손발 잘라.”

“밤마다 팔다리 부숴놓는 건 어떨까요? 아침에 다시 고치고요.”

“약에 절어버릴까? 자백제 재료를 좀 조절하면, 널 주인님이라 부르게 할 수도 있을걸?”

“……”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제안들을 하고 있었다.

특히 위슨 이 녀석, 주인님이라니 뭐야, 그거?!

이야, 마녀들 틈에서 자란 거 어디 안 가는구나!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던지고 있어!

그 정신 아득해지는 모습에 한숨을 쉰 후, 나는 옆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렇다는데, 뭐가 낫냐? 참고로 나는 널 밧줄로 묶은 다음, 말꼬리에 묶고 끌고 갈까 싶은데.”

“지금 그걸 나보고 직접 고르라는 거야? 이거 미친 새끼들 아냐.”

손발이 꽁꽁 묶인 채, 블루벨은 굉장히 짧고 인상적인 감상을 남겼다.

그런 그녀의 팔다리는 지금 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다.

로나가 말했던 것처럼 분질러놓은 탓이겠지.

통증이 상당할 텐데, 그녀의 얼굴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우리 넷을 하나하나 보면서, 기가 차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그 얼굴을 향해,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귀부터 접을 걸 그랬어. 귀가 여전히 뾰족하니까 성질이 안 죽지.

하하, 위대한 엘프님,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인 줄 모르세요? 아니면 내가 그간 너무 잘해줘서 우습게 보이나?”

“왜? 자비를 구하면 베풀어주려고? 아니잖아? 뭐 하러 저자세를 취해야 되지?”

“말을 잘하면 안장에 묶여가는 걸로 끝날 수 있거든.”

그렇게 말하자, 여전히 콧대가 살아있는 엘프님은 크게 코웃음친 후,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위선 떨지 말고 그냥 죽여. 안 그러면 내가 네놈을 반드시 죽일 거거든.

그 높이에서 떨어지고 어떻게 산 건지는 몰라도, 그런 행운이 계속될 거 같아?”

“하하, 행운이긴 해. 나 같은 놈을 지켜주는 존재가 넷이나 되니까. 세상에 이런 행운이 또 어디 있겠냐?”

메린, 로나, 위슨, 그리고 위슨의 정령인 늑대, 테라.

이중에 셋은 사명이 아니었다면 만날 일이 없었겠지.

대재앙이 터진 건 굉장히 끔찍하지만, 나 자신과 메린, 우리 둘에겐 그다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아졌다고 할 수 있지.

……절대로 입 밖으로 말할 수 없지만.

블루벨은 실실 웃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내가 못할 거 같아? 그래, 지금 실컷 웃어둬라, 용사. 내가 반드시 네놈의 목을……!”

“블루벨, 일부러 내 화 돋우려고 지랄하는 거면 포기해. 나는 있지, 말 듣고 욱해서 누구 죽이는 놈이 아니거든.”

“그래, 죽이진 않지. 발로 차긴 하지만.”

“어허, 떽! 위슨 이 녀석, 어른들 말씀하시는 데에 끼어들지 말거라.”

질색해하는 기색이 옆 얼굴에 마구마구 꽂혔다.

훗, 그런 반응을 보이면 더더욱 의욕이 솟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그 귀족 도련님…이 아니라 아버님도 그렇고, 참 놀리기 좋다니까.

“자, 내가 질문 딱 하나만 할 거야. 솔직히 대답해.”

“싫으면 어쩔 건데? 죽일래? 바라는 바야.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자비를 받느니 명예로운 ‘숲의 일족’으로서 죽는 게 낫지!”

“왜 자꾸 죽이래? 그렇게 죽고 싶어? 근데 난 죽일 생각 없는데 어쩌냐? 저번에 말한 것처럼 우린 널 끌고 엘프들을 찾아가야 되거든. 그 대신,”

나는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스윽,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협조 안 하면 굉장히 힘든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어.”

“뭐 하려고? 나 겁탈이라도 할 거니? 푸하핫! 네가 잘도 저지르겠다! 바로 옆에 있는 년 건드릴 배짱도 없는 놈이.

흥!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봐!

네가 아무리 내 몸을 멋대로 취급한다 해도, 내 정신은 절대 꺾을 수 없을걸!!”

“……”

……엥? 갑자기 웬 겁탈?

170년간 숲에 틀어박혀 살아서 그런가, 되게 뜬금없네.

난 그냥 눈 뽑고 귀를 둥글게 예쁘게 잘라줄까 했는데.

아, 설마 이 엘프, 그런 취향인 건가?

그래, 맞아.

아까부터 자꾸 죽이라고 하질 않나, 일부러 계속 욕하질 않나……

이거 지금 일부러 당하고 싶어서 도발하는 거야, 분명해!

세상에, 엘프들은 죄다 이상성욕자인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제 욕구를 해소하려고 들어?!

우와, 나 지금 진짜 소름돋았어!

“……음, 저기, 미안. 난 겁탈 같은 거 못해. 아마 네 옆에 있던 돼지새끼는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뭐,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그 돼지새끼한테 부탁해볼게.”

“무, 뭐?!”

어쩐지 경악에 찬 표정을 짓는 블루벨에게,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블루벨, 왜 나 안 죽였어?”

“……”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는 그녀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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