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75화 (175/475)

〈 175화 〉 171화 : “나 때는 말이야……” (1)

* * *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두 명분의 작은 발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두 소년소녀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두 사람 몫의 차가…… 모자라군.

더 끓여야겠네.

물을 끓이느라 뒤돌아 있는 동안, 로나가 밝은 목소리로 다녀왔습니다~ 라며 메린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갑자기 차에서 나는 것과는 다른 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

약간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듯한…… 꿀과는 다른 기묘한 향이다.

뭔 냄새이지?

나가는 김에 약초라도 캤나?

“메린 님, 이제 일어나셨네요~ 알 거 같아요~ 침구가 포근하면 일어나기 힘들죠~”

“침구? 그냥 그랬는데. 그래도 꿈도 안 꾸고 엄청 푹 자긴 했지? 쟤랑 자면 꼭 그래.”

“오, 그 어떤 폭신한 이불이나 베개보다도 카엘 님이 훨씬 더 좋으신 거군요! 그러고보니 카엘 님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셨네요! 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캐모마일보다도 효과 좋은 향취라니! 꺄아~”

“하…….”

땅이 꺼져라 푹 한숨을 쉬는 내 등 뒤에서, 얄밉게 낄낄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왜 두 분만 계세요? 블루벨 씨는요?”

“골든 대신 밭 돌본다고 밖에 있어.”

“에엥? 골든 씨 어디 아프세요? 아까 나갈 땐 괜찮으셨는데?”

놀란 목소리로 묻는 로나에게, 메린은 무척이나 덤덤히 대답했다.

“카엘이 쓰러뜨렸어.”

“얌마, 유언비어 퍼뜨리지 마라!”

내가 쓰러뜨리긴 무슨!

그냥 저 혼자 충격받고 쓰러진 거지!

재빨리 대꾸하자마자, 또 다른 발소리가 들리면서 아연한 듯한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뭐? 카엘이 이 집 차지하려고 주인을 잡아버렸다고?”

“아니야, 임마! 그리고 그런 소리는 한 마디도 안 나왔잖아!”

“메린이 생략한 줄 알았지.”

“아니라고.”

딱 잘라 대답하면서, 나는 두 사람 몫의 차를 가져다주었다.

“와,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

나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으음…… 근데 진짜 무슨 향이지?

위슨이 오니까 더 진해진 거 같은데…….

뭐, 엘프의 숲이니까 이것저것 실컷 캔 거겠지.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짧게 한숨을 쉬며, 나는 두 녀석에게 탐문 내용 등등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리고 두 녀석을 보는 순간,

“……?!”

하마터면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의아한 듯한 두 시선을 번갈아 마주하며, 나는 힘겹게 입을 떼었다.

“너네, 귀……!”

“귀?”

“자, 자랐어?!”

베일을 벗은 로나는 물론이고, 위슨도 길다란 머리카락 옆으로 뾰족한 귀 끝이 튀어나와 있다!

마치 엘프처럼!

귀가 자라다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머리가 꾸짖는다.

하지만 눈앞에 실제로 일어나 있는걸!

설마 이 두 녀석, 원래 엘프인데 그동안 모습을 속인 건가?

애늙은이가 아니라 진짜로 늙은이였던 건가!

“귀가 자랐냐니 뭔 헛소리…… 아, 이거 맡았구나.”

굉장히 덤덤하게 중얼거리며, 위슨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풀더니 테이블 위에 턱 올렸다.

손바닥 만한 크기에 가느다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작은 주머니가 나타나면서, 그기묘한 향이 한층 더 진해졌다.

이 주머니에서 나는 향이었구만?

“이게 뭐야?”

“환각을 보이게 하는 향주머니. 재료는 영업비밀.”

“안 궁금한데 잘됐네. 흠……, 그럼 너희 귀가 자란 게 아니라 환각인 거군?”

“어. 향을 맡은 사람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환각을 보게 하는 거야.”

위슨은 품속에서 작은 통을 꺼내더니, 그 안에 향주머니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톡톡, 그가 뚜껑을 가볍게 두 번 두드리자, 질리도록 풍기던 묘한 향이 싹 사라지면서 그의 귀가 다시 둥그런 모양으로 보였다.

“우와……. 진짜 별 게 다 있네.”

“드워프들이 재료 주길래 만들어봤어. 냄새 못 맡는 놈이랑 비 오는 날엔 안 통해서 그렇지, 그럭저럭 쓸 만해.”

감기 걸린 사람에겐 안 통한다는 거군.

