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149화 : 용사 지원 시범사업 (4)
* * *
바닥에 엎드리며 한차례 절규한 폴리아는, 갑자기 고개를 홱 쳐들더니 눈을 부릅뜨고 메린을 쳐다보았다!
“히익?!”
우와, 이 소장님, 진짜 장난 아닌데?
로나에 이어, 메린까지 질겁하게 만들다니!
그녀는 들고 있던 자신의 조끼와 부츠를 떨어뜨리며, 내 등 뒤로 삭 숨어버렸다.
“와, 얌마!”
“저, 저 드워프! 눈, 이상해! 히으으, 네가 상대 좀 해!!”
“아니 이상한 건 알지만 그렇다고……, 응?”
아무리 그래도 본인 앞에서 그렇게 피하면 안 되지, 라고 타이르려 했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기묘한 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
폴리아가 두 눈을 부릅뜬 채 내 쪽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말도안돼말도안돼말도안돼애애애!!!”
“꺄아아아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으며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눈에 흰 자위밖에 없는데다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는걸!
엄청 무서운걸!!
미친 소장은 마구 팔을 휘저으며 내 옆쪽으로 돌아서 뛰어왔다.
그러자 메린이 내 옷자락을 꽉 쥐면서 내 몸째로 방향을 트는 동시에, 뒤쪽으로 물러났다!
“억.”
……덕분에 난 뒤로 질질 끌리면서, 저 미친 소장의 맛 간 얼굴을 계속 마주봐야 했다.
음, 그래도 들러붙지 않도록 거리가 유지되어서 그런가?
내가 생각해도 좀 놀랄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다.
나는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날 질질 끌고 다니고 있는 메린에게 물었다.
“야, 메린, 너 지금 날 방패로 삼는 거냐? 되게 안 어울리는 거 알아?”
“몰라, 알게 뭐야!!!”
어우, 귀 아파.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찌르며 시연실 안에 울려퍼졌다.
“……”
내 옷자락을 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내 가슴을 두른 제 팔을 꽉 붙잡고 있다.
등에 딱 달라붙은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고 있다.
……무서워하는구나.
골렘도, 커다란 서펀트도, 헬하운드도, 심지어 커다란 악마 앞에서조차 물러나지 않았던 그녀가,
저 순수한 광기가 무서워서 떨고 있다.
세상 누구보다도 강한 그녀가 겁을 먹고, 내 뒤에 숨었다.
저보다 월등히 약한 걸 알면서.
나를, 의지해주었다.
“……메린, 멈춰.”
“어, 응?”
네가 원한다면,방패든 뭐든, 얼마든지 돼주고 말고……!
질질 끌려가던 발에 힘을 주어 멈춰 선 후, 가능한 팔을 쭉 뻗어 폴리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덕분에 들고 있던 옷가지들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해명해! 해명해명해명!!”
“어으으……!”
각오하긴 했는데,가까이에서 보니까 실시간으로 정신이 깎여나가는 거 같아!
나는 완전히 맛이 간 폴리아에게 크게 소리쳤다.
“작작 좀 하고 좀 진정하세요! 아니 대체 뭐 때문에 이래요?!”
“진정?! 진정하라고요?! 못해못해!! 절대 진정 못해!! 아라크네 실로 만든 천에, 스톤베어 가죽으로 만든 조끼에, 날개사슴 가죽부츠잖아요!! 이걸 보고 어떻게 그냥 넘어…………… 응?”
미친듯이 말을 마구 쏟아내던 폴리아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아까 메린을 봤을 때처럼 진중한 눈빛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나를 쭈욱 훑어보았다.
뭐야? 이번엔 나야?
어우씨, 갑자기 딱딱한 표정으로 쳐다보니까 더 무서워!
폴리아는 내가 바닥에 떨어뜨린 옷들도 가만히 쳐다보다가, 조금 전처럼 조용조용하게 물었다.
“여기 떨어져 있는 것도 당신 거죠? 이 옷들, 당신이 입고 있는 것들, 다 어디서 나셨어요?”
“저, 저도 고, 고향인데요. 어, 얘랑 같은, 고향…….”
“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이번엔 갑자기 머리를 감싸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진짜 왜 이러냐고!!
눈앞에서 이러니까 더 무섭잖아!!
그와 동시에, 날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젠 약간 울먹이기까지 하고 있는 거 같다.
