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139화 : 산맥 너머로 (3)
* * *
산을 탄 지도 이제 사흘째가 되어 가는데, 정말이지 참 신기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멀리서 봤을 때는 꼭대기까지 그냥 한없이 올라가기만 할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길을 걷는 중간중간에 보이는 색깔리본, 팻말 등을 따라 나선식으로 되어 있는 비탈길을 올라가고, 내리막길을 가다가 평지를 걷는다.
때로는 벼랑과 벼랑을 이은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작은 숲을 지나기도 하며, 뜬금없이 나 있는 개울을 건넌다.
그렇게 걷다가 간혹 뒤를 돌아보면 놀라게 된다. 세상에, 내가 언제 이렇게나 올라왔대? 하고.
풍경은 또 어떤가?
탁 트인 벼랑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하늘 아래에 나무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꼭 푸른빛 융단처럼 쫙 깔려 있는 게, 그 위에 드러누울 수 있을 것 같다.
뭐, 실상은 그냥 떨어져 죽겠지만.
그리고 저만치 먼 곳에는 하늘을 향해 뾰족한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주변에는 구름이 몇 조각 떠다니고 있다.
흠, 저기선 구름을 만질 수 있나?
봉우리 꼭대기에 서서 손을 뻗으면, 하늘을 만질 수 있을까?
“……근데 진짜, 이렇게 높이 올라왔는데도 하늘이 멀구나.”
웨셋에서 막 산을 오르며 올려다봤을 때는, 이 정도 올라오면 하늘에 손이 닿을 것 같았는데.
한 걸음 한 걸음 그에 다가갈 때마다, 하늘도 우리 발걸음에 맞추어 한 발짝씩 더 위로 올라가나보다.
“하늘엔 못 닿아.”
위슨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저건 엄청나게 높은 데에 있거든. 여기서 뭘 하든 닿을 수 없어. 실제로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엥? 저게 가짜일 수도 있다는 거야?”
“아무도 실체를 확인할 수가 없으니 의심이 들지. 하늘의 정령이 없는 것만 봐도 수상하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연기의 정령도 없잖아. 구름의 정령도 없고.”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연기 속에는 불이 태운 물질이 들어 있어. 구름 안에는 물이 있고. 보이는 모습만 달라진 거지.
그래서 연기는 불의 정령의 영역이고, 구름은 물의 정령의 영역이야. 이해되냐?
……하지만 하늘엔 온도도, 경계선도 없어. 무엇과도 교류하지 않고, 그 안에 무엇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수상하지. 저건 그냥 환상일지도 몰라.”
으으음…… 어려운데.
저렇게 구름이 떠 있고, 밤에는 또 달과 별이 박혀 있는 게 보이는데, 사실은 환상일지도 모른다니.
“근데 위슨, 저게 그렇게 높은지 어떻게 알아? 올라가봤냐?”
내 물음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위슨 말고 다른 마녀가 갔다. 호기심 충만한 마녀 하나가, 하늘에 떠 있는 달에 가보고 싶다고 연구했었거든.”
“엥? 그냥 마법으로 갈 수 있는 거 아냐? 그 뭐냐, 공간이동으로.”
굳이 빗자루를 타지 않아도, 손가락만 퉁기면 눈 깜짝할 새에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위슨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에 공간이동을 하는 건 굉장히 어려워. 그 주변 풍경을 떠올릴 수가 없으니까. 아니면 대강 거리라도 가늠해야 하지.
그래서 그 마녀는 달을 보며 계속 공간이동을 시도했는데, 아무리 먼 거리를 떠올리며 마법을 써도 달에 닿지 못했어.
그 때문에, 마녀는 최후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직접 올라가는 것.
“도전정신 장난 아니네.”
“마녀니까.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죽을 거 같으니, 미친 짓이더라도 그냥 저지르는 거지.”
마녀는 빗자루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계속해서 올라갔다.
도중에 구름을 통과하기도 하고, 구름이 두텁게 깔려 있는 광경을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쭉쭉 올라가던 마녀는, 결과적으론 하늘에서 떨어져버렸다.
뜻밖의 결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엥? 왜? 힘 빠져서?”
“아니. 그 마녀 말로는, 갑자기 눈앞이 새까매지면서 앞이 턱 막혔대. 무슨 보호막이 쳐져 있는 것처럼 말야. 그리고 뭐가 뒤로 홱 잡아당겼다더라.”
음, 그 이야기가 전해진 걸 보면, 그 마녀는 어쨌든 살았던 모양이다.
역시 마녀야. 더럽게 질겨.
