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68화 (168/475)

〈 168화 〉 164화 : 엘프의 왕 (2)

* * *

뜬금없이 사형이라니 그게 뭔……?

화제가 화제인 만큼, 나는 다시 파랑새에게 엘프들의 말 뜻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새끼가 필요 없다더니, 이랬다 저랬다……”

“세상에서 가장 유능하고 강하며 지혜로운 소리의 정령, 에코 님, 긴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 미천한 놈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십쇼.”

녀석이 투덜거리는 걸 썩둑 자르며 마구 말을 쏟아내자, 파랑새가 살짝 질색해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너 미리 준비했냐? 어떻게 바로 나와?”

“훗. 언젠가 너한테 말할 거 같아서 미리 생각해뒀지.”

“미친놈.”

준비성이 뛰어난 거 아니냐고 대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친위대장과 왕의 대화가 더 궁금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윽고 저 앞에서 이야기하는 두 엘프의 목소리에, 인간의 언어가 겹쳐서 들리기 시작했다.

“………한 처사입니다! 부디 재고를……!”

“호오, 애초에 내가 사람을 잘못 뽑았다? 사람을 보는 내 눈이 부족해서 이리 되었다는 게냐?”

그렇게 말하는 왕의 표정은 굉장히 불편해보였다.

사람을 잘못 뽑았다……?

흠, 대충 그려지는걸?

아마 왕이 이렇게 말했겠지.

블루벨이 임무를 실패하고 웬 인간에게 잡혀왔으니, 그 벌로 사형한다고.

그래서 친위대장이, 원래부터 그녀의 능력 밖이었다고 항의한 듯싶었다.

그러니 왕이 ‘지금 날 까는 거냐’고 버럭 한 거겠지.

아무튼 블루벨은 이제 끝장이군.

왕이 저렇게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냈으니, 친위대장은 더 거스르지 못할,

“……그렇습니다.”

……줄 알았는데!

친위대장은 품에 안은 블루벨을 보며 나지막이 긍정했다.

왕이 잘못한 거라고.

“흠, 내가 잘못 들었나보군. 다시 한번 이르거라. 지금 무어라 했느냐?”

말투는 부드럽지만, 왕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마, 말을 정정해라.

그 뜻이 노골적으로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친위대장은, 오히려 왕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며, 한결 더 또렷이 대답했다.

“폐하의 말씀이 옳다 아뢰었습니다. 폐하께서 블루벨의 역량을 잘못 헤아리시어, 일을 그르친 것입니다!”

“네놈이 감히 짐을! 돌에렛을 책하느냐!! 어리석은 것, 한낱 여자에게 홀려 네놈의 눈이 흐려졌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그 요망한 것을 죽여, 네놈의 눈을 씻어주어야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왕이 고함치자, 가죽갑옷을 입은 엘프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대체 어디 숨어 있었던 거지?

……근데 이 자식들, 왜 우리까지 둘러싼대?

우린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용사암살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애꿎은 인간 왕자를 건드려 분란을 일으킨 죄! 그로 인해, 더러운 인간의 발이 이 숲에 닿도록 한 죄! 일족을 홀리고, 내 친위대장의 눈을 흐린 죄!

이 모든 죄를 물어, 블루벨에게 사형을 명한다!”

“폐하!!”

“그리고 블루스타 친위대장을 투옥하라. 흥, 차디찬 기운을 쐬면 그 익어버린 머리도 조금은 돌아오겠지.”

엘프 병사들이 블루스타에게 달려들었다.

몇몇은 그를 붙잡고, 또 다른 일부는 그의 품에서 블루벨을 떼어놓으려 했다.

그는 고함치며 격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숫자에는 이길 수 없었다.

“안 돼! 블루벨!!”

짐짝처럼 질질 끌려가는 블루벨을 향한 블루스타의 처절한 외침.

그 얼굴에는, 절대적인 절망이 떠올라 있다.

“……”

맘에 안 들어.

누군가가 비통하게 외치는 것도 그렇지만, 돌아가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개판이잖아.

“멈추시죠!”

그렇게 외치며, 나는 메린의 손을 놓고 블루벨을 끌고 가는 두 병사 앞을 막아섰다.

놈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고, 어찌해야 할지 묻는 듯이 왕을 돌아보았다.

“카엘.”

미쳤냐?

메린의 목소리엔 그 뒷말이 숨어 있는 듯했다.

아니야.

그 뜻이 전해지길 바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뭔 생각을 하고 있든, 그건 틀렸다.

