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155화 : 아무 일도…없었어……!
* * *
다음날 아침, 나는 멍한 눈을 비비며 빵과 버터, 잼을 테이블에 놓았다.
야영을 하든 안 하든 아침이 빠른 마법사님은, 어제 먹다 남은 스튜에 물을 더 붓고 끓이면서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굉장히 이상한 생물을 본다는 눈으로.
“……왜.”
참다 못해 녀석을 보며 따지듯이 묻자, 그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도 되냐?”
“언제는 뭐 돌려 말했냐?”
펄펄 끓인 물을 찻주전자에 부으며 대꾸해주었다.
누가 들으면 평소에는 되게 배려심 철철 넘치게 말하는 줄 알겠네.
물론 위슨이 아니라, 그의 어깨 위에서 공 같은 몸을 털고 있는 파랑새가 문제이긴 하지만……
……가끔은 저 녀석이 파랑새를 핑계로 이런저런 막말을 하는 거 같단 말이지?
아무튼 저 녀석들이 저런 걸 묻는 건 새삼스러울 뿐이다.
내 말을 들은 위슨은 어깨를 으쓱이며, 재차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너 되게 짜부라졌는데. 바람 든 무…… 아니다, 무덤에서 방금 기어 나온 시체 같아. 아니면 무덤에 곧 들어가거나. 숲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는 게 솔직히 보기 껄끄럽다.”
“……”
“뭐. 네가 솔직히 말해도 된다며.”
이제까진 나름 배려하면서 지껄이고 있던 거였다.
근데 그렇게 맛이 가 보이나?
아까 세수할 때 물에 비친 거 봤을 땐 썩 나쁘지 않았는데.
물론 머리가 부스스하고 눈도 부었고 몸은 나른해 죽겠지만, 아침에는 원래 다 그런 거 아냐?
그걸 감안해도 심각해보인다는 건……
뭐, 어제는 심신 전부 지독하게 구른 날이었으니까, 아마 피곤이 덜 풀린 거겠지.
나 참, 어제는 진짜 힘들었어.
갑자기 부족민과 드워프가 나타나서 긴장했지, 그 다음엔 여기 와서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지…….
게다가 최하층에서 산 채로 쪄지는 고통에, 그 미친 드워프한테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진영에서 대전이었나? 푸핫, 어디를 가든 빡세게 구르는구만!”
“내 말이…….”
생각해보니 웃기네.
왜 그냥 길거리 다닐 때보다 어디 묵을 때가 더 빡센 거지?
원래 힘든 거 하나없이 푹 쉬어야 되는 거 아니야?
여기서 끝났다면 그냥 ‘피곤한 하루’로 끝났겠지.
그러나 그 이후에………….
하으…….
“……하아아아………….”
“아침부터 웬 한숨이세요?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고민…… 그래, 고민이긴 하지.
메린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메린 님이요? 왜요?”
“왜긴, 어제 그 녀석이랑 키……”
“키?”
……잠깐.
이거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게 아닌 거 같은데?
찻주전자와 찻잔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홱 고개를 돌리자, 역시 아침이 빠른 사제님이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헤실…… 아니, 히죽 웃었다!
“어라~? 왜 말을 하다 마세요~?”
“…………”
아잇, 진짜!
하필 잠이 덜 깬 탓에……!
“그 녀석이면 메린 님이시죠? 메린 님이랑 키 뭐요? 네? 뭐하셨는데요? 네?”
“키, 키키, 키 재기했다, 왜!”
“거짓말이네요! 이야~ 이건 제 코가 아니더라도 다 알겠어요~ 얼굴 완전 새빨개져선! 푸하하, 차보다도 더 빨개요!”
“시끄러, 임마! 앉기나 해!”
빽 소리질러 대꾸하자, 로나는 키득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하, 이 사제님, 요즘 점점 더 얄미워지는 거 같다.
그렇다고 대들기엔, 근처에 있는 예절 주입기의 존재감이 장난이 아니다.
언제 봐도 참 육중하단 말야?
저런 걸 등에 매고 다니니 키가 안 크지.
드워프랑 똑같아선!
“흐음, 그래서 드디어 키스를 하셨다……. 키스만 하셨어요?”
“아아아, 진짜!!”
“카엘 님, 카엘 님~ 오해 마세요, 진지하게 여쭈는 거에요! 자자, 메린 님이 안 계실 때 얼른요! 키스만 하셨어요?”