위슨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마녀는 반드시 보호막을 넘어가겠다며 도로 집에 틀어박혔어. 이따금 하늘로 다시 올라간 거 같긴 한데, 글쎄, 성공했나 모르겠다. 어쩌면 지난번 일로 죽었든가, 수장한테 봉인됐을지도 몰라.”
“그럼 그 보호막 너머에 하늘이 있다는 거잖아. 환상이 아니라.”
“사실 없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막은 걸지도 모르지. 뭐, 어쨌든 아직까진 그 보호막을 넘어가본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도 실상을 몰라.”
“네이멜은 넘어가보지 않았을까? 대현자잖아.”
내 말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안 물어봤어. 위슨은 하늘보단 하늘 아래에 더 관심이 많아서.”
“어련하겠냐.”
섬에서 뛰쳐나올 만큼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이니, 하늘에 관심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
그나저나 닿을 수 없다라…….
“……”
나도 모르게 메린에게 가려던 시선을 재빨리 거두었다.
쓸데없이 감상적인 생각이 들려는 걸 보면, 쉴 만큼 다 쉬었나보다.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리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메린과 로나를 불렀다.
“그만 출발하자!”
나는 기지개를 켠 후, 다시 말을 끌며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니, 닿을 수 없다는 거에서 메린을 왜 보려고 해?
그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잖아.
그녀의 마음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아, 그런가.
그냥 내가 그녀의 마음에 닿고 싶은 거구나.
뭐, 좋아하니까 당연하지.
그나저나 진짜 중증이구만.
뭘 보든, 뭘 생각하든 그녀와 연결짓고 있다.
그만큼 그녀를 원하고 있는 거지.
그렇겠지.
몸이라도 먼저 가지지?
그녀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걸 알면서?
그런 거 안 한다니까.
그녀에게도 이미 그렇게 말했는데 무슨.
그래도 원하잖아. 그녀는 어이없어하긴 해도 거부하지 않을걸?
싫어.
혈기왕성한 젊은이잖아. 충동을 못 이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싫다고!!
카엘 에스트렐, 너 이 새끼, 그녀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너 좋을대로 해도 되는 인형이 아냐, 이 미친 새끼야!!
“야, 카엘, 너 또 잡생각 하냐?”
“어, 으, 응?!”
느닷없이 들린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뒤를 살짝 돌아보자, 그녀가 굉장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멀뚱히 서서 노닥거릴 때냐? 얌마, 잡생각 하지 말고 길이나 잘 보고 가!”
“아, 예. 죄송합니다.”
……젠장, 괜히 욕 먹었어.
하아…… 그래, 길 가는 것에나 집중하자.
혼자 생각하고 싶으면, 이따 밤에 실컷 하면 되잖아.
그녀를 원하면서. 입술을 빼앗고 싶으면서. 몸을 더듬고 싶으면서.
……돌겠네, 진짜.
아무리 나 자신이라고 해도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냐?
이거 나 맞나?마음속에서 들리니까 나 자신일 거 같긴 한데…….
고상한 척하긴.
……고상한 척이라니 말도 안 되지.
난 고상하니까.
그게 과연 얼마나 갈까?
끝까지.
반드시 끝까지 고상할 거다.
……그게 내가 그녀에게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니까.
“……”
마음속 속삭임은 그 이상 들리지 않았다.
……뭐지?
이야기책에서 자주 나오는 그거인가?
그 뭐냐, 악마의 속삭임? 그거 진짜 있는 거였어?
고개를 갸웃하며, 나는 계속 길을 걸었다.
마침내 우리는 ‘1번마을’이라 적힌 팻말 앞에 도착했다.
지도에 동그라미와 함께 적혀 있던, 첫 번째 부락의 명칭이다.
……아니,첫 번째 부락이었던 곳의 명칭이다.
“……”
팻말 너머에 있는 건 폐허뿐이다.
갈기갈기 찢어진 천들, 널부러져 있는 통나무 파편들, 유리조각들,
무언가 강한 힘이 부딪쳐 생긴 크고 작은 구덩이,
차가운 돌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검붉은 얼룩.
노을이 껴 있어서 그런지, 가슴이 술렁거릴 만큼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이다.
여기가 세상의 끝이며, 그 끝에서 종말을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이야.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에는, 그 종말을 직접 맞이한 사람들이 품었을 절망감이 가득 실려 있는 듯했다.
……예상은 했다.
메린이 지적했던 것처럼, 그리폰에게 전부 제물로 바쳐졌을 가능성은 높았으니까.
하지만 역시…….
“하………….”
……다리 힘이 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카엘.”
“아니야, 괜찮아……. 젠장, 제법 큰 곳이었는데.”
왕국령인 웨셋에는 교단의 신전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여긴 왕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독립적인 마을이니, 교단의 손이 닿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부락 곳곳에 보이는 부러진 창이나 쇳조각을 보면, 치열하게 싸웠던 거 같긴 한데…….