나는 그저, 이 경우를 모르는 귀쟁이 놈들에게 열받았을 뿐.

다른 건 없다.

나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서며, 나를 빤히 보고 있는 엘프의 왕에게 말했다.

“엘프의 왕이여, 굉장히 실망스럽군요! 지금 누구 맘대로 죄인을 죽이는 겁니까?

그 엘프를 고발한 우리는,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맘대로 끝내지 마시죠!”

우리는 그녀를 죽여도 된다고 한 적 없다.

엘프에게 그녀의 처우를 맡기겠다고 한 적도 없다.

그저 ‘인간의 왕자를 죽였다’고 고발했을 뿐.

근데 그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도 하기 전에, 멋대로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려?

바로 형을 집행하려고 해?

그것도 아까부터 우리를 계속 세워두고서?!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콧대가 높아도 정도가 있지, 아예 사절 취급도 안 해?!

“흠? 저 죄인이 그대들의 왕자를 시해하려 했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책임을 지려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아직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동의? 왜, 용서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지. 그대들은 죄인의 죽음을 요구할 것이다. 그에 더해, 무언가의 보상을 요구할 터.

어차피 그리 일이 흘러갈 것이 뻔한데, 굳이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있나?”

뻔하다? 시간 낭비?

하하, 그렇단 말이지?

그리 생각한단 말이지……!

“절차를 밟을 가치가 없다, 이 말씀이시군요? 엘프의 죄를 고하러 온 인간에게, 그 책임을 물으러 온 자에게, 그만한 시간과 수고도 들이지 못하겠다. 이겁니까?”

“그렇다.”

입을 비죽이며, 엘프의 왕이 당당하게 선포했다.

“곧 죽을 놈들인데, 무엇 때문에 수고를 들여야 하는가?”

그와 함께 무언가 손짓을 하자, 아까부터 우리 주변에 서 있던 엘프 병사들이 일제히 활을 겨누었다.

“죽기 전에 내 얼굴을 보고,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인간. 감히 주제도 모르고 이 숲을 들어온 놈들 치고는 귀한 은혜를 받은 것이니.

그래도 명색이 사절이니, 네놈들의 머리는 고이 싸서 왕에게 돌려보내주마. 감사히 여기거라.”

“개소리 까고 있네, 미친 새끼가……!!”

내가 고함치며 검을 뽑은 것과 동시에, 메린이 블루벨을 끌고 가던 두 병사의 목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바닥에 엎어진 블루벨의 팔을 내가 잡자마자, 메린이 내 뒷목을 잡고 뒤쪽으로 홱 끌어갔다.

“쏴라!”

“주여, 보호하소서!!”

로나가 크게 외치며 철퇴를 바닥에 꽂는 것과 동시에, 엘프들이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철퇴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보호막이 만들어지며, 엘프들의 화살을 죄다 튕겨내버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화살꽂이가 되었겠지.

예상 못한 일에 크게 놀란 왕이, 충격으로 두 눈을 크게 뜨는 게 보였다.

그래, 솔직히 나도 놀라고 있는……

“……!”

갑자기 눈이 부셨다.

가까스로 다시 눈을 뜨고 보니, 알현실이 눈부신 빛에 휩싸여 있었다.

그 발원지는 바로 내 손.

내 손에 들린성검이었다.

“이게 왜……?!”

악마나 그와 관련된 게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 성검이, 대체 왜?!

설마……!

경악하며 엘프의 왕을 보는 순간, 불현듯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건, 선포식 때 들은 종소리…….

단 하나 남은 인간의 왕국, 올레이스의 수도 미드랜드에서 들었던 그 불길한 종소리다……!

대앵, 대앵, 대앵…….

마음속 깊은 곳까지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엄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근원을 잊은 자, 사명을 내버린 자, 의무를 모르는 자여, 들으라.

빛의 대행자가 당도하였으니, 망각과 방기와 무지의 죄를 되새기라.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라.

그대, 맹세를 저버린 자여, 심판의 때가 왔노라.』

대행자, 맹세, 심판.

단어도 다르고 몇 가지 글귀도 더 추가되었지만, 구조 자체는 이전에 드워프의 의사당에서 보았던 그 글귀와 비슷하다.

맹약을 맺은 종족들에게 전하는 판결문이자, 내가 하게 될 일의 예보이다.

“……”

그렇다는 건, 나보고 이 엘프들을 해치우라는 건가……?