빵을 손에 든 채 묻는 로나는, 여전히 빙그레 웃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얼굴엔 조금 전처럼 장난기가 넘치고 있진 않았다.
……진짜 진지하게 묻는 건가본데.
이딴 걸 진지하게 묻는 이 녀석이나, 그걸 또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나나, 옆에서 보면 되게 어이없을 거야.
저 봐, 위슨 녀석, 굉장히 한심하게 보고 있잖아!
“위슨이 한심하게 보는 건 너야, 미친놈아. 다 큰 놈이 키스 갖고 허둥대긴…….”
“너 이 자식, 내가 그 말 꼭 기억해둔다! 너 나중에 어쩌나 보자!”
“참 쪼잔한 어른이야.”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쉰 후, 애늙은이 마법사는 솥에 든 수프를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카엘 님, 그래서 대답은요?”
그리고 끈질기게 묻는 애늙은이 사제님을 보며,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로나가 괜한 호기심 때문에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메린에게 감정을 심는다는 내 원대한 꿈의 조력자로서, 진전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하, 진짜 아침부터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하다니…….
머리가 벌써 지끈거리는 것 같다.
“키스만 했어. 당연한 거 아니냐.”
“우와, 진짜요? 카엘 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엄청나게 욕정이 끓어올랐을 텐데 그걸 참으시다니, 이야~ 역시 괜히 용사님이 아니시라니까요!”
“……”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데 왜 놀리는 거 같지?
그리고 위슨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퍼졌구만. 혼자 활활 불타서 잿더미가 됐다가 다시 뭉쳐진 거였군.”
“괴상한 비유하지 마라!”
제길, 미묘하게 맞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탓에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다.
혼자 불타긴 했지.
그야말로 다 타버리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로나는 만족스러운 듯이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어쨌든 진전이 있었군요. 생각보다 메린 님이 열심히 고민하시는 거 같아요. 흠…… 그럼……. 아, 고맙긴요, 뭘! 카엘 님을 돕는 게 제 일인걸요! 히히,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뻐요!”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라, 이상하네요~ 왠지 모르게 그런 목소리가 들린 거 같았는데요~”
으윽, 얄미워……!
저 놈의 철퇴만 아니었어도 진짜 확 그냥……!!
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메린이 불쑥 식당으로 들어왔다.
머리에 아직 물기가 어른거리는 걸 보니, 평소처럼 검을 휘두르며 몸을 푼 다음, 땀을 씻어내고 온 듯했다.
위슨이 그쪽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고, 로나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도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으으, 도저히 못 쳐다보겠어.
“오셨어요, 메린 님! 검 상태는 어때요?”
“어, 안녕. 검? 휘두르는 건 문제없긴 한데, 직접 맞대야 길이 들지.”
“저한테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아침운동 겸해서 도와드렸을 텐데요.”
“뭔 소리야, 너랑 해서 검에 길이 들겠냐?”
“에엥? 왜 안 돼요?!”
진짜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로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설마 그녀가 그렇게 되물어올 줄은 몰랐던 걸까?
메린은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할 수 없군.
나는 저쪽으로 돌리고 있던 고개를 다시 돌린 후, 로나를 보며 대꾸해주었다.
“왜 안 되긴, 임마, 너 철퇴잖아……. 철퇴는 피하는 게 기본이야. 그 쇳덩어리를 누가 맞대고 있냐? 검 버릴 일 있어?”
“그럴 수가!”
이번엔 로나가 테이블에 엎어졌다.
진짜로 실망한 모양이었다.
……얘는 왜 이렇게 못 싸워서 안달이야?
이게 전투사제의 기본 소양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메린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아서 빵을 집었다.
오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전혀 신경 안 쓰인다는 듯한 이 태도……!
……역시 나만 허둥대고 있구만.아, 억울해.
아니, 열받아……!
그래, 넌 아무렇지도 않다 이거지?
오냐, 나도 신경 안 쓰이…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도 태연하다, 임마!
왠지 오기가 솟아서, 나는 고개를 쳐들고 화끈거리는 입과 손을 움직여 빵을 우적우적, 힘있게 씹었다.
생각해보니 허둥댈 일도 아니잖아.
민망하긴 하지만, 내가 뭐 못할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싫다는 애 억지로 잡아서 한 것도 아니지?