……어쩌면 전사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다들 피난가지 않았을까?
그래, 분명 그랬을 거다.
그 생각을 뒷받침해줄 만한 건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디 잘 피신했으면 좋겠네.”
“뭐, 어쨌든 여긴 아무도 없을 거야. 여기서 묵을 거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이 꼴을, 적어도 세 번은 더 보게 되는 건가.
그새 익숙해져서, 마지막 네 번째엔 아무 느낌도 없어지는 건 아닐까?
어쩐지 그 편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우리는 야영할 만한 널찍한 공간을 찾아 폐허 안으로 들어섰다.
폐허를 휘감는 바람소리에 뒤섞여, 우리가 만드는 발굽소리와 신발소리만 들리고 있다.
우리 중 누구 한 사람도, 이곳에 내린 적막을 감히 쫓아내지 못했다.
광장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해, 주변 파편을 치운 후, 야영할 준비를 했다.
천막을 세우고, 나무 파편을 주워다 모닥불을 지폈다.
솥을 걸어 물을 끓이고, 주변에 떨어져 있는 나무조각들을 더 모아서 땔감으로 던져넣었다.
그 작업을 하는 중에, 누구 한 사람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누구도 감히 웃음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무겁게 맞이한 밤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주변을 서성거리기 마련인 짐승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만이 들린다.
“야, 카엘.”
그녀가 가만히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홍빛 눈동자가 덤덤히 깜빡이고 있었다.
“대련할래?”
“……뭐? 뜬금없이 뭔 소리야.”
“잠 잘 올걸?”
“……”
나를 빤히 보고 있는 눈동자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구처럼 마음속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그녀가 무슨 생각에서 저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른다.
그러니 내 멋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아니야. 됐어. 괜찮아.”
“기회 줄 때 잡지? 괜히 잠 설치지 말고.”
“야, 내가 잠을 왜 설치냐? 아무리 내가 겁이 많아도, 폐허에서 잔다고 벌벌 떨 정도는 아니거든?”
유령을 겁낼 정도로 어린애인 것도 아닌데 말야.
물론 진짜 튀어나오면 비명은 좀 지르겠지만.
그러자 메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네 그…… 뭐였더라? 유리 감성? 그거 아작난 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네.”
“……”
……그렇게 침울해하는 것처럼 보였나?
아무 생각도 안 들어서 그냥 모닥불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니, 침울한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감성이 아작나지 않았다는 건 안다.
그냥 좀 가라앉았을 뿐이라고.
“아니거든.”
“아니면 말고.”
“그리고 내 잠을 재우고 싶으면, 대련 말고 딴 걸 제안해, 임마. 내가 대련 싫어하는 거 모르냐?”
하…… 연애 소설에선 이럴 때 ‘무릎베개 해줄까?’ 같은 말이 나오던데, 이 녀석은 대련이 나오네.
하하, 나 참.어이가 없으니까 웃음이 다 나온다.
“무릎베개? 해줘?”
“……네? 뭐요?”
“너 방금 무릎베개 어쩌고 했잖아. 해달라는 거 아냐?”
“……”
오, 주여, 세상에!제가 진짜 미친 겁니까?
진짜 저딴 말을 입 밖으로 냈다고요?!
아니죠? 아니라고 해주세요!
그러나 위슨이 불을 쬐며 나를 보고 있는 표정,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듯한표정을 보며 확신했다.
음, 진짜 했구나.
진짜로 입 밖으로 낸 거야.
……우아아아아!
무릎베개? 메린의?!
으아아아, 안 돼, 여러모로 위험해질 거야!
그걸로 잠이 든다면 그건 자는 게 아냐!
심장 터져서 죽은 거지!
만약 진짜 잠든다고 해도 괴상한 잠꼬대라도 하면……
……아으, 절대 안 돼!
“……아니요. 괜찮습니다. 농담이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른 데면 몰라, 이런 데에서 불손하게 어떻게 그래?!
……아니지, 다른 데에서도 하면 안 되지!
저렇게 남의 눈이 있는…… 아니, 남의 눈이 있든 말든 안 된다고!
돌겠네, 진짜.
기도문이라도 외워야 되나?
한숨을 쉬며 천막에 들어가려는데, 문득 로나가 모닥불 빛이 닿을락말락한 곳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앞에 있는 건 무참히 부숴져 있는 통나무집이다.
그 모습을 보자, 술렁이던 마음이 단번에 숙연해졌다.
“……”
역시 사제님이긴 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 역시 주변을 빙 둘러보며 조용히 성호를 그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로, 여태까지 맞이한 밤 중에 가장 조용하고, 엄숙한 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