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145화 : 땅 속, 드워프의 나라 (3)
* * *
드워프에게 정체를 들켰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웅장한 풍경에 들떴던 마음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니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어떻게 죄다 알아채는 거야?
내 얼굴에 써 있기라도 해?!
잔뜩 긴장한 채 솔리도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뭘 그리 경계를 하시나? 뭐, 기념으로 한 판 하려고?”
“……”
……손이 알아서 칼자루로 가 있었다.
훌륭하게 버릇이 들었군.
내심 한숨을 쉬며 칼자루에서 손을 떼었지만, 검집을 쥔 왼손에는 오히려 더 힘을 주었다.
그런 나를 보며, 드워프 장군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나 참, 이 반응은 정말 뜻밖인데. 거기 메린, 그만 쏘아보게나. 내 얼굴에 구멍이 나겠어. 사제도 철퇴 자루에서 손 떼시고. 거기 소녀…아니, 소년? 아무튼 위슨이랬나? 뭐에 쓰는 건지는 몰라도 그 병 도로 집어넣으시게.
대체 그간 뭔 일을 겪었길래 이래?”
어깨를 으쓱이며 기가 막혀 하는 그에게 조용히 대답했다.
“저희 반응에서 대강 유추하실 수 있겠죠. ……그러니 솔리도, 대답해주세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인간 귀족이 나를 알아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왕성의 고관귀족들 대부분이 그 선포식에 참석했었으니까.
인간 상인이 나를 알아보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바람이 뒷골목과 술집 사이를 불면서 소문을 뿌리고 다녔으니까.
그러나 이 드워프는……?
산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지상에서 활동하고 있지도 않다.
용사의 목숨을 노리는 엘프조차 못 알아봤는데, 대체 어떻게 나를……!
……설마 여기도 악마가……?!
“어떻게 알았냐고? 들었으니까.”
“……누구에게요?”
긴장 때문에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자, 솔리도는 굉장히 느긋한 말투로 대꾸했다.
“그 고대종을 데리고 있던 놈……”
“……!”
젠장, 한패였나?!
곧장 칼자루를 쥐었다.
“……이 소리치는 걸 정찰병이 들었네.”
……그리고 도로 놓았다.
“네? 정찰병이요?”
“그 고대종 때문에 위에 살던 부족민들이 여기로 피난을 왔거든. 그래서 놈을 처치하려고 위치를 찾아다녔네.
물론 우리는 그들을 돌봐줄 여력이 충분하지만, 땅 위에 속한 자들은 땅 속에서 살 수 없다네. 하늘이 너무 그리운 나머지 미쳐버리더라고. 우린 껄끄러운데 말야.
아무튼, 그래서 부족 전사 몇 명과 함께 놈을 찾아다니다가 그 소리를 들었지.”
어디서 울리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방향만 대략적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뿐.
아무튼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듯이 메아리가 울려왔다.
“대충 ‘그 놈이 용사다’, ‘용사한테 붙으려는 거냐’…… 뭐 이런 소리가 들렸다던가?”
“……아~”
그거 그 흰머리 미친 엘프가 로나한테 쫓기면서 했던 말 같은데.
자신에게 가세하지 않는 블루벨을 향해…….
“그 후, 인간 넷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 그리고 어제는 자네들이 거기 묵었다고 들었고. 그래서맞이하러 간 거야.”
“예? 맞이하러……?”
내가 듣기에도 굉장히 얼빠진 목소리였다.
아마 표정도 되게 멍청하겠지.
솔리도가 나를 보며 흡족한 듯이 씨익 웃는 걸 보니 확실하다.
“자네가 용사라면 마땅히 맞이해야지. 아트라토스를 영원히 적대하며, 그를 위한 협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게 우리 일족의 의무이니까.
그러려고 맹약까지 나눈 것 아니겠나?”
마땅히 용사를 맞이해야 한다.
그것이 북의 대재앙, 드래곤 아트라토스를 영원히 적대하리라 맹세하고,
그를 위해 협력할 것을 엄숙히 서약한 종족의 의무이니까.