이야, 광기의 이름을 가진 마녀도 그녀를 이렇게까지 겁에 질리게 하진 못했는데.
그냥 광기만 있는 것보단, 혼돈과 집념이 같이 뭉쳐 있어야 훨씬 강한 거구나!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이 늘었다!
“……”
……근데 어째 되게 조용한 거 같다?
여기 있는 사람은 총 다섯이잖아.
그 중 셋이 이렇게 들러붙어 있는데, 왜 다른 두 명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거지?
고개를 돌리자, 내가 찾던두 미성년자가 시연실 한 구석탱이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와, 저 야박한 자식들 보게?!
그 사이에 긴긴 절규를 마친 폴리아가, 갑자기 내 손목을 꽉 잡더니 또 다시 눈을 부라렸다.
서, 서서설마 손을 떼어낼 심산……은 아닌 거 같은데 눈이 무서워!
히윽! 나도 도망가고 싶다!
폴리아는 두 눈에 안광을 번뜩이며 (대체 어떻게?!) 나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허리에 두른 겉옷! 사티로스 아니면 늑대인간 털이죠?! 그렇죠?! 제 눈은 못 속이니까 솔직히 말해요!!”
“히이익! 느, 늑대인간이요! 사티로스는 뭔지 몰라요!”
“조끼는 스톤베어 가죽이고요?! 녹색 더블릿이랑 당신이 입고 있는 셔츠는 아라크네 실이죠?! 그렇죠?! 부츠는 그 아가씨 것처럼 날개사슴 가죽이고요!! 맞죠?! 맞잖아요!!”
“날개사슴은 맞지만 나머지는 그냥 곰 가죽에 면이에요! 목화! 그냥 목화라고요!! 소장님이 말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고요!!”
스톤베어는 뭐고 아라크네는 또 뭐야!
늑대인간 털은 이해해, 특이하긴 하니까!
하지만 나머지는 무슨 소리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냥 동네 숲의 곰이랑 사슴 같은 짐승가죽으로 만든 건데!
아, 물론 날개사슴은 몬스터이지만 흔한 놈이잖아!
옷도 딴 동네처럼 그냥 목화 솜에서 실 뽑아서 만든 건데 왜 이래?!
그러나 폴리아 연구소장은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내 손목을 쥔 손에 힘이 마구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짓마아아알!!”
“끄아아악!”
이런 망할, 엄청 아파!
손목 부러지겠어!
아니 뭔 연구만 하는 사람 힘이 이렇게 세?!
……그래도 물러날 순 없어.
이 미친 소장의 어깨를 놓을 순 없다!
나는 방패니까!
메린이, 내 뒤에 숨어서 나를 의지하고 있으니까!
뭘 어째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못 물러나!
이대로 손목이 부러지더라도 버텨야 돼……!
“모른다니 그걸 믿을 거 같아요?! 왜 숨기는 거죠?! 역시 이 산에서 훔친……!”
풀썩.
미친듯이 소리치던 폴리아의 눈이 갑자기 풀리면서, 기운을 잃고 픽 쓰러졌다.
바닥에 엎어져서 완전히 축 늘어진 그녀의 뒤통수에는 가느다란 침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덕분에 으스러지기 직전이었던 내 손목도 살았고, 영문 모를 광기에 마구마구 깎이던 내 정신력도 완전히 가루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휴우, 늦기 전에 소장님을 말려서 다행이네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스으으, 닫히는 투명한 문 앞에, 흰 가운을 입은 드워프가 한 명 서 있었다.
흑갈색의 머리를 길게 묶어내리고, 덥수룩히 난 수염은 중간중간이 비어 있다.
일부러 모양을 내서 수염을 그렇게 깎았다기보단, 염소나 양한테 한 입씩 뜯어먹힌 거 같았다.
흰 옷을 입은 걸 보면, 여기 연구원 중 한 명이겠지.
그는 길다란 대롱을 한 손에 든 채, 나머지 한쪽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손님 여러분. 저는 개발연구소 부소장인 부아노라고 합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다가 큰 소리가 나길래 와봤는데……
이거 원, 소장님이 또 난리법석을 떠셨나보네요. 많이 놀라셨죠?”
“어어, 네, 뭐……. 참 특이하신 분이네요.”