따지고 보면 얘가 들이댄 거 아냐.
마지막엔 실제로 덮쳤고!
그리고 나나 얘나 다 컸는데, 고작 키스 정도로…….
“………히으…….”
……고개가 도로 가라앉았다.
아으, 난 못해.
이걸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있어?!
“완전 정서불안이구만. 진짜로 미친놈이 되고 있는데.”
“시끄러, 임마…….”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하아, 뜨거워 죽겠네…….
“이 새끼 왜 이래? 야, 너 어디 아프냐?”
날 이 꼴로 만든 원흉은 태평하게 저따위로 묻고 있고.
“너랑 어제 키스해서 맛이 갔어.”
배려심 따위 없는 마법사 놈은 저따위로 지껄이고 있고.
“푸하하하, 카엘 님! 어제 본 그 토마토 같아요! 아하하핫!”
사악한 사제는 제정신 놓은 것처럼 웃고 있다.
이 나쁜 새끼들…….
“어…… 그래? 난 또 어디 아픈 줄 알았네. 진짜 그런 거냐? 몸이 안 좋은 거 아니지?”
“……”
아플 정도로 꽂히는 시선에 힐끗 그녀를 보자,나를 물끄러미 보며 눈을 깜빡거리고 있다.
윽, 이 녀석, 일부러 눈 동그랗게 뜨고 있는 건 아니겠지?
도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어. 멀쩡해.”
“그럼 됐고.”
아니 안 됐는데.
속으로 투덜대는 내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그녀는 작게 킥킥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굉장히 좋으신 듯하군.
거참 잘됐네.
이윽고, 여전히 재기불능인 나를 뺀 세 사람이 저마다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참 끝내주게 좋은 동료들이야.
‘밥 안 먹냐’고 건들지도 않고, 그냥 무심하게 제 몫만 챙겨먹고 있잖아.
하아…… 그래, 꼴사나운 짓은 이쯤에서 그만하자.
당사자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나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웃기지.
……근데 보통 이런 건 여자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나?
감정이 부족하면 소녀심도 없는 거야?
나한텐 왜 있는 거야?
재차 한숨을 쉬며, 얌전히 빵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녀석은 메린과 나에 대해 그 이상 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 일정 등의 잡담만 나누다 보니, 점차 민망한 마음이 잦아들어갔다.
아마 차를 마신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거겠지.
“아, 맞다. 야, 카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
맞은편에서 파랑새와 재잘거리는 로나를 멍하니 보면서,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마음은 꽤 차분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마주볼 수는 없었다.
얼굴을 보면, 또 그게 생각나서 허둥댈 게 뻔하니까.
하아, 밖에 나가기 전까진 정리가 되어야 할 텐데.
내 심중을 알 길이 없는 그녀는,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어제 뭐 특별한 방법 썼냐?”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뜬금없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 되게 황당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역시 메린이야.
내 머리 비우는 데엔 선수라니까.
“갑자기 뭔 소리야.”
“아까 씻을 때 생각나서 만져봤는데 별 느낌 없길래, 네가 뭐 특별한 방법을 쓴 건가 해서.”
“아니 그러니까 뭔 소리냐고. 생략이 너무 많잖아. 좀 똑바로 말해.”
메린은 나를 빤히 보면서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너 어제 나 만졌잖아. 성감 있는지 확인, 우읍.”
아아, 그렇구나, 그런 뜻이었구나!!
난 또 뭔 소리인가 했네!!
황급히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딴 애들 못 들었겠지?
메린이 엄청 크게 말한 것도 아니고, 또 저들끼리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못 들었을 거야!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걸까!
거참 희한하네, 조금 전까지 맞은편에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식당을 막 울렸었는데!
“……”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두 애늙은이가, 그야말로 눈이 빠질 것처럼,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보고 있다.
들었구나.
들어버렸구나!!
“아, 아니야, 그, 그그, 그런 거 아니야!!”
황급히 나온 내 말에, 두 녀석의 입이 바로 풀려버렸다.
“세상에, 그딴 핑계를 치고 여기저기 만지작댄 거야? 우와, 엄청 쌓였었구만?”
“그런 거 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
“저기, 카엘 님, 제가 권한 관계는 그런 음습하고 음흉한 게 아닌데요……. 교감을 하셔야지, 일방적으로 그런 욕구를 불태우는 건 좀…….”