의미를 잃은 줄 알았던 맹약서의 그 글귀가, 내 입이 아닌 드워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울분은 조금도 담겨있지 않은, 굉장히 유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아아, 이게 아직 유효하긴 했구나.
죄다 개판인 게 아니었어.멀쩡한 종족이 있었어.
여기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진지하게 협조를 받고, 아무 걱정없이 편하게 잘 수 있어.
하루 묵을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여기선 길 가다 여러 의미에서 잡아먹힐 위험도 없고, 갑자기 누가 목숨을 노릴 일도 없는 것이다.
되게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게, 이제야 처음으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복받치며 무릎이 꺾였다.
그대로 웅크리듯이 엎드린 내 눈에서, 채 억누르지 못한 설움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으흑…… 흑, 크흡……”
나중에 또 쪽팔림에 몸을 뒤틀며 절규하겠지.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우와, 이 새끼 진짜 우는데?”
“저런, 카엘 님, 그간 내심 엄청 힘드셨군요. 메린 님, 카엘 님 좀 달래주세요.”
“어? 나? 으음…… 그래, 뭐…….”
마지막에 메린의 중얼거림이 들린 후, 뒤에서 두 팔이 내 목을 감싸왔다.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에 왠지 가슴이 욱신거려, 오히려 눈물이 더 나오는 것 같았다.
“메린…….”
“괜찮아, 카엘. 괜찮아. 울지 마. 괜찮으니까 눈물 뚝 그쳐. 나중에 쪽팔리다고 또 현실도피하지 말고.”
“우읏, 으, 아아아……!”
기어코 샘이 터진 것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도 울기 싫다.
그래도 명색이 다 큰 사내놈인데, 남들 다 보는 앞에서 꺼이꺼이 울고 싶겠냐고.
그러나 아무리 진정하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럼 어떡해? 멈출 때까지 쏟아부을 수밖에.
그냥 포기하고 울기로 했다.
“하, 이 새끼, 울지 말라니까 더 우네. 그래~ 울어라, 울어. 쪽팔린 건 너지, 나냐? 근데 왜 갑자기 울고 지랄인 거지?”
“그간 용사라고 알아보는 놈 중에 호의 베푼 놈이 드물어서 그럴걸.”
“완전 없는 건 아니었잖아. 그냥 호들갑 떠는 거 아니냐?”
“요 바로 전에 죽을 뻔했잖냐. 그래서 더 동한 거겠지. 약차 마시고 과자 먹으면 더 달게 느끼지? 그런 거야.”
“흐음…… 야, 카엘, 위슨 말대로 진짜로 그런거냐?”
이 자식이 우는 사람한테 뭔 그딴 걸 묻고 있어?
왠지 더 서러워지는 것 같았다.
우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어이없어하면서도, 그녀는 내 목에 한 팔을 두르고, 다른 손으로는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나 역시 그런 그녀가 기가 막히면서도, 그녀의 팔에 매달리듯 붙잡고 울었다.
……그간 속에 쌓여 있던 거무튀튀한 감정들을 모두, 전부 다 바깥으로 쏟아내버렸다.
몸을 돌려서 그녀를 안지 않은 건, 내 딱 한 줄기 남은 이성이 용을 쓰고 버틴 덕분이겠지.
“……진짜 그간 뭔 일이 있었던 건가?”
“아하하, 여러가지요.”
나 자신의 귓가를 왕왕 울리는 오열에 섞여, 굉장히 아연해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후, 솔리도는 도시 안쪽, 다리 건너에 있는 성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벽도, 문도 전부 바위를 깎아 만들어져 있다.
아마 이 성 때문에 여기가 ‘바위궁전’이라 불리는 거겠지.
내 키의 두 배는 족히 되는 듯한 성문이 열리며, 그 안에 또 다른 마을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광장과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곳곳에서 작은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거나 흥정을 하고 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만 모아도 마을 하나는 족히 될 것 같은데.