참 미친 사람 같아요, 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접적인 관계자인데, 그런 나쁜 말은 할 수 없지.
……나중에 여길 나가게 되면 그때 실컷 욕해야겠다.
개발연구소 부소장, 부아노는 내 말을 듣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와하하! 그리 점잖게 말씀하실 것 없습니다! 솔직하게 그냥 미쳤다고 하시면 돼요! 미쳤으니까! 맨날 안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하거든요. 그러니 안 돌고는 못 배기죠.”
“……아, 예.”
“하아, 그 덕에 제가 이따금 돌아다니면서 이걸 쏴야 한다니까요. 부소장의 업무 중 하나가, 폭주하는 소장에게 수면침을 쏘는 거라니,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그는 한숨을 쉬며, 손에 들고 있는 대롱을 까닥였다.
……그렇구나. 그걸로 침을 쏘아 날린 거구나.
그나저나 이거, 웃으면서 그에게 맞장구를 쳐야 하나?
아니면 고생이 많다고 위로해야 하는 걸까?
연구소장에게 정기적으로 수면침을 쏘는 부소장이라니,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긴 한데.
다행히 그는 내가 무어라 대답할 걸 기대한 건 아닌지, 재차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모양 빠지고 어이없지만 할 수 없죠. 그러지 않으면, 방금처럼 소장님이 돌아가실 수도 있으니까요. 미친 양반이긴 해도 귀한 인재인데, 잃으면 안 되지 않겠어요?”
“방금 잃을 뻔한 건 제 손목인데요.”
“와하하, 설마요! 당신 손목이 죽기 전에 우리 소장님 목이 꺾였을 거 같은데요? 여기 아가씨한테.”
그렇게 말하며, 부소장은 턱으로 내 옆을 가리키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 옆?
고개를 돌리니, 정말로 메린이 내 옆에 서 있었다.
대체 언제 튀어나온 거지?
날 꽉 끌어안던 그녀의 힘이 아직까지 잔잔히 살아 있어서 못 알아챘던 모양이다.
“……”
메린은 여전히 그 파격적으로 자극적인 차림을 하고 있다.
이리저리 움직인 탓에, 안 그래도 단추가 풀려서 느슨해져 있는 셔츠가 한층 더 흐트러져 있다.
하하, 속옷 다 보여.
……저 상태로 그녀가등에 바짝 붙어서, 날 꽉 끌어안았……
“………”
여전히 내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거북이가 허허 웃으며 좀더 강한 한기를 내뿜는 게 느껴졌다.
이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야.
뭣보다 내가 허리에 두른 겉옷이 전혀 풀려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여러모로 다시 싱숭생숭해진 나처럼, 메린은 다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엎어진 채 코를 골기 시작한 폴리아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는 부아노를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안도했다는 듯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조용해졌네. 야, 카엘, 너 어디 다쳤냐? 비명 질렀잖아.”
“어? 어, 아냐. 그냥 손목 세게 잡혀서 그랬어. 좀 얼얼하지만 괜찮아.”
메린은 살짝 부어오른 내 손목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며, 재차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너 임마, 비명 좀 지르지 마. 어디 찔린 줄 알고 놀랐잖아. 괜히 드워프 처치할 뻔했네.”
“와하핫!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니까요!”
“……”
응? 내 탓이야?
혼자 착각하고,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사람 처치하려고 하는 얘 사고방식이 이상한 게 아니고?
어쨌든 부아노의 말은 사실이었군.
폴리아는 진짜로 메린의 손에 죽을 뻔하거나, 병상에 드러눕는 신세가 될 뻔했던 것이었다.
하마터면 드워프와 척을 질 뻔했어.
그런 참상을 피해서 정말 다행이다.
“두 분, 괜찮으세요?”
“이야, 정말 무시무시한 드워프였어. 야, 너 괜찮냐? 손목 부었는데.”
……그리고 두 배신자 녀석들은, 소란이 잠잠해지자 쫄래쫄래 다가왔다.
로나는 메린의 조끼와 부츠를 주워와선 그녀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빙긋 웃는 얼굴로 지켜본 후, 이제 와서 우리를 걱정하고 있는 두 녀석에게 밝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어, 괜찮아, 이 매정한 자식들아. 너네를 보니까 이 얼얼한 기운이 싹 가신다. 야, 이 자식들아, 어떻게 너네 둘만 그렇게 쏙 튈 수가 있냐?!”
