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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65화 (165/475)

〈 165화 〉 161화 : 왕에게 안내하라 (3)

* * *

본의 아니게 손에 넣은 ‘블루벨을 짝사랑하는 남자 B’, 줄여서 짝사랑남 B를 밧줄로 묶으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책임자가 한 명뿐이라는 게 뭔 뜻이야?”

“……”

묵묵부답. 눈도 안 마주치고 있다.

음, 적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는 건가?

하지만 그럴수록 어떻게든 입을 열고 싶게 만드는 게 사람 마음이지!

밧줄 묶느라 메린에게 도로 넘긴 블루벨을 가리키면서 재차 물었다.

“저런 평평이가 어디가 좋냐?”

“무지한 놈이 감히 그녀의 아름다움을 폄하하느냐! 그녀의 존재 자체가 때묻지 않은 맑은 성정과 순수함을 그대로 체현하고 있거늘, 네놈의 눈은 옹이구멍이로구나!!

그녀는 가을을 기다리는 싱그러운 여름 과실이며, 대지에 잠들어 있는 보석의 원석, 그 자체이다!!”

오우, 효과 좋은걸?

바로 침 튀기면서 주장하고 있네.

……근데 뭐?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 과실?

잠들어 있는 원석?

그건 즉……!

“히익!”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좋다는 소리 아니야!

오, 주여, 이 새끼 이거 진성 변태 새끼 아닙니까?!

어우씨, 소름 끼쳐!!

인질만 아니었으면 당장 던져버렸을 텐데……!

게다가뭐?

맑은 성정? 순수함?

이 녀석이?!

이 날강도가?!

“맑긴 개뿔! 아주 그냥 때와 술에 푹 절어 있더만! 맑고 순수한 사람이 강도짓에 술 마시기 내기를 벌이냐?!”

“네 이 놈! 감히 그런 허무맹랑한 망발로 그녀를 모욕하느냐!! 그녀가 그럴 리가 없잖아!! 블루벨은 이슬만 마신다고!!”

이슬…….

블루벨을 슬쩍 돌아보자,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허, 고향에선 내숭 엄청 피웠나보군.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놈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민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것, 그 역시 필경사가 하는 일이니까.

“쟤 술고래야. 지난번에 맥주 열 잔도 넘게 퍼 마셨어. 요전에도 내 동료가 갖고 있던 독주를 홀라당 마셨다니까?”

‘지난번’이란 건, 우리가 블루벨과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벌였던 술 마시기 내기이고,

‘요전’은 웨셋에 오는 길에 위슨과 블루벨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이다.

우리 애늙은이 마법사인 위슨은 물약재료로 여러 술을 가지고 다니는데, 밤에 물약 만들 때마다 혼자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그가 만드는 물약은 전부 술이 베이스라서, 술이 얼마나 익었는지에 따라 재료를 조정해야 하니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나?

그래도 내 앞에선 마시지 않는데다, 술에 꼴아 널부러진 적이 없으니까 일단 냅두고 있다.

그리고 물약 베이스가 술인 탓에, 위슨은 직접 술을 담그기도 한다.

그것도냄새만 맡아도 눈이 핑 돌고, 물을 안 타면 한 잔만으로도 속 완전히 버릴 정도로 독하게!

녀석이 가끔 한두 잔 나눠주는 걸 마시긴 하는데, 뭔 효과가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일단 잠은 잘 오더라고.

아무튼 그 사건이란 건, 간단히 말해 위슨의 술을 블루벨이 훔쳐먹은 걸 말한다.

물약을 끓이려던 위슨이 베이스인 술을 꺼낸 후, 깜빡한 재료를 가지러 간 사이에 그녀가 꿀꺽해버린 것이다!

아마 자신에게 명령을 안 들으면 살을 지져버리는 끈을 단 악감정 겸, 술 먹고 싶었겠지.

그러니 당사자인 위슨 빼고는 씁쓸히 웃으며 넘어갈 사건이었는데……,

하필 그날 위슨이 꺼낸 건말벌주였다.

그 무시무시한 독침을 가진 말벌로 담근 술……!

그 바람에, 온 몸에 말벌 독이 퍼져서 사경을 헤매는 블루벨을 로나가 황급히 처치하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었지…….

그러나 짝사랑남 B는 웃기지 말라면서 내 말을 한사코 믿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을 것 같으냐?! 블루벨은 술 냄새 맡는 것도 싫어한다고!!”

“잘못 본 거 아냐? 술 되게 좋아하던데.”

그때 정신을 잃은 블루벨이 다시 깨어나자마자 한 말이 ‘아직 덜 익었더라’였지.

진성 술꾼이 틀림없어.

“아니야아아아! 내 블루벨이 그럴 리가 없어어어!!”

현실을 부정하며 처절히 외치는 놈의 어깨를 턱 짚으며, 나는 깊이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란다. 소년이여, 어른이 되거라.”

“입 닥쳐, 애송이 놈아!!”

“내 얼굴 안 보이잖아. 내가 애송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인간 놈이 나이 먹어봤자이지! 내가 200살이다, 이 놈아! 나보다 높냐?!”

음, 그렇군.

하지만 네 얼굴은 애새끼 같은걸.

그러나 이 말까지 하면 놈이 입에서 불을 뿜을지도 모르니, 속에 삭히기로 했다.

“그래서 책임자가 한 명뿐이라는 게 뭔 소리냐?”