비 오는 날은 향주머니가 습기를 먹어서 향이 잘 퍼지지 않는 거겠지.

두 사람의 옷차림은 환각이 사라져도 그대로인 걸 보면, 얼굴 등의 신체부위에 한정해서 환각을 보여주는 듯했다.

아무튼 이걸 썼다면, 아주 당당하게 마을을 활보하고 다녔겠군.

난 또 숨어서 탐문했을 줄 알았는데.

“어제도 둘이서 마을 돌아본 거야?”

“네. 메린 님은 카엘 님 옆에 딱 붙어 있어야 된다고 하셔서요. 블루벨 씨는 골든 씨에게 사정 설명을 하는 것 같았고요. 음, 그래서 알게 된 건데요,”

말을 끊은 로나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지며 진중해졌다.

이내, 그녀는 딱딱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 숲의 엘프들은 굉장히 건방지게 고유 언어만 써요. 저는 작으니까 아직 말을 덜 배운 어린아이인 척할 수 있었지만, 두 분은 아마 안 되실 거에요.”

“……그럼 마을에는 위슨과 블루벨, 둘만 다닐 수 있겠군.”

위슨은 파랑새가 언어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줄 거고, 블루벨은 어차피 엘프이니 말이 안 통하는 게 이상하다.

뭐, 둘 다 아까 그 향주머니의 힘을 빌려야겠지만.

“또 뭐 들었어? 쭉 말해줘.”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면…….”

로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이야기를 쭉 늘어놓기 시작했다.

광장과 그 주변, 즉 나무집에 사는 엘프들이 종소리를 들은 후 공황에 빠져선 집에 틀어박혔다는 것.

그들을 대신해 활동하고 있는 엘프들은 거의 대부분, 블루벨 이후에 태어난 엘프들이라는 것.

“그리고 친위대장은 지금 요양 중이랍니다. 부상이 크대요.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엘프는 한정되어 있는 탓에, 임시로…… 이름이……,”

로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우물거리자, 옆에서 차를 홀짝이던 위슨이 과자를 쪼아먹는 파랑새를 톡 쳤다.

“째짹! 뭐. 왜. 아, 이름? 글라디올러스.”

“아, 맞아요. 글라디올러스! 길어서 잘 기억이 안 났네요. 글라디올러스라는 엘프가 임시 대장이 되었다네요.”

“……글라드가 블루스타를 대신한다고?”

조용히 울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블루벨이 부엌 문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는 무심한 눈으로 우리, 아니 테이블을 빤히 쳐다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네. 아시는 분인가봐요?”

“너희도 알걸? 숲 외곽에서 카엘이 말 나눴으니까.”

“엉? 나랑?”

내가 숲 밖에서 말을 나눈 엘프는 블루스타 포함해서 딱 셋인데.

그 소아성애 변태는 200살이라고 했으니 제외하면……

짝사랑남 A인가?

“허? 그 허당이 친위대장이라고?”

그 멍청이가 친위대장이라니, 그렇게 인재가 없나?

그보다 숲 바깥을 경비하던 놈이 어떻게 단숨에 친위대장이 되지?

“나이 많은 엘프들은 공황에 빠졌다며? 글라드는 나보다 어린 엘프들 중에선 가장 전투를 잘해. 그러니 그 애가 대리가 된 것도 당연하지.”

전혀 그래보이지 않던데…….

그래도 그때 경비조장 비슷한 위치인 것 같긴 했지?

그때, 별안간 메린이 중얼거렸다.

“부상이 크다고……? 이상한데.”

“뭐가?”

되묻는 나를 향해,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맛이 없었어.”

“……베는 느낌이겠지. 근데 너 그 양반 베긴 베었잖아.”

“옷뿐이었는데.”

살을 베지 않았다는 뜻이군.

그런데도 요양하려고 블루스타가 임시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두드리면서, 나는 로나에게 물었다.

“……종소리를 들은 엘프들이 공황에 빠졌다고 했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블루스타도……?

아냐, 그 양반은 엘프의 왕이 종소리를 꺼버리니 바로 멀쩡하게 움직였어.

그러니 메린이 붙었던 거잖아.

“……그러고보니 그 양반, 우릴 쫓아오지 않았어. 메린 말대로 옷만 베였다면, 방 끝으로 날아갔어도 몸을 추스르자마자 쫓아왔어야 하는데.”

“벽에 머리 부딪쳐서 그대로 기절한 게 아닐까요?”

음, 그럴싸한데.