“그딴 거 아니라니까?! 목이야, 목! 목 아주 살짝 만진 거뿐이야!!”
혼신을 다해 외쳤으나, 두 녀석은 여전히 나를 미심쩍은 눈초리로 보았다.
아, 억울해. 이건 진짜 억울해!
음흉한 의도 따위 하나도 없이 그냥 순수하게 검사했을 뿐인데!
“아니, 나는 쇄골 얘기하는 건데. 네가 거기 만졌을 때 찌릿했으니까.”
이 자식이 쓸데없이 불에 기름 붓고 있어?!
역시나, 두 녀석이 흠칫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와, 목만 만진 게 아니네! 이거 더 파보면 더 나오는 거 아냐?!”
“카엘 님, 부끄럽다고 숨기시면 어떡해요! 키스만 하셨다면서요! 솔직히 말해요, 아니죠?! 더한 것도 하신 거죠?!”
“아니야아아악!!”
……결국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며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이후, 우리는 그 지옥불 같은 개발연구소로 가서 유니콘 뿔을 전달한 뒤, 재차 진영으로 향했다.
망토의 크기를 조정하기로 했었으니 그걸 확인할 겸, 손목 갈고리의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서이다.
진영의 책임자인 솔리도 장군은 우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근데 자네, 아침부터 왜 죽상인가?”
“……묻지 마십쇼…….”
한참 소리를 지른 탓에 목이 쉬어버려서, 겨우 그 말만 전할 수 있었다.
이거 오늘 안엔 목소리가 안 돌아올 거 같은데.
그래도 ‘되도 않는 핑계를 쳐서 여자 몸을 주물럭댄 파렴치한’이란 누명을 쓰는 것보단 백 배 낫지.
솔리도는 내 부탁대로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대신 망토가 준비되었다며 부하 한 명을 불러 우리를 안내하도록 명령을 내려주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바로 이야기해야 하네. 몸에 딱 맞아야 제대로 방어 효과가 나오거든.”
“예.”
“손목 갈고리는 훈련장에서 연습할 수 있을 걸세. 훈련교관에게는 내가 이야기해뒀으니, 찾아가보시게나.”
쉰 목소리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나에게, 솔리도는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내 특별히 가장 엄격한 교관에게 부탁했지. 그가 됐다고 할 때까지 계속 연습해야 할 걸세.”
“……왜죠?”
왜 다들 날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거죠?
대체 왜……?
내가 댁들한테 뭔 잘못을 했다고?
마음속의 내가 얼굴을 손으로 덮고 훌쩍이는 동안, 솔리도가 두 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왜긴, 자네들은 그걸 써본 적이 없을 게 아닌가? 그러니 제 손처럼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해야지. 적어도 나무나 벽을 능숙하게 타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네.”
그게 안 되면 아예 두고 가는 게 훨씬 나을 걸세.
그는 그렇게 덧붙이며, 두둔하듯이 내 팔을 툭툭 두드렸다.
“걱정 마. 자네라도 금방 배울 수 있을 테니까.”
“……저라도? 제가 뭐 어떻다고요?”
“이중에서 제일 굼뜨지 않나.”
“위슨 움직이는 거 보신 적 없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일축할 수 없는 게 슬펐다.
후우, 언젠가 내가 메린이나 로나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마 평생 안 오겠지.
내 대꾸에, 솔리도는 풍성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위슨?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자네보단 나을 거 같은데? 여기까지 오면서 자네보다 더 지친 적이 없었을 것 같아. 내 감이 그리 말하는군.”
“젠장.”
전사로서의 감인가?
정말 쓸데없이 예리하군.
……그렇다면 더더욱 질 수 없지.
두 아가씨는 어쨌든, 저 녀석보다는 더 빠르게 마스터하고 말겠어!
“열 다섯에게 호승심 불태우고 있네. 안 쪽팔리냐?”
“어. 난 당당해. 승부에 나이가 뭔 상관이야, 최선을 다해 꺾어주마!”
“꺾긴 뭘 꺾어, 이게 뭐 대결이냐? 어휴, 미친놈.”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며 위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작은 불꽃이 튀는 것을!
너도 나한테는 절대 질 수 없다, 이거냐?
오냐, 너랑 나, 둘 중에 누가 더 둔한 놈인지 가려보자고!
우리를 진영 안으로 안내하는 병사를 따라가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불타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