“말 못해!!”

하나같이 뻗대긴…….

별 중요한 비밀도 아닐 텐데, 그냥 알려주면 안 되나?

그렇다고 그거 알아내자고 블루벨에게 더 칼을 댈 수도 없고…….

“음…… 진짜 말 못해?”

“차라리 나를 죽여라!!”

“그래? 음…… 거기 짝사랑남 A! 댁도 말 못해?”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라, 잔학한 놈아!!”

아직도 땅에 엎드려 있던 짝사랑남 A가 고개를 쳐들고 빽 소리질렀다.

둘 다 말을 못한다니 할 수 없군.

그래도 이 이상 물리적인 고통을 더하는 건 블루벨의 목숨이 위험하니,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인 후, 블루벨에게 돌아서서 그녀를 살폈다.

흠, 얼굴이 조금 창백해져 있군.

아마 팔과 어깨의 상처로 계속 피를 흘린 탓이겠지.

지혈을 안 했으니까.

음, 설마 의식을 잃은 건 아니겠지?

완전히 축 늘어진 채, 진땀을 흘리는 그녀의 뺨을 툭툭 치자, 그녀가 약간 가물거리는 눈을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아직 깨어 있군.

살짝 안도하며, 나는 그녀에게 작게 속삭였다.

“블루벨, 정신 놓으면 안 돼. 진짜 죽을지도 몰라.”

“우으…… 으읍……!”

“미안해. 이거 끝날 때까지 지혈 못해줘. 그러니 열심히 버텨.”

그리고 나는, 그녀의 옷깃을 스윽 만지면서,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짝사랑남 B를 쳐다보았다.

“진짜로, 말 못하냐?”

“그, 그만둬! 그 이상 그녀에게 손대지 마라!!”

그럼 말하면 되잖아.

나는 블루벨의 어깨를 덮은 케이프의 단추를 풀었다.

그녀가 굳은 얼굴로 내 손을, 그리고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으읍……!”

“쉿. 가만있어. 피 더 나온다.”

“우으으흡?!”

“해코지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마시고.”

“므우으으으므읍!!”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대충 개소리하지 말라는 것 같다.

블루벨의 케이프를 벗겨낸 후, 짝사랑남 B의 눈앞에 흔들었다.

“말 안 해?”

“이, 이 비열한 놈……!!”

“A, 댁도?”

“크으으윽……!”

아니 뭐 얼마나 큰 비밀이길래?

하, 나 참, 진짜…….

투덜대며, 앞섶이 단추 대신 끈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옷의 매듭을 몽땅 풀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답변 거부.

대강 위에서 2단까지 끈을 홱 빼 버린 후, 다시 물었다.

여전히 거부.

블루벨은 통증과는 또 다른 이유로 바들바들 떨며,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얼굴은 당연히 새빨개져 있다.

으음…… 이 다음을 풀면 가슴이 다 보일 텐데.

속옷이야 입고 있겠지만, 그래도 수치스럽겠지.

나 참, 저 놈들, 은근히 끈질기네.

매듭 풀 때 항복할 줄 알았는데.

내가 끝까지 못할 줄 아는 건가?

“헛.”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끈을 빼려던 손이 멈추었다.

설마 이 새끼들……!

나는 블루벨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댁들 설마 일부러 입 다무는 거야?! 충성심을 핑계로 이 녀석 알몸을 보려는 거냐고!”

“무, 뭐?! 아니야!! 내가 네놈 같은 천인공노할 야만인인 줄 아나!!”

“우, 우린 네놈과 달리 명예를 아는 놈이다!! 정말이야, 블루벨!! 알잖아! 우, 우린 그저 일족을 위해……!”

곧바로 변명하는 두 새끼.

그러나 놈들의 고개는 내 옆으로 슬쩍 움직이고 있었다.

딱 걸렸어!!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

“커헑!!”

불타오르는 정의감을 그대로 담아, 짝사랑남 B의 가랑이를 밟아주었다.

A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손봐줄 수 없는 게 애석할 따름이었다.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누구 저 두 개놈들 대신 가르쳐줄 사람? 책임자가 하나뿐이라는 게 뭔 뜻이야?”

“모든 것은 왕께서 뜻하신 바라는 의미이다.”

진중한 목소리가 울리며, 숲 안 쪽에서 한 엘프가 홀로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우리는 물론, 우리와 대치하고 있던 다섯 엘프들도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굵직한 목소리를 울리며 나타난 엘프는, 푸른빛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지금 대치 중인 엘프들보다 좀더 튼튼해보이는 가죽갑옷에 연갈색 망토까지 두르고 있다.

활이 없는 대신,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목소리도 그렇고, 짝사랑남 A와 B보다 얼굴선도 더 굵은 걸 보니, 이들보다도 좀더 나이를 먹은 남자 엘프인 듯했다.

꽤나 멋에 신경 쓰는 성격인지, 머리 양옆에 한 줌씩 곱게 땋아 내리고, 나머지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근데 왜 다들 수염은 없지?

그냥 봐선 헷갈리니까 수염도 좀 길렀으면 좋겠는데.

“……!”

그를 본 짝사랑남 A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벌떡 일어섰다.

차림새도 그럴싸한 걸 보면, 저 사람이 진짜 경비대장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군.

푸른머리 엘프는 짝사랑남 A 앞으로 나오며, 나를 마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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