지난번에 메린이 사람을 벽에 날려서 죽였었지.

죽일수도 있는데 기절을 못 시킬까?

“요양이라면, 역시 집에서 하겠지?”

“안 돼.”

녀석이 느닷없이 퇴짜를 놓는 탓에, 일순 말문이 막혀버렸다.

……얘도 뭐 영혼의 소리가 들리나?

뜬금없이 뭐지?

“……나한테 한 소리야?”

“그럼 너 말고 누구한테 하냐?”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뻔하지.”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은 후, 잔뜩 인상을 쓰며 나를 노려보았다.

“너 그 엘프 설득하자고 하려던 거 아냐?”

“……와하하.”

이런 제길, 말도 꺼내보기 전에 단칼에 잘려버렸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순 없지.

기왕 말을 꺼낸 거 휘두르기라도 해봐야 할 거 아냐?

“크흠, 그다지 나쁜 수도 아니잖아. 강한 데다가 친위대장이니까 이것저것 알고 있을……”

“순순히 설득되겠냐? 뭐, 또 고문이라도 하게?”

“아니, 음, 블루벨이 설득을 하는 거지. 왕에게 대들 정도로 아끼는 애가 협력해달라고 하면 좀 통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자, 메린이 살짝 눈썹을 올리더니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오, 되는 대로 말한 건데, 잘하면 통과되겠다!

“싫어.”

……그러나 내 기대는 의외의 방향에서, 그것도 단 한 마디에 무참히 박살나고 말았다.

허탈한 심정으로 블루벨을 쳐다보자, 그녀는 한층 더 인상을 쓰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절대 안 해.”

“……왜?”

왜 다 되어가는 밥을 엎어버리는 거야? 응?

모처럼 메린이 설득되고 있었는데 왜 망치는 거야, 이 나쁜 엘프야!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는 건 뭐야?!

“왜 안 한다는 건데? 애초에 말이 안 통하니까 소용없다는 거야?”

“말 섞기 싫어.”

“……”

아니 170살 먹은 할머니가 무슨 사춘기 여자애도 아니고, 키워준 아빠랑 말 섞기 싫다니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블루벨은 내 시선에서 무언가 읽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아무튼! 그건 절대 안 할 거야! 어차피 요양 중이라고 알려진 사람이잖아. 설득한다고 해도 밖에 못 나올 텐데, 그럼 무슨 소용이 있어?”

“정보요, 정보. 친위대장이니까 이러저러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거 들으려는 겁니다, 이 할망구야!”

“뭐? 하, 할망구?! 이 자식이……!”

나에게 달려드는 할망구의 두 손을 맞붙잡고 버텼다!

“170살이나 먹었으면 할망구지, 그럼 뭐 꽃다운 처녀냐?! 인간 두 명분의 세월을 산 사람이 뭐? 말 섞기 싫어서 안 해?

아니,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댁 제대로 할 맘이 있긴 한 거야?!”

“너도 내 입장 돼봐! 말 섞고 싶나! 아버지로 생각했던 사람이 여자로서 날 사랑한다는데! 그걸 알고도 태연하게 대할 수 있겠냐고!”

“150년간 아버지였다며, 그럼 그 사실을 안 지 20년이나 지났다는 거 아냐! 왜 아직도 안 풀린 건데?! 20년 동안 뭐 면벽수행이라도 했어?!”

“고작20년으로 뭐가 된다고! 20년 가지고 그게 풀릴 거면, 애초에 충격 먹지도 않았어!”

블루벨은 그렇게 외치며, 갑자기 손에 힘을 홱 풀어버렸다.

자연히 내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고꾸라지려는 걸, 메린이 무심한 얼굴로 받쳐주었다.

……다리를 뻗어서.

“……저기, 기왕이면 팔을 써주시지 않고요?”

“차 마시느라.”

“아, 예.”

받쳐준 게 어디냐…….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키고, 나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씩씩대는 블루벨과 마주보았다.

“그럼 20년간 한 마디도 안 한 거야? 집도 나와버리고?”

“……여기서 살았어. 어차피 내 방도 있으니까.”

“하…….”

그 근친성애자, 대체 어떻게 들켰길래 이렇게 골이 깊어져 있냐?

뜬금없이 광장에서 고백하기라도 했나?

“……아무튼 난 그 사람이랑 말 안 할 테니 그런 줄 알아. 아저씨가 괜찮아지셨는지 잠깐 보고 올게.”

머리도 식힐 겸.

웅얼거리듯이 덧붙인 후, 블루벨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훌렁 부엌을 나가버렸다.