아까 우리를 구경하던 그 어린 엘프들도 전부, 내가 죽이게 된다고……?

“카엘 님!”

어느새 보호막을 해제한 로나가,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인 채 외쳤다.

“흔들리지도, 주저하지도 마세요!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세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그것은 무엇인가?

저 목소리의 말처럼, 드워프들이 원하는 것처럼 이 엿 같은 귀쟁이들을 죄다 족치는 것인가?

왕을 만나러 오는 중에 생각했던 것처럼, 이 숲을 죄다 불태우는 것인가?

……아니, 그건 결코 아니다.

‘되새겨.’

난 심판하러 온 게 아니야.

어린애들을 찾으러 온 거지.

솔직히 몽땅 불태우고 싶긴 하지만, 그건 다 끝나고 난 뒤에 고려할 일이다.

저 목소리가 뭐라하건 나와는 아무 상관없어.

내 알 바 아니야.

내가 신경 쓸 게 아냐!

그렇게 속으로 되뇌자, 마음 깊은 곳에서 그걸로 충분하다며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만, 그만해애애!!”

내 귀에는 이제 종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데, 엘프들에겐 여전히 무어라 말이 들리고 있는 듯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엘프 병사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친위대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알현실에 등을 펴고 서 있는 엘프는,

“그런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엘프의 왕, 그 하나뿐이었다.

“네놈이……! 네놈이 용사인가!!”

왕이 내 손에 들린 성검과 나를 마주보면서 소리쳤다.

그에 호응하듯이, 성검의 검신이 번쩍이더니 빛 한 덩어리가 왕을 향해 핑 날아갔다.

그의 목 위에 달린 교만덩어리를 향해!

“크윽?!”

꼴에 엘프라고, 놈은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돌려서 빛을 피했다.

그래도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놈의 뺨에 가늘고 긴 상처가 나 있었다.

그 상처에서, 검은 물줄기가 가느다랗게 흘러내렸다.

“역시 용사로구나! 비겁하게 선포도 없이 공격을 하다니!!”

“아니, 내가 한 거 아닌데.”

“게다가 그새 내 병사들의 목숨을 전부 빼앗기까지……!! 이 어찌 무도한 놈들이란 말인가!!”

뭐? 병사들?

놈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엘프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전부 붉은 웅덩이에 잠긴 채.

그리고 메린이 마지막 병사의 가슴에서 막 검을 뽑아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손에 검을 든 채, 무덤덤한 얼굴로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

아니, 그새 그걸 다 죽였네.

일부는 검이 아닌, 굉장히 날카로운 발톱에 찢겨 죽은 것 같고 말이지?

말없이 메린과 위슨을 번갈아 쳐다보자, 녀석들이 저마다 어깨를 으쓱이거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해치워야지.”

라는 게 메린의 변명.

그리고,

“왜? 적 아니었냐?”

라며 위슨이 의문을 던졌다.

정말 어이가 없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어.

나는 두 바보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왜 너네끼리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건데?! 분위기에 집중 안 하냐?!”

“뭔 분위기?”

“너 빛 번쩍이고 목소리 울린 거 들었어, 안 들었어?!”

내가 묻자, 메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들었는데, 그게 뭐? 나랑 뭔 상관인데?”

“……”

큭……!

이래서 멋을 모르는 녀석은……!

물론 그 덕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긴 했다.

두 녀석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크게 고생했겠지.

그래, 그건 안다고.

그래도 말야.

엄연히 분위기라는 게 있단 말야…….

하아아아…….

……뭐, 어쩔 수 없긴 하다.

이건 주인공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는, 그런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니까 말야.

극적인 것보다는 안정적인 게 훨씬 낫지.

아무튼 당장 있던 병사들은 싸그리 없애버렸지만, 아직 안심하긴 일러.

다른 병사들은 물론이고, 저 친위대장이 이끄는 친위대도 이 왕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여긴 카펫이 깔려 있으니까, 엘프들도 그 고속돌격은 못하겠지.

그래도 우린 넷 밖에 안 되잖아. 수적으로 너무 불리해.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게 누구 없느냐!!”

왕이 고함치자, 알현실 바깥에서 발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슨이 재빨리 알현실 문 쪽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거북이가 나타났다.

“허허~”

느긋하게 웃으며, 거북이가 머리를 문 쪽으로 둔 채로 그 앞에 앉았다.

이윽고 알현실의 문이 열리고,

푸우우우­­­

거북이가 입에서 물을 쏘았다!