신기해하는 우리를 향해 솔리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의사당 직원들의 가족들일세. 직계가족들만 모여 살고 있지.”
의장은 물론이고, 화장실 청소부의 가족도 여기 살 수 있다.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한 거라며 그는 껄껄 웃었다.
그렇게 의사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가?
좌우로 살짝 까닥이던 내 고개는, 곧이어 위아래로 크게 끄덕이게 되었다.
성문 안쪽 마을의 가장 안쪽에 지어진 2층건물, 의사당의 넓이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소부만 스무 명은 족히 필요할 듯했다.
솔리도는 대문을 지키는 경비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간 뒤, ‘대합실’이라 적힌 곳에 우리를 안내하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의장은 카엘, 자네가 오길 계속 기다리고 있었네. 뭐, 정확하게는 용사가 오길 기다렸지. 자네가 도착했다는 게 알려지면 곧바로 의원들을 소집할 게야.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동안 차나 마시면서 쉬고 있게. 자네가 원한다면 세숫물도 가져다줄 거고.”
그는 나를 보면서 자신의 눈가를 가리켰다.
아마 내 팅팅 불어터진 눈을 말하는 거겠지.
아직도 눈이 빠질 것처럼 화끈거린다.
아…… 진짜 내가 제정신이 아니긴 했어.
남들 보는 앞에서 통곡을 해버리다니.
속은 굉장히 후련하긴 한데, 아까부터 나를 보는 저 드워프 장군의 눈이 연민으로 차 있는 게 상당히 부담스럽다.
로나 녀석, 얘기를 대체 어떻게 했길래…….
아무튼 의원소집이라면 회의를 연다는 소리겠지?
그럼 또 커다란 테이블에 사람이 빽빽이 앉은 데에서 얘기를 하게 되는 건가?
어우, 생각만 해도 답답해!
게다가 시간도 엄청 오래 걸릴 거 아냐.
다른 의미로 정신이 나가겠는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솔리도, 저희는…… 저는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이 죽일 기세로 노려봐서 오긴 했는데, 엘프를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내가? 자네를 노려봤다고? 언제? 허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봤잖아요. 그 그리폰을 조종하던 엘프와 한패 아니냐면서.”
그러고보니 웃기네.
그 엘프가 소리지르는 걸 듣고 찾아왔으면서 왜 의심을 해?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불평을 가득 담아 솔리도를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우린 용사의 얼굴을 몰라. 그러니 의심할 수밖에. 허나 그 공주와 함께 왕성에 들어갔다고 듣고, 자네가 용사라는 확신이 들었어.”
“……그래서 왕성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그래. 자네가 버섯 얘기를 한 것처럼.”
……역시 내가 머리 굴려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구만.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정보를 캐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장단을 맞춰준 거였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로나에게 이야기를 들으셨으니 아시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엘프를 처리해야 합니다. 가서 조용히 말로 끝내든 뒤집어엎어야 돼요.”
“카엘, 귀쟁이 놈들과 말로 끝내는 건 불가능해. 자넨 그 숲을 전부 불태우든가, 그 놈들 왕의 모가지를 잘라야 할 게야. 여태 놈들과 아웅다웅하고 있는 내가 보장하지.
그러니 자네는 우리 의장을 만나야 해. 내 임무가 자네를 여기 데려오는 거였으니 더더욱 그래야 하고.”
아무래도 드워프는 이웃 종족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말투를 보면 이따금…… 아니, 꽤 자주 무력충돌이 있는 거 같은데.
뭐,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 의장이란 사람을 만나긴 해야지.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의장님만 뵙겠습니다. 다른 의원님들까지 소집할 필요는 없어요.”
“카엘, 이 사람아.”
“오해 마세요. 제가 딱딱한 분위기와 사람 많은 데에선 제대로 말을 못해서 그래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아,제발요, 솔리도. 회의는 진짜 안 돼요!”
말리스에서 어땠나?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방 안에서, 고작 다섯 명의 시선을 받은 것만으로도 심하게 긴장해버렸다.