호로록, 차를 마시며 위슨이 중얼거렸다.

“복잡한 가정사구만.”

“……아니, 너보단 훨씬 간단한 거 같은데.”

가정사에 한해선, 이 녀석보다 배배 꼬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 같아.

친어머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양어머니에, 그것도 자신의 친부모와 고향을 홀라당 없애버린 사람이었잖아.

그에 비하면 근친애 따위…….

어차피 피가 이어진 것도 아닌데.

“……”

아니, 이어져 있는 건가?

꽃은 다르지만, 어쨌든 같은 나무에서 태어난 거잖아.

이 경우엔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그게 중요해?’

……물론 아니지.

아무튼, 같은 동네에 살면서 20년이나 말 한 마디 섞지 않다니.

충격이 크긴 엄청 컸나보다.

“……잠깐.”

문득 스쳐 지나간 생각에,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돌에렛인가 하는 나무에서 마지막에 태어난 게 블루벨이라 하지 않았어?”

“왜요?”

“아니, 좀 이상해서…….”

엘프는 꽃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그 꽃이 맺히는 어머니 나무, 돌에렛엔 이제 꽃봉오리가 맺혀 있지 않다.

그런데도 엘프는 계속 태어나고 있다.

……그러고보니 숲에 들어왔을 때, 우릴 신기하게 쳐다보는 엘프들 중엔 어린애들도 있었어.

로나도 그랬잖아.

‘아직 말을 못 배울 정도로 어린 엘프인 척했다’고.

“그 애들은 어떻게 태어난 거지?”

“결혼한다잖아. 뭔가 방법이 있는 거겠지.”

무심하게 툭 내던지며, 메린이 과자를 우물거렸다.

“……결혼.”

나무성애자라는 사실을 들킨 충격으로 쓰러진 골든로드도 스리슬쩍 언급했다.

연애, 결혼, 그리고 날개사슴과 식을 올렸다는 어느 엘프.

……잠깐, 연애?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엘프들이 왜 연애를 하지?

왜 짝사랑을 하는 거야?

꽃에서 퐁퐁 태어나는 종족이니, 인간처럼 연애할 필요는 없잖아.

“응? 갑자기 고찰인가요? 뭐, 생물이 아닌 정신체들도 다른 존재에게 애정을 품잖아요. 정령들처럼요. 엘프들의 연애도 그런 종류 아닐까요?”

“귀쟁이랑 같은 취급하지 마!”

곧바로 발끈하는 파랑새에게 동의하며,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건 절대 아닐 거야. 블루벨에게 열광하던 걸 생각해봐. 굉장히 추잡했잖아.”

세상에, 메린에게 들쳐업혀 가는 블루벨을 보면서 몸을 뒤집으라느니 뒤태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도 역시 그 소아성애 변태가 제일 강했어.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 과실에 달콤한 풋사과라니, 어우, 다시 떠올려도 소름 돋는다!

……응?

몸을 뒤집어……?

뒤태……?

­­그녀의 몸이 매력적이니까.

그래, 몸.

블루스타가 그랬잖아.

납득은 전혀 안 되지만, 엘프들은 블루벨의 몸에 매력을 느낀다고.

그래……

대상이 어린애에, 나무에, 날개사슴이라는 정신나간 것들이라 그렇지, 전부 다 ‘몸’에 발……아니 욕정하고 있어.

인격이나 성품 등의 정신적인 면이 아니라.

“그게 뭐?”

시큰둥하게 묻는 메린을 똑바로 보며,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엘프가 몸에 욕정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아니, 욕정하는 것 자체가 이상해.

인간과 다른 짐승이 이성에게 그런 욕구를 품는 건 종족보전을 위해서야. 그렇게 세대를 이어가도록 되어 있지.

하지만 엘프들은 그럴 필요가 없잖아. 아무것도 안 해도 꽃에서 태어나니까.”

그러나 지금 엘프들은 어떤가?

그야말로, 저마다 품고 있는 취향에 맞는 ‘몸’에 미쳐 있다.

그런 육체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는 건,그럴 필요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설마…… 생식(??)으로……?”

“맞아…….”

나른한 목소리와 함께, 창문에서 불쑥 팔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연노랑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집주인이 창문으로주륵 흘러내려오듯이 미끄러지며들어왔다.

……아니 영문을 모르겠네.

왜 문으로 안 다니는 거야?

“엘프는, 영락했어…….”

온 몸으로 그 말을 표현하며, 골든로드가 중얼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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