“우으…… 죄송해요. 연구소장님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몸이 굳어버려서…….”
“일단 전멸은 피하고 봐야 할 거 아니냐? 튄 게 아니라 전략상 후퇴라는 거다.”
“……”
여기 두 아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또 하나는 무던한 눈으로 태연하게 합리적인 이유를 대고 있지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연장자로서 올바르게 대처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 조언이나 의견이 돌아오진 않았다.
할 수 없군.
그냥 아는 대로 해야지, 뭐.
나는 고향 놋지빌의 유서 깊은 훈계 방식, 그 중에서도 가장 부드러운 대처를 취하기로 했다.
뭐냐고?
딱밤.
“왜 위슨만 때려?”
“뻗대니까.”
빨개진 이마를 문지르며 뚱한 얼굴로 묻는 녀석에게, 나 역시 뚱한 눈으로 쳐다보며 대꾸해주었다.
“정당한 이유 아니였냐?”
“위슨아,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란다. 다음부턴 정당성을 주장하기 전에 사과부터 하렴.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로 마음이 약해져서, 말 안 해도 알아서 이유를 찾고 용서해준단다. 알겠니?”
녀석은 여전히 건조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근데 넌 마음이 약해져도 조질 거 같은데.”
“경우에 따라 다르지. 이번엔 로나 안 때렸잖아.”
“사제님이 무서워서 안 때린 게 아니고?”
“메린한테도 딱밤 놓은 적 있는데.”
“역시 용사로군.”
그렇게 우리가 담백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연실에 다른 드워프 두 명이 더 들어왔다.
역시 흰 가운을 걸친 두 사람은, 폴리아 연구소장을 메고 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휴게실에 던져놔드려!”
“예입~”
존경심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말투였다.
시연실의 문이 닫히기까지 그 모습을 지켜본 후, 부아노는 우리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개발품 시연은 다 끝났죠? 그럼 나머지는 소장실에서 말씀하시죠.”
“아, 예.”
책임자인 연구소장이 부득이하게 수면 상태에 빠졌으니, 부소장인 부아노가 이어서 우리를 응대할 생각인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먼저 한두 걸음 앞서 가는 부아노를 살펴보았다.
수염이 맛이 간 모양이라 그렇지, 정신 상태는 멀쩡해보이긴 한데…….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폴리아에게 단단히 겁을 먹었던 두 아가씨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음, 괜찮은가보군. 메린 녀석의 옷차림은 전혀 괜찮지 않지만.
아무튼, 이제야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빨리 끝내고 여길 나가야지.
우리 앞을 걷던 부아노가, 별안간 뒤를 힐끗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키 큰 어린 아가씨는 맨발로 다니시네요. 그러고보니 인간 문화 중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것도 있다던데, 그것 때문인가요?”
“아뇨, 쟤 그냥 더워서 저러는 겁니다.”
“더우세요? 저런, 죄송합니다. 저흰 열기에 강해서 미처 생각 못했네요. 잠시만요…….”
부아노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 같은 것을 꺼내더니, 거기에 대고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잠시 후, 열기가 완전히 가시면서 아주 살짝 서늘한 느낌까지 들었다.
와아, 옷 입자, 옷.
들고 있던 조끼와 겉옷을 다시 껴입자, 다니기 딱 좋은 적당한 온도가 느껴졌다.
거북이를 위슨에게 돌려주면서 메린을 슬쩍 보자, 그녀 역시 다시 제대로 옷을 입고 있었다.
단추도 채우고, 옷소매도 전부 다시 폈고, 부츠도 똑바로 신고 있다!
흑흑, 이제 살았어!!
“이제 괜찮으시죠?”
“예, 부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정말 감사해요!!”
“손님을 위해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렇게까지 감격해하시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요! 와하핫!”
“아니에요.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나는 부소장의 손을 굳게 마주잡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아하, 메린이 살 좀 보였다고 속으로 끓고 있었구만? 저 놈은 봄에 우리 섬에 온 게 천만다행이네. 여름에 왔으면 뒤졌겠는걸?”
“네? 왜요?”
“가슴이랑 국부만 가리고 다니거든.”
“우와.”
……마녀 대단해!
괜히 위슨 녀석이 메린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었어!
세상엔 항상 더한 놈이 있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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