여긴 지하이니까 그 귀족 아가씨의 회의실처럼 밀폐된 거나 다름없겠지.
근데 거기서 다섯 명보다도 훨씬 많을 의원들이 한데 모여선,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우와, 대화는커녕 그 자리에서 석상이 되어버릴 거야!
어쩌면 꼴사납게 뛰쳐나갈지도 모르고!
이미 입구에서 추태를 보인 걸로 충분하다.
이 이상은 안 돼!
내 간절함이 통했는지, 솔리도는 난처한 듯이 수염 끝을 만지작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그리 전해봄세. 준비가 되면 자네를 부르러 다른 직원이 올 테니, 그때까지 편히 쉬게나.”
“꼭 좀 부탁드릴게요!”
“아, 알았다니까! 나 원.”
정말로 내 부탁을 들어줄까?
저 드워프 장군 말고, 그 의장이라는 사람이.
그와 교대하듯이 직원이 들어와 차를 내주었다.
그러나 그 향긋한 내음과 따끈한 온기로도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의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으니, 나이 많겠지?
아, 나이 들고 직책 높은 사람은 격식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제발 실용적인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길……!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의장실’이라 적힌 명패가 붙은 문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여어~ 왔구만~”
“……”
테이블에서 한창 고기를 뜯고 있는 초로의 드워프 여인과 마주했다.
자신을 암피오라 소개한 드워프는, 단숨에 비운 술잔을 테이블에 쾅 내려놓은 후, 냅킨으로 우아하게 입을 닦았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잿빛 머리카락이 물결치며 살짝 반짝였다.
호탕하면서도 점잖다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의장은 옆으로 가늘게 땋아 내린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자네들도 들겠나?”
“어, 아니요. 그…….”
“아침 식사할 겨를도 없었을 것 같은데? 마소 중장이 서둘러 일을 마치고 싶었던 모양이야. 나 참, 진영을 잠시 비운다고 뭔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녀는 다 들으라는 듯이 크게 한숨을 쉬며, 옆에 선 솔리도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갈색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전장에선 언제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경계 중이지, 교전이 있는 건 아니잖나? 게다가 거기엔 스트레토 대장도 있으니, 화염방사기로 닭 굽는 놈도 안 나올 테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 상태입니다. 그리고 화염방사기로 제일 먼저 그 짓한 게 스트레토 대장입니다. 지금은 결혼휴가 중이지요. 의장님께서 직접 그 신청서에 도장 찍으셨지 말입니다.”
“그랬나? 내가 도장 찍는 서류가 한둘이어야지, 원. 아무튼 수고했네, 중장. 이만 물러가보시게.”
솔리도는 짧게 한숨을 쉬며 의장에게 경례를 한 후,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 밖으로 향했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또 다른 정복을 입은 드워프 한 명이 의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의장은 그 드워프에 눈길도 주지 않고,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도록 권했다.
“그래, 용사.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네. 먼저 무척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아, 그리폰을 처치한 건……”
“물론 그것도 있지만, 내가 지금 고마운 건 회의를 취소시켜준 걸세! 그 다음은 이 음식을 안 먹겠다고 사양한 거고. 내가 좀 배가 고팠거든.”
낄낄 웃으며 던진 말과 달리, 그녀는 그 이상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대신, 손으로 턱을 살짝 괴면서 계속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용사, 우리는 사람을 지원해줄 수 없네. 지원할 수 있는 건 무구뿐이야. 그리고 엘프 좀 박살내주게.”
“……”
음, 단도직입적이긴 하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술잔을 비우던 그 모습처럼 단번에 용건을 쏟아낸 의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겨우겨우 입을 떼고 대답했다.
“……네?”
“거 보게. 허기져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가지? 자, 이거 들게나. 코문, 손님들 몫 가져오라고 전하게.”
“예, 의장님.”
……우리 몫의 식사까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괴상하리만치 철저한 준비성에 헛웃음을 켜며, 나는 엉겁결에 받아든 오리고기 조각을 입에 넣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