폭포 같은 물줄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오며, 문 앞에 정렬해 있던 엘프 병사들을 쭉 날려버렸다.

그리고 나머지는, 거북이가 입에서 콸콸 쏟아내는 물살에 휩쓸려서 어디론가 떠가고 말았다.

“……”

정령 대단해.

순식간에 알현실 앞이 홍수가 나 버렸네.

거북이는 계속해서 물을 콸콸 뿜어내고 있었고, 그 탓에 우리도 문으로는 나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럼 창문밖에 없는데.

저거 뚫릴까?

“블루스타 친위대장! 용사를 죽여라!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딸, 블루벨의 죄를 사하겠노라!!”

“……뭐?!”

딸? 딸이라고?!

하나도 안 닮은 건 그렇다 치고, 저 친위대장……!

자신의 딸에게 반했다는 거야?!

엘프들이 괜히 심판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로구나!!

“……”

친위대장, 블루스타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검을 뽑았다.

나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지며, 그는 입을 열었다.

“오해 마라. 피가 이어진 건 아니다.”

“……”

“블루벨을 위해 네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용사.”

단호히 선포한 후, 블루스타가 두 눈에 살기를 품고서 천천히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메린이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내 옆에 바짝 붙으며 속삭였다.

“야, 카엘, 어쩔 거냐?“

“창문으로 빠져나갈까 하는데. 여긴 너무 불리하잖아.”

“내가 저 놈 상대하는 동안, 너랑 로나가 왕 죽이면 안 되냐?”

“안 돼요.”

그녀의 말에, 로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사로운 놈이 아니에요. 섣불리 건드렸다간 전부 끝장날 거에요. 우선은 카엘 님 말씀대로 여길 탈출해야 해요.”

로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메린이 갑자기 몸을 움찔거리더니 앞으로 튀어나갔다.

채앵!

간담이 서늘어지는 쇳소리와 함께, 두 검사가 서로 맞붙는 게 보였다.

“그럼 서둘러!!”

“네!!”

로나가 철퇴를 거머쥐고 창문으로 돌격했다.

그런 그녀를 크게 비웃으며, 엘프의 왕이 또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멍청하긴! 내 허락없이 여기서 나갈 수 있으…… 으윽?!”

쨍그랑 소리와 함께, 팔을 뻗어 무언가 하려던 왕의 발치에서 갑자기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 바람에 놈의 주의가 흐트러졌고,

“하아앗!!”

그 틈에 로나가 철퇴를 휘둘러서 창문, 아니 창문이 달린 벽을 박살내 버렸다!

“카엘 님! 서두르세요!”

나는 아직도 엎어져 있는 블루벨을 들쳐업고, 로나가 뚫어버린 구멍으로 달렸다.

성검 이거, 검집에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성검이 빛으로 변하면서, 허리에 찬 검집에 쏙 들어가버렸다.

아니 원래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였어?

일반 검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됐었네!

아무튼 손이 하나 비었으면 됐다.

나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뒤를 돌아 크게 외쳤다.

“위슨! 메린! 후퇴하자! 위로 올라와!”

위슨이 알현실 문 밖으로 무언가 던진 후, 왕을 향해 또 한 번 뭘 던지면서 내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메린은…… 블루스타의 검격이 맹렬한 탓에 벗어날 틈이 없는 듯했다.

주의를 돌려야 돼!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켠 후, 재차 소리쳤다.

“거기 근친성애자!! 네 딸은 내가 데려간다!!”

“블루벨?! 네놈……! 그리고 근친 아니, 크헉!”

훌륭하게 주의가 흐트러진 블루스타.

메린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복부를 크게 베어버리면서 턱을 세게 걷어차버렸다.

그녀는 알현실 저 끝으로 날아가는 그를 내버려두고, 곧바로 구멍을 향해 뛰어왔다.

이제 됐어!

나는 ‘손목 갈고리’로 왕궁의 벽을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올라가자, 구멍에서 엄청난 세기의 물살이 터져 나오는 게 보였다.

완전 물바다가 됐겠구만.

여기 축축하니까 곰팡이 잘 슬겠다!

잽싸게 위쪽으로 올라가는 나에게, 로나가 밑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근데 어디로 가시게요?!”

“숲 속!!”

이 숲 전체를 엘프가 관리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추격자만 따돌린다면,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을 터……!

“가자!!”

왕궁의 지붕을 딛고 숲 쪽으로 크게 뛰며, ‘손목 갈고리’를 발사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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